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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67)~5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56
사학지
59권0호(2019년 1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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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숙종대(肅宗代) 『종묘의궤(宗廟儀軌)』 편찬과 의의

저자 : 김선

발행기관 : 단국사학회 간행물 : 사학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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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숙종대 『宗廟儀軌』의 편찬과 그 의의를 정리한 것이다.
宗廟는 국왕이 국가를 위하여 왕실의 조상을 모시고 그의 정성을 다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壬辰倭亂이 발생하면서 종묘 건물의 소실은 물론 전례의 축소 및 폐지가 잇따랐다. 양란 이후 진행되던 종묘에 대한 정비과정은 숙종대에 들어와서 일단락되었다.
1705년(숙종 31) 4월에서 9월까지 숙종은 태조 四祖의 어보 개조를 비롯해 종묘의 정전과 永寧殿을 정비하였다. 종묘를 정비하면서 숙종은 전란의 피해와 조선 전기의 정리되지 않은 약 200년 이상의 종묘 전례에 관한 공백을 채워나갔다.
숙종이 주도한 종묘정비는 1705년(숙종 31) 『종묘의궤』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숙종은 종묘 정전 및 영녕전과 관련된 개수, 보수, 중건 등의 여러 사안들에 따른 어책과 어보를 비롯한 물품 목록의 변화를 수집하여 정리한 내용을 『宗廟謄錄』에도 남겼다.
『종묘의궤』의 편찬은 종묘를 중점적으로 종합하여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건물의 양식, 의례, 의물, 제도 등의 체계는 조선 전기부터 내려오는 『國朝五禮儀』를 저본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서부터 숙종대로 잇따른 변통된 상황들이 발생되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사료가 조사되었다. 접근성이 용이한 『承政院日記』는 인조대 이후로 왕대별로 상고할만한 다방면의 기록을 가장 풍부하게 지니고 있어 우선적으로 조사되었다. 이외에도 대신들의 문집을 비롯한 관찬자료들도 조사 되었다.
1706년(숙종 32) 12월, 1년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 『종묘의궤』는 종묘 전례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국왕의 어람용과 종묘서의 분상용으로 총 2부가 제작되었다. 마침내 『종묘의궤』의 편찬은 국왕에게 陪進되고 종묘에 봉안하는 의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종묘의궤』는 조선의 종묘 典章과 실무에 관한 역대 기록을 망라하면서도 최초로 정비된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종묘의궤』는 『종묘등록』의 내용도 포함하면서, 더 나아가 '의궤' 자체만으로도 종묘 정전 및 영녕전과 관련된 변화의 세부사항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어 종묘 정전과 영녕전의 전례의 거행과 실제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였다.
조선 후기에 있어 『종묘의궤』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국조오례의』의 의례와 도설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숙종대의 추가 혹은 변화양상을 함께 반영함으로써 '典禮書'로서의 성격과 '時用書'로서 의 효용성을 지녔다.
이렇듯 『종묘의궤』에는 「移還安」·「祧遷」·「廟見」의 儀註가 숙종대에 전적으로 새로운 의주로 정리[創定]되었다. 숙종이 『종묘의궤』의 편찬을 통해서 새로운 의주를 정립한 것은 결국 조선 전기와 양란을 거쳐 숙종대까지 이어진 의례의 연결성과 숙종대 변화된 상황을 적용하고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종묘의궤』는 조선 전기부터 내려오는 종묘에 관한 정보를 모두 집대성하여 종묘의례의 典範을 성립시켰다.
그러므로 『종묘의궤』는 숙종대 변화상에 맞추어 『국조오례의』와 그 이후의 누락되거나 새로 마련된 도설과 의주를 다듬고 손질해서 편찬된 것이다. 또한 숙종은 전란의 폐허로부터 조선의 재도약을 위한 문물 전장을 재정비하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의례에서 종묘의 초점을 맞추어 그 제도와 전례를 다시 정비하고자 하였다.


