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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학회> 현대문학의 연구> 특집논문 : 일본문학의 번역과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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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논문 : 일본문학의 번역과 한국문학

The relation between translation of Japanese and Korean literature in Korea in the 1960s

이한정 ( Han Jung Lee )
  • : 한국문학연구학회
  •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5년 02월
  • : 7-51(45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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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60년대에 한국에서 번역된 일본문학의 양상과 번역 배경을 살피고 있다. 어느 외국문학보다도 이 시기에 일본문학은 전집 및 선집류로 발간되면서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작품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가릴 것이 당시 일본의 주요 문학상 수상작 및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번역에 참여한 번역자 대다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문학을 체득한 문인들이었다. 1960년대에 일본문학이 국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배경에는 일본문학을 통하여 한국문학의 확장성을 꾀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1960년의 4.19와 1965년의 한일협정이 일본에 관한관심을 고조시킨 원인이었으나, 일본문학 작품의 번역은 독자의 호응, 출판사의 마켓팅 전략과 더불어 서구문학에 대응하는 한국문학이 일본문학을 ‘동류’로 끌어들인 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집중적으로 번역된 이유는 일본에서 인정받은 양질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신진작가에게 새로운 자극을 부여하려는 자세에서였다. 1968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일본적인 것’의 세계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전통’ 계승에 관심을 갖던 문인들을 자극시켰고, 이에 따라 국내 최초로 일본작가의 개인 전집에 해당하는 「川端康成全集」전6권이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끝난지 불과 15년 만에 번역을 통해 일본문학이 국내에 대량 유입된 상황은 식민지시대에 일본문학의 세례를 받은 일본어세대의 일본문학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기대 현상에 기인한 점이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tendency of Japanese literature translated in 1960s in Korea and the background of translation. In this period, Japanese literature have poured in to Korea in the form of complete collection or anthology much more than the other foreign literatures. Irrespective of whether it is pure or popular one, Japanese literature at that time have been translated focusing on the ones with literature award or best sellers. The majority of the translators have been writers those who have learnt about Japanese literature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The introduction of Japanese literature in 1960s to the public of Korea has been for expansion of the literatures of Korea. The April 19th revolution of 1960 and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in 1965 have raised interests in Japan. However, the reasons for translation of Japanese literature have been that the Korean literature have taken the Japanese ones into the ``same class`` to cope with the Western literature along with response of readers and marketing strategy of publication companies. Further, the majority of translated literature have been the ones with Akutagawa prize for motivating the new writers of Korea by introducing high-quality Japanese literature which have been acknowledged in Japan. In 1968, Kawabata Yasunari has won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and this has stimulated writers of Korea those who have been interested in succession of the ``tradition`` of Korea through the universality of Japanese literature. As a result, six editions of 『Kawabata Yasunari Collection』 have been published in Korea as the first personal complete collection of Japanese writer. However, we can point out that the inflow of vast amount Japanese literatures into Korea through translation fifteen years after the end of Japanese colonial era has resulted from high dependency and expectation on Japanese literature of Japanese-generation which have been occupied by Japanese literature during the colonial era.

ECN

ECN-0102-2015-800-002043960


UCI

I410-ECN-0102-2015-800-002043960

간행물정보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 등재
  • : -
  • : 연3회
  • : 1229-903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9-2017
  • :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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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특집논문 : 일본문학의 번역과 한국문학

