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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동아시아문화연구>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실린 잡곡명(雜穀名)에 대한 어휘체계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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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실린 잡곡명(雜穀名)에 대한 어휘체계사 연구

A study on the history of "mixed grains Lexicon" system in Yeon-gyeongje jeonjip 『硏經齋全集』

신중진 ( Jung Jin Shin )
  •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4년 02월
  • : 101-134(34pages)
피인용수 : 17건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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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연경재전집』의 잡곡명 수록 현황
3. 잡곡명의 어휘체계사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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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해응의 『연경재전집』에 수록된 곡물명 중에서 잡곡명 54개의 어휘체계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성해응은 18, 19세기에 걸쳐 규장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면서 말년에 188권 102책으로 구성된 거질의 『연경재전집』을 남겼다. 이 책은 경사자집을 모두 아우르는 백과사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의 외집 子餘草木類 穀品에서 잡곡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7개의 상위어 <黍 기장>, <稷 피>, <粟 조>, <大豆>, <小豆>, <麥 보리>, <荏> 아래에 나타난다. ``기장``은 고유어로서 문헌상으로는 『내훈』에서 처음 보인다. ``기장``은 한자어 ``黍, 미, 제, 미子, 大黃米``의 대응 고유어였다. 이 중에서 ``黍``는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에서도 보인다. ``피``는 문헌상으로는 『훈민정음해례본』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한자어 ``稷, 稗, 稷米, 稗子, 稗子米, 稷米``의 대응어였다. 오늘날 "기장 직"의 새김으로 알려진 한자 ``稷``은 역사적으로는 "피(稗)"와 동의어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 혹은 ``좁쌀``은 한자어 ``粟, 粟米, 小米``의 대응 고유어이다. 18세기의 『몽어유해』에서 ``좁』``이 오늘날의 어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콩`` 혹은 ````은 한자어 ``菽, 大豆, 黃豆, 豆子, 豆, 賊菽``의 대응 고유어이다. 참고로 『금양잡록』에서는 콩을 ``太``로 인식하였다. ````은 한자어 ``荳, 豆, 小豆``에 대응하는 고유어이다. ``보리``는 한자어 ``래, 모, 大麥, 麥子``에 대응하는 고유어이다. 특기할 점은 ``보리``와 ``밀``의 상위어로 ``麥 보리``를 삼고 있다는 점이다. 『훈몽자회』나 『색경』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원래 ``荏``은 ``들깨``를 의미했다. 한편 『금양잡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油麻``가 일찍이 『농사직설』에서부터 ``水荏子``에 대한 표제항으로 나타난다.
This study is aimed specifically at the historical analysis of "mixed grains lexicon" system, exclusive of rice lexicon in Yeon-gyeongje jeonjip. A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concerned, it is necessary to discuss the figure and the text in detail. Seong Hae-eung (1760~1839) worked in government services in the period that the JeongJo that was the King of the Joseon dynasty governed in. He worked with his father in Gyujang-gak that was Academy House in Chosun dynasty. Seong Hae-eung who entered the twilight of his life bequeathed us Yeon-gyeongje jeonjip 『硏經齋全集』 about 188 volumes) in 1840(?). For the history of "mixed grains lexicon" system in Yeon-gyeongje jeonjip 『硏經齋全集』, I looked all around carefully at the bibliographic data of 17 books. First I looked at Nongsajlkseol 『農事直說』and Geumyangjaprok 『衿陽雜錄』 in the 15 century. Second I looked at Hunmongjahoe 『訓蒙字會』 and Sinjeungyuhap『新增類合』in the 16 century. Third I looked at Donguibogam 『東醫寶鑑』, Saekgyeong 『穡經』 and Yeokeoyuhae 『譯語類解』 in the 17 century. Fourth I looked at Dongmunyuhae 『同文類解』, Mongeoyuhae 『蒙語類解』, Bangeonyuseok 『方言類釋』, Hancheongmungam 『漢淸文鑑』, Waeeoyuhae 『倭語類解』, Haneocho 『漢語抄』and Jaemulbo 『才物譜』 in the 18 century. Finally I looked at Mulmyeonggo 『物名攷』, Limwonsipyukji 『林園十六志』, Gwangjaemulbo 『廣才物譜』in the 19 century. In order to pursuit the etymology of "mixed grains lexicon" in Yeon-gyeongje jeonjip (『硏經齋全集』), The 102 numbers of "rice and mixed grains lexicon" were contained in the plants and trees class of Yeon-gyeongje jeonjip. They belonged to the 8 numbers hyperonyms. Their hyperonyms were <稻 rice>, <黍 proso>, <稷 pea>, <粟 millet>, <大豆 bean>, <小豆 adzuki beans>, <麥 barley>, <荏 sesame> ordering. Among these the hyponyms of <黍 proso>, <稷 pea>, <粟 millet>, <大豆 bean>, <小豆 adzuki beans>, <麥 barley>, <荏 sesame> contained in the 54 numbers of the mixed grains lexicon. In this papers I divded into 7 categores. And I pursuited the analysis of the etymology of mixed grains lexicon. From what has been discussed above, we can conclude that the history of the ``mixed grains lexicon`` system fluctuated with the century.