本文對肅宗時期《宗廟儀軌》的編纂及其意義進行了整理。
宗廟是國王爲了國家供奉王室的祖上表其誠意的地方。然而隨着壬辰倭亂的發生, 不僅造成宗廟建筑的消失, 還導致了祭祀典禮的規模縮小, 甚至廢除。戰亂后, 由宣祖時期開始的宗廟復原及整理在肅宗時期告一段落。
1705年(肅宗31年)4月起至9月,肅宗整理了宗廟正殿和永寧殿卽太祖和顯宗時期共計22室的構成品。隨后, 肅宗向太祖的妃子神懿王后, 太祖的四祖及他們的妃子進獻了御寶, 爲太祖增添了光環。因此, 王室的先祖全部被列爲宗廟整頓的對象。卽肅宗塡補了由戰亂引起的損失和朝鮮前期未整理的約200年以上的宗廟典禮的空白。
1705年《宗廟儀軌》的編纂延續了明宗, 神懿王后及太祖的四祖御寶制作。同時, 肅宗根据宗廟正殿以及與永寧殿相關的改修、補修、重建等各種事件, 收集了御冊和御寶等物品目錄的變化, 幷將整理的內容收錄在《宗廟謄錄》。因此, 具有統一性的《宗廟謄錄》槪括了宗廟的御冊和御寶相關的物品的變遷以及宗廟正殿、永寧殿神室的國王和王后的現況, 確保了敍述體系中帶來變化的便利性。卽, 1705年《宗廟謄錄》的增修旣遵守了基本的形式, 也展現了反映肅宗時期宗廟的變化及編纂的特征。
《宗廟儀軌》的編纂是對宗廟正殿和永寧殿進行專門的綜合及整理的工作。建筑物的樣式、儀禮、儀物、制度等體系在以朝鮮前期流傳下來的《國朝五禮儀》爲基礎做出的。然而從朝鮮前期起至肅宗時期發生了一系列的變化, 爲完善這一內容, 對各類史料進行了調査。作爲便于接觸的《承政院日記》在仁祖時期以后, 針對各王朝的硏究, 具有多方面的豊富的記錄, 因此優先對此進行了調査。此外, 也調査了官撰資料及大臣文集。
1706年(肅宗32年)12月, 强調了耗時1年6個月的《宗廟儀軌》宗廟儀典的重要性, 分爲國王的御覽用和宗廟署的分上用總計2部進行制作。最終《宗廟儀軌》編纂而成, 一部呈給國王親自檢閱幷保管, 另一部則供奉在宗廟
《宗廟儀軌》不僅包括了朝鮮的宗廟典章和實務相關的歷代記錄, 而且具有最先以整備的形式整理的特征。只是《宗廟儀軌》不分卷, 共計4冊書。
《宗廟儀軌》的內容可用冊分類。 《宗廟儀軌》的第一冊是宗廟正殿和永寧殿相關的圖說, 第2冊是宗廟的制度和相關事項, 第三冊是與變禮相關的事項, 第4冊是宗廟署的宗廟管理和典禮的實際運營相關的事項。
另外, 《宗廟儀軌》不僅包含了《宗廟謄錄》的內容, 乃至'儀軌'本身也直接涵盖了宗廟正殿和永寧殿相關變化的具體事項, 因此可以擧行幷實際運營宗廟的典禮。
朝鮮后期, 《宗廟儀軌》的意義莫過于原封不動的接受《國朝五禮儀》的儀禮和圖說。同時, 由于反映了肅宗時期的追加和變化局面, 使其具備了'典禮書'的性格和'時用書'的效用性。
這樣, 《宗廟儀軌》中「移還安」·「祧遷」·「廟見」的儀註在肅宗時期全部以新的儀註整理建立。這些儀禮以《宗廟儀軌》儀註的形式正式確立爲文書,之后英祖時期《國朝續五禮儀》中編制爲國家典禮的儀註。因此, 通過肅宗對《宗廟儀軌》的編纂以此確立新的儀註, 歸結于經過朝鮮前期和壬亂至肅宗時期, 适用幷强調貫穿儀禮的連通性和肅宗時期變化的狀況。因此《宗廟儀軌》集朝鮮前期起流傳下來的關于宗廟的信息之大成, 確立了宗廟儀禮的典范。
因此, 《宗廟儀軌》是肅宗時期根据變化, 對《國朝五禮儀》和之后遺漏的或是新配置的圖說和儀註進行修改編纂而成的。此外, 肅宗重新整頓了爲從戰亂的廢墟到朝鮮的再跳躍提供的文物典章。當時, 由于時代性導致在儀禮部分中只提及到了宗廟, 但是對宗廟的制度和典禮重新進行了整頓。

