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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hinese

  • : 근역한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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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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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5-1313
  • : 2713-9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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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3)~57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650
한문학논집
57권0호(2020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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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탁의 지부상소 연구

저자 : 황만기 ( Hwang Man-ki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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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역동 우탁의 持斧上疏에 대한 연구이다. 주지하다시피 퇴계 이황은 우탁이 주역을 우리나라에 널리 보급하였다는 점을 높이 숭상하여 역동서원을 건립하였다. 우탁은 또 고려조 감찰규정으로 있을 때 충선왕의 폐륜적 행위에 흰옷 차림에 도끼를 메고 간언을 올린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탁의 지부상소에 대한 소개는 『고려사열전』에서부터 權近의 『東賢史略』, 柳希春의 『續蒙求』, 沈光世의 『海東樂府』 등에서 그의 義行을 기록하여 그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남다른 역사 인식을 지닌 문장가들은 잡저 등을 통해서 개인의 문집 속에 다양한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로 넘어오면 기존의 서술형 형태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이채롭게 전개되기도 하였다. 星湖李瀷은 樂府詩형식으로, 그의 제자인 無名子 尹愭는 七言絶句 시를 통해 우탁의 지부상소를 부각하였고, 著菴 兪漢雋은 장편의 敍事賦의 형식으로 지부상소를 특기하였다. 이는 지부상소를 결행한 우탁의 절조와 충언을 널리 알리고자 한 작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탁의 지부상소는 조선 중기 중봉 조헌에 의해 역사적 의미를 되찾았고, 구한말에 와서는 면암 최익현에 의해 또다시 그 의미가 재규명되었다. 조헌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일본에서 온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소를 올리면서 우탁의 지부상소에 기인하였음을 밝혔고, 최익현은 1876년 일본과의 통상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과정에서 우탁과 조헌의 지부상소에 기인하여 소를 올리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분의 상소를 우리나라 3대 지부상소라 일컫고 있다.


In this paper, Yeokdong U Tak's Jibusangso(持斧上疏) was examined. As you know, Toegye Lee Hwang thought highly of U Tak's having dissseminated I-Ching widely into Korea and established Yeokdong Seowon. U Tak is also widely known as a person who reproved King Chunseong for his unethical acts while wearing white clothes and carrying an ax when he was a Gamchal Gyujeong(inspection officer) of Goryeojo. As the introduction to U Tak's Jibusangso, his righteous acts(義行) were recorded not only in 『Goryeosayeoljeon』 but also in Kwon Geun(權近)'s 『Donghyeonsaryak(東賢史略)』, Yu Hui-chun(柳希春)'s 『Sokmonggu(續蒙求)』, Sim Gwang-se(沈光世)'s 『Haedongakbu(海東樂府)』 and others in order to honor his spirit forever. And good writers with extraordinary historical consciousness introduced them in various ways through miscellaneous writings and etc. in individual collections of literary works. In particular, in the latter half of Joseon, it developed unusually in diverse ways from the existing narrative style. Seongho(星湖) Lee Yik(李瀷) made U Tak's Jibusangso stand out in the form of Akbu poetry(樂府詩), and his disciple, unknown(無名子) Yun Gi(尹愭), through the poem of Chileonjeolgu(七言絶句), and Jeoam(著菴) Yu Han-jun(兪漢雋) specially wrote abou Jibusangso in the form of full-length Seosabu(敍事賦). It was because the author intended to give publicity to U Tak's integrity and honest advice who carried out Jibusangso.
The historical meanings of U Tak's Jibusangso were found by Jungbong Jo Heon in the middle period of Joseon, and re-investigated by Myeonam Choi Ik-yeon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When Jo Heon appealed to make the envoy from Japan cut before the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he said that it was from U Tak's Jibusangso. And when a commercial treaty with Japan was signed in 1876, Choi Ik-hyeon emphasized the injustice of the treaty, and in the process, he also mentioned that he came to appeal based on U Tak's and Jo Heon's Jibusangso. So these three figures' appeals are now called the three Jibusangso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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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역동(易東) 우탁가(禹倬家)의 문학 연구

