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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WEON SA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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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6-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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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5)~32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279
강원사학
32권0호(2019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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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시대 교주도(交州道)의 형성과 변천

저자 : 최동녕 ( Choi Dong-nyeung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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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交州道는 交州ㆍ春州ㆍ東州와 그곳에 소속된 속현들을 관할하던 5道의 하나였다. 교주도가 형성되고 변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지역적으로 인접했던 東界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교주도와 동계는 朔方道에서 비롯되었다. 995년(성종 14)에 지방제도 개편으로 道制가 실시될 때, 10道의 하나였던 삭방도는 7州 62縣을 아우르는 영역으로써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를 관할하였다. 삭방도 관내의 安邊都護府를 중심으로 각 州縣이 이곳에 소속되었지만, 도 단위 차원에서도 租賦 및 외관감찰 업무를 담당하던 轉運使와 군정업무를 총괄하던 兵馬使가 병존하였다.
삭방도는 이후에 동계와 春州道로 분화되었다. 교통체계의 편의를 고려해서 태백 산맥을 기준으로 嶺東은 동계로 남겨두고 嶺西는 남도화한 조치였다. 남도화 된 춘주도에는 監務나 按察使를 파견하여 동계와 구별하였고, 춘주를 安陽都護府로 승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안양도호부는 1217년(고종 4) 거란유종의 침입과 1253년 몽골군의 5차 침입에 막대한 피해를 받게 되었다. 이는 곧 안양도호부의 강등과 도의 명칭변화로 이어졌다. 고종대 춘주도-교주도-동주도-교주도로 잦은 명칭변화가 발생했던 것은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도내의 중심지들이 陞降을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상대적으로 전란의 피해가 적었던 교주를 교주도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이때부터 교주도는 확고한 도의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교주도의 위상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원의 雙城摠管府가 설치되어 동계가 대규모로 축소되면서 부터이다. 동계의 축소로 인해 교주도는 고려의 실질적인 군사접경지대가 되었고, 충선왕대 교주와 동주는 새로운 거점지역으로 주목되어 각각 淮陽府와 鐵原府로 승격되었다. 특히 회양부의 鐵嶺은 군사적 要害地로서 중시되었는데, 이에 따라 도의 명칭을 '淮陽道'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울러 동계가 축소되면서 영동의 江陵道와 영서의 교주도를 통합ㆍ운영하는 양상도 보였는데, 사안에 따라 '東界交州道', '江陵交州道', '交州江陵道' 등으로 통합하여 按廉使나 計點使를 파견하였다. 나아가 1356년(공민왕 5)에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동계가 그 이전보다 크게 확장되자 철령을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한 강릉도 일대까지도 남도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1388년(우왕 14)에는 영동과 영서를 병합하여[幷嶺東西] 교주강릉도로 일원화하고 동시에 兩府大臣의 都觀察黜陟使를 파견함으로서 확고한 도 단위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로서 교주강릉도는 고려말 조선초를 거치면서 강원도로 변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In Goryeo Dynasty, Gyo-Ju-Do(Administrative District) was one of the five local governments that had jurisdiction over Gyo-Ju(交州), Chun-Ju(春州), Dong-Ju(東州) and local administrative areas under the districts. The formation and transition of such Gyo-Ju-Do are closely related to the geographically adjacent Dong-Gye(Eastern Border).
The origin of Gyo-Ju-Do and Dong-Gye(Eastern Border) is derived from Sakbang-Do(朔方道). Sakbang-Do is one of the 10 administrative areas when Do-system(Local Administrative Area System) was implemented as the part of local system reorganization in 995(14thyear of King Seongjong). Sakbang-Do is a region which covers 7 states and counties and it had jurisdiction over current Hamgyong-Do Province and Gangwon-Do Province. While each state and country belonged to Sakbang-Do centering on Anbyeon Dohobu(安邊都護府, Local Administrative Organization), Jeonun-sa(轉運使) who was in charge of taxation and inspection and Byeongma-sa(兵馬使) in charge of military administration co-existed in a provincial unit level.
Later, Sakbang-Do was divided into Dong-Gye(Eastern Border) and Chun-Ju-Do(春州道). After the division, Yeongdong was remained to be Dong-Gye while Yeongseo became the southern province. After becoming the southern province, Chun-Ju-Do was differentiated from Dong-Gye as Gammu or Anchal-sa was dispatched to Chun-Ju-Do. Also, the center of the Chun-Ju-Do was Anyang Dohobu(安陽都護府) which was promoted from Chunju.
