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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NG GOOK SA HAK

  •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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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5-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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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3권0호(1955)~66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700
동국사학
66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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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20세기 감로도의 특징과 의미 - 양주 청련사 <감로도>(1880년)를 중심으로 -

저자 : 유경희 ( Ryu Kyung-hee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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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0세기 감로도의 특징과 의의를 구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400여 년간 꾸준하게 제작된 조선시대 감로도는 70여 점 현재 전하고 있다. 감로도는 구성상 정형을 견지하면서도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도상을 보이며 전개되었다. 각 시기마다 변화를 보이는 것은 당대의 의식집, 발원자, 지역적 특징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1880년에 조성된 청련사 <감로도>를 중심으로 19세기부터 20세기 감로도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19세기 감로도는 1868년 수락산 흥국사 <감로도>를 기준으로 이전 시기 감로도와 뚜렷히 변화한 특징을 보인다. 상단에는 의식에 降臨한 듯한 정면을 응시하는 칠여래가 있고, 중단에는 의식장면이 확대되면서 시식단 앞에서 펼치는 作法(불교무용)과 梵唄(불교음악)가 비중을 차지한다. 의식을 준비하는 승려들의 모습, 대형기물들의 등장, 밤에 개최되지 않고 낮에 진행되는 의식과 관람자도 해당된다. 하단에는 전쟁장면 등은 축소되고 풍속적 요소가 비중을 차지한다. 흥국사 <감로도>는 19세기 감로도의 모본과 같이 정형화되고 이후 제작되는 감로도의 도상에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감로도 중에서 청련사 <감로도>(1880년)는 중단의 도상에서 더욱 더 뚜렷한 양상을 보인다. 범패와 작법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감로도에 비해서 독립적이고 인물들의 복식에 있어서도 차별적이다. 표현 기법상 부처의 광배나 시식단 위에 올린 殿牌를 표현한 금박기법, 금박기법을 사용한 길상문 등을 그린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감로도를 조성한 近畿지역의 명망있는 화승이었던 혜과 봉간과 고산 축연의 주도적인 화풍과 상궁을 주도로 하는 시주자의 후원을 근거로 추론하였다. 청련사 <감로도>를 비롯한 이 시기에 왕실관련 사찰에서 조성되었던 감로도에는 궁중장식화로부터 수용된 모티프가 도상화되고, 왕실관련 인사들을 축원하는 전패가 시식단위에 올린 모습으로 그려진다. 시식단 위로 비로자나삼신불번이 휘날리는데, 이는 당시의 거행되던 불교사상과 의식이 집약된 것이다.
한성부 왕십리의 청련사에 봉안되었던 <감로도>(1880년)는 19세기 불교의식과 후원자, 왕실원당이라는 봉안처의 특징을 뚜렷이 보이는 불화로 19~20세기 감로도를 대표할 수 있다. 한성부와 경기지역에서 조성되었던 이 시기 감로도는 왕실의 기도처라는 원당과 후원자, 당대의 의식집과 지역적 특징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당대 불교의 산물이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significance and characteristics of gamrodo (nectar ritual painting) from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About seventy of nectar rituals paintings produced from the sixteenth to the early twentieth century during the Joseon Dynasty are extant today. While these paintings continued to achieve conventional compositions, their iconographies changed over time. Such iconographical changes seem to have resulted from ritual manuals, patrons, and regional characteristics. This article analyzes distinct features of nectar ritual paintings from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by focusing on the Gamrodo produced in 1880 at Cheongnyeonsa Temple.
The nineteenth-century nectar ritual paintings created after the production of gamrodo in 1868 at Heungguksa Temple in the Suraksan Mountain are considerably different from earlier examples. The upper section of the Heungguksa gamrodo depicts the seven Buddhas looking straight ahead as if they have just descended to attend a ritual. The middle section illustrates more detailed scenes of the ritual, including Buddhist ritual dancers and musicians performing in front of the food-bestowal altar. It also includes monks preparing for the ritual held during the daytime, large-scale ritual objects, and spectators. The lower sections illustrate genre paintings. This Heungguksa gamrodo served as a standardized model for other nineteenth-century gamrodo and iconographically exerted a substantial influence on them. Among the nineteenth-century nectar ritual paintings, the gamrodo (1880) at Cheongnyeonsa presents distinctive iconographical elements in its middle section. Compared to the middle sections of other nectar ritual paintings, the mid part of the Cheongnyeonsa gamrodo emphasizes the scenes of performing Buddhist ritual dance and music. The figures are also wearing rather distinct garments. Moreover, the Cheongnyeonsa gamrodo employs decorative techniques, as shown in the use of gold leaves in mandorlas of the Buddhas, Buddhist memorial tablets on the food-bestowal altar, and auspicious patterns. These characteristics of the Cheongnyeonsa gamrodo were formed by the dominant painting style of Hyegwa Bonggan and Gosan Chukyeon, the prominent monk-painters who worked near Seoul, and by the sponsorship of commissioners led by court ladies. The nectar ritual paintings, including the Cheongnyeonsa gamrodo, produced at temples related to Joseon royal court around this time, embrace the motifs of decorative paintings of the Joseon royal court. In these paintings, Buddhist memorial tablets of Joseon court-related figures are placed on top of the food-bestowal altar. The banners of the Vairocana Buddha Triad are hanging over the altar as the symbol of Buddhist s and rituals.
The gamrodo enshrined at Cheongnyeonsa Temple in Wangsip-ri of Hanseong-bu (present-day Seoul) in 1880 represents the nectar ritual paintings from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incorporating characteristics of the commissioners, the enshrinement in royal temples, and Buddhist rituals of the nine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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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의 범맥과 예술적 세계

