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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NG GOOK SA HAK

  •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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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5-0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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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3권0호(1955)~65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687
동국사학
65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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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국 초 미국의 시민권 정책과 국가 정체성 -이민과 귀화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를 중심으로-

저자 : 김용태 ( Kim Yong-tae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46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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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건국 초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이민과 시민권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신생 미국의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어 나갔던 과정을 조명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연방 귀화정책의 역사적 기조를 정립하고 있다고 보이는 1790년의 귀화법부터 1802년의 귀화법까지를 대상으로 각각의 귀화법 이 제정될 당시의 국내·외적 상황, 주요 정치인들의 입법 논쟁, 제정된 법령의 주요 내용과 함의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건국 초 미국에서는 이민의 지속적인 유입과 더불어 이민 집단의 정치적·문 화적 이질성 및 비(非)동화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하고, 대외적으로 유럽에 서의 혁명과 전쟁의 격변으로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어 국가 안보 불안이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민과 귀화 정책을 국가 형성의 매우 중요한 도구라고 명백하게 인식하면서 인종적 성격이 다분히 내재되어 있는 기준, 즉 이민자의 '공화주의 체제에의 적합성'과 '앵글로색슨 문화에의 동화가능성'을 정책 수립의 주요 기준으로 공유하였다. 하지만 입법자들은 이민의 폭과 대상, 그리고 이민자의 권리(귀화 및 시민권)에 대해서는 보다 포괄적으로 허용하려는 쪽과 제한적으로 규정하려는 쪽으로 나뉘어 각기 상반된 입장을 개진하면서 치열한 논쟁을 전개하였다.
우선, 정치적 적합성 문제와 관련하여 전제 정치적 요소나 혁명적 급진주의 의 유입을 미국의 공화주의 체제에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이질성 해소와 국가 통합을 위하여 이민의 적극적인 편입을 장려하는 정책을 주장하는 쪽과 정 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평가를 강조하며 제 한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쪽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전자는 “억압받는 인류를 위한 피난처”로서 미국의 포용성이 새 이주민에게 공화주의적 정신을 부여하여 새로운 시민들이 더 신속하고 충분하게 편입될수록 사회의 유용한 성원이 될 것이 라는 신념과 유산자(有産者)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토착민과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해관계 등을 근거로 하여 포용정책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후자는 본토에서 출생하거나 상당 기간 동안 미국에서 거주하여 충성 심을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정치적 권리들이 보장되어야 한다면 서 제한적인 시민권 정책을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종교와 언어 등 문화적 동질성 내지 동화 가능성 문제와 관련하여 이민 허용의 대상과 폭은 제한하되 이민자의 권리(귀화와 시민권)는 완전히 부여할 것을 주장하는 포용적 입장과 제한적 귀화 및 시민권 부여를 주장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결국 건국 초에 전개된 양측의 논쟁과 타협의 결과, 연방 귀화정책의 기조는 1802년의 귀화법에서 최종적으로 확립되었다. 즉 백인성이라는 인종적 기조는 1960년대까지 이민과 귀화 정책의 중심적 기조로 작용하였고, 5년의 거주 요건이 라는 정치적 기조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건국 초 에 나타났던 이민과 귀화에 대한 포괄적-제한적 담론들은 이후 미국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며 이민과 귀화 정책의 수립과 미국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끼쳐 오고 있다.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formation process of the American national identity through American political leaders' perceptions of immigration and citizenship in the early republic. Immigration and citizenship policy have played a key role in building of the American nation, and one of the fundamental factors relating immigration with the citizenship is the naturalization policy. So it examined the legislative history of naturalization from 1790 to 1802, with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circumstances, the legislative debates among major politicians, and the main contents of naturalization laws. And then the continuity and changes of U.S. naturalization policy, and the implications of such changes are discussed. Because of the revolution and war in Europe and the continued influx of immigration to America, the increase in political instability and the cultural heterogeneity of immigrants has become the most important issues in the early republic. Accordingly, the U.S. political leaders differentiated the acceptance attitude towards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according to 'the fitness for republican system' and 'assimilation into Anglo culture' that clearly having much racial character. The final consequence of policy discussions regarding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was the Naturalization Act in 1802. Since then, the racial principle of whiteness and the political norm of a five-year residency requirement for naturalization have influenced the making of the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policy and the national identity of th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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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윌리엄 버클리와 전후 미국의 보수주의

