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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AN - BAEKJ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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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75)~34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314
마한백제문화
34권0호(2019년 1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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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후보

1백제도성(百濟都城)과 익산(益山)

저자 : 최완규 ( Choi Wan-gyu )

발행기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마한백제문화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35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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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에 B.C.18년 한강유역에서 건국하여 금강유역의 熊津(公州), (扶餘)로 천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에서 서해로 흐르는 한강과 금강을 북쪽에 두고 자연지리적인 유리한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도성을 축성하고 있으며,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王都文化를 지역에 남기고 있으며, 都城의 構造나 왕실의 묘제에서도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계획적으로 조성된 사비도성의 경우는 앞선 한성이나 웅진시기와 다른 도성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바로 외곽성인 나성축조가 그것이다. 또한 궁궐의 배후성으로서 유사시 피난성 성격을 가진 부소산성이 주목되는데, 아마 궁궐의 호위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나성 전체를 관할하면서 순찰이나 성곽 보수 등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예는 익산(가칭)도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도성 주변에 산성을 외곽성으로 배치하고 자연하천인 옥룡천과 부상천을 내성과 같은 역할로 이용하고, 그 중심에 백제도성 최초로 궁성을 축조하고 있다. 이러한 도성 배치는 앞선 세 지역의 도성에 비해 완전한 도성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한 궁성을 중심으로 내성에서 도로유구가 발견되고 있어 궁성으로 중심으로 조성된 도시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종묘 성격의 제석사나 제사유적인 신동리 유적의 예를 보면 周禮 考工記의 '左廟右社'의 도성배치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도 확인된다.
또한 익산은 고대 도성의 구성요소인 彌勒寺, 帝釋寺, 雙陵, 城郭 등 고고유적들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백제말기 천도사실을 뒷받침하는 문헌기록도 남아 있어서 익산 역시 백제 왕도였음이 증명된다. 천도와 관련하여 논쟁이 있지만, 도성 구조에서는 어느 지역보다 완벽한 방어체계와 백제도성 최초로 궁성이 건설된 점에서 백제도성의 완전성을 살필 수 있다. 백제는 왕성 중심의 도성체계에서 점차 변천을 거쳐 익산도성에 이르러 외곽성과 내성, 그리고 궁성을 모두 갖춘 완전한 도성체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Baekje Kingdom, which was recorded in 『The Chronicles of the Three Kingdoms (三國史記)』to have been founded over the Hangang river basin in the 18th century B.C.E. and to have transferred its capital to Ungjin (熊津) in Gongju and to Sabi (泗沘) in Buyeo over the Geumgang river basin, had built the capital fortresses by making the most of natural geographical conditions, with the Hangang and Geumgang rivers flowing from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to the West Sea in the north. Depending on the period, the kingdom left behind different cultures of capital fortress as well as unique characteristics in the structure of the fortress and royal tomb system in the area.
In particular, the planned capital fortress of Sabi shows a different form of fortress from those of previous Hanseong or Woongjin periods, since an outer castle Naseong (羅城) was constructed there. Besides, noteworthy is Busosanseong which was a backup castle for the palace and is thought to have played a role not only as the castle for evacuation in emergency but also as the escort of the palace. It is also believed to have served as a center for patrols and repairs while controlling the entire Naseong.
The same example is well illustrated in Iksan capital fortress (tentative name). A fortress was constructed there as an outer castle surrounding the capital fortress, utilizing the natural streams such as Okryongcheon and Busangcheon as an inner castle, and the palace was constructed in its center for the first time in the case of Baekje's capital fortresses. This kind of layout for a capital fortress has rather complete form as a capital fortress than the previous ones in the three districts. In addition, remains of roads have been discovered in the inner castle around the place, making it possible to figure out the shape of a city formed with the palace in the center. In case of the relics particularly from Jeseoksa Temple characteristic of royal ancestral shrine and Sindong-ri relics characteristic of ancestral rites, it could be confirmed that they are faithfully following the arrangement of the capital fortresses according to 'royal ancestral shrine to the left and royal court to the right (左廟右社)' as specified in Zhouli Kaogogongji (周禮考工記).
In addition, Iksan not only retains in good condition the indigenous elements of ancient capital fortress such as Mireuksa Temple (彌勒寺), Jeseoksa Temple (帝釋寺), Twin Royal Tombs (双陵), fortresses (城郭), etc. which are some of components of the ancient capital fortresses, but also has documentary records supporting the fact that Baekje transferred its capital to Iksan in the late period. Although there still are controversies over the issue of capital transfer, it is possible to fully prove Iksan as the capital of Baekje, in that it has the perfect defense system and the first royal palace of Baekje was built there. Baekje seems to have a complete system as a capital fortress in Iksan with all of its outer castle, inner castle and royal court, which had gradually been transformed from a simple royal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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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제 웅진말기 정국안정과 『열반경(涅槃經)』

