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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Culture Research

  •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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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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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64)~8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024
민족문화연구
86권0호(2020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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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 중기 『家禮』에 대한 고증과 보정 ―『家禮輯覽』을 중심으로―

저자 : 한재훈 ( Han Jae-hoo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4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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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중기의 『家禮』 연구가 行禮의 매뉴얼을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家禮』에 대한 강론과 이해의 단계를 거쳐 考證과 補正의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흐름 위에 있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중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家禮輯覽』을 중심으로 당시 『家禮』 연구의 수준을 구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문은 먼저 『家禮輯覽』의 문제의식과 전반적인 구성에 대해 검토하고, 이어서 『家禮』에 대한 考證과 補正의 내용과 수준을 살펴보고자 한다.
『家禮輯覽』은 『家禮』의 난해한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으며, 『家禮』의 本文과 本註 그리고 附註 등 『家禮』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家禮輯覽』은 『家禮』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되는 항목들을 뽑아 총 1,511개의 표제로 세우고 이에 대한 고증과 보정 작업을 진행했다. 『家禮』를 고증하고 보정하기 위해 三禮書를 비롯한 古禮 관련 예서들을 참고하였을 뿐 아니라, 唐ㆍ宋 시대에 제정된 今制들도 함께 살폈다. 또한 『家禮』의 체제에 영향을 준 『書儀』 등 선행 家禮書와 선현들의 예설까지 두루 참고하였으며, 특히 朱子의 예설을 참고하기 위해 『朱子大全』과 『朱子語類』 등도 폭넓게 조사했다. 뿐만 아니라, 『家禮儀節』을 포함한 중국과 조선에서 간행된 『家禮』 관련 羽翼書들과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참고하여 반영했다.
『家禮輯覽』의 고증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家禮』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양한 이설들에 대한 변증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먼저 『家禮輯覽』은 『家禮』에 등장하는 글자와 단어 그리고 문장에 이르기까지 『家禮』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꼼꼼하게 표제어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고증 작업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家禮輯覽』에는 해당 禮文이나 禮制에 대하여 예서나 학자들의 견해가 서로 다를 경우 『家禮輯覽』은 이를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설들 간의 우열을 평가해서 취사를 판단하기도 했고, 그것이 용이치 않을 경우 숙제로 남겨둔 채 판단을 보류하기도 했다.
제시된 글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 고증이라면, 보정은 제시된 글의 미비점이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家禮輯覽』은 『家禮』에 대한 고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家禮』의 미비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하는 작업까지 진행했다. 『家禮輯覽』이 『家禮』를 보완한 대표적 사례가 「五服年月歷代沿革」이며, 『家禮』의 誤字나 闕文은 물론 『家禮輯覽圖說』에 제시된 「長子冠禮圖」와 「衆子冠禮圖」처럼 기존의 구성을 수정하여 재구성한 것도 있다. 『家禮輯覽』의 『家禮』 연구 경향은 비슷한 시기 중국의 『家禮會成』이 『家禮』보다 『家禮儀節』을 바탕으로 明代의 時制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경향과 비교했을 때, 철저하게 『家禮』를 이해하고 준행하는 데 목적을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paper was written with the purpose of clarifying the level of GARYE (家禮) research at the time, focusing on GARYE-JIPRAM (家禮輯覽) of Kim Jang-saeng (1548-1631), which is an intermediate result of GARYE research conducted in the middle of Joseon (朝鮮) Dynasty. To accomplish this purpose, I first reviewed the problem awareness and overall configuration of GARYE-JIPRAM, followed by the content and level of the grievance and correction for GARYE.
GARYE-JIPRAM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clearly understanding the arcane content of GARYE. In order to achieve its purpose, the book set up 1,511 headings for the text, original notes and attached notes of GARYE and reviewed, proved, supplemented, and modified them. And in the process of reviewing and proving and supplementing and modifying, almost all of the data that could be referenced at that level were reflected in the content.
The work of GARYE-JIPRAM to review and prove for GARYE has been done in two main directions. The first is aimed at an accurate understanding of GARYE, and the second is to devalue various aspects of GARYE carefully. Compared to the work being reviewed and proved to be accurate in understanding the article presented, the complement and correction refers to the task of finding and correcting deficiencies or problems in the article presented. GARYE-JIPRAM went a step further from reviewing and proving GARYE to supplement the deficient parts of GARYE and to correct the erroneous parts. The research trend of GARYE-JIPRAM on GARYE can confirm that GARYE-HOESUNG (家禮會成), published in China at a similar time, was aimed at thoroughly understanding and following GARYE, compared with a trend that reflected many of the rites of the Ming (明)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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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시대 종묘(宗廟)의 천신(薦新) 진상(進上)과 의절(儀節) ―'임토작공(任土作貢)'·'효(孝)'의 의미―

