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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ulture Research

  •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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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4)~83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968
민족문화연구
83권0호(2019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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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후기 유서 지식의 성격

저자 : 김문용 ( Kim Moon-yo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4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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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類書를 통해 집적·전승된 지식의 성격을 검토하는 데 목표를 둔다. 유서는 지식의 회집, 항목화, 분류, 변증이라는 문체 성격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임란 이후 지식의 팽창을 적절히 반영해 낼 수 있었다.
주자학은 원칙적으로 박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박학에 대한 도학적 경계는 지식이 증대하면서 함께 강화되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박물 또는 명물도 수에 대한 관심이 일부 지식인들에게 확산되면서 양측의 입장과 지향 차이는 좀 더 분 명해졌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바로 그런 과정의 성취 가운데 하나였다.
유서는 한편으로 한대 이래의 명물학 전통에 기대어 있었다. 명물학은 고전을 지식 변증의 기준으로 끌어들이고 만물 사이의 위계적 질서 관념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르러 박물학에 대한 관심과 병행하여 만물의 수리 질서에 대한 재인식이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 서학의 영향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상수학의 외피를 걸치고 있었고, 그나마도 아직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학문방법론 차원의 새로운 함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후기 유서의 '물리'는 아직 전통적인 지식체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knowledge that was collected and transferred by way of yuseo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yuseo is characterized by its stylistic nature of gathering, itemizing, classifying, and verifying of knowledge, making it effective for collecting and transferring large amounts of knowledge. This allowed it to properly reflect the expansion of knowledge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principle, polymathy was not rejected in Neo-Confucianism. The wariness of Neo-Confucianists against polmathy was strengthened together as knowledge increased. The differences in positions and directions between polymathy and Neo-Confucianism have become more clear since the mid-18th century, with interest in the natural history or artisanal arts spreading to some intellectuals. Ojuyeonmun Jangjeonsan'go was one of the achievements of that process.
Yuseo, on the one hand, exploited the tradition of the study of names since Han dynasty. The study of names was to draw classics as a standard for verification of knowledge and to justify hierarchical worldviews. A re-recognition of the mathematical order of things appeared in parallel with the interest in natural history at Ojuyeonmun Jangjeonsan'go. It was certainly done under the influence of the West-Learning. But it still took the tone of traditional Sangsuhak, and yet not at all had the value of methodology that covers the whole work. Until then the principle of things in yuseos in the late Joseon Dynasty did not deviated significantly from the traditional knowledg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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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 후기 유서(類書)와 서학(西學)―『성호사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중심으로―

저자 : 김선희 ( Kim Seon-hee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5-91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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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 유서(類書)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개별적 지식들에 범주를 부여해 분류하고 평가하려는 능동적인 지식 재배치의 결과물이다. 당연히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사회의 변화나 지적 조건의 변화는 지식의 정렬과 재배치, 위상이나 범주의 변경 등의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 맥락에서 유서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 시대, 한 사회 지식장의 표현형으로서, 이를 통해 시대의 지적 조건과 지적 지향이 바뀌는 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길고 긴 유서의 전통에서 하나의 분기를 이루는 사상사적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회에 의해 도입된 서양 지식과 문물 즉 서학(西學)의 형성과 전개이다. 예수회의 중국 진출 이후 형성된 중국과 조선, 일본의 유서들은 서학의 세부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지적 체계 안에 어떻게 삽입되고 변용되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유서와 관련해서 서학은 두 가지 층위에서 고찰할 수 있다. 하나는 앎이라는 인식론적 제안이 형이상학적 토대와 연동되어 있는 전통적인 성리학의 맥락에서 '격치'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서학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격치의 실질적 성격으로 부각된 박학의 추구에 지적 자원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두 맥락에서 『지봉유설』, 『성호사설』,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 유서에 나타난 서학의 유입과 지적 변화를 검토하고 재평가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Leishu (類書), or Encyclopedia, is the result of efforts to actively rearrange individual knowledge by categorization and evaluation. Therefore, the change inintellectual conditions and directions of the period can be identified through Leishu. There is an ideological and historical event that formed a branch in the Leishu tradition of East Asia. It is the formation of Western knowledge and literature, xixue (西學) or Western Learning, introduced by the Jesuits. Leishu in China, Joseon and Japan, formed after the Jesuits' entry into China, are important indicators of how the intellectual resources of the study were integrated and transformed in the traditional East Asian intellectual system. In relation to the Leishu, the study of Western Learning can be contemplated on two levels.One is that Western Learning influenced the change in meaning of the Neo-Confucian gezi (格致) or Investigation of Things, and the other is that it provided important resources to the intellectual climate of the time, which was the pursuit of boxue (博學) or broad learning. In this context, this paper seeks to examine the influx and intellectual changes of Western Learning through the three works that represent the Leishu of Joseon: JibongYuseol, Seongho Saseol and Ojuyeonmun jangjeon s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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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시대 백과사전 속 '단군'의 표상

