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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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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5-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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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3)~52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02
한문학논집
52권0호(2019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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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쟁기의 어원 시고(試考)

저자 : 한연석 ( Han Youn Suk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4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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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농업생산 초기에는 농기구가 다양하게 분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이름도 단순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어떤 농기구의 명칭은 전시대의 특정 농기구의 명칭에서 분화된 것도 있을 것이다. 분화 과정 중 특정 농기구는 그 이름이 수십여 가지에 이르렀고, 그 기능도 다양하였다. 호미와 쟁기가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기능이나 모양이 지금과는 달랐다.
호미는 短柄類보다는 長柄類가 주종을 이루었고, 날의 모습도 지금과 같이 뾰족한 것이 아닌 널찍하고 평평한 것도 있었다. 이는 전고에 삽, 가래, 자귀(낫 혹은 도끼形), 괭이를 넓은 의미의 호미류로 분류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쟁기류 역시 지역과 시간에 따라 60여 가지의 많은 異稱과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였다.
쟁기와 호미는 기능이나 날의 모습이 유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전고에 보이는 鏟, 鍬, 鍤, 杴, 耨 등은 쟁기와 호미의 이름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쟁기류와 호미류의 명칭이 혼용된 것은, 근본적으로 이들 두 도구가 古時 특정한 시기에는 모양이나 기능이 유사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특히 쟁기의 많은 異稱, 예컨대 따비, 잡은 것, 보, 잠개, 잠기, 쟁기, 훌칭이, 극젱이 등은 기능을, 혹은 모양을 따라 붙여 준 것으로 어원이 전혀 다른 것도 있다. 이들 많은 이칭 가운데 '쟁기'는 호미로 알려진 '鎡錤'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鎡錤는 棘刺와 같은 뜻으로 보인다. 일부 주석에 鎡를 '錤鉏라 부른다.'를 참고하면 鎡錤는 어순을 바꾸어 錤鎡로 썼을 수도 있다. 아울러 이는 棘刺와 同源일 것이다. 호미를 나타내는 鋤는 일반적으로 '돕다'란 뜻을 나타낸다. 鋤가 '돕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根源義 '찌르다(刺)'에서 演變 된 것이다. '찌르다(刺) - 찍다(斫) - 찍어 풀을 제거하다(除) - 식물의 자람을 돕다(鋤)'로 演變된 것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鋤를 '玆'로 부른 것이 바로 '돕다'를 반영한 것으로 '刺, 鋤, 斫, 除, 玆'는 音近義通의 동원자이다.
鎡錤는 예기나 맹자 등 전국시대 전고에는 호미뿐만이 아니라 '耒, 耒耜(쟁기)'로 釋讀 하기도 하고, 혹은 주석을 鋤라 하였지만, 이곳의 鋤는 호미보다는 쟁기류를 나타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쟁기는 鎡錤에서 왔고, 鎡錤가 장기, 쟁기로 연변 되었을 것이다. 鎡錤의 鎡를 '장(쟁)'으로 읽게 된 것은 '마치'를 '망치,' '바올'을 '방울,' '버워리'를 '벙어리'로 부르는 것과 같이 운미에 'ㅇ'을 붙여준 우리 언어 습관과 관계있을 것이다.


Old agricultural machinery has not been differentiated in many ways. The shape of the old homi(호미) was not a short homi(호미) with the same handle as it is now but The handle was long. The plows were not the same as they are now. It looked like a daby(따비) or a shovel.
Homi(호미) and plows had many names. The old homi(호미) and plow were different in function and shape. Homi(호미) and plows have similar shapes and functions.
The plows started with the name of the homi(호미). the Jagi(鎡錤) was interpreted as a plow directly in the national era. the Jagi(鎡錤) has been changed into the Janggi(장기) and Jeanggi.(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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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근대 서구 외래어의 동점(東漸)과 한자문화

