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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연구 update

Korean Culture Research

  •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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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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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4)~82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946
민족문화연구
82권0호(2019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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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세기 자전(自傳)에서의 타자화(他者化) 양상과 그 의미: ―이덕무(李德懋)와 유한준(兪漢雋)을 중심으로―

저자 : 김경 ( Kim Ky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3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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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他者化를 통해 18세기 自傳에서의 전형과 변주를 확인하였다. 자전에서 대표적인 타자화는 '자기타자화'와 '設論'이다. 자전은 傳의 하위장르이기 때문에, '자기타자화'는 그 체재를 답습하는 것이다. 즉 자전에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공인인 기록자로서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설론'은 가상의 인물인 或者와의 문답을 통해 서술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자전에서는 주로 힐문에 답한다는 설정하에,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대해 변호하는 성격으로 활용되었다.
18세기 자전에서도 이와 같은 타자화는 전형성을 지니면서도 변주적 양상 또한 확인되었다. 李德懋의 「看書痴傳」에서는 '자기타자화' 전략을 통해 객체인 '간서치'는 주체가 되었고, 이와 함께 이덕무 자신이 추구한 自娛는 個我을 지니게 되었다. 兪漢雋의 「自傳」은 '설론'을 통해 과거의 시점에서 저술된 자신을 재확인하면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은 물론, 분열된 자신을 통해 자기위안과 자기정체성을 동시에 이끌어내었다. 이를 통해 허구성을 통한 '자신을 낯설게하기'라는 타자화 양상이 확인되었다. 다만 18세기 자전에서 '자신을 낯설게하기'는 형식보다 내용에서의 의미가 부각되었다. 즉 형식에서는 타자화의 전형성을 유지하였지만, 내용에서는 '文章自娛'를 公的인 것이 아닌 私的인 것으로 규정하며 당대의 고정된 사유에 저항하였다.


This paper verified typical patterns and variations in autobiographical writings of the 18th century through an otherizing aspect. In autobiographical writings, typical strategies of an otherizing are 'self-otherization' and 'Seol-ron (設論)'. Since an autobiographical writing is a sub-genre of writing of a historical document, 'self-otherization' follows this style. In other words, an autobiographical writing is a document about oneself and reflects a position of a public chronicler as well. 'Seol-ron (設論)' is a way of narrating through the dialogue with the imaginary person. In an autobiographical writing, it was mainly used as a method of justifying one's life pursued by the writer under the literary settings of answering cross-questionings. In autobiographical writings of the 18th century, strategies of an otherizing were both typical and varied. In the GanSeoChiJeon (看書痴傳) by Lee Deok-Mu (李德懋), the object called GanSeoChi (看書痴) became the subject through a aspect of self-otherization, and a self-delight (自娛) pursued by Lee Deok-mu expressed his unique individuality at the same time. Yu Han-Jun (兪漢雋) confirmed his identity by reaffirming himself described with the past tense through Seol-ron (設論) in his JaJeon (自傳). In this process, he did not only otherize himself, but also comforted himself and discovered his identity through divided self. In conclusion, a aspect of an otherizing called 'self-defamiliarization' through fictiveness was confirmed. However, in autobiographical writings of the 18th century, 'self-defamiliarization' became more meaningful in a content than in a format. In other words, while the format preserved the typicality of an otherization, the content defined 'self-delight with great writings (文章自娛)' as private, not official, and resisted the fixed ideas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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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유한(申維翰)의 자술 문학에 나타난 자기 형상과 명명 방식

