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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 update

Journal of Japanology

  •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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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598-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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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1)~50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680
일본학
50권0호(2020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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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쪽발이들'의 성장 서사

저자 : 박광현 ( Park Kwanghyo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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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2세 귀화인 야마무라 마사히로(양정명)가 1970년 10월 6일에 분신자살을 했다. 그 자살의 이유를 담은 「항의·탄원서」이라는 제목의 유서를 남겼다. 이 유서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린 유고집 『목숨이 다하더라도』이 그 이듬해에 출간되었다. 거기에 재일조선인 작가 이회성은 「두 조국 소유자의 절규」라는 제목의 서문를 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52년 이후 일본사회에서 조선인의 일본 귀화가 중요한 사건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더불어 그에 따른 동정과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그 유고집 서문의 저자인 이회성은 그 같은 해에 이 사건을 허구화하여 「반쪽발이」라는 중편을 발표한다. '그 사건'이 '영원히 나의 기억 세계'에 내재하고 있음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회성은 재일조선인 2세의 아이덴티티를 둘러싼 '곤란과 위기'를 해소하는 장소로서 조국을 직접 방문하는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냈다. 특히 그것은 제일조선인 2, 3세들의 성장서사(교양소설) 중에 자주 사용되는 서사 모델이 되었다. 그때의 성장서사 안에서 조국은 아이덴티티의 장소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Yamamura Masaaki(山村政明, Yang Jeong-myeong), who is a naturalized person as a second-generation Korean Japanese, burned himself to death on October 6, 1970. He left a will titled 「Letter of Protest·Complaint」 that covered a reason for the suicide. 『At the End of the Life』 as a posthumous collection, which was put writing in diverse genres including this suicide note, was published in the following year. On top of it, a Korean-Japanese writer Lee Hoe-seong carried a preface titled 「The Scream of the Two-country Owner」. In the wake of this event, the naturalization of Koreans in Japan began to be highlighted as an important event in Japanese society following the year in 1952. A discrimination problem against Korean residents in Japan was raised. In addition, sympathy and interest according to it were further heightened. Lee Hoe-seong, who is a writer of the preface to the posthumous collection, fictionalizes this case in the same year, thereby releasing the medium-length story dubbed 「Banjjokbari」. He is showing what 'the event' is immanent in 'my memory world eternally' through the novel. In the meantime, Lee Hoe-seong cultivated stereotype of directly visiting the fatherland as a place of resolving 'difficulty and crisis' surrounding the identity of a second-generation Korean-Japanese. Especially, it became a narrative model that is often used among growth narratives in the second and third generations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Within the growth narrative at that time, the fatherland was like a place of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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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의 탄생과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재편(1950-1965)

저자 : 유임하 ( Yoo Im-ha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4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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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0년부터 1965년 한일조약 체결 직전까지 '재일조선인'의 스포츠커뮤니티를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전쟁 발발(1950.6.25)과 함께 '재일조선인'의 삶과 사회는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으로 인해 일본사회는 전쟁물자 생산과 특별한 호황이 불었고 경제재건과 회복의 계기를 마련했다. 전쟁이 휴전체제로 돌입하자 이때부터 재일조선인사회는 남북한과의 연계를 강화하며 민족단체의 조직 재건에 돌입했다. 이러한 추세 속에 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 재건도 빠르게 전개되었다. '전후'로부터 1950년 6.25한국전쟁 직전까지가 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의 기원 형성의 시기였다면, 1950년부터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는 1965년까지는 일본사회가 고도성장기로 진입하며 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 또한 강한 모국지향성을 가진 민족단체의 등장과 함께 조직화되는 변화의 시기였다. 이 글에서는 총련계와 민단계에서 작성한 재일조선인들의 스포츠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재일조선인들의 스포츠조직과 활동을 재구성하고, 이를 토대로 재일조선인 스포츠커뮤니티가 일본사회와 어떻게 연계되었고 남과 북과는 어떤 연관을 맺으며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This This study aimed to investigate sports communi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from Korean War in June of 1950 to just before th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in 1965. Life and socie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were faltering with Korean War(June 25th, 1950). On the other hand, war material production had a boom in Japan and Japanese society could have the recovery and reconstruction of economy during Korean War. The socie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started to strengthen the relationship with South and North Korea and began to have reconstruction of national association when cease-fire system started. The sports communi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developed rapidly for reconstruction. From postwar to Korean War in June, 25th of 1950, it was the beginning of sports communi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And from 1950 to 1965 when basic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was done. This period was explaned that there were so many changes in sports community by organizing with strong national association and Japanese society started to have high growth. This study reviews sports organization and ac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based on studies related to their sports. With this review, it is investigated how sports communi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is related to Japanese society and how it is developed with relationship with South and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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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본의 외국인 참정권 논쟁의 성격

