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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도가적 자연관을 중심으로 고찰한 이문구의 『관촌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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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적 자연관을 중심으로 고찰한 이문구의 『관촌수필』

Lee mun-goo`s Guan-chon essay considered with an outlook on nature of Taoism as the center

배경렬 ( Kyeong Yeol Bae )
  • : 한국사상문화학회
  •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0년 12월
  • : 137-159(23pages)
피인용수 : 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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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인간세(人間世)」(『내편』) 편에서 인간 사회의 인위적 요소들을 배척하면서도,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은거(隱居)하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인간 생활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그가 인정하는 인간생활이란 현대적 개념의 인간 사회가 아니라 인위적 요소가 일체 배제된 집단 사회 즉 원시 공동체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시 공동체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혹은 원시 공동체 사회 속의 사람들처럼 순박함과 무욕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연의 하나로서 ‘자연적 본성’의 대상이며, 선(善)하고 완전한 세계의 주체이다. 이러한 도가적 자연관에 비추어 보면 자연 법칙은 비의지적인 무위의 성질을 갖 고 있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자연의 본성에 가까워지는 것이 곧 도(道)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는 자연의 본성에 역행하는 인위적 요소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인간의 순박한 인성(人性)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의 본성으로 활동하려면 무위의 행동 즉 무욕, 무지, 순박함으로 가능해진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가장 활성화될 수 있는 인간 세계는 원시 공동체 사회이다. 그러므로 원시 공동체 사회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인간은 자연과 합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욕심 없이 생명 활동만을 하는 인간일수록 ‘자연적 본성’에 가깝고, 그러한 인간일수록 선하고 완전하다는 말이다. 또한 ‘자연적 본성’을 실천하는 무욕, 무지, 소박의 인간은 천인합일(天人合一)에 의해 곧 하나의 자연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문구의 『관촌수필』에서도 이와 같은 도가적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Chuang Tzu thinks nature as Tao itself and find the dynamic movement in every living things. Acknowledgement of the dynamic moment and life in each living thing within the wholeness is the philosophical basis of ecology centralism. Taoism is the nature-oriented thought because it suggests that man should live with nature not without. Lee mun-goo`s Guan-chon essay is an autobiograpic novel written by the experience of his childhood as an essay. And it is consist of 8 storiettes. Also, as each of them has completed subject, its distinction is to keep an independent character itself. We can see one side of a moral view of nature though the writer`s view of life about the world. This is also ideology that fall over the whole work. It made us aware of how important they are by appearing plenty of figures with natural real characters. On the contrary, he describes the hard life after modernization by showing up artificial real characters. Like this, Guan-chon essay is a work that shows how important natural real character is though an artificial real character. And above all, the significance of this work is to show an aim of life that live like man, keeping, true human relationship. We can estimate that another artistic result of this work is to reemerge properly the appearance of a rural community before modernization by taking over Korean, traditional literary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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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10-ECN-0102-2012-910-001688540

간행물정보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 등재
  • : -
  • : 연5회
  • : 1229-1749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98-2018
  • :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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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퇴계(退溪) 이황(李滉) 시에 나타난 두시(杜詩) 수용 양상

저자 : 이정화 ( Jung Hwa Le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7-3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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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시작(詩作)에 끼친 두보의 영향력은 <음시(吟詩)>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퇴계는 이 시에서 두보가 이룩한 시 창작에의 치밀함과 생래적(生來的)인 시인 자질에 대해 우러른 바 있다. 고독하고 불우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불굴의 시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였기 때문에 시인 두보의 삶과 시세계는 불멸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고 사료된다. 인생의 비애를 절감한 퇴계의 눈에 비친 두보의 고독감과, 그 시적 형상들은 퇴계에게 감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시성(詩聖)'의 경지에 이른 두보의 작품을 학시(學詩)의 대상으로 삼아 퇴계는 자신의 불운한 삶을 시로써 승화시키기도 한다. 퇴계의 시에 나타난 고독감이 두보의 시에 보이는 그것과 상통한 까닭은 이러한 카테고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가변적(可變的)인 현상을 꾸미는 일은 돌보지 아니하고, 내재(內在)하는 理(理)의 세계를 확인하는데 마음을 쓴 퇴계시의 참 모습이 그의 매화시에 그대로 밝혀져 있다. 퇴계는 조어(造語)보다는 조의(造意)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퇴계시의 진수(眞髓)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퇴계는 화려한 수식(修飾)보다는 시를 통해 자신의 뜻을 형상화하는 것에서 천부적 재질을 보인 두보와 그 의상이 상통하고 있다. 이는 퇴계가 두보의 시를 애호하여 그의 시를 오랜 세월 음미하고 학습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두보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경물시와, 두보를 흠모하여 그를 떠올리며 지은 경물시에는 청신(淸新)한 마음이 의취(意趣)의 핵심이 된다. 두보가 세속의 일에 초연하며 전원에 둔 뜻을 형상화한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의 시어가 곧 자신이 평생 가슴에 새긴 뜻임을 애써 밝히고 있는 퇴계의 시구에서는 때 묻지 않은 청신한 마음으로 시를 지은 두보가 퇴계에게는 시대를 뛰어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생태사상(生態思想)과 문학(文學)