UCI(KEPA)

I410-ECN-0102-2014-900-001549864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 :
  • : 계간
  • : 2383-6180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0-2019
  • :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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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旗는 圖像化한 국가이며 事物化한 국가다. 국기를 비롯한 국가 표상들은 추상적인 국가를 인식 가능한 실체로 전환시키고, 그럼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관념을 구체적 행위로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이 자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것은, 형식논리로 따지자면 주인이 자기 소유물의 표지에 경례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것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국기에 대해 경례하지 않는 사람은 불순하거나 반국가적 사상을 가진 위험 분자로 지목된다. 본 연구는 이런 모순적인 현상과 인식 태도가 형성된 역사적 경위를 추적한 것이다. 중세적 중화체제에서 벗어나 제국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列國 중의 하나'로서 고유한 표지를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기는 처음 대외적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었으나, 이윽고 스스로 국가의 一員임을 자각하는 국민을 만드는 상징적 기호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학교 등 공공기관이나 각종 행사장에 내걸린 국기는 사람들에게 같은 표지를 공유한다는 느낌을 반복적으로 심어주었다. 이런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사람들은 '국기 밑에서 하나 된' 국민으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대한제국 시기의 국기는 국민과 同格으로서 황제보다는 아래에 있었다. 따라서 황제는 충성의 대상이었으나, 국기와 그것이 표상하는 國家는 '사랑'의 대상이었다. 대한제국 시기 '국민'들은 국경일 등에 국기를 대문 옆에 내걸거나 손에 쥐고 흔들기는 했으나, 그를 향해 경례하지는 않았다. 국기가 敬拜의 대상으로 승격된 것은 대한제국 멸망 직전의 일이었다. 망해가는 국가에 대한 애틋함, 그 국가를 되살리려는 강렬한 의지가 국기에 投射되었고, 그것이 국기를 誓約의 대상으로 올려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타국민을 자국민으로 전환시켜 온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미국식 국기에 대한 의례가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되었다. 일본의 한국 강점 이후 한국인은 두 개의 국기를 갖게 되었다. 하나는 이미 망한 대한제국의 국기인 태극기였고, 다른 하나는 새 국가가 된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였다. 일본의 한국 강점 직후 일본인들은 조선 내에서 여러 차례 국기 축제를 열었고, 이 축제는 자국기를 잃어버린 식민지 주민들의 상실감을 자극했다. 1919년 3·1운동이 국기 축제 형식으로 전개된 것은, 이 경험과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해외 교민들에게 태극기는 '피눈물을 흘리며 우러러 보아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국내 민중에게 일장기는 '지극한 충성심을 담아 경배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태극기와 일장기 모두 사람들에게 특별한 동작과 의례를 요구하는 神物이었다. 해방 이후 반공 국가 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태극기에는 '反共의 표상'이라는 지위가 附加되었다. 기독교계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부 있었으나,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국기에 대한 경건주의적, 열정주의적 태도는 그 반대 움직임을 가볍게 분쇄했다. 다만 이 반대 운동의 결과로, 그리고 기독교인이던 이승만의 지원으로, 국기에 대한 '最敬禮'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 미국식 의례 동작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에서 미국인과 한국인만 공유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 의식이 만들어진 경위이다. 한국의 태극기와 국민의례에는 그것이 지내온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념적, 정신적 요소들이 묻어있다. 그래서 지금도 태극기와 국민의례는 여러 정치적 종교적 성향이 싸우는 전쟁터이다.

