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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정"의 기원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고찰

Articles : The Origins of the Outcast, Paekjong, in the Choson Period: The Socio-Historical Perspective Reconsidered

김중섭 ( Joong Seop Kim )
  •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 동방학지 164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3년 12월
  • : 139-161(23pages)
피인용수 :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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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갖가지 차별과 억압을 겪으며 살아온 최하층의 신분 집단인 백정의 기원을 다시 살펴보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백정은 북방 이주민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집단의 역사사회학적인 상황을 살펴볼 때, 그러한 통설을 다시 검토해 필요가 있다. 우선, 그들의 선조는 고려시대 천민인 양수척, 재인, 화척으로서, 떠돌아다니며 고리버들 그릇을 제작 판매하거나 사냥을 하며 생계유지를 유지하던 빈민 집단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생활 습속이나 직업 탓으로 그들은 일반 농민들과 동떨어져 살며 다른 집단의 사람과 교류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일반 농민들과 다른 고유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대대로 특정 직업을 갖고 생계를 유지한 탓으로 그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배제되면서 일반 백성으로부터 천대당하고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 그러면서 백정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더욱 강화되는 상승 작용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을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간주하는 ‘인종화’가 자행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와 달리 15세기 중엽 이후부터 ‘이류(異類),’ ‘이종(異種),’ ‘별종(別種),’ 더 나아가 오랑캐 종족[호종, 胡種]과 같은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주류 집단과 다른 종류의 집단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선조가 북방 이주민이라는 오류가 고착되었던 것이다.
This paper explores the origins of Choson period`s outcast, paekjong, who suffered from social discrimination and suppression. They were generally understood to migrate from the area in the northern China neighbouring Korean peninsula. However, their socio-historical background shows no clear ties that they migrated from northern China. Therefore, it needs to scrutinize the socio-historical process in which they were regarded as being migrants from northern China. Their ancestors are known as the outcast groups of yangsuchok, jaein, hwachok, wandering from one place to another producing willow-baskets and hunting animals. Their lifestyle and occupations lead to social prejudice and segregation in the society where majority of the population were farmers. Over time, this reinforced social prejudice against them as an alienated race or ethnic group in Choson society. Moreover, Annals of the Choson Dynasty began to depict them as racially different from others with the expressions on them such as ‘different species,’ ‘different races,’ and ‘peculiar groups.’ These social prejudices and perception against them contributed to labelling them as an migrant group from northern China. And these also brought about social discrimination and suppression against them in the Choson society.