저자 : 이한정 ( Han Jung Lee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7-51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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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60년대에 한국에서 번역된 일본문학의 양상과 번역 배경을 살피고 있다. 어느 외국문학보다도 이 시기에 일본문학은 전집 및 선집류로 발간되면서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작품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가릴 것이 당시 일본의 주요 문학상 수상작 및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번역에 참여한 번역자 대다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문학을 체득한 문인들이었다. 1960년대에 일본문학이 국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배경에는 일본문학을 통하여 한국문학의 확장성을 꾀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1960년의 4.19와 1965년의 한일협정이 일본에 관한관심을 고조시킨 원인이었으나, 일본문학 작품의 번역은 독자의 호응, 출판사의 마켓팅 전략과 더불어 서구문학에 대응하는 한국문학이 일본문학을 '동류'로 끌어들인 점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집중적으로 번역된 이유는 일본에서 인정받은 양질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신진작가에게 새로운 자극을 부여하려는 자세에서였다. 1968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일본적인 것'의 세계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전통' 계승에 관심을 갖던 문인들을 자극시켰고, 이에 따라 국내 최초로 일본작가의 개인 전집에 해당하는 「川端康成全集」전6권이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끝난지 불과 15년 만에 번역을 통해 일본문학이 국내에 대량 유입된 상황은 식민지시대에 일본문학의 세례를 받은 일본어세대의 일본문학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기대 현상에 기인한 점이라고도 지적할 수 있다.

2특집논문 : 일그러진 조국 -검역국가의 병리성과 간첩의 위상학

저자 : 임유경 ( Yu Kyung Lim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53-102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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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방 이후 한반도의 두 체제가 자기의 국가적 경계를 형성하는 데 '일본'과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매개하고 있었는지를 '재일조선인간첩사건'을 통해 추적해보고자 한다. 이는 두 체제의 적대적 공조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간첩'으로 정체화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이면서, 남한정부가 탈식민과 냉전의 시간을 전유해가던 역사의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던 일본과 북한이라는 내밀한 '자기-타자'를 외부화시키던 방식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 청년들이 모국 유학을 위해 현해탄을 건너오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중반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1971년에 이르러 이들 유학생은 불미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한국의 공론장에 등장했다. 서승 · 서준식 형제가 연루되었던 '재일교포유학생 간첩단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에는 유사사건이 쉼 없이 터져 나왔으며, 이 시기의 사건들은 50 · 60년대에 비해 빈도수, 규모, 사회적 파장 등 여러 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사실은 '재일조선인'과 '간첩' 사이의 하이픈을 구성하는 권력의 작업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한반도의 두 체제에 있어 '일본'이라는 대상(장소)이 다변적 의미를 가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즉, 박정희 정권하에서 내셔널리즘과 반공주의라는 복수의 해석 코드에 의해 '북한'-'간첩'-'재일조선인'-'일본'이라는 항들이 연계되고 재배치되는 과정은 보다 면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냉전'(반공)이라는 필터가 한편으로는 '최상의 적'인 '북한'과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심리적 적국'인 '일본'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은 다른 동포들과는 차별화되는 재일조선인의 상황을 복기하게 만든다. 북한과 일본이라는 두 항에 매개됨으로써 재일조선인의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냉전의 시간'과 '탈식민의 시간'의 중첩으로 인해 빚어지던, 한 가족의 신체에 켜켜이 쌓여가던 '불가상성(不可想性)의 시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재일조선인 간첩사건이 갖는 정치적 · 문화적 의미를 논고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맥락을 구성했다. 그중 첫 번째는 '두 개의 한국'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국가적 관심의 대상으로 발견되는 과정을 맥락화하는 일이다. 해방 이후부터 사건이 발생하는 197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재일조선인에 관한 인식의 변화 추이와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중요 요인으로서의 체제경쟁에 대한 통시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재일조선인 간첩에 관한 연구는 기존의 재일조선인 및 한일관계 연구를 보충하는 한편, 새롭고 유의미한 논의의 지점을 개시함으로써 기왕의 연구사적 시각을 한층 폭넓게 확장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어, 두 번째는 6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하기 시작하는 일련의 대규모 간첩단 사건들과의 관련 속에서 해당 사건의 의미를 검토하는 일이다. '재일교포유학생 간첩단사건'은 한반도의 두 국가에 있어 '간첩의 위상학'이 더 논의되어야 할 주제임을 알려준다. 이 사건을 다른 간첩단 사건들과 겹쳐 읽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국민'과 '간첩'이라는 두 주체범주의 확장과 변이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고, 아울러 재일조선인이 '잠재적 간첩'으로 인식되었던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넓은 역사적 지평에서 보자면, 재일조선인 간첩사건은 냉전이데올로기에 의해 재편된 한반도와 그 이외의 지역들 간의 경계, 아울러 한반도 내부의 두 체제 사이의 경계를 모두 건드리고 있는 중요한 연구대상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해방과 분단이라는 두 개의 축을 보다 정치한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2절과 3절은 이 두 가지 맥락을 구축하기 위해 쓰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에 기반하여, 4절에서는 해당 사건의 당사자였던 서승 · 서준식과 그의 가족을 통해 '재일조선인 간첩의 탄생'이 중층적 역사의 시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짚어보았다. 재일조선인 간첩사건은 검역국가의 병리성, 즉 분단의 질병으로서의 '자기면역병'이 냉전의 유산인 동시에 풍토병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일깨워줄것이다. 그야말로, 냉전은 저 멀리 시베리아 반도와 아메리카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발밑에서' 피어오르고 있었음을 말이다. 또한 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탈식민과 냉전이라는 두 개의 전선이 교차되는 자리에 서 있던 주체들과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운명”, 그리고 그들이 “이 운명의 형태”를 응시하던 방법들에 관해 숙고하도록 이끌 것이다.