저자 : 김우정 ( Kim Woo-je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1-6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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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후반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유입된 서구의 개념어들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대응 양상과 한자문화에 끼친 영향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양의 충격으로 시작된 동아시아의 근대는 한 중 일 서로에게 각기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한국과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에 반해 일본만은 근대독립국으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른바 '번역주의'가 있었다. 중국이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구 열강에 유린당하는 것을 본 일본의 지배층은 자주독립의 길을 모색하였으며, 幕藩 체제를 통해 단련된 현실주의는 武士들로 하여금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심혈을 기울이도록 하였다. 이러한 서구의 문물을 접하는 현실적인 자세는 메이지 정부에도 이어져 변혁의 방향을 서구를 모델로 한 서구화로 구체화하게 되고 문명개화의 기치를 내세웠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유교/유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치와 경제 등 사회 각 영역에 걸쳐 인용 되어야 할 개념/용어들을 서구의 것으로 대체하기 위한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하였으며, 실제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번역이 이루어졌고, 근대화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한국과 중국에까지 전파되어 동아시아 공동의 근대어로 정착되었다. 이는 동아시아 삼국이 漢字라는 표기수단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문화의 유입이 확대되며 동아시아의 언어관이 음성중심주의로 현저히 이동함에 따라 한자문화에 기반한 번역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보다는 외래어를 그대로 음역/음차해 표기하는 방법을 즐겨 택하게 되었다. 이는 異文化에 대한 주체적 이해를 포기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국어의 形骸化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할 문제다.


During the modernization of the late 19th century, many Western concepts were transmitted to East Asia. This paper mainly discusses the acceptance and influence of East Asian countries. The modernization of East Asia, which began with the impact of the Western, Korea, China, and Japan began in different directions. Korea and China had become victims of the imperialist countries, and Japan has become the only modern independent country. The so-called translationism is one of the reasons for this result. The Japanese ruling class saw China's opium war was forced by Western, began to look for independence, and worked hard to understand Western. At the same time, Japanese realism, which was exercised through the aide system, also helped the warriors to respond sensitively to changes in the times. As a result, Japan actively contacted Western cultural relics. This tangible effort continued to the Meiji government. They embodied the direction of change according to the Western model and established the banner of civilization. While criticizing Confucianism, the old vocabulary and concepts used in various fields such as politics and economy were replaced with those in Western, and the necessity of translation was greatly increased. At that time, the Japanese were translated in a wide variety of fields. In fact, the translation was done in a wide variety of ways and spread to Korea and China where there was no room to prepare for modernization, and it was established as a common modern language of East Asia. This was possible because the three East Asian countries shared the means of marking Chinese Character. However, as the influx of Western culture increased, the perception of language in East Asia shifted markedly toward the Phonocentrism. As a result, people have adopted more methods of translating foreign words into transliteration rather than creating and using translation vocabularies based on Chinese culture. This is a declaration that we will not try to understand other cultures in a subjective way, and there is a serious problem in that it will make Korean language like an empty 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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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자기 증언에 나타난 주체의 형상

저자 : 정우봉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3-9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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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전환기의 큰 분수령을 이루었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그동안 문학 방면에서는 동학가사, 민란가사에 관한 연구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연구 성과가 제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논문에서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 지도자로 참여했던 인물들이 작성한 자기 증언 기록들에 새롭게 주목하였다. 동학농민혁명에 직접 참여하여 역사의 현장을 함께 했던 인물들이 남긴 기록들, 특히 동학 농민 지도자들, 특히 金亨鎭, 鄭伯賢, 朴鶴來, 金洛喆, 全琫準의 자기 증언 기록물에 담긴 생생한 목소리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서 참여하였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좌절 이후 각기 다른 행로를 보여주었다.
이들 인물들을 포함하여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활동했던 이들이 남긴 자전적 기록은 동학농민혁명이 특정 지역에서 어떠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어 갔는가를 살펴 보는 데에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 논문에서는 이들 자기 증언의 기록물들이 단순히 과거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자료로서 활용되는 것을 넘어서, “삶이 자서전보다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서전에 의해 삶이 구성된다.”는 말에서 보듯이,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기억하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던 과정에 보다 주목하였다. 기억을 통해 주체가 구성되는 양상을 분석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이 논문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의 자기 증언에 나타난 주체의 형상이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혁명에 대한 기억이 근대의 주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만들어나갔는가 하는 점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ego documents written by leaders of Donghak Peasant Revolution and figure out its meaning in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In this paper we concentrated on the ego documents of peoples who served as leaders of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In particular, we noted four peoples, namely Kim Hyeongjin, Jung Baekhyeon, Park Hakrae, Kim Nakcheol, Jeon Bongjun's ego documents. They participated as leaders of the Donghak Peasants' Army during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and showed different paths after the defeat of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The autobiographical records of those who worked during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including those of these figures, provide useful information on how the Donghak Peasants Revolution unfolded in certain regions. But we noted the process of creating a self-identification by remembering and writing it down. In this paper, we analyzed what the figures of the subjects appeared in the ego documents of the leaders of the Donghak Peasants. We wanted to establish how memories of the revolution formed and shaped the modern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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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중기(朝鮮中期) 문화의 패턴과 그 표현 양상 - 산수(山水)와 인물(人物)을 중심으로