저자 : 유회명 ( You Hoi-myoung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7-7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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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들은 레이건 당선 이후 보수주의의 본질에 대해 기술하기보다는 자신 들 나름의 방식대로 보수주의의 성공 또는 자유주의 실패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보수주의의 본질과 기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본 논문은 윌리엄 버클리와 National Review 를 통해서 보 수주의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National Review를 통해서 비록 사상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다양한 목소리의 보수주의자를 한데 모으고 통 합하려고 하였다. 또한 National Review 를 통해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유지 상주의자, 전통주의자, 반공주의자의 합류점을 만들었다. 그는 이 잡지에서 보수주의 사상과 정책을 위한 학문적인 토론의 장을 펼치며, 서로 다른 보수주의자들 이 공공의 적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를 반격할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면서 National Review 는 미국 보수주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While many historians were not writing about the American conservatism per se, they were in their own way trying to explain its success or the failure of liberalism since the election of Ronald Reagan. But it caused the failure to examine the nature or root of American conservatism. So, this essay i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postwar conservatism by Buckley and his National Review. His and the National Review's aim was to set up a big tent, bringing in and unifying as many types of conservatives as possible, and to keep them together despite of their ideological differences. I contend that he regarded the National Review as a confluence of libertarian, traditionalist, and anticommunist. He was an institution builder who helped to create a literate and public arena in which conservative ideas and policies could be regularly pondered and conservatives of different personalities could lay the foundation for carrying on the assault against their common two adversaries, communism and liberalism. Therefore, the National Review played an essential role in the growth of conservatism which would eventually change the atmosphere of Americ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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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아시아인 이주와 동화가능성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로버트 팍과 “인종관계조사”를 중심으로-

저자 : 권은혜 ( Kwon Eun-hye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7-10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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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세기 초 미국의 시카고 사회학파를 형성했던 사회학자 로버트 팍 (Robert Park)과 팍이 연구책임자로 참여했던 1924-27년의 인종관계조사가 아시아인에 관한 사회학적 관찰방법을 구성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팍은 “인종 관계 의 순환(race-relations cycle)” 이론을 “동양인”과 “미국인”의 인종 관계에 적용해 아시아계 이민자는 미국의 흑인과는 비 백인이라는 인종적 특징을, 유럽계 이민자와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상정했다. 팍은 아시아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 간 결혼을 아시아인의 특징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삼았고 “인종관계 조사”를 진행할 때 팍은 아시아인과 백인 사이의 결혼 사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두 인종 사이의 결혼이 사회통념과 법으로 금지되던 시절에 팍은 인종 간 결혼을 아시아인의 동화 및 인종 갈등의 해결 수단이라고 상상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way in which Robert Park, one of the founders of the Chicago Sociology in the early 20th century spearheaded a social-scientific approach to Asian migration and assimilation primarily in the Survey of Race Relations, 1924-1927. Park applied his theory of race-relations cycle to Asian immigrants. According to him, Asians shared the non-white racial identity with American blacks. Asians were deemed similar to European immigrants in terms of their social status as immigrants. Park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marriages between Asians and whites as a way of assimilating Asians and, eventually, solving the tensions between white Americans and Asian immigrants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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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Payne-Aldrich Tariff Act의 일고찰 - 페인-올드리치 관세법 제정을 통해서 본 William Taft의 관세관을 중심으로 -

저자 : 정태희 ( Jung Tae-hui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5-14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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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09년 페인-올드리치 관세법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태프트 대통령의 관세 입장을 통해 그의 정치, 경제, 사회, 제도의 인식을 살펴보았고, 당시 관세 개혁을 놓고 연방의회의 상하 양원을 차지한 공화당 내부의 관세 논쟁을 살 펴봄으로써 보수와 개혁간의 갈등, 조정, 분열을 검토하였다. 또한 태프트의 대통령의 리더십과 그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도금시대에서 혁신주의 시대로 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국사회의 제도적 명암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태프트는 저가 생산품을 수출하는 외국으로부터 미국의 산업을 방 어하고, 국내시장을 보호해야만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한다는 개념을 지닌 보호 무역론자였다. 그러나 그의 관세관도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시대에 맞게 생산비 용의 차이가 없다면 관세는 인하되어져야 한다는 입장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관세의 차익은 소수 특정 이해세력의 수중에 넘어간다는 생각을 지닌, 그리고 특정 산업 및 지역적 이해관계보다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관세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던 혁신주의 시대에 맞는 대통령이었다.
또한 태프트는 국익을 위해 기존 딩글리 관세법이 미국 경제 및 산업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에서 탈피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미약하지만 관세인하의 성과를 성취하기도 했으나, 그의 관세개혁 입장은 미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추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헌법적 테두리 속에서 정치, 사회, 경제를 바라 보는 보수적 대통령의 표상이기도 했다.