3특집논문 : 일본, 적대와 연대의 이중주 -1950년대 한국지식인들의 대일인식과 한국문화(학)

저자 : 이봉범 ( Bong Beom Lee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03-168 (6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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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패러독스 현상의 심화는 현 한일관계의 구조적 기원인 1965년 한일국교수립을 다시금 주목 · 성찰하게끔 만든다. 한일국교정상화는 8 · 15해방 후 한일관계의 원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 논문은 65년체제를 한일관계의 결절로 간주할 때 그 이전 즉, 1950년대의 한일관계에 주목해 원점의 기원을 추적하고자 했다. 1950년대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의 기조와 논리가 어떻게 형성 · 전개되었는지, 또 이승만정권의 반일주의정책과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의 길항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어 나타났는가를 중심으로 1950년대 일본적인 것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이 체계와 규모를 갖추고 대두된 것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의한 일본의 독립과 그에 따라 한일회담이 추진된 전후부터이다. 한국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의 기조는 일본배제론과 일본경계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이승만정권의 전략적 반일정책과 공명하면서도 상호 균열, 충돌하는 모순성을 지닌다. 한일회담의 중요 의제에 대한 것과 이승만정권의 대일정책에 대한 대응 두 차원에서 옹호/비판의 다기한 양상이 드러나는데, 대일재산권청구, 구보타 망언, 태평양동맹구상의 일환으로 결성된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의 발족, 평화선, 재일조선인문제 및 북송 등에 대한 반일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아시아민족반공연맹과 동아시아반공연대 결성에 있어 일본배제론/참여론으로 갈리기도 하고, 정경분리원칙, 정치/문화 분리원칙을 제기하는 등 불협화음이 여러 지점에서 노출되었다. 전체적으로 1950년대 지식인들의 대일인식은 한일관계의 역사성, 특수성, 현재성 등을 바탕으로 일본경제론 · 배제론과 현실론 · 운명론이 교차 · 길항하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반일이데올로기가 심화되는 추세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전적으로 식민지적 멘탈리티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한일회담의 개최, 교착, 중단, 재개의 반복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대한 정책 및 인식태도에 의해 과정적으로 구성되고 심화된 면이 매우 컸다. 지식인들에게 있어 1950년대 일본은 군국주의의 일본, 좌익적 일본일 뿐이었고, 따라서 일본은 대결적, 적대적, 침략적 존재이지 결코 공존적, 협조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한 감정적 반일이데올로기의 찌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8 · 15해방 후 탈식민의 작업은 반민특위의 해체를 계기로 파행, 왜곡의 길로 들어서는데, 1950년대 일제잔재청산의 탈식민작업도 이 자장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는 일본적인 것에 대한 극단적인 배제 · 차별에도 불구하고 일본화 현상이 만연했고 그 추세가 가속된다. 왜색일소운동을 비롯해 관급적 반일국민운동을 통해 일본을 부정적 타자로 한 내셔널리즘의 재흥하나 반일주의의 기저에 존재했던 거부 · 증오/모방 · 추격의 이중적 존재로서의 일본에 대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인해 일본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밀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끌고 들어온 혐의가 짙다. 일본문화에 대한 검열은 이 · 수입의 봉쇄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도입된 일본물에 대한 행정적 단속의 일상화 등 두 차원이 병존했고, 불온과 저속(외설)의 논리가 작동되었다. 그렇지만 과도한 통제는 오히려 일본적인 것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증대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아울러 검열로 말미암아 문화적 기형성을 배태 · 조장했다. 1950년대 친일문제는 학 · 예술원의 설립과정에 촉발되어 공론화된 가운데 친일경력의 각계 전문가 지식인들의 제도적 복권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된다. 반일정서의 고조와 친일문학인의 복권, 이 극명한 대비가 1950년대 지식인들의 두 개의 일본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정직한 풍경이다. 1950년대는 '경험된' 반공과 '경험된'반일에 갇힌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4특집논문 : 한국의 일본 언설의 "비틀림" -"객관성"과 "보편성" 문제를 중심으로

