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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韓國)의 문화(文化) : 치매 노인을 둔 가족의 부양의식과 부양부담이 가족관계 변화에 미치는 영향

Culture : A Study on The Influences of the Filial Responsibility Attitude and Care Burden of the Family with the Elderly with Dementia upon the Changes of Family Relation

김재엽 ( Jae Yop Kim ) , 최장원 ( Jang Won Choi )
  • : 한국사상문화학회
  •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1년 12월
  • : 495-525(31pages)
피인용수 : 25건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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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치매노인에 대한 부양부담과 갈등이 가족관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는 향후 치매노인 가족의 부양부담과 소진을 경감 내지 해소시켜주기 위한 치매 노인복지정책에 많은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부양의식이 부양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가족관계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 지원에 대한 부양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사회활동 부양 부담 수준이 높아진다고 나타났다. 둘째, 도구적 지원에 대한 부양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정서적 부양부담과 재정적 부양 부담은 낮아지는 결과가 보였다. 셋째, 신체적 부담이 높을수록 신체적 소진이, 사회활동 부담이 높을수록 정서적 소진이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정서적 부담이 높을수록 신체적·정서적 소진이 높아졌다. 이러한 신체적·정서적 소진이 높을수록 가족관계 변하에는 악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었다.
This research was to analyze how the care burden and conflict with the elderly with dementia would affect the changes of family relations. For this analysis, we intended to figure out how the care awareness would have the effects upon the care burden and finally how it would have the effects on the changes of family relations. As the results of analysis, it was shown that the higher the level of the care awareness on the economic support was, the higher the level of the care burden on the social activite s became, and that the higher the level of the care awareness on the instrumental support was, the lower the emotional care burden and the financial support burden became. The higher the physical burden was, the higher the physical exhaustion became, and the higher the burden of social activities was, the higher the emotional exhaustion became, and the higher the emotional burden was, the higher the physical and emotional exhaustion became. It could be known that as the physical·emotional exhaustion got higher, it had bad effects upon the changers of family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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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2-150-003290064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 등재
  • : -
  • : 연5회
  • : 1229-1749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8-2018
  • :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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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이색(李穡)과 김종직(金宗直)의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와 「관어대부(觀魚臺賦)」 고(攷)

저자 : 이구의 ( Ku Eui Le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7-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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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목은 이색과 점필재 김종직의 『관어대부』를 중심으로 그 생성 배경과 형식, 의미, 영향 관계를 논술한 것으로, 목은은 평정심에서 이 「관어대부」를 지었다. 따라서 그가 사물을 보는 것도 순수하였다. 그의 부 전체를 흐르고 있는 정조(情調)도 긴박하거나 긴장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점필재는 그의 마음이 긴박할 때 이 부를 지었다. 목은과 점필재의 부는 비록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의 구식을 따오고 있지만, 이 두 부는 변려문(騈儷文)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고문(古文)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목은이 이 「관어대부」를 언제 지었는지는 상고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의 만년에 이 부(賦)를 지은 것 같다. 목은의 부는 평상심을 가지고 자연을 관조하고 있다. 인생의 연륜이 쌓인 뒤의 너그러움이 이 부에 녹아 있다. 반면 점필재의 것은 그렇지 못하다. 그가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아직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을 때 이 부를 지었다. 이 두 부의 공통점은 솔성(率性)을 도(道)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용」을 엮은 자사(子思)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들의 정신은 바로 천인합일사상이다. 목은은 역물(役物)하면서 부를 지었지만, 점필재는 역어물(役於物) 상태에서 이 부를 지었다. 이점에서 점필재의 부는 목은의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점필재 부의 한계이다. 초기에는 점필재와 사가정, 즉 도학파와 사장파에 속하는 문인이 목은의 「관어대부」를 모범으로 하여 자신들의 부를 지었다. 뒤로 가면 주로 안동출신의 문인들이 이 부를 많이 모방하였는데, 그것은 첫째 영남 지방의 선비들은 목은을 종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둘째는 영해를 가 본 사람들 또는 영해에서 과장(科場)을 열 때도 목은의 「관어대부」를 표본으로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에서 소동파의 「적벽부」를 추숭한 것과 같다. 이것이 이 부의 문학사적 위상이다.

