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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동아시아문화연구> 세시 명절을 통해 본 중국희곡-잡지 『입언화간(立言畵刊)』속 응절희(應節戱) 자료를 중심으로-

KCI등재

세시 명절을 통해 본 중국희곡-잡지 『입언화간(立言畵刊)』속 응절희(應節戱) 자료를 중심으로-

Chinese Plays in Seasonal Holidays-nalysis of Articles on Ying Jie Xi from the Journal Li Yan Hua Kan-

임미주 ( Mi Ju Im )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5년 05월
  • : 211-250(40pages)

DOI


목차

1. 前言
2. 雜誌 『立言書刊』 속 경극 응절희
3. 청말 민초 민간 경극 응절희 공연의 특색
4. 結語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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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기

중국의 세시 명절은 중국 대중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명절은 수많은 사람이 특정일에 한 곳에 집결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많은 관중을 필요로 하는 희곡 활동에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이에 중국 세시 명절 풍속에서 희곡공연은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일찍이 중국에서 연극이 형성된 시기부터 각 세시 명절에 다양한 ‘節戱’가 공연되었다. 중국 희곡의 대표주자인 경극도 그 형성 직후부터 매 절기마다 절기 특색을 지닌 작품들이 꾸준히 공연 되었다.특히 ‘應節戱’는 청말 연극문화의 번영에 따라 직업극단 간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민간의 대형 직업극단에서 각 절기에 공연한 특정한 극목을 일컫는다. 본고는 항전시기 북경에서 출간된 희곡전문 잡지인 『立言畵刊』속에 수록된 33期의 응절희 기사를 토대로 이 시기 민간에서 행해진 절기 연극에 대한 초보적 고찰이다. 기사 분석을 통해서 청말 민초 시기 민간에서 元旦, 元宵, 端午, 祭關帝, 七夕, 中元, 秋夕, 祭조日 등 7개 명절에 응절희가 공연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청대 궁정의 월령승응희가 거의 20개 명절에 공연 되었던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며, 민간과 궁정의 공연환경의 차이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또 궁정대희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몇몇 작품들을 통해 궁정 절희가 민간의 ‘응절희’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경극 응절희는 내용적으로 절기의 기원이나 절기 상징물, 절기 풍속과 관련된 대목이 등장하는 등 절기와의 직접적 연관성이 있거나 경축적 명절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吉祥劇이다. 또 매해 일정 레퍼토리가 반복 공연되는 특성을 띠며,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평이한 내용을 다루었다. 형식적으로는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등 화려한 볼거리를 추구하고, 민국 이래로 신식극장의 설립 등의 공연.환경적 변화에 발맞추어 현대적 극장으로 진입하여 조명과 회전무대 등의 무대미술과 효과를 적극 활용하였다. 또 응절희 공연이 표를 사서 보는 관상적.영업적 공연이 되면서 점차 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공연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Seasonal holidays have held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e Chinese public`s life. They provide great opportunities to performing arts, which need audience, because of various gatherings during holiday seasons. For the reason just mentioned, plays also play an important role in Chinese seasonal customs with seasonal plays known as ‘Jie Xi’ having been performed from the formative stage of Chinese plays. Peking Opera, which is a typical traditional play in China, has also been steadily performed every season. A prosperity of theater in the late Qing dynasty brought intense competition among professional theater companies. ‘Ying Jie Xi,’ a branch of Peking Opera, was a result of the prosperity in theater and has been performed every holiday season by large-scale private theater companies. This paper is based on 33 articles of ‘Ying Jie Xi’ from Li Yan Hua Kan, a drama journal which was published in Beijing during the Anti-Japanese War. Analysis of the articles found that ‘Ying Jie Xi’ has been performed during seven special holidays - New Year`s Day, Dano, Offering Guandi, Qixi Festival, Hungry Ghost Festival, Mid-Autumn Festival and Kitchen God Day - among the general public. It also revealed difference in performing environments of the general public and the Qing court. ‘Yue Ling Cheng Ying Xi,’ which is ‘Jie Xi’ of the Qing court, was performed during nearly twenty holidays. This study also shows that several plays of the Qing court`s ‘Jie Xi’ influenced plays of the public such as ‘Ying Jie Xi.’ ‘Ying Jie Xi’ is related with seasons, so that its performances were repeated every year. The mood of ‘Ying Jie Xi’ is very festive, representing the atmosphere of holiday seasons. Typical characters of ‘Ying Jie Xi’ employ splendid attractions and various kinds of equipment. Such characters led the performing environment of Chinese plays into the era of modern theatre and increased the commercial value of ‘Ying Jie Xi’ as well.