저자 : 윤소희 ( Yoon So-hee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5-7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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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왕실 비보를 위한 많은 재의식을 해 왔던 왕십리 안정사(청련사)는 도시 개발로 인하여 양주시 개명산 자락의 넓은 도량으로 옮겨와 의례 전승의 새로운 활기를 펼치고 있다. 경산제 범맥 중에 동교 계열이었던 안정사의 범맥은 해능스님(1892~1979)으로부터 현재 청련사의 원로 해경, 지홍스님, 중진 벽산, 심곡스님, 어장 상진스님으로 이어지고 있어 전통 계승의 기반이 확실하다.
청련사예수재는 바깥채비인 짓소리·홑소리, 안채비의 다양한 율조가 수반된다. 이러한 의례 율조 중 특히 부각되는 것은 한국의 조사들에 의해 쓰여진 의문을 한국적 선율로 짓는 향풍범패이다. 방대한 설단의 수륙재나 영산작법의 장엄한 범패가 중심이 되는 영산재와 달리 예수재는 한국화된 재의식으로 재자 자신을 위한 정토발원과 성취를 위한 범패가 중요하다. 청련사 어장 상진스님은 편안하고 원만한 성음을 지니고 있어 장엄염불과 축원 화청, 회심곡 등의 향풍 범패와 특히 잘 어울린다. 향풍 범패로 분류되는 이들 율조는 일자일음의 장단 절주여서 대중과의 소통이 쉽고, 한국전통음악과의 관련성에도 중요한 연구 분야이다.
청련사예수재 악사들의 음악을 지휘하는 위재영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로써 벽응스님, 상진스님으로 이어지는 호적가락을 전수 받아 제자들과 함께 예수재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 범패와 작법무, 법구 타주까지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에 수반되는 모든 재원은 자체적 교육기관인 안정불교대학을 통하여 양성된다. 의례 전반에 걸쳐 강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전승 기반의 확립 뿐 아니라 의례 악가무의 완성도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Anjeong(Cheongyeon) temple in Wangsimli, Seoul, which was an assistant temple of the royal Josun court, has long carried out rituals and prayer services for the wellbeing of both royal and ordinary people. When the wangsimli area was urbanized, the temple was relocated to the foot of Gaemyeong mountain in Yangju-si, Gyeonggi-province, near Seoul. Thereafter, the temple became an expanded seminary for Buddhist rituals. Ritual performances retained greater fealty to tradition, being held in apter conditions for passing down. The chanting master Ven Sangjin passed on the tradition of the later lineage of the Anjeong temple, training and educating his disciples.
The special point in the Yesujae ritual, during which prayers are offered seeking the accession to heaven of Cheongyeon temple members, is the Hyangpung Beompae, Korean native style Buddhist chants. The text of the chants were written by a venerated Korean priest, and whilst the melody is syllabic, the rhythm is of a traditional Korean rhythmic pattern, unlike the Dangpung Beompae with its Chinese melisma melody. The chanting master Ven Sangjin of Cheongnyeonsa is especially renowned for Hyangpung Beompae, such as the Jangeom Yeombul, Chukwon Hoacheong, and Hoisimgok. His speciality appeals because the chants are popular to Korean Buddhists. Recalling his mentor master's words, that the Hangpung Beompae has been transmitted by word of mouth from the Silla Dynasty, thus making it an intrinsic Korean Buddhist song, he has trained in it constantly.
Ven Sangjin also learned the Korean trumpet, the Hojeok, from Ven Byeokeung (the 50th cultural asset of the National intangible heritage) and then passed it down to musician Wijaeyeong, head of the band of Cheongyeon temple. All members who sing, recite, dance, or play musical instruments are trained through the Anjeong Buddhist Art Institute, established in Cheongyeon temple. It is very important as a basic point of agreement that training, education, and succession make near perfect the ritual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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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의 의례주체와 설행양상

