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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학회> 영국 연구> A Scottish Vision of the Commonwealth - Union and Empire in the Thought of Sir Alexander Murr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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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cottish Vision of the Commonwealth - Union and Empire in the Thought of Sir Alexander Murray -

Tonks , Paul
  • : 영국사학회
  • : 영국 연구 3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6년 12월
  • : 29-60(32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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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 의회 통합은 스코틀랜드인들로 하여금 다양성과 차이를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인들은 국가 간 협력 및 상호이익 추구에 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형성하였는데 이는 영국 제도의 제국가적인 범주를 넘어서 영제국의 소속 지역까지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같은 스코틀랜드의 사상적 뿌리는 20세기에 이르러 국가 공동체로서의 영연방의 비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초석을 이루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스코틀랜드 비전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전직 자코바이트 반란군의 일원이자 장원제 개혁주의자였던 알렉산더 머레이(Alexander Murray, 1687-1743)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보고자 한다. 1745년 자코바이트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정치경제 사회적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자, 당대의 논객이었던 머레이는 귀족들이 가진 사법적 권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통합 브리튼 정부는 머레이의 의견을 수용하였고, 그 결과 1747년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귀족사법권한폐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에 있어 매우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게일어를 사용해오던 스코틀랜드 북부지역의 영제국으로의 편입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This article traces a distinctive tradition of Scottish thought about partnership relations between sister nations. Beginning with an examination of Scottish ideas about governance, trade, and economic development in the early modern period, the article explores the complex historical evolution and legacy of Scottish debates about the meaning of sovereignty and collaboration between nations. The Parliamentary Union between the kingdoms of England and Scotland shaped Scottish understandings of the need to accommodate diversity and difference in order to secure mutual benefits. Scots developed a compelling vision of cooperation and mutual benefits that worked outwards from the nations of the British Isles in the long eighteenth century to the constituent territories of the British Empire. These deep historical roots of Scottish thought about cooperation and interdependence laid an important foundation for the shared vision of a Community of Nations that grew into the modern Commonwealth in the Twentieth Century. In order to explore the historical evolution of this Scottish vision, we shall focus on the historiographically neglected arguments of the former Jacobite rebel turned Highland improver Sir Alexander Murray of Stanhope (1687-1743). This article aims to demonstrate that Murray was actually one of the most interesting commentators on the political and socioeconomic condition of Scotland in the first three or four decades after the Anglo-Scottish Parliamentary Union of 1707. Murray`s interpretation of Scottish problems in the first four decades after the Anglo-Scottish Union is of major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the failed Jacobite rebellion of 1745 ensured that his focus on the impact of heritable jurisdictions in terms of law, power, society, and economy was eventually applied by the British state. An Act of the Westminster Parliament in 1747 abolished the Scottish heritable jurisdictions that Murray had so vehemently opposed. This represented an enormously significant transform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ngland and Scotland. It also facilitated the integration of the Scottish Highlands and Islands into the British Union and Empire. This led ultimately to the massive transfer of population from the Gaelic-speaking regions of Scotland to the countries that came to form the 20th Century Commonwealth.

ECN

I410-ECN-0102-2018-900-000510423


UCI

I410-ECN-0102-2018-900-000510423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서양사
  • : KCI 등재
  • : -
  • : 반년간
  • : 1226-8135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7-2018
  • :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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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잉글랜드 종교개혁 시기 `fish day`의 의미 변화

저자 : 강미경 ( Kang , Mikyung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2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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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는 헨리 8세 시기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결과 잉글랜드는 교황과 로마가톨릭의 권위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헨리는 잉글랜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가톨릭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났는데 특히, 성축일이나 단식의 변화를 포함하는 종교적 관습들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종교개혁 전 거의 대부분의 잉글랜드인들은 가톨릭교회의 영향력 아래에서 가톨릭의 성축일과 단식의 규칙을 지켰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전통적인 축일과 단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논문은 헨리 8세 시기부터 엘리자베스 1세 시기에 이르기까지 축일과 단식에 나타난 변화를 연구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특히 이 시기 동안 `fish day(금육일)`에 나타난 의미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2A Scottish Vision of the Commonwealth - Union and Empire in the Thought of Sir Alexander Murray -