저자 : 길기태 ( Kil Ki-tae )

발행기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마한백제문화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6-62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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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은 웅진기 왕실이 혼란이 지속되던 시기에 즉위하고 있다. 웅진기 백제의 왕실은 동성왕대 잠시 안정을 찾는 듯하였으나, 동성왕의 시해는 또 한 번 왕실에 혼란을 가져왔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왕위에 오른 무령왕의 당면 과제는 정국의 안정을 통한 왕실의 혼란을 종식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무령왕은 즉위 후 대내적으로 경제기반의 확충 및 농업노동력 확보 등을 통한 내정의 안정을 추구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양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고구려와의 전투를 통해 한강유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가야지역의 영토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국안정의 사상적 기반으로 『열반경』이 주목된다.
무령왕이 즉위하던 시기 동아시아는 『열반경』이 사상적 대세로 자리하고 있었다. 중국 남조의 양은 물론 고구려도 승랑의 사상에서 알 수 있듯이 『열반경』이 수용되어 전개되고 있었다. 『열반경』에서 강조하는 것이 佛身常住의 사상이며, 이는 佛性論으로 연결된다. 무령왕은 이러한 사상적 내용을 백제에 적용하고자 하였을 것으로 본다.
양 무제도 통치의 사상적 기반을 『열반경』에 두고 있었다. 『열반경』은 양 무제가 주장하는 「신불멸론」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신불멸론」은 전통사상은 물론 유가와 도가도 포용하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여준다. 당시 토착신앙은 물론 유교와 도교가 불교와 공존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이러한 양 무제의 「신불멸론」의 기조는 백제에서도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무령왕과 성왕 대에 토착신앙은 물론 유교와 도교가 불교와 공존하는 모습에서 추론된다.
『열반경』의 불신상주는 恒常性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무령왕의 骨族意識 강조는 항상성과 관련이 있다. 무령왕의 골족의식 강조와 항상성의 관련성은 무령왕의 태자 淳陀란 이름을 통해서도 추론된다. 순타는 『열반경』의 순타품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반경』의 항상성은 정국을 안정시키는 사상적 배경이 되고 있다.