저자 : 하지영 ( Ha Ji-yo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1-6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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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한의 자술 문학은 모순된 정체성을 가진 조선 후기 지식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하며, 흔들리는 자신을 견고하게 잡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의 자술 문학, 술회시에서는 “객”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기대와 좌절 속에서 안에서도 밖에서도 안주하지 못하고 길 위에 선 신유한의 초상을 보여준다.
신유한은 “龍門”, “景雲” 등으로 자신을 새로이 명명하면서 흔들리는 내면을 다잡고 삶과 문학적 지향을 확인해 나갔다. 독특한 것은 신유한의 이 명명이 司馬遷과 崔致遠의 삶과 문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유한의 자술 문학은 점차 구체성, 현장성이 확보되지만 여전히 외부인에 자신의 형상을 투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며, 이는 이후 沈魯崇, 金鑢 등의 자술 문학과의 차이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문학론에서 확인된바, 眞, 我로 향한 시선을 내장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전범을 버리지 못한 그의 태도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신유한의 자기 명명은 기존의 사회적, 문학적 관념의 틀로써는 자신, 문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다. 그의 명명은 주변의 비난을 초래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가 인식하는 자아, 지향이 사회적 인식과 충돌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용문”, “경운”이라는 명명은 “객”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시키려는 신유한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Shin Yu-han's autobiography demonstrates how an intellectual with paradoxical identity in the late Joseon period looks back on, consoles and holds together himself. In his autobiographical poems, the image of “wanderer” appears repeatedly, which portrays Shin as someone who cannot settle inside or outside amid expectations and frustration and stands on the road.
Shin newly named himself as “Yongmun (龍門)” or “Gyeong Un (景雲),” pulled his unsteady inner mind together, and reaffirmed his orientation towards life and literature. It is worth noting that Shin's self-naming is based on the life and literature of Sima Qian (司馬遷) and Choe Chi-won (崔致遠). Shin's autobiography gradually ensures specificity and presence, but its limitation is that it still projects his image to outsiders, which can be described as his difference from the later autobiography of Sim No-sung (沈魯崇) or Kim Ryeo (金鑢). As demonstrated in literature theory, his attitude that he cannot give up the norm while he still has a perspective towards authenticity (眞) and self (我) is observed in the attitude in which he treats his life.
Nevertheless, Shin's self-naming demonstrates his serious concern that his self and literature cannot be explained by the existing social and literary framework. His self-naming invited criticism from those around him, which implies that the self and orientation he perceives conflicts with social perception. Naming himself as “Yongmun (龍門)” or “Gyeong Un (景雲)” reflects Shin's commitment that he tries to move away from identifying himself as the “other” and establish himself as the a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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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 후기 반역적 개인의 형상: ―이언진의 호동거실―

저자 : 박동욱 ( Pak Dong-uk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7-9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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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홀로 先覺한 자로서 세계에 대한 비극적인 절망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방에 자신을 가두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분노와 절망을 누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참선을 하며 鼻觀, 靜坐의 방법을 사용해 보고, 여러 종교에서 구원의 방법을 찾았지만 그나마 불교가 약간의 위안으로 다가왔을 뿐, 내면의 울분을 다 털어내지는 못했다. 가족과 신분적 한계, 앓고 있던 병 등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스스로 그렸다가 지우는 일뿐이었다. 자신의 능력에 비례해 절망의 깊이는 커져만 갔다.
저잣거리로 상징되는 공간은 그에게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든 욕망의 추악한 면을 그리며 매서운 어조로 질타했다. 벼슬아치와 지식인은 그 중심에 있다. 그들은 그러한 공간의 주인공이며 이언진은 거기에서 배제된 인물이다. 그들은 죽어서도 기억되었지만 이언진은 살아서도 기억되지 못 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自足과 隱居, 遊覽이었다. 그들과 공간을 달리함으로써 스스로 自傲를 간직했다.
그는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기에 골몰했다. 張獸醫와 張姓翁, 수호전의 인물상, 고대의 협객 등을 결합하여 새롭게 이상적인 인간상을 창조했다. 기존의 유가 질서 속에서 인정받을 수 없지만 진솔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인물들이었다. 사회를 향한 모든 출구는 막혀 있었다. 그는 골목길을 통해 저잣거리로 나와 당당한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시를 통해서 천년 뒤에도 썩지 않는 책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그가 바라는 일이다.
물론 그의 고민이 대사회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 개인의 구원에 중심이 있었지,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커다란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중인으로서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반권위, 체재 비판, 본질과 실제 추구, 창조적 시정신이 폄하될 수는 없다.


