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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Chinese Historical Resear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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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6)~12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491
중국사연구
128권0호(2020년 10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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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리(情理)ㆍ의리(義理)ㆍ법리(法理): 순자(荀子) 법철학(法哲學)의 기본 관념 체계

저자 : 장잉핑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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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라고 하는 관념은 순자(荀子) 철학의 핵심 주제이다.
그러한 정의에 관련된 관념은 선진(先秦) 유가(儒家)인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인(仁)”ㆍ“의(義)”에 관한 사상을 계승하였음과 동시에 “예(禮)”와 “법(法)”을 통합하여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리(情理; 인애(仁愛))→의리(義理; 정의(正義))→법리(法理; 예법(禮法))”의 관념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한 기본 구조가 갖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개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의(正義)는 예법(禮法)의 가치에 기초하고 있으며, 정의의 주제와 예법의 기원은 이해가 충돌되는 문제이다.
그러한 이해 충돌은 차별적인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모든 인(仁)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정의(正義)라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정의는 정당성과 적합성이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순자의 법 철학은 선진(先秦) 유가의 법 철학 사상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순자의 정의에 관한 관념 역시 일종의 보편 적합성의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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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법률사 관점에서의 전한(前漢) 시기 혹리(酷吏) 연구

저자 : 티앤춘차이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6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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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前漢) 왕조는 중국 사법 체제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였으며, 군주제와 중앙집권화가 강화되면서 귀족적 법치에서 제국의 법치로의 전환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혹리(酷吏)들이 특별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가혹한 처벌과 엄격한 법률을 적용하면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귀족들과 대치하였는데, 그들의 이러한 특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도 남아있다.
전한(前漢) 왕조의 혹리들이 수행한 특별한 역사적 임무는 후대와 명확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이들 혹리들은 황제권의 인격적 표명이었으며, 그들의 성쇠(盛衰)는 황제권에 의해 좌우되었다.
전한(前漢)의 사법 체계에서 가혹한 모습을 보인 혹리(酷吏)들은 입법자이자 법 집행관이었다. 한편으로는 법과 규정을 편성하고, 엄격한 법망을 이용하여 관료들에게 엄격한 처벌을 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잔인한 법 집행을 통해 귀족과 호족들을 공격하여 황제권을 엄호하였다.
전한(前漢) 왕조의 혹리들은 선진(先秦) 시기 법가(法家)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유가(儒家)의 영향과 유법(儒法) 통합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선진 시기 법가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 준다.
전제군주권과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혹리들은 법가 사상을 일방적으로 그리고 가혹하게 집행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황제권을 강 화하기에 유용한 법가 사상의 일면을 활용하여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제의 강화를 위해 극단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전한 시기 법률 시행과 혹리들의 사상은 황제권과 법률 제도 사이의 상호 작용, 유가와 법가 사상간의 경쟁과 융합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의 법제사의 전통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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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지방의 의견과 중앙의 정책 결정 -명대(明代) 대계고어(大計考語)를 중심으로-

저자 : 위진둥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5-83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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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明代)에는 3년마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지방관에 대하여 평가를 실시하였는데, 이를 대계(大計)라 칭한다.
매번 대계를 실시할 때에 이부(吏部)에서는 지방의 성(省), 부(府), 주(州), 현(縣)의 직제에 따라 상급 행정 부서로 올리는 보고에서의 관원들에 대한 평가와, 순무(巡撫)나 순안(巡按)이 관할하고 있는 휘하관원들에 대한 탄핵 등을 종합하여 지방관에 대한 승진이나 강등 조치를 시행하였다. 이들 평가와 탄핵을 통칭하여 고어(考語)라 칭한다.
고어(考語)는 각 행정 조직 단계 마다 각급 관원들에 대하여 협의를 하여 최종적인 결정이 이루어졌고, 이것은 중앙 정부에서 최종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지방 행정 장관, 순무, 순안 등이 기록한 고어로부터 중앙의 이부(吏部)에서의 고어까지의 다양한 연계 관계는 모두 명대(明代) 행정 관리과정에서의 조직 간 상호 작용과 권력 균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대계고어(大計考語)의 운용 체계에 대한 연구는 명대(明代)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정책 결정에서의 상호 작용을 잘 보여 주는 생생한 모델의 하나이다. 따라서 대계고어(大計考語)는 명대 정치제도사를 밝히는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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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천록(朝天錄)을 통해 본 임진왜란 배경하의 명조(明朝) 이치(吏治) 문제