2문화표상에 나타난 문화적 정체성의 경쟁:오끼나와 슈리성의 사례

저자 : 김창민 ( Chang Min Kim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47-6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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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끼나와인들의 문화적 정체성 변화와 경쟁 과정을 슈리성이라는 문화 표상을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끼나와는 1409년 류큐왕국의 설립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오끼나와의 문화적 정체성은 유동성을 보여왔다. 특히, 류큐처분 이후 오끼나와는 류큐왕국으로서의 정체성과 일본으로서 정체성 사이의 경쟁을 경험하였으며, 1945년부터 1972년 사이에는 류큐와 미국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문화적 정체성의 경쟁과 혼란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1972년 일본으로 '복귀'된 이후에도 여전히 일본과 류큐사이에 정체성 경쟁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정체성의 변화와 경쟁은 슈리성을 통하여 표출되었다. 오끼나와를 지배한 세력들은 자신의 지배를 확인하며 피지배지역으로서 오끼나와를 정체화 하기 위하여 슈리성 복원을 주도하였다. 소실과 파괴로 점철된 슈리성 복원의 역사는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끼나와인들은 외세의 이러한 정체성 만들기를 수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복원된 슈리성을 류큐문화의 대표적 표상으로 의미 부여를 함으로써 자신들을 류큐문화 담지자(擔持者)로서 정체화 한 것이다. 결국 슈리성은 외세에 의해 규정되어진 정체성과 오끼나와인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정체성이 경쟁하고 타협하는 현장인 셈이다.

3영벽(影壁)에 나타난 중국인의 심리표상

저자 : 한남수 ( Nam Su Ha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69-9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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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影壁의 위치와 역할에 주목하고 영벽이 중국인의 심리적 표상으로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고찰했다. 영벽은 西周시대의 유물로 발견되어 청대까지 황실과 귀족, 사대부, 재력가 등 상층문화를 상징하는 가옥 구조의 일부로 활용되었다. 북방의 건조한 기후의 영향을 받아 두터운 외벽과 높은 담의 가옥 구조를 형성하면서 영벽은 실내와 출입구를 보호하는 병풍으로 불렸다. 대문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영벽은 거주 공간에 들어오는 '氣'의 순환과 흐름을 관장하고 집안의 '福'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영벽에 나타난 다양한 도안은 당대 지배층의 이상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기재가 되었다. 영벽 공간 내부는 엄격한 계층적 질서와 음양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유로움과 안전을 추구한다. 영벽은 공간의 배치와 구성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기후적 특성과 경관 그리고 채광을 고려한 섬세함을 강조한다. 또 도안에는 여러 색깔, 크기, 時, 吉祥 등으로 지배층의 위엄과 이상을 표현했다. 내부적으로 가족 공간이라는 개인적인 밀실을 외부에 보이기 꺼려하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어 영벽은 '실내병풍'이라 불릴 만큼 폐쇄성과 기밀성을 띤다. 영벽은 심리적인 보호막과 안전장치를 강조하면서 가족 내의 신분적 서열과 질서의 경계가 되었다. 영벽은 외형적으로 중국인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특성과 체면을 중시하는 성향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을 낙관적으로 타계하려는 의도와 이상에 대한 담대함을 보여주고 있어 현대에도 여전히 생활공간의 중심에 서 있다. 때문에 영벽은 생활공간의 실용성을 극대화하고 중국인의 심리를 미학적으로 완성시킨 표상이라 하겠다.

