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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 in Philosopy East-West

  • : 한국동서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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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5-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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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4)~9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534
동서철학연구
96권0호(2020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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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서양 고대 신화와 철학의 '천(天)' 개념의 기원과 특징

저자 : 장영란 ( Chang Young-ra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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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천(天)의 개념과 신(神) 개념이 비교적 빨리 분화가 되어 독립되어 사용되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초기에 천 개념이 신(上帝)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후대에도 천과 신은 교체 가능한 개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천 개념이 어떻게 신 개념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우선 '천'의 현상과 법칙과 관련하여 인간은 현상적으로 하늘을 반복적으로 바라보면서 우주의 법과 자연의 질서 등의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종교의 하늘 신들은 각기 '자연천'을 비롯해 '인격천' '주재천', '도덕천'의 특징을 드러내며 '운명천'의 기능은 독립적이다. 동아시아에서도 하늘은 자연적 대상으로서 물질천의 특징이 먼저 등장하고 천체의 운행과 질서를 설명하는 '자연천'이 등장하지만 '주재천'의 특징과 중첩되어 나타난다. 다음으로 '천'의 근원과 본질과 관련하여 하늘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대상이면서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 대상이기도 하다. 하늘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관련하여 하늘에 대한 인격화 및 신격화를 통해 형성하여 하늘 신 개념이 형성된다. 동아시아의 '천'도 인격성과 주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그리스 종교와 유대-그리스도교와 비교하여 인격천으로서의 특징이 매우 약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천'의 기능과 역할과 관련하여 하늘 신은 우주의 자연 '질서'와 '법칙'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법'과 '도덕'의 지배자의 기능을 한다. 고대 그리스종교에서 하늘 신은 윤리적 주체로서 성격이 약화되어 보이지만 그리스 철학에서 특히 플라톤에 의해 강화된다. 동아시아의 중국 도덕천의 개념에서 은과 주 왕조에는 덕복일치와 길흉화복과 관련된 도덕적 주체로서 등장하지만 후대에는 약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도덕적 주체로서 '천' 개념이 약화된 것은 동서양에 공통적으로 덕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인식하면서이다. 그렇지만 동서양 모두 좋은 삶을 위한 영혼의 훈련과 수양의 개념이 발달되어 있다.


In the West, the concept of Heaven(天) and the concept of God(神) were differentiated relatively quickly and were used independently. But in East Asia, the concept of Heaven(天) was initially used closely in connection with the concept of God(上帝), and in the later generations God is also interpreted as replaceable. So we can see how the concept of Heaven(天) was used in connection with the concept of God. First of all, with regard to the phenomena and laws of 'Heaven', humans repeatedly look at the sky and form concepts such as the laws of the universe and the order of nature. The sky gods of the ancient Greek religion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Natural Heaven”, “Personal Heaven”, “Ruling Heaven”, and “Ethical Heaven”, respectively, and the function of the “Fate”(運命) Heaven is independent. In East Asia, the sky is a natural object,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Material Heaven first appear, followed by the 'Natural Heaven' that explains the operation and order of the celestial body, but overlaps with the 'Ruling Heaven'. Next, with regard to the origin and essence of the “Heaven,” Heaven is a concrete and physical object, and a transcendental and metaphysical object. In East Asia “Heaven” also has personality and subjectivity. However, compared with ancient Greek religion and Jewish-Christianism, it can be seen that the character of personality is very weak. Finally, in relation to the function and role of 'Heaven', the Heavenly God is the God who governs the natural 'order' and 'law' of the universe, and functions as the ruler of 'law' and 'morals.' In ancient Greek religion, the Heavenly god as an ethical subject seems to be weakened, but was to be strengthened by Plato. In East Asia, it appears as a moral subject in relation to the unity of virtue-moral good(德福一致) in the Eun and the Zhou Dynasty, but seems to be weakened in the later generations. As a moral entity, the concept of "Heaven" has weakened, recognizing the phenomenon that virtue-moral good do not coincide in the East and West. However, both East and West have developed the training of the soul and self-cultivation(修養) for the goal of a goo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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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역』 「진괘(震卦)」에 담긴 경 사상 연구