저자 : 안득용 ( An Deuk-y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3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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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은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는 유의미한 상징체계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맥락이지만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결정하는 틀로서도 기능한다. 본고의 목적은 山水와 人物을 인식하고 표현한 글을 통해 그간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한문학계의 조선중기(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연구를 제한적이나마 종합하려는 데 있다. 이에 본고는 종합의 구심점으로서 삶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의 패턴이 적합하다는 생각에 이것을 연구의 중심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문인지식인들이 산수와 인물을 바라보고 표현한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 결과, 조선중기에 두드러진 문화의 패턴이 지닌 특징을 다음과 같이 再構할 수 있었다.
조선중기에 부각된 문화의 패턴은 '개별, 현상, 주체의 경험과 판단, 多元'을 중시하며, '사유와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조선전기에 부상해서 그 이후까지 공존했던 '보편[基體], 영구불변의 실재, 주어진 원리, 학문과 윤리'를 중시하며, '형상과 감흥의 표현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문화의 패턴과 변별된다. 아울러 조선중기와 일정한 回路를 공유하지만 '개성과 취향, 사실과 실재, 일상과 효용'의 방향으로 옮겨 간 조선후기의 그것과도 차이를 보인다.
조선중기 문화의 패턴이 이와 같은 양상을 띠게 된 근거로는 우선, 자기성찰, 天眞과 天機를 중시하던 태도, 老莊的 사유의 풍미 등을 들 수 있다. 자기성찰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과 기호 및 개성을 자각할 수 있었고, '천진'과 '천기'는 자신의 사유와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게 했으며, 노장의 사유는 多元性을 촉진했다. 다음으로, 조선중기 주요 문화 담당층의 성격 역시 그 형성에 기여하였다. 특히 道學者이기보다 經世家이자 文章家이며 使臣으로서 최신 지식과 정보를 신속하게 수용할 수 있었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호흡할 수 있던 수도 漢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로써 볼 때, 조선전기나 후기와 변별되는 조선중기만의 문화의 패턴을 재구하는 일은 가능하며, 산수와 인물에 국한시켰기에 제한된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가능성을 조감하고 현시했다는 사실이 본 연구가 지닌 의의이다.


The pattern of culture is a meaningful symbolic system that controls human behavior. It is a human-created context, but it also functions as a framework for determining human reasoning and behavior.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ynthesize the limited study of the mid-Joseon dynasty(Late 16th century early 17th century) of the Chinese literature. Therefore, this study focused on the idea that the pattern of culture that can cover the whole life as the central point of synthesis is suitable.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aspect of the inhabitants of the Joseon dynasty looking at the landscape and the person, it was possible to reconstruct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ominent cultural patterns in the mid-Joseon Dynasty as follows.
The pattern of culture that emerged in the mid-Joseon Dynasty emphasized the individual, the phenomenon, the subject, the pluralism, and the detailed description. This is distinguished from the pattern of culture that emerged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that emphasizes the universal, the permanent existence, the given principle, the scholarship, the ethics, and the attitude to abstain from expression and inspiration. In addition, it shares a certain circuit with the mid-Joseon Dynasty, but also differs from the pattern of culture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ich was moved to the direction of the personality and the taste, the fact and the reality, the everyday life and the utility.
The patterns of cultural pattern in the mid-Joseon Dynasty was based on self-reflection, attitude that emphasizes the naturalness and the secrets of nature, and the flavor of Lao-tzu and Chuang-tzu. Self-reflection made them be able to become aware of the identity, symbol and personality of the self, and the naturalness and the secrets of nature made them express their feelings and thoughts genuinely, and the flavor of Lao-tzu and Chuang-tzu promoted pluralism. And the character of the main cultural leadership in the mid-Joseon period also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cultural patterns. In particular, they acted more as an administrator, as a writer and as a diplomat than as a scholar, they were able to quickly accept the latest knowledge and information, and acted mainly in the capital Hanyang(漢陽), which was able to breathe with various human groups.
In this regard, it is possible to reconstruct the cultural pattern of the mid-Joseon Dynasty distinguished from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late Joseon Dynasty. Although it was limited to arithmetic and human figures, it had to be seen from a limited perspective. But The fact that I examined and revealed the possibility is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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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창계(滄溪) 임영(林泳)의 독서 기록을 활용한 대학생 서평 쓰기의 순서 제안