저자 : 徐正和 ( Suh Jung-hw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3-5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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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丹陽禹氏三世文獻錄』을 중심으로 易東 禹倬家, 곧 우탁과 그의 종질 우길생, 우길생의 아들 우현보의 문학을 살펴보았다. 그간 우탁가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종합적 고찰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선행연구는 학문과 정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들의 문학 정치와 역사를 서술하면서 부수적으로 언급하여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만 고찰되었다. 본고에서 우탁가의 문학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탁은 주로 강직하고 올곧은 신하, 학식이 높은 학자의 모습을 알려졌는데, 그의 문학에서는 이와는 결이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의 탄로가에서는 『周易』의 이치에 정통한 그답게 늙음에게 넌지시 농을 던지며 극복하려는 태도가 돋보였다. 또한 「殘月」에서는 조각달의 형상화에 집중하여 섬세한 표현과 형식미가 돋보였다.
우길생은 전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도로 시적 재능이 탁월했는데, 홍민구를 전송하며 지은 시와 공북루에 올라 지은 응제시는 이를 여실히 증명하였다. 우현보는 「麥薇歌」를 통해 고려에 대한 절의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피폐한 백성들의 삶에 가슴 아파하며 위정자로서의 통렬한 반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우탁가는 시조를 창작하거나 「잔월」·「맥미가」와 같은 고시를 창작하는 등 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의 연구가 학문과 정치 일선에 있던 이들의 모습만 부각되던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문학을 향유하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본고의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하다.


This study examines the literature by Yeokdong(易東) Utak(禹倬) family, in other words, Utak, his nephew Ugilsaeng(禹吉生), and Ugilsaeng's son Uhyeonbo(禹玄寶), with the focus on 『Danyang Ussi Samsemunheonrok(丹陽禹氏三世文獻錄)』. It confirmed the following.
Utak was known for his image of an upright, incorruptible retainer and an erudite scholar, but his literature sometimes displays a somewhat different aspect. In his Talloga(歎老歌), his attitude to overcome aging with a subtle joke as a person well-acquanted with the logic of 『The Book of Changes(周易)』. Also, in 「Janwol(殘月)」, his focus on the embodiment of a crescent moon demonstrated delicate expressions and beauty of form.
Ugilsaeng demonstrated outstanding poetic capability to the extent of using allusion aggressively, which was clearly proven in the poem he wrote seeing HongMingu(洪敏求) off or the poem he wrote at Gongbungnu Pavillion(拱北樓) on the order of the king. Uhyeonbo strengthened his integrity for Goryeo through 「Maekmiga(麥薇歌)」, and exposed scathing regret as a bureaucrat about people's impoverished lives.
This also discovered traces of the family's interest in creating sijo(時調, Korean three-verse poem) or old rhymes like 「Janwol」 and 「Maekmiga」. Whereas previous studies focused on them at the front of academics and politics, this study discovered a different aspect of them enjoying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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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몽인의 『사기』 전범화 인식

저자 : 주연 ( Zhou Jua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7-8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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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문단에서는 사마천의 『사기』 열풍이 불었는데 당시 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기』를 열독·모방했다. 그러나 그 실제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체계적인 『사기』 전범관을 피력한 글은 아주 드물다. 다행히 유몽인의 많은 사례를 수록한 「與尹進士書」가 이런 공백을 채웠는데 조선시대 『사기』 수용 연구사에 있어서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與尹進士書」는 유몽인의 고문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로 계속 거론되었으나 인용한 것은 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여 정작 이 편지의 핵심주장을 놓쳤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이 글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을 함으로써 조선중기 『사기』 학습의 실제 양상을 밝힘과 동시에 유몽인의 『사기』 전범관을 규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사료된다.
「與尹進士書」를 통해 피력된 유몽인의 『사기』 전범화 인식은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글쓰기 전범을 선정함에 있어 유몽인은 학습 주체의 지적 역량을 우선적인 근거로 삼고 학습 객체의 특징을 잘 살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사마천은 재능이 빼어난 대문호이고 『사기』는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사기』의 특징을 “무궁한 변화”와 “미완의 글”로 꼽았다.
지적 역량의 차이와 상술한 『사기』의 특징으로 인해 문인들이 『사기』 학습에 공을 많이 쏟았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이에 유몽인은 『사기』를 단일 전범이나 주된 전범으로 삼기에 마땅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유몽인의 『사기』 인식과 『사기』 전범화에 대한 태도는 여타 문인들과 확연히 다르다. 또한 『사기』를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은 일부 조선문인들의 창작에는 논리 부재 및 통일성 결여의 문제가 존재함을 지적하면서 남다른 관찰력을 과시했다.
유몽인은 위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비록 『사기』를 단일 전범이나 주된 전범으로 삼지는 않으면서도 배제시키지는 않는 전범 학습법을 제시했다. 이 전범론의 근저는 글이 義理에 부합하도록 육경을 통해서 인간의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몽인의 전범 학습법은 “遍讀群書”와 “專攻一秩”을 양대 축으로 하고 있는데 고금에 전범이 될 만한 저술들을 널리 읽되 그 중의 하나를 선별해 공력과 힘을 쏟아 궁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 있어서는 “先易後難”과 “先卑後高”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사기』인 경우, 난이도가 높고 수준이 높은 것을 고려해 먼저 선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유몽인은 많이 읽음과 동시에 많이 써야 한다고 하면서 “多讀”과 “多作”의 병행을 강조했다.