저자 : 허진웅 ( Heo Jin-wo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6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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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주역』 「진괘(震卦)」와 경(敬) 사상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에 있다. '경'은 유가 수양론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핵심 개념이다. '경'은 인간의 마음을 주재하고 몸을 단속하여 수양의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경'의 최종 목적은 한 인간을 성인에 이르게 하고 공동체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경' 수양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본원의 마음가짐은 두려움이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심이 아닌 도덕적인 두려움을 뜻한다. 인간은 도덕적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고,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주역』의 진괘는 우레로 인해 발생하는 두려움에 대해서 말한다. 우레는 인간에게 위협적인 자연현상이다. 인간은 자연현상을 통해 느낀 공포의 감정을 도덕적 두려움으로 치환하여 자신을 반성한다. 우레가 인간의 도덕적 두려움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 사상과 「진괘」는 '두려움'이라는 공통적인 매개체를 수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선후 관계를 따지면 우레로 인한 두려움이 발생하고, 그 두려움을 지켜나가는 것이 경의 수양이 된다. 이것은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심이 경 수양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괘」는 우레의 두려움이 인간 세상을 태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 두려움이 인간을 수양하게 하고, 수양을 완성한 인간들이 조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경 사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경은 두려움과 삼가는 마음으로 시작되며, 엄숙한 행동을 통해 수양을 완성한다. 그리고 경을 통한 수양의 완성은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진괘」의 괘·효사가 내용적 측면뿐 아니라 그 지향하는 부분에서도 경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connection between Juyeok(『周易』) 'Jin trigram(「震卦」)' and 'Gyeong(敬)' theory. 'Gyeong' is a core concept that is indispensable in Confucian self-cultivation theory. 'Gyeong' presides over the human mind and regulates the body, penetrating the beginning and end of self-cultivation. The final goal of this 'Gyeong' is to bring a human being to the state of sage and harmonize the community.
Fear is the original mental attitude of humanity which enables the cultivation of 'Gyeong'. It does not just mean fear, but rather moral fear. Human beings look back on their minds and behaviors with moral fear, and always guard against falling in the wrong direction.
The Jin trigram of Juyeok speaks about the fear caused by thunder. Thunder is a natural phenomenon that threatens humans. Humans reflect on themselves by substituting the feelings of fear through natural phenomena with moral fear. Thunder's role is to arouse human moral fear.
As such, 'Gyeong(敬)' theory and 'Jin trigram(「震卦」)' use the common medium of 'fear' as the starting point for self-cultivation. If you follow the stern relationship, you will experience fear due to thunder, and keeping that fear will be the cultivation of 'Gyeong'. This shows that awe of natural phenomena can be one of the causes of the cultivation of 'Gyeong'.
'Jin trigram' says that the fear of thunder makes the human world peaceful. This is because the moral fear of humanity cultivates human beings, and the human beings who complete the cultivation make a harmonious community. The same goes for 'Gyeong', which begins with fear and careful mind, and completes self-cultivation through solemn action. The completion of self-cultivation through 'Gyeong' enables the harmonious operation of human society. This is the part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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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정조의 '심성론'과 '수양론의 전개

저자 : 안효성 ( Ahn Hyo-sou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1-8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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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정조의 심성론(心性論)과 수양론(修養論)에 관한 연구이다. 유학에서 심성론과 수양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정조의 심성론과 수양론을 살펴보는 것은 유학자 정조의 철학과 학문 태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본고에서는 정조 생전에 조선 학계의 쟁점이었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과 성범심동부동설(聖凡心同不同說)의 주제였던 본연지성(本然之性)과 명덕(名德), 본심(本心) 개념을 중심으로 정조의 심성론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미발(未發) 개념을 통해서는 정조의 수양론이 전개되는 계기를 살펴보았다.
첫째, 정조는 본성론에 있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의 천리가 만물에 보편적으로 분유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본연지성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도덕본성의 자연적 평등성을 주창한 그의 본성론은 낙학(洛學)에 가깝다. 둘째, 정조는 명덕을 본심과 일치시키며,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본연의 순선한 본심을 가지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람마다 본심의 발휘가 다르다고 보았다. 그의 본심론은 낙학과 호학(湖學)을 절충했다. 셋째, 정조는 현실적 본심론의 연장에서 사람은 타고난 자질에 따라 미발의 본심 상태도 다르다고 보았다. 그의 미발론은 호학에 가깝다. 호학과 낙학을 종합한 정조의 심성론과 미발관은 그의 수양론의 독특한 계기를 형성하였다.