저자 : 김윤경 ( Kim Youn-gyeo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3-11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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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4종의 조선의 백과사전―『대동운부군옥』, 『지봉유설』, 『성호사설』, 『오주연문장전산고』―을 중심으로 당대 지식인들의 '단군'에 대한 인식 그리고 '단군' 관련 논의들의 특징을 고찰하는 데 있다. 이러한 작업은 '백과사전'이라는 당대의 보편 지식 안에서 '단군'이 어떠한 이미지로 상상되고 소비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는 기회이며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단군'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대한 하나의 접근이 될 수도 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6세기 출간된 『대동운부군옥』의 '단군'은 중국과는 다른 독립국가로서의 자의식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출간된 백과사전보다 임란 이전의 『대동운부군옥』은 중국에 요임금이 있다면 우리는 단군이 있다는 문명국가로서의 강한 자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둘째,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단군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고찰하는 계기를 주고 단군시대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준다면 이익의 『성호사설』은 퇴계와 조식을 최고의 스승으로 간주하는 성리학자가 단군의 시대를 문명과 미개의 이중적 태도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단군은 단군시대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자조선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비로소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小中華論'을 펼치기 위해 활용되었다. 이상의 연구는 '민족' 개념의 구성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전제 아래, '민족적 위기'가 '단군'에 대한 숭배를 강화 시키고, 논의를 확대시켰다고 하는 통행 시각을 새롭게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contempla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rception toward Dangun (檀君), the legendary founding father of Gojoseon, by the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relevant discussions based on four types of encyclopedias of the Joseon Dynasty―Daedongunbugunok, Jibongyuseol, Seonghosaseol, and Ohjuyeonmunjangjeonsango. This study is the opportunity to understand how Dangun has been imagined and consumed in general knowledge of the era, encyclopedia, and one type of approach toward how the perception toward Dangun changed in the ethnic crisis situatio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following are the study results. First, Dangun in Daedongunbugunok, which was first published in the 16th century, played the role of expanding self-awareness of an independent state different from China. In comparison with the encyclopedias published after the invasion, Daedongunbugunok, which was published prior to the invasion, has strong sense of identity as the civilized state with Dangun, equivalent to Emperor Yao in China. Second, while Jibongyuseol by Lee Soo-kwang provides the occasion to positively consider the history of Dangun, Seonghosaseol by Lee Ik shows that the Confucian scholars who regarded Toegye (退溪) and Cho Sik (曹植) as the best teachers viewed the era of Dangun based on dual attitude between civilization and savage. Third, Dangun in Ohjuyeonmunjangjeonsango did not try to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the Dangun era but was used to promote the idea 'Sojunghwaron (小中華論)', which means that civilization began on the Korean Peninsula owing to Gija Joseon. Under the premise that the organization of ethnic concept is the product of modern times, this study will be an opportunity to newly reflect on the general view that ethnic crisis strengthened worship toward Dangun and expanded discussion on Dan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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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 유서류(類書類) 문헌의 유가(儒家) 경전(經典) 이해―『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중심으로―

