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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한국의 민속과 문화> 한,중 양국의 추석에 관한 비교 분석

한,중 양국의 추석에 관한 비교 분석

The Comparison of Mid-autumn Festival Between Korea and China

양금평 ( Jin Ping Yang )
  •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0년 12월
  • : 131-153(23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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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과 한국의 추석에 관해 비교를 시도했다. 한국과 중국은 모두 다 추석을 지내지만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아 보이다. 중국의 중추절은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주류를 이루지만, 한국의 경우, 신라시대에는 길쌈 내기와 고려 시대의 조상제사를 중심으로 달구경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즉 중추절의 명칭은 중국에서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고. 달구경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한국의 경우 신에 대한 제사 보다는 조상에 대한 제사와 성묘 등의 성격이 좀 더 강하다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가장 풍성한 명절로 이날은 기원이나 제액의 의미보다는 놀이와 이완의 명절 분위기가 주이다. 농부들에 의해서 소놀이, 씨름이 행해지고 부녀자들에 의해, 강강술래가 행해진다. 중국의 경우, 한국 보다는 신이나 신성한 계수나무를 향해 기원하는 등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아들을 기원하는 모추구자(摸秋求子). 계수나무를 감상하는 상계관조(嘗桂觀潮), 등회의 풍속이 있다. 그리고 가을의 둥근달은 단결과 화목의 상징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날에 먹는 월병도 원형의 모양으로 ``모임``을 상징하며 집안 식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으면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한국은 송편이라 해서 반원형의 떡을 먹는다. 얼을 숭상하여 달에게 소원을 비는 민간신앙을 가지면서 반원을 채택한 것은 반월이 日日盛하므로 발전의 상징으로 본데서 온 것이다. 한국의 경우 중국에 비해 놀이문화가 풍성하여 현재까지 추석은 매우 중요한 명절로 꼽히고 있다. 중국에서 한 대 이래로 8대 축일 이었지만, 헌재는 공휴일로 제정하였으나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 하나의 기념일일 뿐이다. 한국은 지금도 큰 명절로 3일간의 공휴일로 제사를 지내는 등 명절의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다.
Korea is the one of neighbor of china. And they have close relationship in their history. Thus, their culture are also related but well developed independently with their own tradition. Most of Korean festivals are from China, but they also have deferent manners for them. After long time of change and creation, the culture fusion between China and Korea becomes the native Korean traditional culture. Such as the noodles with soybean paste, Korean improves its cooking style by the taste of native people. The Middle Autumn Day is the one of most important festivals in both Chinese and Korean tradition. According to the areas, rate of races and positions in location cultures of holding Mid-Autumn Festival, it represents long history and traditional culture in China and Korea. Mid-Autumn Festival agglomerates the ethics and morality of Korean and Chinese people, and its ceremony show the combination of traditional cultures. The Mid-Autumn custom and food culture are the most important points that represent the features of local tradition. Thus, this paper uses Middle Autumn Day as the research object, and compares the source stories, custom and foods to find out differences and similarity between two countries. Due to the civil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these days, Mid-Autumn festival also changes in two countries. Thus, in order to describe it to you more realistically, this paper also gives further comparison between past and present Mid-Autumn Day. Although the topic of this paper is the comparison of Mid-autumn day between Korean and China, I mainly compare the Mid-autumn festival the Han nationality of China and Korea. In fact, except the Han nationality, other ethnic minorities of china have mote rich and colorful Mid-autumn day too. In the later research, the main object of researching about Mid-autumn day will be focused on the local culture and customs of ethnic minorities` Mid-autumn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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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

I410-ECN-0102-2012-350-002407305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민속학
  • : KCI 등재
  • : -
  • : 연간
  • : 1229-2176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8-2010
  • :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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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울지역 대동치성공동체의 이주민 수용양상