This study is on Jôngjo's theory of mind and self-cultivation. In Confucianism, the status of mind and self-cultivation is high. Therefore, studying Jôngjo's mind and study is an important basis for understanding the philosophy and academic attitude of the Confucian scholar Jôngjo. During the reign of King Jôngjo, arguments such as "Inmulsônglon(人物性論)" and "sôngbômsimlon(聖凡心論)" were fierce. In this paper, we have outlined Jôngjo's mind theory, centering on the concept of Bonyônjisông(本然之性), Myôngdoek(明德) and Bonsim(本心), which were the main topics of the arguments. And through the Mibal(未發) concept, we looked at how Jôngjo's self-cultivation theory developed.
First, Jôngjo's theory of nature supported the theory that the five moral principles [仁義禮智信] universally shared in all things are Bonyônjisông(本然之性). His argument for the natural equality of moral nature was close to Rakhak(洛學). Second, Jôngjo understood Myôngdoek(明德) as Bonsim(本心). In theory, Jôngjo thought that everyone had the same completely good Bonsim(本心), but in reality, each person displayed a different Bonsim(本心). His theory of Bonsim(本心) compromised the theory of Rakhak(洛學) and Hohak(湖學). Third, in the extension of the realistic theory of Bonsim(本心), Jôngjo thought that a person's state of Mibal(未發) Bonsim(本心) depended on his natural qualities. His theory of Mibal(未 發) was close to Hohak(湖學). King Jôngjo's theory of mind and Mibal(未發), which synthesized the theories of Hohak(湖學) and Rakhak(洛學), formed a unique momentum of his theory of self-culti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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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 유학자의 계몽의식과 양민(養民)의 문화적 발전 양상

저자 : 김희 ( Kim Hee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9-11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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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안민(安民)의 생활세계를 창출하기 위한 선진적 조선유학자의 사회개혁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문학의 세계로 전위시킨 조선 유학자의 계몽의식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새로운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는 문학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들을 풍자하고, 비판하며 고발하는 동시에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자신들이 지향하는 학문관에 기초하여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조선시대 선진적 유학자들의 현실 이해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급변하는 대외 정세의 영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조선사회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질서의 붕괴는 당시대를 살아가는 선진적 유학자들에게 있어 실존의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허균과 홍대용, 박지원 등을 중심으로 그들의 문학 작품속에 기능하는 새로운 이상사회의 창출과정이 가지는 의미를 그들이 견지하는 실천의 학문관과 연관하여 살펴보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실학자들에 의해 강조된 지식인 계층에 대한 의식의 개혁과 학문의 본질 회복은 이용후생의 정덕(正德)으로 표명된다. 그리고 이것은 부조리한 삶의 형식들에 대한 선진적 유학자들의 실천적인 문제의 인식인 동시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의 모색 과정이 된다.
또한, 이것은 새로운 사회의 창출을 위한 지식인 계층의 의식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안민(安民)의 생활세계를 새롭게 기획하는 선진적 유학자의 시대정신은 조선유학자의 계몽의식을 대변하는 것인 동시에 양민(養民)의 문화적 발전양상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


This paper builds on an argument about social reform by progressive Confucianists of the Joseon Dynasty in order to create the life-world of Anmin (to restore order and confidence for the people). It is also associated with the Joseon's Confucianists' sense of enlightenment, which contributed to sublimating in literature intellectuals' perception of the real problems during those times.
Seen from this aspect, irrational problematiques in actual life become not only criticized through literature functioning as a sort of the public sphere, but also dealt with workaround solutions in literature activities based on their views to literature. Thus, it was such that their literature activities mean more than the criticism of reality. 
Furthermore, those activities reflect both existential uneasiness and contemporary attempts of the leading Confucianists to overcome social instability in the midst of the rapidly changing foreign situation, and preposterous ordering of the feudal social-status-system.
Accordingly, this paper tries to examine a process of creating a new ideal society in literary works written by Heo Gyun, Hong Daeyong, and Park Jiwon. It is concerned with their views on literature ─such as attitudes towards scholarship as well as ways of studying.
In this regard, the clerisy's establishment of new values and ways of scholarship in order to solve real problems the Joseon society faces becomes emphasized through expansion of very roles of the four classes ─ aristocrats, farmers, artisans, and merchants ─ with practical functionality of scholarship and restoration of academic purpose. To the extent that it refers to new perception of unconventional Confucianists towards the form and content of absurd life, and concurrently possibility of being transformed into new politics so as to resolve the problems, the zeitgeist of the progressive Confucianists, which is contributed to attempt reorganizing Anmin's life-world anew, represents a sense of enlightenment of the Joseon's Confucianists and at the same time cultural development of Yangmin (middle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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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자철학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