저자 : 강경현 ( Kang Kyung-hyu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5-13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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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서류 문헌의 출현은 “지식의 축적”과 “박학 지향”이라는 특성을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축적되어온 방대한 지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유가 경전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조선 후기 대표적 유서류 문헌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초점을 맞추어, 유가 경전에 대한 지식이 박학적 관심 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며, 나아가 그것이 주자학적 경전 연구가 심화되고 비판적으로 극복되고 있던 조선 학계에 어떠한 형태의 진전된 유가 경전 해석의 시야를 열어주었는지 살펴보았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구성된 유가 경전 관련 지식은 중국과 조선의 주자학적 경전 이해를 경학사의 일부로 다룸으로써 결과적으로 그것을 상대화시키는 지평을 열어준다. 19세기초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경학 지식을 통해 우리는 조선 후기 유가 경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The emergence of Encyclopedic Works in the late Joseon has the characteristics of “accumulation of knowledge” and “erudition orientation”.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Confucian Classics in understanding the vast knowledge accumulated in East Asia. This article focused on the representative Encyclopedic Works of the late Joseon Dynasty, Oju-yeonmun-jangjeon-sango, and showed how the knowledge of Confucian Classics is constructed on the erudition orientation. In addition, I examined what it provided new ways of understanding in Confucian Classics interpretation. The knowledge about Confucian Classics, which is constructed under the purpose of collecting a large amount of knowledge, deals with the understanding of Classics based on the Zhuxi studies as part of the history of Confucian Classical studies. By the eyes of confucian classical studies' history, we are able to relativize Zhuxi's interpretation. In conclusion, through the knowledge about Confucian Classics in the Encyclopedic Works of the early 19th century, Oju-yeonmun-jangjeon-sango, we can see a turning point in the late Joseon academia's perception of Confucian Clas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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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와이문고(河合文庫) 개관

저자 : 후지모토유키오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3-17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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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된 『歸鹿集(瀋行日記)』에 보이는 조현명의 중국 관찰과 영조의 反滿 의식을 살피면서,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했던 기간 동안 무수히 창작된 연행록 가운데 역사적으로 「심행일기」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을 밝혔다.
조현명의 중국 관찰은 조선에 유리한 방향에서 주관적인 희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기존의 연행사와 달리 매우 객관적인 것이었으며, 만주족이 발흥해서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이 하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까지 해석하였다.
한편, 영조는 '청나라 백 년의 운'을 이야기하면서 '反滿', '反淸'을 국시로 해온 국내 정세에 궤를 같이 하는 듯하지만 국내의 통치를 견고히 하기 위해 '反滿', '反淸' 의식을 이용한 것처럼 보이는 언급을 한다.
이러한 내용은 「심행일기」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사료에서는 살펴볼 수 없는 내용이다.
이처럼 조선연행록의 세계에는 조선 지식인이 지녔던 정신세계의 정수에 가까운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 이를 통해 역사적인 허위와 허구가 존재함을 간파하면서 다양한 사료와 연결 시켜 연구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Jo Hyeon-myung's observation of China and King Yeong-jo's anti-Qing consciousness in Simhang-ilki (瀋行日記), one of Kawai collection, and to reveal the historical position of Simhang-ilki among the numerous Yeonhaengrok (燕行錄), written during the Qing Dynasty of China. Jo Hyun-myung's observation in China was very objective, unlike the previous series of yeonhaengs (燕行) which were interpreted from the perspective of subjective hope in favor of Joseon, and he even interpreted that the rise of the Manchus to rule China was helped by heaven. On the other hand, while King Yeong-jo seemed to reveal his own Anti-Manchu (反滿) and Anti-Qing Dynasty (反淸) conciusness by talking about “the fortunes of the hundred years of the Qing Dynasty,” he intended to strengthen domestic rule. We can't figure out such a point in historical records such as the Joseonwangjo-sillok (朝鮮王朝實錄) or Seungjeongwon-ilki (承政院日記) and Simhang-ilki (瀋行日記) is the only text that these facts are confirmed. As such, the Joseon (朝鮮) Yeonhaengrok (燕行錄) sometimes show us some records containing the essence of the spiritual world held by Joseon intellectuals. It is necessary to identify historical falsehoods by connecting them with various historical records to deepen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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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교토대학 소장 금석집첩(金石集帖)에 대하여

