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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문서학회> 고문서연구> 『국조열성어필(國朝列聖御筆)』 소재(所載) 조선초기 국왕문서 -태조대(太祖代) 관교(官敎)와 세조대(世祖代) 면역교지(免疫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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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열성어필(國朝列聖御筆)』 소재(所載) 조선초기 국왕문서 -태조대(太祖代) 관교(官敎)와 세조대(世祖代) 면역교지(免疫敎旨)-

The ancient document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recorded in the Gukjo-yeolseong-eopil(國朝列聖御箏) -Gwangyo(官敎) issued in Taejo period and Myeonyeog-gyoji(免疫敎旨) issued in Sejo period-

카와니시 유야 ( Kawanishi Yuya )
  • : 한국고문서학회
  • : 고문서연구 48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6년 02월
  • : 27-47(21pages)
피인용수 : 16건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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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國朝列聖御筆』 의 서지 정보
Ⅲ. 道岬寺免役敎旨
Ⅳ. 志英官敎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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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기

근년에 들어 조선초기(14세기말-15세기말)의 고문서에 관한 논문이 점점 발표되기 시작하였지만, 연구의 진전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 이유의 하나는 당시의 고문서 사례수가 너무 적어 심층적분석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선초기 고문서 연구의 심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례를 발굴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연구 과제를 염두에 두면서, 조선초기 고문서 발굴 작업의 일환으로 일본 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國朝列聖御筆”에 게재된 2점의 고문서를 들어 그 성격과 내용을 살핀 다음, 문서의 진위를 검토하고자 한다. “國朝列聖御筆”은 朝鮮本 장서가로 유명한 일본인 前間恭作(마에마 쿄사쿠)이 일찍이 소장하고 있던 책이다. 본서는 조선왕조 역대 국왕의 御筆을 摹刻한 法帖이며, 17세기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列聖御筆’이라는 서명을 지니는 책은 조선시대에 몇 종류가 간행되었지만, 본고에서 거론하는 고문서가 게재되어 있는 것은 동양문고 소장 “국조열성어필”이 유일하다. “國朝列聖御筆”에 보이는 2점의 고문서 중, 하나는 1393년(太祖 2)에 발급된 志英官敎이며, 또 하나는 1457년(世祖 3)에 발급된 道岬寺免役敎旨이다. 전자는 국왕이 僧人 志英을 禪師로 임명하는 官敎(임명교지)이며, 후자는 전라도 영암에 있는 道岬寺의 雜役을 減免토록 국왕이 관찰사와 수령에게 명한 교지이다. 道岬寺免役敎旨와 같은 내용을 지니는 世祖代의 교지는 龍門寺, 廣德寺, 開天寺 등에도발급되었으며, 이들 사찰에는 지금도 原文書가 전존하고 있다. 당시의 각종 사료를 참고로 하여 志英官敎와 道岬寺免役敎旨를 검토한 결과, 그 양식과 내용에 의심스러운 점은 보이지 않으므로, 이들 문서를 眞文書로 인정하여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志英官敎는 현재 확인되는 조선시대의 官敎 중 가장 오래된 사례이며, 또한 조선초기의 유일한 승인 임명문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한편 道岬寺免役敎旨는 世祖代에 道岬寺에도 잡역을 감면하는 교지가발급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당시 이 사찰의 위상을 고찰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료이다.
Although the ancient document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from the end of 14th century to the end of 15th century) have been under study during recent years, progress of the research seems to have limitations. One of the reasons is that cases of ancient documents at that time are so rare that it is hard to study them deeply. Therefore, it should be our highest priority to search and analyze new cases of ancient documents in order to deepen and develop the research of document issued in early Joseon Dynasty in the future. With this research task in mind, this study dealt with 2 copies of ancient documents included in the Gukjo-yeolseong-eopil (國朝列聖御筆) archived at Toyo Bunko in Japan to reveal its authenticity by investigating their characteristics and contents as a part of excavation of ancient documents of early Joseon Dynasty. Gukjo-yeolseong-eopil is the book used to be collected by a Japanese, MAEMA Kyosaku(前 間恭作). This collection of the handwritings by the kings of Joseon Dynasty is estimated to be publishedaround 17th century. There are several books titled “Yeolseong-eopil”, but only Gukjo-yeolseong-eopil archived at Toyo Bunko includes the documents adopted in this study. One ancient document included in Gukjo-yeolseong-eopil is “Jiyeong-gwangyo”(志英官敎) issued in 1393, and another is “Dogapsa-myeonyeog-gyoji”(道岬寺免役敎旨) issued in 1457. The former one is the letter of appointment issued by the king to a monk, Jiyeong. The latter on is the letter for ordering to exempt Dogapsa from taxation by the king.By referring to other documents at that time and discussion, there is no doubt about thestyles and contents of Jiyeong-gwangyo and Dogapsa-myeonyeog-gyoji. Therefore, the authenticity of these documents can be confirmed. Jiyeong-gwangyo is the oldest case during all the gwangyo confirmed during Joseon Dynasty era. In addition, it is highly precious as the only letter of appointment to a monk during early Joseon period. Dogapsa-myeonyeog-gyoji is also important since it was proved that the letter toexempt from taxation had also been issued to Dogapsa in the middle of 1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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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6-900-000712698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 등재
  • : -
  • : 반년간
  • : 1598-321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1-2019
  • :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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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새로 발견된 고려말 홍패의 고문서학적 고찰과 사료로서의 의의 -1389년(창왕 1) 최광지 홍패-