저자 : 권혁태 ( Heok Tae Kwon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169-20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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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일본연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본연구가 그 형식에서 독립적인 학문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객관성``이라는 것은 그 내용과 관계없이 일본연구의 앞머리에 붙는 수사(레토릭)로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열쇳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객관성``은 이른바 ``가치자유적``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일본론에서 나타났던 가치목적적 전제에 대한 기계적인 반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객관성``을 표방한 일본연구는 19세기 이래의 제국주의 질서에 저항해왔던 장기간의 이의제기(``탈식민``)를 물리침으로써 그 질서 위에서 있는 근대화론과 개발주의에 저항할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볼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일관계의 제도화 시점이라 할 수 있는 ``65년 체제`` 이후, 한국의 일본 언설이 탈(脫)식민과 주체의 형성이라는 과제와 관련해서 어떤 내적 모순, 즉 ``비틀림``의 구조를 내포하게 되었는가를 이른바 ``객관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살펴본다.

5일반논문 : 근대 초기 유통 서적 연구 -청년학우회 한성연회 도서종람소를 중심으로

저자 : 권두연 ( Du Yeon Kwon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03-252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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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근대 초 민간에서 유통된 서적들을 살펴보기 위해 도서종람소에 주목하고 청년학우회의 한성연회 도서종람소를 하나의 사례로들어 이 시기 청년 · 학생 및 지식인들 사이에서 소비되고 유통된 서적들의 구체적인 실태를 살펴보았다. 한성연회 도서종람소는 청년학우회가 추진한 활동 가운데 하나로 신문관을 수집소로, 학우회 기관지인 『소년』에 도서 수집을 광고했다. 장서의 수집은 서적의 기부를 통해 이루어 졌는데 세 번에 걸쳐 광고된 기부 서적은 총 91종 157책에 이른다. 기부자는 총 16인과 단체 한 곳이며 이 가운데 학우회 회원은 단 3명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한성연회 도서종람소가 청년학우회라는 단체에 한정되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부 서적을 살펴보면 다양한 언어 및 종류의 서적들이 기부되었고 특히 일본어와 교과서의 비중이 높다. 이는 기부자들의 상당수가 일본 유학생인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또 서적의 종류 역시 전문화되어 있으며 당시 매체를 통해서는 접할 수 없는 희귀본이나 한정판 서적들이 상당하다. 이 점은 기부자들이 전문적이고 제한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나 기회가 상대적으로 높았을 가능성 말해준다. 반면 한글로 된 서적, 특히 소설은 한 권도 없었다는 점에서 당대 청년 학생들의 한글소설에 대한 인식을 엿볼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성연회 도서종람소에 서적을 기부한 이들 가운데 학우회 소속은 소수였다는 점에서 도서종람소가 청년학우회 보다는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도서종람소를 중심으로 한 지식의 공적 확대가 출판사나 유학생 그룹을 통해 보다 활성화될 수 있었음을 고찰했다.