저자 : 신진혜 ( Shin Jean-hae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5-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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薦新은 계절에 새로 생산된 식물을 후손들이 먹기 전에 祠堂에 모셔진 조상들께 먼저 바침으로써 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례였다. 이는 사대부가나 왕실에서 모두 시행되었는데, 일반 사대부가에서는 천신으로 '효'를 가시화했다면, 왕실의 宗廟 薦新 의례는 '任土作貢'과 '孝'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각 지역의 토산물을 바친다는 '임토작공'의 뜻에 따라 백성들이 각 지역에서 進上ㆍ貢納의 형식으로 생산물을 바치면 이를 바탕으로 종묘의 천신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종묘 천신제도는 태종대부터 정비되어 『國朝五禮儀』에 수록되었다. 하지만 전례서에 지정된 종묘천신 외에도 文昭殿에 대한 천신이 별도로 존재하였고, 『국조오례의』에 지정되지 않은 물품이 천신되는 경우도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문소전이 소실된 후 그 천신물종이 종묘로 통합되고, 천신물품의 생산시기에 맞추어 봉진 시기를 재조정하면서 전체적인 천신월령이 재정리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동법의 시행으로 일부 현물봉진을 유지하면서도 상황에 따른 貿納과 代捧, 退捧을 정식화하였다.
종묘 천신의 陳設과 行禮가 시행되기 전까지의 과정에는 각도의 道臣과 백성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는 각 도에서 구하기 까다롭거나 운송이 어려운 천신물품까지 매년 진상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었다. 이를 알면서도 왕실에서 천신물종을 함부로 줄이거나 폐지하기 어려웠던 것은 先代에 정한 전례임은 물론 역대로 조선을 통치해왔던 선대왕께 효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동법의 시행과 여러 방법적 절충을 통해 백성들의 입장을 고려하려는 노력이 병행되면서 왕실의 천신은 지속되었다.


The Chunsin ceremony (薦新) which practiced by royal families and aristocrats was showed filial piety in Joseon dynasty. In this research, the people of Joseon prepared tribute, regional specialties especially foods, and the government and Royal families dedicated them to their ancestors in Royal Ancestral Shrine (宗廟). With the Chunsin ceremony, the aristocrat families expressed filial piety. However, in case of Royal families, not only expressed filial piety but also symbolized region of the country based on tribute.
The Royal families' Chunsin ceremony was prepared as tributes by the people and there was a lot of trouble with it. Some of Chunsin tributes, wild animals like swan (天鵝), were hard to prepare because it was rare to obtain in Joseon. In order to improve these kind of problems, the Deadong regulation (大同法) was implemented and government tried to resolve the grievances of the people. In principle, the Chunsin tributes (薦新進上) have to be offer as real items. But the Deadong regulation regulated the Chunsin tributes could be offer by items that bought (貿納), similar items (代捧), and postponed the tribute period (退捧). It was the government's consideration for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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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상복상(喪服商)」에 나타난 좌(髽)의 형태에 대한 고찰