This study is aimed firstly to examine William Taft's perception of U.S. political, economical, and social system through his stance for Tariff Reform within development process of The Payne-Aldrich Tariff Act of 1909. This paper is aimed secondly to look through Tariff Debate between the conservative and the progressive in the Republicans over tariff reform. By reviewing Taft's leadership and his limits, the final goal of this essay to seek the light and shade of U.S. system through the argument of Income Tax in the period of transition from the Gilded Age to Progressive age.
Through the above, it seems that Taft was a protectionist who thought that U.S. labor could receive higher wage in home, if Tariff protect the domestic business, labor, and market from an low price articles of foreign make. As time goes on, however, it seemed to me that he was the progressive President who changed his tariff stance into the following: Tariffs have to get lower, if there is no cost difference of the production price between the US and foreign countries. If not so, tariff profit fall into the certain minority groups's hand.
In order to promote national interests Taft exercised leadership as President to avoid deteriorating effects of U. S. economy and business under the Dingley Tariff Act of 1897. Nevertheless, It seems that he was a representative of the President with conservative mind who judged politics, society, and economy under the constitutional boundaries that can not keep up with the rapid changes in Americ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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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기(1967~71) 전력산업과 미국 석유회사

저자 : 권오수 ( Kwon Oh-soo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1-17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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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기 전원개발계획과 미국 석유회사의 전력산업 진출과정을 검토하여 한국 전력산업과 미국 석유회사간에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었는지를 밝혀보았다.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기 정부는 석유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한국전력과 별도로 민영전력회사 설립을 통해 대규모 전원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미국 석유회사는 이러한 배경 하에 민간발전소를 건설하여 한국 전력산업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미국 석유회사가 한국 전력산업으로 진출하고자 한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 석유 시장에 진출하고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유니언오일은 발전소와 병행한 간이정유공장을 건설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한국 석유시장으로도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전력 과 민영전력회사는 장기유류공급계약과 차관공급계약을 매개로 미국 석유회사와 결부되었다. 장기유류공급계약을 통해 한국전력은 안정적으로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었고 차관을 통해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석유회사는 석유 공급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전력산업은 미국 석유회사에 의존적인 구조가 형성되면서 국제석유시장의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electric power industry and American oil companies by researching the generation expansion planning and entry of American oil companies into the Korean electric power industry during 2nd 5-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The government promoted energy policy based on fuel oil and promoted large-scale generation expansion planning by the establishment of private power companies separate from Korea Electric Power Company. Under this background, American oil companies built private power plants and entered Korean electric power industry. However, the ultimate goal of American oil companies to enter Korean electric power industry was to enter and secure the Korean oil market. In particular, Union Oil was able to advance into the Korean oil market by constructing an oil refinery to supply fuel with the power plant. Korea Electric Power Company and private power companies were linked to American oil companies through long-term fuel oil contracts and loan contracts. Under long-term fuel oil contracts, Korea Electric Power Company was able to secure stable fuel supply and loans, and American oil companies were able to secure stable profits by exercising their exclusive rights to supply fuel. However, Korean electric power industry eventually has been affected by world oil market as a result of the dependence on American oil compan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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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당(唐) 초기(初期) 기미부주(羈縻府州)의 출현(出現)과 제도적(制度的) 경계(境界)

저자 : 정병준 ( Cheong Byung-jun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1-19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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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초기에 이민족이 투항해 오면 주현을 설치하여 관리하였으며 그 중에는 각 추장을 자사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부역을 비롯한 제도적 측면에서 이들은 正州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동일하였을 것이다.
기미주는 630년 동돌궐이 멸망하면서 발생한 대량의 유민을 통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특별하게 고안된 제도이다. 이 제도의 창설은 이전의 '內民化' 정책을 바꾼 것으로 전통적 이민족 관리 방식의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邊州都督府 관하 기미주와 그 바깥의 都護府 관하 기미주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있었고, 그것은 '邊', '塞', '關', '國境' 등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 제도 적 경계가 곧 영토의 경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의 영토는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도호부 관하 기미주의 상당수는 당의 영역에 속했다고 보인다.