저자 : 박성호 ( Sung Ho Park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2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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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북 부안의 전주최씨 종중에서 1389년(창왕 1)에 최광지에게 발급된 문과 홍패가 한 점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당시에 발급된 진본으로 판단되고, 이 문서보다 앞서 발급된 고려시대의 홍패들과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본고에서는 이 홍패가 '王旨' 양식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공민왕대에 명에서 내려준 '高麗國王之印'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향후 이 문서는 고려말과 조선초라는 왕조 교체기의 제도사적 변화를 살펴보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말과 조선초의 과거 제도, 문서 제도, 왕권 문제 등을 다룰 때 이 홍패를 통해 다양한 논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 개국하기 3년 전에 발급된 홍패가 이미 관문서에서 왕명문서 양식으로 바뀐 점, 기존의 홍패와 달리 지공거와 동지공거에 대한 기재 사항이 문서에서 사라진 점, 고려말의 왕명문서가 이미 조선시대 왕명문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점 등 중요한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료로 평가된다.

2『국조열성어필(國朝列聖御筆)』 소재(所載) 조선초기 국왕문서 -태조대(太祖代) 관교(官敎)와 세조대(世祖代) 면역교지(免疫敎旨)-

저자 : 카와니시 유야 ( Kawanishi Yuya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7-4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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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에 들어 조선초기(14세기말-15세기말)의 고문서에 관한 논문이 점점 발표되기 시작하였지만, 연구의 진전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 이유의 하나는 당시의 고문서 사례수가 너무 적어 심층적분석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선초기 고문서 연구의 심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례를 발굴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연구 과제를 염두에 두면서, 조선초기 고문서 발굴 작업의 일환으로 일본 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國朝列聖御筆”에 게재된 2점의 고문서를 들어 그 성격과 내용을 살핀 다음, 문서의 진위를 검토하고자 한다. “國朝列聖御筆”은 朝鮮本 장서가로 유명한 일본인 前間恭作(마에마 쿄사쿠)이 일찍이 소장하고 있던 책이다. 본서는 조선왕조 역대 국왕의 御筆을 摹刻한 法帖이며, 17세기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列聖御筆'이라는 서명을 지니는 책은 조선시대에 몇 종류가 간행되었지만, 본고에서 거론하는 고문서가 게재되어 있는 것은 동양문고 소장 “국조열성어필”이 유일하다. “國朝列聖御筆”에 보이는 2점의 고문서 중, 하나는 1393년(太祖 2)에 발급된 志英官敎이며, 또 하나는 1457년(世祖 3)에 발급된 道岬寺免役敎旨이다. 전자는 국왕이 僧人 志英을 禪師로 임명하는 官敎(임명교지)이며, 후자는 전라도 영암에 있는 道岬寺의 雜役을 減免토록 국왕이 관찰사와 수령에게 명한 교지이다. 道岬寺免役敎旨와 같은 내용을 지니는 世祖代의 교지는 龍門寺, 廣德寺, 開天寺 등에도발급되었으며, 이들 사찰에는 지금도 原文書가 전존하고 있다. 당시의 각종 사료를 참고로 하여 志英官敎와 道岬寺免役敎旨를 검토한 결과, 그 양식과 내용에 의심스러운 점은 보이지 않으므로, 이들 문서를 眞文書로 인정하여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志英官敎는 현재 확인되는 조선시대의 官敎 중 가장 오래된 사례이며, 또한 조선초기의 유일한 승인 임명문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한편 道岬寺免役敎旨는 世祖代에 道岬寺에도 잡역을 감면하는 교지가발급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당시 이 사찰의 위상을 고찰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료이다.