저자 : 차서연 ( Cha Seo-yeo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5-10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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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부인이 喪禮에서 하는 首飾인 髽에 대한 茶山의 해석을 고찰하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산은 髽를 남자의 喪冠에 대응하는 요소로 간주한다. 남자가 喪冠을 쓰지 않을 수 없듯 부인이 髽를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儀禮』와 『家禮』를 세밀하게 고찰하여 髽의 고증과 복원에 힘썼다.
다산은 남자와 견주어 가벼움을 따르는 것이 부인의 상복을 제정하는 원칙이라고 천명한다. 남자가 삼으로 만든 머리끈만으로 括髮을 하는 데 비해, 부인이 베로 만든 머리끈과 비녀를 사용하여 髽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원칙 때문이다. 삼보다 덜 거친 베와 남자에게 없는 비녀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조금 더 문식하고 가벼움을 따르는 것이다.
다산은 『家禮』의 규정을 존숭하면서 고례인 『儀禮』와 주소에 대한 비판적 고증을 통해 髽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髽는 머리카락[髟]과 주저앉음[坐]으로 구성된 글자의 형태에서 알 수 있듯, 난쟁이[矬]거나 앉거나[坐], 또는 작은[小] 髻의 형태이다. 베로 만든 머리끈[布總]을 사용하여 髻를 만들고 이를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 비녀[笄]를 꽂을 뿐이다. 齊衰의 髽라면 둘레 8촌이고 높이 6촌 남짓이며 斬衰는 齊衰보다 낮고 작게 만들면 된다고 고증하였다.
부인의 喪禮 首飾인 髽에 대한 엄밀한 고증을 통해 그 구체적 치수까지 포함한 제도를 밝힌 것은 다산이 유일하다. 표면적으로는 부인이 상례에 하는 수식을 법도에 맞도록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 내면에는 상례에서 부인이 의식의 주체적인 수행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음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This paper aims to consider Dasan's interpretation of Gwa (髽), hair accessory [首飾] that a women wears in funeral rites and express it in pictures. Dasan regards Gwa as element corresponding to men's Sanggwan (喪冠). Like the man cannot help but use Sanggwan (喪冠), Women can not help but wear Gwa. So this paper considered 'Yili' (儀禮) and Family rituals (家禮) in detail for historical investigation and restoration of Gwa.
Dasan clarified that the principle of deciding women's mourning dress is following lightness compared to man. This is why compared to the men who does Gwalbal (括髮) only with the hair strap made with hemp, women wears Gwa (髽) with the hair strap made with hemp cloth and Binyeo (笄). Wife uses hemp cloth that is less rough than hemp and Binyeo that is not for men, in order to follow more rhetorical embellishment and lightness.
Dasan respected and worshipped the rules of Family rituals and presented the type of Gwa through critical research on Yili and comment. The Chinese character jwa (髽) consisted of hair (髟) and sitting (坐), it meant small topknot (小髻), dwarf topknot (矬髻), or sitting topknot (坐髻). She made Gwa with hair strap made with hemp cloth [布 總] and to fix it firmly, sticked a Binyeo in her hair. The historical evidence proved that in case of Jechoi (齊衰), the circumference of Gwa is 8 chon and the height of it 6 chon or so and in case of Chamchoi (斬衰), it should be made lower and smaller than Jechoi (齊衰).
Dasan was the only person who revealed the system including the specific dimensions through strict historical investigation on Gwa, women's hair accessory in funeral rites.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presented hair accessory that the women wore in funeral rites according to the customs. It also implies that the women came to have status as principal agent in funeral 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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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선본 『가례(家禮)』의 특징과 의의