The early Tang dynasty managed foreign tribes who surrendered to Tang by establishing the Zhou-xian (州縣) district system. In some cases, the chief of each tribe was appointed to the minister of the newly established district that represents his tribe. These districts appear basically identical to the ordinary Zhou system despite their differences to some degrees.
The Jimifuzhou system was devised to manage a large number of refugees occurred due to the fall of the East Turks at 630 C.E. The establishment of this system brought a remarkable transformation to Tang's traditional policy for managing foreign tribes as it was distinguished from the former policy that assimilated them into the general (native) citizen of Tang.
There were clear boundaries between the jimi(fu)zhou districts governed by Frontier's Government-generals and the ones by Protectorate-generals, which were placed outside the districts in charge of the Frontier's Government-general. Those boundaries, referred to as bian(邊), sai(塞), guan(關), guojing(國境), and so on, were institutional; nevertheless, they did not indicate territorial borders. Territories of Tang should be understood by measure of the actual controlling power, and in that light, a considerable number of the jimifuzhou districts under the control of the Protectorate-generals should be considered to have belonged to the domain of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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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중국 산동성 북조 보살상의 매미문(蟬文) 보관에 대한 고찰

저자 : 양은경 ( Yang Eun-gyeng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97-23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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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고찰한 연구대상은 산동성에서 발견된 북조 보살상의 머리를 장식한 매미문양의 보관에 대한 것이다. 남북조시대 보살상 보관의 기원이 인도, 서 아시아 계통인 것에 반해 매미문 보관은 중국의 蟬冠 즉 매미문 관과 관련을 가진다는 사실에서 그 특이함과 흥미로움을 유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관은 유사성만이 지적되었을 뿐 구체적이고 심화된 연구는 진행되지 못하였기에 본고를 작성하게 되었다.
우선 보살상이 착용한 매미문 보관의 전체적인 형태는 山形을 이루었으며 각 모티프들은 줄기, 둥근 장식, 꽃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산형 보관과 각 모티프들은 운강석굴, 공현석굴 등 북조 보살상의 三山冠과 친연성이 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매미문 보관은 북조에서 성행한 삼산관 보관에 매미문 장식이 첨가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필자는 매미문 금당의 기원 혹은 출처로 언급되는 蟬冠과의 비교고찰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매미문 보관과 문헌기록, 벽화에서 확인되는 선관은 전체적인 형태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선관은 武冠에 매미문 金璫과 담비 털을 부착한 관이었으며, 이 관은 삼산관으로 표현된 보살상의 매미문 관과는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그러나 보살상의 매미문 장식 즉 璫의 전체적인 형태는 벽화, 陶俑에 부착된 금당과 거의 동일하였다. 더 나아가 실제 고고유물로 출토된 매미문 금당과 외형을 비교검토한 결과, 보관 속 매미문 장식물은 4세기 동진대 유물보다 5세기 금당과 더욱 친연성이 강하게 확인되었다. 또한 고고유물로 출토된 금당 속 매미와 보관 속 매미는 신체를 구성한 요소는 서로 동일하였으나 보관 속 매미가 금당보다 간략화되고 단순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북조 산동성 보살상의 보관에 매미문 장식물이 도입된 배경과 이유는 기존학계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것처럼, 불교의 중국화 혹은 한화와 직결된 것으로 해석되었다. 매미문 보관은 당시 보살상에서 성행한 삼산관에 중국 전통의 매미문양이 결합된 것으로 이는 곧 불교와 실생활의 융합과 조화를 의미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본고를 구상하였을 당시에는 매미문 보관의 기원과 발전양상에 대한 문제도 함께 검토하길 기대하였다. 그러나 비교대상으로 거론되는 남경지역의 남조 보살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로 인해 상상력을 달래며 아쉽지만 차후 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This study concerns the cicada-patterned crowns of bodhisattva statues dating from the Southern-Northern Dynasties Period, more specifically the cicada-patterned crowns worn on the heads of three bodhisattva statues found in Shandong Province. It is known that crowns are a recurring motif worn by bodhisattva statues found in India, West Asia, and the Western Regions, but researchers have found an interesting and a possible association between crowns and the Cicada crown(蟬冠), a hat worn by distinguished noblemen in ancient China. However, there has not been much progress in specific and in-depth studies about their association, nor have sufficient studies cicada-patterned seongwan and Gold frontlet(金璫) been conducted.
As for the appearance of cicada-patterned crowns worn by bodhisattva statues, they are mountain-shaped and composed of stalks, round ornaments, and floral ornaments. It has been confirmed that both the mountain-like shape and the ornaments are associated with triple mountain-shaped crowns(三山冠) in the Yungang and Gongxian Grottoes dating back from the Northern Dynasties Period, that is, cicada patterns came to be added to triple mountain-shaped crowns, which were popular in the Northern Dynasties.
Cicada patterns are the most important feature distinguishing bodhisattva statues with them from others of the period concerned. This study includes a comparative review of the cicada-patterned crowns worn by bodhisattva statues and those worn by distinguished noblemen in ancient China. The latter, which appear in literature records or murals, differ from the former in terms of their overall appearance, and are also attached with martin fur whereas the former are not.
However, Cicada crown worn by distinguished noblemen portrayed in olden-day porcelain figurines and murals lack martin fur and look quite similar to those worn by bodhisattva statues found in murals dating from the Northern Dynasties and those displayed in porcelain figurines. It also turns out that compared to the unearthed relics of cicada-patterned Gold frontlet look much more simplistic than those portrayed on bodhisattva statues.
It is assumed that the depiction of cicada-patterned ornaments, which symbolized supreme power and nobility at that time, on the crowns worn by bodhisattva statues found in Shandong Province was associated with the adoption of Buddhism in China. The application of the traditional cicada pattern of China to Buddhism-related crowns signified the convergence of people's daily life with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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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평택 심복사(深福寺)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 대한 고찰

