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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 in Philosopy East-West

  • : 한국동서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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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계간
  • : 1225-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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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4)~97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550
동서철학연구
97권0호(2020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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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자의 학문에 대한 비판 사상

저자 : 이재권 ( Rhee Jae-kwo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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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 제1장 有欲과 無欲의 '欲'은 의식지향성을 의미한다. 이때의 '욕'은 앎에 대한 지향성이다. 노자는 유욕의 결과 경험적 지식이 획득된다고 보며, 그러한 경험적 지식을 긍정한다. 노자는 이러한 인식방법을 통해서도 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노자는 分別知와 학문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경험적 지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개입된 문화나 가치와 관련된 분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분별지를 쌓는 것을 학문이라고 하는데, 노자는 학문이 인간을 괴롭힌다고 보므로 이를 비판한다.
노자는 그 대안으로 자신의 새롭고 또 다른 배움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기존의 학문을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라는 역설적 배움관이다. 새로운 분별지를 더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분별지와 학문을 끊고 허물고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노자의 새로운 또 다른 배움관이다.


In 『Lao-tzu』's Chapter 1 'desire' of be-desire and non-desire means conscious orientation; 'desire' is the orientation to knowledge. Laozi believes that as a result of be-desire, empirical knowledge is acquired. And he affirms that same empirical knowledge.
Lao-tzu is critical of discrimination and scholarship. It is positive towards the need for empirical knowledge, which is essential to human life, but negative for discernment beyond the need for culture or value. The latter is called discipline, and Lao-tzu criticizes discipline because he thinks discipline degrades humans. As an alternative, Lao-tzu offers his new perspective of learning. It is a paradoxical academy: to learn to not learn the old school. Another new view of discipline for Lao-tzu is not to build up more new knowledge, but to learn how to cut, tear, empty, and throw away existing knowledge and schola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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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원효의 대승 사상과 말나식 고찰 - 『대승기신론소』, 『별기』를 중심으로

저자 : 고은진 ( Ko Eun-ji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5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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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大乘起信論疏』와 『別記』를 중심으로 末那識에 대한 원효의 해석을 고찰하여 원효 사상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말나식은 유가행파의 핵심 개념으로 원효는 『대승기신론』을 주석하면서 주요한 핵심 부분들에 대해 유식의 8識說로 해석하고 있다. 8識은 前5識, 第6識, 第7末那識, 第8阿賴耶識이 그것이다. 특히 末那識의 해석에 있어 원효는 유가행파 사상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成唯識論』이나 화엄의 종사 법장의 『大乘起信論義記』의 해석과는 차이를 보인다.
『成唯識論』에서 末那識은 阿賴耶識을 근거로 하여 阿賴耶識을 所緣으로 하는데 반해, 원효는 阿賴耶識 자체뿐만 아니라 거기에 나타나는 모든 法을 인식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원효는 『大乘起信論疏』, 『別記』에서 6麤 중 智相을 末那識으로 주석한다. 원효에게 있어 末那識은 阿賴耶識을 攀緣으로 하는 일반적인 유가행파의 접근과는 달리 阿賴耶識 뿐만 아니라 6塵의 경계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意의 不共所依가 된다. 智相인 末那識은 意의 不共所依가 되어 반드시 경계를 포함하여 6塵을 攀緣하게 된다.
『成唯識論』 末那識이 阿賴耶識을 반연하는 것과 元曉의 末那識이 我와 我所 모두를 반연하는 것은 대승 정신의 반영 여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元曉가 해석한 末那識이 我와 我所를 반연한다는 것은 주관인 我가 我所 즉 대상을 인정한다는 것이 된다. 이는 衆生心이 곧 眞如心인 一心의 大乘 정신으로 衆生心으로 이루어진 현상계가 단순한 假相이 아니라 현상으로서의 位相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원효의 이러한 독법은 眞如의 不生不滅의 측면보다는 生滅門의 力動性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원효는 철학자이자 승려로 당시 귀족 중심의 불교를 대승으로 이끌었다. 不生不滅의 眞如門과 현상 변화하는 生滅門을 一心으로 아우른 원효의 大乘 思想은 末那識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전통적인 유가행파의 입장이나 화엄의 입장과 달리 생멸하는 현상세계의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구조로 구현되었다고 보아진다.