저자 : 이연순 ( Lee Yeon-soo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5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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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기 문인인 滄溪 林泳의 독서 기록을 활용하여 오늘날 대학 교양 교육에서 과제로 많이 부여하는 서평의 순서를 제안하고자 시도되었다. 창계는 17세기 임 병양란 이후에 태어나 자신의 문집에 讀書箚錄과 日錄등 많은 양의 독서 기록을 남겼다. 여기서 창계가 따로 독서론을 서술하지는 않았으나, 유가의 전통적인 공부법인 '道問學 尊德性'에 따르면서 평생에 걸쳐 학문하는 방법이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며, 당시 스승에게 전수받은 '細攷'의 독서법을 적용해 독서하고 학문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이러한 창계의 학문에 대해서는 기존에 퇴계와 율곡을 절충했다거나 실학파의 경학에 우선한다는 평과 함께 경학사에서 주목받았다. 이에 창계의 독서 기록을 통해 오늘날 대학생의 교양 교육에서도 특히 서평을 쓸 때 시사 받을 점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그 주된 내용과 방식을 추출해본 결과, 서평의 순서를 제안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첫째, 저자의 주된 논점이 무엇인지를 세밀히 파악하고 그 논점이 전개되는 방향에 따라 내용을 요약하는 방식을 제안해볼 수 있다. 둘째, 스스로 의문을 가진 점이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의 중심 문장이나 논점을 제시한 후, 그 내용을 자세히 정리하며 의심한 점을 파악하고 문제제기하는 방향으로 쓸 것을 제안할 수 있다. 또 글 전체에서 꼽을 만하다고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문장 또는 내용을 제시하고, 나에게 어떠한 효과, 변화를 주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읽은 글에서 한계로 발견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전체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쓸 것을 제안할 수 있다.


This paper was attempted to propose the order of book review in today's University liberal education by using the words "reading charok(讀書箚錄)" and "illok(日錄) of Changgye(滄溪) Lim Young(林泳), which left numerous reading records during the mid Joseon period. In the 17th century, a book written by Changgye, which left a large volume of reading records, we were able to suggest the order of the book reviews, assuming that there would be implications for today's University students to write a book review in liberal arts education.
As a result, first, we can propose a method of identifying the author's main points and summarizing them. Second, it is possible to present a central sentence or point of a self doubt or incomprehensible part, and then clarify the details of the question and suggest that it be written in the direction of raising. I can also suggest a direction to present impressive sentences or contents that are memorable for the entire article, and to describe the effect and the change that they gave me. Finally, it can be suggested to point out the areas found by limitations in your reading and to write with overall significance. Finally, it can be suggested to point out the areas found by limitations in your reading and to write with overall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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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귀명 산문의 작가의식과 구현 양상

저자 : 송혁기 ( Song Hyok-key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7-18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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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귀명 문학론과 산문 작품의 성과로 주목되어 온 立意의 참신함과 표현의 독특함이 개별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의 일단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작가의식'이라고 지칭한 것은, 작가로서의 강한 자의식을 지니고 모든 작품에 남다른 입의와 표현을 담고자 한 데에 조귀명 문학의 특징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조귀명이 문학에 대한 강한 자부와 그에 상응하는 인정욕구를 지녔던 것은, 병든 육신으로 인해 사대부로서의 일반적인 포부를 펼칠 길이 막혀 있었다는 점에 기인한 바 크다. 자신 말고는 자신을 제대로 알아줄 이가 없는 현실을 타개할 길 역시 그는 문학에서 찾았다. 자신에 대한 연민과 자부, 아쉬움과 기대를 거북의 운명이라는 은유에 담아낸 「記夢」은 독특한 방식의 자기 응시와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倭驢說」은 발상의 전환을 한걸음 더 밀고 나가는 방식을 통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었으며, 「李儒子墓誌」는 깊은 슬픔을 당한 이에게 논리의 유희에 가까울 정도의 이지적인 의론을 던짐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정서적 위로의 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李參謀傳」의 단락 전개와 내적 조응을 분석함으로써 치밀한 구성과 의도된 변조를 통해 인물의 비범함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해 내었음을 살폈다.


This thesis analyzes prose works of Jo Gui Myoung to find out his original and unique writing style. We can call it Jo's “artistic acumen” because he was self-conscious as a prosateur and developed his own literary style in writing each essay.
Jo was strongly proud of himself in his literacy followed by desire for social approval. It was also because of his sick body that blocked himself from social success as a shihdafu. The only breakthrough in his situation was writing. 記夢 shows an unique style of introspection where he expressed empathy, pride, expectation and regret for himself using a metaphor of a destiny of turtle. 倭驢說 adapts a strategy that reverses stereotypes and pushes his logic further to a new epistemological horizon. paradoxically creates a 李儒子墓誌 room for emotional comport by asking highly metaphysical questions to the bereaved in deep sorrow. 李參謀傳 impressively gives shape of a figure by intense organization of paragraphs and content, and intended twist of the genre. We can see Jo's literary accomplishment in those writings combining fresh theme with extraordinary phra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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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규남 하백원의 『해유시화(海遊詩畵)』 연구

