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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update

Paekche Kingdom`s Culture

  •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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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2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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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7)~63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500
백제문화
63권0호(2020년 08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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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백제 한성기 국가의례와 의례용기 그리고 음식의 공헌 -풍납토성 출토 유물을 중심으로-

저자 : 정수옥 ( Jung Su-ock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3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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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연회나 의례는 단순한 행사를 넘어서 정치체를 결집시키는 중요한 정치적 행위였다. 백제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국가 주도의 의례를 통해 정치체를 결집시키고 중앙집권화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한성기 도성인 풍납토성 내에서는 경당지구에서 특수한 기능을 가진 유구와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구과 유물을 분석해본 결과 당대의 의례장소, 행위 등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였다. 우선 의례용기의 기종 변화와 의례행위의 변화가 확인되었다. 기종별로는 백제 한성기 초기 제사유구에서는 직구호류 정도만 확인되지만 한성Ⅱ기에는 고배, 삼족기, 뚜껑, 직구단경호, 마연토기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특히 흑색 마연토기와 마연토기는 한성Ⅱ기에서 비율이 매우 높았는데, 국가적인 의례행사에서 사용되었던 고급 의례용기로 취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례행위에서도 제사유구나 수혈유구에서 토기의 일정 부위에 의도적으로 타결한 흔적이 관찰되었다. 전문적인 의례용기와 행위가 본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공헌용 제물에서도 한성Ⅰ기에는 여러 동물뼈 개체들이 출토되었지만 한성Ⅱ기에는 말뼈 10마리 개체분이 집중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동물의 공헌에도 변화가 확인된다. 그리고 제사유구에서 초대형 시루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제사용 음식인 술이나 떡과 같은 음식 공헌이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백제 한성기에는 대옹 생산이 활발해지고, 도성을 비롯한 서울·경기지역의 중심권역에서 대형의 저장용기가 조사되었다. 특히 풍납토성에서는 특대형의 저장용기가 안치된 수혈이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대형 저장용기들은 국가연회 및 제의 행위 등에 공헌된 음식물을 저장하고, 이를 중앙에서의 관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In ancient society, events or rituals led by the state were more than just events and were important political activities that united the political body. It seems that Baekje was also influenced by China and attempted to unite and centralize politics through state-led rituals.
In Pungnaptoseong, the capital city of Baekje's Hanseong-gi, remains with special functions and a large number of artifacts have been identified in the Gyeongdang district. As a result of analyzing these relics and relics, it was possible to estimate the place of rituals and actions at the time. First of all, the change in the type of the ritual container and the change in the ritual behavior were confirmed. It is very likely that during the Hanseong II period, it was treated as a high-quality ceremonial container used in national ceremonial events. In ceremonial acts, traces of intentional breaking of certain parts of pottery were observed in the ritual or blood transfusion.
In the ceremonial offerings, various animal bones were excavated in the Hanseong stage I, but 10 horse bones were intensively identified in the Hanseong stage II, indicating changes in the contribution of animals. In addition, a large siru was excavated in the ritual remains, which can be seen as suggesting that there was a contribution to food such as alcohol and rice cake, which are food for rituals. In addition, during the Hanseong Period of Baekje, production of Daeong became active, and large-sized storage containers were investigated in the central area of Seoul and Gyeonggi area including the city.
It is believed that large-sized storage containers store food contributing to national banquets and rituals, and manage them centr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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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제 목곽고의 기능에 대한 재검토

저자 : 권윤경 ( Kwon Youn-kyung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1-5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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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목곽시설은 크게 저장시설인 목곽고와 집수시설로 구분된다. 이 글의 목적은 현재까지 조사된 목곽고를 재검토하여 기존에 저수나 집수시설로 추정되던 목곽고의 본래적 기능이 저장에 있었다는 점을 밝히는 데 있다. 더하여 당시 목곽고의 의미도 함께 살펴보고자 하였다.
기존에 목곽고의 기능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점토 다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저장시설이나 집수시설로 추측되었다. 여기에서는 목곽고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과 토층 양상, 그리고 수원(水源) 등을 고려하여 목곽고의 기본적인 기능이 물품의 저장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목곽고 내에서 과일씨앗 등이 다량으로 확인되는 점에 주목하였다. 과일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낮은 온도에서 비교적 높은 수분을 일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목곽고 주변의 점토 다짐은 외부의 변수를 차단함으로써 목곽고를 관리하는 사람이 수분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목곽고는 왕실이나 도성에 인접하여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정치집단이 축조하였다. 그리고 중앙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성장한 지방 세력이 조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관방유적에서도 활용되었다. 결국, 목곽고는 백제의 중앙(왕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집단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거나 공적인 목적으로 중요한 물품 또는 식품을 별도로 저장하는 시설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The wooden storage facilities of Baekje are divided broadly into wooden barns, which are storage facilities and water-collection facilities. This study aims to reveal that the original function of the wooden barns, previously assumed to be reservoir facilities or water-collection facilities, was the function of storage by reexamining the wooden barns investigated until now. Moreover, this study would investigate the significance of the wooden barns of the time.
Previously, the function of the wooden barn was presumed to be a storage facility or water-collection facility, depending on how to understand the clay hardening surrounding this. Here,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relics excavated from wooden barns, the aspect of the soil stratum, and the source of water supply, this study found out that the storage of commodities was the basic function of the wooden barns. Especially,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the fact that large quantities of fruit seeds were found in the wooden barns. To store fruits, it would be necessary to maintain relatively high moisture steadily at a low temperature. It is very likely that clay hardening near the wooden barns was a way to keep moisture at a certain level for the person who manages the wooden barns by cutting off external variables.
Wooden barns were built by the royal family or political groups that seem to be directly related to the royal family since they were residing near the capital city. Local influences who grew up, actively accepting the central culture too built them. In addition, they were utilized in the militant defense ruins occupying geopolitically important locations as well. Ultimately, it is judged that it is very likely that wooden barns were warehouses storing important commodities and foods related to the warehouses, memorial services, and defense facilities operated by the groups directly or indirectly related to the center (royal family)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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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산 지역의 고대 사회