4『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실린 잡곡명(雜穀名)에 대한 어휘체계사 연구

저자 : 신중진 ( Jung Jin Sh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01-134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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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성해응의 『연경재전집』에 수록된 곡물명 중에서 잡곡명 54개의 어휘체계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성해응은 18, 19세기에 걸쳐 규장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면서 말년에 188권 102책으로 구성된 거질의 『연경재전집』을 남겼다. 이 책은 경사자집을 모두 아우르는 백과사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책의 외집 子餘草木類 穀品에서 잡곡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7개의 상위어 <黍 기장>, <稷 피>, <粟 조>, <大豆>, <小豆>, <麥 보리>, <荏> 아래에 나타난다. ``기장``은 고유어로서 문헌상으로는 『내훈』에서 처음 보인다. ``기장``은 한자어 ``黍, 미, 제, 미子, 大黃米``의 대응 고유어였다. 이 중에서 ``黍``는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에서도 보인다. ``피``는 문헌상으로는 『훈민정음해례본』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한자어 ``稷, 稗, 稷米, 稗子, 稗子米, 稷米``의 대응어였다. 오늘날 "기장 직"의 새김으로 알려진 한자 ``稷``은 역사적으로는 "피(稗)"와 동의어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 혹은 ``좁쌀``은 한자어 ``粟, 粟米, 小米``의 대응 고유어이다. 18세기의 『몽어유해』에서 ``좁』``이 오늘날의 어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콩`` 혹은 ````은 한자어 ``菽, 大豆, 黃豆, 豆子, 豆, 賊菽``의 대응 고유어이다. 참고로 『금양잡록』에서는 콩을 ``太``로 인식하였다. ````은 한자어 ``荳, 豆, 小豆``에 대응하는 고유어이다. ``보리``는 한자어 ``래, 모, 大麥, 麥子``에 대응하는 고유어이다. 특기할 점은 ``보리``와 ``밀``의 상위어로 ``麥 보리``를 삼고 있다는 점이다. 『훈몽자회』나 『색경』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원래 ``荏``은 ``들깨``를 의미했다. 한편 『금양잡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油麻``가 일찍이 『농사직설』에서부터 ``水荏子``에 대한 표제항으로 나타난다.

5『고영규전』의 서술 방식과창작 기법에 관한 연구

저자 : 서신혜 ( Shin Hye Se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35-16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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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규전』은 선교사 애니 베어드가 1911년에 쓴 소설이다. 그간 이 작품의 의의에 대해 관심을 갖는 연구자는 많았지만, 정작 이 소설의 문학적 성취 자체를 연구하는 데에는 부족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기존의 연구 경향을 반성하면서, 내적접근방법을 이용하여 이 작품의 서술 방식과 창작 기법을 분석하였다. 애니 베어드는 1909년 『한국의 새벽』이라는 작품을 썼다. 이것은 영어권 독자를 위해 쓴 보고서적 성격의 글이다. 애니 베어드는 이 책의 주요 인물과 구성을 이용해서 『고영규전』이라는 소설을 창작하였다. 예상독자와 글의 종류가 다르지만, 주요 인물과 구성이 같으므로 이 둘을 비교해서 달라진 점을 찾으면 작가의 창작 의도 및 서술의 중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기존의 연구는 대체로 여자의 처지를 중심으로 이 작품을 언급했다. 하지만 제목처럼 이 작품은 남자 주인공인 고영규를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애니 베어드는, 『한국의 새벽』에 있는 내용 중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 한국 사람들이 미신에 매어서 사는 모습 등은 삭제하였다. 대신 남자 주인공 고영규의 변화를 중점으로 하면서 그의 주도하에 그의 가정이 기독교 신앙을 가진 모범적 가정으로 변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남성 중심으로 한 가정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또, 『고영규전』은 분명 '창작 소설'이므로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사용한 구성법과 수사법 등을 살펴야 한다. 애니 베어드는 질문에 답해가는 구성법으로 독자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심각한 현실을 그리되 이것을 유쾌하고 재미있는 표현으로 드러내어 독자의 흥미를 끌었다. 주변 자연물을 이용하여 기독교적 진리를 설명한 특징도 있다. 이것은 지적수준이 높지 않은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한 창작 기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애니 베어드의 작가적인 솜씨를 잘 드러낸 점이자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다.