ECN

ECN-0102-2016-910-000408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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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6-910-000408659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 등재
  • : -
  • : 계간
  • : 2383-618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0-2017
  • :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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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랑이의 조선표상화(朝鮮表象化)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저자 : 박은정 ( Eun Jung Park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3-33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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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호랑이가 어느 시점에 어떻게 우리나라와 민족을 표상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 탐색을 목표로 하였다. 어느 시점에 호랑이가 조선의 표상이 되었을까 하는 문제와 연결하여 주목되는 글이 있으니, 1926년 『동아일보』에 실렸던 최남선의 「호랑이」 연재 글이다. 최남선은 7차례에 걸쳐 「호랑이」라는 글을 연재했는데 호랑이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모았다. 최남선은 이 글에서 호랑이 이야기를 집대성하고 체계화한 데서 더 나아가, 대놓고 호랑이를 朝鮮의 表象으로 규정하였다. 더하여 최남선은 호랑이가 山神의 權現으로 神性을 가졌다는 것과 고조선 이전부터 호랑이가 우리 민족의 토템으로 숭배 받아 왔다는 점을 들어, 의도적으로 호랑이를 朝鮮의 神獸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로써 조선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 토템의 나라가 되고, 신성을 가진 호랑이는 朝鮮의 神獸이며 朝鮮의 表象으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호랑이를 조선의 神獸이며 조선의 表象으로 만든 것이 최남선 개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최남선의 이 7편 「호랑이」 글이 그간 흩어져 있던 호랑이 관련 이야기를 한 자리에 모았고, 호랑이는 朝鮮表象이라는 관념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면이 “신문”이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최남선의 이러한 호랑이 조선표상화 노력은 1926년 『동아일보』의 「호랑이」 글뿐만 아니라, 1908년부터 최남선이 창간하였던 여러 잡지의 글이나 표지에 호랑이를 등장시키는 등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03년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의 토끼 형상론을 주장한 이후 최남선은 한반도 호랑이 형상론을 주장했고, 1912년~1926년까지 일본에서 호랑이 말살 정책을 펼 때 최남선은 잡지와 신문을 통해 神獸 호랑이의 朝鮮表象化를 추진하였다. 일본이 조선을 상징하기 위해 害獸 호랑이를 내세웠다면, 최남선이 조선을 표상하기 위해 내세운 호랑이는 포효하는 호랑이로 조선의 긍정적 기운을 상징하는 神獸였다. 이때 호랑이는 조선에서 역대로 숭배 받아온 피邪의 상징이고 守護의 상징이며 山神의 권현인 호랑이다. 이처럼 호랑이를 일본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며 조선에 대한 긍정적 기운으로 사용한 시초는 1908년 『소년』 창간호에 최남선이 그린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더하여 호랑이를 조선이라는 나라와 연결시켜 호랑이는 朝鮮表象이라 한 데에는 1926년 최남선의 『동아일보』 연재 글 「호랑이」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다.

2헤이안 남성귀족 복장을 향한 시선

저자 : 나카이마키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5-5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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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복식의 표현·표상적 기능을 전제로, 복식을 향한 시선에 주목하면서 노시(直衣)를 중심으로 헤이안 시대 남성 귀족의 복장을 고찰한 것이다. 10세기 중엽에 천황의 가벼운 차림이나 남성귀족의 사복 내지 숙직복장으로 등장한 노시는 왕조문학 등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되면서 그들의 고귀함이나 우미함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기능했다. 『마쿠라노소시』나 『에이가모노가타리』에는 후지와라노 다다노부의 아름다운 노시 차림이나, 종교행사에 참석한 귀족들의 우미한 노시 차림에 관한 칭찬이 보인다. 남성 노시를 향한 시선은 문학이나 회화 세계와 연동하여 상승 작용하면서 복식문화 융성에 기여했다. 또한 대규모의 사적 행사의 경우, 참석자의 아름답고 화려한 복장은 행사를 장식하는 중요 요소로서 그 기능이 요구되면서 사람들의 예리한 시선에 노출됐었다. 이처럼 왕조문학을 통해 초래된 아름다운 사복이라고 하는 노시에 관한 인상은 현대까지 강하게 미치고 있으나, 당시의 노시를 향한 시선은 결코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마쿠라노소시』에서 절찬됐던 다다노부의 노시 차림은 동시대의 후지와 라노 사네스케의 일기에서 종종 기괴한 것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사네스케에게 있어 천황이나 황후 일가가 아닌 다다노부가 노시를 입고 궁중에 출입하는 것은 조소의 대상이었고, 실제 다른 귀족들도 이를 비판했다고 전하고 있다. 복장에 관한 이 같은 시선의 차이, 태도의 차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 할 필요가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문학작품의 작위성과 복장에 내재된 양가성에 초점을 맞춰 검토하였다. 문학작품에서는 때로 복장이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등에 관한 묘사에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특히 수필이나 역사물과 같이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독자는 작가가 설정한 시선에 일임하며 거기에 묘사된 복장을 사실(史實)로 간주하곤 하는데, 이러한 기술을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내적 논리를 인식하면서 중층적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노시라고 하는 동일한 복장을 향한 시선에는 칭찬과 조롱의 두 측면이 모두 있었다. 패션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궁정이라는 특권 사회의 복장 및 몸짓, 즉 패션에 있어 불가피한 것이었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정치적 입장이나 사상을 표상하기 위해 선택되는 복장은 필연적으로 양가적인 것이다. 왕조사회는 결코 늘 고정적인 규범에 의거해 복장이 결정됐던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새로운 규범의 생성과 일탈이 발생했던 사회였다.