저자 : 구미래 ( Koo Mee-rae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1-12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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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사에서 전승되는 예수재를 민속학적 관점에서 살펴 네 가지 양상으로 분석하였다. 첫째, 청련사는 조선시대에 '동청련 서백련'의 양대 열반계 사찰로 지정되어 현세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의미가 두드러진 역사를 지녔다. 아울러 1960년대부터 예수재를 치른 유형·무형의 자료가 전하여 의례의 신앙적 기반과 전승내력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예수재의 핵심기반인 범패와 작법무와 장엄을 사중에서 온전히 감당하며 전승해왔다는 점이다. 어산과 장엄을 담당하는 승려가 절대부족인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여러 세대의 승려들이 대물림으로 이어오는 가운데 독자적인 용상방을 구성할 수 있었다.
셋째, 중양절예수재와 윤달예수재뿐만 아니라, 재자 단독으로 주관하는 독설판예수재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합동과 독설판의 예수재를 칠칠재로 행하고 있어, 망자를 위한 우란분재·사십구재의 칠칠재와 대귀를 이루며 생전의 수행정진을 이끌고 있다. 또한 위패를 봉안하는 법당에는 망자위패와 나란히 생자위패를 모시면서 '자행과 타행', '생전과 사후'를 연계하는 패러다임의 신앙양상을 보여준다.
넷째, 의례의 여러 구성요소에서 서울·경기 지역의 특성을 살필 수 있고, 산화락번·시주번·총명지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장엄과 의례요소들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장엄이 다양하게 발달되고 시주를 부각시키는 시주번을 중시하는 점, 문서로 작성하는 요소가 활성화되어 있는 점, 상단에 각상의 소반을 사용하는 점 등에서 왕실과 지배층의 재를 많이 치러온 역사와 연관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The Yesujae(預修齋) which has been passed down in the Cheongryeon Temple, was analyzed in four aspects from a folklore perspective.
First, the Cheongryeon Temple was designated as the two main Nirvana system(涅槃系) temples of '東靑蓮 西白蓮'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it has a remarkable history of thinking about death in the mundane world. In addition, because the tangible and intangible data of the Yesujae(預修齋) since the 1960s can be delivered, it was able to identify the religious basis and history of the rite.
Second, the core bases of the Yesujae(預修齋), Beompae(梵唄), Jakbeopmu(作法舞), and Jangeom(莊嚴), have been performed and handed down in the temple. In the reality of Korean Buddhism, where there is an absolute shortage of monks in charge of the chanting master and Jangeom(莊嚴), through generations of monks coming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was possible to organize its own Yongsangbang(龍象榜).
Third, not only the Yesujae(預修齋) of Double Ninth Festival(重陽節) and the Yesujae(預修齋) of leap month, but also the Yesujae(預修齋) of independence, which are administered exclusively by Jaeja(齋者), is active. Such a joint and the Yesujae(預修齋) of independence have been performed as Chilchiljae(七七齋), leading the way to the religious purification of a lifetime by forming Funeral Ceremonies along with Chilchiljae(七七齋) of Uranbunjae(盂蘭盆齋)·49Jae(四十九齋) for the deceased. In addition, in the Buddhist sanctuary, where the memorial tablet is enshrined, the memorial tablet for a living person is served alongside the memorial tablet for the deceased. This shows the faith aspect of the paradigm of connecting lifetime and afterlife.
Fourth, several components of the rite show the characteristics of Seoul and Gyeonggi Province. Jangeom(莊嚴) and the ceremonial elements, which are rarely seen elsewhere are being transferred. One can guess the connection with a long history of ritualistic conduct for the royal family and the ruling class, such as the importance of Shijubun(施主幡), which emphasizes the development of various Jangeom(莊嚴), the point where the elements to be created by the documents is activated, and the point that uses small dining table as each floor in Sangdan(上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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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예수재의 의문 구성과 의례 설행의 특성 -의문 자료와 청련사 예수재를 중심으로-