However, Dong-Ju and Anyang Dohobu were defeated after the invasion of Khitan in 1217(4thyear of King Gojong). Furthermore, Dong-Ju and Chung-Ju were massively damaged and demoted after 5th invasion of Mongolian military in 1253. This led to change in name of Do-system(Local Administrative Area System). During the King Gojong period, the names were frequently changed from Chun-Ju-do, Gyo-Ju-Do, Dong-Ju-Do, to Gyo-Ju-Do because of the repeated promotions and demotions of provincial centers due to invasion of the foreign enemies. As a result, Gyo-Ju which had relatively less damage from the war became the center of Gyo-Ju-Do and Gyo-Ju-Do became the definite name of the province.
Later, the status of Gyo-Ju-Do started to change when Ssangseong Chonggwanbu(雙城摠管府) was established and Dong-Gye was largely reduced. Due to reduction of Dong-Gye, Gyo-Ju-Do became the practical military border of Goryeo. In King Chungson period, Gyo-Ju and Dong-Ju were spotlighted as the new local base and got promoted to Hoeyangbu(淮陽府) and Cheorwonbu(鐵原府) respectively. Especially, Cheollyeong of Hoeyangbu was regarded as the strategic military point and got the name 'Hoeyang-Do(淮陽道)'.
In addition, after the reduction of Dong-Gye, Yeongdong's Gangneung-Do and Yeongseo's Gyo-Ju-Do carried out united operation. They were integrated to 'Dong-Gye Gyo-Ju-Do(東界交州道)', 'Gangneung Gyo-Ju-Do', or 'Gyo-Ju Gangneung-Do' under discussion and they were operated by dispatching Anryeomsa(按廉使) or Gyejumsa(計點使). In 1356(5th year of King Gongmin), Ssangeong Chonggwanbu was recovered and Dong-Gyegot expanded. In response, the Gangneung-Do regions located in the southern side of Cheollyeong became the southern province. In 1388(14th year of King U), Yeongdong and Yeongseo were finally integrated and unified into Gyo-Ju Gangneung-Do. At the same time, Dogwanchal Chulchuk-sa(都觀察黜陟使) of Yangbu Daeshin(兩府大臣) was dispatched and it became a definite provincial unit. From late Goryeo Dynasty and early Joseon Dynasty, Gyo-Ju Gangneung-Do arranged the grounds for changing into Gangw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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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려시대 강원지역 불교의 전개

저자 : 강호선 ( Kang Ho-s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5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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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려시대 강원지역에서 전개된 불교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중세에서 강원지역이 갖는 지역적 특수성이나 혹은 보편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강원지역의 불교사에서 주목할만한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는 나말여초이다. 나말여초 강원지역에는 사찰이 많이 지어지고, 지역적으로도 확산되었다.
이러한 확산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선종으로, 나말여초 지방사회에서의 선종 수용과 확산이라는 당시 불교계의 주도적 흐름 속에 강원지역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는 한편으로 석탑이나 석불, 석조 보살상 같은 석조물에서는 지역적 특색이 드러나기도 한다. 오대산의 문수보살이나 금강산의 담무갈보살처럼 보살주처 신앙이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고려시대 강원지역 불교의 중요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특정한 시대상 역시 불교의 동향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원간섭기 강원지역에는 원의 황제나 황후를 비롯한 지배층의 후원으로 크게 중창되는 절이 많았던 것도 특징이다. 강원 이외의 다른 지역의 절도 원 지배층의 후원으로 황제나 황후 혹은 태자의 원찰로 지정되기도 하고, 적극적인 후원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강원지역에 대한 원 지배층의 관심과 지원은 매우 활발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 지방사원의 운영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資福寺의 운영양상이나 관단사원의 운영 등은 현재로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고려불교의 前史이자 강원불교 이해에 한 부분을 차지하는 태봉 불교에 경우 현재 DMZ에 포함되어 있는 지역적 한계로 인해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향후 지속적인 발굴과 연구를 통해 고려시대 강원지역 불교사가 보다 다채롭게 이해 될 뿐만 아니라, 고려불교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flow of Buddhism in the Gangwon prefecture of the Goryeo period, and aims to understand regional specificity or universality of Gangwon prefecture and its Buddhism in the Middle Ages of Korea. In the late Silla and early Goryeo period, there was a remarkable change in the Buddhist history of the Gangwon prefecture. In this period, many temples were built in Gangwon prefecture and Buddhism was spread locally. It was the Seon that led to the localization of Buddhism. It shows that Gangwon prefecture was also included in the leading flow of Buddhism at that time of accepting and spreading of Seon Buddhism in local society. However, on the other hand, regional characteristics are also revealed in pagodas and Buddhist and Bodhisattva statues made of stone. The phenomenon in which the faith on stay of Bodhisattva such as Manjushri in the Mt. Odai and Dharmogata in the Mt. Guemgang was appeared in the Gangwon prefecture is also an important feature of Buddhism in the Gangwon prefecture of the Goryeo period. In addition that, the characteristic of the period is also shown. During period of Yuan's Intervention, many Buddhist temples in Gangwon prefecture were repaired or rebuilt with patronage of the ruling class of Yuan China such as emperor and empress.