He speaks of tragic despair to the world as a person who is preoccupied. He did not stop attempting to put himself in his room and press his anger and despair in it. But it does not seem to be successful. I was able to find a way of salvation in many religions, but Buddhism came to me with a little comfort, and I could not say all my inner agony. His family, limitations of status, illness and illness constantly tormented him.
The space symbolized by the lowland is a place where I want to go to him but can not go. It was a horny tone, drawing the ugly side of all the desires around it. It is at the center of patriotism and intellectuals. They are the protagonists of such a space and he is the person excluded from it. They were remembered even though he died, but he was not remembered even though he was alive. So the way he chose was self-sufficiency, obligation, and excursion. By keeping their space with them, they kept Zao themselves.
He struggled to create a new human image. He created a new ideal human image by combining the longevity of medicine, Zhang Sung Wang, the portrait of the patron saint, and the ancient crowd. It was the people who showed genuine humanity although they could not be recognized in the existing oil order. All outlets to society were blocked. He wanted to make his own space in the alleyway through the lowlands. It is indeed his desire to make a book that does not rot after a thousand years through poetry.
Of course, his anxieties did not extend to major social problems. It was centered on the salvation of the individual, and there was no sign of a great disturbance in changing the world. But his anti-authority, criticism of stay, essence and real pursuit, and creative corrective god can not be dispara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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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초상화찬의 자기 타자화와 관용구 활용

저자 : 김기완 ( Kim Ki-wa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1-11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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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초상화찬의 수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초상 자찬에서 나타나는 '자기 타자화'의 양상과 초상화찬 전반에서 쓰이는 몇몇 관용구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초상으로 그려진 자신을 타인처럼 간주하는 '자기 타자화'의 수사는 타인 대상 초상화찬과 변별되는 초상 자찬 특유의 면모이자 서술규약으로서 2인칭 자기 호명이 특히 빈번하며, 작품의 일부분에 활용되거나 혹은 전면에 걸쳐 적용되었다. 한편 초상화찬에서는 관람자와 초상 간의 거리감이나 생각에 잠긴 초상인물의 모습을 기술하는 관용구가 쓰였으며 개별적인 사례에 따라 변용되기도 하였다. 본고에서 살펴본 초상화찬의 여러 표현방식은 초상 이미지와 직간접적으로 조응하면서 초상인물을 인지·해독하는 글쓰기 방식이 되었던 만큼, 초상화찬의 題畵文學的 연구에서 향후 더욱 주목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set phrases in the genre of portrait panegyrics, writings added to portrait paintings, in the latter Joseon period. The aim of this paper is to bring portrait panegyrics, recognized to this point only as art history material, newly into the area of literature studies and to present a concrete scheme for classic literature studies related to painting. Especially self-otherize in jachan (self praise) and common set phrases a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point that this is a writing added to a portrait, and they helps making an interpretation about the inner life of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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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읍사(井邑詞)」의 전승 양상 고찰: ―『투호아가보(投壺雅歌譜) 』의 「아롱곡(阿弄曲)」을 중심으로―