저자 : 류안치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5-10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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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조선 사신들이 명나라에 출래하여 빈번히 만났던 명나라 관리는 주로 요동 지방 아문과 중앙 각 부서의 하급 관리들이었다. 조선 사신들의 일기를 통해 그들은 여러 수단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업무를 소극적으로 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요동의 이서(吏胥)와 장교(将校)들이 뇌물 요구, 옥하관(玉河館) 제도(提督)가 개시(開市)를 이용하여 이익을 도모한 것 등 여러 상황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살펴보면, 당시 명 조정이 전반적인 부패와 사치를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에 연관한다. 하급 관리의 규모가 커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부패는 명나라 정치 운영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대외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전시의 효율을 저해하여 임진왜란 대처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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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재해, 민중 그리고 농민기의: 태평천국 흥기에 관한 재연구

저자 : 왕즈퉁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7-13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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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은 비단 청조(清朝) 관료제 통치의 부패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의 영향을 받아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함풍(咸豐)ㆍ동치(同治) 년간에 광동(廣東)ㆍ광서(廣西) 지역과 장강(長江) 하류 지역에서는 홍수, 가뭄, 충해가 매년 연속되어 발생하면서 항상 재해가 연발하였다.
필자는 광서(廣西)ㆍ호남(湖南) 등 지역의 지방지 자료 가운데 홍수, 가뭄, 충해에 관한 자료에 기초하여, 1850년 전후 5년간 거의 매년 재해가 없었던 적이 없어서, 기근이 없었던 해가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재해와 기근에 대한 대응 능력이 지극히 미약하던 상황하에서, 빈발하게 된 자연재해는 민중에게 심각한 재난으로 임하였으며, 그들의 생명과 재산상의 안전을 엄중히 위태롭게 하였으며, 생계와 지방사회의 안정도 위협하게 되었다.
자연재해와 더불어 사람으로 인한 환란은 민중의 재난을 한층 더 가중시켰고, 이것이 그들을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어 정신적 의탁을 찾아 안위를 얻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시기에 태평천국의 영도자 홍수전(洪秀全)이나 풍운산(馮雲山) 등은 상제(上帝)를 숭배하고 대동(大同) 사상을 전파함과 동시에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로써 수많은 고통 받고 있던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과 떠돌던 유민들이 태평군에 가담하게 하였고, 아울러 태평천국운동이 마침내 흥기하게 될 때 태평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질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대하여, 청말 양광(兩廣)지역과 장강 중하류 지역 지방지에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아주 소략하다. 이것은 이후 상군(湘軍)과 회군(淮軍) 장교들이 오랫동안 이들 지역의 지방정권을 장악하였던 것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본고는 재황사(災荒史) 차원에서 태평천국운동의 흥기 배경을 고찰하였고, 이를 통해 청대 후기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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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근대(近代) 이후(以後) 중국(中國) 재난(災難) 인식(認識)의 변화(變化)