In relation with center and Gangwon prefecture, Jaboksa(資福寺) or a temple with platform for official ordination(官壇寺院) is not evident until now. Furthermore, though research on Buddhism in Taebong(泰封) period is important to understand Buddhism of Goryeo period and Gangwon prefecture, it is hard to research because of DMZ area. Further excavation and investigation will help to understand Buddhism of Goryeo period and Gangwon prefecture more systemically and vari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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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려시대 외침과 강원지역의 성곽방어체제 재정비

저자 : 유재춘 ( Yu Jae-ch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9-9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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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시기 군사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는 방어전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갖는 성곽시설의 정비였다. 국경 및 각 지역방어 측면에서, 그리고 지구전 전개를 통해 침략자의 공세를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아군이 전투태세를 정비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성곽 시설이 필수적인 요소였다. 또 이러한 성곽은 각기 그 기능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정비되었는 바, 군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선은 성공적인 방어전이 가능해야 하지만 전쟁이나 전투의 양상에 따라 계속 변모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경우는 거란, 몽골, 여진, 합단, 홍건적, 왜구 등 다양한 형태의 외침이 있었고, 이러한 계속되는 외침에 대응하여 고려는 전체적으로 성곽방어체제를 재정비하였다.
기존에 고려시대 성곽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는 바, 강원지역과 관련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11세기 동여진 침입과 이에 대한 대응, 고려말 왜구 침입과 관방시설 정비, 고려시대 治所城, 그리고 영동지역 성곽과 戍, 海防遺蹟 등을 연구한 논문 등이 있다. 이러한 연구는 특정 부분에서의 방어시설 정비 및 개별적인 성곽유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하였으나 고려시대 성곽방어체계가 변모해 가는 전체적인 양상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많다. 각 개별 성곽유적의 고고학적 편년에 보다 합리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성곽방어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며, 본 논문에서는 그러한 점에 중요한 관점을 두고 고려시대 많은 외침을 받으면서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강원지역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고려시대 강원지역에 대한 외부 침입과 그에 따르는 방어시설 재정비 과정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시기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여진이 침입한 시기로, 이 시기의 거란 침입은 강원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바다를 통한 여진의 침입은 1005년~11세기말까지 계속되어 강원도 해안을 비롯한 동해안 거의 전지역이 침입을 받았다. 이에 동해안 일대에 대한 방어시설이 재정비되면서 많은 소규모 성곽이 건설되었다.
제2시기는 대요수국(거란) 및 몽고 침입 시기로, 대요수국을 세운 거란인의 침입으로, 강원지역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각 지역의 주요 거점 성곽이 높은 산으로 이전되거나 해변에 사는 주민들은 바다의 섬으로 피난하여 그곳에 새로 성곽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시기에 지역별로 고착되었던 성곽방어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제3 시기는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하는 시기로, 대규모 침입인 홍건적과 소규모 침입 집단인 왜구에 대응하여 연해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방어시설인 읍성 축조가 시작되는 등 연해지역 방어를 강화하면서 왜구가 내륙까지 깊숙이 들어오자 연안지역 뿐만 아니라 왜구가 통과하는 각 군현별로 입보처를 마련하고, 특히 연해지역으로부터 내륙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상의 지역에 성곽을 설치(기존 고성 수리 또는 증축)하였다.