저자 : 심경호 ( Sim Kyung-ho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1-24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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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 부속도서관에는 일반귀중서로 『금석집첩(金石集帖)』 정편과 속집의 대형 219책이 소장되어 있다. 이 둘을 '금석집첩(金石集帖)'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조선후기 영조 때 정치가 청사(淸沙) 김재로(金在魯, 1682-1759)와 후인(後人)이 엮은 비석 탁본 모음이다. 일부 책자의 등에는 '흠흠헌(欽欽軒)'이라고 묵서되어 있다, 이것은 김재로의 헌호(軒號)로 추정된다. 전체는 항목별로 분류되어 있고, 권차(卷次)는 천자문 순서이다. 219책 가운데 3책은 복본(複本)이다. 교토대학에서 어느 때인가 연필로 외표지에 번호를 매긴 것에 의하면 그 시점에서는 230책이 완질이었던 듯하다.
교토대학 소장 『금석집첩』과 『속집첩』에 대해서는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가 상세 목록을 작성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교토대학 부속도서관의 정리번호와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한 『금석집첩』은 묘비(墓碑)의 류와 범비묘비제기사(凡非墓碑諸紀事) 의 류를 나누어 수록하고, 묘비의 류는 망자(亡者)의 관직에 따라 정리하되, 김재로 집안의 비문들을 별도로 정리해 두었으며, 음관(蔭官)·부인(婦人)·호남인(湖南人)·영남인(嶺南人)·관서북관인(關西北關人)·여항인(閭巷人) 등의 항목을 설정해 두었다.
한편, 김재로의 후인이 『금석집첩』의 탁본 목록을 정리하고 추가로 기록한 필사본 『금석록(金石錄)』이 고려대학교 육당문고(六堂文庫)에 이 있다. 이 총목은 '천조(天朝)'부터 '석사(釋寺)'까지 34항으로 구성했으며, 2,405점을 본편(本編) 206책, 속편 20책에 나누어 수록했다. 단, 중복이 있어, 실제로는 2,265점의 탁본 목록이 확인된다.
『금석집첩』에 대해서 가쓰라기 스에하루(葛城末治)와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는 규장각에 『금석첩(金石帖)』 39책이 소장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으나, 현재 규장각에는 1책('得'자 책)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동일 형태의 금석첩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육당문고(六堂文庫)에 28책과 개인소장의 5책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왔으나, 육당문고에서는 교토대학에 없는 '邇'자 책, '過'자 책, '忘'자 책, '維'자 책, '習'자 책의 일부가 확인된다. 그리고 '禍'자 책의 예처럼 육당문고에는 교토대학 『금석집첩』과 중복되는 것도 있다. 교토대학의 『금석집첩』에 복본이 3책이 있고, 고려대학교에 별도로 28책의 낙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재로 등이 『금석집첩』을 제작할 때 일부는 2질을 제작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In Kyoto University Library, 219 volumes of Geumseokjipcheop (金石集帖) Jeongpyeon (the main part) and Sokjip (the sequel) are owned as a general-valuable collection. These books are collectively titled 'Geumseokjipcheop.' It is an assortment of rubbings of stone monuments, which was compiled by a politician in the late Joseon king Yeongjo: Cheongsa (淸沙) Kim Jaeroe (金在魯, 1682-1759) and his successors. There is a ink note 'Heumheumheon (欽欽軒)' on the spine of some volumes. The note is considered to be a Kim Jaeroe's manor title (軒號). The entire books are categorized by items, and its volume sequence follows a letter sequence of The Thousand Characters Classic. Three volumes of 219 volumes are duplicated copies. According to a penciled number on the cover, written by Kyoto University at a certain point, it seems that the book collection was 230 volumes in total.
Hujimoto Yukio made a detailed list of Guemseokjipcheop and Sokjipcheop in Kyoto University. However, the list have some points that are not correspond with a reference number of Kyoto University library. Guemseokjipcheop separated a category 'tombstones (墓碑)' from 'general articles except tombstones (凡非墓碑諸紀事).' Also, it arranged the tombstones category by an official title of the deceased, separately arranged epitaphs of Kim Jaeroe's family. It also set up items such as Eumgwan (蔭官: officials who are specially recruited by a lineage), Buin (婦人: madams), Honamin (湖南人: people from southwestern region), Yeongnamin (嶺南人: people from southeastern region), Gwanseobukgwanin (關西北關人: people from northen region), Yeohanin (閭巷人: middleclass), etc.
Meanwhile, Korea University Yukdangmungo (六堂文庫) owns manuscrips Geumseokrok (金石錄), an organized and supplemented list of stone rubbings in Geumseokjipcheop, edited by a successor of Kim Jaeroe. This complete list is composed of 34 categories from Cheonjo (天朝: The emperor's nation) to Seoksa (釋寺: Buddhist monks and temples). 2,405 pieces of rubbings are contained in the main part 206 volumes and the sequel part 20 volumes. However, it actually has 2,265 pieces of rubbings because of overlaps in the list.
About Geumseokjipcheop, Katsuragi Sueharu and Maema Kyousaku mentioned that Gyujanggak owns Geumseokcheop 39 volumes, however currently, Gyujanggak only owns one volume with a '得' letter sequence. Also, Geumseokcheop with the same shape had been known to be owned by Korea University Yukdangmungo (28 volumes) and a private collector (5 volumes). It is confirmed that a '邇' sequence volume, a '過' volume, a '忘' volume, a '維' volume, and part of '習' volume are owned by Yukdangmungo. These volumes are not owned by Kyoto University. Also there are overlaps between Yukdangmungo and Kyoto University, for example the '禍' volume. Considering three duplicated volumes in Kyoto Universiry and 28 separate volumes in Korea University, it can be assumed that some volumes of Geumseokjipcheop was made to two copies at the point of its publication by Kim Jaeroe and his colleag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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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대국어 한자음의 기층에 대하여