저자 : 김병국 ( Byung Kuk Kim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35-6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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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화담(花潭)의 성리학적 사유 속에서 생태학적 사유와 그 근거들을 살펴보았다. 화담은 다른 조선의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속에 내재한 하늘의 이치(理致)를 탐구하여 그것을 인간의 삶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화담은 사색을 통해 성리학을 연구하여 자득(自得)함이 많았다. 그는 만물(萬物)의 근원을 일기(一氣)인 태허(太虛)로 파악하여 그 기(氣)가 모여 만물을 이루고, 만물이 흩어져 다시 태허(太虛)가 된다고 함으로써 기(氣)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화담은 격물(格物)을 중요시하였으며, 특히 객관적인 사물인식을 강조했다. 그리고 천지만물이 각기 그 머무를 곳이 있다는 화담의 생각에서 천지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아울러 우리 인간의 삶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만물은 서로 의지한다는 화담의 생각에서 만물은 서로의 존재에 영향을 주며 연관되어 있다는 그의 생태론적 사유의 일단을 엿볼 수 있고, 무계획적인 산릉(山陵)의 증가로 인해 농토가 황폐화되며, 무분별하게 석관(石棺)이나 묘의 석물(石物)을 만듦으로써 산이 다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주장에서도 그의 생태론적 사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화담의 이러한 생태론적 사유는 그의 성리학적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다. 화담은 호연(浩然)함을 기르고 실지의 공부를 하며 하늘의 소리를 들으라고 권하고 있다. 이것은 천지의 마음을 알고 실천하기 위함인데, 화담은 산수 자연 속에서 그 좋은 경치를 즐기며 이것을 몸소 실천했다.

3유불(儒佛)의 다시(茶詩) 세계(世界)

저자 : 김미선 ( Mi Seon Kim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61-8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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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韓國의 茶詩에서 儒家의 선비가 修養의 餘暇에 차를 가까이 하며 남긴 茶詩와 佛家의 禪僧들이 修行 속에서 茶를 통한 悟道의 경지를 茶詩로 남긴 작품을 주제로 하여 儒佛의 茶詩 世界를 고찰하였다. 먼저 다시의 형성 배경을 유가의 和思想과 불가의 茶湛禪에서 천착 하였다. 儒家의 修身이 中和의 경지를 닦는데 있다면 그 一面의 파생물이 선비들이 즐긴 茶道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茶道를 통하여 선비가 지향하는 정신세계인 和와 靜의 경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茶詩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高麗때 牧隱 李穡·稼亭 李穀·白雲居士 李奎報 朝鮮時代의 容齋 李荇·茶山 丁若鏞·秋史 金正喜의 작품을 선별하여 고찰하였다. 또한 佛家의 다도정신 요체이며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본성을 다도를 통하여 체득하려는데 있다면 佛家의 求法 자체가 바로 眞性을 아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解脫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하겠다. 이에 우리나라 불가 선수행의 과정에 송나라의 茶湛禪을 통하여 禪定三昧 法喜禪悅에 이른 悟道의 경지를 禪師의 茶詩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高麗때 大覺國師 義天·眞覺國師 慧諶과 조선시대 淸虛禪師 休靜·浮休禪師 善修·兒庵禪師 惠藏·艸衣禪師 意恂·梵海禪師 覺岸의 작품을 선별하여 고찰하였다. 이상과 같은 다시 작품의 고찰을 통하여 한국 유불 다시의 위상을 짚어 볼 수 있었다. 茶詩의 位相으로 儒家 修身의 궁극적인 도달점인 和와 佛家의 禪修行의 悟道의 경지에 이르는데 모두 하나의 방편이 되었음을 儒佛家의 茶詩를 통하여 고찰할 수 있었다.