저자 : 최성은 ( Choe Song Eun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35-26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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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심복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지권인(智拳印)을 결(結)한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이 불상의 조성배경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고, 다만, 고려 말에 불상을 바다에서 건져 새로 사찰을 지어 봉안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어 원래 불상이 봉안되어 있던 사찰도 지금의 심복사와 멀지 않은 평택지역의 해안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심복사가 위치한 평택지역은 여러 개의 하천을 끼고 있는 비옥한 곳이며 당항성과 맞닿아 있어 해상교류의 요충지이고 심복사 인근의 성곽유적에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유물이 출토된 점을 고려할 때, 심복사 비로자나불좌상이 원래 조성되었던 절은 서해안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 사찰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심복사 비로자나불상은 대의(大衣) 양쪽 깃에 화문(花紋)이 새겨지고 내의를 묶은 매듭이 리본처럼 늘어진 표현에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867년) 과 매우 유사하나, 옷주름 처리에서는 도식화된 매너리즘을 나타나며, 온화하고 인간적인 상호(相好)와 둥글고 부드러운 양감이 돋보이는 조각기법은 여주, 안 성, 원주, 홍천, 강릉 등, 오늘날의 경기도, 강원도 일대에서 전해오는 나말여초부터 고려전기까지의 석불들과 매우 유사하다. 한편, 대좌 하대석에 새겨진 안상 (眼象)에 고려 중기 불상 대좌와 석조물에서 유행했던 꽃머리 장식이 표현되지 않은 것에서 볼 때 심복사 비로자나불상의 제작시기는 고려초 10세기 후반일 개 연성이 크다. 이 시기의 석불들은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981년), 고령 개포 동 마애보살좌상(985년)에서 보이듯이 지역성이 강하게 나타나거나 조형적으로 지방화된 상들도 전해오는데, 평택 심복사 비로자나불상은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나말여초의 전환기에 새롭게 변화된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고려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불상으로 생각된다. 심복사 비로자나 불좌상의 대좌 중대석 좌우의 사자 두마리는 통일신라시대 대방광불화엄경 변상 도(755년)와 통일신라·고려초 비로자나불상들에서 보이는 7사자 대좌의 밀교적 (密敎的) 도상이 단순하게 변형된 것으로 이해된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stone Vairocana Buddha imag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Shimboksa(深福寺) temple located near the south seacoast of Pyongtaek(平澤), Geonggi Province. There is no extant textual evidence regarding the execution dates of this image and the original temple where it was first enshrined. It is known only by legend that the image was fished out of the sea in the late Goryeo period by three laymen, who built a new temple for this image. The Pyongtaek region located on the west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is assumed to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not only as the sea lane and traffic route for communications with China, but also as the defending base during Unified Silla, Taebong and Georyo period. It is therefore assumed that the Buddhist temple where Shimboksa image was first enshrined was constructed by a powerful clan of this region.
The pedestal of Shimboksa image shows two lion images on both sides of its middle part, which is likely the modification of the seven-lion type pedestal(七師子 臺座) of Vairocana Buddha(毗盧遮那佛) that is based on the iconography of Esoteric Buddhism prevailed in Tang China. The introduction of Esoteric Buddhism to the Unified Silla is shown by the pedestal with seven lions of Vairocana image of the Illustration of the Avatamsaka Sutra(華嚴經) dated 755, which is now in the collection of Leeum, Samsung Museum of Art, Seoul.
The mudra and flower designs carved on the surface of both sides of the robe collar in the Shimboksa image, while it shows manneristic features in style, is reminiscent of ninth century sculptures, such as the stone Vairocana image at Chukseosa(鷲捿寺) dated 867. Shimboksa image shares similar stylistic features with the stone Buddhist images of the late Unified Silla and the early Goryeo period at Yeoju(驪州), Anseong(安城), Wongju(原州), Hongcheon(洪川), Gangneung(江陵) of present-day Gyeonggi and Gangwon Provinces located in the middle part of Korean peninsular, particularly in its warm and humanistic face expression, as well as the sense of volume in their curved surface.
Iconographical and stylistic analysis shows manneristic features of drapery folds and modifications of iconography, which are hardly found in any images of the late Unified Silla and early tenth century Goryeo. Also, the decorative design with a flower in the center on the surface of the base part of the pedestal, which was popular in the early eleventh century, does not appear in the Shimboksa image. It seems probable that Shimboksa image was made in the late tenth century of Goryeo Period with the support of a powerful regional clan who wanted to make the best of Buddhist temple as a base for the sea lane r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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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 한국의 우두법 및 백신접종 연구에 있어 지구사적 관점(global perspective)의 유용성