Focusing upon 『Daeseung gisillon so』 and 『Daeseung gisillon byeolgi』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haracters of Wonhyo's thoughts by looking into his interpretations of manas-vijnana, these being presented in his works 『Daeseung gisillon so』 and 『byeolgi.』
Manas-vijnana is a key concept of Yogācāra School, Wonhyo, provided notes and interpretations for 『Mahayana Shaddhotpada Sastra』 (Discourse on the Awakening of Faith in Mahayana), and interpreted its major aspects drawing upon eight the cognition base theories of Yocagara thinking.
The eight consciousness include: the previous five consciousness, 6th consciousness, 7th manas, and 8th Ālayavijñāna.
Of particular interest when regarding manas, Wonhyo provided different interpretations from Cheng Weishi Lun, the ultimate collection of Yogācāra School, and 『Daeseung gisillon eugi』 of Whaeum's master Bupjang.
While in 『Cheng Weishi Lun』, manas, drawing upon Ālayavijñāna, takes Ālayavijñāna for the recognized, Wonhyo deals with not only Ālayavijñāna itself but every law that manifests as the objects to be recognized.
Therefore, Wonhyo glossed “Chisang” among the six chu as a mana in 『Daeseung gisillon so』 and 『byeolgi』.
As for Wonhyo, manas become “bulgong soeu”i of the will as they stretch into the limit of six chu, this being different from the approach of Yogācāra School which takes Ālayavijñāna for the object of bannyeoun.
Manas as “chisang” become “bulgong soeui” of the will and lead into covering the limit and gets to the bannyon of yukchin.
Depending upon whether to reflect the spirit of Mahayana or not, the meaning is different between the manas of 『Cheng Weishi Lun』 causing an action for Ālayavijñāna and Wonhyo's manas causing an action for both ah and aso.
Wonhyo interpreted that manas activate “ah” and “aso”, which means that the subject “ah” accepts “aso”, the object.
This causes one to recognize that the phenomenal world, consisting of chungsangsim and communicating with Mahayana thinking of pure Tathata bupin singleness, is not merely imagination but a phenomenon.
We can consider that such readings of Wonhyo emphasized the dynamics of sangmyulmun over the aspect of bulsang bulmyul of pure Tathata.
Wonhyo, being a philosopher as well as a Buddhist monk, led then an aristocratic centered Buddhism into Mahayana Buddhism.
In interpreting manas as well, Wonhyo's Mahayana thinking - covering the chinyeomun of immortality and ever-changing sangmyeulmun - can be said to be a structure which actively accepts the dynamics of maya, which is different from the standpoints of the traditional Yogācāra School and Wha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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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仁)과 의(義)로 판단해본 직궁(直躬)의 직(直)

저자 : 김학용 ( Kim Hak-y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5-8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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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훔친 아버지를 고발한 직궁 이야기는 사회윤리와 가족윤리의 충돌을 불러일으키며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 문제는 유가(儒家)의 논리로 보면 딜레마가 아닐 수 있다. 직궁 문제의 본질을 캐보면 인(仁)과 의(義)가 충돌하는 문제로 보이는데 이 경우 仁의 도덕적 가치가 義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딜레마는 아니다.
직궁 이야기는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고발한 점에서 '仁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아버지에 대한 고발은 효(孝)의 문제를 낳고, 孝는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는 점에서 직궁의 문제는 '仁의 문제'가 된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는 '義의 문제'이기도 하다. 직궁의 직(直)에는 義의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직궁의 直을 義와 연관시키는 해석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근거를 찾아보는 게 본고의 실질적 목표다.
필자는 사전적 의미와 고발 사건의 측면에서 直과 義의 상관성을 확인해 봤다. 그러나 상관성의 가장 유력한 근거는 『춘추좌씨전』(노소공 14년)이다. 진(晉)나라 대부 숙향(叔向)이 자기 동생의 죄를 숨기지 않고 공정하게 처리한 데 대해, 공자(孔子)가 “義롭구다! 直이라 이를 만하다”고 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直과 義의 상관성'을 말해주는 표현이다. 공자(孔子) 자신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직궁의 딜레마'는 仁과 義의 사이에도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유교의 가장 중요한 두 도덕 가치가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선뜻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유교이론으로 보면 그게 오히려 정상이다. 직궁 이야기는 유교에서 義보다 仁을 왜 우위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仁과 義의 어떤 차이점이 직궁의 딜레마를 해소시켜 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것이다.
직궁의 문제는 '仁의 문제'인 동시에 '義의 문제'다. 仁과 義가 충돌하는 문제다. 직궁은 義의 편만 들다가 우(愚)를 범했다. 부모에 대한 고발은 아니더라도 仁을 소홀히하고 義만 너무 앞세우면 '직궁의 愚'를 범하는 것이다. 『논어』 직궁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라고 본다.