4고종황제(高宗皇帝)의 한시(漢詩)

저자 : 박희 ( Hee Park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89-1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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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활동의 한 분야로서의 문학은 인류의 시원(始原)과 그 역사는 같을 것이다. 문자기록을 전후로 이전의 문학을 구비문학(口碑文學)이라 하고 이후를 기록문학이라 한다면 우리 국문학도 수 천 년의 역사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왕조의 시대, 향유자의 계층, 문학형성의 지역, 저작자의 처한 환경등의 여러 요인에 따라 다양성을 나타내었다. 이를테면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시대별이나 한림(翰林) 혹은 사림(士林). 유가(儒家) 등의 사대부 문학, 승가(僧家), 불가(佛家) 문학, 평민문학, 은둔문학, 유배문학, 여염(閭閻)의 여류중심의 내방(內房)문학, 기류(妓流)문학, 궁중문학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필자는 국문학을 연구해 오면서 항상 궁금해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국왕과 왕실 왕족들의 문학세계였다. 국왕과 왕족이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최상의 생활환경 속에서 상류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고급의 교육을 받았기에 그들의 문학세계도 대단했을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이들의 문학세계인 군왕(君王)들의 문학을 연구한 실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중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으니 고종황제의 한시에 대해서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고종의 생애는 조선시대 말기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시대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은 68세로 생을 마쳤는데 그의 한시는 총 37제(題) 39수(首)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수는 많다고는 할 수 없어도 다양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시의 7할 이상이 20대에 지어진 것이니 이것이 의아한 일이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56세에 강제퇴위 당한 후 실의(失意)에 찬 노후 생활 속에 더 많은 시를 지었을 법 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 나름의 소견으로는 고종의 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나 주연집이 일제시대에 출판되었으니 일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품들은 모두 빼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튼 본 논고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작품만 살펴보았다. 고종의 시들은 궁궐 내를 소요(逍遙)하며 풍경을 읊기도 했고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군주의 마음, 동궁(東宮)에 대한 애정,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며 격려하는 작품, 신뢰하는 신하를 그리워하고 애정을 표하는 시 등 다양 내용들이다. 이 작품은 그의 문집인 주연집(珠淵集)에 실려 있다. 시를 지은 계절적인 배경은 총 18수 가운데 봄이 12수로 가장 많다. 시의 형태는 칠언절구가 19수로 가장 많으며 율시(律詩)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고종은 20자에서 28자로만 지어지는 절구(絶句)를 애용한 것은 적은수의 글자로 자신의 시심을 표현하는데 특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특징이라면 그의 작품이 거의 궐내(闕內)에서 지어졌고 지금의 청와 지역인 신무문 바깥의 작품이 몇 수 있으나 원유(遠遊)의 작품은 전무한 것이다. 끝으로 고종의 더 많은 시들이 발견되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5서정주(徐廷柱) 시(詩)에 나타난 불교적 세계관