저자 : 윤천근 ( Youn Cheun-gue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3-13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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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경우에 자각적 인간영역은 문화적 인간영역으로부터 자연적 인간영역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태도와 입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장자의 경우에 본능적 인간영역은 자연적 인간영역인데, 그것은 일반적인 본능적 인간영역처럼 충동이나 욕망에 지배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텅 빈 존재성이 구현되어 있는 부분이다. 장자의 경우에 혼돈의 인간영역은 일부에서 말하듯이 혼란, 무질서, 기만과 술수 등이 움직이는 영역이 아니라 텅 빈 자연적 존재성이 총체적 자연의 통일적, 복합적 구조와 긴밀한 존재론적 연관을 갖추고 변화 전개되어 나가는 부분이다. 장자철학 속에서 인간 존재는 특별한 지위를 따로 갖지 않는다. 장자철학은 인간을 세계 내적 자연존재로 소환한다. 그리하여 인간을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 또는 총체와 직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그 존재성을 향유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장자철학의 세계 속에서 존재는 특별한 책임이나 목적을 따로 갖는 것이 아니다. 존재는 '이미' 그렇게 있게 된 것이고, '여전히' 그렇게 있는 것이며, '이미' 그렇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와 존재는 서로 유리될 수 없는 일체로 '이미' 연관되어 있으며, '여전히' 그렇게 연관되어 있고, '이미' 그러한 연관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내적 양상 속에 본질적 인간영역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렇게 있는 총체적 연관양상은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지지하여 주는 근거이고,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과의 유기적 관계를 통하여 '지금' 어떠한 모습을 갖추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영역은 그러한 양상 속에 '이미' 참여되어 있는 '모든 것 중의 하나'이다. '모든 것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총체적 세계양상 속에서 부수적 차원의 존재영역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장자적 세계양상은 모든 부분이 세계 전체 속에 함입되어 있고, 총체적 세계가 모든 부분 속에 융화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부분과 전체를 분별하여 이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간이 그러한 총체적 세계의 긴밀하게 연관된 관계망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되면, 인간은 전체 속의 작은 부분이 될 따름이며, 총체적 세계양상을 자기 속에 융화되어 움직일 수 없도록 차단하는 의식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것은 총체적 세계와의 갈등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 갖게 되는 것이고, 세계로부터 오는 존재론적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속에 스스로 놓이게 되는 것이다.


In the case of CHANG-TZU, the self-aware human domain is part of the attitude and position of returning from the cultural human domain to the natural human domain. The instinctive human domain is the natural human domain, it is not a state dominated by impulses or desires, as is the general visceral human domain, but the place where the empty presence is embodied, according to CHANG-TZU. The human realm of chaos is not a moving area of chaos, disorder, deception and trickery, but rather the hollow natural presence is closely related to the unified and complex structure of total nature and the area where changes and developments are closely related to existentialism.
In the philosophy of CHANG-TZU, human beings have no special status. CHANG-TZU's philosophy recognizes human beings as a natural presence within the world. Therefore, human beings are directly or indirectly connected to some or all of nature and enjoy its existence. Existence is not something that has special responsibilities or purposes, in CHANG-TZU's philosophy. Existence is how it came to 'already'; it is 'still' there, it is changing like that 'already'. The world and existence are 'already' connected as one that cannot be mutually divided, 'still' connected as it, moving forward by changing those links 'already'. In such an internal aspect of the world, the essential human domain is deeply related.
The total pattern of association that exists is the basis for all the things that are related to it, it has it's appearance 'now' through an organic connection to everything that has to do with it. The human domain is one of the all that is 'already' involved in that aspect. One of the things that we call "one of them" is not an ancillary sphere of existence in the overall world. Because every part of the world is embedded in the whole world, the overall world has a unique structure that melts in every part; it is pointless to discern and understand parts and the whole in the CHANG-TZU's world. Humans have the power to escape it, but if one moves away from the natural human domain that is already in it and into its own cultural human domain, CHANG-TZU tells us that he will lose his freedom of existence and happiness in the swamp of interest. When human beings get out of such a tightly connected network of relationships in the world, humanity is only a small part of the whole, and performs a conscious function that prevents the entire world from being integrated into itself. The realm of human existence like this is the creation of a structure of conflict with the whole world, they fall into a difficult situation to have the power to overcome the existential threats from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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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깨달음(bodhi)의 시종(始終)으로서의 무아(anattā)에 대한 고찰 - 빠알리(Pāḷi) 문헌을 바탕으로 -