2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민주주의

저자 : 한시준 ( Han Seejun )

발행기관 : 단국사학회 간행물 : 사학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3-6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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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가장 커다란 변화와 변혁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군주주권의 역사가 국민주권의 역사로 바뀐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민족사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20세기 전반기였고, 그 계기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었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계기로 민족사의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1919년 3월 1일 '독립국'임을 선언한 독립선언이 발표되고, 40여일 후인 4월 11일에 독립국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면서 민족사가 뒤바뀐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권을 갖는 국가로 건립되었다. 이로써 반만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군주주권의 역사가 국민주권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임시정부의 수립도 민족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임시정부의 헌법을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하여, 전제군주제의 역사에서 민주공화제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기초로 정부를 운영하면서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제를 정착 발전시켰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한 헌법으로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정부를 운영하였다. 이후 헌법은 1944년 4월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개정할 때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보완되고 개정되었다. 헌법을 기초로 한 정부의 운영과 경험은 민주공화제를 정착 발전시키는 데 있어 주요한 자산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정착 발전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임시의정원이었다. 임시의정원은 각 지방인민을 대표하는 의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이었다.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의기구로 의정원을 두고, 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정부를 유지 운영한 것이다. 의정원은 1930년대부터 정당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1942년 좌익진영의 정당 및 단체들이 의정원에 참여하면서 다당체제로 바뀌었고, 여당과 야당도 생겨났다. 의정원을 통한 이러한 경험은 정당정치의 기원을 이룬 것이었고,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제를 정착하고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디딤돌이 되었다.
임시정부는 1941년 광복 후 건설할 민족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계획을 <대한민국건국강령>이란 이름으로 제정 공포하였다. 핵심은 신민주국을 건설한다는 것이었고, 신민주국은 전민족 최대 다수의 균등한 생활을 실현할 수 있는 국가였다. 그 방안은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균등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삼균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삼균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삼균주의 국가'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신민주국이었다. 신민주국이란 신민주주의 국가를 말하는 것이고, 구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구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일컫는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나 소련의 사회주의 국가를 따르지 않고, 한국민족의 독자적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안고 있는 결점을 보완하고, 이들보다 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삼균주의 국가'였다.


To cite the biggest change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race, what can be said? There are many opinions, but the history of Monarch has changed to that of Popular Sovereignty. This transition was prompted by the 3.1 Movement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history of the nation changed when it declared itself an independent nation on March 1, 1919, and 40 days later, on April 11, 1919, it was founded as an independent nation 'Republic of Korea'. The Republic of Korea was founded as a nation of Popular Sovereignty. The establishment of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s also greatly changed national history. It has been transformed into a history of Democratic Republics through the Constitu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established the Constitution and operated the government based on the Constitution to establish and develop Popular Sovereignty and Democratic Republics. On April 11, 1919, < The Korean Provisional Charter of the Constitution > enacted as a constitution based on democratic principles and ran the government based on it. Since then, the Constitution has been supplemented and amended on five occasions until the amendment of < The Korean Provisional Charter of the Constitution > in April 1944. The operation and experience of a government based on the constitution has become a major asset in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a democratic republic.
It was The Korean Provisional Congress that contributed greatly to the settlement and development of democracy. The Korean Provisional Congress was a legislative body of the interim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consisting of lawmakers representing each local people. It had The Korean Provisional Congress as an organization to collect the opinions of the people and ran the government under The Korean Provisional Congress's resolution. The Korean Provisional Congress have been running around political parties since the 1930s. In 1942, left-wing parties and groups joined the parliament, which also resulted in the creation of the ruling party and opposition parties. This experience achieved the origin of party politics and served as a great stepping stone to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Popular Sovereignty and Democratic Republics.