저자 : 이혜선 ( Hye Seon Le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15-13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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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堂 서정주 시인은 1936년 동아일보에 시 <壁>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펴 낸 15권의 시집에서 각기 다른 심오한 시세계를 펼치고 있다. 미당의 제4시집 「新羅抄」(1960)는 한국의 전통 속에서 신라인들의 정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肉化시킨 끝에 다다른 눈부신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미당은 이승의 생명이 다하여도 사위지 않는 영원한 사랑과 불교적 윤회전생을 통해, 또는 그들과의 靈通을 통해 영원히 사는 영생주의에 도달해 있다. 윤회(輪廻)는 연기설의 원인과 결과에 의한 순환, 유전(流轉), 생사(生死), 흐름, 상속, 지속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원인과 결과로 연기되는 현상들의 연속적 흐름을 윤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은 地獄道, 餓鬼道, 畜生道, 阿修羅, 人道, 天道 등 여섯 가지 세상에, 각기 현생에서 지은 善業과 惡業에 따라 다시 태어나게 되어 그 몸은 죽으면 헌 옷처럼 벗어버릴 수 있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끝없이 다시 태어나 윤회전생한다는 것이다. 시집 「신라초」에 수록된 많은 작품들 속에서 미당이 육화시킨 신라인들의 윤회사상과 영생주의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은 시집 「신라초」에서 그치지 않고 제 15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에 이르도록 미당의 시세계를 관류하는 기본 사상이 되고 있다. 물론 시집 「신라초」가 창작되기 이전의 「화사집」이나 「冬天」에서도 이러한 세계관이 곳곳에서 산견되고 있다. 시 '善德女王의 말씀' 에서는 죽어서도 자비의 실천, 즉 入廛垂手(시정 속에서 중생을 교화하다)의 경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윤회사상에 입각한 인간긍정과 인간존중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꽃밭의 獨白'에는 꽃을 통해 영생에의 길을 찾아 나서는 시적화자의, 어떤 고난이 와도 修行으로 영생에 들려는 상승의지와 간절한 열망이 표출되어 있다. 또한 '娑蘇 두번째의 편지 斷片' '구름다리' '無題' '숙영이의 나비' '두 香나무 사이' 등에서도, 천년을 수유로 느끼는 미당의 시간의식과 공간의식 속에 나타나는 영원주의와 연기적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因緣說話調'에서는 한 송이의 모란꽃과 예쁜 처녀가, 흙과 물과 구름을 거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윤회전생과 더불어, 불교의 기본 세계관인 自他一如사상까지 낳게 되어 우주 만유와 同一視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미당은 인간의 원죄의식의 업고와 고통을 신라정신과 불교정신에 귀의하여 극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神話를 창조하고 있다. 미당은 우주와 역사와 영원의 세계에 대해 거대한 스케일로 사색하고 포용한 시인이며, 고전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역사적 전통을 오늘에 재현시켜 윤회설에 입각한 영생주의의 열린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 속에서 他者를 보고 他者 속에서 자신을 보는 우주만유와의 교감을 통한 自他一如사상을 획득하고 있다.

6도가적 자연관을 중심으로 고찰한 이문구의 『관촌수필』

저자 : 배경렬 ( Kyeong Yeol Bae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37-15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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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인간세(人間世)」(『내편』) 편에서 인간 사회의 인위적 요소들을 배척하면서도,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은거(隱居)하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인간 생활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그가 인정하는 인간생활이란 현대적 개념의 인간 사회가 아니라 인위적 요소가 일체 배제된 집단 사회 즉 원시 공동체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시 공동체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혹은 원시 공동체 사회 속의 사람들처럼 순박함과 무욕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연의 하나로서 '자연적 본성'의 대상이며, 선(善)하고 완전한 세계의 주체이다. 이러한 도가적 자연관에 비추어 보면 자연 법칙은 비의지적인 무위의 성질을 갖 고 있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자연의 본성에 가까워지는 것이 곧 도(道)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는 자연의 본성에 역행하는 인위적 요소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인간의 순박한 인성(人性)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의 본성으로 활동하려면 무위의 행동 즉 무욕, 무지, 순박함으로 가능해진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가장 활성화될 수 있는 인간 세계는 원시 공동체 사회이다. 그러므로 원시 공동체 사회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인간은 자연과 합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욕심 없이 생명 활동만을 하는 인간일수록 '자연적 본성'에 가깝고, 그러한 인간일수록 선하고 완전하다는 말이다. 또한 '자연적 본성'을 실천하는 무욕, 무지, 소박의 인간은 천인합일(天人合一)에 의해 곧 하나의 자연과 같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문구의 『관촌수필』에서도 이와 같은 도가적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7한,중 사상 문화 교류 관점에서 본 5,4시기 반종교 운동과 개방이후의 "여시구진(與時俱進)"