6일반논문 : 근대 초기 선교사 부인의 저술 활동과 번역가로서의 정체성

저자 : 김성연 ( Sung Yeun Kim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53-29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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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서 '서양인 선교사 부인'은 '인종적', '종교적', '젠더적' 정체성을 겹겹이 안고 있는 존재였다. 이들의 집필 활동은 국경과 언어,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나, 서양인 여성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활용하여 번역 작업에 가장 집중했다. 이들의 문학/비문학 번역물은 공히 한글 표기를 고수했으며 문장력에 있어서는 남성 공역자들의것, 예컨대 게일과 이원모의 번역본 보다 나았다. 선교사 부인은 번역의 과정에서 조선인 남성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노블 부인의 조사 김태원의 경우를 보면 번역 작업 자체뿐 아니라 출판과 검열 관련 업무까지도 전담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조선인 조사들의 실체와 그 개입의 정도를 일부나마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조선인 화가를 삽화가로 고용하여 서양의 서사를 조선의 풍속화로 표현하거나, 해부도를 그리도록 하는 등 조선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번역가로서 선교사 부인은 주로 영국과 미국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문학 작품을 번역하여 당시로서의 근간을 선별했고, 죄악을 경계하는 교훈적 소설과 성장소설류를 주로 다루었다. 그 번역물은 번역문학사에서 최초의 혹은 식민지 시기 유일의 번역본이기도 했다. 이들이 남긴 전기물 역시 오늘날 지속적으로 참조가 되는 의미있는 저술들이다. 남성 선교사의 문서 활동이 성경번역, 주석서를 비롯한 종교적 교리서나 학문적 저술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선교사 부인들은 소설, 동화, 전기와 같은 문학 작품의 창작과 번역, 혹은 창가집 등을 담당했다. 무엇보다도 조선 여성의 삶을 다룬 창작/번역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이들의 출판물은 학교, 교회, 선교센터, 병원, 감옥 등에 비치되었으며, 교회 목회자들에게도 적극 권고되며 설교와 강연의 자료로 활용되었고, 전도부인 · 서적보부상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배포되어 그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7일반논문 : 최서해 초기 소설에 형상된 "공포"와 "파국의 상상력"

저자 : 김재영 ( Jae Yeong Kim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291-32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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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에서 프로문학에 이르는 과도적 문학으로서의 '신경향파', 그리고 '신경향파 최대의 작가로서의 최서해'라는 임화의 정식은 여전히 최서해 문학 이해의 통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신경향파의 과도성'이 레닌이즘의 역사적 전망에 바탕한 최서해 문학의 전유 방식이 었음을 생각한다면, 그 유효성은 이제 인정되기 어렵다. 초기 최서해 소설의 지향은 <토혈>을 개작하여 <기아와 살륙>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이 개작에서 가장 공들여 하고 있는 작업은 잔혹한 상황의 생생한 장면화이며, 이를 특정한 의미의 공포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잔혹성과 공포의 결합이 야말로 최서해 초기 소설들의 가장 큰 특징이 된다. '파국' 또는 '전복'에 대한 상상과 최서해의 공포는 연관되어 있다. 이미 그 전복의 방향을 알고 있는 자로서 그 상황들을 임박한 전복의 증좌로 읽으려 할 때 이른바 '과도기로서의 신경향파' 명제는 성립한다. 하지만 서해의 소설들은 그 '전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최해 소설에 나타나는 모든 공포는 작품의 끝에 존재한다. 그것은 작품을 통해 수습될 수 있는 형식의 공포가 아니다. 이 작품들에서 상상되는 '전복'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어떤 비전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파국일 뿐이다. 앞의 작품들의 그 처참한 상황 자체는 그런 점에서임박한 전복에 대한 증좌라기보다는 그 파국의 예시에 가깝다. 그렇게본다면 서해가 상상했던 '전복'은 프로문학자들이 갖고 있었던 역사적낙관에서는 꽤 먼 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프로문학자들이 자연주의라고 이름 붙였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이 작품들에서 서해는 '절망'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8일반논문 : 시적 의미와 리듬의 생성 맥락 -김소월 「먼 후일(後日)」을 중심으로

