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발생한 박정희 저격사건은 한일관계에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였다. 본 연구는 박정희 저격사건을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한 국제구조의 제약과 국내정치의 영향의 성격을 밝히고자 한다. 저격사건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증폭에 대한 국제구조의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냉전체제의 국제구조는 저격사건의 한일관계가 결정적인 선을 넘어 악화되는 것을 제약하는 역할을 하였다. 박정희 저격사건의 한일 갈등의 심화에는 국내 정치적 변수가 보다 크게 영향을 주었다. 유신의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반일민족주의라는 대중정서의 지지까지 확보했던 박정희 정권은 국가 권위의 관점으로 일본을 상대하는 데에 대해 국내 정치적으로 강렬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에, 붕괴의 위기감 속에서 정권 유지에 급급하던 다나카 정권은 정국의 관점에서 저격사건을 대했다. 다나카 정권은 정국의 관점에서 야당세력으로부터 독재정권과의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의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았고 저격사건에 대해 법리적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저격사건을 대처하는 양국 간의 국내정치적 맥락의 조의 제약 속에 미국의 비공식적 개입으로 봉합되게 된다.
The park Chung-Hee assassination attempt incident, happened at August 15, 1974, produced serious crisis between Korea and Japan. This article tries to reveal constraints of international structure and influences of domestic politics on this incident. The domestic political contexts of Korea and Japan influenced characteristics of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Korea, under the authoritarian Yushin system, dealt with Japan, Which faced a possible collapse of the cabinet itself, could not make diplomatic determination and just sustained a view of juridical principle, because there were serious criticism over park`s Yushin system in Japan. However, the Cold War regime constrained the development of a conflict between two countries into a catastrophe, by the intervention of the United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