저자 : 이성운 ( Lee Seong-woon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7-16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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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중생을 구제하는 다양한 방법이 방편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중 예수재는 사후에 다른 이들이 망자를 위해 시설하는 칠칠재(사십구재)를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직접 닦는 의례이다. 이 글은 예수재 의문의 구성과 설행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첫째 예수재의 의례가 성립된 것은 일반적인 시왕 신앙이나 예수 신앙의 측면이 아니라, 의문의 명칭에서 확인되듯이 수륙재 찬요(중례문)의 명부 시왕을 중심으로 한 수륙재의 형태로 16세기 초반 국내에서 성립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둘째 예수재 의문은 천신의 공양이 중심이며, 소청과 예경의 차서와 위격의 변화가 일어나며, 의문과 달리 의식 설행은 현실적인 형편에 따라 설행되며, 화청으로 의례의 재설이 일어나고 있고, 금강경이 염송된다는 것이다. 셋째 의례 설행의 특성에 대해서는 양주 청련사 예수재 의문과 의례를 바탕으로 하였는데, 이는 다시 의문과 설행의 측면으로 나눠 분석하면, 의문의 측면으로는 어산 상진의 범패 계통이 드러나고, 현실적인 요소와 의문의 권위가 동시 반영되고 있고, 예의와 의례의 형식이 중시되고 있으며, 설행의 측면으로는 청련사라는 단일 사찰의 상주 승려들이 다 함께 의례에 참여한다는 것, 탁월한 능력을 가진 범패 어장 상진이 주도한다는 것, 사찰 당우와 중정(中庭)이 최대한 활용되고 있다는 특성을 찾을 수 있다