저자 : 김무림 ( Kim Moo-rim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1-28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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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대국어 한자음의 기층을 알아보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국어 한자음은 국어의 역사에 비추어 고대국어 한자음, 중세국어 한자음, 근대국어 한자음, 현대국어 한자음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중에서 중세국어 한자음은 훈민정음이라는 표음문자로 표기됨에 따라 국어 한자음의 역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중세국어 한자음은 이에 대한 모태론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대체적으로 후기 중고음인 당대(唐代) 장안음을 기층으로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고대국어 한자음은 우선 재구(再構)의 단계를 거쳐야 하므로, 고대국어 한자음의 기층에 대한 논의는 자못 소략할 수밖에 없었다. 본고에서는 한자를 이용한 고대국어의 다양 표기를 검토하여 고대국어 한자음을 재구하고, 이에 대한 기층이 한어사(漢語史)의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논의하였다. 고대국어 한자음은 체계적인 측면에서 중세국어 한자음과 차이가 있으며, 이를 근거로 기층을 논의한 결과 전기 중고음이 고대국어 한자음의 주요한 기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며, 여기에 개별적인 상고음 기층이 있다는 것도 첨언하였다. 아울러 삼국시대의 한자음과 통일신라의 한자음이 어느 정도 신구(新舊)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논의하면서, 중세국어 한자음은 고려시대에 들어서 새롭게 정립된 것이라는 것도 언급하였다.


This thesis aims at phnological interpretation on the sounds of the ancient sino- Korean characters. The sounds of sino-Korean characters are divided by historical period which are ancient, middl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The studies on the sino-Korean characters were performed by many scholars with comparative method, because of the origin of sino-Korean characters was Chinese. In this thesis I studied on the sound base of the ancient sino-Korean characters with regard to differences in ancient and middle age. Final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how proposals about the sound base of ancient sino-Korean characters. I brought to a conclusion that the sound base of ancient sino-Korean characters were different from the sound base of middle sino-Korean characters in a systematic level. Specially I mentioned the discontinuous of the sounds transmission in sino-Korean charac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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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국어사 교육에서 바라본 고대국어의 교육 내용과 석독구결

저자 : 김유범 ( Kim Yu-pum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87-30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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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국어사 연구 못지않게 국어사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이 국어사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의 국어사 연구와 국어사 교육에 대한 현황을 시작으로 고대국어의 국어교육적 위상과 의의, 그리고 교육 내용에 대해 석독구결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우리말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중세국어 이전에 우리말의 역사와 흔적은 어떠했는지에 답하기 위해 우리의 발길은 고대국어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고대국어의 교육 내용과 관련해 국어사 교육이 추구해야 할 방향 중 하나인 탐구 가능성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석독구결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석독구결은 중국어로 된 한문이 국어와 통사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이를 우리말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말의 문법적 요소들이 어떻게 구결자로 적혔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교육 내용이 된다. 그동안 국어사 연구에서 쌓아 온 석독구결에 관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연구 내용들이 국어사 교육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국어사의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This paper starts from the viewpoint that it is necessary for Korean language researchers to be interested in education of Korean language history as well as research of it. Starting from the current state of research and education of Korean language history, I have discussed the status and significance of ancient Korean language in Korean language education and the contents of it mentioning Seokdok-Kugyeol (釋讀口訣). In order to answer the question of where Korean language came from, and what history and traces of Korean language existed before the Middle Korean, we have no choice but to go to ancient Korean language. I pointed out that it was very Seokdok-Kugyeol that satisfied the possibility of inquiry, which was one of the directions for education of Korean language history to pursue in relation to the educational contents of ancient Korean language. Seokdok-Kugyeol is an interesting educational content in that it shows how the Chinese sentences are syntactically different from the Korean sentences and how the grammatical elements of Korean are written in Kugyeol in order to understand it in Korean language. In order to make the precious and valuable research contents about Seokdok-Kugyeol flower, the interest and effort of many people engaged in research and education of Korean language history are as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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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문헌에 나타나는 자[상(上)]의 용례와 문서 보관제도

