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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980-90년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젠데정치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의 맥락적 구성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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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젠데정치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의 맥락적 구성을 중심으로

Gender Politics in the Contesting Contexts of State Violence and Gender Violence: Focusing on Three Cases of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By Public Authorities in 1980-1990s

신상숙 ( Sang Sook Shin )
  • : 한국사회사학회
  •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07년 12월
  • : 227-266(40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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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하는 세 가지 사례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의 담론적 실천에서 나타나는 젠더정치 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다.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의 교 차점에 위치하지만 폭력의 의미를 규정하고 저항의 주체를 결집하는 대항담론에서 이 두 가지 맥락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효과가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이 연구는 경합하는 담론들 속에서 폭력의 의미를 자리매김하는 맥락적 구성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그 차이를 살쳐보고 젠더갈등의 봉합과 균열에 주목하여 젠더정치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군사독재의 정치적 유화 국면에서 새로운 여성운동이 태동하는 시기에 발생한 1984년 경찰의 여대생 추행 사건은 국가폭력이 젠더폭력의 인식을 자극하고 대항 상징의 모색을 촉진한 사례에 해당한다. 대외적으로 국가폭력의 맥락이 강조됨에 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여성운동 안에서 아내구타와 성적인 폭력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성폭력’ 개념이 구성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치 탄압과 사회적 저항이 고조되는 1986년의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서는 여성운동이 민주세력과 연대하여 투쟁 함으로써 저항의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었으나 ‘반고문 투쟁’이란 선행 맥락과 중첩 됨으로써 국가폭력의 해석 맥락이 강화되었다. 여성운동의 대항담론은 군사독재와 의 대립을 통해 여성을 호명하였으나 잠재된 젠더갈등은 봉합되었고 젠더폭력의 문제의식은 국가폭력으로 흡수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문민정부 하에서 발생한 1996년 한총련 여대생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젠더정치의 새로운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기존의 여성단체들과 구별되는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담론 속에서 사건의 의미는 자신들의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재해석되고 폭력의 공사구분은 해체되며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젠더폭력의 맥락 안에서 재정렬된다. 이상의 분석 결과는 여성운동에 있어서 젠더정치의 차이가 1980/90년대의 연대기적 분할선으로 단순히 구획될 수 없으며 그것의 변화가 국가-운동정치의 변화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changes of gender politics revealed in the discursive practices of women’s movement against sexual violence by examining representative cases of “sexual violence by public authorities” which led to the mobilization of activism against the violence in 1980’s and 1990’s. Although 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by public authorities had been located at the intersection of ‘state violence’ and ‘gender violence’, these two different violence did neither carry the same weight nor did produce the same effects in the context of the counter-discourses constituting the subjects of protest by defining the meaning of violence. In this paper, I investigated how differently the context prescribing the meaning of violence is formed and analyzed the changes of gender politics by focusing on the suture and fissure of gender conflicts. The first case is the incident of the sexual violence against female university student at the Chungriangri Police Station in 1984, the time of emergence of a new progressive women’s movement going through the alleviation of political suppression of the military regime. Due to this case, state violence instigated the awakening on the issue of gender violence and the need for the symbolic articulation of protest was raised. Despite the explicit emphasis on the context of state violence, this case led women’s movement groups to form the concept of ‘Sungpokryok’ in Korean, corresponding to gender violence or sexual violence in a broad sense including wife beating, rape, even traffic of women. The sexual attack on a woman activist at Bucheon police in 1986 is known as ‘sexual torture’ case, which happened at the height of political suppression of the military regime and social protests. Here, women’s movement fought in solidarity with democratic movement and therefore expanded the size and scales of protests. However, this struggle was overlapped with a precedent ‘anti-torture’ context only to reinforce the interpretive context of state power. The counter-discourses of women’s movement interpellated all women in opposition to the military regime. In this process, the lurking gender conflicts were sutured and the issue of gender violence was sucked into the frame of state violence. Compared to this, a new change of gender politics was observed from the case of sexual violence perpetrated by policemen during the suppression of Hanchongryon demonstration in 1996 under post-military or democratized regime. Young Feminist groups in college who distinguished themselves from established organizations of women’s movement reinterpreted the incident within the context of their everyday life experiences; their discourses dismantled the dichotomy of public-private violence, and realigned the frame of sexual violence by public authorities within the context of gender violence. The above analysis suggests that the differences of gender politics of Korean women’s movement cannot be demarcated simply along the chronicle line of 1980’s and 1990’s and historical change of gender politics does not always coincide with the transition of state-movement politics.