Buddhism has a variety of ways to relieve mankind, so-called expedient, one of which, Yesujae (預修齋) is a kind of Chilchiljae(七七齋, the weekly ritual for seven weeks). People perform Chilchiljae in order to pray for the deceased to be reborn in Buddha's land while Yesujae is the ritual that one performs for oneself during life.
This writing considers the characteristic of the ritual program and performance of Yesujae. Initially, It is demonstrated that Yesujae was established as the form of Suryukjae(水陸齋, the offering ritual for land and water) in the early 16th century, revolving around the ten kings of hell in Chanyo(纂要, the compilation of the gist) of Suryukjae, far from general belief of the ten kings or that of Yesu.
Later the ritual oration(儀文) changes and becomes an offering to the aheavenly gods while Socheong(召請, invitation) and Yegyeong(禮敬, worship) undergo the change in their order and hierarchy. The ritual performance is practiced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unlike the ritual oration and rebuild into Hwachung(和請, Buddhist gospel song). Also, The Diamond Sutra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utra) is recited.
The ritual oration and performance of Yesujae at Cheongnyeonsa is mainly examined on their characteristic. As for the characteristic of the ritual oration, the line of Eosan (the monks or nuns singing a Buddhist ritual song) Sangjin's Beompae(梵唄, the Buddhist music) is identified and both the element of reality and authentic ritual oration are reflected. Emphasis is placed upon the proprieties and formality. As a feature of its ritual performance, all monks resident in Cheongnyeonsa together take part in the ritual while the head Esan Sangjin of exceptional ability of Beompae is in control of the ritual. The ritual also takes full advantage of all the buildings and the courtyard at the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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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양주 청련사(靑蓮寺)의 예수재(豫修齋)와 조선후기 명부전 도상

저자 : 유근자 ( Yoo Geun-ja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7-226 (6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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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前預修齋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의례가 함축된 형태로 산 자의 預修信仰과 죽은 자의 薦度信仰이 결합된 것이다. 양주 청련사는 생전예수재 의식을 승려들의 교육을 통해 현재까지도 전승해 오고 있는 사찰이다. 본 논문은 무형문화로서 예수재 의식을 현재까지 계승해 오고 있는 청련사의 예수재 設行 전통을 예수재와 깊은 연관이 있는 冥府殿 존상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양주 청련사에 현존하는 예수재와 관련된 유물로는 17세기에 조성된 석조지장보살상, 1765년 약사전에서 간행된 『지장경언해』, 188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장시왕도 등이 있다. 청련사 명부전의 지장보살상이 조성된 17세기는 천도재 및 예수재와 관련된 지장삼존상·시왕상·명부 권속 등이 봉안된 명부전의 건립과 존상의 조성이 활발하던 시대였다. 즉 지옥의 중생 구제와 관련된 지장신앙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十王이 관련된 명부신앙에 관한 미술이 유행했던 것이 다.
양주 청련사에서 설행된 예수재와 관련해서 가장 주목할만한 자료는 예수재 소의경전 가운데 하나인 1765년에 간행된 『지장경언해』이다. 이 경전 간행에도 참여한 涵月堂 海源(1691~1770)은 예수재와 관련된 「預修齋䟽」를 남기고 있다. 또한 지장경 언해본 간행에 조선 후기 새로운 시주층이었던 居士들이 당대 고승들과 함께 동참하고 있는데 이들은 18세기 청련사의 예수재 설행에도 참여했을 것으로 여겨져 주목된다.