저자 : 이진원 ( Lee Jinwo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7-7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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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본의 외국인 참정권 정책의 흐름과 논의의 쟁점의 성격을 분석하였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 외국인 참정권 정책의 쟁점은 구 식민지 출신자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할 것인가 아닌가였고 결국은 호적조항을 법규에 추가하면서 구 식민지 출신자의 참정권을 박탈하였다. 1980년대 국제화 시대 이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외국인 참정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자신들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하였다. 이 때의 외국인에게 참정권 인정의 논쟁을 보면 참정권의 기준을 국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적과 무관하게 주민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즉 패전 후, 일본의 참정권은 민족권이라는 생각이었고, 국제화시대 이후에는 국민권(국적자)이라는 생각과 주민권(생활자)라는 생각이 존재하였다. 결국 참정권은 국민권(국적자)이라는 생각이 정치적 힘을 가지면서 외국인의 참정권 인정은 실현되지 않았다. 일본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This paper analyzes the flow of policy and discussions on foreign suffrage in Japan. After the defeat in 1945, suffrage of foreigners in Japan was concerned with suffrage for those who came from colonies. The Japanese government eventually stripped suffrage of colonists. The basis was that the family register was not in Japan. Since 1980, the world has entered the age of globalization. Japan has also begun to think seriously about the recognition of foreign suffrage.Foreigners residing in Japan have also been asserting their suffrage. At that time, the criterion for determining whether to grant suffrage to foreigners was whether or not to have Japanese nationality. There was a conflict between the assertion that suffrage should be granted only because of Japanese nationality and the assertion that suffrage should be granted to foreign residents who do not have nationality. In short, right after the defeat, Japan's suffrage was based on the idea that it was a national right. After globalization, there was a conflict between the idea of the Japanese people's rights and the ideas of the residents' rights. In the end, Japan's suffrage for foreigners was fully enforced by the assertion that suffrage is the right of the Japanese people. The claim of residents' rights did not materialize.
It can be said that Japan still could not overcome nationalism(민족주의) and statism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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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자이니치' 강상중의 자서전과 일본 사회