저자 : 명평자 ( Pyeong-ja Mye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1-23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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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유시화(海遊詩畵)』는 규남(圭南) 하백원(河百源, 1781~1844)이 1843년에 유배지인 보령에서 지역 문인 다섯 사람과 함께 만든 기행시화첩이다. 하백원(河百源)과 이병중(李秉中), 이우명(李遇明), 조순영(趙淳榮), 이우정(李遇正), 심사숙(沈思叔) 등 여섯 사람은 배를 타고 보령의 명승지 중 송호(松湖), 황학루(黃鶴樓), 영보정(永保亭) 등을 유람한 후, 기행 장소를 그림으로 그리고, 시와 문을 갖추어 여섯 개의 시화첩을 만들어 나누어 가졌다.
『해유시화』의 창작 동기는'해유(海遊)'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와 함께 해유(海遊)'의 두고두고 펼쳐보기 위한'와유(臥遊)'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시기 널리 확산 되어 있던 '와유(臥遊)'문화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해유시화(海遊詩畵)』는 하백원이 쓴 변려체의 해유첩서(海遊帖序) , 이우명의 해유시화기(海遊詩畵記) , 하백원의 송호(松湖), 황학루(黃鶴樓), 영보정(永保亭) 그림 세 점, 각 그림 아래 이병중(李秉中), 하백원(河百源), 이우명(李遇明), 조순영(趙淳榮), 이우정(李遇正), 심사숙(沈思叔)이 차례로 친필로 쓴 7언 율시 18편, 이병중의 해유시화지(海遊詩畵識) 등 전체 총 24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하백원은 '화려한 바다 유람'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명승지의 승경을 더욱 아름답게 묘사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해유첩서(海遊帖序) 를 변려문으로 썼다.
『해유시화』는 19세기에 널리 유행했던 기행산수도 중 시(詩), 서(書), 화(畵)가 합벽된 첩본의 좋은 예로써, 19세기에 지방까지 확산된 시화첩 제작 양상을 연구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유배객들이 유배지역에 적응해가는 양상을 파악하고 잊혀져가고 있는 전대의 지역 문인들을 발굴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해유시화』는 문학연구 텍스트로서의 가치 외에 역사문화 유적에 대한 고증자료적 가치 또한 높다 할 수 있다. 『해유시화』에 대한 연구는 향후 보령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 관광 문화를 새롭게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Haeyusihwa (海遊詩畵)』 is a picture and poetry collection about traveling made by Gyunam Ha Baek-won (河百源, 1781~1844) in 1843 in the place of exile, Boryeong, with five other literary persons from the region. Six persons, Ha Baek-won (河百源), Lee Byeong-jung (李秉中), Lee Woo-myeong (李遇明), Jo Sun-yeong (趙淳榮), Lee Woo-jeong (李遇正), and Sim Sa-suk (沈思叔), went sightseeing to some of the scenic spots of Boryeong, for example, Songho (松湖), Hwanghakru (黃鶴樓), or Yeongbojeong (永保亭), and then drew pictures of the traveling spots along with poetry and writing to make six picture and poetry collections and have one of them each.
The motive to create 『Haeyusihwa』 was not only to keep records about 'Haeyu (海遊)' but also for 'Wayu (臥遊)' to see the records about Haeyu (海遊)' every now and then. This was attributed to the influence of 'Wayu (臥遊)'culture that was prevalent at that time.
『Haeyusihwa (海遊詩畵)』 consists of total 24 pieces of works including 「Haeyucheopseo (海遊帖序)」 written in Byeonryeoche by Ha Baek-won, Lee Woo-myeong's 「Haeyusihwagi (海遊詩畵記)」, Ha Baek-won's three pictures of Songho (松湖), Hwanghakru (黃鶴樓), and Yeongbojeong (永保亭), and 18 pieces of 7eon yulsi written by Lee Byeong-jung (李秉中), Ha Baek-won (河百源), Lee Woo-myeong (李遇明), Jo Sun-yeong (趙淳榮), Lee Woo-jeong (李遇正), and Sim Sa-suk (沈思叔) in their own handwriting below each of the pictures in turn, and Lee Byeong-jung's 「Haeyusihwaji (海遊詩畵識)」. Particularly about Ha Baek-won, Haeyucheopseo (海遊帖序) was written in byeonryeomun in order to elevate the mood of 'traveling the splendid sea' to the fullest and also get the effect of depicting the fine views of those scenic spots even more beautifully.
『Haeyusihwa』 is a good example of collections in which poetry (詩), writing (書), and pictures (畵) are combined among Gihaengsansudo widely popular in the 19th century, and it can be the material to study the aspects of producing picture and poetry collections which were prevalent even in local areas in the 19th century. Also, it can be the material to understand the aspects of exiles getting used to the place of exile and discover literary persons of the region from the previous time who were getting forgotten. Also, it can be said that 『Haeyusihwa』 is equipped with value not only as text for research on literature but as material for historical investigation about historic and cultural relics as well. It is expected that research on 『Haeyusihwa』 will contribute significantly to developing cultural contents of Boryeong and promoting tourism culture of the region new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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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제문초(祭文抄)의 특징과 편찬 목적