The Zhigong[直躬] anecdote tells a story of a father being reported to the authorities by his son for stealing a sheep, and this story puts readers in a dilemma, causing a clash between social ethics and family ethics. This issue may not, however, be a dilemma according to Confucian logic. When one delves into the essence of the Zhigong issue, he or she would consider it as a clash between benevolence and justice. In such a case, the moral value of benevolence is superior to that of justice, which means that it is no ultimate dilemma.
Zhigong's story clearly raises an "issue of benevolence" in that the son reported his father. When the son reported his father, it raised an issue of filial duty, which is the root of conducting benevolence. The issue of Zhigong is thus an "issue of benevolence." It is, at the same time, an "issue of justice" as the Zhi (truthfulness) of his name Zhigong seems to connote the meaning of justice. Since there had been few traditional interpretations connecting the truthfulness of Zhigong to justice, this study set a practical goal of finding those grounds.
The investigator examined correlations between truthfulness and justice in the aspects of meanings in the dictionary and the reporting event, and found the strongest grounds for their correlations in 『Chunqiu Zuoshizhuan(春秋左氏傳)』 (14th year of Duke Zhao's reign in Lu). Shu Xiang[叔向], a grandee in Qin Dynasty who refused to cover up his brother's crime and handled it fairly, was praised by Confucius who said, "He is truthful! His action deserves the word meaning just and honest." This expression shows "correlations between truthfulness and justice." This deserves further attention as it was personally mentioned by Confucius.
"Zhigong's dilemma" is a symbolic event showing that there are conflicts between benevolence and justice, as well. One may have a difficult time accepting the fact that the two most important values of Confucianism can clash, but it is rather normal from the viewpoint of Confucian theory. Zhigong's story shows why benevolence is superior to justice in Confucianism. The present study examined which of the differences between benevolence and justice would help to resolve Zhigong's dilemma.
Zhigong's issue is both an "issue of benevolence" and "that of justice." It is a clash between benevolence and justice. Zhigong made a foolish mistake, siding only with justice. One can make "Zhigong's foolish mistake" by putting justice too much ahead while neglecting benevolence, even if he or she does not go as far as reporting his or her parent. This is the message of Zhigong's story in 『Analects of Confu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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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19세기 자연과학적 기철학의 문화공존 윤리 - 홍대용, 정약용, 최한기의 리기론을 중심으로 -