2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순흥 금성단(錦城壇) 관련 시문(詩文)에 나타난 충절의식

저자 : 이정화 ( Jeong Hwa Le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39-6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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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錦城大君)이 이치(籬置)되어 살아갈 때 순흥 지역의 선비들은 그와 뜻을 같이 하여 단종 복위 의거를 도모하였다. 이로 인하여 순흥부는 "반역향(反逆鄕)"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관아와 민가는 모두 파괴되었다. 심지어 멸문(滅門)의 화를 입은 가문도 발생하였다. 순흥 땅은 인근 고을에 분속되었다가 차후에 도호부로 복설되는데, 이때부터 10년(1693년)이 지나서 금성단을 조성하게 되었다. 금성단은 단종 복위 의거에 연루되어 순절(殉節)한 영령들을 위해 제사지내는 공간이다. 1719년에 부사 이명희가 1차 개수를 한 이후 금성단은 1742년에 2차 개수를 마치고 봄가을마다 제향이 이루어짐으로써, 충절을 표상하는 유교 성지(聖地)가 되었다. 금성대군은 「제격의도(題擊衣圖)」 시를 지어 만 번 죽더라도 군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곧 "충(忠)"의 실천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기채우담득기(寄蔡雩潭得奇)」 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삶을 흠모한 금성대군의 작품이다. 금성대군에게 백이, 숙제는 시대를 뛰어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준 것이 이 시의 핵심이다. 「순흥적중견매유감(順興謫中見梅有感)」 시는 신하의 마음을 매화에 감정이입하고 있는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순흥의 선비문화는 죽계를 중심으로 하여 고려에서 조선 그리고 지금 이 시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죽계의 "풍류"와 안향의 "학문" 정신이 고려시대 순흥 지역 선비문화의 핵심이고, 소수서원의 "학문" 정신과 금성단의 "충절" 의식이 조화를 이룬 것이 조선시대 순흥 지역 선비문화의 핵심이며, "제향(祭享)"을 통한 유교문화의 계승 및 충절 지사(志士)에 대한 "현창(顯彰)"이 오늘날 순흥 지역 선비문화의 핵심이다. 현재 이 지역 선비문화는 풍류보다는 충절로써 더욱 더 견고해진 것이어서 순흥 선비문화의 정신적 뿌리는 바로 금성단에 있다고 하겠다. 참판 김진상이 지은 「금성단유감(錦城壇有感)」 시는 금성단에 참배하는 감회를 시각, 청각, 그리고 촉각의 세 심상에 담아 표출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두견이는 단종의 시에 등장하는 자규(子規)와 심정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시의 공간이 바로 단종 복위 의거로 순절한 영령의 넋을 위무하며 그들의 충절을 잊지 않고 봄가을마다 제향(祭享)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조덕상의 「등금성단유감(登錦城壇有感)」 시는 살육의 현장이었던 죽계만이 변함없이 있을 뿐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재로 변해버린 폐순흥(廢順興)을 시화하였다. 또한 단종 및 그 충신들의 복권을 보며 기쁨과 감개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음을 토로한 것이다. "춘래고목(春回古木)"은 압각수(鴨脚樹)가 다시 살아난 것을 비유한 시어이다. 압각수는 금성대군을 위시한 단종 충신들의 충절을 상징하는 신목(神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금성단은 금성대군, 이보흠, 그리고 지사들의 충절이 서린 성지(聖地)이다.

3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수회록(壽會錄) 고찰(考察)

저자 : 김미선 ( Mi Seon Kim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63-8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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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고에서는 『壽會錄』을 고찰하였다. 먼저 韓國漢文學史에서 차지하는 범위를 모색하기 위하여 『壽會錄』의 형성 배경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역사적인 형성배경으로는 晉나라의 竹林七賢과 당나라의 白居易가 香山九老會에서 『壽會錄』의 耆老會가 結社된 배경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기로회를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전기 최당이 致仕를 하고 耆老會 耆英會를 조직한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신난을 맞아 죽림칠현을 모방한 해좌칠현이 구성되어 산림에 은둔하며 詩壇을 형성 한 것을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시단은 조선시대로 와서 끊임없는 士禍를 겪으며 선비들이 落鄕하여 남도지역에서 면앙정을 중심으로 歌壇을 형성하여 삼월삼일 구월구일의 重陽節에 모여 시회를 하며 한적한 삶을 누린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충주지역에서도 致仕한 선비들의 모임이 있어 중양절에 시회를 열고 벗들이 모여 詩酒를 함께한 기로회의 배경을 『壽會錄』을 토대로 고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기로회의 작품들을 통해 문장가들의 만년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연구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로회 시단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왔는데 『壽會錄』을 필자가 연구 자료로 발굴하게 됨 점이 충주지역의 기로회의 풍류와 삶을 고찰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壽會錄』에 수록된 작품에서는 풍부한 고사를 用事하여 전형적인 儒家的 선비의 인생관 및 학문세계를 고찰 할 수 있었다. 이에 『壽會錄』에 수록 되어 있는 작품의 내용적 특징으로는 經書 및 唐詩 등에서 풍부한 고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본고는 『壽會錄』을 통하여 우리나라 耆老會의 시문학 형성과정과 忠淸北道 忠州地域 耆老會의 漢詩文學의 형성을 살펴 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4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춘원(春園)의 시조의 자연율(自然律)과 의적(意的) 구성(構成)에 관한 고찰(考察)