저자 : 김기엽 ( Kim Gi-yeop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3-26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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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은 故人을 추모하는 祭儀에 사용되며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요소와 결부되어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저명한 문인과 관련된 제문은 문인의 문집에 실려 전해지기도 하며, 혈연이나 학맥으로 결속된 집단에서는 선대 문인의 제문을 선별하여 집약 수록 하기도 한다.
제문 選集인 祭文抄는 문인의 문집과는 별개의 유형으로 전해지며 '抄'라는 양식에 따라 필사자에 의해 선별된 제문이 주를 이룬다. 編纂은 문인의 제자 또는 문중에서 후손이 집록하기도 하는데 간혹 필사자의 성향에 따라 詩나 유명 문인의 글, 생활 편의를 위한 잡록이 함께 실리기도 한다.
편찬 목적에 따라 대표성을 띠는 제문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창협의 제문을 선집한 『農巖祭文抄』는 『農巖集』에 실린 48편의 제문과 비교하면, 18편이 누락되어 채록되어 있다. 이 제문초는 김창협의 후인이나 제자가 김창협의 제문을 필사한 것으로, 필사자 본인이 지은 제문 2편을 끝부분에 실어 놓았다. 『歷代祭文抄選』은 제문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대가들의 제문을 선별하여 필사한 것으로 작자의 이름, 용어나 낱글자, 해당 문장의 상 하단에 세주 형태로 간단한 설명을 부기하여 내용 이해를 돕고 있다. 문장가로 저명한 陶淵明·韓愈·歐陽脩·蘇軾 등이 지은 제문들을 4언의 운문과 산문 형식을 구분하지 않고 시기별로 정리해 놓았다.
『嘉林四稿祭文抄選』은 李瑞胄와 그의 사촌 아우 李德胄를 비롯한 문중 내의 문인이 지은 제문을 모은 것이며, 李仁行의 제문을 선집한 『丁巳年祭文抄』는 이인행의 후손 李命杰이 문중에 전해지던 선대의 제문들을 집록하여 필사한 것으로, 당시 지방 유림들의 여러 작품이 망라되어 있어 인물 및 문중 간의 교유를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제문초는 수록 양상에 따라 문장력 성취를 위한 목적과 문중 간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나눌 수 있다. 「農巖祭文抄」는 남에게 公示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집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글쓰기 연습을 위해 김창협의 제문을 채록한 것이다. 또 「歷代祭文抄選」은 제문의 전범을 채록하고 세주를 달아 참조할 수 있도록 하여, 문장력 습득을 위한 전형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자의 관계망이 비교적 잘 드러나 있는 「嘉林四稿祭文抄選」과 『丁巳年祭文抄』는 혈연으로 결속된 문중의 유대를 재확인하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집한 것이다. 특히 『丁巳年祭文抄』에는 문중 내 친족에 대한 제문뿐만 아니라 다른 문중의 인물에 대한 제문과 그 문중으로부터 다시 받은 제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혈연 및 사우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인 네트워크와 소위 '글빚'을 매개로 한 문중 제문 특유의 채무적 성격 또한 포 함되어 있다.