저자 : 박흥주 ( Heung Ju Park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5-52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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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존하는 서울의 마을굿을 ``현재의 서울문화``란 인식하에 출발한다. 또한 그 유효성을 공동체성에서 찾고자한다. 이는 ``전승주체``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란 결과에 주목하게 하였다. 토박이의 개념이 희석된 현시점 서울살이에서 이주민들의 수용양상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이주민들의 태도를 통해 공동체성의 가치와 가능성을 가늠할 필요가 있다. 마을굿의 전승주체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 그리고 그 문화현상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대동치성공동체``라는 용어와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에 대한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는 실질적인 범주는 ``치성금을 직접 내거나 걸립에 응한 가정으로서 치성현장에서 소지를 올려주는 범위``까지다. 대동치성공동체는 조직의 성격상 ① 무(無)조직, ② 계모임 형태, ③ 노인회 주관, ⑤ 향우회 중심, ⑤ 이주민 중심, ⑥ ``ㅇㅇㅇ 위원회`` 형태. ⑦ 문화재지정단체로 분류되며, 이들은 100여 가구 전후의 규모에, 100여만 원 전후(유교식제례형식일 경우)와 500~1,000여만 원(대동굿을 할 경우)의 예산규모를 갖는다. 8.000~9.000가구인 행정동의 규모에 비해 100여 가구는 아주 작은 모임이고, 소요경비 또한 소규모이다. 결국 지역사회 내에서의 위상이 미약하며, 기독교인들에 대한 동참을 포기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인 지향점은 "동 전체를 위하고 대표 한다"는 의식이 강하며, 주체성과 정통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아직 견지하는 중이다. 마을금고, 새 마을금고이사장, 세탁소주인, 슈퍼 주인 등 지역사회내의 일상생활과 깊이 연계된 주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주민에 대한 태도는 다양하다. 전승조직의 힘이 약할 경우 이주민들에 대한 개방성이 강한 반면, 힘이 미약할 경우에는 폐쇄적이라는 특성을 보였다. 이주민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대동치성이 갖는 문화적 속성과 마을 정체성의 견지정도, 그리고 정치적인 역학관계가 크게 부각되었다. 이를 기저로 할 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① 전승공동체가 전승력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을 때, 이주민들에 대한 문턱은 매우 높다. 공동체성원으로 받아들이는데 30여 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② 전승집단이 2개 양립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강제로 남의 동네로 집단이주당한 실향민이나 월남민들의 집단주거지에서 주로 발견되며, 이들은 독자적인 당과 치성의례를 확보함으로서 독자적인 공동체를 성립·유지시키고 있었다. ③ 전승집단이 없거나 힘이 없는 경우, 다시 2가지 양상을 보인다. 전승집단이 있으나 노령화되거나 미약할 경우, 전승집단이 있었으나 중단되어 대동치성공동체가 와해되어 있는 상황이다. 전자의 경우 쉽게 이주민이 전승조직의 중심에 다가갈 수 있었으며, 역량이 클 때는 이를 장악하고 있는 사례도 많았다. 중단되었다가 재건설되는 과정에서는 이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게 되는데 이주민이나 월남민들이 많이 정착한 동네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 경우, 주도권 싸움이 발생하는 사례도 생기는데 이주민간의 경쟁이었다. 종합하여 볼 때, 이주민들이 토착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는데 있어 대동치성의례가 중요한 계기이자 통로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6·25 월남민들이나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도시근로자로 편입된 지방출신 이주민들이 성공적으로 서울살이를 일궈가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2서울 지역사회와 의례공동체의 변화 -19세기 후반~20세기 서빙고 지역을 중심으로