저자 : 송정란 ( Jeong Ran So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87-11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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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방대한 양의 문학적 자산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그러나 400여 편의 시와 140여 편에 이르는 시조에 대한 평가는 소홀한 면이 있으며, 특히 시조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미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춘원은 1928년 동아일보에 게재한 「시조의 자연율」과 「시조의 의적 구성」을 통해 그의 시조론을 펼쳤다. 이 시기는 시조부흥에 대한 찬반 논쟁이 대립했던 때로, 시조의 전통성과 문학성을 정립하기 위한 이론적 모색이 활발하게 일어난 때였다. 춘원은 「시조의 자연율」에서 시조의 기본형을 초장 3/4/4/4, 중장 3/4/4/4, 종장 3/5/4/3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변화하는 5가지의 형식을 시조의 변체(變體)로 간주하고, 이것을 시조의 음악적 형식미라고 했다. <변체 제1>은 초장과 중장의 제3구를 3음절로 하는 것, <변체 제2>는 초장 제 1구를 2음절로 하는 것. <변체 제3>은 초장 제2구를 5음절로 하는 것, <변체 제4>는 중장 제1구와 제2구를 각각 (2/5) (2/4) (3/3) (2/3)음절로 하는 것, <변체 제5>는 종장 제2구를 6~7음절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변하는 형태로서, 초장과 중장의 제4구는 4음절이어야 하며, 종장의 제1구는 3음절, 제3구는 4음절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시조의 의적 구성」에서 춘원은 시조의 초·중·종장이 각각 독립된 내용이면서, 중장은 초장에 대한 발전적인 내용으로 관련을 맺고, 종장은 초·중장에 대한 발전적 내용인 동시에 결말을 맺고 있어, 3장 전체가 통일성 있는 내용적 전개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춘원은 근대적인 조선 시가를 세우겠다는 이상과는 달리 여기(餘技)로서의 시조만 창작하다가 친일(親日)로 돌아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당시 시조부흥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문인과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조론이 고시조에서 현대시조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단계에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5한국사상(韓國思想)(문학(文學)) : 침범과 분열의 파국 -김동인 『감자』의 대상관계론적 해석-

저자 : 신정인 ( Jeong In Shi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111-13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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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김동인 『감자』의 비극에 나타난 심리적 요체를 정신분석적 대상관계론의 관점에서 규명하는 것이다. 『감자』는 일제 침탈과 함께 가속화된 근대 조선을 배경으로, 농민에서 토막민으로 전락한 복녀가 매춘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다가 왕서방의 정부(情婦)가 되고, 그의 손에 죽게 되는 비극을 그린 단편이다. 불안을 몰고 오는 시대·사회적 변화와 인간관계의 왜곡, 그로 인한 자아의 방어에 주목하여, 본 연구는 존재의 연속성을 깨는 침범과 분열 그리고 자아의 약점을 복녀의 심리적 특징으로 규정하였다. 비극적 최후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복녀의 정체감 혼돈과 성적 타락, 가족적 연대감의 해체는 근대로의 이행과 사회적 격변이라는 침범 그리고 침범에 대한 방어인 분열이 초래한 현상이었다. 제국주의가 몰고 온 타락한 자본주의는 대상(object)을 ``돈``과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야만적 바람이었으며, 이 야만적 침범에 적응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가 억압과 분열이었다.