저자 : 김종수 ( Kim Jong-soo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9-16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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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깨달음(Bodhi)의 시종(始終)으로서의 무아(anattā)에 대한 고찰이다. '안앗따'의 '앗따(attā)'는 우빠니샤드(Upaniṣad) 철학에서 주장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실체(ātman)'를 일컫는다. 먼저 필자는 오온(五蘊, pañcakkhandhā) 자체나 그것의 구성요소들 각각은 그런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며[非我]며 오온에는 그런실체가 없다[無我]는 사실을 주로 「무아의 특징 경(Anattalakkhaṇa-sutta)」(S22:59)과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의 내용을 검토하여 밝혔다.
첫 번째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인 예류자(預流者, sotāpanna, 수다원)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五下分結] 가운데 처음 세 가지 족쇄인 ① 유신견(sakkāyadiṭṭhi), ②의심(vicikicchā), ③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sīlabbataparāmāsa)을 제거한 성자이다. 유신견은 오온을 자아(自我, attā)로 보는 견해이다. 예류자는 오온이 자아가 아니라는[無我] 견해를 얻어서 첫 번째 성자가 된 것이다.
두 번째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인 일래자(一來者, sakadāgāmī, 사다함)는 어떤 족쇄도 제거하지는 않지만, 탐(貪, lobha)의 일종인 '감각적 욕망(kāmarāga)'과 진(嗔, dosa)의 일종인 '악의(paṭigha)'가 엷어진다. 탐·진이 약화되는 이유는 그것들의 원인(hetu) 또는 조건(paccaya)이 되는 치(痴, moha)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치(痴)가 오온을 자아로 잘못 인식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 그래서 일래자의 성취도 '무아'에 대한 통찰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깨달음을 성취한 불환자(不還者, anāgāmī, 아나함)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 가운데 나머지 두 가지인 ④ 감각적 욕망(kāmarāga), ⑤ 적의(paṭigha)를 제거한 성자이다. 이 욕망과 적의라는 것은 탐(貪)과 진(嗔)의 다른 표현들이다. '탐·진'을 제거했다는 것은 그것의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치'를 제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체적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치'가 제거되었다는 것은 '무아'의 통찰이 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네 번째 마지막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은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五上分結]인⑥ 색계에 대한 욕망(kāmarāga), ⑦ 무색계에 대한 욕망(arūparāga), ⑧ 자만(māna), ⑨ 들뜸(uddhacca), ⑩ 무명(avijjā)을 제거한 성자이다. 무명 또는 미혹(moha)을 제거했다는 것은 정신과 물질(nāma-rūpa, 名色)의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이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완전하게 통찰하여 '무아'를 깊이 체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전하게 무아를 체득한 아라한은 색계에 대한 욕망, 무색계에 대한욕망, 자만, 들뜸도 제거하게 된다. 이와 같이 무아는 깨달음의 시작[始]이며 깨달음의 완성[終]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This thesis is designed to examine Nonself as the beginning and end of Enlightenment. 'Attā' in 'Anattā' refers to the eternal, unchanging, and metaphysical substance (Ātman) as argued by Upaniṣads. I have found that five aggregates (pañcakkhadhā) are not the metaphysical substance and that there is no such unchanging substance, by examining mainly The Characteristic of Nonself (S22:59) and the Dependent Origination.
The Stream-enterer (Sotāpanna) who achieved the first Enlightenment removed the first three fetters (saṃyojanā) ― personality view (sakkāyadiṭṭhi), doubt (vicikicchā), and clinging to rites and ceremonies (sīlabbataparāmāsa) from among the five lower fetters (pañc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The 'personality view' is what views the five aggregates as Self (attā). The Stream-enterer is the first Noble One who gained the view that each of the five aggregates is not Self.
The Once-returner (Sakadāgāmī) who achieved the second Enlightenment does not remove any fetters, but sensual desire (kāmarāga), which is a kind of greed (lobha), and ill will (paṭigha), which is a kind of anger (dosa), weakened. The reason why greed and anger weakened was that delusion (moha) which was their cause or condition weakened itself. This delusion is the main reason that causes us to see the five aggregates as Self. Thus, it can be said that the achievement of Once-returner is also related to the insight into Nonself.
The Non-returner (Anāgāmī) who achieved the third Enlightenment removed the two remaining fetters, sensual desire and ill will, from among the five lower fetters. Both sensual desire and ill will are other expressions for greed and anger. The fact that he removed greed and anger means that he removed delusion which is its cause or condition. The fact that he removed the delusion that there was Self means that the insight into Nonself deepened. 
The Arahant who achieved the fourth and final Enlightenment removed the five higher fetters (pañca uddhamghāgiyāni saṃyojanāni) ― desire for fine material existence (rūparāga), desire for immaterial existence (arūparāga), conceit (māna), restlessness (uddhacca), and ignorance (avijjā). That he removed ignorance or delusion means that he had a perfect insight into whatever is in mind and matter (nāma-rūpa) is not an unchanging substance, and that he mastered the truth of Nonself. The Arahant who mastered Nonself perfectly came to remove the remaining fetters ― desire for fine material existence, desire for immaterial existence, conceit, and restlessness. Therefore, it can be concluded that Nonself is the beginning and end of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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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원효 공사상의 본체론적 해석