3일본 전통예능으로서의 노(能)의 발견

저자 : 배관문 ( Kwan Mun Ba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61-8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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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늘날 가장 오래되고 일본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전통예능 노(能)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전근대의 '노'가 메이지 유신에 의한 단절과 위기를 거쳐 근대적인 '노가쿠(能樂)'로 탈바꿈되기까지의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서구의 오페라홀에 비견되는 노 전용무대로서의 노가쿠도(能樂堂)의 탄생과 변용이다. 단 주의할 것은 노의 근대화 및 고전화라는 재생 담론 자체가 일본 국문학사와 예능사 정립의 필요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라는 점이다. 예컨대 '일본의 오페라'라는 비유가 반드시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예능으로 노가쿠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은 아니었으며, 여기에는 보다 대중적 위치에 있었던 가부키와의 차별화 문제가 얽혀있었다. 또한 중세까지 잡예에 불과했던 노를 세련되게 정형화하여 예술적 경지로 격상시킨 제아미(世阿彌)에 대해 '일본의 바그너'라고 추켜세우며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은 적어도 1909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는 제아미 전서(傳書)를 처음으로 발굴해낸 연구 성과의 반영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극문학이라는 장르, 작가의 창작 등 근대적 문학 개념이 논란의 초점에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메이지 초기에 강조점이 찍혀있는 노가쿠 부흥의 역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기존의 연구사에 대한 문제제기에 해당한다. 아직 시론에 불과하나, 노와 제아미를 둘러싼 다양한 언설이 일본론과 결합하여 사상적으로 붐을 일으킨 1930년대 논의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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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작자 미상의 번역시로 남겨져왔던 방정환의 「어린이노래-불 켜는 이」의 원작시가 영국의 월터 드 라 메어의 「Songs of childhood 'The Lamplighter'」라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었다. 이어 「불 켜는 이」의 원작시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The Lamplighter」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글에서는 원작(영시), 중역본으로 추정되는 일본어 번역시, 방정환 번안시에 이르는 경로를 실증적 자료를 토대로 검토했다. 「불 켜는 이」는 원작, 일본어 번역시와 달리 방정환의 독자적 사상이 개입되어 재창작된 이중 번안이다. 방정환은 낭만적이고 동심주의적 색채가 강한 스티븐슨의 원작시를 민중주의적으로 전유(專有)한 번안시를 선보였다. 방정환은 『개벽』에 처음 발표했던 「불 켜는 이」를 『어린이』에 재수록하면서 몇 부분을 고쳤다. 민중 지향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시형을 간결하게 다듬어 리듬감을 살리고 쉬운 어휘를 선정하고자 했다. 어린이를 위한 시 선집에 수록되었던 스티븐슨의 원작시가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 화자의 퍼소나를 차용한 민중적 '번안시'로 『개벽』에 소개되었고, 다시 독자층을 달리한 『어린이』에 재수록 되면서 '동시'로 재맥락화한 것이다. 또한 「불 켜는 이」는 이 당시 방정환의 사상 지형을 잘 보여주는 번안시다. 1910년대 후반~1920년대 초, 방정환의 번역·번안문학과 창작문학과의 연계성 속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5일제 암흑기 황순원의 창작 단편소설 연구