6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우리 상고대의 국통(國統)의 계승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익수 ( Ik Soo Kim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133-15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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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고대에 대하여는 대체로 국민들이 별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우리의 역사교육에서 소외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국, 배달국, 고조선에 대하여는 전연 이해 못하는 국민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의 국통(國統)과 국교(國敎)를 지키기에 평생을 몸바쳐 온 민족사학자들과 역사의식이 확고한 수많은 무명(無名)의 애국적 투혼을 갖고 살아 온 겨레들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국통(國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역사정신의 맥과 법통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한민족사의 국통은 한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북부여(원시 고구려), 고구려(백제, 전신라, 가야) 남북국시대(대진국, 후신라), 고려, 조선, 임시정부,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9천년 간 이어져서 내려 온 정통 종주국의 대통(大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환인 7대, 3301년간, 배달국 한웅 18대1565년 간, 고조선47대 2096년 간의 역사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인류의 역사는 무혈(無血)의 역사전쟁이 게속되고 현대는 문화경쟁력이 곧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기에 동북아에서의 국권(國權)과 위상을 회복하고 효(孝)문화의 연원을 찾다보면 우리가 유, 불, 도(道)의 원두처(原頭處)인 신교(神敎)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아룰러 학교교육과 평민들의 평생교육의 진원(震源)도 알 게 된다. 여하튼 본 연구에서는 우선 중점을 상고대의 국통(國統)을 바로 세우는 일 에 중점을 두어 세계 속에 한국의 국가위상을 높이고 세계제일의 문화민족임을 인식시키려는 것이 본연구의 목적이다.

7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구봉 송익필의 예학사상

저자 : 한기범 ( Ki Bum Ha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159-19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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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예학은 그의 『가례주설家禮註說』과 『예문답』으로 대변된다. 전자는 『주자가례』에 대한 본격적인 주석서로써 조선 최초로 시도된 것이고, 후자는 속례俗禮나 변례變禮에 대하여 문답한 것으로 기호예학에서의 최초의 예문답서라는 위상을 지닌다. 이들 예서들은 그의 적전인 김장생이 『가례집람』과 『의례문해』를 저술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구봉예학의 사상적 기반은 직사상直思想과 명분론적 정통론이다. 구봉은 직直을 ``천지사이에 정정당당하며 상하로 다 통하는 바른 이치``라 하고, 직심直心과 직신直身을 예행禮行의 기본원리로 인식하였다. 구봉의 직사상은 김장생을 거쳐 송시열에게로 이어져 기호예학파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구봉은 또한 정명正名을 예학의 요체라고 인식하고, 예제에서 통統의 수립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정통사상은 연원적으로 주공周公 종법宗法에 직결된다. 구봉예학의 성격은 『가례』 중심적 예학, 변례에 대한 고례적 검증, 통統을 중시한 명분론적 예학으로 요약된다. 구봉은 『가례』를 도통적 예서禮書로 인정하고, 이것을 고례로써 보완하고자 하였고, 따라서 변례나 속례의 수용에는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이것은 제례祭禮에서의 서모庶母의 위차가 예서에 없다 하여 이를 철저히 부정한 데에서 입증된다. 또한 구봉은 종법적 통의 질서를 중시하였다. 그는 의례에서의 첩妾의 지위는 부정하면서도 첩자妾子의 지위는 적자에 필적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적서嫡庶에 상관없이 부계父系를 따라 통서를 세우려는 예인식이며, 서얼허통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그 당위성을 예설적 논리로 대응한 것이었다.

8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16세기 왕비(王妃) 가문(家門)의 변천(變遷)과 성격(性格)