저자 : 임상목 ( Lim Sang-mok ) , 이석환 ( Lee Suk-hwa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9-18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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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라고 생각하는 육체가 사라져도 영혼과 같은 것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혼과 같은 존재가 나의 실체, 본체이며 이러한 본체를 자아로 상정한다. 하지만 원효는 영속하는 실체, 본체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별도의 본체를 지닌자아도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실체적 존재, 본체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망념이 형성하는 착각의 산물이고, 실체적 존재에서 기인한 자아 또한 현상으로 실재할 뿐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원효는 본체와 존재에 집착고자 하는 욕망이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고, 자아가 실체적 존재가 아님을 공(空)사상을 통하여 증명해 보였다.
본 논문은 원효의 대표적인 주석서와 논서인 『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을 통하여 원효의 공사상을 본체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두 논서에 나타난 원효의 공사상을 본체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원효는 제법실상의 본체가 모두 진여(眞如)이고, 모든 존재가 진여 그 자체로 회복해야 하는 본체라고 말했다. 또한 제법실상의 본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연기적 과정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공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원효는 모든 존재가 공이므로 개별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 본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원효는 본체, 제법실상이 공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또 불공(不空)이라고 했다. 이처럼 원효가 제법실상, 본체가 공이면서 또한 불공이라고 말 한 것은 모든 존재가 본체적으로 무루한 성공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효는 공과 불공이 다르지 않고, 본체가 공과 불공이라고 말하는 것이 모순적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염법과 상응하지 않고 분별이 없는 진여의 본체는 형체나 모습이 없는 공이지만 청정한 법을 구족하여 무한한 작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또한 불공이라고 했다. 따라서 제법실상, 본체는 연기이므로 공이며 동시에 본체에 무루(無漏)한 성공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불공이라고 했다. 원효는 공과 불공으로 설명되는 이와 같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일심이문(一心二門)을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체계를 확립하였다.


Generally, people recognize an eternal body that is retained even if the body of the ego disappears. However, Wonhyo denies the ego as his own body. He argued that existence is completely formed by the delusions of those who do not understand. Thus, he proved through the sunyata that the ego does not have a true existence.
This paper analyzed Wonhyo's sunyata through the Commentary of Awakening Mahāyāna Faith(大乘起信論疏)and Commentary of The Vājra-samādhi Sutra(金剛三昧經論).
Wonhyo believes that there is no independent entity or individual-being and so there is no fixed substance. The reason why this Non-discrimination(無相) is indeed Real-state(實相) is that all beings are interdependent to each other; Dependent co-arising(緣起). Accordingly, Suchness(眞如) or Dharma realm(法界) is as empty as Non-self nature(無自性).
Wonhyo also recognized Suchness as Non-empty on two commentaries. The reason is that Suchness contains measurable and conceivable merit(性功德), which is the exceptional ability to make no distinction. In other words, the Non-empty have a empty nature(空性) of Suchness.
As Such, Wonhyo established his own sunyata, called one mind two aspects(一心二門), to explain the empty and the Non-emp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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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불교의 영성에 대한 두 가지 관점 - 신적인 것으로서의 영성과 궁극적 가치로서의 영성