저자 : 이한정 ( Lee Han-jung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9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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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재일 강상중』이라는 자서전이 일본 사회와 공명할 수 있었던 배경과 '자이니치'로서의 강상중이 일본 사회와 대면하는 자세를 살폈다. 『재일 강상중』은 자이니치 강상중이 자기 이야기를 저술해 일본 사회에 공표하는 행위로 '쓰는 나'와 '읽는 당신' 사이의 상호 작용의 관계 속에 성립했다. '읽는 당신'은 동일한 처지의 자이니치와 '일본어 공동체' 독자였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내부의 '다문화공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2000년대 들어 자이니치 자서전 붐과 맞닿았다. 강상중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이진희의 자서전에는 개인 '이력'과 '업적'을 중심으로 '시대'와 '민족'을 말한다. 반면 강상중의 글은 일본 사회에 보다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어머니를 메인에 둔 '가족 스토리' 경향이 농후하다. 『재일 강상중』은 '민족 차별'의 문제를 후경에 두고 한 인간이 '사회'라는 제도, '시대'라는 굴곡 속에서 만나는 '분열'을 말한다. 분열은 일본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되며 극복된다. 강상중의 자서전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동일한 갈등을 안는 일본 독자/대중의 스토리와 등치되는 효과를 낳았다. 강상중의 자전적 글에서 애써 '탈근대'와 '탈민족주의'를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강상중의 자서전은 '일본 사회'와 '자이니치'가 서로 무엇을 교환할 수 있고, 무엇을 절충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자이니치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묻고 있는 책이다. 그 가능성은 일본 사회에 '개별 발화'를 얹는 '디아스포라 민족주의'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is paper examined the background of how the autobiography of “Zainichi”(2004) resonated with Japanese society and the attitude of Kang Sangjoong toward Japanese society as a 'Zainichi.' Kang Sangjoong's act of writing his story and announcing it in Japanese society was established within the interactive relationship between 'me who writes' and 'you who reads.' 'You who reads' referred to Zainichi and 'Japanese language community' readers who were put under the same circumstances. The social interest in 'multicultural symbiosis,' which started out in Japan since the 1990s, came across the Zainichi autobiography trend in the 2000s. The autobiography of Lee Jinhee, published around the same time as “Zainichi” speaks of the 'time' and 'ethnic group' while focusing on 'personal history' and 'achievement.' On the contrary, Kang Sangjoong's story is a 'family story' that focuses on 'mother,' which is approached more intimately in Japanese society. “Zainichi” places the issue of 'ethnic discrimination' in the background and talks about the 'division' of a person within the system called 'society' and ups and downs of the 'time.' The division is healed as Kang Sangjoong meets and communicates with people in Japanese society. The autobiography of Kang Sangjoong shows the anxiety of an individual about life, and ordinary Japanese readers could sympathize with it. There is no need to try reading the autobiographical writing of Kang Sangjoong in the context of 'post-modernism' and 'post-nationalism.' “Zainichi” is a book that seeks the interaction between Zainichi and Japanese society with the 'amateur' pose explained by Edward Said. A Zainichi speaks with an attitude of 'diaspora nationalism' putting 'individual utterance' on Japanese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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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일 근세소설 속의 기녀와 유녀

저자 : 김난주 ( Kim Nan-ju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7-11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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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전 전승의 세계, 특히나 근세문학 속에서 기녀와 유녀는 최고의 히로인이었다. 본 논문은 한일 근세소설 속에 등장하는 기녀(妓女)와 유녀(遊女)를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그 차이점을 밝혀내고 거기에 내재된 여성관 및 기녀(유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상이성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좋은 기녀(유녀)에게는 기본적으로 빼어난 용모와 함께 춤과 노래, 악기, 문학과 예술에 대한 소양이 요구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기녀들은 문학과 예술로서 남성과 교류하며 순결한 처녀성을 무기로 근세 애정소설의 히로인 자리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일본 근세소설에 등장하는 유녀들에게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그녀들은 풍부한 기교와 센스로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하며 성의 여신으로 군림한다.
한국 근세소설의 세계에서 기녀들은 자신의 배필을 스스로 선택하여 일부종사하는 한편, 남성의 성공에도 크게 기여하며 한 남자의 아내, 나아가 존귀한 자식의 어머니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에 반해 일본 근세문학 속 유녀들은 자신의 성을 만인의 남성에게 열어젖히며 에로스의 여신으로서의 삶을 향유하지만, 그녀들에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길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근세 연극 속에서 이들 유녀의 사랑은 정사(情死)라는 죽음의 혼례식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그녀들에게 모성은 허락되지 않았다.