ECN

ECN-0102-2014-900-001522849


UCI

I410-ECN-0102-2014-900-001522849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 등재
  • : -
  • : 계간
  • : 1226-6728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54-2017
  • :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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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전통 속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친 신자유주의 경쟁논리가 초래한 공공성의 파괴이다. 사회적 빈부격차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새로운 신분사회의 도래를 걱정할 정도로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이 암울한 상황 때문에 전통 속의 공공성의 의미와 문법에 눈길이 쏠리는 것이다. 둘째, 이른바 '서구적' 근대가 과연 이 공공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회의도 전통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 일조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 탈현대 논쟁에서 표명되었던 이 회의는 오늘날 공공성의 위기와 맞물리면서 위기극복의 자원을 종교적 전통으로부터 확보하려는 포스트 세속(post-secular) 사회의 흐름으로 발전하고 있다. 셋째, 동아시아의 경우, 전통에 눈을 돌리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는데 그것이 중국의 급속한 부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의 문화적 토대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공공성의 위기에 대한 대안의 모색과 관련하여 유교적 전통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유교의 정치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유교 연구가 심성윤리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 것에 비하면 이러한 관심은 반가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시대의 위기를 풀어가려는 이러한 행보가 어디를 향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향이 '더 적은' 민주주의를 향해선 안 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눈을 돌리는 것이 어디까지나 현재의 삶을 더 풍요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제약을 가하는 것이어선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도 '더 많은 민주주의'의의 전망에서 유교 전통 속의 공공성의 문법과 의의를 검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먼저 “주희의 공(公) 개념과 유교적 공공성(公共性) 이론에 대한 연구”에서 나종석은 유럽중심주의적 사유를 벗어나 오늘의 맥락에서 유교적 사유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주희의 “공”(公) 개념에서 “연계적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오늘날의 공공성의 위기와 관련하여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밝힌다. 다른 한편 백민정은 “조선 지식인의 王政論과 정치적 公共性”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의 中華論은 다름 아니라 箕子朝鮮(古朝鮮)에서 수천 년 간 내려온 유교사회의 도덕원리인 왕도를 실현하는 王政論임을 밝히고, 기자조선과 중화주의에 대한 조선시대 지식인의 논쟁을 검토함으로써 조선 정치의 公共性을 재조명한다. “유교적 공공성의 문법과 그 민주주의적 함의”에서 박영도는 유교적 계몽정치와 관련하여 유교적 공공성의 문법을 제시하고, 이것이 오늘의 공공성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규범적 방향과 어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이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천리(天理) 개념의 재구성이, 유교적 계몽의 변증법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우리 시대가 전통적 사상 자원이 갖는 현재적 의의에 대한 재조명을 각별하게 요구하는 시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특집 또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하여, 유교 전통 속의 공공성의 특성과 문법을 해명하고, 거기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공공성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의 자원들을 포착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유교 사상에 대한 재조명이 단순히 유교적 전통이 오늘의 문제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한정되진 않는다. 거꾸로 우리 시대의 과제가 유교 전통에 대해 어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재구성을 요구하는지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유교 전통과 우리 시대의 관계는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전통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기존의 병리적인 두 가지 태도, 즉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입장과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두 가지 병리적 태도를 모두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적 재구성의 태도야말로 그 동안 굴절되어 이해된 전통적 사유에 온당하게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길을 넓혀가는 데 이번 기획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특집 : 유교 전통 속의 공공성: 그 특징과 현재적 함의 ; 주희의 공(公) 개념과 유교적 공공성(公共性) 이론에 대한 연구

저자 : 나종석 ( Jong Seok Na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3-2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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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전유되어 온 동아시아의 과거를 달리 사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은 동아시아의 과거를 탈식민화(decolonialize)하려는 작업을 사상사 연구에서 시도하려는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 필자는 주희의 公 개념을 중심으로 성리학적 공공성 이론의 성격을 탐구하면서 이 이론이 지니는 의미를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우선 주자학이 성립되기 이전에 전통적으로 公 개념이 어떻게 이해되었는 지를 설명한다(Ⅰ). 그리고 주희의 주자학의 성격을 간단하게 해명하면서 그의 公 이론의 혁신성을 공생적·연계적(correlative) 공공성 이론으로 해석하고자 한다(Ⅱ). 이어서 주희의 公 이론이 주자학을 포함하여 유학의 공사관에 대해 제기된 여러 비판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옹호될 수 있는가를 검토해 볼 것이다(Ⅲ). 마지막으로 주희의 公 이론이 위기에 처한 공공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오늘날 어떤 현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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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의 유교 지식인이 주장한 정치철학적 관점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정치적 공공성의 맥락이 존재했는지 분석한 글이다. 조선시대 유교 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 '公' 개념에 있다고 보면서, 公道, 公論, 公義, 公私論爭 등 조선 초기부터 중국 주자학과의 연관 속에서 공적인 정치질서를 추구했던 조선 지식인들의 철학적 입장을 분석 했다.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시대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王道政治[王政]' 혹은 '仁政'을 구현하고자 했던 조선 지식인의 보편적인 정치적 욕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왕도정치 혹은 왕정이란, 그 연원을 『서경』 「홍범」에 등장하는 '無偏無黨'한 王道 및 皇極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洪範九疇'라는 정치운영의 대원칙을 전수한 사람이 은나라 말기의 箕子라고 보았기에 '箕子洪範說'이 왕도정치론에서 중요하게 거론되었다. 조선 지식인들이 가장 고급하고 발달한 유교문명으로 간주했던 '中華' 혹은 '中國'의 의미 역시 洪範說을 통해 조선에 전수된 人倫과 禮樂의 원리를 가리켰다. 결과적으로 볼 때, 箕子朝鮮(古朝鮮)에서 수천 년 간 내려온 유교 사회의 도덕원리를 구현하여 가장 公的이고 公平한 정치질서[王道]를 실현하는 것을 王政이라고 이해했고, 王政이 구현된 곳을 곧 中原, 中國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의 中華論은 17세기 이후 다양한 의미로 전개되었지만, 하나의 일관된 관점을 찾으면 王政論으로 귀결된다. 왕정을 조선 땅에서 직접 실현하려고 했던 18세기 이후 유교 지식인들에게도 유사한 문제의식이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箕子朝鮮과 中華主義에 대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논쟁이, 理想的 정치체제와 운영방법을 논한 그들의 王政論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 이것을 통해 조선 정치의 公共性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4특집 : 유교 전통 속의 공공성: 그 특징과 현재적 함의 ; 유교적 공공성의 문법과 그 민주주의적 함의