저자 : 이익성 ( Ick Seong Le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09-12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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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일제 암흑기 황순원 소설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발간된 소설작품집 『기러기』에 수록된 황순원의 일제 암흑기에 창작된 15편의 단편 소설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일제 암흑기에 고향에서 창작된 황순원의 단편 소설에서는 그 등장인물의 특징에 따라 (1)노인, (2)소년 소녀와 같은 어린 아이, (3)여성과 젊은이로 나눌 수 있었고,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인생의 황혼에 대한 삶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었고,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미성숙한 등장인물의 특징을 순수와 미성숙의 문제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비참한 삶의 여정을,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일제 말기의 쓸쓸함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이 작품집 『기러기』에서 황순원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일제 말기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의 전통을 기반으로 서정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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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제국 일본의 패전에 의한 식민지 조선의 해방은 조선의 위상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제국-식민지 체제 내 식민지 지방으로부터 벗어나 탈식민-냉전 체제 형성기 국민(민족)국가 수립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때 지정학적 상상은 세계 체제 및 동아시아 지역 질서 내 조선의 위상을 정립, 강화시키기 위한 학문적 원동력이었다. 표해운의 『조선지정학개관』에는 해방 조선을 분할 통치하고 있던 소련과 미국의 민족성 및 국가 정책, 그리고 그에 기초한 신탁통치제도에 관한 세밀한 고찰이 전개되고 있다. 조선을 거점으로 한 소련과 미국 등 열강 세력의 교착과 갈등, 그들의 지리적 팽창주의에 의한 한반도의 분할과 신탁통치, 나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된 세계 체제 및 냉전 체제로의 재편 과정에 대한 인식은 모두 지정학적 관점과 방법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한, 이는 제국 일본의 패전에 의해 타율적으로 주어진 해방 정국을 이해하고,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기 위해 지정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을 적용해 국제정치사의 측면에서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 질서 및 세계 체제에 기민하게 반응한 결과이기도 했다. 한편, 표해운의 『조선지정학개관』의 논의는 탈식민 민족국가로서의 조선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지정학적 관점에서의 중앙적.병참적.역적 위치의 성격을 모두 구비한 조선의 관계적 위치를 부각시켰고, 관계적 위치로서의 조선은 '대륙 정치성'과 '해양 정치성'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관계적 위치에 대한 강조는 강대국 사이의 완충독립국가로서의 조선의 지위를 확보하기 것이었다. 아울러 지리적 환경에 의해 민족성이 형성되고, 다시 민족성에 의해 독립국가로서의 조선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조선을 통합된 균질적 공간으로 위치시켜 상상하게 한다. 자연지리와 인문지리의 조화, 각 지방들의 유기적 통합체로서의 국토에 대한 인식과 감각, 그리고 자연 환경과 민족 심리, 나아가 민족문화를 단선적으로 연결시키는 표해운의 논의는 지리적 민족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를 동일시하는 전략적 서술이었다. 이러한 전략적 서술은 민족국가를 상상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했지만, 해방 직후 다양하고 이질적인 주체들의 조선에 대한 지리적 상상을 단일화시켰다.

7해방 후 한국과 일본의 인류학적 교류와 한국 인류학자의 일본 지역연구

저자 : 박동성 ( Dongseong Park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59-18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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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일 간 인류학적 교류와 한국 인류학자의 일본에 대한 지역연구를 개관하고 이를 통하여 향후의 한일 간 인류학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 인류학은 식민지 시기의 일본 인류학과는 단절된 상태로 문화인류학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국교정상화 이전의 부분적인 교류, 196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한일 간 학자의 교류와 일본 인류학자의 한국농촌 조사 개시, 1970년대부터 이루어진 한국 인류학자의 일본 조사 등으로 상호간에 중요한 영향이 이루어졌다. 이런 시기를 거쳐 한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의 장기간 현지조사를 거친 박사논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일본 지역연구는 기존의 연구자들과 일본전문가로서 새롭게 합류한 연구자들의 협업을 통해 빠르게 발전했다. 이 논문에서는 현재까지 이루어진 인류학적 일본연구의 축적 내용과 연구자의 유형별 분류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8조병화 시에 나타난 유학적 상상력 연구