저자 : 이현주 ( Lee Hyon-ju )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67-313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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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80년대 이후 출판된 우두백신과 백신접종에 관련된 해외 연구사를 정리하고,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 동일 주제에 대한 한국의 케이스를 연구함에 있어 지구사적 관점을 활용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다.
지난 몇십년에 걸쳐 한국의 우두법 및 백신 정책에 대한 연구는 질적·양적 측면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우두관련 연구는 좁게는 국내,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의 연구사 및 자료에 한정되어 진행되어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우두가 발견된 이래, 우두 백신 뿐 아니라 다양한 접종 방식이 제국들의 팽창 및 지방에서 형성된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전래되었다. 그리하여, 본고는 한국의 우두법 연구를 지구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외의 연구결과를 참고 함으로써, 우두백신 기술, 관련 법 및 정책, 대중의 반응,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 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해외연구결과는 영어로 출판된 책 및 논문에 한정되어 있지 만, 지리적으로는 동아시아를 넘어서는 광대한 지역-유럽, 라틴아메리카, 동남 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중동-의 케이스를 포괄한다.


This article reviews the historical research on cowpox vaccine and vaccination published abroad since the 1980s and discusses the necessity of global perspective in studying relevant Korean cases from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to the mid-twentieth century.
Korean historiography of cowpox vaccine and vaccination has grown in quality and quantity in the last several decades. However, the achievement has been mainly confined to Korea's national boundaries or East Asia at large. Since the discovery of cowpox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various techniques of vaccination as well as vaccine lymph were globally disseminated through the expansion of empires and locally established intellectual networks. This paper argues that reviewing research covering a wider geographical scope than East Asia and placing the Korean history of cowpox vaccination in this global picture enables a more in-depth and accurate understanding of vaccination technology, law, policy, public response, and the complex relationship during the proposed period in Korea.
Despite a limited inclusion of articles and books written in English, this article encompasses a wide range of geographical locations beyond East Asia, including Europe, Latin America, Southeast Asia, India, Africa, and the 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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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당서(舊唐書)』 권6, 칙천황후본기(則天皇后本紀) 역주(譯註)

저자 : 이진선

발행기관 : 동국역사문화연구소(구 동국사학회) 간행물 : 동국사학 6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15-36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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