저자 : 정현정 ( Chung Hyun-j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5-12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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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대전본 『가례』는 조선에서 『가례』 연구와 실천의 저본이었지만, 그대로 답습되지만은 않았다. 조선에서 간행된 『가례』로서 간행 시기와 지역을 파악할 수 있는 판본은 성리대전본, 가례대전본, 무술년본, 병오년본, 기묘운각본 등 5종이 확인된다. 이러한 판본들은 조선에서 『가례』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성리대전본 『가례』를 객관화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작업 또한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1726년[병오년] 함경감영에서 간행된 '병오년본'과 1759년[기묘년] 운각(芸閣)에서 무신자 활자본으로 간행된 '기묘운각본'은 여러 『가례』 판본들에 대한 비교 검토, 조선 시대 『가례』 연구의 적극적 반영, 그리고 문헌 고증을 통해 본문의 오탈자와 오류를 판정하고 교정 사항을 밝힌 난상(欄上) 두주(頭註)를 포함하고 있다. 병오년본과 기묘운각본은 조선본 『가례』 정립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판본으로서, 조선 시대 『가례』 연구 성과의 축적과 기존 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산출된, 조선 시대 『가례』 연구의 중요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The Family Rituals in the Great Compendium on Human Nature and Principle was the basic material of Family Rituals studies during the Joseon Dynasty, but the original text was constantly modified and revised. There are five different editions of Family Rituals published during the Joseon Dynasty that can identify the timing and region of publication, which show the improvement of the Great Compendium on Human Nature and Principle edition. In particular, the comments in the 1726 and 1759-Central Printing Office editions describe the errors and problems of the existing text of Family Rituals. These comments were written through the review of various editions of Family Rituals and the reflection of Joseon-era Family Rituals studies. The 1726 and 1759-Central Printing Office editions show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of standard text of Family Rituals, and are the important fruit of Family Rituals studies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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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후기 사례(四禮)의 전형 ―『사례편람(四禮便覽)』을 중심으로―

저자 : 김윤정 ( Kim Yun-j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9-16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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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편람』은 관혼상제의 실천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行禮書이다. 『사례편람』의 실용성은 체계적인 구성과 지침화된 예설을 통해 구현되었다. 먼저, 『사례편람』은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가례』의 「통례」를 재배치한 四禮 체제를 갖추었다. 행례를 위해 『가례』의 항목을 보완하거나 삭제하고 간략하게 수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용을 시도하였다. 또한 正文-本註-參考說-按說-諸具-書式의 구조로 『가례』를 재구성했다. 글자의 크기와 배치 및 單行ㆍ雙行 등의 구분을 통해 『가례』의 절차를 시각적으로 구조화시켰다. 세분화된 제구와 서식의 확충은 행례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식을 제공하였다.
또한 『사례편람』에서 제시된 定說은 行禮의 명확한 지침으로서, 실용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했다. 행례를 위해서는 서로 충돌하는 예설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재는 『상례비요』의 애매한 兩可論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예학적 고증과 판단에 따라 가부를 결정했다. 『가례』의 내용이 불명확한 易服 시 去冠이나 腰絰 散垂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했고, 『가례』에 언급되지 않은 변례인 竝有喪의 복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지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설들이 쉽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상례비요』와의 차이가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18세기에 『사례편람』은 논쟁적인 예서로 간주되었다. 19세기 중반 『사례편람』이 간행되고 홍직필로 대표되는 낙론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사례편람』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례편람』에 제시된 이재의 정설은 어느 하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16세기 이래 오랜 논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예설들이 축적되었던 만큼, 이에 대한 철저한 예학적 검토를 거쳐 도출된 결론이었다. 이재의 정설은 명확했지만, 역시 하나의 견해에 불과했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19세기에도 지속된 이러한 논쟁은 조선의 예학이 여전히 학문으로서의 활력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활력이 저하되고 예학 연구가 쇠퇴하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사례편람』은 조선시대 관혼상제의 전형으로 강한 대표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Sarepyeonram was the book for ritual practice created to be used in the practice of the four ceremonial occasions of coming of age, wedding, funeral, and ancestral rites. Practicality of Sarepyeonram was implemented through systematic composition and guided ritual theory. Sarepyeonram has the four rituals system that rearranges Family rituals's Rites in general. Sarepyeonram tried to change actively by supplementing or deleting the items of Family rituals and simply modifying them for practice. In addition, the new structure was reconstructed, and the procedure of Family rituals was visually structured through the distinction of the size and arrangement of the letters. The expansion of the detailed preparations and forms provided specific knowledge necessary for practice.
The established theory presented in Sarepyeonram was a clear guide to practice, and played a role in enhancing practicality. For practice, one of the conflicting theories had to be selected. Lee Jae criticized vague claim that both sides were right of Sangrebiyo, and decided on his academic testament and judgment. As the difference with Sangrebiyo became the subject of criticism, in the 18th century Sarepyeonram was considered a controversial Ritual book. It could be seen that the influence of Sarepyeonram expanded, with the publication of Sarepyeonram in the mid-19th century and the support of nak school scholar as Hong Jikpil.
Practicality of the book for ritual practice lies in simplicity, but Lee Jae's theory presented in Sarepyeonram was not a simple matter. Since the 16th century, various theories have been accumulated through long debates, and it was a conclusion derived through thorough exemplification review. His theory was clear, but it was also a view and was the subject of debate. This debate, which continued in the 19th century, means that it still had the vitality of learning. As this vitality deteriorated and academic research declined in the 20th century, Sarepyeonram would have the strong representative as the epitome of rituals in the Chos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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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충절과 정절의 정치학 ―조선후기 절(節) 담론의 전개 양상―