In the 16th century, the literary world of Joseon(朝鮮) period was in a frenzy to study Sima Qian(司馬遷)'s 『Shiji(史記)』, which was read and imitated by many literati. However, very few articles specifically described the actual situation of the time or established a systematic exemplary theory of the 『Shiji』. Fortunately, Yu Mongin's wrote a 「Letter to Jinshi Yoon Bin(與尹進士書)」, which included many examples to fill this gap. This is a valuable resource in the history of the absorption of the 『Shiji』 in the Joseon period. The “Letter to Jinshu Yoon Bin” has been mentioned in essays exploring Yu Mongin's view of antiquity, but only a small portion of this essay is cited, resulting in the omission of the central claim of this letter. Because of this, I believe that this article should be analyzed in depth in order to reveal the specifics of mid-Joseon period study of the 『Shiji』 and Yu Mongin's exemplary theory of the 『Shiji』 modelization.
According to Yu Mongin, when choosing a writing exemplar, the ability of the subject of study should be considered as the primary basi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object should be accurately analyzed. He believed that Sima Qian was a writer of outstanding talent, while the 『Shiji』 is a very good work, and that it is characterized by “endless changes” and “unfinished works”. Because of the difference in talent and the above-mentioned characteristics of the 『Shiji』, the literati made great efforts to study it, but the results were few. Therefore, Yu Mongin believed that the 『Shiji』 could not be used as the only or main paradigm. This perception of the 『Shiji』 and this attitude towards exemplifying the 『Shiji』 differed from other writers.
The core of Yu Mongin's methodology was to establish the fundamental human idea through Liujing(六經) in order to make the essay conform to righteousness(義理). He also believed that while reading a wide range of books, one of them should be selected for in-depth study. In this process, the principle of easy before difficult should be followed. And 『Shiji』 is very difficult and high level, so you cannot study it first. Finally, Yu Mongin believed that it was necessary to both read and write more. Yu Mongin also pointed out the problem of logical confusion when the Joseon(朝鮮) period writers imitated the 『Shiji』 to create their works, reflecting his distinctive powers of ob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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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언(記言)』 원집(原集)의 구성에 담긴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작가 의식