316세기 여주이씨 노비소송과 의송(議送)

저자 : 한상권 ( Sang Kwon Ha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49-101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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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이씨 노비소송은 草溪에 사는 원고 固城李氏 李春壽와 慶州에 사는 피고 驪州李氏 李浚 형제가 1576년부터 1578년까지 벌인 노비소유권 다툼이다. 여주이씨 노비소송은 忠義衛 이춘수가 李浚이 據執하고 있는 도망 비 多勿沙里를 推給해줄 것을 청구하는 議送所志를 경상도관찰사에게 올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여주이씨 노비소송의 당사자는 원고 이춘수와 피고 이준·이순형제이며, 소송의 목적물은 婢子 多勿沙里이고, 청구내용은 도망노비 추심인 것이다. 여주이씨 노비소송은 네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쟁점은 訴訟物인 一名 多勿沙里 一名 班春의 실체였다. 원고는 소송 비자 다물사리가 同今 소생이며 동금은 其每 소생이라고 하여 기매-동금-다물사리의 連繼를 주장하는 반면, 이준은 소송 비자 반춘이 李今 소생이라 하여 李今-班春이라고 맞섰다. 두 번째 쟁점은 원고와 피고가 각각 제출한 慶州府立案의 眞正成立 여부였다. 세 번째쟁점은 이준이 작성하였다는 還授拷音의 위조 여부였으며, 네 번째 쟁점은 소송물인 일명 반춘 일명다물사리의 증인능력 인정여부였다. 여주이씨 노비소송은 소송쟁점을 둘러싸고 당사자가 '소송의 내용(실체)'에 대해 辯論을 전개하는 가운데, '소송의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를 주도한 측은 피고 이준 형제였으며, 그 방법은 관찰사에게 올리는 議送所志였다. 이준 형제는 관찰사에게 11차례 의송소지를 올려 이춘수 공동소송인의 當事者適格 여부, 송관 忌避신청, 移送요청 등 '소송의 절차'에 대해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소송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처럼 소송 진행과정에서 당사자가 소송의 절차에 관한 의송소지를 올리고 이를 근거로 관찰사가 소송을 지휘하는 양태는 지금까지 보아온 소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반면 원고 이춘수는 의송소지를 한 차례 올려 이준 還授拷音의 진정성을 辯論하는데 그쳤으며, 이후갖가지 핑계를 대며 訟庭에 現身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소송의 절차에 대한 권리행사로 주도권을 장악한 이준 형제는 관찰사에게 親手自決 즉 직접 決訟해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며, 마침내 관찰사가 흥해군수에게 親着決折을 지시함에 따라, 여주이씨 노비소송은 소송쟁점이 眞僞不明인 상태에서 절차법인 親着決折法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4조선후기 양반가계(兩班家系)와 지역민(地域民)의 관계 및 그 변화양상 -해남윤씨 고문서를 중심으로-