6일본 풍수에서의 귀문회피(鬼門回避)에 관한 연구

저자 : 천인호 ( In Ho Che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61-18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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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본 풍수에서의 귀문과 이를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 등을 논의함으로써 중국에서 발생하여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된 풍수가 각국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달리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귀문은 동북방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 풍수에서는 가장 불길한 방위로 보고 있다. 풍수와 관련한 귀문은 『황제택경』에 나타나는데 일본에서는 11세기 편찬된 『작정기』에 귀문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이후 대부분의 양택관련서에서도 귀문과 같은 불길한 방위를 회피하기 위한 기법이 등장한다. 본 연구의 조사결과 일본의 귀문 회피에 대한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 동북 귀문방위에 절(사찰)을 세우는 행위, 둘째, 신사(神社)를 세우는 행위, 셋째, 동북방위의 건물 모서리를 함몰시키는 행위, 넷째, 특정한 입지(遊里)를 건설하여 동북방위의 흉함을 없애려는 것 등이었다. 한국의 비보는 주로 형세비보인 반면, 일본의 귀문회피는 특정한 방위인 북동쪽을 제어(制御)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형세비보는 숲, 사찰, 조산, 지명 등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일본의 귀문회피는 귀문방위에 사찰이나 사원 설치, 유리(遊里)설치, 건물 모퉁이 함몰 등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결국 중국에서 발생하여 전파된 풍수이론은 한국에는 주로 음택을 위주로 한 형세적인 측면에서, 일본에서는 주로 양택을 위주로 한 방위적인 측면에서 선택되었고 이것이 비보와 귀문 회피의 차이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7신세기 "저층문학" 시론 -차오정루(曹征路) 글쓰기의 의미

저자 : Xin Nian Kuang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89-21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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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발표된 차오정루의 중편소설 「거기」는 중국 문단에서 한 중요한 문학적 사건으로 기록되면서, '저층의 글쓰기'와 '신좌익 문학' 등 굵직굵직한 문학적 화두와 광범위한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문학 자체에 대해서도 새로이 사고하도록 만든 장본이었다. 이로 인해 차오정루는 '저층의 글쓰기'와 '신좌익 문학'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1980년대 초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개혁 담화가 나오면서, '반사문학'이라든지 '개혁문학'의 조류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차오정루의 글쓰기에서는 전통 국영기업에서 일하던 산업노동자들과 '농민공'으로 구성된 '새로운 노동자'층의 생존 환경이 주된 묘사의 대상이며, 저층 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한 서술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반사문학'이 되었고, 개혁개방 시대 개혁 자체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냈다. '저층의 글쓰기'와 '신좌익 문학' 은 이미 문학의 제재에 있어 일치하지만, 사상적 원천에 있어서는 구별된다. '저층의 글쓰기'에서는 글쓰기의 원천이 인도주의인데 비해, '신좌익 문학'의 사상적 원천은 마르크스주의이다. '신좌익 문학'의 형성은 현대성에 대한 반성과 맞닿아있다. '저층의 글쓰기'와 '신좌익 문학'은 1990년대 이래 '개인화된 글쓰기', '여성주의 글쓰기', '신생대 소설', '몸의 글쓰기', '욕망의 서사', '신체험 소설', '신시민 소설', '상해의 기억' 등의 문학 현상을 포함하며 유행한'중산계급의 글쓰기' 조류에 대항하면서, '중산계급의 글쓰기'와는 다른 입장과 관점 그리고 의식형태와 사회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중산계급의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탈정치화'라면, '신좌익 문학'의 특성은 문학으로 하여금 다시 정치적 감각을 회복하게 하려는 데 있다. 차오정루의 글쓰기는 1980년대 형성된 '순문학' 체제의 조류에 대한 반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순문학'에 대한 반성 가운데서 새롭게 문학의 정치성을 회복하고 다시 리얼리즘 글쓰기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혈통 작가 하진이 '위대한 중국 소설'이라는 개념을 내놓은 바 있다. 훌륭한 작품은 개인적이고 자기 성찰적인가? 아니면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본질을 구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민족역사문화의 기초 위에 구축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을 강조하는 경향과 민족의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의 양자간 대립을 형성하면서 중국문학계에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8김수영의 시적 이행의 함의와초월적 사랑의 윤리