저자 : 윤성훈 ( Yoon Sunghoo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5-12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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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叟 許穆(1595~1682)의 문집인 『기언(記言)』은 수많은 조선시대 문집 가운데에서도 매우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일반 문집은 저자 사후 문도들이 저자의 글을 모아 문체별로 편집하는 것이 상례인 반면에, 『기언』은 허목이 생전에 스스로 글을 선정하여 엮었다. 더구나 그 체제도 마치 문집이 아닌 類書와 같이, 허목 자신이 명명한 주제에 맞춰 주제별로 자신의 글들을 배치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렇게 유례없이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기언』은, 독자적 尙古주의 노선을 견지하며 문예 활동을 벌인 허목의 문학사적 문화사적 위상을 고려할 때, 허목이 어떤 의식을 갖고 이러한 구성을 취했는지, 그리고 그 구성의 의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옛 성인의 글을 경건히 독해하여 계승하고, 정서의 토로나 의논의 개진보다는 주어진 사실과 그와 관련된 옛 제도의 서술에 충실하면서 '述而不作'의 전통적 문예 태도를 견지했던 허목은, 문집의 서문 및 발문은 물론 그 어떤 다른 글에서도 자신의 편집 의도 및 작가 의식을 明言했던 적이 없다. 이에 본 논문은 『기언』의 편목 구성 및 글의 배치를 분석하여 작가이자 편집자인 허목의 편집 의도를 유추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기언』은 허목 생전 여러 차례 편집되었고, 허목 사후 제자들이 일반 문집처럼 구성한 '別集'도 덧붙여져 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 중에서도 허목이 경기도 연천에서 은거하던 시기(1662~1674년)에 집중적으로 집필되었던 '原集'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원집은 크게 上中下와 雜內外의 篇으로 구성되는데, 원래 독립적 저작이었던 '내외'와 글이 많이 실리지 않은 '잡'을 제외하면, '상중하'가 핵심이 된다. 그러나 필자는 상중하의 나뉨에는 큰 의의가 없다고 보고, 구성의 계기에 따라 크게 다음 셋으로 구분하여 보았다.
첫째 부분은 상편의 첫머리부터 제7편목인 '贈言'까지로서, 천지 변화·禮制·'古文'에 대한 논설을 실어서, 상고주의적 유학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천명하였다. 둘째 부분은 상편 제8편목 '儒林'부터 중편 제4편목 '壽考'까지로서, 앞선 시대 혹은 동시대의 여러 인물들과 관련된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셋째 부분은 중편 제5편목 '棟宇'부터 하편 끝부분의 '山川'까지로서, 크게는 자연 지리에 대한 서술 및 기행의 기록으로부터 작게는 건조물 및 정원에 대한 서술까지 '공간'에 대한 각종 敍事를 펼쳐내고 있다. 둘째 부분의 인물 서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자신과 글의 대상인 인물들과의 연고가 편집과 글 배열의 주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부분의 공간 서사에서도 자신의 생활공간인 경기도 연천, 젊은 시절 잠시 머물렀던 서부 경남 지역, 지방관을 지냈던 강원도 삼척 지역의 地誌 및 기행을 서술하여서 역시 자신의 행력을 기반으로 조선의 공간을 재배치하였다.
이렇게 볼 때 『기언』 원집은 작자인 허목 자신과 서술 대상이 갖는 연고가 구성의 주요계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언』의 이러한 구성 기제는, 허목의 尙古적 문학이 일견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존숭과 사실에 대한 무개성적 기술에 기반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서사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조용한 목소리의 작가 정신은 한자 문화권의 유구한 복고주의적 문예 전통과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Misu(眉叟) Heo Mok(許穆, 1595~1682)'s anthology, Gieon(記言), i.e. Record of My Word, has a unique characterisic among many other anthologies in Joseon dynasty. Contrary to typical anthologies that were usually compiled by disciples after the author's death in the form of classifying works by the style of writing, Gieon was complied by Heo Mok himself, and furthermore had the encyclopaedic structure those categories were set up by the author Heo Mok himself. Considering Heo Mok's incomparable revivalistic literary and cultural activities in late Joseon period, Gieon's peculiar structure and its significance is necessary to be carefully studied, but Heo Mok whose standpoint was the traditional confucian approach to literature emulating that of Confucius himself saying “I am a transmitter, and not a maker”, was a faithful reader of the ancient sages' works and a narrator of the fidelity to the present questions and the ancient institution suppressing his own feeling and opinion, who had never uttered his self-confidence as a writer and specific plan to edit his book at the preface and epilogue or any other articles in his anthology. This thesis therefore will focus on the layout of Gieon's articles and structure of its categories for inferring intent of Heo Mok's editorship of Gieon.
The structure of Gieon is very complicated because it had been through several rounds of compilation during Heo Mok's long life, and even it has the additional part of his disciples' compilation. Among several parts of Gieon, this thesis will analyse the 'Original Compilation'(原集) that was made mainly in the years of peaceful retirement in Yeoncheon(漣川), Gyeonggi Province, 1662~1674. The Original Compilation is composed of two triple parts, that is the Upper / Middle / Lower (上中下) and the Miscellaneous / Inner / Outer (雜內外). The Inner and the Outer parts had been originally separate works, and the Miscellaneous included a few wrtings, so the Upper, Middle, and Lower parts were the core of the Original Gieon. However, this upper, middle, and lower division has little significance, and there is another momentum that Heo Mok edited this book. By that momentum, the Original Gieon can be divided to three part as below.
The first part is from the beginning to the 7th chapter of the Upper part 'Jeungeon(贈言), Send-off Words', that contains short articles to explain the diverse transformation of Chi(氣) in the world, ritual system, and ancient writing and script(古文). In this part Heo Mok affirmed his identity as revivalist Confucian scholar. The second part is from the 8th chapter of the Upper part 'Yulim(儒林), Confucian Scholars' to the 4th chapter of the Middle part 'Sugo(壽考), Longevity', that contains the writings about the previous and comtemporary persons. The third part is from the 5th chapter of the Middle part 'Dongu(棟宇), Houses and Pavilions' to the last of the Lower part 'Sancheon(山川) Mountains and Streams', that contains the writings about space and travel from the lesser spaces like buildings and gardens to the larger spaces like geographical features. The persons in the essays in the second part had personal connection to Heo Mok, and how these persons had connected to Heo Mok would be the editorial factor of this part. In the third part, Heo Mok rearranged the regions of Joseon Peninsula from his life time experience. In editing this part, three regions played a key role : Yeoncheon in Gyeonggi Province where his ancestors and he had lived a daily life, Southwestern Gyeongnam Province where he had stayed several years in his young age, and Samcheok(三陟) in Gangwon Province where he had been the governor.
From this point, the Original Gieon's editorial momentum was the connection between Heo Mok, the writer, and the written subjects. This characteristic of Gieon's structure shows that although Heo Mok seems to be a blind revivalist and dry narrator, in fact he stood firm in the center of narration with concealing himself. In his composed voice and in the prudential way Heo Mok wrote and arranged his articles in the Original Gieon, and this voice and way has been irrigated by far and long stream of revivalistic literature tradition in the Far Eastern civilization using Chinese characters as a common literary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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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의 논변체(論辨體) 산문(散文) 연구(硏究)