King Muryeong inaugurated when the chaos of the Era of Woongjin persisted. The administration tended to stabilize during the reign of King Dongseong, but the assassination of King Dongseong created a turmoil in the palace once again. King Muryeong confronted a challenge to settle the admin­istration when he was inaugurated.
King Muryeong externally pursued a hard-line policy. He reinforced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Liang Dynasty and attempted to broaden the territories to the Han River area by battling against Goguryeo. He also intended to secure territories in the Gaya region. He studied 『Nirvana sutra(涅槃經)』for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to settle the administration.
When King Muryeong was inaugurated, 『Nirvana sutra(涅槃經)』was the mainstream philosophy in East Asia. The Liang Dynasty of southern China and Goguryeo had adopted 『Nirvana sutra(涅槃經)』as you can see in the philosophies of Seungnang. 『Nirvana sutra(涅槃經)』emphasizes “Buddha in the Body (Bulsinsangju)” which relates to the Theory of Nature of Buddha. King Muryeong intended to apply the relevant principles to Baekje.
Wudi Liang(梁武帝)'s philosophical foundation for administration was also 『Nirvana sutra(涅槃經)』. 『Nirvana sutra(涅槃經)』was related to Wudi Liang(梁武帝)'s 「Theory of Invincibility of Soul(神不滅論)」. Also, the 「Theory of Invincibility of Soul(神不滅論)」showed the philosophical openness to adopt the traditional philosophies and even Confucianism and Taoism. At that time, native religions al-lowed Confucianism and Taoism to coexist with Buddhism. It seems that the 「Theory of Invincibility of Soul(神不滅論)」was adopted by Baekje, considering that Buddhism coexisted with not only with the native religions but also with Confucianism and Taoism,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and King Seong in Baekje.
“Buddha in the Body (Bulsinsangju)” of 『Nirvana sutra(涅槃經)』is another name for constancy. Also, King Muryeong's emphasis of Royal class(骨族意識) was based on constancy. The relativity between King Muryeong's emphasis of Royal class(骨族意識) and constancy can be assumed by the name of King Muryeong's prince, Sunta. Sunta seems to have originated from 「Suntapum(純陀品)」 of 『Nirvana sutra(涅槃經)』. Also, constancy of 『Nirvana sutra(涅槃經)』became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for the settlement of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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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성(水城)과 미즈키(水城)의 관련성에 대하여 -고(故) 전영래 선생의 백제부흥운동 연구를 중심으로-

저자 : 이다운 ( Lee Da-un )

발행기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마한백제문화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4-93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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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故 전영래 선생이 전북의 고대산성조사보고서를 편찬하면서 제시한 지도에 기초해 정읍·부안 일대의 백제부흥운동 관련 방어체계와 일본 다자이후(太宰府) 일대에 나당연합군의 침략에 대비해 구축한 방어체계 속에서 나타나는 수성(水城)과 미즈키(水城)를 중심으로 그 관련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663년 백강구 전투의 패전으로 백제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일본 북부 규슈에 쌓은 미즈키, 오노 성(大野城), 기이 성(基肄城)은 모두 다자이후라는 관청을 지키기 위해 쌓은 방어시설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오노 성과 기이 성은 백제의 고관이었던 달솔 억례복류와 달솔 사비복부가 665년에 축조하였는데, 664년에 축조한 미즈키도 백제 유민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방어체계는 백제부흥운동의 격전지 정읍·부안에서도 확인된다. 바로 주류성에 해당하는 우금산성, 중방성에 해당하는 고사부리성, 그리고 수성 등이다. 미즈키가 다자이후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하였듯이 수성도 중방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하였다.
이러한 추정에는 이곳이 백제부흥운동의 격전지라는 전제 조건이 뒤따르는데 전영래는 일찍이 우금산성을 주류성, 동진강을 백강에 비정하였다. 특히 우금산성에 인접한 고청림사지에서는 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중앙의 기와 제작기술로 만든 양질의 수막새가 출토되고 있어 우금산성이 주류성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백제는 지방을 5방으로 나누고 장관직으로 달솔의 관등을 가진 자를 파견하였다. 다자이후의 방어체계를 구축한 백제 유민도 관등이 달솔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즉 중방성의 지방장관 달솔이 백제부흥운동 시기에 구축하고 경험한 방어체계를 다자이후에 적용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In this paper, a research was mad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seong (水城) that was constructed as part of defense system for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in Jeongeup and Buan, and the Mizuki (水城) that was built in preparation for invasion of Shilla-Tang allied forces against Dazaifu (太宰府) area of Japan, based on the map which the late Mr. Yeongrae Jeon presented for compiling a report on the ancient mountain fortresses in Jeonbuk area.
Mizuki, Ono Castle (大野城) and Kii Castle (基肄城) were built all in Kyushu in northern Japan for defending the government office Dazaifu after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ended in failure following the defeat of the battle at Baekgang-gu in 663. According to 『Nihon Shoki (日本書紀)』, Ono and Kii Castles were built in 665 by Dalsol Eokryebokryu and Dalsol Sabibokbu who were Baekje's high officials. The Mizuki constructed in 664 was also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y Bekje's migrants. Such defense system as this is confirmed in Jeongeup and Buan, too, the fiercest battle place of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It includes Ugeum Mountain Fortress which is equivalent to Juryu Fortress, Gosaburi Fortress which is equivalent to Jungbang Fortress and Suseong. Just as Mizuki was built to defend Dazaifu, the Suseong was also constructed to defend Jungbang Fortress.
This way of presumption entails the premise that this was a fierce battle place for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Yeongrae Jeon earlier compared Ugeum Mountain Fortress to Juryu Fortress and Dongjingang River to Baekgang River. In particular, high-quality convex tiles made by the tile making technology of the central government which was rarely seen in the province were unearthed from the site of Gocheonglim Temple, adjacent to Ugeum Mountain Fortress, supporting the view that Ugeum Montain Fortress was Juryu Fortress.
Baekje divided the provinces into five Bangs and dispatched to each Bang an official titled Dalsol which corresponded to the rank of ministerial office. This seems to be relevant to the fact that the Baekje migrant who constructed the defense system of Dazaifu was a Dalsol. That is, it is highly likely that Dalsol, the provincial minister of Jungbang Fortress, applied his experiences of constructing the defense system during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to Dazaifu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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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공학적 분석을 통한 벽골제의 축조과정 복원