저자 : 이숙인 ( Lee Sook-i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5-19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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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이후 사회통합의 이름으로 제기된 충절과 정절의 담론을 두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분석했다. 먼저 전란 시 강화도에서 화약고의 폭발로 죽은 김상용(1560-1638)이 충절지사(忠節之士)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사건 직후 사고사(事故死)로 보고된 그의 죽음이 사절(死節)로 결정되는 과정에는 특정 집단의 정치권력이 개입되었음을 주장했다. 특히 어떻게 죽든 죽음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충절 개념과 충신의 후손에게 주어지는 정치·경제상의 특혜 등은 죽음을 과도하게 의미화하는 요인이라고 보았다. 이에 김상용 사절론이 안고 있는 논리적 오류를 드러내면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했을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김상용의 '자결'에 사용된 화약고의 군사적 의미를 따지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죽음이 사절(死節)이라면 곁에 있다가 의도하지 않게 죽은 수많은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다음은 청군(淸軍)의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속환녀(贖還女)를 둘러싼 담론에 주목했다. 당시 쟁점이 된 것은 속환 부녀와의 이혼 문제인데, 적에게 끌려갔던 여자에게 조상 제사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전란의 피해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이런 방식의 주장은 여성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적에 대항하여 자결한 여성은 열녀가 되는 한편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여성은 죄인이 되는 상황이었다. 환향녀 보호를 강조하는 국가 정책에 반발하며 그녀들을 정절을 잃은 부녀로 공식화한 정치 집단에 주목하여 김상용 충절론과의 연계성을 밝혔다. 충절과 정절이 병자호란이라는 구체적인 사건과 만나 어떻게 구현되고 해석되는가를 통해 정치권력과 젠더권력이 빚어낸 조선후기 사상의 특성과 한계를 논의했다.


This paper analyzes a discourse on doctrines of 'loyalty' (忠節) and 'chastity' (貞節), which was emphasized for the social integration after Byungjahoran on the basis of two particular events in the history of Joseon
dynasty in the 17th century. Firs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death of Kim, Sang-young (1560-1638), who died by an accidental explosion at a powder magazine in Kang-Hwa island. Although the case was initially reported as accidental death, his family and people have fabricated the cause to make it looks a righteous death to keep his fidelity for his country against the Manchu invasion. By their untruthful report, Kim became known as a loyalist who wanted to show the pride of his country with the virtuous suicide. Since descendants whose ancestor gave up his life for the country could have advantages which would bring them political (as well as economical) benefits, it seems reasonable to assume that they fabricated the cause of his accident to occupy the advantageous social position.
Second, this paper also investigates the issue of the “returned captive women”. During the Manchu invasion, the troops of Qing have kidnapped many women of Chosen and have brought them to the land of Manchu. After the war, many of the women returned to their homeland. At that time, a number of their husbands asked for a divorce because of doubt of her sexual fidelity. These instances show us that many of the patriarchal men and families attempted to shift the blame on to the women who were the war sufferers, whereas the national policy was to protect them. In this context, it is noteworthy that the patriarchal men or families shared a common political agenda with the group of people who fabricated the cause of the death of Kim Sang-young for their political benefits.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the doctrines of loyalty and chastity are similar psychological phenomenon which share the same roots. As the conclusion, this paper proposes that the similarity between the two doctrines, loyalty and chastity, would be understood as a political characteristic of later Chose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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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후기 『충훈부등록(忠勳府謄錄)』의 자료적 검토