저자 : 박영도 ( Young Do Park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65-8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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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부작용과 중국의 부상이 맞물리면서 민주주의와 유교의 관계가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송대 성리학에 기반을 둔 유교적 공공성의 문법에 담긴 민주주의적 함의를 재구성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먼저 1) 유교적 계몽정치의 이념과 연계하여 유교적 공공성의 문법을 제시하고, 2) 이 문법이 갖는 민주적 함의를 오늘의 공공성 위기와 관련하여 지적한다. 이 함의를 오늘의 맥락에서 현실화할 수 있기 위해선 이 문법에 대한 비판적 재구성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하여 3) 유교적 공적 숙의와 엘리트주의의 연관을 비판하고 4) 천리(天理), 즉 성리학적 이성 개념에 대한 비판적 재구성의 길을 검토할 것이다. 이어서 5) 이 비판적 재구성의 경로가 유교적 사유와 유교적 공공성의 문법 속에 유교적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형태로 담겨 있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고, 마지막으로 6) 이 변증법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자유의 역설을 넘어서는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지적하겠다.

5『삼국사기(三國史記)』옥사조(屋舍條)에 보이는 당와(唐瓦)의 실체 -문헌적 접근-

저자 : 이동주 ( Dong Joo Lee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85-10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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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屋舍條의 주된 골자는 사치의 규제이다. 그런데 규제 품목 중 唐瓦가 보인다. 이기와는 신라의 최고위 귀족인 진골조차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그 실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였다. 지금까지 축적된 당와의 실체에 대한 견해는 막새기와설, 암막새설, 녹유기와설 등이 제기된 상태이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당와의 실체에 대해 상당부분 근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본고는 여기에 덧붙여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의 문헌에 散見되는 당와를 정리해 보았다. 宋의 宋敏求가 찬한 『長安志』에는 元의 李好文이 보강한『長安志圖』가 입전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 당와라는 용례가 확인되어 주목된다. 여기에는 당와가 묘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녹유기와와 흡사하다. 녹유기와는 일반기와와는 달리 저화도의 유약을 기와에 발라 재벌구이를 통해 생산된다. 표면이 유리질이므로 건물의 지붕에 올려졌을 때 햇빛에 반사되어 건물의 경관이 한층 더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이 기와는 만들기가 번잡하고, 공력이 일반 기와보다 많이 들기 때문에 사치스런 건축부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한 흐름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확인된다. 특히 조선시대의 문헌인 『朝鮮王朝實錄』에는 사치풍조를 일소하는 차원에서 당와의 제작을 만류하는 기사가 보인다. 이 때도 당와가 사치와 관련된 건축부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흐름은 『삼국사기』 옥사조의 규제 조항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밖에도 『承政院日記』, 『萬機要覽』 등의 문헌에서도 그 명칭이 확인된다. 문헌의 여러 정황을 조합하면 당와의 실체는 녹유기와가 분명해 보인다. 다만 녹유기와란 명칭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아 그대로 사용하기에 위화감이 없지 않으나, 학계의 소통 차원에서 그대로 존중하고자 한다.