저자 : 문숙자 ( Sook Ja Moo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03-13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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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라도 해남 蓮洞에 世居해 온 海南尹氏 家系와 해남 지역민과의 상호관계를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통해 조선후기에 지방의 양반 세력이 자기 지역의 하층민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그영향력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규명하기 위한 글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윤씨 가계와 지역민의 관계는 救恤과 施惠로 대변되고 있다. 16세기에 지역하층민을 위해 還穀을 대신 갚아준 三開獄門을 시작으로, 17세기에는 관개사업을 통해 饑民을 구제했다고 알려지는 등 윤씨가와 관련한 미담이 다수 전해져 왔다. 이런 미담들은 지역민들을 윤씨가의 영향력 아래에 자연스럽게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그 결과 윤씨 가계는 지역 하층민에 대해 일종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시혜를 베푼 것은 아니다. 지역민을 구휼하는 대신,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토지를 개간하는 등 상호이익을 추구해 왔다. 해남 일원에 거주하는 奴婢에 대해서도 尹氏家는 구휼과 보살핌을 理想으로 하면서, 동시에 奴主之分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가부장적 관리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19세기가 되면 더 이상 가부장적 관계가 지속될 수 없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자립적 경제력과 사회적 결합 능력을 갖추어가는 하층민들이 稅貢을 줄여달라거나, 경제외적 강제에 저항하는 노비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하층민들의 변화하는 의식에 바로 적응하지 못한 까닭에 윤씨 가계의 대응이 다소 늦어져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점차 계약관계로의 변화를 암시하는 적절한 타협이 모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18세기 말~19세기 해촌(海村)의 공동납(共同納) 운영 방식 -거제(巨濟) 구조라리(舊助羅里) 고문서를 중심으로-

저자 : 전민영 ( Min Young Jeo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33-16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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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구조라리 고문서는 작성주체 및 이해당사자가 마을의 거주자들이었으며, 마을의 대표자인 里長이 관리해왔다. 마을은 국가와 군현의 지배체계가 최종적으로 미치는 말단의 행정단위일 뿐만 아니라 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다. 마을고문서는 행정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그 속에 마을 거주민들의 생활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만들어진 문서이다. 마을의 행정적 기능과 사람들의 생활이 결합한지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賦稅 혹은 役과 관련되어 있다. 조선후기가 이르면 국가 부세 운영의 방안으로 總額制가 시행되었다. 즉, 국가가 거두어들이는 부세의 총량이 군현 단위로 배정되고, 다시군현에서 面·里를 단위로 배정되었다. 이 때문에 국가 부세 운영에서 마을의 역할은 더욱 부각되었고, 군현과 면리단위의 행정적 역할이 더욱 긴밀해지게 되었다. 구조라리는 바닷가에 위치한 마을로 해세의 일종인 藿稅, 進上으로 납부하는 홍합과 표고 등의 각종부세를 공동으로 납부하였다. 부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납부액수나 납부방식의 변동이 요구될 경우 문서가 작성되었다. 이 연구는 구조라리 고문서 가운데 공동납과 관련된 고문서를 주목하고, 고문서의 내용과 문서양식을 통해 18세기 말~19세기 마을의 공동납 운영의 실상을 파악하였다.