저자 : 鄭夏汀 ( Jung Ha-j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3-163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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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존 연구에서 역사가로서의 면모가 부각된 老村 林象德을 문장가로서 조명하고자 그의 논변체 산문에 주목하였다. 임상덕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에서 논변체 산문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산문 창작에 치력한 산문 작가로서 논변에 특장을 가졌으며, 그가 보인 '務實'과 '主意'의 문학관이 논변체 산문과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논변체 산문을 보면, '의론 대상의 면밀한 관찰을 통한 독창적 입론', '論敵의 논리를 차용한 논파 방식의 활용', '다각적 대립항의 설정을 통한 세분화된 의론 전개'와 같이 立論과 아울러, 논의 전개 방식과 논의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물론 입론과 논지 전개의 방식과 관련한 특징은 임상덕의 논변체 산문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입론을 어떻게 수립하는가', '어떠한 논의를 어떻게 전개하는가' 하는 관점으로 접근할 때, 임상덕의 논변체 산문은 여타 문인의 그것과 대별된다. 게다가 동일한 주제로 다수의 연작 작품을 창작한 점 역시 특색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전편의 논리를 보완하고 강화할 뿐만 아니라, 전편과의 연속성을 가지면서 논적을 설정해 토론의 장을 연상케 하는 생동하고 입체적인 구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다른 문인들에게 보기 어려운, 임상덕 논변체 산문의 장처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문장가로서의 임상덕이 가지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This study was made based on Persuasive essay of Nochon Im Sang-deok. Unlike previous research that focused on Im Sang-deok as a historian, this was an attempt to approach Im Sang-deok as a literature writer. Among his literature, Persuasive essay is drawing attention because he had a special feature in dispute and a literary theory also related dispute.
An analysis of Im Sang-deok's Persuasive essay revealed three features: First, He closely watched the subject of discussion and put forward his own original input. Second, he refuted the argument through the use of adversary's logic. Third, we developed a detailed discussion by setting up various Opposite Clause. This is an excellent part in terms of logic and argument compared to other writers. In addition, his characteristic is that he has many Persuasive essay that form a series of the same themes. Above all, it is noteworthy that these essays have a three-dimensional composition by reproducing the imaginary forum. Here we can find Im Sang-duk's literary compe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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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동유기실(東遊記實)』에 나타난 금강산의 지리정보와 표상