저자 : 오재환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61-1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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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후의 세계사적인 조류의 한 흐름으로서의 동 아시아에서는 식민지 혹은 반 식민지 민족들이 제국주의 열강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려는 평화적 저항 운동이 있었다. 그것은 한 나라 만의 역사 탐구로서 보다는 동 아시아사적인 시각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은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과 여건을 공유한다. 5·4시기 반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유물주의, 과학주의, 무정부주의, 공산주의를 신봉하던 중국에서 지식인들의 '신 중국' 청사진에는 기독교 등 종교가 설 자리는 없었다. 중국지식인들의 과학만능적인 사고방식은 5·4시기를 전후하여 과학구국론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1930년대에 치열했던 중국의 반종교운동은 마르크스주의의 자극을 거치면서 더욱 과학 지향적인 정서로 무장하고 '용과학방법(用科學方法)'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의 존재의의를 철저히 부정하는 특징을 이루었다. 물리적 실체만이 유일한 실체라는 의식 등은 이 시기 중국 지식인들이 유물주의적인 경향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했으며, 유물주의(唯物主義)는 보편타당한 가치관이 되면서, '신 중국'의 건국을 위한 사상과 세계관을 형성하는데는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한편, 중국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종교가 소멸되기는 커녕 개방 정책과 더불어 종교현상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게 되자, 중국의 국가 종교국은 개혁개방 의 초기(1982)에 종교신앙현상을 있는 사실을 그대로 수긍하는 정책적 대 전환의 신호를 보내었는데, “사회주의 제도가 성립되고 그 경제 문화가 일정한 수준까지 발전하면, 종교란 매우 빨리 소멸된다는 구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종교관은 건국 이전부터 모택동이 천명하였던 것으로, “종교인들이 인민정부의 법률을 준수하기만 하면, 인민정부는 그 종교를 보호한다.”는 것이었지만, 신앙이 다른 소수 민족 지구의 각 민족을 포용하기 위한 발언이었을 뿐이다. '신 중국'의 종교정책은 건국 이전부터 모택동이 설정한 방향이었다. 그는 반제국주의 반봉건 반미신적인 통일전선을 건립할 수는 있지만 어떠한 반동적인 유심론과도 결단코 통일전선을 건립할 수는 없으며 공산당원은 정치행동상의 반제국주의 반봉건적인 통일전선을 건립할 수는 있으되, 그들의 유심론과 종교 교의(敎義)에는 결단코 찬동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신 중국'의 종교신앙자유 정책이란 것은 자유주의 국가에서처럼 진정한 신앙자유 정책은 아닌 것이다. 2001년 '마르크스주의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진화한다(與時俱進)'는 말을 시작으로 5·4시기 이래로 견지해오던 '신 중국'의 종교관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진화하면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종교관도 그에 따라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중국공산당의 일당 지배체제로서, 그들이 설정한 종교신앙자유 정책이란 것도 인민정부의 법률에 저촉되지 않을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므로, 개방이라는 시대적인 변화의 여건 가운데서의 임시적인 융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종교 선교나 문화 교류 등 기타 활동에 임하여야만 할 것이다.

8고구려인의 관념에 보이는 단군신화의 투영 맥락 -비류부의 정치적 위상을 중심으로-

저자 : 최일례 ( Il Rye Choi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187-22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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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구려인이 남긴 여러 물질적 자료들을 토대로 고구려인의 관념에 투영되어 있는 단군신화의 맥락을 고찰하였다. 고구려인들이 단군 관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비류국(沸流國) 때문이었다. 비류국은 고구려 초기에는 왕을 배출했던 세력으로 단군을 시조로 인식하던 집단이었다. 그들은 비록 지배적 지위를 주몽의 계루부로 넘겼지만 3세기까지도 여전히 그들의 시조 제의를 유지하던 『삼국지』의 연노부(涓奴部)이다. 시조의 출계에 관한 고구려의 공식적인 입장은 시조인 주몽이 부여에서 출자(出自)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고구려 시조인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고 전한다. 나아가 『제왕운기』에는 단군이 조선 땅에 근거하여 왕이 되었고, 그러므로 조선 땅에 있는 신라ㆍ고구려ㆍ남북옥저ㆍ동북부여ㆍ예ㆍ맥의 모든 나라가 단군의 후예라고 하였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부여에서 분기했음에도 초기 고구려에서는 그들의 고유 묘제인 토광묘가 아닌 선주 세력의 적석묘의 전통을 고수하였다. 이는 졸본 지역을 기반으로 한 비류 세력의 강성함을 웅변하는 것이다. 비류부(沸流部)의 강력한 힘은 그들의 숭배 대상인 웅녀가 고구려의 국중대회 기간에 제사지내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바로 수신에 대한 제사가 그것이다. 이후 고구려의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화 되면서 주몽을 정점으로 하여 시조 전승이 정비되면서 유력 집단의 제사 대상들은 음사로 편제되었다. 고구려인의 단군에 대한 관념은 고분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벽화에 표현된 곰과 나무에 기원하는 여인의 모습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여성신의 표상이며, 단군을 시조로 인식하는 집단의 시조모의 표현이다. 이처럼 단군을 시조로 인식하던 비류 세력은 고구려의 시조가 단군의 아들이라는 인식을 남길 만큼 강하였던 것이다.