ECN

I410-ECN-0102-2017-330-000448077


UCI

I410-ECN-0102-2017-330-000448077

간행물정보

  • : 사회과학분야  > 사회학
  • : KCI 등재
  • : -
  • : 계간
  • : 1226-5535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6-2018
  • :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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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제의 무단통치와 경학원

저자 : 정일균 ( Ii Guun Jeong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5-5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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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 무단통치기의 경학원(經學院)의 제도적 연원, 그 제도적 구성과 주요사업, 경학원의 기능적 성격을 중심으로 그 주요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경학원은 애초 “經學을 講究□ 며 風敎德化□ 裨補□을 目的”으로 하는 '교화기관' 을 표방하며 출범함으로써 조선총독부가 초기 식민체제를 구성하는 양대 통치기구, 즉 '형정(刑政)'과 '교화(敎化)'의 지배틀을 완비하는 데 있어 후자의 측면을 대표하였다. 이로써 조선총독부는 경학원을 통하여 '군사지배'로서의 무단통치의 본질에 대한 호도, 대한국(對韓國) 식민지 교육방침의 관철, '식민주의적 담론'의 생산 및 유포를 통한 식민 헤게모니의 창출, 식민초기 지방에 대한 통제력 및 치안의 확보 등에 실로 다대한 도움을 받았다. 이처럼 경학원은 일제의 대표적인'이데올로기적 통치기구'로기 초기 식민지배체제의 구축에 있어 일개 교화기관의 범위를 벗어나는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점은 경학원이 결코 종래의 성균관을 단순히 관습적으로 계승한 소치가 아니라, 처음부터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적 구상과의 긴밀한 관련성 하에서 완전히 새롭고도 치밀하개 구성된'발명품'임을 의미하는바, 이는 또한 경학원이 총독의 특별'직속기구'로서 출발했던 사실을 통해서도 잘 간취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일제의 경학원을 단순히 성균관을 계승한 기구로 인식하는 피상적 견해나, 일제의 무단통치를 단지'억압적 통치기구'에만 의존한 폭력적 지배체제로 설명하는 일면적 입장에 대한 근본적 재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할 것이다.

2대북제국대학의 학교조직과 학원문화

저자 : 정려영 ( Li Ling Cheng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55-10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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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국대학은 식민지 대만사회의 유일한 근대대학이었고, 식민지 조선의 경성 제대와 더불어 일본제국이 식민지에 세운 2곳의 식민지제국대학 중 하나였다. 본 논문은 1926년 설립 이래 대북제대의 전개과정과 학원문화의 특징을 검토한다. 많은 점에서 대북제대는 일본의 엘리트 고둥교육기관이었던 제국대학의 특징을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대학은 개별 학문분야의 교수들의 강좌를 기본 단위로 해서 구성되어 있었는데, 단과대학의 교수들은 자기 분야의 전문성과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식민권력으로부터 상당한 특혜를 부여받았다. 교수들은 학교의 운영에 있어서도 외부권력을 가급적 배제하는 자율적 전통을 확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교수직은 일본인들이 대부분 독점하고 있었고, 대만인이 학문적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닫혀있었다. 즉, 대북제대는 학문적 성과 및 교수의 충원에 있어서 철저하게 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학술-교육체제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대북제대는 제국대학이라고는 해도 식민지대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대북제대의 식민지대학으로서의 측면은 학생문화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대북제대의 학생 및 여비학교의 학생은 일복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화 내에서 특권적인 엘리트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들 학교의 학생문화는 일본의 엘리트교 육기관의 학생문화와 기본적으로는 동일했다. 일본의 엘리트학생들은 엘리트로서의 특권의식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비판적인 인문학적 학생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식민지 대만의 경우에도, 대북제대는 다른 학교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롭고 비판적인 학생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학생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뿐으로, 대만인 학생들은 배제되었다. 대만인은 학교생활에서는 비교적 일본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기능성도 있었지만, 사회진출에 있어서는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북제대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학원문화는 대만학생들에게는 양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3경성제국대학에 있어서 한약연구의 성립