저자 : Tonks , Paul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9-6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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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 의회 통합은 스코틀랜드인들로 하여금 다양성과 차이를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인들은 국가 간 협력 및 상호이익 추구에 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형성하였는데 이는 영국 제도의 제국가적인 범주를 넘어서 영제국의 소속 지역까지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같은 스코틀랜드의 사상적 뿌리는 20세기에 이르러 국가 공동체로서의 영연방의 비전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초석을 이루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스코틀랜드 비전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전직 자코바이트 반란군의 일원이자 장원제 개혁주의자였던 알렉산더 머레이(Alexander Murray, 1687-1743)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보고자 한다. 1745년 자코바이트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정치경제 사회적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자, 당대의 논객이었던 머레이는 귀족들이 가진 사법적 권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통합 브리튼 정부는 머레이의 의견을 수용하였고, 그 결과 1747년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귀족사법권한폐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에 있어 매우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게일어를 사용해오던 스코틀랜드 북부지역의 영제국으로의 편입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3영국의 거문도 점령 과정에 대한 재검토 - 갑신정변 직후 영국의 간섭정책을 중심으로 -

저자 : 한승훈 ( Han , Seunghoon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61-9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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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갑신정변 직후 영국이 외교적·군사적으로 추진한 대조선 간섭정책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발발하자, 영국은 러시아의 독점적 조선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상업적 이익을 수호하고자 했다. 이에 동아시아 주재 영국외교관들은 외교적 간섭을 추진하였다. 주조선 영국총영사 애스턴은 조선 정부의 거중조정을 수락함으로써, 조선과 일본의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하고자 하였다. 주청 영국공사로 주조선 공사를 겸직하였던 파크스는 청일 군대의 조선 철수를 목적으로 청일 중재를 추진하였으며, 청과 일본이 주축이 되는 조선의 내정 개혁을 구상하였다. 한편 갑신정변 소식을 접한 영국 해군부는 점령을 염두에 둔 거문도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외무부로부터는 러시아의 조선진출이 예상되는 보고서를 계속해서 전달받았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긴장이 고조되자, 해군부는 1885년 3월 28일에 거문도 출동 준비를 지시하고, 4월 15일에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이로서 영국은 대조선 간섭정책을 모두 실현하였다. 하지만 영국은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거문도 점령의 적극적 지지를 얻는데 실패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외교력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4조지 오웰의 혁명 개념과 애국심

저자 : 김명환 ( Kim , Myung Hwan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97-13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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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은 영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특별한 국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웰의 혁명은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변화를 의미했다. 오웰은 혁명적 변화를 추구했지만 혁명은 평화적 과정을 거칠 수 있다고 보았다. 오웰에게 혁명의 주체 세력은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을 아우르는 계층이었다. 오웰은 영국에서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은 계급의 양극화 속에서 계급 적대가 극단화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오히려 그 이질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웰은 노동계급은 그 자체만으로는 혁명을 성취시킬 수 없지만 그들을 끌고 가는 힘이 사회주의자들 혹은 좌파 지식인들에게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방해하는 세력이었으며 그들은 혁명을 실현시킬 수도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수도 없었다. 오웰은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협력속에서 혁명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웰의 혁명에서 혁명을 끌고 가는 힘은 계급 적대감이 아니라 애국심이었다. 애국심은 추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구체적인 주변환경에 대한 사랑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그 애국심은 보수파의 애국심과는 달랐으며 영국성에 뿌리박혀 있는 애국심이었다. 영국의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뿌리박힌 애국심은 자기 고향의 자연과 전통에 대한 애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오웰의 혁명을 이끄는 정신은 특정 계층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영국의 삶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영국의 삶은 지방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으므로 애국심의 발휘를 위해 지방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영제국의 대학 개발 정책, 1943-1948 - 아프리카 골드코스트 식민지를 중심으로 -