저자 : 손수원 ( Son Su Won ) , 김진만 ( Jinman Kim )

발행기관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마한백제문화 3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4-117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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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등과 같은 많은 저수지 제방이 오랜 세월을 견디며 현재까지 유지되고있다. 이러한 저수지 제방같은 수리시설이 오랜 기간동안 무너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고대에도 높은 수준의 토목기술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 중에서 김제 벽골제는 330년에 만들어지고 790년에 증축된 아주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저수지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유적지 부분이 소실되었다. 그 후, 1975년부터 현재까지 김제 벽골제에 대한 조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문의 축조방법, 제방 성토방법과 규모, 시굴조사, 제방의 기능파악, 도수로의 존재유무 등 다양한 정보가 조사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기존에 조사되었던 벽골제의 축조기법을 바탕으로 토목공학에서 사용되는 유한요소해석 방법을 이용해 다른 각도로 접근하여 분석해 보았다. 벽골제의 고고학적 자료를 분석하여 지반의 토층을 토목공학적으로 분류하였다. 분류된 토층으로 모델링을 하여 컴퓨터 수치해석을 수행하였으며, 그 결과를 통해 저수지 제방의 안정성과 침투형상을 분석하였다. 기존 발굴조사를 통해 밝힌 중심거의 축조 과정은 안정성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었으며, 축조 단계에 대한 특이점은 없었다. 저수지 제방 사면에 대한 침투해석 결과, 투수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실트질 및 부엽층으로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현재 추정한 것보다 좀 더 경사가 있거나 제방의 높이가 더 높았어도 안정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In Korea, many reservior embankments, such as Gimje Byeokgolje, Jecheon Uirimji, Miryang Su­sanje, have remained for many years. These reservoir facilities can be maintained for a long time because of the high level of civil engineering technologies in ancient times. Among them, Gimje Byeokgolje is very old and large reservoir constructed in 330s and expanded on 790s. In modern times, however, many historic sites were lost during the Japanese rules. Since 1975s, the Gimje Byeokgolje has been continuously investigated. In addition, various information such as construction method of floodgate, embankment construction method and size, trial digging survey, fuction of the embankment, and the existence of the raceway were investigated.
In this paper, based on the construction technique of Byeokgolje previously investigated, the finite element analysis method used in civil engineering was approached and analyzed from different view­point. The archaeological data of Byeokgolje were analyzed and classified into civil engineering. Com­puter numerical analysis was performed by modeling the classified soil layers, and the stability and infiltration phases of reservoir embankment was analyzed. The construction process of the Jungsimgeo through the existing excavation research did not have much problem in terms of stability, and there was no singularity about the construction stage. As a result of infiltration analysis on reservoir embank­ment slope, infiltration was made into silty and organic horizon soil layers with relatively low perm­eability coefficient. It was judged that it would be stable even if it was more inclined or higher than the estimated slope and h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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