3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왜란ㆍ호란' 서술의 문제점과 그 대안 모색

저자 : 박진수 ( Park Jin-soo )

발행기관 : 단국사학회 간행물 : 사학지 5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9-152 (8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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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학습은 민족 중심의 국난극복사를 넘어서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해야만 폭력을 지양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교육적 가치를 살릴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왜란과 호란 서술을 검토하여 문제점을 확인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 보았다. 분석의 틀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다룬 대표적인 개론서를 검토하여 도출한 민족 중심의 일원론적 관점, 비평화적 관점, 평화적 관점, 다원적 관점의 네 가지 범주다.
교과서의 서술내용 검토에 앞서 7차 교육과정의'국사'와 2009 개정 교육과정의'한국사'에 대한 교육목표와 내용체계를 살펴보았다. '국사'의 경우 민족 중심의 일원론적 관점에서 조선이 양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역량에 대해서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국사'의 경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양난의 전개과정과 영향을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민족 중심의 일원론적 관점에 중점을 두었던 '국사'에서 벗어나 다원적 관점에서의 내용체계의 변화가 일부 나타났다. 다음으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와 현행 8종『한국사』교과서의 양난 관련 서술내용을 검토하였다.
『국사』교과서의 경우에는 왜란에 비하여 호란은 상세히 다루지 않았고 다원적 관점의 서술이 매우 부족하였다. 『한국사』 교과서들의 양난 관련 서술은 기본적으로 민족 중심의 일원론적 관점과 전투의 승패를 중시하는 비평화적 관점을 보이고 있었다. 평화적 관점과 다원적 관점의 서술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교육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역사교과서 서술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중심의 일원론적 관점 보다는 다원적 관점이, 비평화적 관점보다는 평화적 관점이 부각되는 서술이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자는 대안적 교과서 서술을 제시해 보았으며, 앞으로 전쟁사학습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개선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Learning of war history needs to be comprehended in different perspectives beyond the ethnocentric national crisis in order to correspond to the educational value to avoid violence and pursue peace. This study reviewed the descriptions of Imjin War and Manchu War of 1636 in high school textbooks in such perspective to examine their problems and present alternatives. The framework of analysis includes ethnic-centered monistic perspective, non-peaceful perspective, peaceful perspective and pluralistic perspective, which were deduced based on the review of classic introductory textbooks, which dealt with Imjin War and Manchu War of 1636.
I have examined the educational goals and the content system for 'national history' in the 7th curriculum and 'Korean history' in the 2009 revised curriculum prior to reviewing the contents of description in the textbook. 'National history' required understanding of Joseon's capacity to overcome dilemma in ethnic-centered monistic perspective. 'Korean history' required understanding of the development process and influence of dilemma in the midst of international order in East Asia. It pursued pluralistic contents system away from 'national history', which focused on ethnic-centered monistic perspective. Next, the descriptions related to dilemma in the high school 『National History』textbook and the current 8 『Korean History』textbooks were reviewed.
『National History』textbook did not handle Manchu War of 1636 as closely as Imjin War and lacked description in pluralistic perspective. 『Korean History』textbooks displayed non-peaceful perspective that emphasized on the victory or defeat of the wars, on top of ethnic-centered monistic perspective. They relatively lacked peaceful perspective and pluralistic perspective in their descriptions.
In order for the descriptions to improve educational value, descriptions where pluralistic perspective is emphasized rather than ethnic-centered monistic perspective, and peaceful perspective rather than non-peaceful perspective are needed. In such perspective, this study suggested alternative textbook description, and expects that the direction in which the study of war history should pursue can be impr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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