저자 : 신창건 ( Chagn Geon Shi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05-13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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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논문에서 1920년대 후반에 경상제국대학에서 왜 한약연구가 성립될 수 있었는지 검토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연구제도의 성립은 식민지시기 조선의학 사의 '변화' 이며, 조선총독부 권력 및 제국일본의 정책전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 변화의 저류에는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역사적, 지적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필지는 이 조건을, 주로 한약연구사의 맥락에서 크게 둘로 나누어 해명했다. 하나는 1910년대 초부터 이미 조선총독부 권력이 주도했던 조선 반도의 약용식물에 대한 필드조사와 문헌연구다. 농상공부 식산국 산림과, 경무총감부, 중앙시험소가 각각 서로 다른 관심에서 약용식물의 필드워크를 수행했다. 산림과는 식민지통치에 있어서 필수적인 삼림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조선 전영역의 약용식물을 의료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약용식물조사를 실시했다. 또한 경찰은 약품취체에 대한 관심에서, 중앙시험소는 대체의약품 개발의 필요성에서 약용식물조사를 시작했다. 이들 연구의 축적은 훗날 경성제국대학 약물학제2강좌의 강사가 되는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勉)에 의해 정리되어 스기하라(杉原)교실의 연구재료가 되었다. 또 하나는 1910년대에서 20년대에 걸쳐서 제국일본의 '내지' 와만주에서 전개된 인삼을 포함한 한약에 대한 실험적 연구다. 구체적으로는 동경제대 의학부 약학과에 기원을 둔 한약의 성분분석과 화학구조분석 연구, 더욱이 경도제대와 게이오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한약의 약리작용 연구가 축척되고 있었다. 전자의 약학ㆍ화학의 연구방법과 축적은 스기하라교실의 가쿠 텐민(加來天民)이, 후자의 의학ㆍ약리학에 관해서는 교수인 스기하라 노리유키(杉原德行) 자신이 계승했다. 이처럼 경성제대에서의 한약연구는 스기하라, 가쿠, 이시도야의 연구배경이 하나로 합류해서 성립됐던, 제국일본 유일의 종합약물학연구였다고 말할 수 있다. 1920년대 후반에 성립된 연구체제는 조선내의 한약조사 및 그 성분분석, 약리작용실험을 추진해 나갔는데, 인삼연구에서는 조선총독무, 미쓰이물산과 삼위 일체의 협력체계를 구축했고, 중국에서의 한약연구에서는 일본외무성이 주도했던 동방분화사업의 자원원조를 얻어 추진했다.

4제국정치와 의학: 일본 전시총동원하의 대북제국대학 의학부

저자 : 범연추 ( En Chiouh Pa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41-18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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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일본의 전시총동원체제하 대북제대 의학부의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과학기술과 사회 연구라는 관점에서 대만이 일본제국의 남진기지가 되고, 또 그것이 의학부 전공지식의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학부 연구성과가 일본제국의 권력작동을 어떻게 뒷받침하였는지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본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가체제는 대북제대에 의학부가 설립될 때, '강좌제'를 통해 연구방향, 강좌연구진의 선정, 운영경비의 분배 및 강좌담임교수의 선정, 연구의 전문화 등을 통제함으로써 학술동원을 진행해나갔다. 한편, 의학부의 주요 연구성과인 일본인의 '열대퇴화' 극복, 열대질병 예방 및 동아민족관계 건립 등은 실제로 일본제국의 남진확장에 응용되었다. 즉, '의학으로 무장'하여 제국정치를 뒷받침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대북제대 의학부의 연구발전에서 열대의학은 식민지과학의 일부 특징을 나타낸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열대의학은 식민에 있어서의 실용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일본통치 초기 일본이 대만에서 열대의학을 발전시킨 것은 식민주의에 기초한 것이며, 식민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0년대 대북 제대 의학부는 일본제국의 남진발전에 협력하는 것으로 방향전환하였다. 그리고 열대의학은 '로컬 사이언스'의 특징을 만들어 내었다. 식민지 과학은 제국의 주변부에 위치하여 있었고, 식민지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쓰여졌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발전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또 상대적으로 쉽게 연구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현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현지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집단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제국 중심으로부터 온 권력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대만인 과학자도 열대 의학연구를 저항의 거점으로 삼았다. 대북제국대학 의학부에는 유일한 대만인 강좌 교수 杜聰明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인 학자들의 열대의학 독점을 깨트린 것이었다.