저자 : 권이선 ( Kwon E-su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09-34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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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틀어 널리 사용된 상(上)이라는 한 글자를 고찰함으로써 당대 문서를 보관하고자 한 의식이 글자에 남아 있는 흔적을 살펴 본 글이다. 기존 상(上)의 의미는 ①높다 ②올리다, 진헌하다 ③처소격조사로 인식하였는데, 이는 한문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특정 문안과 관련해 상(上)은 자[上]로 발음되며 “보관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두로 사용됐다. 이는 연대기사료, 고문서, 의궤, 등록 등 다양한 사료에서 확인 된다.
보관이라는 의미로 쓰인 上[자]는 官上[관자], 校上[교자], 營上[영자], 紙筒上[지동자], 院上[원자] 등 '보관처+上'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표현은 모두 문안을 보관할 구체적인 보관처와 상(上)이라는 글자가 결합된 방식이다.
조선시대 모든 문안이 관부에 보관됐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우나 관념적으로는 보관의 당위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上[자]라는 글자로 표현됐는데 이 쓰임은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上[자]가 보관의 의미로 사용된 문헌은 ①조직 및 운영의 성격 ②개인의 권리 혹은 신원 증명 ③민정과 관련하여 풍습상 긴요한 사안으로 구분된다.
특히 지방관아에서 문서 보관과 관련해 紙筒[지동]과 葉作[엽질]은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엽질과 上은 후일에 증빙의 목적을 가진 자료를 보관할 때 쓰였다. 따라서 上과 보관처는 불가분의 관계로 지방 관아의 지동에 보관된 엽질은 주로 활용 문서로 보관형태는 ①원본 문서를 점련한 형태 ②원본을 등서한 등록 형태로 구분되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연구는 이두서식집과 다양한 고문헌에 나오는 자[上]의 실례를 바탕으로 상(上)이 이두자임을 밝혀 그 의미 및 조선시대 문서 보관제도의 단면을 밝히고자 하였다. 상(上)이 때론 上[자]로 인식됨을 알아야 결국 葉作[엽질]과 紙筒[지동], 官上[관자] 등 조선시대 다양하게 쓰인 문자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By studying the character shàng (上) that was very widely used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the following paper derivatively examines the purpose behind the protection of documents of the time. The original meaning of “shàng (上)” was only understood in one dimension that it was limited to. It was commonly recognized as 1) high 2) to raise, to present a gift to a king, or 3) a particle to indicate space, methods in which the word is most frequently used in Chinese writing. However, “shàng (上)” was also sometimes pronounced as “zi [上]”, and used as a word meaning to “keep” or “safeguard.” This can be identified in various annals such as chronological feeds, archives, royal books, and registration documents.
The range for the application of “zi [上]” is very wide, as shown in phrases such as one who holds a position of honor, schooling, running a business, stationary holder, and scholarly chamber. These expressions are indicative of a method that integrates the specific name of the building where scripts were kept, and the character “shàng (上)”. There were experts who, based on the Yoo-Seo-Pil-Ji or experience, used to believe that “shàng (上)” possessed the meaning of “keep,” but were unable to trace it back to its historic significance or system and were concluded as having gone too far. At the fundamental level, its meaning was not included in the Idu script dictionary and was therefore excluded from the original Idu script research on many occasions, and various historical documents later on could not ascertain the truth of the character. Therefore, there has been a number of cases in which mistakes have been found in documents verifying the undoing of registration, Ilseongnok: Records of Daily Reflections, as well as recent translations of ancient documents.
All vocabulary contains the historical context up until the word's usage. Therefore, errors in translation originate from the incomplete understanding of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Though it is difficult to definitely conclude that all official papers were stored in the government during the Joseon Dynasty, tradition tells us that the necessity and mandate over their safekeeping were acknowledged. And this was expressed using the character “zi [上],” which was utilized from the late Koryo to late Joseon Dynasty.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at “shàng (上)” is an Idu character based on Idu form collections and various examples, and illustrate its transliterations and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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