저자 : 이인화 ( Lee In-hwa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1-10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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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동서양 문명이 조우하던 시기 근대의 진정한 시대적 과제는 서구화로서의 근대화가 아닌 '문화공존'이었다고 보고, 새로운 시대적 전환점에서 문화공존을 모색했던 세 사상가, 홍대용, 정약용, 최한기의 문화공존의 윤리를 살펴보았다.
홍대용은 태허의 관점에서는 어느 것도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절대적 탈중심, 지원설에 입각하면 모두가 중심이 될 수가 있다는 상대적 중심의 논리와 인간사에 있어서 고정불변의 것은 없다는 논리에 의해 한족 중심 중화주의를 부정하고 각 민족의 동등성을 주장하였다. 정약용은 선악의 선천적 내재성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율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 이루어진 후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국제사회 인식에 있어서도 정약용은 그 국가의 정치적, 문화적 성취에 따라 정통인가 오랑캐인가가 평가될 수 있으며, 화이의 구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각 민족을 동등하게 보고 선비족과 일본을 높이 평가하였다. 최한기는 당대 동서양의 대립이 주아(主我)의 독선에 빠져 서로를 비난하기 때문으로 보고, 풍토와 습속의 특수성에 따른 차이에 대한 상호이해 노력과 더불어 동서양이 보편학으로서의 기학을 공통의 준적으로 삼아 공동의 노력을 통해 인류의 지식을 발전시켜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study the multicultural ethics of three thinkers, based on their ontologies, who tried to find ways to coexist with people who are from an unfamiliar culture, in the time of transition from a closed system to an open system of international society.
Hong Dae-young accepted western cosmology and geography in his Confucian foundation, the thoughts of Qi, and built a new outlook on the world which overcomes the existing ideological Sinocentric outlook on the world. In his ethics, all creations and regions can be a center based on his doctrine of spherical earth, and at the same time all creations and regions cannot be a center or be in a superior position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Great Void(太虛). On this ontological base, he drew a set of decentralized relativist ethics overcoming discriminative awareness on the differences of people.
Jeong Yak-yong emphasized the autonomous and independent choice of humans, denying the neo-Confucian premise which claimed that humans are innately good. He asserted that good and the evil are not innate, and people can judge whether a person's deed was good or bad only after the action has been executed. On this ontological understanding, he asserted that one can judge whether a people or a nation are barbaric or civilized based on the people's behavior and the country's cultural advancement. Overall, he drew open and reasonable ethics based on mutual understanding.
Choi Han-gi asserted that Qi is everywhere with the same quality and at the same time all creatures, made from Qi,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On this ontological point of view, he suggested a possibility of respecting each individual's personality and each region's severalty while coexisting peacefully with all creatures because they are the all same in the ultimate stage. For realizing this possibility, people need to ceaselessly endeavor to understand the differences and diversity of people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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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왕수인의 감정론과 슈타이너의 12감각론 비교 고찰