저자 : 김태우 ( Tae Woo Kim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53-8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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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지역사회의 변화에 따라 의례공동체가 어떻게 변모해 갔는가 하는 것을 서빙고 지역을 사례로 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조선후기부터 1910년까지는 서빙고지역이 서빙고계로 묶여 있었던 시기이며 이중계 등의 자치조직을 통해 지역을 운영해 나감으로써 중앙 정부의 구속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 이중계와 같은 조직은 존위와 중임 등의 대표자를 중심으로 부군당 의례 등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아 지역공동체이면서 의례공동체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1903년 의례를 주도하던 이중계는 전대의 노인계와는 달리 지역민 모두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洞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의례가 지역민 전체의 공동체 의례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당시 의례공동체에서는 강음 단씨와 수원 백씨로 대표되는 토착 세력들이 의례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강점과 함께 한성부가 경기도 경성부로 격하되면서 서빙고 지역도 고양군 한지면 서빙고리로 편제되어 경성부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서빙고역의 개설과 서빙고나루와 곡물상 등으로 인해 서빙고 지역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 시기 지역공동체는 전대에 비해 보다 체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즉, 관임이었던 구장과는 별도로 지역자치조직의 직역인 존위, 이중소임, 하소임 등이 존재했으며 당시 의례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전대의 토착세력과 원주민들은 물론이고 미곡상이나 정미업 등으로 새롭게 부를 축적한 재력가들이나 명망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유력 성씨 집단을 중심으로 한 토착 세력이 의례를 주도하고 있었던 전대의 의례공동체의 성격에 비해 사뭇 달라진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광복이후 서빙고 지역 사회는 전대의 구도를 어느 정도 유지해 나갔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 결성된 지역 의례공동체는 그 수적으로 가장 규모가 컸으며 의례공동체의 절정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이후 1955년경에는 피난 갔던 주민들이 돌아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을 시기였으며 이때 의례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재건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이는 전쟁 전의 ``보건친목회``를 계승한 것으로 불 수 있다. 다만, 토착세력인 강음 단씨가 당시 의례공동체에서 전무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후 서빙고 지역의 의례공동체는 점차 축소되면서 경로회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행해지게 되었는데 2007년 현재에도 ``치성위원회``가 명확하지 않고 그 조직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제관을 따로 산출하지 않고 제의 당일 참여하는 치성위원들이 곧 제관이 되는 등 과거에 비해 불안정한 전승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재 의례공동체가 대부분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특징적이다.

3자연촌락 상례문화의 지속과 변화 -경기도 군포시 도마교동을 중심으로-

저자 : 이상균 ( Sang Gyun Lee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85-10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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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필자는 경기도 군포시 도마교동 상례 조사를 통해 시기별 마을 상례의 실천양상을 검토하였다. 특히 사회적 맥락의 변화와 상례 실천의 변화가 어떻게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지 주목하였다. 일반적으로 마을 상례를 통해 볼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의 측면은 지역별, 시기별로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해방 이후 자연마을 상례는 신분관계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의례 실천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본 사례를 통해 필자는 과거로부터 지속되고 있는 상례가 시기별로 신분관계, 정치 경제관계 등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따라서 새로운 실천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단군신화 주요 이본간 동이성(同異性) 연구 -"환인과 (환)웅의 관계"를 중심으로

저자 : 윤성찬 ( Sung Chan Yun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07-13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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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단군신화``의 이본연구는 한자로 기록된 것을 번역하여 개략적인 줄거리를 비교하거나 서사 진행 방식 등을 분석하여 유사성과 차이점을 살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사 전개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방법에는 용이할지라도 신화라는 특수한 장르 즉, 구비전승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것에는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적용하였다. 먼저 ``단군신화``의 6개 주요 이본에서 공통된 모티프를 찾는다. 그리고 이를 짧은 단문장화한 다음 각 화소(소문장화된 것)에서 공통점을 추출한다. 그리고 그것들 중 가장 많은 횟수를 나타내는 화소로 구성된 문장을 만들고 이를 기준본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난 다음 이를 원래의 단문장과 비교한다. 이 방법은 어떤 특별한 의도 없이 화소(단어 등)가 변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특징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본의 기원이 비슷할 경우 사용되는 화소 또한 유사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는 언어학의 ``어휘장``이론을 바탕으로 신화의 특성에 맞게 고안해낸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신화 전체를 분석하기에는 완전하지도 않고, 전체의 결과를 도출해 내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본 간의 특정 화소의 비교에 따라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할 수는 있다. 또한 필자는 ``단종실록``, ``매월당집`` 등 많은 기록들에서 ``단군신화`` 관련 이본을 찾았다. ``단군신화 이본연구``가 올바르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아주 짧은 문장이라도 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이고 현재의 필자 역량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본연구에 대한 전체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전에 객관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고, 이 방법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이 논문을 쓰게 되었다. 본 논문은 분명히 오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객관성을 띠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앞서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논문은 연구방법에 대한 실험적 논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 대상을 이본 내용 전체가 아니라 ``단군과 웅의 관계``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5한,중 양국의 추석에 관한 비교 분석