저자 : 윤희조 ( Youn Hee-jo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9-21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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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논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영성은 신적인 것으로서의 영성, 궁극적 가치로서의 영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어원적 관점에서 영성은 신적인 것, 신에게 속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적 관점에서 영성은 궁극적 가치이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영성이 추구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적인 것은 궁극적 가치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는 영성의 기원에 해당하므로 분리하여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영성은 '인간이 신적인 것 또는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성은 주체의 차원, 대상의 차원, 경험의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즉 영성은 인간이라는 주체가 신적인 것 또는 궁극적 가치라는 대상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영성을 정의하는 틀 자체는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신적인 것, 궁극적 가치의 내용은 종교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서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 불교적 배경에서 신적인 것은 천신에게 속하는 것이고, 궁극적 가치는 붓다에게 속하는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불교는 신적인 것으로서의 영성, 궁극적 가치로서의 영성 둘 다를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 신적인 것은 천신에게 속하는 것이고, 신적인 것으로서의 영성은 천신에게 속하는 것을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신에게 속하는 것으로 사범주, 색계사선과 사무색정, 신통을 들 수 있다. 불교에서 궁극적 가치는 붓다에게 속하는 것이고, 궁극적 가치로서의 영성은 붓다의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의 궁극적 가치는 깨달음을 기반으로, 깨달음의 출발점이 되는 붓다의 문제의식,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인 수행, 깨달음의 내용인 연기와 무아, 깨달음 이후의 실천인 교화행이라고 할 수 있다.


There are two main points in this paper. First, spirituality can be seen from two perspectives: spirituality as divine and spirituality as ultimate value. Spirituality from an etymological point of view is divine, belonging to God. This can be said to be the object of spirituality in the traditional sense. From a value point of view, spirituality is the ultimate value. This can be said to be the object of spirituality in the modern sense. The divine can be included in the ultimate value, but this is origin of spirituality and is treated separately. Based on this, spirituality can be defined as' the state or experience of the human mind that seeks the divine or the ultimate value'. Spirituality can be seen in the dimension of the object, the dimension of the experience, and the dimension of the subject. In other words, spirituality is the pursuit of experiencing or being experienced by the subject of human beings for the divine or ultimate values. The definition of spirituality itself can be seen as one, but the content of divine or ultimate values can be diversified according to religious backgrounds and cultural contexts. From the Buddhist background, what is divine belongs to the Celestial Being, and the ultimate value belongs to the Buddha.
Second, Buddhism has both spirituality as divine and spirituality as ultimate value. In Buddhism, it is said that Brahma and the Celestial Being are divine, so spirituality belongs to Brahma and the Celestial Being, and it can be said that the human mind seeks to belong to Brahma and the Celestial Being or experience it. As for belonging to Brahma and the Celestial Being, there are the Four absorptions and Four stages of formless samadhi, the Brahmavihara, and the divine powers. In Buddhism, since the ultimate value belongs to the Buddha, spirituality as the ultimate value also belongs to the Buddha, and it can be said that the state of the human mind is pursuing the ultimate value of the Buddha or experiencing it. The ultimate value of the Buddha is based on enlightenment, Buddha's problem, which is the starting point of enlightenment, practice as a process to advance to enlightenment, dependent origination and selflessness as the content of enlightenment, and action as practice after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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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헤겔 시민사회의 모순으로서 빈곤과 천민