저자 : 강혜정 ( Kang Hye-j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9-14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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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아롱곡」을 중심으로 고려가요 「정읍사」의 전승 양상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아롱곡」에 관해서는 1960년대에 「정읍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바 있었다. 간략한 논의였지만, 궁중 가요 「정읍사」와 민간 가요 「아롱곡」의 친연성을 전제로, 두 작품의 영향 관계에 대해 상반된 의견이 제출되었다. 「정읍사」 연구의 초창기에 해당하던 당시 연구자들의 관심은 '語釋'에 있었기에 「아롱곡」에 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 「정읍사」에 관한 다방면의 연구 업적이 쌓여 왔지만, 「아롱곡」은 그 논의에 포함되지 못했다. 아마도 「아롱곡」이 수록된 『投壺雅歌譜』가 일본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 1960년대에 벌어졌던 이 논의를 다시 쟁점화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롱곡」은 「정읍사」의 전승 양태를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投壺雅歌譜』는 투호 경기에서 부르는 노래 43수를 모은 것이다. 본서는 '서문-홀기-아가와 투호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는 제작 동기와, 제작 시기 및 제작자가 명시되어 있다. 『투호아가보』는 1807년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던 이만수가 투호 경기를 즐기기 위해 편찬한 책이다. 또한 홀기에는 본서만의 독특한 투호 경기의 진행 방식이 드러나 있다. 이만수가 창안한 투호 경기는 진행 단계마다 그에 어울리는 '雅歌'를 부르게 하여 예와 악을 겸비한 품위 있는 경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특히 본고는 「아롱곡」이 투호 놀이의 '승전가'로 사용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아롱곡」은 「정읍사」의 1연에 새로운 후렴구를 붙인 노래이다. 「정읍사」와 비교하면 노랫말은 일부만 같고, 노래의 성격이나 기능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두 노래 모두 관 소속의 기녀들에 의해 연행되었으며, 궁중 정재에 익숙한 상층에 의해 향유되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아롱곡」이 연행되는 상황은 궁중에서 투호 악장이 연행되던 상황과 유사하며, 진 편의 기녀들에게 먹점을 찍고 춤을 추게하는 것은 포구락 정재와도 흡사하다. 1807년 등장한 「아롱곡」이 궁중 가요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본디 궁중 가요였던 「정읍사」가 함경도 지역의 관아를 중심으로 투호 놀이의 승전가인 「아롱곡」으로 변형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판단된다. 즉 「정읍사」는 본디 백제 민요였다가 고려 시대에 궁중 가요로 채택되었다가 조선 후기 다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민간 가요로, 시대에 따라 그 향유층을 넘나들며 무려 천 년 동안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며 전승된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discuss the gradual transformation of Chounupsa (井邑詞), focusing on Alongok (阿弄曲). The Alongok was discovered while studying the Chounupsa during the 1960s. Although it was a brief discussion, there were conflicting opinions on which of the two songs were first originated: while some claimed that the royal court song Chounupsa influenced to create its shortened version, Alongok, others claimed that the folk song Alongok was eventually selected as the royal court song Chounupsa. This debate has been terminated due to the fact that the document containing Alongok was kept in Japan, slowing down further investigation and discussion. Although a significant amount of time passed, information on this song still remains unknown and irrelevant. This paper intends to revisit the song discussion of the 1960s, because Alongok is a key song in demonstrating the slow and subtle reforms of Chounupsa, as it was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Alongok is contained in Tuhoagabo (投壺雅歌譜); a compilation of 43 beautiful songs (雅歌) by Lee Mansoo (李晩秀), the governor of Hamgyong province in 1807. Tuhoagabo (投壺雅歌譜) is organized into 3 sections: the introduction, the game rules, and the songs relating to the game. The introduction includes a brief description of the purpose of this prestigious game, Tuho, the driving force behind the writing of this book, and the author's name at the end. Next, the second section records the way Tuho plays by stating all the rules; according to the rules, each step corresponds to a certain song out of the 43, which includes the beginning song, closing song, and most importantly, the victory song. This victory song is the Alongok. Although the lyrics of Alongok and Chounupsa, are partially the same, but the emotions and purpose relating to the song are polar opposites. Even though the only similarity of these songs are the first portion of the lyrics, both songs were sung by Kisaeng, female singers hired by the government. Evidence points to the Alongok being influenced by royal court culture and has an audience of the upper class. Furthermore, it states that the losing side of the Kisaengs have to have a black dot drawn on their faces, a typical custom in royal court. All in all, it is evident that the Chounupsa being steadily changed into Alongok overtime, further proving the rare possibility of royal court songs being passed down to commo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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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 세종조 배향공신(配享功臣) 신개의 정치적 역할과 종묘 배향의 배경