저자 : 신동경 ( Shin , Dong Kyung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35-1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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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국의 식민지 대학설립은 식민지 개발정책의 한 축이었으나 농업·의학 분야의 개발과는 달리 역사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 글은 대학개발 담론을 식민지 개발정책의 연장선에서 서아프리카 골드코스트 식민지 (현재, 가나)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식민부의 보고서, 각종 문서, 주요 신문기사를 고찰하여 골드코스트 대학의 설립과정을 살펴보고, 일방적인 문화제국주의 관점에 근거한 식민지 대학개발의 평가를 교정하며, 이 대학의 설립이 식민지인의 여론을 바탕으로 식민지 정부가 주도한 새로운 대학개발 정책이었음을 제안한다. 골드코스트 대학의 설립과정은 영제국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식민지 정부의 역할을 말해준다. 식민지의 전쟁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실시된 개발정책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혜택을 원하던 식민지의 요구는 강하였지만 개발사업은 여전히 본국의 이해관계가 관철된 정책이었다. 반면 제국의 주변부의 식민지 관리들은 점차 식민지인의 요구를 간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개발사업의 집행과정에 현장의 관점을 반영하게 된다. 이 대학의 설립 과정은 영제국의 본국과 식민지 정부의 충돌과 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정부는 대학개발 정책집행을 주도하며, 1940년대 영제국의 영향력을 골드코스트에서 지탱할 수 있게 한 주요 역할(agency)을 담당하였다.

6영국 원자력발전 조직체계의 구축, 1945-1965

저자 : 이내주 ( Lee , Nae-Joo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65-19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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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이후 원자력과 관련해 영국정부의 관심은 원폭개발에 있었다. 신속한 원자력법 제정에 힘입어 영국은 1950년대 초반 원폭실험에서 성공했다. 1953년부터 정부는 민수용 원전(原電) 개발에 주목했다. 덕분에 1956년 10월경 독자적 설계와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민수용 원전을 건립할 수 있었다. 이어서 향후 10년 이내에 12개의 원전을 건설한다는 야심찬 원전진흥계획을 천명했다. 이러한 원전 조직체계의 형성기에 발전을 주도한 기구는 1954년 7월설립된 영국원자력청(UKAEA)이었다. 이는 산하에 각종 원자력 관련 연구소 및 시설을 거느린 채 원전 관련 업무를 거의 전담했다. 실질적으로는 `영국 원전 3인방`이라고 불린 콕크로프트, 힌튼, 그리고 페니가 핵심적책임자로서 활동했다. 점차 UKAEA의 예산과 조직 규모가 크게 늘어나면서 1957년 가을 윈드스케일 원전 화재사고가 암시하듯이 통제력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전개발 초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영국에서 어떻게 원전 조직체계가 출현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특징들은 무엇인지를 고찰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원폭개발과 원자력연구단지 설치, 원폭에서 원전으로의 전환 및 이를 위한 전담조직 설립, 그리고 원전산업의 확대 등을 중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7제국의 기억과 영연방, 그리고 `상상의 잉글랜드`

저자 : 이영석 ( Lee , Young-Suk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99-23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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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8월 보수당 의원 이녹 파월은 한 보수당 집회에서 노동당 정부의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후 몇 개월간 영국사회는 파월의 연설을 둘러싸고 심각한 진통을 겪었다. 노동당의원과 보수당의 상당수의원들이 파월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난한 반면, 많은 백인들이 그의 연설을 지지하는 편지를 보냈다. 파월 사건은 영국사와 현대 영국사회에서 제국이란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제국과 인종주의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되묻는 계기가 되었다. 2차대전 이후 영국 지식인들은 도덕적 부담감에서 제국주의를 비판해왔으며, 제국이 영국사의 지배적 동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제국 경험이 영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백인성`에 대한 집착은 제국의 확장과 함께 형성된 것이며, 20세기 이민 추세가 백인자치령국가로 바뀐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치령에 대한 영국인들의 긍정적인 변화는 이들 국가가 `백인성`을 중시하고 다른 인종에 대한 배제의 원칙을 새롭게 정립한 점과 관련된다. 그러나 19세기말 20세기 초 자치령에 대한 인식변화가 강력한 영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대영국` 이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었음에 비해, 1960년대 본토에서 해외로 이주한 영국인들의 집착은 변질된 영국사회를 대신해 해외 자치령에서 `상상의 잉글랜드`를 찾으려는 퇴행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8유럽의 영국인, 영국의 유럽인? -크리스토퍼 투겐다트 EEC 집행위원의 사례 분석-