51990년대 한국 소비문화: 소비의식과 소비행위를 중심으로

저자 : 남은영 ( Eun Young Nam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189-22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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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90년대 한국 소비문화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 실질소득의 중가, 소비의 팽창, 그리고 생활양식의 변화를 경험했다.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가 '소비사화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다면,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는 '소비사화의 성숙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1인당 국민소득이 10,000달러에 도달하며 표준화와 몰개성화를 강조하는 대중소비로부터 개성화와 다양화를 추구하는 소비성숙단계로의 변화가 발생했다. 따라서 1990년대 한국에서는 소비문화의 변화 및 식생활, 의생활, 그리고 주생활 영역에서 양적 소비로부터 질적 소비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61980-90년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젠데정치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의 맥락적 구성을 중심으로

저자 : 신상숙 ( Sang Sook Shi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227-26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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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하는 세 가지 사례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의 담론적 실천에서 나타나는 젠더정치 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다.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의 교 차점에 위치하지만 폭력의 의미를 규정하고 저항의 주체를 결집하는 대항담론에서 이 두 가지 맥락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효과가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이 연구는 경합하는 담론들 속에서 폭력의 의미를 자리매김하는 맥락적 구성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그 차이를 살쳐보고 젠더갈등의 봉합과 균열에 주목하여 젠더정치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군사독재의 정치적 유화 국면에서 새로운 여성운동이 태동하는 시기에 발생한 1984년 경찰의 여대생 추행 사건은 국가폭력이 젠더폭력의 인식을 자극하고 대항 상징의 모색을 촉진한 사례에 해당한다. 대외적으로 국가폭력의 맥락이 강조됨에 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여성운동 안에서 아내구타와 성적인 폭력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성폭력' 개념이 구성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치 탄압과 사회적 저항이 고조되는 1986년의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서는 여성운동이 민주세력과 연대하여 투쟁 함으로써 저항의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었으나 '반고문 투쟁'이란 선행 맥락과 중첩 됨으로써 국가폭력의 해석 맥락이 강화되었다. 여성운동의 대항담론은 군사독재와 의 대립을 통해 여성을 호명하였으나 잠재된 젠더갈등은 봉합되었고 젠더폭력의 문제의식은 국가폭력으로 흡수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문민정부 하에서 발생한 1996년 한총련 여대생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젠더정치의 새로운 변화 양상이 관찰된다. 기존의 여성단체들과 구별되는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담론 속에서 사건의 의미는 자신들의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재해석되고 폭력의 공사구분은 해체되며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젠더폭력의 맥락 안에서 재정렬된다. 이상의 분석 결과는 여성운동에 있어서 젠더정치의 차이가 1980/90년대의 연대기적 분할선으로 단순히 구획될 수 없으며 그것의 변화가 국가-운동정치의 변화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7식민지기 정기시장의 성장 원인- 경제적 요인과 비경제적 요인의 구별을 위하여

저자 : 조형근 ( Hyung Keun Cho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267-29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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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재래 정기시장이 성장하게 된 원인을 경제적 요인과 비경제적 요인으로 나누어서 접근하고자 한다. 시장이론에서는 정기시장의 성쇠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인구밀도, 근대적 교통체계, 농업생산력의 수준 등을 꼽고 있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시장 허가권을 독점하고 있던 식민권력의 정책적 태도와 지역 주민들의 집합행동 또한 시장의 성쇠에 영향을 미쳤음을 주목해야 한다. 기존 연구들의 문제점은 정기시장의 수적 증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전국 단위 통계에 의존하고 있어서 도별 이하의 지역적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시기별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정기시장의 수적 증가를, 지역별, 시기별로 시장거래고와의 상관관계 아래 검토하고 있다. 검토의 결과 정기시장의 수와 실질거래고 사이의 상관관계는, 1914년-19년간과 1930년대는 관찰되지 않는 반면, 1920년대는 상당한 정도의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이가 함축하는 바는 1920년대의 시장수 증가가 상대적으로 수요밀도의 증가라는 경제적 요인에 기인한 반면, 1914-19년의 시장 수 감소와, 1930년대의 시장 수 증가는 비경제적 요인에 근거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비경제적 요인으로는 식인으로는 식민권력의 시장에 대한 태도가 결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8식민지 조선의 비서구 식민구조와 정체성