저자 : 신동옥 ( Dong Ok Sh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219-24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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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수영 시의 주제어 가운데 하나인 ``힘``과 ``사랑``의 추동력이 이행에서 비롯된다는 가정을 입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논의에서는 ``이행``의 의미를 존재의 위상 차원의 변이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 시각이 많았다. 김수영이 이행의 표기로 ``enforcement``를 취할 때 강조하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로 이행은 어떤 방향을 향한 힘에 의한 강제를 의미한다는 점, 둘째로 강제는 당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위상의 차원이 아니라 내면에서 기루어지는 ``정치적 윤리성``을 함의한다는 점, 셋째로 윤리성은 지성과 상상력의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수영은 이행을 자유로운 자기 강제의 기원으로 삼는다. 김수영에게 당대에 대한 조감은 ``정치는 역사보다 우선한다``는 아이러니로 이어진다. 그것은 ``자기 아이러니``로 개별 작품에 드러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어려움과 절실함에 대한 자각이 자유에 대한 희구를 낳는다. 4·19는 김수영에게 ``혁명 이후``에 계속되어야 할 자유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자유는 이상적 차원에서라야 가능한 ``사회적 상상``의 실현을 요구할 것이다. 자유는 내적 당위를 윤리적 조건으로 거느린 물음 속에서 ``중층 해석``된다. 사소설을 방불케 하는 김수영의 생활 토로는 소음과 피로와 혼란 속에서 ``침묵의 이행``을 통해 상상된 공통체라는 연대의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수영은 끊임없이 세속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다. 이를 통해 신성성에 대한 열망, 반계몽의 의지, 현실을 떠난 낭만을 일소하고 자신을 직시하려 한다. 김수영의 주제어로서의 사랑은 시인이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독립해 있으면서도 스스로 정당성의 척도를 잃지 않는 척도라는 의미에서 ``장소 초월적 사랑``이다. 1960년대 산업 계몽기의 개발독재 근대화를 넘어서려는 한국 현대 시사는 자기 계몽의 신화를 벗어던지고 얻는 김수영의 사랑의 변증법에서 힌트를 얻는 바, 그것은 역계몽의 논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9『향대기람(香臺紀覽)』 기록에 투영된 일제시대 대만(臺灣)의 모습