The Saengjeon-Yesu-jae(生前預修齋) is a Buddhist ritual for both the living and the dead. It was established by combining two rituals, the Yesu-jae(預修齋) for the living and the Cheondo-jae(薦度齋) for the deceased. Cheongryeonsa Temple in Yangju is a temple that has been continuing the Saengjeon-Yesu-jae ritual to the present day through the education of the buddhist monks. In this study, the tradition of practicing Yesu-jae ritual in Cheongryeonsa Temple as an intangible culture was examined by focusing on the Buddhist Images, enshrined in Myungbu-jeon Hall, closely related to Yesu-jae.
Cheongryeonsa Temple has relics related to Yesu-jae such as Stone Statue of Ksitigarbha Bodhisattva believed to be made in the 17th century, buddhist sutra Jijangbosal Bonwongyeong Eonhae (Ksitigarbha Bodhisattva Sutra annotated in Hangul) printed at the Yaksa-jeon Hall of this temple in 1765, and Painting of Ksitigarbha Bodhisattva and Ten Underworld Kings believed to be painted in 1880.
The 17th century, when the Stone Statue of Ksitigarbha Bodhisattva of Cheongryeonsa Temple was made, was an era of active construction of Myungbujeon Hall and the production of Buddhist statues related to Yesu-jae, such as Statues of Ksitigarbha Bodhisattva Triad [Ksitigarbha Bodhisattva, Domyung, and Mudokgwi] and Ten Underworld Kings. The art about the faith in Ksitigarbha Bodhisattva who saves the spirits of the deceased from hell and art related to the faith in Ten Underworld Kings were popular in this period.
The most notable relics related to the Yesu-jae ritual performed in Cheongryeonsa Temple is Jijangbosal Bonwongyeong Eonhae. The monk Haewon (海源; 1691~1770) who participated in the publication of this sutra also wrote Yesu-jae-so(預修齋䟽) related to Yesu-jae. In addition, the Geosa(居士) who appeared on the records as new class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played active roles in donating to the temple, were participating in the publication of the sutra together with famous monks. It is noteworthy that they are considered to have participated in the practicing Yesu-jae ritual of Cheongryeonsa Temple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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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당(唐) 초기(初期) 서역(西域) 기미부주(羈縻府州)의 지역적 고찰

저자 : 이진선 ( Lee Jin-sun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7-26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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羈縻府州는 내부하거나 정복한 이민족을 부락별로 나누어 都督府·州 등을 설치해 各級 수장을 都督과 刺史로 삼아 세습하게 하고, 그 고유한 풍속을 유지하게 한 제도이다. 이는 당조가 이민족을 관리하는 방식의 하나로 기미부주 제도의 전형적인 모습이 唐 前期에 보인다. 西域에 설치된 기미부주는 당조와 주변 세력간의 관계에 따라 설치와 폐지가 반복되었고, 그 기미 방식 역시 변화하였다.
『舊唐書』와 『新唐書』 地理志, 『唐會要』 安西都護府 조에는 서역에 설치된 기미부주가 열거되어 있다. 첫째는 타림분지에 설치된 龜茲, 毗沙, 疏勒, 焉耆 네 개의 都督府·州이다. 둘째는 吐火羅 일대에 설치된 16都督府, 80州, 110縣, 126軍府이다. 또 『신당서』 西域傳 등에는 현재 중앙아시아 河中 지역의 昭武九姓에 설치된 것과 天山山脈 이북 西突厥 영역에 설치된 기미부주도 보인다. 이러한 기미부주는 安西都護府에 예속되었다.
타림분지에 설치된 四鎭都督府는 태종 貞觀 연간(627∼649)에 설치되었다. 토화라의 16도독부 등은 고종 顯慶 3년(658) 경부터 설치되기 시작하여 龍朔 원년(661)에 이르러 대략 80주, 110현, 126군부를 거느렸다. 이는 서역에 대한 당조의 영향력이 점차 서쪽으로 확대 되어감을 의미한다. 唐 初期 태종에서 고종대에 이르는 시기의 서역 기미부주 설치에 대한 지역적 고찰은 당과 서역 주변 諸세력과의 관계를 살피는 한 방편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The Tang Dynasty defended and expanded the change through the Jimi Policy and the General care system. A typical form of Jimifuzhou can be seen in the Early Tang Dynasty period, the heads of the other countries were appointed to the governor and provincial governor, and autonomously governed. This Jimi Policy is also important in that the previous Chinese dynasties are the ruling method applied to neighboring countries.
The Jimifuzhou installed in the Western area were repeatedly installed and abolished according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ang Dynasty and the surrounding forces, and the way also changed. The geographical records of 『Old Tang Dynasty books』 and 『New Tang Dynasty books』 list the Jimifuzhou. First is the four Dohobu of Qiuci(龜茲), Pisha(毗沙), Shule(疏勒) and Yanqi(焉耆) which are installed in Tarim Basin. The second is the sixteen Dudufu and provinces in the Pamir Highlands, north of the Indus River, south of the AmuDarya River and around Iran. All of these Jimifuzhou were subordinated to Protectorate-Gereral of Anxi(安西都護府).
Four Dudufu built in the Tarim Basin were installed during the Zhengguan. The 16th Dongxing District of the West Zone began to be installed from the 3rd year of Xianqing(顯慶). In the first year of Longshuo (龍朔), it was roughly 80 states(州), 110 prefectures(縣), and 126 military bases(軍府). This means that the influence of the Tang Dynasty on the West is gradually widening to the west. It will be an indicator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ang Dynasty and the surrounding forces in the west area and the extent of the Anxiduhufu(安西都護府)'s expansion during the period from the Tai-zong Dynasty to the Gao-zo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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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우생학, 국가, 그리고 생명정치의 여러 형태들, 1865-1948