6조선후기 사패전(賜牌田)의 실전(失傳)과 불천위(不遷位) 위토(位土)의 마련 -김종직 종가고문서를 중심으로-

저자 : 이상현 ( Sang Hyun Lee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165-19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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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宗直 宗家에 남아 있는 分財記는 40점으로 가문에 소장된 고문서 가운데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문서중의 하나이며,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높다. 그 분재기 가운데 1724년(경종 4) 門中에서 祀孫 金世鳴에게 준 분재기는 先祖 김종직의 不遷位를 위해 문중에서 재산을 모아 祭位條를 만들면서 종손에게 작성해 준 문서이다. 문서의 내용에는 사패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불천위를 위해 제위조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사패전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문에 소장된 자료에도 이와 관련기록이 없었다. 1930년대 조선사편수위원회에서 사료조사에 의해 김종직종가의 가문문서 82점이 조사되어 현재 사진유리필름자료로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되어 있다. 82점의 문서 가운데 18점의 문서가 위의 분재기에서 언급된 사패전 관련 자료들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議送이 10점·關이 1점·사패전답기가 7점이 있다. 문서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패전 소송에 관한 문서로서 이를 통해 김종직 종가의 사패전이 어떻게 失傳되었고, 그것을 찾으려는 후손들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이 사패전은 김종직이 성종에게 사패전답을 병으로 密陽에 요양하고 있을 당시 받았다. 그가 죽은뒤 戊午士禍로 인해 관에 몰수당했다가 中宗反正때 신원이 회복되고 이로 말미암아 다시 되찾게 되었다. 이후로 후손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1584년(선조 17) 1월 5일에 金綸의 妻 河氏가 작성한 분재기를통해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사패전의 향방을 알 수 없었으나 위의 1633년(인조11)~1738년(영조 14)까지 총 9건의 議送과 1건의 關을 통해 사패전을 되찾은 시기는 대략 1600년(선조33) 이전으로 김갑령에 의해 되찾았으며, 肅宗代까지 사패전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패전이 없어진 이유를 살펴보면 하나는 壬辰倭亂으로 인해 토지가 대부분 황무지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東萊에 사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據執 때문이었다. 이는 의송과 사패전답기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사패전을 관리하던 김갑령 또는 그의 후손이 빈곤하여 거집된 토지 이외를 放賣한 것이다. 1653년(효종 4)에 작성된 의송과 이후에 작성된 대부분의 의송을 보면 김갑령 또는 김갑령의 지손이 사패전을 임의로 방매하였다고 이들을 처벌하고 사패전을 되찾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패전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가 김갑령과 그의 후손들이 땅을 방매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김종직의 불천위 奉行은 4대 봉사가 끝난 이후라고 생각되지만 4대 봉사 이후에 불천위가 奉行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는 없었다. 하지만 1724년에 작성된 분재기를 통해 적어도 이때부터 불천위를 모셨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불천위를 모시기 위해 친족들이 재산을 모와 불천위 위토를 마련하였다는 것과 본래 불천위 위토를 사패전을 가지고 만들려고 했다는 점도 살펴볼 수 있었다. 하나의 분재기와 분재기의 속의 사패전 관련 내용 그리고 사패전과 연관된 문서를 통해 한 가문에서 사패전을 받아 어떻게 관리 전승되었고 어떻게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로서 의의가 있으며, 사패전을 연구하는데 하나의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리고 잃어버린 사패전을 대신하여 친족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모아 조상의 불천위 위토를 형성하는 점은 이 가문만이 가지는 특수한 사례로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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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에 전라도 萬頃縣에 살았던 豊川任氏와 전라도 興陽縣에 살았던 水原白氏를 통하여 品官을 지낸 인물이 살았던 집안의 삶을 살펴보았다. 이 두 집안에서 座首와 別監을 역임한 사람은 座首와 別監 이외에도 都監이나 監官, 面 단위의 尊位나 還上都檢督 , 里 단위의 戶籍別有司나 戶籍收單別有司, 그리고 代將이나 千摠과 같은 武任을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집안이 지역 사회에서 누렸던 삶의 모습은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조선 사회가 각 고을 마다 風俗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豊川任氏의 경우에는 전라도 萬頃縣 南一面 大木山里에 세거지를 마련하고, 자신들을 '化民'이라 칭하면서 先山, 宗畓, 그리고 齋閣등을 가지는 등 그 지역의 여느 양반 집안들과 유사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에 반하여, 水原白氏의 경우에는 鄕吏들이 근무하는 질청[作廳]에 토지를 납부하고 각 종 賦稅을 면제 받았으며 때로는 鄕吏들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8조선후기 서울 포전(布廛)이 남긴 기록의 조각들 -"정승모 문서"의 소개와 분류-