저자 : 김준승 ( Kim Jun-seu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7-1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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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감정론과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의 12감각론을 비교하여, 인간이 주체적 체험을 기반으로 성숙해지고 발전해가는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왕수인의 감정론은 성리학에서와 달리 성(性)과 심(心)을 분리해서 이해했던 바를 통합하여 단일한 범주를 만들었고, 도덕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도덕 감정과 도덕 심리를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하도록 기초를 만들었다. 이것은 감정과 욕구의 부분을 양지론(良知論)의 본류로 개입시켰다. 우선, 양지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내고, 자신 앞에 주어진 일상의 사태(事態)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관조하며 중절을 지키고, 중절을 지킨 마음으로 조리에 맞게 바른 실천을 해나간다. 또한, 스스로 양지를 실현했을 때 갖는 자겸(自慊)과 진실한 즐거움[眞樂]을 통한 체득은 궁극적으로는 만물일체(萬物一體)로 이어져 도덕적 실천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슈타이너의 감각론은 기존의 오감과는 다른 12감각을 제안한다. 그가 인간을 12가지 감각으로 분류한 것은 인간 존재의 깊은 이해에 기반한 것이며, 슈타이너의 인지학(人智學)적 세계관이 깊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슈타이너의 감각론은 신체ㆍ영혼ㆍ정신의 통합체로서 인간을 이해하며, 통합체의 구성에 맞게 네 가지씩 의지[몸]감각, 감정[혼]감각, 정신[영]감각으로 총 12감각을 이루고 있다. 감각의 발달은 주기적 발전이 이루어져 그에 맞춰 자신의 육체에 대한 내부영역의 의지감각, 나 이외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관계영역의 감정감각, 자신의 내면 혹은 고차적 존재와 연관된 고차영역의 정신감각에 맞춰 발전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왕수인과 슈타이너가 추구하는 인간상(人間像)은 영성을 겸비한 전인적 인간으로 이 세계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인간이다. 두 사상가의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순서를 통해 맥락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첫째 왕수인의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의지를 내는 것과 슈타이너의 내부영역인 몸감각을 통하여 의지를 나타내는 주체인 나를 알아가는 것, 둘째 왕수인의 감정 중절을 이루며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주어진 사태를 통해 바른 선택을 하며 양지를 지극하게 실현하는 것과 슈타이너의 또 다른 '나'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감정을 경험하여 깨쳐가는 것, 셋째 왕수인의 양지 실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자겸과 진락과 만물일체의 자각을 통해 도덕적 실천력을 갖는 것과 슈타이너의 고차적인 외부와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내면과 감응하여 이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이다.
감정론과 감각론의 비교를 통한 고찰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공간적 조건과 시대적 조건을 초월하는 비교 대상을 통해 현대 사회에 객관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인간 이해를 살펴볼 수 있으며, 더불어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atively study the emotional theory of Wang Shou-Ren and the twelve sense theory of Rudolf Steiner. The emotional theory of Wang Shou-Ren proposes a methodology for understanding the process of reaching 'Chi-liang-chich' which is the essence of the Yangming doctrines, and the twelve sense theory serves as the basis of anthroposophy underlying the Waldorf education which is carried out in the world. The two thoughts are both founded on the human understanding which matures and develops from autonomous experiences.
The emotional theory of Wang Shou-Ren created a single category by integrating the understanding of emotion which separated nature and mind, unlike the previous Neo-Confucianism, and formed the basis to help understand moral emotion and moral psychology in the same context for realizing morality. This made the area of emotion and desire intervene in the mainstream of Liang-chich theory. First, one summons the will to realize Liang-chich and keeps appropriateness while contemplating the emotion and desire of oneself in the everyday situations that are put before oneself, and logically conducts proper practice with one's mind that is keeping the appropriateness of emotion. Moreover, the mastery achieved through self-contentment and true joy obtained when realizing Liang-chich by oneself ultimately leads to being in unity with all things, which then leads to the self-awareness towards moral practice.
The sense theory of Steiner proposes twelve senses that are different from the extant five senses. His classification of the human into twelve senses is rooted in a profound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and emerged with a deep reflection of his anthroposophical world view. The sense theory of Steiner understands the human as an integrated entity of body, soul, and mind. It consists of twelve senses in total with four kinds for each sense of will [body], emotion [soul], and mind [spirit], according to the composition of the integrated entity. It understands that the development of senses have periodic growth, and the senses of will of the internal domain of the physical body of oneself, emotional senses of relational domain on relationships with a person other than oneself, and the mental senses of higher domain related to the inner self or a higher existence, develop in accordance with that.
The human image pursued by Wang Shou-Ren and Steiner is that of a well-rounded human with both spirituality and character, who takes responsibility for this world. The maturing process of the human of both thinkers can be compared in context through the following order: first, summoning the will to become such a human [聖人, saint] of Wang Shou-Ren and learning about oneself who is the principal agent summoning the will through the bodily sense that is the internal domain; second, achieving the appropriateness of emotion of Wang Shou-Ren and making proper choices based on that through the given situations involving other people, thereby realizing Liang-chich fully, and forming relationships with other 'selves' of Steiner to experience emotions of oneself and being enlightened; third, acquiring moral action by being in unity with all things through self-contentment and true joy in order to continuously accomplish the Liang-chich realization of Wang Shou-Ren, and establishing relations with the higher external of Steiner to be moved by the inner self, thereby having and practicing a sense of responsibility for this world.
The study comparing emotional theory and sense theory allows an examination of the human understanding that can be objectively applied to modern society through the comparison subjects transcending the spatial and periodic conditions of the East and the West, and furthermore, will be able to suggest a desirable human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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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파르메니데스 단편에 등장하는 네 가지 사유9