저자 : 김호연 ( Kim Ho-yeon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9-31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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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영국에서 탄생하여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 사이(1865-1948) 세계적으로 확산된 우생학 운동(eugenics movement)의 역사적 궤적을 '국가'(state)라는 인식 도구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우생학이 단순히 개인의 적합성(fitness) 확보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적합성을 위한 과학으로 기능했음을 밝히고, 이를 통해 통치도구로서의 과학지식, 특히 생의학적 지식이 갖는 유의미성을 고찰하는 데 있다. 이는 우생학史 연구의 의제 확장을 통해 우생학史 연구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신선한 시도가 될 것이고, 우생학 관련 후속 담론의 창출과 생의학과 관련한 여러 사항들에 대한 다층적인 분석틀의 유효성을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연구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생명정치(bio-politique) 담론의 장을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여기서는 우생학적 법률을 제정했던 나라들을 민주주의 국가(미국과 영국), 전체주의 국가(독일과 일본),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국가(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스웨덴)로 구분하여 생물학적 국가주의(biological stat-ism)가 전개되는 양상을 고찰할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d the eugenic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England, Germany, Japan, and Scandinavian countries, which used eugenics as a knowledge of securing state fitness to achieve so-called the biological statism. In particular, this study examined the eugenic laws of each country. The law is a good basis to figure out that the scientific knowledge of eugenics and the biological quality management for the people are important as a national governing strategy. This study shows that eugenics has a wide variety of ideologies, powers, and practices. However, the research object countries were the same in terms of national efficiency - social progress - biological quality of population - science knowledge - eugenics - law and practice. Specifically, the countries studied had the following common features. The main object of the eugenic law was not only the genetic infertility but also the social·moral disqualification, the fact that the forced infertility treatment was mostly mental illness(or the feebleminded), the racism had permeated the eugenic law, and positive eugenics to improve race and negative eugenics to prevent racial decline at the same time. In conclusion, all countries that have enacted eugenic laws have used the scientific knowledge of eugenics as one of the national governing instruments, demonstrating the biological na-tionalism aspect by realizing the biological quality control of population groups in the form of a law enforcement. In this context, history of eugenics in this countries is an example of bio-politics.