저자 : 정승모 ( Seung Mo Chung ) , 이영훈 ( Young Hoon Rhee ) , 조영준 ( Young Jun Cho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27-25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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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故 정승모 박사가 발굴한 조선후기 서울 布廛의 문서를 소개하고, 그 식별 및 분류에 관해 試論하였다. 향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심화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書誌的 특징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40여 장의 斷片으로 구성된 '정승모 문서'는 조선후기 서울의 포전 조직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생산된 문서가 뒤섞여 있음을 밝혔다. 포전의 삼베 구매 및 분배와 관련된 문서 중에는 공동 구매에 참여하여 지분(깃)을 행사한 포전 구성원이 나열된 사례가 있는데, 그 기록의 순서는 牛耕式을 따르고 있었다. 인명의 기재 양식에 대한 파악은 조직의 인적 구성을 비롯한 다각도의 후속 연구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글에서의 실증 분석을 통해 해결된 것이다. 삼베의 상납 및 운반과 관련된 문서의 이해는 그리 쉽지 않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경로를 상정해 볼 수 있었다: (1) 포전에 속한 개별 상인에 대한 공급, (2) 고위 관료에 대한 衣資布 상납,(3) 민간을 대상으로 판매한 포전 건물[房]에의 공급, (4) 중앙 관청에의 貢布 상납, (5) 貢人에 대한 공포 공급. 삼베를 공급한 다음의 대금 정산은 별도의 기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글에서, 비록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임에도 여러 가지 추론을 통해 '정승모 문서'의 분류안을 제시한 결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첫째, '정승모 문서' 및 각종의 시전 관련문서에 대한 심층적 이해 및 실증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앞으로 이와 유사한 문서가 발굴될 경우에 '정승모 문서'의 분류안을 일반적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9조선후기에 서당 학동들이 읽은 탄원서

저자 : 전경목 ( Kyoung Mok Chon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57-28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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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서당에는 양반의 자제 이외에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도 출입하며 한문을 익히고 유교경전 등을 두루 읽었다. 그러나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들은 현실적으로 과거에 합격해서 관리로 진출하거나 혹은 성리학자로 명성을 얻기 힘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실용문 즉 토지나 노비 매매문서와 소송장, 축문과 혼서 등을 익히고 오늘날 면장에 해당하는 존위 등을 역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들은 서당에서 탄원서를 비롯한 각종 실용문을 작성하는 법을 익혔다. 그런데 중인이나 평민의 자제들이 서당에서 읽은 실용문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요람』 혹은『수문록』등에 수록되어 있는 탄원서를 살펴보면 실제로 관아에 제출했던 소송장에 비해 표현이 문학적으로 수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공의 인물이나 사건 등이 가미되어 있어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느낄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실제 있었던 탄원 사실이 어떠한 가공 과정을 거쳐 설화 혹은 야담으로 변화하며 그 이후 어떻게 소설 등으로 확장 변모하는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소설로의 확장 변모의 출발이 주로 중인이나 평민들이 작성한 애절한 탄원서였다는 점도 크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10조선시대 관찰사(觀察使) 교서(敎書)와 유서(諭書)의 문서 행정과 운용

저자 : 노인환 ( In Hwan Noh )

발행기관 : 한국고문서학회 간행물 : 고문서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6 페이지 : pp. 287-31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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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은 관찰사에게 부임지를 잘 다스리라는 내용의 敎書와 군사권의 운용과 관련된 諭書를 내려주었고, 관찰사는 교서와 유서를 통해 국왕의 명령을 위임 받아 각 道의 행정과 군사를 통치하였다. 이러한 관찰사의 교서는 교서제술관 배정, 교서 제술, 製進單子 작성과 入啓, 국왕 결재, 注書書寫, 施命之寶 安寶의 과정을 거쳐 발급되었다. 유서는 승정원의 주서가 본문의 내용을 작성하고 密符置簿冊을 통해 密符 번호를 기재한 후에 諭書之寶를 안보하여 발급되었다. 관찰사의 교서와 유서는관찰사의 재임 기간에 도의 명칭이 변경되거나 관찰사가 加資된 경우에 재발급 되었으며, 국왕의 大喪이 있는 후에 유서가 재발급 되었다. 교서와 유서를 수취할 때에 관찰사는 국왕에게 辭朝를 거행하고 궁궐에서 수취하였고, 除朝辭赴任의 경우에는 부임한 감영에서 수취하였다. 재임 기간에 관찰사는 부임과 순력 과정에서 교서와 유서를 운용하여 도내 수령을 통솔하였다. 이러한 관찰사 교서와 유서의 문서 행정과 운용은 관찰사가 재임 기간에 기록한 각종 일기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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