저자 : 김귀룡 ( Kim Gwi-ry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3-16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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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의 단편에는 네 가지 종류의 사유가 있다. 첫째는 길에 관한 메타적인 사유하기이며, 둘째는 인간 사유가 따라야 할 원리(is or is not)를 제시하는 사유이며, 셋째는 인간 사유가 지켜야 하는 사유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있다와 있지 않다를 혼용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유이며, 넷째는 '있거나 있지 않다'는 원리 중에서 존재를 선택했을 때 진행되는 사유이다.
논리적 순서로 보면 방법에 관해 메타적으로 언급하는 첫 번째 사유가 가장 선행하며, 그 다음으로 인간의 사유가 지켜야 하는 원리를 제시하는 두 번째 사유이며, 다음으로 있음(~임)을 선택했을 때 진행되는 네 번째 사유가 최후에 등장하게 된다. 세 번째 사유는 인간 사유가 지켜야 하는 원리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비판받는다.
일반적으로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론의 창시자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큰 공헌은 인간이 사유를 진행하는데 등장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이 두 가지(있음, 있지 않음)가 있으며 양자의 관계가 배타적이라는 점을 최초로 규명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There are four kinds of thought in Parmenides' fragments. The first is meta thought thinking about the way (hodos), i.e. methodological (meta + hodos) thought. The second is the thought thinking about the basic principle (is or is not, estin h ouk estin) of thought. The third is the thought of undiscerning crowds in whose eyes the same thing and not the same both is and is not, and all things travel in opposite directions. The fourth is the thought which is inseparable from being, appearing only after choosing 'is' between 'is' and 'is not'.
In logical order of priority, the first is methodological thought, the second is the thinking about the thought principle (is or is not), and the last is ontological thought (fourth). The thought of undiscerning crowds (mortal), trespassing against the rule of thought, is criticized by Parmenides.
Viewed in the light of the fourth thought, Parmenides is the progenitor of ontology. Viewing his philosophy from a different angle, e.g. the logical priority of four kinds of thought, ontology begins only after the first, methodological thought, and the second thinking about the thought principle. So it is more appropriate to call Parmenides the progenitor of methodology and the founder of the basic thought principle rather than the originator of on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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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소크라테스의 엘렝코스에서 여가의 의미와 역할 - 초기 대화편들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유석 ( Kim Iou-seok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7-18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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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에 나타난 여가와 시간보내기의 의미와 철학적 기능에 관한 고찰이다. 우리말로는 대개 '여가'와 '시간보내기(소일하기)' 등으로 번역되곤 하는 스콜레(scholē)와 디아트리베(diatribē)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특징인 동시에 인간을 신에 가깝도록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간주되어 왔다. 플라톤의 몇몇 대화편들에서 여가와 시간보내기가 철학함의 조건이자 자유인의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 개념들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에 빈번히 등장하며, 이른바 '소크라테스적 엘렝코스'의 전개 양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플라톤이 일정한 철학적 의도를 가지고서 이 개념들을 사용한 게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여가의 철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이 개념들이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에 사용됨으로써 어떤 철학적 효과를 산출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This study is focused on the meaning and the philosophical significance of 'leisure' (scholē) and 'amusement' (diatribē) in Plato's early dialogues. Leisure and amusement are essential characteristics which distinguish human beings from other animals, as well as properties which enable human to reach divinity. Plato considers leisure and amusement as the conditions of philosophizing and of freedom. It is significant that 'leisure' and 'amusement' appear frequently in Plato's early dialogues, and that these terms seem to exercise a strong influence on Socratic elenchus. It allows us to suppose that, Plato had a philosophical intention for using these terms in Socratic dialogue. This paper will try to find not only the philosophical meaning of leisure and amusement, but also their philosophical effect in Plato's early dialo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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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연속성에 의한 무한(to apeiron)의 존재 불가능성에 대한 논증 -요한 필로포노스와 아베로에스의 논쟁을 중심으로-