6고려시대 토지소유의 욕망과 절제: 토지론(土地論)을 중심으로

저자 : 박경안 ( Gyong Ahn Park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107-13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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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소유의 오랜 관행과 더불어, 王土意識은 농본주의에 토대를 둔 유교적 정치이념에 따라 與民共利의 원칙과 궤를 같이 하면서 樵牧, 給地, 給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고려왕조는 원칙적으로 山林川澤의 私占을 막고 있었으나 왕도정치의 이념에 부합될 경우에 量給과정을 거쳐 折收를 허용하고 있었다. 절수에 의한 토지소유 기회가 제한된 가운데 豪强을 중심으로 개간 또는 탈점이 진행되었으나, 修己治人을 지향하는 벼슬아치와 業農으로서의 존재는 병존할 수 없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왕도정치의 이상에 의한 仁政의 실시는 올바른 經界를 담보한 것으로서, 경계는 量田制賦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기준은 단순한 지리적 境界를 넘어 正과 不正의 도덕적 관점을 통한 '分田制祿'의 원칙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李齊賢은 고려의 田制가 君子에 대한 世祿의 의미는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나 小人(농민)을 배려하는 제도적 장치는 당초부터 없었음을 비판 하였으며, 이후 人欲에 의한 토지겸병이 확대되고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公'과 '私'의 문제로 발전하였다. 한편 여말에 이르러, 私田의 폐해로 지적된, 田民의 奪占과 그로 인한 국가 조세수입의 감소, 仕者世祿의 부족 나아가 농민몰락의 저변에는 齊民지배의 틀을 벗어난 불법적, 권력형 농장이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趙浚은 '至公分授之田'이었던 사전이 私有化된 것은 奸兇之黨, 奸猾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鄭道傳은 自耕을 명분으로 한 力多者, 勢强者에 의한 借耕의 폐해로 판단하였다. 이처럼 당시 '公, 私'의 개념은 주자성 리학에서의 天理와 人欲의 대립이라고 하는 도덕적 관점이 내재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天人論에 의거하여 자연재해를 天譴으로 인식하던 儒者들은 人欲을 절제하여 '至公'에 의한 正經界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테면 李穡은 겸병문제도 祖宗田制의 회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 반면 조준을 비롯한 역성혁명세력은 조종전제가 이미 무너졌으므로 人欲의 근거인 私田의 혁파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후자들 가운데서도 정도전은 公收된 사전의 국가적 관리를 통해 '至公'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 반면에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사전의 재분배를 통한 均田意識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결국 군자와 더불어 소인에 대한 우대를 통해 대토지지배를 억제하고자 했던 이제현, 정도전의 구상은 무산되었다. 이에 따라 여말의 節制論은 賦稅적 측면에서 均稅에 초점을 맞춘 사전 개혁에 그치게 되었고, 소유권의 제약을 통한 개혁이 좌절되면서 山林川澤의 점유는 점차 관행화되어 갔으며 그 결과 自耕을 바탕으로 한 民田型 농장의 발전이 있었다.