9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의 정치적 역할과 정치사상

저자 : 정재훈 ( Jae Hoon Jung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225-252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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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은 16세기 중반인 명종~선조 연간의 대표적인 재상이다. 이 시기는 훈구와 사림의 정치적 교체기로서 이후 300여 년의 조선 역사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러한 격변기를 살았던 이준경은 그의 정치활동과 정치사상을 통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니는 인물이다. 첫째, 이준경은 중종대부터 선조 초반까지 오랜 관직생활을 통해 청렴한 관직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점, 그래서 사후에도 청렴한 재상으로 일컬어질 수 있었던 것은 훈구와 척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개인이 쌓은 성취가 매우 높았던 점을 돋보인다. 둘째로 명종 때에 일어난 을묘왜변을 성공적으로 다스린 점은 문과 무를 겸비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북방의 야인을 초무한 경험까지 더하여 국방에 대한 많은 대책을 제시한 점, 비변사를 상설기구화하는 데에 기여한 점은 문무겸전과 행정능력에서 이준경의 기여가 매우 현저하였음을 보여준다. 셋째로 명종 사후에 선조로 이어지는 승계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점이다. 당대까지의 조선 역사에서 국왕의 사망 당시에 후계가 정해지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소란 없이 국왕의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고명대신으로서 이준경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넷째로 무엇보다 이준경은 새로운 시대, 즉 이전까지의 구시대를 마감하고 사림의 시대를 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이다. 훈구와 사림의 교체기였던 명종 후반과 선조 초반의 시기는 구시대의 질서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시기였다. 과거의 척신, 훈신과 연관되어 있던 인물들과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신진의 사류들이 뒤섞이어 혼란하던 시기에 필요한 것은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이었다. 이러한 점진적인 개혁에서 필요한 점은 국왕과 대신, 신진의 사류까지 포함하여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차선의 정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비방도 없을 수 없었다. 이준경이 태어나고 주로 살았던 시대는 조선전기의 모순이 극대화되었던 시기였고, 그 때문에 대안을 찾는 데에 더욱 갈증이 컸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준경이 제시한 방법은 그 갈증을 모두 채우기에는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다음시대를 위해 거쳐 가야 할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1019C 말 한중(韓中)국경문제의 발단과 교섭

저자 : 김택중 ( Taek Joong Kim )

발행기관 :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 : 한국사상과 문화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0 페이지 : pp. 253-27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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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19세기 중엽 이후 한중양국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과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중양국 간의 국경교섭을 ``한중국경문제의 발단``과 ``한중국경문제의 교섭`` 두 주제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한중국경문제의 발단``에서는 한중국경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한국인의 간도(間島) 이주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인의 간도 이주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작용하고 있다. 첫째 17세기 중엽 중국을 지배한 청국(淸國)이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지역 일대에 봉금정책(封禁政策)을 실시하여 간도지역이 황무지로 변하였다. 둘째 19세기 중엽 이후 조선의 정치실정과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하면서 한인(韓人) 유치정책을 실시하였다. 셋째 러시아의 극동진출에 대응하여 중국이 동북지역을 중시하여 개방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대내외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인이 간도지역으로 대량 이주하면서 한중양국 사이에 간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국경 분쟁과 영토 분쟁이 발생하였다. ``한중국경문제의 교섭``에서는 19세기 말 한중양국 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주요한 국경교섭을 순차적으로 살펴보았다. 제1차 국경교섭은 1885년에 실시된 을유감계(乙酉勘界)로 이때 한중양국은 두만강과 토문강(土門江)의 진위와 두만강의 원류에 대해 교섭하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제2차 국경교섭은 1887년에 실시된 정해감계(丁亥勘界)로 이때 한중양국은 두만강과 토문강이 본래 하나의 강이라는 점에 합의하였으나 두만강의 원류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그 이후 한중국경과 간도 영유권은 1909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이 청국(淸國)과 소위 간도협약을 통해 임의로 중국에 양보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간도지역을 둘러싼 한중양국의 국경교섭은 한중양국 간 정식으로 합의된 적이 없는 미완(未完)의 역사문제이다. 따라서 한중국경교섭은 중대한 역사문제로 앞으로 계속 검토하고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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