저자 : 김요한 ( Kim Jo-han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9-20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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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원성과 세계의 창조에 대한 무슬림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논쟁은 무한 개념의 수용 여부에 달려있다. 정통 무슬림 신학에서는 무한 개념을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이론에 반대한다. 그런 반대 논증은 5세기 요한 필로포노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무한 개념의 논박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8세기 무타칼리문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요한 필로포노스는 첫 번째 반대 논증에서 부분들이 연속적으로 발생 되는 무한은 잠재적 무한이 아니라 실재적 무한이기 때문에, 그것이 부분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무한과 구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한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로 바로 “무한을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원리를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무한은 횡단될 수 없다”는 원리에 기초해서, 만일 우리가 과거에 무한수의 어떤 종적 개별자들이 존재했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그 종적 개별자들은 지금 현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제2부 두 번째 논증에서 요한 필로포노스는 무한의 크기와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무한 개념을 논박하고 있다. “하나의 무한은 다른 무한보다 더 클 수 없다”는 전제를 기초로,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가정은 하나의 무한이 다른 무한보다 더 큰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아베로에스는 첫 번째 논증에 대해서 무한은 태양이나 구름이나 비와 같은 순환적 연속성속에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직선적 연속성과 관련해서도 무한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반드시 인간 종으로부터 발생 할 필요가 없이 다른 작인에 의해서도 인간 종의 발생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증과 관련해서 그는 하나의 무한이 다른 무한 보다 클 수 없다는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무한 개념과 전체 개념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로 간주한다. 전체개념은 선후 관계를 갖는 반면 무한 개념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무한의 전체와 다른 무한의 전체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The debate among Muslim philosophers and theologians about the eternity of the world and the creation of the world depends on the acceptance of the concept of infinity. Orthodox Muslim theology opposes Aristotle's theory of nature, which suggested the concept of infinite. This argument against it originates from the refutation of the Aristotle's concept of Infinity which John Philoponus made in the 5th century and is reinforced by the Mutakalimun in 8th century. In the first argument John Philophonus argues that since the infinity in which the parts occur continuously is not a potential infinity but a real infinity, it is indistinguishable from the infinity in which the parts exist simultaneously. The reason why such an infinity cannot exist is based on the Aristotle's principle that "it is impossible to cross infinity." Based on this Aristotelian principle that “infinity cannot be traversed”, the conclusion is drawn that if we assume that there existed an infinite number of certain individuals in the past, those individuals cannot now exist. In the second argument, John Philoponus refutes Aristotle's concept of infinity in relation to the magnitude of infinity.
On the premise that “one infinity cannot be greater than another”, the assumption of the eternity of the world is absurd because one infinity would be greater than the other. On these problems Aberroes argues toward the first argument that infinity can exist in cyclical continuities such as the sun, clouds and rain which go around. It also suggests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the infinite in relation to linear continuity. This is because humans do not necessarily originate from the human species, and the possibility of the generation of the human species can be claimed by other agents. Regarding the second argument, he considers the claim that one infinity cannot be greater than the other is an error, because Aristotle's concept of infinity and the whole are confused in of themselves. It is impossible to compare the whole concept of some infinity with the whole of another infinity because the concept of the whole has a precedent relationship, whereas the infinite concept has no such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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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디지털 시대, 칸트의 무관심적 감상이 갖는 의미: YouTube 음악 영상물에 대한 감상자의 댓글을 중심으로

저자 : 양희진 ( Yang Hee-ji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9-23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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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오늘날 음악 감상 문화를 칸트가 발견한 무관심적 감상의 특징을 통해 이해해 보려고 한다. 이때 무관심적이라는 것은 개인적 취향이나 신념과 같은 관심을 결부시키지 않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 음악의 디지털화는 우리의 감상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음질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칸트는 사심이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평가하게 되면, 자신의 미적 감정을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강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작품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실제로 가능한지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기술로 이것이 가능해졌다.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일단 온라인상에서의 일어나는 모든 음악감상 활동을 순수한 공감적 행위로 간주해본다. 대표적인 소셜미디어 사이트 YouTube에서 음악적 공감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는데, 특별히 감상자들의 댓글에 주목한다.(2장) 음악 댓글에는 곡에 대한 감상자의 공감적 정서가 담겨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론에서는 방탄소년단의 ≪Black Swan≫ 뮤직비디오와 조성진의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A장조 소나타 3번≫ 공연 영상에 대한 외국인들의 댓글을 사례로 든다. 필자는 두 음악 영상물에 대한 댓글을 감상자 입장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어떤 댓글평에는 동의를 표하기도 하도, 일부 댓글에는 그 표현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무관심적 감상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그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그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능력은 취미이다. 칸트에 따르면 취미는 자신의 평가가 진정 무관심적 관조에 의한 것인지를 검사한다. 이러한 검사 능력이 미숙하면, 우리는 관심에 의한 판단을 하고도 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작품평의 의도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활동은 우리의 평가 능력을 향상시킨다.(3장, 4장) 칸트는 성숙한 취미를 가진 자를 문화의 계승자로 간주한다. 디지털 시대의 감상자는 창작자이기도 하다. 감상자가 직접 음악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는데, 이러한 공유가 오늘날 예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방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영상 이미지를 보며 감상하게 되면 서 자극적인 음악 영상물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려면, 우리는 사심 없이 작품을 감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감상 활동이 편향된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성찰해 보는 것이다.(5장)