저자 : 양금평 ( Jin Ping Yang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31-15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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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과 한국의 추석에 관해 비교를 시도했다. 한국과 중국은 모두 다 추석을 지내지만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아 보이다. 중국의 중추절은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주류를 이루지만, 한국의 경우, 신라시대에는 길쌈 내기와 고려 시대의 조상제사를 중심으로 달구경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즉 중추절의 명칭은 중국에서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고. 달구경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한국의 경우 신에 대한 제사 보다는 조상에 대한 제사와 성묘 등의 성격이 좀 더 강하다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가장 풍성한 명절로 이날은 기원이나 제액의 의미보다는 놀이와 이완의 명절 분위기가 주이다. 농부들에 의해서 소놀이, 씨름이 행해지고 부녀자들에 의해, 강강술래가 행해진다. 중국의 경우, 한국 보다는 신이나 신성한 계수나무를 향해 기원하는 등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아들을 기원하는 모추구자(摸秋求子). 계수나무를 감상하는 상계관조(嘗桂觀潮), 등회의 풍속이 있다. 그리고 가을의 둥근달은 단결과 화목의 상징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날에 먹는 월병도 원형의 모양으로 ``모임``을 상징하며 집안 식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으면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한국은 송편이라 해서 반원형의 떡을 먹는다. 얼을 숭상하여 달에게 소원을 비는 민간신앙을 가지면서 반원을 채택한 것은 반월이 日日盛하므로 발전의 상징으로 본데서 온 것이다. 한국의 경우 중국에 비해 놀이문화가 풍성하여 현재까지 추석은 매우 중요한 명절로 꼽히고 있다. 중국에서 한 대 이래로 8대 축일 이었지만, 헌재는 공휴일로 제정하였으나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 하나의 기념일일 뿐이다. 한국은 지금도 큰 명절로 3일간의 공휴일로 제사를 지내는 등 명절의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다.

6온라인 공동체(on-Line community)의 현황과 전망

저자 : 강호정 ( Ho Jung Kang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55-172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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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재 ``SNS 열풍``이라는 온라인 공동체 활동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SNS는 온라인 공동체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SNS 활동이 스마트 폰의 보급에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공동체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즉, 스마트 폰은 모바일 SNS의 발달을 가져왔고, 이러한 모바일 SNS는 스마트 폰을 통해 실생활과 온라인의 경계를 무너뜨려 어디서나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다. 기존의 공동체 활동은 시공간의 제약이 있었다 한다면, 모바일 SNS는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나 실생활 어디서나 온라인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는 편리성을 가져다주었다. 이 때문에 SNS의 현황을 각 SNS에 따라 일상 속 공동체 활동이 온라인 공동체 활동으로 확장된 사례(싸이 월드)와 일상과 온라인 공동체 활동이 분리된 사례(블로그), 일상과 온라인 공동체 활동의 경계가 무너진 사례(모바일 SNS) 등으로 분류해 낼 수 있었다. 앞으로 SNS는 일상과 온라인 공동체 활동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며, 이 때문에 ``일상의 노출``이라는 부작용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의 SNS를 통한 온라인 공동체 활동은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이용자가 많아질 전망이므로 더욱 ``일상의 노출``이라는 문제 상황은 선결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7중(中),한(韓) 유교식 조상제사의 비교 연구

저자 : 고복승 ( Fu Sheng Gao )

발행기관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간행물 : 한국의 민속과 문화 1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73-189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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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 산동성과 한국의 조상제사를 비교하였다. 제Ⅱ장에서는 먼저 중국과 한국의 유교식 조상제사의 양상을 분석했다. 중국은 설날, 한식, 7월 15일, 10월 1일, 부모님의 忌日에 기제를 크게 지낸다. 한국은 설날, 한식, 단오, 추석, 기제를 크게 지내고 있다. 제Ⅲ장에서는 중국과 한국 조상제사의 지속과 변화의 모습에 주목하였다. 근대에 들어와 중국과 한국은 봉건시대에서 벗어나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조상제사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지금은 비록 유교식 조상제사가 정치적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孝사상을 선양하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큰 가치를 갖고 있다. 따라서 유교식 조상제사는 보존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교식 조상제사는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공산주사상의 영향으로, 한국의 경우는 기독교와 천주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의 영향으로 약화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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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학
1권 0호(2001) ~ 62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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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91) ~ 34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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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2001) ~ 62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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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1982) ~ 55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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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0호(2001) ~ 62권 0호 (2017)

동양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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