저자 : 장철문 ( Cheal Mun Jang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21-372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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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발화행위의 관점에서 김소월 시의 의미와 리듬을 규명하기 위한 시론(試論)이다. 따라서 시를 쓰고 읽는 주체들의 언술행위를 통해생성되고 기능과 가치가 발현되는 텍스트의 말에 의해 환기되는 「먼 후일」의 시적 의미와 리듬의 체계를 탐색하였다. 이때 시적 의미와 리듬은 발화행위 즉 텍스트의 말하는 주체와 객체의 심리적 대립과 그 전개를 통해 체계화하고 환기된다. 「먼 후일」의 말하는 주체는 동경의 대상이 부재하는 현실로부터 비롯되는 부정적 심리를 '먼훗날'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로 투사함으로써 자기만족적인 심리적 방어기제를 마련한다. 말하는 주체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정황에 대한 책임을 불확실한 미래에 도래할 동경의 대상에게 떠넘김으로써 현재의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탈주하려 한다. 말하는 주체는 미래의 '망각(忘却)'에 대한 발화를 통하여 현전의 심리적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동시에 현재와 과거의 '불망(不忘)'을 확인함으로써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긍정적 심리는 보존한다. 이때 불망과 망각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공존하면서 낭만적 아이러니로 나아간다. 「먼 후일」의 시적 체계는 자수율이라는 율적 선례(先例)와 기 · 승 · 전 · 결이라는 관습적 형식은 물론 행, 연, 띄어쓰기와 같은 근대적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구축된다. 한 행에서 한 쌍의 10음절이 반복되는 1920년 발표본의 음수패턴은 1922년 발표본에서 연의 도입과 행의 변이와 함께 해체된다. 1925년 「진달내□」에 이르면, 1922년 발표본의 연과 행을 상속하면서도 1920년 발표본의 음수 패턴으로 회귀함으로써 통사적 질서와 조응하는 1행 10음절, 1연 2행의 총 4연으로 양식화하게 된다. 이때 말하는 주체와 객체의 심리적 대립과 그 전환을 환기하는 역동적 발화 패턴은 행과 연은 물론, 통사적 인식 단위인 어절과 조응하는 호흡 주기, 심리적 가치를 갖는 강세와 조응하는 억양 주기가 길항하는 띄어쓰기를 통해 표시된다. 「먼 후일」의 띄어쓰기는 1행 10음절의 자수율위에 3∨3∨4, 6∨4, 3∨7이라는 호흡과 억양이 길항하는 다변하는 휴지(休止)를 문자화한 것이다. 또한 운의 차원에서는 우리말의 독특한 조음체계를 구성하는 'ㅅ'과 활음 'ㅣ'를 활용하여 심리적 가치를 구현하는 강세를 표시하는 한편, 한시(漢詩)의 운의 체계를 차용한 양식적 운을통해 말하는 주체와 객체의 심리적 대립과 그 전환을 환기한다. 「먼 후일」의 시적 체계는 전통과 외래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단일한 시적 양식이나 율적 관습을 계승하거나 차용한 것이 아니라 갖가지 요소들이 도입되고 총섭되는 과정에서 힘겹게 맥락화했다. 이는 언술주체가 인지한 시적 형식과 언어적 체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독백적 발화 맥락을 양식화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9일반논문 : 1930년대 강소천의 동요,동시에 나타난 동심성(童心性)