저자 : Qing Zhi Chen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간행물 : 동아시아문화연구 56권 0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247-27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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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한국과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도 두 나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과 같이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대만은 조선에서 벌어진 동학운동(東學運動) 때문에 청일전쟁의 패전 대가로 1895년에 일본에 할양되었다. 한국 또한 15년 후 1910년에 일본의 군사적 압박에 못 이겨 한일합병조약을 맺어 대만과 같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장기적 식민통치로 인해 대만에는 간접적으로 대만과 중국 사이에 민족적·정치적·사상적 괴리현상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에는 남북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에 얽힌 두 나라는 한류열풍을 계기로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교류를 하고 있다. 양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대만의 6번째 대만은 한국의 7번째 무역 상대국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발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한국 양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최근 정치, 경제, 문화, 언어 등의 분야에서 비교적 많은 비교 연구가 이뤄져 그간의 연구 공백을 어느 정도 채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시대에 있었던 대만과 한국 양국 교류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연구 성과가 없다. 이 중에서도 특히 민간 교류에 관한 연구는 유난히 드물다. 양국의 교류는 날로 빈번하고 긴밀해지는 이 시점에 연구의 폭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향대기람(香臺紀覽)』이란 책은 공성학(孔聖學)을 비롯한 일제시대 조선의 개성상인들이 대만, 홍콩을 유람하면서 기록한 시문이다. 9일간의 대만 관광은 가장 북쪽인 기륭(基隆)부터 가장 남쪽인 아란비(鵝란鼻)까지 대만 서부지방의 유명한 관광명소와 당시의 현대시설을 유람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기 형식의 기록문은 관광 일정의 날짜, 시간, 교통수단, 숙박시설, 견문 등을 대부분 망라하여 자세히 기록한 덕분에 그 당시의 실제 상황을 상상하고 복원할 수 있게 한다. 흥에 겨워 지은 시문 또한 마음 속에 감춰 놓았던 감회를 여실히 반영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공식적이 아닌 민간적인 입장,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 시각으로 바라본 일제시대 대만에서의 양국 교류 현장을 연구할 때 가장 소중하고 적합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이 연구는 1920년대에서 1930년대를 중심으로 조선의 상인들이 대만을 관광하면서 남긴 『향대기람』을 통해 그 당시 대만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양상을 복원하고 기록에 깔려 있는 의미를 찾아내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이에 1장에서 본 연구의 필요성과 한계를 밝혔다. 2장에서는 조선 사람이 대만에 가진 인식을 소개하고 공성학 일행의 대만 방문 동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공성학이 소속된 개성상인 집단과 미쓰이(三井)회사의 정체를 밝힌 후 둘 사이의 밀착한 관계를 해명했다. 3장에서 대만의 실태를 재현하기 위해 동화적 의미를 가진 관광지와 이국적인 경치를 통해 표면적인 모습을 구성한 후 다시 그 속에서 내포된 의미를 발굴했다. 동시에 조선과 대만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문화적 연계를 찾아내 지금까지 대만과 한국의 민간교류 사이의 공백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4장에서는 연구 내용을 정리하고 남은 과제를 제출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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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재조일본인의 문학, 즉 '외지(外地) 일본어문학' 연구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식민지 조선이라는 공간에 있어서 행해진 '일본어문학' 에 대한 연구는 소설을 중심으로 대부분 산문 장르가 연구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하이쿠(俳句)와 단카(短歌)와 같은 일본전통운문장르에 대한 관심과 그 실체에 대한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이에 대한 연구 성과물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특히 단카의 경우 하이쿠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조선에 뿌리를 내려 패전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다수의 가집(歌集)과 결사를 간행, 조직하며 일본의 중앙가단에 못지않은 독자적인 조선가단을 형성해 나아갔다. 이러한 조선가단의 장기간의 활동 중에서도 본 연구는 1930대 중반~40년대 전시하의 상황 속에서 조선반도에서 생산된 '전쟁단카', 그 중에서도 전쟁의 후방에서 읊어진 '총후영(銃後詠)'을 대상으로 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937년 중일전쟁으로 본격화되는 전시체제하 모든 것이 전쟁에 동원되는 상황에서 문학역시 전쟁을 수행하는 국책문학으로 편입되며, 단카와 같은 전통운문장르 또한 전쟁문학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내지 일본 뿐 만 아니라 당시 단카 장르가 융성했던 외지 조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군국주의가 심화되고 본격화되기 이전, 재조일본인의 커뮤니티의 장(場)과 조선적인 것을 특색으로 독자적인 방향을 구축해 나아가고 있었던 조선가단은 이제 단카에 역사성과 민족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부가와 함께 국책문학으로서 편입, 변형해가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존하는 가집 중 조선에서 처음으로 간행된 전쟁단카집인 『현대조선단카집(現代朝鮮短歌集)1938』에는 조선이라는 외지에 위치한 재조일본인의 전시하의 삶과 역할을 그린 '총후영(銃後詠)'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는 전쟁을 직접적, 직접적으로 겪는 재조일본인 군상의 모습과 개개인의 역할, 서정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총후영(銃後詠)' 속에 전쟁을 적극 협력하는 조선인의 모습과 조선 가인의 전쟁에의 긍정적인 당위성을 드러낸 단카를 실음으로서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전쟁의식과 『현대조선단카집(現代朝鮮短歌集)1938』의 또 다른 의도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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