저자 : 소순규 ( So Soon-kyu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1-18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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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는 공신당이란 공간이 설정되어 있고, 그곳에는 각 왕대별로 가장 공훈이 높은 배향공신을 모시고 있다. 배향공신의 면면은 당대 정치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최고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은 모두 7명의 배향공신을 두고 있는데, 이 중 추후에 배향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을 제외하면 당대에 배향된 공신은 모두 5명이다. 황희, 허조, 최윤덕 등은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매우 유명한 인물들이며, 이수는 호학군주인 세종의 스승으로 뚜렷한 배향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본고가 다루고자 하는 신개의 경우, 그의 업적이 무엇인가 불분명하고 오늘날 연구자들에게도 생소한 인물 중 하나이다. 본 연구에서는 신개가 어떠한 이유로 종묘의 배향공신의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는 세종 당대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매우 핵심적으로 활약하였고, 특히 국왕 세종의 의사에 부합하는 사안의 추진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세종 말년 상당 기간을 실질적 수상으로서 재직하기도 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신개의 정치적 역할을 재조망하고 이를 통해 세종대의 업적을 재음미해 보고자 하였다.


In the royal ancestral shrine of Joseon dynasty, there was a place known as 'Gongsindang', where the mortuary tablets of retainers with the most merits were placed. The status of these meritorious retainers could be considered important keyword for understanding of political history of that period. King Sejong, known as the greatest King of Joseon Dynasty, had 7 meritorious retainers whose mortuary tablets were placed in the Gongsindang and among them, 5 meritorious retainers had placed their mortuary tablets in the Gongsindang during that era; of Prince Yang-Neyong and Prince Hyo-Ryeong were placed later. Hwang Hee, Heo Jo, and Choi Yoon-Duk are still very famous figures of the time as well as today, and Lee Su, a former teacher of King Sejong, had a clear reason for his mortuary tablet being placed in the royal ancestral shrine.
On the other hand, in case of Singae, who is going to be addressed in this study, his accomplishment has not been clearly investigated till now and he is one of unfamiliar figures to researchers of today. Thus, this study is aiming to address how he managed to rise to the status of a meritorious retainer whose mortuary tablet was placed in the royal ancestral shrine. He played very critical roles in the important political issues during King Sejong's era and especially, proved his ability to push matters in compliance with King Sejong's intention. Also, for a considerable period of the last years of King Sejong's regime, he served as a prime minister.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poli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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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훈민정음』 해례의 '喉(후)' 의미 재고

저자 : 신지영 ( Shin Ji-yo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1-20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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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지금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의 '후(喉)'에 대한 이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고자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훈민정음』 해례의 자음에 대한 인식 전반을 살피고 조음범주인 '아, 설, 순, 치, 후'가 지니는 음성학적 의미를 면밀히 검토하였다. 이러한 전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후'는 선행연구의 견해와는 달리 '후두' 혹은 '성문'이 아니라 '목구멍', 즉 '구강과 인강에 의해 만들어지는 ㄱ자 관의 구강 쪽 끝부분'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후'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훈민정음 해례의 기술 내용과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첫째, 연구개음의 기술에 쓰인 '舌根閉喉(설근폐후)'의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둘째, 'ㅇ'과 'ㅇ'의 음성적 유사성을 설명할 수있게 한다. 셋째, 순경음과 반설경음 표시에 쓰인 'ㅇ'의 연서 이유와 이에 대한 기술에서 보인 '喉聲多(후성이 많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넷째, 'ㅇ'을 '淡而虛'라고 기술한 것과 'ㅇ'과 'ㆆ'이 초성에서 음성적으로 유사하다고 기술한 의미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This paper re-visits the meaning of 喉 (hu) in the Hunminjeongeum Haerye. It aims to show the problems and limitations in understanding hu sound in the current theoretical discussions on this sound as well as the alternative view on 喉 (hu). In doing so, this paper develops an in-depth analysis on 'a' sound (molar), 'seol' sound (lingual), 'sun' sound (labial), 'chi' sound (incisor) and 'hu' sound (described as laryngeal sounds thus far). We shows that hu sound is in fact not made in the larynx nor the glottis but is articulated at the edge of oral cavity in the ㄱ-shaped passage created by the oral and glottal cavities. This representation of hu sound helps our understanding of the Hunminjeongeum Haerye. Firstly, we can better understand the meaning of 'sel-geun-pye-hwu' (舌根閉喉), which refers to the shape of the root of the tongue blocking the pharynx. Secondly, we can demonstrate the phonetic similarity between the old iung (ㅇ) and the iung (ㅇ). Thirdly, we can also understand why iung (ㅇ) is used underneath the labial as in ㅸ and why it is mentioned that there are many hu sound in the Hunminjeongeum. Finally, we can explain the phonetic similarities between ㅇ and 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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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암(思菴) 박순(朴淳)의 즉흥시(卽興詩) 연구(硏究)