저자 : 양웅렬 ( Woong Ryeol Ya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191-21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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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6세기 왕비가문의 변천과 성격을 무오·갑자, 기묘, 을사사화와 선조 즉위 등 중요한 정치 상황에서 본가, 처가, 외가의 친인척들과의 연혼관계 속에서 살펴본 것이다. 중종반정 이후 훈척 가문에서 왕비를 배출하였다. 연산군대 두 차례 사화로 사림들은 화를 입었고, 갑자사화 때는 훈척세력도 적지 않은 화를 입게 되어 심온의 외손들인 박원종 등 훈척세력이 주도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중종대 이후에도 훈척 세력에서 왕비를 배출하고 있었다. 중종대 당시 정현왕후가 대비로 계신가운데, 대비와 같은 파평윤씨 가문에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배출되고 있었다. 아울러 이런 분위기에서 세조찬탈 공신인 박강의 손자인 반남박씨 박용의 딸 인성왕후가 인종비로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파평윤씨는 중종대 후반 대윤, 소윤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되다가 을사사화와 문정왕후의 사후 몰락하는 등 훈척 왕비 가문은 밀려나고 있었다. 한편 세종대 심온옥사로 몰락하였던 청송심씨 가문은 세조대 다시 등용되어 청주한씨와 파평윤씨가 주도하는 가운데에서도 성종대 등장한 사림세력과 연계를 가지며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다 청송심씨는 연산군대 갑자사화로 사림세력과 함께 크게 화를 입었지만 중종반정 이후 사림과 교류하며 다시 성장하였으며, 중종대 후반 대군부인(명종비)을 배출하며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명종대 이후 청송심씨는 사림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사림들의 정계 진출을 돕기도 하고, 그들을 보호하기도 하며 당시를 주도하였다. 이후 사림으로부터 受學한 선조가 즉위한 이후 반남박씨, 연안김씨 등 사림가문에서 왕비를 배출하고 있었다.

9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일우(一友) 구영필(具榮泌)(1891~1926)의 생애(生涯)와 독립운동(獨立運動)

저자 : 윤종일 ( Jong Il Yoon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221-268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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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그동안 독립운동사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던 독립운동가 구영필의 행적과 활동, 그리고 운동사적 의의를 발굴 조명하는데 있다. 구영필은 국권을 상실한 1910년대 초반 ``一合社`` 조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정서, 의열단 등에 참여하였으며, 1920년대부터는 북만주의 영고탑 일대에서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 시기 그의 독립구상은 크게 문화·교육과 식산·흥업으로 나누어졌으며, 무장 항일투쟁과는 달리 준비론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는 1920년대 무장항일투쟁이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략으로서, 독립운동의 기반 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거액을 들여 황무지를 매입 개간해 조선인 이주민을 정착시켰다. 교육·언론기관을 설치하여 독립정신을 고양시키는 한편, 조선인으로서 받는 신분상의 제약을 극복하고 독립운동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 중국적으로 입적하고 자치운동을 병행하였다. 이 연구는 구영필을 중심으로 1920년대 북만주 일대 독립운동의 제양상을 검토하고, 청산리·봉오동 독립전쟁과 경신 대참변·자유시 참변 이후 무장독립운동노선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그것이 독립운동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10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국가적 위기와 역사, 문화의 중요성 -『뉴욕타임즈』 3,1 독립운동 관련 친일 기사와 대응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관 ( Young Gwan Le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60권 0호 발행 연도 : 2011 페이지 : pp. 269-30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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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독립운동은 한국 근현대 정치사는 물론 문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3·1 독립운동의 여파는 일본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2명의 친일 미국인이 일본을 옹호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하면서 재미 한국인들의 강한 반박을 받았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인식을 변화시켜 역사적, 문화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자주독립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뉴욕타임즈』 역시 3·1 독립운동과 한국의 자주독립을 지지하는 모습으로 논조를 바꾸게 된다. 물론 3·1 독립운동 자체가 가진 정당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이를 미국인들에게 전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은 바로 이 신문 지면을 통한 논란을 통해서다. 3·1 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드류 신학대학교 교수였던 소퍼(E. D. Soper) 목사와 예일대학교의 라드(G. T. Ladd) 교수는 한국에 대한 일제의 만행을 옹호하려 했다. 동시에 3·1 독립운동 자체의 의의를 무시하려 했다. 그들은 3·1 독립운동을 잘못된 사실에 바탕을 둔 소수 불만세력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들의 기사는 재미 한국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승만과 헨리 정 그리고 ``한국의 아들``이라고 가명을 쓴 이가 사실과 역사적 당위성에 바탕을 둔 반박 기사를 기고해 일제 만행의 실상을 미국인들에게 전달했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자주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다수의 미국인들도 2명의 친일 미국인과 달리 한국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일본을 규탄했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을 통해 두 명의 친일 미국인은 더 이상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주장하지 못하고 지면에서 사라졌다. 이 사건은 3·1 독립운동과 한국 독립의 문화적, 역사적 정당성을 성공적으로 제시해 미국인들의 호응을 받는데 성공한 적지만 비폭력, 평화적 3·1 독립운동의 정신을 외국 땅에서 계승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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