저자 : 강혜규 ( Kang Hyekyu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5-18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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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遊記實』에는 금강산 권역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 정보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자연지리 정보로는 생태·지형·기후를 들 수 있고, 인문지리정보로는 건축·관광·인물 등을 들 수 있다. 금강산의 권역에 따라 분포된 꽃의 종류와 개화 시기가 다른 양상과, 산맥과 폭포의 형세 및 사계절에 따른 기후의 변화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주요 사찰의 부속 건물과 여정에 대한 정보 및 장소와 관련된 유명한 인물에 대한 정보도 기술된다. 이러한 정보의 집적을 토대로 만들어진 『동유기실』 속 금강산의 표상은 '찬탄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여행지'의 이미지가 뚜렷하다.
『동유기실』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홍백창의 탐험 정신과 풍부한 여행 정보는, 비경이 가득한 금강산의 실제에 독자가 접근하는 데 훌륭한 밑거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사대부의 접객을 담당하는 민중의 생생한 삶을 조명하여 금강산을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Dongyugisil is a rich record of physical geography and anthropogeography of the Mt. Geumgang area. In regards to physical geography, the book contains information on the ecology, topography, and climate of the mountain, as well as the anthropogeographical information on the architecture, tourism, and prominent figures from the region. It describes the different varieties of flowers across the Mt. Geumgang area and their different flowering patterns, the topography of the mountain ranges and waterfalls, and the seasonal climate changes. The book also provides details on the annexes of major temples and travel itineraries and the information on prominent figures related to the sites. Mt. Geumgang, portrayed in Dongyugisil based on the compilation of such information, is an "attractive and wonderous tourist destination." While a faint image of the mountain as a sacred place could be found, the mountain's religious significance has decreased significantly compared to the past. The monks and temples at Mt. Geumgang, which had once represented the Buddhist world, have been reduced to an object and place for scholar tourists. The mountain deities, who once represented the spirit world, began to be called "cheosa," a term used to indicate a hermit scholar. Mt. Geumgang became a realistic and substantial site placed at the intersection of traveling scholars and the monks or peasants who assisted their trips. At the same time, the mountain became a fascinating place of unexplored terrains, beautiful architecture, and hermits with eccentric pasts that could be found in every nook and cranny.
Hong Baek-chang, the author of Dongyugisil, could be likened to a guide with great intellectual curiosity. Hong Baek-chang's adventurous spirit and the ample travel tips he provides that spring up in numerous pages of the book, serve as excellent starting points for the readers who wish to meet the real and beautiful Mt. Geum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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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소설 읽기와 마음의 발견: 유만주(兪晩柱)의 『서유기(西遊記)』 독서 일기

저자 : 金何羅 ( Kim Hara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22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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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서울의 일기 작가 유만주는 25세 되던 1779년 음력 10월에 『서유기』를 읽고 그 독서의 경험을 일기 『흠영』에 기록했다. 그는 이에 앞서 『묘법연화경』과 같은 불교 경전을 읽으며 한문 문장의 작법과 불교 철학에 대한 소양을 쌓아 가던 중이었다. 유만주는 명청소설과 불경을 비교하여 읽으며, 이 두 부류가 서사물로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운문과 산문이 결합된 형식, 장회체의 구성 방식, 본문 내용을 풀이하는 해설부의 존재, 문답 형식으로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관용구의 사용, 곡진하고 섬세한 세부 묘사 등 형식과 문체의 측면에서 그 공통점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후 이를 바탕으로 '소설 불경기원설'이라 할 만한 견해를 정립했다.
한편 유만주가 읽은 『서유기』는 청나라 때 진사빈이 해설을 붙인 판본인 『서유진전』이었다. 이 판본은 삼교가 혼융된 『서유기』의 특성을 받아들이되 도가철학적 경향이 강한 해석을 시도한 것이었다. 유만주는 『서유진전』을 통독했으나 도가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소설에 대해 '『서유기』는 『심경』의 외전'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그의 이 정의는 『서유기』의 서사를 마음의 알레고리로 이해한 결과였다.


Yu Manju兪晩柱, a 25-year-old diary witer of Seoul, read Journey to the West 『西遊記』 in lunar october 1779. Prior to that, he was reading Buddhist scriptures such as the Lotus Sutra 『法華經』 and practicing the writing. As a lover of Chinese novels, he found several similarities between Chinese novels and Buddhist scriptures. He found common points in the form of a combination of verse and prose, the chapter-titled method of composition, the presence of a commentary that interprets the contents of the text, the use of idioms to draw the reader's attention in a question-and-answer format, and detailed descriptions of curved and delicate details. And he judged that the novel had this style and form under the influence of the Buddhist scriptures. Yu Manju read True Enlightenment of Journey to the West 『西遊眞詮』, the edition commented by Chen Shibin陳士斌, a writer during the time of Kangxi Emperor of the Qing Dynasty. Commentaries with strong Taoist philosophical tendencies are attached to each episode in this edition.
Yu Manju did not accept the Taoist interpretation and defined this novel as “a side story of the scriptures of the mind”. It is understood that he accepted the narrative of this novel as an allegory of th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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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자서전(自序傳)」을 통해 본 유최진(柳最鎭)의 삶과 문학세계