저자 : 유진희 ( Yoo Jin-hee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1-23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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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박순의 즉흥시 속에 드러나는 그의 정서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흥시는 즉흥적인 감정을 시로 옮겨낸 것이기 때문에 시인의 정서가 보다 잘 투영되어 있다. 정서는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이기 때문에 즉흥시로 개인의 정서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즉흥시가 즉흥적인 감정을 담아낸다는 것은 시의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의 내용을 보고는 즉흥시인지 아닌지를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지만 시의 제목을 이와 같이 붙였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느꼈던 것들을 시로 옮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한시 창작의 관습상 즉흥시에는 이와 같이 제목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고에서는 박순의 즉흥시에 담긴 정서를 ① 자연에서 느끼는 幽興, ② 혼란한 세상에서의 불만, ③ 은거에 대한 만족의 세 가지로 나누어 살폈다. 자연에서 느끼는 幽興발현에서는 박순이 공무로 바쁜 와중에 자연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幽興을 살펴보았다. 혼란한 세상에서의 불만 토로는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은거 의식 표출에는 혼란스러운 세상에 지쳐 조용히 은거하는 삶을 편안하게 여기고 있는 박순의 내면이 시로 잘 드러나 있다.


This paper aims to confirm Park Soon's emotion through his Impromptu Poems. Impromptu Poems moved emotional feelings into poetry. So it can better reflect the personal emotion. Emotion is a strongly conscious sentiment for a short time. For this reason we see that it is possible to grasp the individual's emotion in Impromptu Poems.
Impromptu Poems is made with Impromptu emotions. This can be found in the title of poetry. Looking at the contents of poetry, it is difficult to grasp easily whether Impromptu Poems or not. However, the subject of poetry in this way is to show that we moved what we felt on the spot to a poem. Also, in the custom of Chinese poetry creation, Impromptu Poems is generally given a title like this.
In this paper, I examined the inward consciousness contained in Impromptu Poems of Park Soon into three kinds: 1) A deep emotion that feel in nature 2) Dissatisfaction in a confused world, 3) Satisfaction with hermit. First, This paper studied the margin that Park Soon feels naturally during the busy public schedule and deep emotion felt in it. Next, Dissatisfaction in a confused world, It expresses the Dissatisfaction about the words and attitudes of people who confuse the world. Lastly, Satisfaction with hermit, Park Soon is tired of the confusing world and lives quietly hiding. His inward consciousness which seems to have a comfortable life is shown i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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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선시대 '가족(家族)'의 등장과 성리학

저자 : 박미선 ( Park Mi-su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9-26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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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사회에 있어서 최소의 집단으로 호명되는 '가족'이라는 용어가 불변의 고정된 어휘가 아닌 생명체와 같이 생성, 변용 또는 소멸의 과정에 놓여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역사상 가족 관련 용례를 검토하여 그 기원과 출현 배경을 고찰하였다.
최초로 확인되는 한자어 '가족(家族)'은 정치행정단위로서 식읍의 식솔이라는 의미로 오늘날의 가족이라는 의미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가(家)'라는 어휘가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의미 있는 어휘로 사용되었다.
다음으로 우리 역사상 고려시대까지 가족이라는 한자어가 사용되지 않았음을 밝히고, 조선시대 '가족'이라는 용어가 문헌상에 등장한 배경을 검토하였다. 한자어 '가족'이 조선의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확산된 계기로 주자(朱子)를 주목하고, 『주자대전』의 편집서인 『주자서절요』의 확산으로 그 개연성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등장한 한자어 '가족'은 공동성과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공의 유대성 속에서 사적(私的) 성격을 지닌 집단의 의미를 지녔고, 종법 체제의 부활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음을 살펴보았다.