저자 : 원태준 ( Won , Tae Joon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35-27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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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77년 1월부터 1985년 1월까지 영국 출신 EEC 집행위원직을 역임한 크리스토퍼 투겐다트와 제임스 캘러한 및 마가렛 대처 정부간의 교류를 살펴봄으로써 가장 유럽회의적이라고 여겨진 영국 정부와 영국에서 파견 나온 EEC 집행위원 간의 관계를 통사적 접근을 통하여 파악해보고자 한다. 우선 1976년에 캘러한에 의해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된 노동당 고위 정치인 출신인 로이 젠킨스는 고위 행정직 자리를 역임한 경험이 없는 투겐다트를 보수당 몫의 집행위원으로 임명함으로써 투겐다트가 본국 정부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었으며, 캘러한 정부는 투겐다트에게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영국 출신 집행위원의 자의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하고 EEC의 어업 정책 또한 영국의 의도대로 설정되도록 집행위원회를 설득할 것을 요구하였다. 캘러한정부의 뒤를 이은 대처 정부 역시 영국의 EEC 예산분담금 조정 및 공동농업정책 개혁을 추진해 줄 것을 EEC의 예산 담당 업무를 맡았던 투겐다트에게 종용하였고, 이를 돕기 위하여 예산 담당 집행위원의 업무권한 강화를 고려하기까지 하는 등 투겐다트를 브뤼셀에 피견한 정부의 `요원`정도로 여겼다.

9영연방의 역사적 변천과 그 현대적 의미 - 정치적 함의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용민 ( Kim , Yongmin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77-30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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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기점으로 영국의 탈퇴진영에 의하여 유럽연합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영연방의 역사적인 변천과 현재 영국에 있어서의 영연방에 대한 주요한 논의 그리고 유럽연합을 대체할 대체재로서의 영연방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다. 이에 역사적인 의미의 영연방과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영연방의 의미를 비교분석하였으며 이제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영국의 영연방 연구현황과 21세기 현대에 있어서의 영연방의 현재와 앞으로의 존속 형태, 영연방과 유럽연합과의 관계, 21세기에 맞는 형태로의 영연방의 재편, 영국왕실과 영연방의 관계라는 네 가지 커다란 주제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고 국내에서는 완전한 미개척 분야이며 특히 역사적인 연구를 벗어난 현대적 시사점과 그 의미에 대한 연구는 전혀 진행되어 있지 않은 영연방 연구가 앞으로 필요함을 유럽연합의 대체재가 아닌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이익이 되는 존재로서의 영연방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정리하였다.

10범인(凡人)의 죽음과 걸작의 탄생 - 18세기 영국의 『나이팅게일 부부 기념상』 -

저자 : 전동호 ( Chun , Dongho

발행기관 : 영국사학회 간행물 : 영국 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301-33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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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는 영국 역사를 빛낸 수많은 위인들이 묻혀 있고 이들을 추모하는 조형물로 가득하다. 이들 기념물 중 하나가 프랑스 출신 영국 조각가 루비리악(Roubiliac)이 1761년 완성한『나이팅게일 부부 기념상』이다. 본고는 당대인과 현대인 모두에게 적지 않은 정서적 울림을 야기하는 『나이팅게일 부부 기념상』에 대한 문화사적 내지는 미술사적 이해를 추구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영국조각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는 루비리악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나이팅게일 부부 기념상』은 그 오랜 명성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학술적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그나마 소수의 영국조각사 전공자들에게만 잘 알려져 있을 뿐 영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려니와 영국사나 영국미술사 전공자들에게도 여전히 상당히 생소한 작품이다. 본고는 나이팅게일 부부는 누구이며 누가 이 작품을 어떤 맥락에서 주문하였는가라는 지극히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자는 장례 기념물에 얽힌 죽음과 욕망의 변증법이라는 예기치 않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고, 본고는 이에 대한 필자 나름의 고민과 탐구의 여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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