저자 : 고민정 ( Ko Min-j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7-23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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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공신을 우대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된 충훈부에서 편찬한 『충훈부등록』의 구성 및 체제, 주요 내용 등을 고찰하여 향후 공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충훈부등록』은 충훈부가 업무상의 필요에 따라 내부에서 주로 활용하기 위해 작성한 기록으로 유일본 자료이다. 조선 초기 충훈부가 설립된 이래로 조선 말기 기공국으로의 개편이 있기 전까지 계속해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1609년(광해 9)부터 1890년(고종 27)까지 229년간의 기록이 남아있으며 전체 분량은 39책 6,568면이다.
이 책의 구성은 대체로 연월일의 순서에 따라 편차되었으나 충익부의 개편과 관련된 내용, 충익위의 모속 및 분간에 관한 내용, 적몰 재산의 처리에 관한 내용 등과 같이 특별한 사안이 생겼을 때에는 각 주제별로 하나의 책을 편차하기도 하였다. 즉 『충훈부등록』은 원칙적으로 연월일을 기준으로 편차되었지만, 부분적으로는 특정 주제 또는 사건별로 모아 편차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방대하여 모든 내용을 한꺼번에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충훈부의 역할 및 기능과 관련시켜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는 공신과 공신 자손의 자격 유지 및 변동에 관한 것, 둘째는 공신과 공신자손의 우대에 관한 것, 셋째는 왕실 의례에 관련된 것, 넷째는 충훈부의 운영에 관한 것 등이다. 이는 여타의 관찬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해당 내용을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공신 관련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tried to help next studies related to meritorious retainers by review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data of the Registration of the Office of Merit Subjects written by the Office of Merit Subjects.
The Registration of the Office of Merit Subjects is the records of 229 years from 17th to 19th centuries and 39 books and 6,568 pages remained now. The books are usually composed in order of Year, Month, and Days. However, if there are particular issues, the books are edited by collecting them by applicable subject. The transfer of the Office of the Original Meritorious Retainers and disputes of property possessed by the Office of Merit Subjects are those examples.
The contents of the Registration of the Office of Merit Subjects were classified into 4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First, it's about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ir descendants'qualification. Second, it's about meritorious retainers and their preferential treatment. Third, it's about royal protocols. And fourth, it's about operation of the Office of Merit Subjects. However, in addition, because the various contents related to meritorious retainers were recorded, reference of this book is necessary to study meritorious retainers in the later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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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오옥기담(五玉奇談)』의 애정전기소설 양식적 규정과 20세기 초 애정전기소설사의 향방