저자 : 박진성 ( Park Jin-s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3-25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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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柳最鎭의 「自序傳」을 중심으로 작자의 생애와 문학활동을 고찰해보았다. 유최진의 「자서전」은 그가 64세 되던 해에 지은 작품으로 초년기·중년기·노년기의 세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초년기에는 유최진의 유년시절과 수학과정, 과거급제 이후 秋史집안의 측근으로 국내 명승지와 해외를 오간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년기에는 가족의 죽음 및 질병으로 인해 선택한 은자의 삶과 여항문인으로서의 활동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자기 삶에 대한 총평과 함께 인생무상의 감정이 녹아들어 있다. 이 작품은 비교적 짧은 분량의 전기이지만 작품 속에 유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성장 과정과 주요 사건, 삶에 대한 감회 등이 모두 담겨 있어 자전문학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작자의 생애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여타의 기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최진의 「자서전」은 그 서술 방식에 있어서 기탁의 방식을 사용하는 기존의 자전들과 달리 자신의 이름과 출신을 직접 밝히고, 행적 역시 사실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전문학사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1인칭 시점의 직서 방식을 사용한 자전은 조선 후기 자전문학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관인의 삶보다 여항인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따른 불우와 비애감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중인층의 삶과 자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This paper examined the life and literary activities of the author, focusing on Yoo-Choijin(柳最鎭)'s Jaseojeon(「自序傳」)
Yoo-Choijin's Jaseojeon was written by him at the age of 64 and consists of three paragraphs in his early, middle, and old age.
The early part of this records Yoo-Choijin's family history, his academic course, and his passing of the exam, and records his activities as a close aide to Kim-Junghee's family and traveling between Korea and abroad. In the middle age section contains, the death of the family, the life of seclusion due to his illness, and his activities as a middle-class writer are recorded. And the old age section contains a general assessment of one's life and feelings about the futility of life.
This work is a relatively short biography, but it is a perfect Autobiographical Literature because it contains the growth process from childhood to old age, major events, and feelings about life. The value of this work is even higher because there are not many records of the author's life or activities.
Unlike traditional autobiography that use indirect expressions in their descriptions, Yoo-Choijin's Jaseojeon is of extraordinary value in Autobiographical Literature history in that it directly reveals his name and origin, and also describes his deeds as they are. As such, the autobiography, which uses the direct narrative method from the first person point of view, is also an achievement of Autobiographical Literatur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work also has a special meaning in that it clearly shows the changes in the lives of middle-class writ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ir self-consciousness. It focuses more on seclusion life than on life as a bureaucrat, and it gives a glimpse of unhappiness and sorrow caused by his position lim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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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도몽유록」 속 여성 발화자의 기능과 그 의미