7"조선시대 백정"의 기원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고찰

저자 : 김중섭 ( Joong Seop Kim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139-16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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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갖가지 차별과 억압을 겪으며 살아온 최하층의 신분 집단인 백정의 기원을 다시 살펴보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백정은 북방 이주민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집단의 역사사회학적인 상황을 살펴볼 때, 그러한 통설을 다시 검토해 필요가 있다. 우선, 그들의 선조는 고려시대 천민인 양수척, 재인, 화척으로서, 떠돌아다니며 고리버들 그릇을 제작 판매하거나 사냥을 하며 생계유지를 유지하던 빈민 집단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생활 습속이나 직업 탓으로 그들은 일반 농민들과 동떨어져 살며 다른 집단의 사람과 교류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일반 농민들과 다른 고유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대대로 특정 직업을 갖고 생계를 유지한 탓으로 그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배제되면서 일반 백성으로부터 천대당하고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 그러면서 백정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더욱 강화되는 상승 작용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을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간주하는 '인종화'가 자행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와 달리 15세기 중엽 이후부터 '이류(異類),' '이종(異種),' '별종(別種),' 더 나아가 오랑캐 종족[호종, 胡種]과 같은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주류 집단과 다른 종류의 집단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선조가 북방 이주민이라는 오류가 고착되었던 것이다.

8애국계몽기 민족도교와 고소설: 신자료 <몽견제석(夢見帝釋)>의 소개를 더하여

저자 : 김수연 ( Soo Youn Kim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163-19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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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하버드 옌칭도서관 소재 <몽견제석(夢見帝釋)>의 소개와 더불어, 애국계몽기 몽견류 소설의 하나로 자리할 이 작품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미에 대한 고찰을 목표로 한다. <몽견제석>은 53장의 한문필사본으로, 본문에 앞서 '일신(一神)'이 다스리는 나라의 '관직도(官職圖)'가 나온다. 관직도 상의 직책은 한반도 소재 59개의 산들이 맡고 있다. 작품은 단군신화를 몽유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그 안에서 민족종교와 민간도교를 서사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민족종교 중에는 특히 대종교(大倧敎)와의 관련성이 두드러지는데, 대종교 경전에서 확인되는 특정 고자(古字)와 표현을 사용하고 핵심 경전의 전체내용을 서사의 일부로 수용했다. 여기에 민간 도교적 상상력, 특히 채약(採藥) 화소와 산신신앙 및 도교적 공간에 대한 관심을 부각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천상백옥경(天上白玉京)에 대한 기문(記文)을 12지(支)에 따른 공간배치도의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민족종교적 사상과 민간도교의 상상력이 소설 안에서 서사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소설은 새로운 사유 즉 민족도교적 시대고민과 대응방식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는 장이 된다. 애국 계몽기는 시대적 특수성으로 인해 각계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철학적 관점에 기대 시대를 진단하고 고민했다. <몽견제석>과 같은 몽견류 소설인 <몽견제갈량>과 <몽배금태조>를 비롯, 이들과 마찬가지로 몽유서사를 차용한 <금수회의록>, <지구성미래몽>, <꿈하늘> 등이 유불도와 기독교 그리고 신흥민족종교의 입장에서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모색한 작품들이다. <몽견제석>은 특수한 시대적 문학사적 맥락에서 우리민족의 가장 오래고 주체적 사유인 도교의 입장에서 당대에 대한 인식을 담아낸 담론서사라는 점, 그리고 소설이 시대의 전환기에 새로운 사유를 형성하고 개진하는 담론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으로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91920∼30년대 민족문화운동(民族文化運動)과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저자 : 김도형 ( Do Hyung Kim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191-22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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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일제 하 민족운동에서는 서양의 근대문명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정신적 차원에서 민족문화를 계승하여 이와 결합하였다. 민족문화운동은 이념을 달리하는 민족운동 진영에서 각각 제기되었다. 국외에서는 박은식, 신채호 등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국혼론, 국수론이 형성되었고, 국내에서는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전개된 부르주 아세력의 문화운동에서도 민족문화운동을 통한 신문화 건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사회주의 진영에서도 민족문화를 등한시하지 않았다. 연희전문학교에서는 민족운동의 민족문화론을 교육 공간에서 하나로 결합하여 학풍으로 형성하였다. 연희전문의 학풍은 1930년대 초반, “東西古近 思想의 和衷”으로 표명되었다. 서양의 근대학문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동양, 조선의 고유사상과 화충, 융합하였던 것이다. 이런 학풍은 한국의 문화적 능력을 인정한 선교사를 보호막으로 하여, 정인보, 최현배, 백낙준 등이 주도 하였고, 사회주의 역사학자 백남운도 가세하였다. 그들은 연전에서 조선어, 조선 문학, 조선역사를 가르쳐 그 속에 담긴 '얼'을 갖게 하였고, 또한 교외의 민족문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다. 특히 신간회 해소 이후 활동 공간이 축소된 부르주아세력의 신문화 운동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다. '화충'에 의한 민족문화연구의 전통은 일제 말 민족주의를 새롭게 모색하는 발판이 되었고, 또한 해방 후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학문적 근거가 되었다.