저자 : 유덕수 ( Yu Deok-soo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3-23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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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민사회에서 개인은 이기적 욕구의 담지자로서 자신의 생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인 동시에, 인륜적 질서의 주체로서 자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시민사회에서 빈곤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주제로 자리하고 있으며, 헤겔은 이미 청년 시절부터 이빈곤 문제에 천착해왔다. 이 빈곤은 물질적 결핍을 전제로 하며, 이는 욕구의 담지자인 개인들의 생을 위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자신의 생의 위협에 직면한 개인들, 즉빈민 가운데, 생존의 기본적 동력인 노동을 포기하고, 사회구조의 외적 조건에 분노를 표출하는 개인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바로 천민(Pöbels)이다. 이 천민은 헤겔이 보았을 때, 스스로 근대의 주체적인 자유로운 의지를 포기하는 존재이다. 이 천민은 교양이라는 자신의 가능성을 다듬고 형성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그리고 자신의 생존의 조건이면서 동력이라 할 노동의 힘을 잃어버린 존재로서 분노를 자신의 속성으로 삼고 있는 개별자이다. 결국 이 천민이 발생하게 된 요인은 시민사회의 모순이라 할 빈부의 발생과 함께, 개인이 지니고 있어야 할 인격의 가능성인 성실성, 교양과 같은 덕목들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헤겔은 이 천민의 발생을 시민사회가 지닌 피할 수 없는 부의 불평등한 시스템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동시에 성실성과 교양의 부재인 나태함과 게으름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문제는 천민이 이 물질적 빈곤이라는 한정된 빈곤의 개념에 제한될 뿐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헤겔이 천민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지 않고 단편적인 언급만으로 그치는 것은 헤겔 자신도 이 천민 개념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추론해 볼수 있다. 빈곤을 물질의 빈곤에 한정하지 않고, 과잉풍요의 욕구에 매몰된 개별자들의 의식의 빈곤으로 확장한다면, 이 천민의 문제는 시대의 문제에서 역사의 보편적 문제, 인간 사회의 보편문제로 전환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In modern civil society, an individual is a subject of selfish desires, who struggles for their own life. At the same time, this individual is the subject of ethical order. Here a problem of poverty becomes an inevitable theme. Hegel had been struggling with this problem of poverty since his youth. This poverty presupposes a material deficiency, which threatens the lives of individuals who are bearers of desire.
Among the individuals facing threat to their lives, that is the poor, those who give up labor, which is the necessary driving force of survival, and express anger at the external conditions of the social structure are Rabble(Pöbel). Hegel sees the Rabble(Pöbel) as beings who give up their own subjective free will of modernity.
The Rabble is an individual who has given up efforts to refine and form a culture that will be a force for him and who has forgotten the power of labor, the condition of his survival, with laziness and anger as his attributes.
The question remains: can we limit this Rabble to the limited notion of material poverty? If poverty is not defined as material poverty but rather extended to the scarcity of the consciousness of the individual immersed in the desire for excess abundance. This question will have room for a transition from the issue of the times to the universal question of history and the global problem of hum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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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증여와 해체- 데리다의 증여개념을 중심으로

저자 : 손영창 ( Son Young-cha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7-27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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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데리다의 사유에서 증여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데리다는 진정한 증여는 회귀의 가능성 없는 것으로 주어진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증여는 보상에 대한 의도나 욕망 없이 주어져야 한다. 데리다는 이런 일방향성, 혹은 비대칭성을 극단으로 몰고 감으로써 기존의 증여에 대한 인간학적인 독해를 해체한다. 특별히 그는 마르셀 모스의 상호성에 기반한 증여이론을 비판한다. 이런 비판이 나온 것은 데리다가 경제적 교환의 원리에 따르는 사회적 문화적인 구조의 바깥에서 증여를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증여를 비교환적이며, 비대칭적이고, 따라서 현재하지 않으며, 현전할 수 없는 것 등으로 규정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증여자는 어떤 상호성에 기반한 보상이나 보답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이런 상호성 속에서 증여가 일어난다면, 그런 증여는 언제나 교환의 방식과 연결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증여는 다시금 주어지는 것이 되며, 피증자는 증여자에게 빚을 질것이다. 따라서 증여는 더 이상 증여일 수 없다. 보들레르의 작품에 대한 독해를 통해서 데리다는 증여의 나타남은 참된 증여의 위조물이거나 모방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Donner le temps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통해서 우리는 증여가 가진 역설적이며 해체론적인 특징을 파악할 것이다. 이런 특징을 통해서 우리는 데리다가 밝히고자 한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살펴보고자 한다.


This paper aims to illuminate the meaning of gift in the thoughts of Derrida. Derrida believes that a true gift is given when there is no possibility of anything in return. The gift, according to Derrida, must be given without an intent or desire for any type of recompense. By pushing asymmetry to its limit, Derrida deconstructs the dominant anthropological readings of gift, of which Marchel Mauss proposed to explain the reciprocity. This is because Derrida tries to understand gifts outside the socio-political structure which mimics the economical exchange. He analyzes the gift which is not a present and remains inaccessible, unpresentable. This is why the giver must not expect repayment, a reciprocal gift, or even a showing of gratitude. Giving, when placed in a circular economy of reciprocity, reveals a pernicious connection to debt. If giving engenders a gift in return, the recipient is indebted to the giver. The gift, therefore, is not a gift. The unconditional gift calls, instead, for a forgetting of the self. Through the reading of Baudelaire' Counterfeit money, Derrida claims that all apparition of gifts is counterfeit and a simulacrum of genuine gifts. In our close reading of Donner le temps, we can understand the deconstructive and paradoxical character of gift, by which Derrida wants to overcome the circular structure of the moral and social debit and credit. By passing over the dimension of exchange, we will examine the new dimension of thought which he has open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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