저자 : 장진엽 ( Jang Jin-youp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5-28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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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江都夢遊錄」의 작가가 여성 발화자를 채택, 활용한 양상 및 그것의 의미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여성 발화자의 기능과 발화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서 이들을 둘러싼 몇몇 서사적 장치들이 주제 구현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였다.
「강도몽유록」은 강도 함락과 병자호란 패전의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척화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 여성들은 이러한 정치적 비판을 수행하기 위해 소환된 주체들이다. 작가가 여성 발화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음속에 울분을 품고 죽은 실제 인물을 발화자로 내세운다는 몽유록의 글쓰기 관습을 따른 결과이다. 가문의 대리자로서, 또 순절 행위의 평가자로서의 그들의 발화는 이 여성 발화자들의 서사적 기능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어서 이들 여성 발화자들과 관련한 두 가지 서사적 장치를 검토하였다. 하나는 사후세계에서의 징벌과 보상에 관한 화소이다. 작가는 여성의 절의를 남성의 충절에 등치하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가문 남성의 충절/실절 여부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상벌'은 윤리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위상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이 작품은 희생당한 여성을 발화자로 세움으로써 발생한 균열, 즉 원망과 비탄의 정조가 작품을 지배하게 된 것을 마지막 기생의 발언을 통해 봉합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의 끝나지 않는 통곡은 기실 호란의 수치에 대한 지배층의 콤플렉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도몽유록」의 창작 의도는 여성 체험이나 여성 형상의 재현에 있지 않으며, 여성 발화자들이 특정 발화를 위해 기능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고전서사에서의 여성 '주체'의 형성과 거의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또한 척화의 가치를 선양하기 위해 그들의 주체성을 일정 부분 손상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렇게 볼 때 마지막 여성들의 통곡조차도 사대부 지배층의 '관념적 아픔'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강도몽유록」은 고전서사에서 일종의 '파격'으로 돌출되어 있으나 여성 주체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보수성을 띠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This study examines the significance of the adoption and application of female narrators in Record of a Dream on Kanghwa Island (Kangdo mongyurok, 江都夢遊錄). To do this, it first observes the function and depiction of the narrators, and then explores how narrative devices play a role in conveying the novel's themes.
Record of a Dream on Kanghwa Island not only asks who was responsible for the fall of Kanghwa Island and Chosŏn's defeat, but also advocates for rejecting peace with the Qing, summoning women as mouthpieces of these political criticisms. The employment of female narrators followed naturally from summoning actual people who died with rage in their hearts per writing conventions of dream narratives. These female speakers act as representatives of their households and judges of national loyalty, thus demonstrating their narrative function. Subsequently, the study investigates two narrative devices related to the female speakers. The first is the motif of reward and punishment in the afterlife. While the writer equates the women's fidelity with the men's loyalty, they in fact judge the women based on whether their male relatives were loyal to Chosŏn. This 'distorted reward and punishment' system of ethics thus diminishes the women's status. The second is how the resulting fragmentation of the novel's summoning of the sacrificed women as speakers, i.e. the atmosphere of resentment and anguish dominating the novel, is patched together by the words of the last kisaeng. Furthermore, their unending wails points to the shame complex the ruling class felt regarding the invasion.
The intent behind the writing of Record of a Dream on Kanghwa Island does not lie in the experience of women or recreating their forms. Rather, the employing of female narrators as a function of a specific narrative has almost no connection to the formation of a female 'subject' in classical narratives and in order promote the value of rejecting peace, limiting their subjectivity. In this light, the wailing of the women near the novel's end even reflects the 'abstract pain' of the ruling class. In sum, although Record of a Dream on Kanghwa Island sticks out as an 'exception' in classical narratives, it is rather conservative in its development of female subjec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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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자(朱子)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의 정치철학적 독해

저자 : 주광호 ( Joo Kwa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7-31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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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인심도심설에 대한 그간의 연구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주목되지 않아왔다. 첫째, 주자는 왜 도통론을 다른 문헌이 아닌 『중용』에서 제기했을까? 둘째, 성인이기에 앞서 왕이었기에 천하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요순우는 어째서 천하를 넘겨주는 그 순간 정치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 즉 심법을 말했을까? 셋째, 주자는 왜 자신의 사상적 스승인 정이(程頤)의 관점에 반대하고서 인심의 존재 자체를 인정했는가?
주자의 인심도심에 대한 주요 문장인 「대우모」·「중용장구서」 그리고 「무신봉사」의 공통점은, 그것이 정치적 맥락 속에서, 정치의 근본을 통치자의 마음 수양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인심도심설은 윤리학적 주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적 논의에 해당한다. 주자인심도심설의 정치철학적 공헌은 첫째, 현실에서 철학하는 인간 일반으로 '人'을 새롭게 규정한 것, 둘째, '사적 개인' 즉 현실 속의 존재를 인정한 것, 셋째, 도통론을 통해 사대부를 정치적 주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Several important issues have not been noted in the previous study of Zhu-xi (朱熹)'s theory of Renxin-Daoxin. First, why did Zhu-xi raise the theory of Daotong(道統) in Zhongyong(中庸) and not in other literature? Second, why did Yao(堯), Xun(舜), Yu(禹) who was a king before he was a sage, speaks about the matter of mind, not about politics, at the moment of handing over the world? Third, why did Zhu-xi oppose the view of his ideological mentor Chengyi(程頤), and affirm human desire itself?
The commonalities of Zhu-xi's major sentences on Renxin-Daoxin, Dayumo(大禹謨), The Preface of Zhongyongzhangju(中庸章句) and Wushenfengshi(戊申封事) are that they are in the political context, and it puts the foundation of politics in the cultivation of the mind of the ruler. Therefore, the theory of Renxin-Daoxin is not only an ethical subject but also a discussion of political philosophy. There are three contribution in political philosophy of Zhu'xi's theory of Renxin-Daoxin. First, he has redefined 'human' as a philosophical being in reality. Second, he recognized a 'private individual,' or the man who lives in reality. Third, he has established Shidafu(士大夫) as a political entity through the theory of Dao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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