The funeral oration is used for memorial rites(祭儀) in remembrance of the deceased(故人) and it is closely related to real life in connection with the realistic element of death. A funeral oration related to well-known writers are often written and conveyed in the literary collection of writers, and in the groups bound to a blood relation and an academic line, the funeral oration of an ancestral writer is selected to be intergrated and contained.
Funeral oration selection(祭文抄), the collection(選集) of a funeral oration is handed down as a distinct type from the literary collection of a writer and consists mainly of the funeral oration selected by a transcriber according to the style of 'selection(抄)'. Compilation is collected and written by the disciple of a writer or the descendant in the family, but sometimes depending on the tendency of a transcriber, there are also documents containing poems, writings by famous writers, and miscellaneous records for convenience of living.
In accordance with the purpose of compilation, the following are the types of funeral oration selection that are representative. In the case of 『Nongam funeral oration selection(農巖祭文抄)』, which is an collection of the funeral oration of Kim Chang-hyeop, there are 18 records missing compared to 48 articles that contain 『Nongamjip(農巖集)』 and the second volume where a posterity or student of Kim Chang-hyeop transcribed his funeral oration and the transcriber himself created, was presented at the end of it. In case of 『Ancient funeral oration selection(歷代祭文抄選)』 the funeral orations of great masters, the classic of funeral orations were selected and transcribed and the name of the author, word or letter, and a brief description in the shape of annotations in detail at the top and bottom of the sentence are added to help understand the contents. The funeral orations written by Do Yeon-myeong(陶淵明), Han Yu(韓愈), Gu Yang-suh, and So Sik(蘇軾) were arranged in chronological order, without distinguishing four-letter verse and prose style here.
『Garimsago funeral oration selection(嘉林四稿祭文抄選)』 is a collection of funeral orations written by writers within the family including Lee Seo-ju(李瑞胄) and his cousin younger brother Lee Deok-joo(李德胄). 『Jeongsanyeon funeral oration selection(丁巳年祭文抄)』, the selection of Lee In-haeng(李仁行)'s funeral oration where Lee Myeong-geol(李命杰), a descendant of Lee In-haeng, collected and transcribed people's funeral orations handed down in his family, contains several works of local Confucian scholars at that time, making it a good source of understanding the exchanges between the figures and the family.
According to the pattern of including, funeral oration selection can be devided into the purpose of achieving sentence power and the purpose of strengthening bonds between families. 「Nongam funeral oration selection(農巖祭文抄)」 recorded the funeral oration of Kim Chang-hyeop not for the purpose of public announcement, but for the personal writing practice. 「Ancient funeral oration selection(歷代祭文抄選)」 can be referred to as compilations and annotations in detail of the classic of the funeral oration, indicating that it is a typical structure for learning the setence power. 『Garimseogo funeral oration selection(嘉林四稿祭文抄選)』 and 『Jeongsanyeon funeral oration selection(丁巳年祭文抄)』, in which the author's relationship network is relatively expressed well, was collected for the purpose of confirming the bonds of the the united family and strengthening the solidarity. In particular, 『Jeongsanyeon funeral oration selection(丁巳年祭文抄)』 contains a large proportion of not only the funeral oration about relatives within the familydoor, but also the funeral oration about people in other family and the funeral oration received again from that family, which reveals the unique debt-ridden nature of family funeral oration, a network of writers and so-called "the debt fot writing(Gulbit)," which revolves around blood ties and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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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역사평론서 『독사관견(讀史管見)』의 위상과 조선 지식인들의 수용 양상

저자 : 백진우 ( Baek Jin-wo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5-29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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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송대 학자인 호인(胡寅, 1098~1156)이 지은 『讀史管見』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에 대해 살핀 글이다.
이 저술은 송대 성리학의 발전 과정, 그리고 성리학적 역사관의 성립 과정 속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조선에 수용된 이후 지식인들의 역사관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후대의 논자들에 의해 이 저술이 양면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날카로운 역사 인식과 평론을 보여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지나치게 냉정하고 엄혹할 뿐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 朱子는 역사관 형성에 있어서 이 저술의 영향을 깊게 입기도 하였고 호인의 인물됨을 높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또 반면에 사적인 감정에 기인한 저술이라는 혹평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인 평가가 병존한다는 사실은 이 저술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저술이 조선에 끼친 영향력은 제법 크다. 수용 초기인 고려말 조선초에는 호인의 견해가 역사 논평의 정설로 인정받은 실례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經筵 자리를 통해 역사의 성패를 논할 때에 주요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저술은 典據의 의미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후기로 갈수록 『독사관견』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通說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또 반대급부로 주요한 반박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 역시 『독사관견』의 위상을 가늠케 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In this paper, I looked into the significance of Du shi guan jian(讀史管見) in pre-modern Korea. This book was written by Hu Yin who lived during the Song dynasty.
This writing has a very important meaning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and the establishment of Neo-confucianism during the Song dynasty. In the same vein, it has been influential in the formation of the intellectuals' view of history since their acceptance into Korea.
This work has also received various evaluations. In addition to the positive evaluation that it showed sharp historical awareness and criticism, it also coexisted with a negative evaluation that it was too cold and severe. For example, Zhu Xi has been deeply influenced by this writing and highly appreciated the character of Hu Yin. On the other hand, there was a criticism that the writing was caused by private feelings. However, the fact that such extreme evaluations coexist can be interpreted to mean that the influence of this work was so great.
The influence of this writing on Joseon is quite large. Between the late period of Koryo Dynasty and the early stage of Joseon Dynasty, it is easy to see the example of the favorable view accepted as orthodoxy. Especially, it was used as a main basis for discussing the success and failure of history through the discussion between the King and the retainer.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meaning of reliable authority is very large. Since th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writing has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historical facts and figures, and has also been a major objection to the opposition. This is also an example of how to assess the status of thi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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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소재 한시 제재의 검토와 제언 - 2011 교육과정 <문학> 교과서 11종 소재 한시를 대상으로 -