In the world of transmission of Korean-Japanese classics, especially in modern literature, gisaengs and prostitutes were the best heroines. This paper examines gisaengs (妓女) and prostitutes (遊女) appearing in modern novels in Korea and Japan from a viewpoint of comparative literature to reveal the differences and explore the differences in the view of woman and social perceptions of gisaengs (prostitutes) inherent therein. For excellent gisaengs (prostitutes), attainments of dance, singing, musical instruments, literature, and art were required along with basically is outstanding appearances. In particular, gisaengs in the Joseon Dynasty exchanged with men with literature and art, and occupied the place of heroines in modern love novels using pure virginity as a weapon. On the other hand, for the prostitutes appearing in modern Japanese novels, the role as sexual objects was emphasized and they reigned as goddesses of sex, dealing with numerous men with abundant techniques and senses.
In the world of Korean modern novels, gisaengs select their own spouses and serve but a single husband, while also contributing greatly to the success of men, and take the place of a man's wife and even the mother of precious children. On the other hand, the prostitutes appearing in modern Japanese novels open up their sexuality to all men and reign as shared sexuality and the goddess of Eros, but maternal instinct was never allowed to them, and the only way for them to become a man's wife was holding a wedding ceremony of death termed death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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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재일코리안 민족교육운동에 출현한 '통일' 공간 - 1980-2000년대 민촉협운동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웅기 ( Kim Woongk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7-14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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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활성화된 범(汎)재일코리안 차원으로 전개된 오사카 민족교육운동에 의해 정치적 중립 공간으로서의 '통일'이 출현하는 과정과 그것이 민족교육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논고다. 이 같은 양상은 남북 분단국가 양 측의 정치가 강도 높게 개입하는 재일코리안사회에서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1972년 이후 조선학교 교사 출신 민족강사들이 주축이 되어 수적으로 확대해 나간 나가하시(長橋)형 민족학급의 등장은 니시나리구(西成區)는 물론 재일코리안 집주지역인 이쿠노구(生野區)를 비롯한 오사카 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민족학급을 둘러싼 민족교육운동은 민단, 총련이라는 분단국가에 종속하는 민족단체 주도가 아니라 지역주민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출발하며 전개됐던 것이 특징이다. 민족강사 처우개선과 제도화, 외국인교육에 관한 행정 차원의 지침 책정, 민족학급 증설 등을 목표로 설정한 자생적 운동단체들은 교섭력 강화를 위해 1985년 상설 사무국 기능을 갖춘 민족교육촉진협의회(민촉협)로 규합되었다. 사무국의 존재는 민촉협이 행정교섭의 주체가 되어 끈질기게 교섭을 벌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운동방식을 통해 민촉협은 많은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이 배경에는 정치적 '통일' 공간의 출현이 있었다. 다양한 재일코리안의 정치적 속성들을 망라한 공익에 부합하는 과제 즉 '모든 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이라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결집했던 결과물이다. 민촉협 관계자들과 인적관계로 연계되는 민단은 별도 채널로 행정과의 교섭을 벌이는 한편, 총련계 민족강사단체는 교실 활동 당사자 입장으로 민촉협에 참여했다. 이로써 민단과 총련은 민촉협을 매개체로 공통의 목적을 향해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민족조직 측에서도 성공요인을 찾을 수 있다. 민단은 민족강사 35년 경력을 가진 김용해(金容海)를 영입하여 그가 가진 행정 측과의 교섭능력과 민촉협으로부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총련에 의한 직접적 관여에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조선학교 교사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오사카시민족강사회는 박정혜(朴正惠)의 억제적 리더십으로 정치적 신조가 다른 재일코리안들과의 공조와 연대가 가능해졌다.


This paper pursues the reasons why Zainichi Koreans' heritage education movement in the 1980-2000s could achieve significant progress. Stimulated by Nagahashi-styled Minzoku Gakkyus (heritage education classes for Zainichi Koreans at Japanese public schools), Zainichi Koreans of the other districts of Osaka started demanding Osaka's educational bureau on reactivating existing heritage education classes for Zainichi children or increasing the number of it. In order to reinforce the negotiation power, Zainichi Koreans involving in civil movements in this field established a unified organization called Minsokkyo in 1985.
These Zainichi Koreans could stay away from the political interventions by the two Korean nations because their focus stood far closer to the perspectives of residents in Japan than that of the nationals of two Koreas. Since Minsokkyo was operated by these people, the movement could obtain a wide range of support from not only Zainichi Koreans with a variety of political backgrounds but also Japanese society.
Minsokkyo's slogan, “Heritage education for all Zainichi children!” met their common welfare. In other words, the unified organization succeeded in creating a public realm. The public realm made it possible for both Mindan and a group of Zainichi teachers influenced by Chongryon to join the movement. The two confronting organizations could head for the common goal without their direct communications. In this sense, one can say that single-issue politics led by politically neutral Zainichi Koreans is a key to success in the civil movements of the whole Zainichi Kor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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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재일코리안과 야키니쿠(焼肉) 산업 - 일본 패전 이후 암시장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