10식민지 섹슈얼리티와 검열 -"도색(桃色)"과 "적색", 두 가지 레드 문화의 식민지적 정체성

저자 : 이혜령 ( Hye Ryoung Lee )

발행기관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간행물 : 동방학지 164권 0호 발행 연도 : 2013 페이지 : pp. 229-25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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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대, 그리고 식민자들의 이주와 함께 추진된 식민화가 식민지 원주민에게 문화적 충격을 준 것 중 하나는 공창의 도입 등 새로운 형태의 성 산업의 이식과 확대였다. 매춘을 핵심으로 한 성 산업은 식민자들만 아니라 조선인들의 참여가 권장될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그 심화의 과정은 생활세계를 변형시켰다. 그렇다고 인쇄매체나 음반, 공연미디어 등을 통한 식민지 원주민들의 섹슈얼리티의 표현이 장려된 것은 아니다. 섹슈얼리티의 표현은 사회주의 등 급진사상의 표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억제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구상되었다. 이 글은 우선 식민지 섹슈얼리티 표현의 양상을 검열기록인 『조선출판경찰월보』와 『조선총독부금지단행본목록』을 통해 살피고자 했다.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표현에 대한 제한에 중점을 둔 풍속괴란 검열이 본격화된 것은 『조선출판경찰월보』가 발행될 시점인 1928년 말부터였으며, 1930년대 전반기 풍속괴란을 이유로 행정처분을 받은 출판물이 급증한다. 그 출판물의 95% 이상이 일본에서 들어온 출판물이었다. 이 시기는 소위 일본의 에로-그로-넌센스 문화가 식민지 조선에도 『별건곤』과 같은 매체를 통해 유입되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데 『신생활』, 『개벽』의 폐간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사회주의 운동이 급격히 지하조직을 매개한 대중운동으로 전격적으로 전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즉, 식민지에서 에로-그로 문화는 치안유지법 위반자가 급증하던 대중운동의 시대와도 동시대 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맑스 보이가 에로-그로 문화의 세례를 통해 핑크보이로 전환하거나, 에로-그로 문화가 맑스 보이들의 전향의 표지일 수 없었던 식민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치안방해에 의해 처분된 출판물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식민지 검열의 추이는 식민지 조선인들은 반제국주의적 출판물의 생산자일 수는 있었어도 근대적 인쇄기술에 기반한 포르노그라피의 적극적 생산자는 아니었음을 말한다. 즉 사회주의자를 의미하는 '아카'(あか,赤)가 되는 것보다, 성적 쾌락의 탐닉을 의미하는 '핑크', 모모이로(桃色)가 되는 것이, 아니 더 적확하게는 핑크의 삶을 그 자체로 의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표현과 서사의 창출은 더욱 어려웠다. 식민지에서 에로티즘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성적 표현은 민족주의적 대의나 식민지적 근대의 규범의 심판이나 징벌을 수반할 때만 서사화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곽과 카페에서의 에로-그로의 생활을 성불능이란 메타포로 서사화한 이상이 동경(東京)의 거리에서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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