저자 : 강유나 ( Kang Yu-na )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간행물 : 백제문화 63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8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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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문헌자료와 최근 성과가 반영된 고고자료를 바탕으로 군산 지역 재지 세력의 변천과 군산 지역에 대한 백제의 지방통치체제를 살펴본 것이다.
군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고대 주요 유적을 검토한 결과, 금강 또는 만경강 수로로 연결되는 입지 상에 분묘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군산에서 확인된 분묘 유적은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며, 백제의 묘제 및 물질자료의 수용이 이른 시기에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군산의 재지 세력은 서부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였으나 해안가 보다는 재지 기반의 확보 또는 확장이 유리함과 동시에 금강 또는 만경강을 통해 수로를 통한 외부로의 연결과 육로를 통한 내륙으로의 연결성이 탁월한 동부 일대의 재지 세력들이 부상하였다. 이 가운데 나포면과 익산 웅포면의 경계에 해당하는 입점리 고분군은 금강 수로를 통해 충청 내륙과 외부를 연결하는 길목인 나포와 가까이 위치하며, 육로를 통해 전북 일원으로의 연결이 가능하였다. 이는 여타 재지 세력에 비해 입점리 고분군 세력이 부상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백제는 입점리 고분군 세력에게 금동관모를 하사하며, 이들을 남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아 활용하였다.
백제는 웅진·사비기에 이르러 직접지배체제로 변화하였으며,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위치한 군산 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측면을 고려한 끝에 시산군과 그의 영현으로 마서량현, 부부리현, 감물아현을 편제하였다. 시산군의 중심지는 임피면 일대이지만, 백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곳은 수로와 육로를 통한 사비 및 익산으로의 길목이 되는 성산면, 나포면 등 시산군의 북부 일원으로 파악된다. 이에 백제는 금강 연안을 따라 관원산성-도청산성-어래산성-함라산성을 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백제는 수도 사비는 물론 익산 금마까지 원활하게 이어지는 교통로를 통제하고 적을 차단하여 이 일대를 방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This study re-examined the ancient society in the Gunsan region based on literature and the archaeological data reflecting the recent achievements. For this purpose, the changes in the local gentry of the Gunsan region and the local governance system of Baekje on this region were investigated.
Review of main ancient sites scattering around Gunsan showed that tomb sites were located on the land connected to the waterways of the Geum River or Mangyeong River. In addition, the diverse types of tomb sites are found in the Gunsan region, which shows that the tomb burial systems and material of Baeje had been accepted relatively early.
The local gentry of Gunsan had appeared first from the western part, but those in the eastern part had emerged as a main force, where securing or expansion of local foundation was easier and at the same time, connectivity with the outside through the waterways of the Geum River or Mangyeong River or with the inland through the overland routes was excellent. Among them, it can be stated that the advantages of the location close to Napo, which was the crossroad connecting the Chuncheong inland and its outside through the Geum River waterway and also able to connect to the entire Jeonbuk region through the overland routes were the cause of the emergence of the force behind the Ipjeom-ri tombs. Hanseong period Baekje exploited this force behind the Ipjeom-ri tombs as a foothold of advancing to the south by bestowing the golden crown on them.
Woongjin and Sabi period Baekje changed to a direct ruling system, and organized Sisan-gun, and Maseoryang-hyun, Buburi-hyun and Gammula-hyun as its prefectures after considering the geopolitical aspect of the Gunsan region located between the Geum River and Mangyeong River. Although the center of Sisan-gun is around Impi, the most important region in Baekje is considered to be the northern parts of Sisan-gun, such as Seongsan-myeon and Napo-myeon, which were the main paths to Sabi and Iksan through the waterway and overland routes. Thus, Baekje built Gwanwonsanseong, Docheongsanseong, Eoraesanseong, and Hamrasanseong along the coast of the Geumgang River. Through this, Baekje intended to defend itself by controlling traffic routes that led to Iksan and Geumma as well as Sabi, the capital city, and blocking ene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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