저자 : 이상호 ( Sang Ho Lee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87-21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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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병화 시에 나타난 유학사상의 핵심인 '仁'에 관한 시적 표현 특성을 고찰한 것이다. 조병화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는 '어머니'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 어머니는 시심의 원천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절실한 마음은 두 가지 의미로 풀이된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을 낳아준 근원이라는 혈육 인식의 결과인 효심의 발로이다. 둘째, 포괄적으로 보면 그것은 현대인들이 물질문명에 압도되어 점점 사랑이 고갈됨으로써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깊이 성찰한 결과, 그 구원의 길로서 인류가 모성 같은 '인', 즉 박애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인식의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유학사상에 따르면 '인'은 인간의 천부적인 본성이다. 조병화는 이러한 인을 통해 비극적 세계의 구원 가능성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는 돈에 가려져서 사랑이 고갈되는 현대사회를 뼈저리게 성찰하면서도 결코 사랑의 빛은 꺼지지 않으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졌다. 다만 혼탁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사회로 구현되는 수행 과정이 요구되는데, 그의 시는 바로 그 계기를 촉발하는 의미를 갖는다. 즉 그는 시를 통한 대중적 감화의 방법으로 '인'의 사회적 실천을 도모하고 인류가 함께 자유라는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열고자 했다. 따라서 조병화의 시 쓰기는 자기동일성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예술적 행위이면서 그 사회적 확장을 꿈꾸는 철학적 성찰이요, 종교적 이념으로도 승화될 수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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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세시 명절은 중국 대중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명절은 수많은 사람이 특정일에 한 곳에 집결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많은 관중을 필요로 하는 희곡 활동에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이에 중국 세시 명절 풍속에서 희곡공연은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일찍이 중국에서 연극이 형성된 시기부터 각 세시 명절에 다양한 '節戱'가 공연되었다. 중국 희곡의 대표주자인 경극도 그 형성 직후부터 매 절기마다 절기 특색을 지닌 작품들이 꾸준히 공연 되었다.특히 '應節戱'는 청말 연극문화의 번영에 따라 직업극단 간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민간의 대형 직업극단에서 각 절기에 공연한 특정한 극목을 일컫는다. 본고는 항전시기 북경에서 출간된 희곡전문 잡지인 『立言畵刊』속에 수록된 33期의 응절희 기사를 토대로 이 시기 민간에서 행해진 절기 연극에 대한 초보적 고찰이다. 기사 분석을 통해서 청말 민초 시기 민간에서 元旦, 元宵, 端午, 祭關帝, 七夕, 中元, 秋夕, 祭조日 등 7개 명절에 응절희가 공연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청대 궁정의 월령승응희가 거의 20개 명절에 공연 되었던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며, 민간과 궁정의 공연환경의 차이를 확인하게 해주었다. 또 궁정대희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몇몇 작품들을 통해 궁정 절희가 민간의 '응절희'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경극 응절희는 내용적으로 절기의 기원이나 절기 상징물, 절기 풍속과 관련된 대목이 등장하는 등 절기와의 직접적 연관성이 있거나 경축적 명절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吉祥劇이다. 또 매해 일정 레퍼토리가 반복 공연되는 특성을 띠며,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평이한 내용을 다루었다. 형식적으로는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등 화려한 볼거리를 추구하고, 민국 이래로 신식극장의 설립 등의 공연.환경적 변화에 발맞추어 현대적 극장으로 진입하여 조명과 회전무대 등의 무대미술과 효과를 적극 활용하였다. 또 응절희 공연이 표를 사서 보는 관상적.영업적 공연이 되면서 점차 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공연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중국 팬서브, 공식자막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가? -외화 『어벤져스』의 번역 비교 분석을 중심으로-

저자 : 김가희(1저자) ( Ga Hee Kim ) , 최릉우(2저자) ( Ling Yu Cui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51-27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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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영상 작품에 팬이 직접 대사를 번역하여 자막을 붙이는 팬서브(fansub)가 세계적으로 트렌디한 활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경제력'과 '영어실력'을 겸비한 일부 대학생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 팬서브가 다른 어떠한 국가에서 보다도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에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정권 전복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하여 상영하는 영상물에 대한 엄격한 검열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상물 번역에도 중국 당국의 검열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줄거리의 변화, 삭제, 편집이 중국 당국의 검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시찡 정(Zheng 2010)은 대부분의 중국 관객들이 검열이 없는 팬서브가 검열을 받는 공식 자막보다 원작에 더 충실한 번역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연구를 내놓았다. 이러한 중국의 영상 번역 상황을 배경으로 본 연구에서는 다음 두 가지 문제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째 중국 공식 자막 번역과 팬서브 번역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 발견되는가? 둘째 중국 관객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팬서브가 공식 자막 보다 원작에 더 충실하게 번역되었는가? 이 두 가지 연구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 중국 팬서브 현황, 저작권법, 검열 문제를 배경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미국 영웅영화인 『어벤져스』의 중국어 공식자막과 중국어 팬서브를 일곱 가지 관점에서 비교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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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80) ~ 71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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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65) ~ 62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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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91) ~ 53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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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50) ~ 40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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