저자 : 권도경 ( Kwon Do-kyung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1-27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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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선행연구사에서 18ㆍ9세기까지 지속된 역사적 양식으로 논의되어온 애정전기소설이 20세기 초엽의 시대사적 변화에 조응하는 가운데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서사적 전변과 시대의식을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오옥기담』 소재 <금잠가연>ㆍ<변씨열행>ㆍ<선분기담>ㆍ<취란방기>ㆍ<청루의녀>가 단순한 복고적 주제와 구투의 문체로 된 신소설 혹은 다섯 편의 계몽적 단편국문고소설을 묶은 편집본이 아니라 애정전기소설의 양식적 전통 속에서 개화기라는 20세기 초엽의 국가적 이슈에 서사적으로 대응해나가고자 한 애정전기소설사의 주체적인 전변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애정전기소설사가 18ㆍ9세기 이후에도 시대적 변화에 대한 허구적인 응전이라는 문학적 소명에 부응하고자 하는 흐름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본 연구의 목적은 구체적으로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에서 실현되었다. 첫 번째는 『오옥기담』 소재 <금잠가연>ㆍ<변씨열행>ㆍ<선분기담>ㆍ<취란방기>ㆍ<청루의녀>의 애정전기소설 양식적 규정이다. 『오옥기담』 소재 다섯 편 텍스트가 애정전기소설의 보편적인 양식에 부합하는 작품이면서도 이전 시기 애정전기소설 텍스트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수성을 구현한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오옥기담』 소재 다섯 편 텍스트의 애정전기소설 양식적 특수성이 지니는 애정전기소설 통시사적인 의미를 규명하였다.
두 번째는 『오옥기담』 소재 다섯 편 텍스트에서 도출해낸 애정전기소설 양식적 미학의 전변 국면이 지니는 시대사적 의의이다. 『오옥기담』 소재 다섯 편의 텍스트들에서 도출한 애정전기소설 양식적 전변 국면이 20세기 초엽의 변화된 시대의식 및 환경세계와의 조응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즉, 『오옥기담』이 <금잠가연>ㆍ<변씨열행>ㆍ<선분기담>ㆍ<취란방기>ㆍ<청루의녀>라는 다섯 편의 텍스트를 특별히 선택하여 편집한 데에는 편집자의 특별한 편집의도가 내재해 있다고 할수 있는 바, 『오옥기담』 편집자의 편집의도를 20세기 초엽의 시대의식 및 시대배경속에서 규명해낼 수 있었다.


This paper intended to investigate that the love romance was continued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in the accordance with the epochal change of the early 20th century. Until now, the early 20th century's love romance hasn't be studied. The history of research on the love romance was ended in the 18ㆍ19th, til recently. This study realized the aim of this paper through the narrative change and the consciousness of the times.
The contents of this study is largely classified to two parts. The first part is that O-ok-ki-dam is not the new-style novel of the retro theme and the old-fashioned style or the edited version of the five enlightening-korean short classical novel, but the results of the love romance history's subjective change to intend to narratively agree with the early 20th century's epochal issue, in the stylistic tradition of the love romance. The second part is that the love romance history still carried the flow to agree with the literary calling of fictional concordance to the changes of the times since the 18ㆍ19th.

KCI등재

9죄악과의 전쟁 ―초기 한국 구세군의 금주 담론을 중심으로―

저자 : 이유나 ( Lee You-na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3-291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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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초기 구세군의 금주 담론을 『구세신문』 등의 내용을 분석하여 확인하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 절제운동의 흐름 속에서 구세군을 파악하는 선행연구들의 경향과 달리, 구세군사를 중심으로 그 논의를 전개하고자 하였다. 우선 구세군 출현 당시 영국의 상황을 살피고 금주가 왜 주요한 규율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후 한국에 정착한 구세군의 활동을 파악하기 위해서 1909년 발행된 『구세신문』 금주호의 특징을 밝혔다. 금주를 상징하는 명확한 삽화와 주요한 성경구절 그리고 금주가 등을 통해서 구세군은 스스로의 종교성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또한 이는 당시 개신교 금주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paper aims to confirm the activities of the early Korean Salvation Army by analyzing the contents of Salvation Newspaper. Unlike the tendency of previous studies to identify the Salvation Army in the flow of temperance movement in Korean Protestantism, the discussion is focused on the Salvation Army's History. First, we look at the situation in England at the time of the emergence of the Salvation Army and look at why abstinence became a major discipline. In order to understand the activities of the Salvation Army who settled in Korea, it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Geumjuho, especially among the discourses of the Salvation Newspaper published in 1909. Through symbolic illustrations, major Bible verses, and Geumju Song, the Salvation Army showed strong religious characters. It can also be confirmed that this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temperance movement at that time.