저자 : 박미아 ( Park Mi Ah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5-17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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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 외식산업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야키니쿠' 식당은 해방 후 일본 곳곳에서 시작된 암시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인들은 전통적으로 소, 돼지의 내장육과 정육을 즐겨 먹었고, 고향에서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답습한 재일조선인 역시 그러하였다. 패전 직후의 암시장에서 재일조선인들은 통제품목에서 제외된 내장요리를 팔기 시작했고, 절대적인 식량 부족 상태에 직면했던 일본인들은 영양과 맛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요리를 접하게 된다. 초기에는 내장육, 즉 '호루몬'으로 시작했지만 정육 통제가 해제되는 1950년대 이후 호루몬요리는 야키니쿠로 발전하게 된다.
재일코리안 사회에서 야키니쿠 식당은 관동의 명월관, 관서의 식도원이 그 효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식당은 창업주의 출신배경, 운영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고 이는 재일코리안 역사를 반영하는 한 축도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이후 야키니쿠 식당은 재일코리안 사회를 중심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1940년대말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간행되었던 『解放新聞』은 그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하나의 참고자료라고 할 수 있다. 재일코리안 사회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야키니쿠산업은 오늘날 일본 주류 사회에서도 참여하는 주요 외식산업으로 성장하였고, 이는 한일 양국의 식문화 결합에 재일코리안의 역할이 중심적이었음을 보여주는 한 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Yakiniku' restaurants account for a significant portion of Japan's dining industry. Yakiniku is a representative menu of ethnic foods that have settled in Japan, as it is recognized as Japanese food outside of Japan. However, in the process of forming and developing the current 'Yakiniku' industry in Japan,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Zainichi Korean, Zainichi) have played the main role. At the black markets across Japan that appeared on the ruins shortly after the World War Ⅱ, Zainichi sold intestines dishes(Horumon) as food materials, which became the basis for the 'Yakiniku' industry today. Horumon reflects the traditional diet of the Korean. Koreans enjoyed beef and meat from cattle and pigs, and so did the Korean residents in Japan, whose way of living in their hometowns.
At black market right after the defeat, Zainichi began selling internal dishes excluded from the control items, while Japanese who faced absolute food shortages. In the early days, it started with internal meat, or 'Horumon'. Since the 1950s, when meat control was lifted, the dish of 'Horumon' was developed into 'Yakiniku. Yakiniku restaurants began to be expanded throughout all over Japan.
The Yakiniku industry, which was born and grew up in a Zainichi society, has grown into a major dining industry that also participates in today's mainstream Japanese society. Which means that Zainichi had played the role of pioneer and trend-setter of the combination of Yakiniku industry betwee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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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다듬이질 하는 여인』의 게재와 배제 - 1989년 '학습지도요령'과 게재 출판사 비교를 통해 -

저자 : 박정이 ( Park Jeong-yi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3-190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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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94년·1998년 니혼쇼세키 출판사 『고교 국어Ⅰ』과 1998년 가도가와쇼텡 출판사 『고등학교 신국어Ⅰ』에 게재된 이회성 『다듬이질 하는 여인』을, 1989년 '학습지도요령' 「국어Ⅰ」 교재 항목 지시 내용과 비교분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다듬이질 하는 여인』이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게재되었다가 다시 배제된 이유를 알아보았다. 더불어 『다듬이질 하는 여인』을 게재한 두 출판사의 특징을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두 출판사의 작품 '개요부분'은 '학습지도요령' 교재 항목 중 “국제적 이해”라는 사항에 부합하고 있다. 니혼쇼세키 출판사는 1945년 일본의 식민지시대가 “패망”한 시기라고 표현하여 전쟁책임 여부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가도가와쇼텡 출판사는 “옛 도읍, 경주”라고 하여 조선의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둘째, 두 출판사의 '단어설명'이나 '연습문제'로 볼 때 '학습지도요령' 교재 항목 중 “국제적 협력”이라는 항목에 부합하고 있다. '단어설명'의 경우 니혼쇼세키 출판사는 '조선 민족', 가도가와쇼텡출판사는 '조선 문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연습문제'의 경우 니혼쇼세키 출판사가 '조선 문화'를 가도가와쇼텡이 '타민족'을 강조하고 있어 '단어설명'과 '연습문제'는 서로 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1989년 '학습지도요령' “국제이해” 및 “국제적 협력”이라는 항목에 따라 '재일'문학인 『다듬이질 하는 여인』이 선택되었다. 그런데 2006년 이후 아베정권의 교육정책은 동일한 1989년 '학습지도요령' 중 “일본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관심과 깊은 이해”라는 교재 항목에 중점을 두게 되고, 이후 『다듬이질 하는 여인』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는 배제된 것으로 본다.