KCI등재

8합천지역 3·1운동 연구의 현황과 과제

저자 : 김희주 ( Kim Hee-ju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1-34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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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지역 3·1운동의 연구사를 검토하고 향후의 과제를 살펴보았다. 3·1운동은 지방 전파과정에서 폭력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합천은 삼남지역에서도 투쟁이 가장 격렬했던 곳이다. 동족부락으로 구성된 향촌질서를 기반으로 유림이 시위를 주도했다. 면 단위의 연합시위 등 지역적 연대도 특징으로 지적된다.
이곳의 3·1운동은 일제하 한국인의 저술에서 발견되지만 전반적인 운동상은 1960년대에 기술, 정리되었다. 이후 발간된 각종 관찬자료집을 통해 언급한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체상을 규명하거나 해석하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합천의 3·1운동사 연구가 새로운 성과를 제출하고 한계 비약한 시점은 운동 70주년을 맞은 1989년이었다. 공동연구를 통해 시위의 특징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어 증언 자료를 보완하여 양상과 성격을 세밀하게 분석한 논고도 발표되었다. 당해의 결과로 이 지역 3·1운동의 전모와 실상이 상당 부분 규명되었다. 이후 희생자의 추가 발굴 등 지역차원의 접근은 있었지만 연구 자체는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합천의 3·1운동사가 현 단계를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연구결과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주도 층인 유림과 시위 특징을 대표하는 폭력성에 대한 다면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또 대한제국기에서 일제하에 이르는 합천의 국권회복운동과 대중, 부문운동을 정리하여 그 과정에서 만세운동의 위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This article reviewed the history of the M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Hapcheon and proposed challenges to research.
Hapcheon was the area which was noted for the violence and the role of “Confucians” in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MFIM). The joint protest is also pointed out as a feature.
Records of the movement here appear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However, specific and historic researches were made in the 1960s. Several facts were revealed in the published data collection, but there was no research that dealt with the movement in this area intensively.
The development of research for this area was in 1989, the 70th anniversary of the movement. There was an attempt which intended to interpret the features through joint researches. Theses that was detailed analyses for aspects and characteristics in this area were also published.
As a result, much of the whole picture and the reality of the MFIM in this area was revealed. Since then, there has been no further progress until the present. In order for the study of the MFIM in Hapcheon to advance, it is necessary to further deepen the research results so far.
For this research purpose, it is necessary to analyze the diverse aspects of leading class Confusions and characteristic violence from various angles. Also, the impact of Japan's colonial policy on the lives of the farmers in Hapcheon should be analyzed. In addition to the MFIM, it is necessary to study the social movement in Hapcheon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In order to solve these challenges, efforts should be made for a new historic discovery.

KCI등재

9중국 신문에 보이는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의미 - 북경 『국민공보』를 중심으로 -

저자 : 김주용 ( Kim Joo-yong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43-37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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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대한 외국의 언론보도는 한국독립운동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이 글은 일본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선언하기까지의 그 원인과 과정을 중국 북경에서 발행한 『國民公報』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국내에서 발행되었던 조선총독부 기관지 『每日新報』에서 왜곡되었던 모습을 『국민공보』를 통해서 독립선언의 원인 가운데 가장 컸던 일본제국주의의 학정과 3.1운동 전개과정에서 벌어졌던 각종 반인륜적인 행위를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탄압과 학살 속에서도 혁명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던 한국인들에게 대한 평가와 중국인들이 향후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 신문은 3.1운동을 단순히 보도만 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처지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반제국주의에 중국이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 지를 3.1운동을 통해서 전달하려 했던 것 같다. 중국 지식인들은 이미 한국의 독립운동이 자신들과 밀접하였음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Foreign media coverage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played an important catalyst in enhancing the status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is article looked at the causes and processes of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declared independence through a book published in Beijing, China. The Guomigonbao(國民公報) in Beijing, the official newspaper of the Joseon Governor-General's Office, showed distorted images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ich was the biggest cause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nd various anti-humanitarian acts during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He also mentioned the evaluation of Koreans who continued to enjoy the heat of the revolution in the face of such oppression and slaughter and the position that the Chinese people should have in the future. The paper did not just cover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but apparently tried to convey through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how China's situation is not much different from Korea's and should counter anti-imperialism. Chinese intellectuals were already realizing that Korea's independence movement was close to them.

KCI등재

10당 제국의 사치 금지령

저자 : 이유진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79-385 (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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