저자 : 채오병 ( Ou Byung Chae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299-33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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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식민주의 개념의 분석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대안으로서 식민구조의 개념을 제시한다. 식민구조는 식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문화도식, 자원, 그리고 권력의 세 차원에서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지인이 맺는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하나는 이것을 서구 식민 구조와 비서구 식민구조라는 두 개의 역사적 유형으로 나누어 봄으로써, 조선에서 성립한 식민구조의 성격을 비교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서구 식민구조가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지인이 직접적으로 관계맺는 이자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면, 비서구 식민주의에 의해 조선에서 성립한 식민구조는 이자구조 중심의 제국질서에서 파생된 삼자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 삼자구조에서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지인은 문화적 재현으로서의 서구를 매개로 하여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그 결과 아시아주의의 신전통주의와 동화주의, 그리고 직접통치라는 식민주의자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식민정책은 서구 식민주의 그것들과 구별되는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피식민지인의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정체성이었던 근대주의와 신전통 담론은 서구 식민지에서 피식민지인이 발전시킨 그것들과 상이한 경로를 통해 발생하였으며, 또한 그것들과 구별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9일본적 노사관계의 형성: 미쓰비스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의 사례(1995-1965)

저자 : 신원철 ( Won Chul Shi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335-36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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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55년부터 1965년까지 미쓰비시나가사키 조선소(三菱長崎造船所) 에서 이른바 '일본적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기업별 노동조합체제와 협조적 노사관계가 형성되기까지 전개된 노자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노동조합 내부에서 전개된 노선다툼에 주목하고 있다. 1950년대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 존재한 전투적인 좌파 노동조합운동은 산업별 노동조합조직을 지향하고, 산업별 임금정책을 추구하였으며, 생산성향상운동에 대해서 반대하고 직장에서 강력한 규제력을 발휘하였다. 1964년 미쓰비시중공업의 합병 합병을 계기로 노사관계의 재편이 이루어졌는데, 나가사키조선소의 좌파 노동조합이 1964년 임금인상 투쟁에서 패배한 이후, 우파가 주도하는 기업별노동조합으로 통합되는 것을 거부하자, 제2조합이 결성되었고, 곧 다수파가 되었다. 일본 조선산업의 고능률 대량 생산체제는 바로 기존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협력적 노사관계로 재편하는 과정과 더불어 성립되었고, 이는 노사협조주의를 내세운 운동노선이 주도권을 확립해가는 과정이었다.

10일본의 글로벌화와 공교육의 변화: "다문화공생교육"을 중심으로

저자 : 한영혜 ( Yong Hae Ha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76권 0호 발행 연도 : 2007 페이지 : pp. 365-39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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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가와사키와 고베의 다문화공생교육을 중심으로 글로벌화로 인하여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나타난 공교육의 변화를 분석하고자 한다. 동질성 형성을 목적으로 했던 전통적인 일본의 공교육은 정주 외국인, 귀화 외국인, 국제결흔의 증가로 민족적, 문화적 이질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다문화공생 교육은 단일 민족관과 동화주의 대신에 소수자의 인권과 아이덴티티를 중시하는 새로운 교육이다. 또한 정주외국인 자녀가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교육이 요구되었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응은 정주외국인이 많은 지역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가와사키와 고베는 다문화공생교육이 가장 활발한 도시로 90년대 초부터 일본어교육, 소수자 인권 교육과 소수자 문화 교육 등을 공교육에 도입하였다. 다문화공생교육은 글로벌화만의 산물은 아니며, 이미 공교육 외부에서 소수 민족과 문화 교육을 주축으로 하는 민족교육이나 재일외국인 교육의 형태로 존재했었다. 소수 인족의 운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정이라는 점에서 민족교육과 다문화공생 교육이 공통점을 보이지만, 다문화공생교육은 개인을 강조하여 민족국가나 단일민족 관념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동일성에 기초한 사회통합에서 차이의 인정에 기초한 사회통합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공교육의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는 지역발신을 특징으로 하며, 각 지역의 시민운동의 성격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학교와 지역사회의 결합을 통해서 다문화공생교육이 유지되고 있고, 시민운동과의 결합을 통해서 전국적 네트워크 운동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다문화공생교육은 공교육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공교육이지만 시민사화운동 성격도 보여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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