This study explored the Gazok (家族)-related usage in history in the consciousness that the term 'family', which is called as the smallest group in society, is in the process of creation, transformation, or extinction like life, not constant fixed vocabulary. And the origin and emergence background were also examined
The word currently meaning a family, 'Gajok' in Chinese characters, meant firstly 'the members to feed in Sik-eup (食邑)' as a political administrative unit, which was different from the current meaning, 'family'. Rather, 'Ga (家)' of the word was used as meaningful to explain the relationship of the family consisted of marriage and blood.
Next, It was confirmed that the word, Gazok had not been used until the Goryeo Period, but appeared in the literary records in the Choson Period. Thus, the study examined the background of the advent of term 'GaJok (family)' in the Choson Dynasty. The study focused on Zhuxi (朱子) because the term, 'Gazok (家族)'was spread among the Neo-Confucian scholars of Choson, which showed there was the correlation through the spreading of Zhuxiseojeoryo, as the edition of Zhuxidaejeon.
Lastly, the study showed that the word 'Gazok' in the Choson Dynasty had commonness and political character and the meaning of a group with a private character in public ties, and could be understood in the social context of the resurrection of the Clan rules.

KCI등재

10『여지도서』의 편찬시기와 항목구성 및 신설항목의 유래

저자 : 이재두 ( Lee Jae-doo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5-30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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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는 경진년(1760, 영조 36)에 홍문관에서 성책한 미완의 전국읍지이다. 경진년은 이 책의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연대의 하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곽, 사묘, 토산, 불우, 관방 항목이 『여지도서』에서는 각각 성지, 단묘, 물산, 사찰, 진보로 이름이 바뀌었다. 『여지도서』는 도 단위만이 아니라 고을마다 채색지도를 수록하였다. 공해와 창고는 모든 고을에 신설하였다. 관직은 건치연혁, 제언·목장·관애는 산천에서 분리하여 내용을 풍부히 하였다. 서두의 방리(호구 포함)·도로, 말미의 한전, 수전, 진공, 조적, 전세, 대동, 균세, 봉름, 군병 11개 항목은 행정·재정·군사 관련 내용이다. 경상도 편을 제외하고는 궁실, 학교, 총묘, 명환, 제영 5개 항목을 제외시켰다. 함경도 편에는 학교와 발참을 두었다.
『여지도서』의 신설항목은 조선초기의 관찬 지리지보다는 『함주지』를 비롯한 사찬읍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북인계 남인인 순천부사 이수광의 『승평지』와 현풍현감 김세렴의 『포산지』는 『여지도서』의 항목 신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숙종대에 편찬한 『북관지』나 『숙녕읍지』 등의 신설항목을 계승하면서 일부를 제외하였고, 조적, 전세, 대동, 균세, 봉름을 신설하였다. 따라서 『여지도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바탕으로 사찬읍지와 숙종대에 추진한 『여지승람』 수정증보 사업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항목을 신설한 전국 단위의 관찬읍지라 하겠다.


Yeojidoseo is an unfinished nationwide geography that was bound by books in 1760 at the Hongmungwan. The year 1760, which is confirmed in Gyeonggi, Gangwon and Hamgyeong Province, is the latest time to be identified on the book.
Although Sinjeung Dongguk Yeojiseungram had only national and provincial maps, Yeojidoseo contained color maps for each town as well as for each province. The 11 new items, which were not included on Sinjeung Dongguk Yeojiseungram were recorded in two or three letters, unlike other items.
Except for Gyeongsang Province, five items were excluded such as items of school (學校), important government official (名宦), poetry (題詠), royal chamber (宮室), grave (塚墓) in other provinces.
The new items were much influenced by local Eupji (local gazetteer, 邑誌), including Hamjuji, rather than by the official geography of the early Joseon Dynasty. Lee Soo-kwang's Seungpyeongji and Kim Seryeom's Posanji had the most influence on the establishment of Yeojidoseo new items. Yeojidoseo is a critical response to the result of Eupji Compilation project during King Sukjong's reign, which was promoted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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