저자 : 김창호 ( Kim Cha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3-315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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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1 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소재 한시 제재를 몇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고, 향후 <문학> 교과서 한시 수록의 방향성과 유의점에 대해 제안한 것이다.
2011 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한시 제재는 대단원의 성격에 맞게 본문에 배치되기도 하고 활동 제재로서 수업 목표의 도달을 돕기도 한다. 다만 몇 가지 면에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번역과 작품 이해 기반의 문제이다. 제시 제재의 誤字, 誤譯, 동일 詩句에 대한 상반된 해석 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일부 제재는 번역문 이외에 상황 설명 등 부대적인 정보 제공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제재 활용의 실제와 학습 활동 관련의 문제이다. 창의적 사고의 배양과 관련하여 현대시와 한시 제재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등 한시 제제 활용의 모범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제재의 고교 수준 적합성 여부 문제, 고시 인용 상의 자의적 재단 등은 생각해 볼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오역이 그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학습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분석하였다.
향후 진전된 관점에서 한시 제재의 활용을 바라는 입장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한시 제재는 타 제재와 달리 제시에 앞서 철저한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한시 제재의 원문을 원집과 대조하여 확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필자가 직접 번역을 하든 전문가의 번역을 이용하든, 번역의 정확성·가독성에 유의하고 단원의 분위기에 맞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한시 제재 번역과 관련하여 전문가의 번역에 의지할 경우,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한시 제재의 번역만이 아니라 한시 제재를 기초로 한 학습 활동의 구안에 한문 전공자의 참여나 자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저변의 사유와 문화에 대한 시각까지 구비될 때, 학습 활동의 방향은 보다 뚜렷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의 관점·속성 등에 따라 현대시와 산문, 한시를 함께 묶어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개발이 요구된다. 특정 시대 자료에 대한 천착도 필요하지만, 전통시대와 현대의 경험을 담은 자료들을 함께 다룸으로써, <문학교육과정>에서 의도하는 문학의 기능에 대한 이해와 삶의 질 향상은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고 본다.


This article examines some aspects of Chinese poetry materials appearing in the high school “Literature” textbook, and suggests the direction and significance of inclusion of the Chinese poetry in the “Literature” textbook in future.
Chinese poetry materials are placed in the text to suit the character of the chapter, which helps to reach the class goal as activity materials. However, there are some problems in several ways. First, it is a matter of translation and understanding frame of the work. It is found that there are miswritten words, misinterpretation of materials presented, and the contrary interpretation to the same line of a poem, and that some materials needed additional information, such as a description of the situation in addition to the translation. Second, it is a matter of actual use of materials and aspect of teaching development. It is found that there are exemplary practices of using Chinese poetry materials such as harmony of modern poetry and Chinese poetry in relation to cultivation of creative thinking. However, there are issues to think about whether some materials are suitable for high school students despite their own merits, and whether there is an arbitrary customization for the citation of classic poetry. Lastly, this study analyzed the misinterpretation of the work and the negative effects on the learning activities.
This study attempts to make some suggestions in the hope that “Literature” textbook will be written from an advanced perspective in the future. First, Chinese poetry materials require a thorough baseline work before presenting them to textbooks. It is necessary to confirm the original text of Chinese poetry materials as compared with the primary collection.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accuracy of the translation, the readability, and check whether it matches the atmosphere of the unit. Second, in relying on the translation of experts in the translation of Chinese poetry materials, it is necessary to clarify the source. Third, it is necessary to consider the participation and consultation of Chinese major scholars in the concept of learning activities based on Chinese poetry materials rather than translation of Chinese poetry materials. When there is not only the translation itself but also the viewpoint of culture and the underlying reason, learning activities will be deeper and clearer. Fourth, it is required to develop a method of using classic Siga, modern poetry, and Chinese poetry together according to one viewpoint and attributes,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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