KCI등재

10한국학의 근대성 고찰

저자 : 이지원 ( Lee Ji-won )

발행기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간행물 : 민족문화연구 8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3-32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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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탄생은 세계 속에서 타자와의 관계가 국민국가나 민족단위로 설명하는 근대의 속성에서 비롯되었다. 이 글은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를 한국학의 성립기로 보고, 한국학 성립에 작동한 근대성(modernity)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한국학의 근대성을 3가지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첫째는 동아시아적 근대 문화정체성 만들기이다. 둘째는 세계 근대 학술사에서 자국학(National Studies) 탄생의 보편성이다. 셋째는 식민주의와 그에 대한 사상적ㆍ실천적 대응이다.
19세기 이래 동아시아는 서양이 주도한 세계체제에 의해 타자화되었다. 한국은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서구적 근대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시아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국민국가와 근대 주체를 만들고자 했다. 이때 동아시아 3국은 '國粹'라는 번역어를 공유하며 근대 국가ㆍ국민의 문화정체성을 만드는 지적 연동성을 보여줬다. 한국학은 세계사적ㆍ동아시아적 공통점과 연동되어 한국근대사의 실천적ㆍ사상적 특징을 발휘하며 탄생했다. 한국학의 형성을 동아시아와의 연동으로 파악하는 것은 세계사적ㆍ동아시아적 프레임으로 한국학의 위상을 설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국학은 세계 근대 학술사에서 자국학(National Studies) 탄생의 보편성을 갖는다. 근대 국민ㆍ국가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전통을 '창출(invention)'하고, 국사ㆍ국어 등 '자국문화(national culture)'를 체계화하는 것은 근대 민족(국민)주의 시대 학술사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한국에서 근대 국민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만들기의 시도는 일제 강점 이전 국어, 국사 등 자국학의 모색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은 독립된 국민 국가 지향의 문화정체성 만들기였다.
1910년 이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 제국 지역(Japanese Imperial Area)의 일부가 되어 식민지적 강제와 규정을 받는 글로벌화가 진행되었다. 식민과 반식민의 한국연구가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나의 기표에 여러 기의가 사용되기도 하고, '조선학' '조선전통'과 관련한 기표들이 다양한 기의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일제시기 사상적ㆍ실천적 경향과 연계하여 '조선학'의 세분화ㆍ입체화가 필요하다. 그렇게함으로써, 식민지시기를 거치며 변화 발전한 한국학의 근대 한국 학술사의 내용과 학문적 체계화가 풍부해 질 것이다.


The origin of Korean studies originated from the modern attribute of the recognition and explanation of nations and ethnic units in relation to others in the world. This article attempts to understand Korean studies as a product of modernity and to examine its modernity. Here, I would like to think about the modernity of Korean Studies from three perspectives. The first is the linkage of making East Asian modern cultural identity. Second is the universality of the birth of National Studies in the world's modern academic history. Third is colonialism and ideological and practical concerns about it.
Since the 19th century, East Asia has been battered by a Western-led world system. Korea, like other East Asian countries, tried to create a nation-state and a modern subject who did not give up its Asian identity while accepting Western modernization as the trend. At this time, the three East Asian countries shared the translation of '國粹' and showed the intellectual linkage that creates the cultural identity of modern nations and peoples. Modern Korean Studies was born with the practical and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Korean modern history in connection with such common historical and East Asian commonalities. Understanding the formation of modern Korean studies as the linkage of East Asia will be the starting point for establishing the status of modern Korean studies as a world historical and East Asian frame.
Since 1910, Korea has become a colony of Japan, becoming part of the Japanese Imperial Area and undergoing globalization under colonial coercion and regulation. Colonial and anti-colonial Korean studies have been in competition. Several signifier are used in a single signifiant, and signifiant related to 'Chosun Studies' and 'Korean tradition' are used for various signifier. Considering these points, grasp of meaning needs to be subdivided and solidified. Only then will the contents and academic systemization of modern Korean academic history of Korean Studies change and develop through the colonial period. This is also related to the progress of Korean studies in restoring various modern subjects. Just as cultural diversity and identity should be applied normatively as a basis for human coexistence in the era of globalization, modern Korean studies needs to be extended to reveal the identity of various modern subjects. This is a perspective and methodology in which modern Korean studies aims at modern and opens up the possibility of overcoming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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