This paper is analyzing the work, Lee Hoe-sung's “Kinutawoutuonna(the woman who hits a kinuta)”, which was showed in several Japanese language high school textbooks. In fact, the work was published in “High School Japan Language I” which was published by Nihonsyoseki in 1994 and 1998. The work was also showed in 1998 in “High School New Language I” published by Kadogawashoten. It is assumed that the reason why the work included in the textbook “Japan Language I” was because of “the curriculum guideline” produced in 1989, in which the concept and idea of 'international understanding'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must be included in the material of textbooks. But, there was another idea, which can be called 'increasing interest and deep understanding of Japanese culture and traditions' in the guideline. This conflicting content would determine the inclusion and exclusion of the work of Lee Hoe-sung in the textbooks. When the work was showed in the Japanese language textbook, the concept and idea of 'international understanding'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from the guideline had been emphasized. On the other hand, when it was excluded, the idea of 'interest and deep understanding of Japanese culture and traditions' was newly adapted. The work in the textbooks was explained differently in the two textbooks: firstly, whereas the chosen people are important in the 'overview' of the work from Nihonsyoseki, the chosen culture is crucial from Kadogawashoten; secondly, in the 'word explanation', whereas the chosen people was central in Nihonsyoseki, the chosen culture was emphasized Kadogawashoten; thirdly, in the 'practice problem', the two publishers showed in the opposite position, respecta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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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모노즈쿠리 지원정책을 통한 지역 중소기업 육성방안

저자 : 송정현 ( Song Jung-hyun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21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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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제조업 생산활동의 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육성은 국가적과제로 주목받고 있으나, 한국의 경우 다수의 중소기업이 제조업 생산활동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기술력 및 노하우의 축적을 통한 제조업경쟁력 강화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모노즈쿠리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현황과 성과를 분석한 이후,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오사카부에서 시행중인 모노즈쿠리 지원정책의 현황과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오사카를 방문하여 모노즈쿠리 지원정책 관련대학교수, 연구자, 관련 종사자 및 담당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모노즈쿠리 지원정책과 성과에 관한 인터뷰조사를 시행하였다. 이를 통하여 어떠한 모노즈쿠리 관련 지원정책이 시행되고 있는지, 또한 정책이 지역의 중소기업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관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교류 네트워크운영, 비즈니스 매칭, 모노즈쿠리 이노베이션 지원, 기술 연구개발 촉진 및 지식재산권 전략 지원 등 다양한 지원정책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지원정책은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Fostering SMEs that are in charge of the country's manufacturing industry production activities has attracted attention as a national task, but in Korea, despite the fact that many SMEs are engaged in manufacturing manufacturing activities, the competitiveness of SMEs is strengthened through the accumulation of SME technology and know-how. Is still insufficient. Therefore, in this study, after analyzing the current status and performance of the Monozukuri SME support policy in Japan, we intend to prepare a plan to strengthen the competitiveness of Korean SMEs.
In this study, we visited Osaka prefecture in order to understand the current status and achievements of the monozukuri support policy being implemented in Osaka Prefecture, and targeted the number of university professors, researchers, related workers and officials in charge of the monozukuri support policy. We conducted an interview survey on Kuri's support policy and performance. This methods enables to in-depth analyze what kind of monozukuri-related support policies are being implemented and how the policies have a positive effect on local SMEs. Visible results are being derived from various support policies such as operation of exchange networks, business matching, monozukuri innovation support, technology R&D promotion, and intellectual property strategy support. This support policy has great implications for Korea's SME support policy.