저자 : 강정구 ( Jeong Gu Kang ) , 김종회 ( Jong Hoi Kim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373-40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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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강소천의 동요 · 동시에 나타난 동심성은 당대의 주요 문인집단이 지향했던 순수 관념의 아동문학적인 구체화였다. 1930년대의 주요 문인집단은 세상에 대한 판단중지를 통해 미와 예술적인 열정에 심취한 순수 관념을 지향했는데, 1930년대에 출현한 주요 동요 · 동시시인들은 그러한 순수 관념을 아동문학적인 장르적인 특성에 맞게 어떻게 전유 · 형성하는가 하는 과제를 감당했다. 그 중에서 강소천은 그의 동요 · 동시시집 『호박꽃초롱』에서 당대의 동요 · 동시시인들이 감당했던 아동문학사적인 과제의 한 응답으로써 순수=동심의 문학을 잘 보여줬다. 강소천의 동요 · 동시시집 『호박꽃초롱』은 1930년대의 순수 관념을 동심으로 전유한 대표적인 작품집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동요 · 동시시집에서는 사회적인 관계를 벗어난 사적인 아동과 세계를 형상화했다. 다만 이러한 형상화는 1920년대에 등단한 동요 · 동시시인들과 다른 순수한 아동 화자와 그 화자가 바라보는 세계를 재현해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사회 · 국가 · 민족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동조 · 추종 · 무관심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동요 · 동시시집에서는 순수한 언어의 관념을 전유해서 아동이 사용하거나 사용할 법한 언어를 탐구 · 제작했다. 언어의 물질성 · 기표성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1920년대의 전통적인 율격에 대한 발전과 파격이 엿보였다. 1920년대의 동요 · 동시시인들과 비교해 볼 때에 이러한 강소천의 문학적인 변모는 분명히 1930년대의 새로운 문학적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에 순수 관념을 지향한 문학은 문학이 문학다워야 한다는 내향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주장을 하면서 미 자체에 대한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언어조형과 비(非)세속적인 순수 관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음에도, 그것이 근대자본주의의 중산층 ·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특권의식을 보여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강소천의 아동문학 역시 이러한 공과를 함께 지니는 아동문학적인 한 현상이다.

10일반논문 : 임화의 단편서사시의 의미와 "감정"의 분화

저자 : 김지혜 ( Ji Hye Kim )

발행기관 : 한국문학연구학회 간행물 : 현대문학의 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5 페이지 : pp. 401-4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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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임화의 단편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의 의미를 프로시의 새로운 양식이라는 점에서 찾는 기존 논의가 여전히 미학/이데올로기라는 이분법적 시각에 의거해 시의 사적 의의를 밝힌다는 점을 유념하고, 오히려 단편서사시가 미학/이데올로기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통합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텍스트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오빠와 화로>의 출현으로 인해 김기진과 임화는 프로시의 중요한 자질로서 ``감정``을 발견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감정``의 의미를 분화시켜 갔음을 알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이 시기 프로시는 문학의 이념화 또는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이해될 수 있지만, 이 시기 주목받은 작품 <우리 오빠와 화로>를 둘러싼 논의들을 보면, 동시에 그것은 일종의 프로시적인 감수성의 형성에 관한 담론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중요한 자질로서 선택되고 그 외연과 내포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기진은 <우리 오빠와 화로>처럼 프로시가 ``동정``의 감정을 형성하여 독자의 계급적 감수성을 자극함으로써 프로시의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임화는 김기진의 감정론이 사실상 부르주아 지식인의 감상주의에 불과하며 동정의 감정이 관찰자의 감정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자신의 시에 대한 자아비판을 감행하게 된다. 주목할 것은 프로시에서 이 념성의 강화가 결코 감정의 약화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단편서사시를 통과하면서 임화는 감정의 사회적 역할을 구체화 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그것은 혁명적 감수성의 형성으로 나아간다. 즉, 임화는 감정을 문학의 본질일 수 있는 이유로서 감정이 사상과 행동을 요체로 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감정을 ``행동에의 충동``이라는 정치적 실천의 의미로서 확정했던 것이다. 단편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의 의미는 이 시로 인해 프로시에서 감정이 배제되는 미학적 자질이 아니라 혁명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이념적 자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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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82) ~ 72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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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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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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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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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연구
1권 0호(1993) ~ 25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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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사연구
1권 0호(1991) ~ 64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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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어문연구
1권 0호(1988) ~ 46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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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1권 0호(1993) ~ 40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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