This thesis tries to understand today's culture of listening to music through discussions about Kant's disinterested appreciation. Disinterestedness means to evaluate the value of art works without interest such as personal taste or belief. The digitalization of music has innovatively transformed our listening types in music. Kant argues that it is difficult for us to listen to music disinterestedly because of the sensitivity of its sound. In the digital age, however, there are many opportunities to enjoy various genres of high-quality music anytime, anywhere, even if not visiting a concert hall with good sound facilities. Kant explains that an appreciator who evaluates a work without interest expects to share his aesthetic feelings with everyone. In the past, it was physically impossible for us to confirm universal sympathy for works, but now the technology of internet makes this possible. So, once I regard all activities of listening to music that take place online as pure reactions of sympathy. Especially I pay attention to comments of music from listeners, to consider how musical sympathy occurs on YouTube, a representative social media site.(Chapter 2) I think that its comments contain the listener's sympathetic emotion for music. To understand it better, in the main chapters are given the examples of the comments of foreigners on BTS's music video of Black Swan and Jo Seong-Jin's performance video of Beethoven's Sonata No. 3 in A Major for Cello and Piano. I try to examine their comments on the two music video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listener. I agree to some comments, but criticize the way some of the comments are expressed. This is to explain the necessity of disinterested appreciation by showing a model of how it is possible. It is taste that is ability to judge works in our mind. According to Kant, it tests in our mind whether the judgment truly results from disinterested contemplation. But if the testing ability of our taste is inexperienced, we don't find it although the judgment of taste is based on some interests. However, doubting and criticizing the intentions of others' comments of music improve our taste.(Chapter 3 and Chapter 4) Kant regards appreciators with mature taste as successors of culture. Listeners in the digital age can also be creators. They create and share their own music contents, and sharing music in itself is a way of inheriting and developing art culture today. However, It is true that the more we enjoy listening to music through images of video, the more there are many stimulating music videos. To have discernment about them, we need to try to appreciate art works disinterestedly. It is to constantly reflect on whether my appreciative activity is due to biased intentions.(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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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헤겔의 수집 개념

저자 : 조창오 ( Cho Chang-oh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5-25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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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미술관 철학의 기초 개념인 '수집' 개념을 헤겔 철학을 통해 논의함으로써 미술관 철학의 기초 텍스트로서 헤겔의 예술철학을 논의하는 담론에 참여하고자 한다. 우선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수집'이 개별적인 사물이나 지식을 보편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인간 행위로 규정한다. 『철학 체계』에서 그는 수집과 철학의 관계를 고찰한다. 수집이 사물들을 외적인 질서 속에 배치하는 것이라면 철학은 이 사물들의 질서를 '필연성'의 관계로 파악한다. 『미학 강의』는 예술작품의 수집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전형적인 한 사례다. 헤겔은 예술작품의 경험이 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예술작품은 기억의 저장소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예술은 과거적인 것이다. 과거적인 예술은 지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곧 수집의 목적은 예술작품의 연구와 교육에 있다. 이를 위해 수집은 예술의 규정에 따라 예술작품을 시대적, 학파별, 지역별로 분류하고 배치, 전시한다. 여기서 헤겔은 수집이 단순히 교육과 연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향유를 위해 수집되어 전시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수집에서 배치와 전시는 미적 향유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배치와 전시를 통해 대중은 예술작품이 전체 역사 속에서 가지는 위치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앎을 통해 낯설고 새로운 예술작품에 대한 수용성을 확장한다. 수용성의 확장은 작품의 향유 가능성을 높인다.


This study intends to participate in the discourse related to Hegel's philosophy of art as the basic text of the philosophy of museums by discussing the concept of 'collecting'and the basic concept of museum philosophy, through Hegel's philosophy. First, in Hegel's Phenomenology of Mind, 'collecting' is defined as a human action that raises individual objects or knowledge to the domain of universality. In Encyclopedia of the Philosophical Sciences, he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collecting and philosophy. If collecting is to place objects in an external order, philosophy grasps the order of these objects as a relation of 'necessity'. Aesthetics Lecture is a typical example of a philosophical reflection on collected of works of art. Hegel notes that the experience of being works of art takes place in the museum. The artwork is displayed in the museum, the storage of memories. In other words, art is a thing of the past. Past art becomes an object of intellectual interest. The purpose of collecting is to study and learn from works of art. To this end, the collecting classifies, arranges, and displays works of art by period, school, and region according to the rules of art. Here, Hegel makes it clear that collection is not merely for education and research but is collected and displayed for public enjoyment. Therefore, in collecting, arrangement and exhibition are very important for aesthetic enjoyment. Through this arrangement and exhibition, the public knows the place the artwork holds in history. And through this knowledge, the acceptance of new and unfamiliar works of art is expanded. The expansion of acceptance increases the possibility of enjoying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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