저자 : 朴正鉉 ( Park Jung Hyun )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1-16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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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modern times, disasters in China were dominated by the theory of Heaven's warning. Interaction between Heaven and Man has dominated the Chinese's perception of disaster for thousands of years. However, with the spread of Western scientific thoughts after modern times, disasters began to be recognized scientifically and objectively.
During the time of the Republic of China, disasters were no longer recognized as the calamities of nature. It was recognized as a man-made disaster caused by China's backwardness and the incompetence of the Nationalist government. Typhoons, floods, droughts, and famine have become targets that can be prevented and overcome with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the modern nation-state, the roles and responsibilities of the state have been maximized. Therefore, disasters were also subject to the management of the state.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China has set the goal of developing an underdeveloped society into an advanced socialist society through industrial development. With the aim of building a socialist state, the perception of disaster has also changed. Socialist perception of disaster was replaced by ideological perception instead of scientific and objective analysis. After 1949, the CCP's responsibility was circumvented by transferring responsibility for the disaster due to the mistakes and incompetence of the Nationalist government. Disaster should not have occurred under the control of the CCP. In the event of a disaster, the only disaster relief measure was to overcome the disaster with a revolutionary spirit. This was not significantly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shamanistic re-transfer.
After the reform and opening up, China has set the goal of national construction to develop productive forces through economic development. As China's development strategy changed, so did the perception and response to disasters. First, it was the state's active response to disasters. Second, it was thoroughly recognized by the Chinese that the means to respond to disasters were not superstition, but hygiene and science. With China's economic development, the disaster was no longer perceived as due to the incompetence of the Chinese government. The Sichuan earthquake of 12 May 2008 amplified doubts about the ability to host the Beijing Olympics, which is about three months ahead. However, the Chinese government has proved China's ability to manage crises by effectively addressing this. The Chinese government showed off China's capabilities through disaster relief and used it as a symbol of Chinese national 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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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출토되는 진한(秦漢) 시대의 간독(簡牘) 자료 속에서 사법(司法) 문서 자료들이 날이 갈수록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로써 진한 시기의 사법 운행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데 매우 유리한 여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시에 진한 사법 문서 분류의 명칭에 대한 종합적인 토론을 향한 요구도 객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고는 문서(文書)의 정의와 이미 나오고 있는 분류 명칭을 결합하여 진한 사법 문서가 마땅히 사법 절차에 따라 분류가 진행되고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최근에 나온 진한대 사법 문서를 소개할 때 대부분 “원서(爰書)”ㆍ“주언서(奏讞書)”ㆍ“핵장(劾狀)” 등을 거론한다.
본고는 이 3가지가 모두 비록 사법 문서와 끊을 수 없는 연계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단순히 사법 문서 종류의 명칭이라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된 면과 연계하여 구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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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order to make more active use of the Jingshidadian(經世大典), this paper reviewed the contents and its academic significance of the recently published Jingshidadianjixiao(經世大典輯校, Gathering and Correction of Jingshidadian) in China, and analyzed some records, provided the basis for future research.
In the study of history of Yuan Dynasty, the most basic historical material is Yuanshi(元史), a fact which no scholar can deny. However, if only Yuanshi is used, there is a certain limitation in the research. So, I believes that it is necessary to illuminate the previously unobtrusive materials and explore the practical solutions.
In particular, Jingshidadian contains important records that tell the history of Yuan Dynasty, so it is hoped that a new book that publishes the records can be introduced to inspire scholars' motivation for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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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만청(晚清) 시기 배심 (陪審) 입법 연구

저자 : 자오지아준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5-2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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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청(晩淸) 시기 중국은 국내적 위기 상황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3천여년의 역사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커다란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고, 근대적 법률 구조로의 전환을 할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청말(淸末) 법제의 수정에 있어서, 영미 법제의 색채를 강하게 띄는 배심 제도는 상대적으로 빨리 도입되어 시대적 특징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것은 청 정부가 영사 재판을 폐지하는 등 변법 자강을 기대한 것 과의 '운명적 만남'의 결과였다.
실제 청말 배심제도의 구상은 영미 법제에서의 배심원 재판이었다.
법률 제도, 시대적 환경, 제도의 구상이 법제적 전통과 그 배경이 되는 법률 문화와의 사이에 존재한 갈등으로 인해 청말 반포된 배심제도는 법률과 도덕 간의 논쟁을 낳으면서 강한 반대에 직면하여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다.
청말 배심 제도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적 전통의 근본을 건드린 외국 제도와 국내 관습 간의 갈등, 정치적 상황, 민족적 정서와의 갈등에 있었다.
이것은 서양 법의 동전(東傳)과 근대 중국의 법제 개혁의 우여곡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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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後漢書』 「五行志」 譯註 Ⅴ

저자 : 洪承賢

발행기관 : 중국사학회 간행물 : 중국사연구 1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9-26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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