KCI등재

10한국한자음(韓國漢字音)의 일음절화(一音節化) 경향 - 4등운(等韻)을 중심으로 -

저자 : 李京哲 ( Lee Kyong-chul )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일본학 5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1-224 (1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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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AC의 4等韻이 SK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1音節受容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AC 4等韻의 核母音 e를 SK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音素가 존재하지 않아 jə로 대체하여 수용하였다. 이처럼 e를 i母音을 포함하는 jə로 대체하여 수용했기 때문에 e와 ie의 音韻上의 변별성이 확보되지 못하여 SK에서는 ie도 jə로 대체된다.
2) AC의 先韻 開口 en/t 또는 ien/t은 SK에서 e나 ie가 jə로 대체되기 때문에 SK에서 대부분 <연/열>jən/jəl로 출현한다. 또한 先韻 合口는 <우연/우열>ujən/ujəl로 수용되어야 하지만, 이는 1音節로 성립할 수 없어 合口性의 u를 脫落시키고 결국 開口韻과 동일하게 반영되었다.
3) AC의 添韻 em/p 또는 iem/p은 SK에서 e나 ie가 jə로 대체되기 때문에 SK에서 jəm/p형으로 출현한다.
4) AC의 齊韻 開口 ei 또는 iei는 SK에서 jəi형으로 주로 나타나지만, 이것이 1音節로 성립하기 어려움에 따라 jə형으로 교체된 것이 혼재한다. 또한 齊韻 合口wei 또는 wiei는 開口에 견주어 보면 <우예>ujəi로 수용되어야 하지만, 이는 1音節로 성립할 수 없어 合口性의 u를 脫落시키고 결국 開口韻과 동일하게 반영되었다.
5) AC의 蕭韻 eu 또는 ieu는 SK에서 <여우>jəu로 반영되어야 하지만, <여우>jəu는 1音節로 성립할 수 없어 <요>jo로 1音節化되었다.
6) AC의 靑韻 開口 eiŋ/k 또는 ieiŋ/k은 SK에서 <옝/옉>jəiŋ/jeik으로 수용될 것이 기대되지만, 이것이 1音節로 성립하기 어려움에 따라 1音節의 <영/역>jəŋ/jək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靑韻 合口는 <우영/우역>ujəŋ/ujək으로 수용되어야 하지만, 이는 1音節로 성립할 수 없어 合口性의 u를 脫落시키고 결국 開口韻과 동일하게 반영되었다.


The main vowel /e/ of fourth rhymes in Ancient Chinese accepted to /jə/ in Sino-Korean because Korean dose not have /e/. And /ie/ of fourth rhymes in Late Ancient Chinese accepted to /jə/ also because Korean dose not distinguish /e/ with /ie/.
Because the /e/ or /ie/ replaced to /jə/ in Sino-Korean, the /en·et/ or /ien·iet/ of opened rhyme Xian(先) accepted to /jən·jəl/ and the /em·ep/ or /iem·iep/ of rhyme Tian(添) accepted to /jəm·jəp/ in Sino-Korean. The /wen·wet/ or /wien·wiet/ of rounded rhyme Xian(先) must be accepted to /ujən·ujəl/ in Sino-Korean, but, replaced to /jən·jəl/ because the /ujən·ujəl/ can not exist as a one syllable.
The /ei/ or /iei/ of the opened rhyme Qi(齊) accepted to /jəi/ or /jə/ in Sino-Korean. The /jə/ was replaced from /jəi/ to /jə/ because /jəi/ difficult to exist as a one syllable. and the /wei/ or /wiei/ of the rounded rhyme Qi(齊) must be accepted to /ujəi/ but, replaced to /jəi/ because the /ujəi/ can not exist as a one syllable in Korean.
The /eu/ or /ieu/ of the opened rhyme Xiao(蕭) must be accepted to /jəu/ but, replaced to /jo/ because the /jəu/ can not exist as a one syllable in Korean.
The /eiŋ·eik/ or /ieiŋ·ieik/ of the opened rhyme Qing(靑) must be accepted to /jəiŋ· jeik/ but, replaced to /jəŋ·jək/ because the /jəiŋ·jeik/ difficult to exist as a one syllable. and the /weiŋ·weik/ or /wieiŋ·wieik/ of the rounded rhyme Qing(靑) must be accepted to /ujəŋ·ujək/ but, replaced to /jəŋ·jək/ because the /ujəŋ·ujək/ can not exist as a one syllable in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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