One of the most important military aspects in the pre-modern era were organizing fortress wall facilities, which play a key role in defensive battles. When defending borders or regions, and to delay the advance of invaders while buying time for friendly forces to prepare for prolonged battles, fortresses were essential. Such fortress walls were organized in various shapes depending on their functions. For military aspects, it was necessary to be able to successfully defend the walls, but they continuously transformed depending on the type of battle or war.
During the age of the Goryeo Dynasty, they were invaded by various aggressors such as the Khitan, Mongolia, Jurchen, Kadan, Red Turbans, and Japan, and in response to such ongoing invasions, Goryeo reorganized their entire fortress systems.
There are many studies on the fortress walls during the Goryeo Dynasty, but there are very few studies related to that of the Gangwon Province. While previous studies contributed to the enhancement of understanding on organizing defense facilities in specific areas and on individual fortress wall relics, they were insufficient for understanding the overall mode of transformation of fortress defense systems of the Goryeo Dynasty. Understanding on the change of the overall fortress wall defenses is essential to make a more rational approach compared to the archaeological chronologies of individual fortress relics. Thus, this study examined the changes in the Gangwon Province in the process of the Goryeo Dynasty reacting to numerous aggressions and invasions focusing on this.
The process of invasion and reorganization of defense facilities in the Gangwon Province of the Goryeo Dynasty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as follows.
The first period is when the Liao Dynasty founded by the Khitan and the Jurchens invaded, and it reorganized the defense facilities along the east coast, while building numerous small-scale fortress walls. The second period is when the Post-Liao (Khitan) and Mongolia invaded, and most of the major hub fortresses of various regions were moved to high mountains, while some residents living on the coasts took refuge on islands and built new fortress walls there. The Unified Silla Kingdom period is when the regional fortress wall defense systems underwent fundamental changes. The third period is when the Red Turbans and the Japanese invaded, and town fortresses (eupseong), which was a new type of fortress walls, began being built in coastal areas. Fortress walls were installed (or existing fortresses were repaired or extended) in regions that connected the coastal areas to continental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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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려∼조선 시대 강원 지역 역 분포와 영서 북부 지역 간선 교통로의 변화

저자 : 정요근 ( Jeong Yo-ke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3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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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강원 지역을 대상으로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 역 분포와 역로망 구성을 분석하여 당시 이 지역의 간선 교통로 노선을 복원하고, 두 시기 사이의 차이와 변화를 검토하였다. 대체로 고려와 조선 시대 강원 지역에서 역 분포와 역로망 구성에 큰 차이가 없었음이 확인되지만, 영서 북부 지역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를 거치면서 역의 치폐와 통폐합, 그리고 간선 교통로의 변동이 크게 나타났다. 이는 이른바 남곡로(철원∼평강∼남곡∼회양)의 쇠퇴와 김화로(철원∼김화∼금성∼회양)의 중시로 요약할 수 있다. 남곡로는 고려 시대 개경과 동북면 지역을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의 경유 구간이었으나, 조선 시대 경흥대로(한양과 동북면 지역을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의 노선은 남곡로 대신 김화로를 경유하였다. 남곡로에서 김화로로 간선 교통로의 노선이 변화한 결정적인 이유는 조선 초기에 남곡로 통과 지역이 국왕을 위한 강무장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세종 사후에는 남곡로 지역에서 강무가 거의 거행되지 않았지만, 한번 쇠퇴한 간선 교통로로서 남곡로의 기능은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This paper analyzed the distribution of yeok (postal stations) and the web of postal roads in the Gangwon province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to recreate the main roads in this region during the eras and to examine the difference and changes between the two eras. Although there was little difference in the distribution of postal stations and the web of postal roads connecting them in the Gangwon province during the Goryeo dynasty and those during the Joseon dynasty, many changes were found in the north Yeongseo region; as the dynasty changed from Goryeo to Joseon, many postal stations were shut down and merged and main roads changed. Such changes could be summed up into the fall of the so-called namgok-ro (Cheorwon-Pyeonggang-Namgok-Hoeyang) and the rise of the Gimhwa-ro (Cheorwon-Gimhwa-Geumseong-Hoeyang). While Namgok-ro was main road which connected Gaegyeong and the northeast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Gyeongheung-daero (the main road which connected Hanyang with the northeastern region) passed the Gimhwa-ro instead of the Namgok-ro. The critical factor which prompted the change from Namgok-ro to Gimhwa-ro was because the area around Namgok-ro was chosen to be a martial training ground for the King. Although training sessions were rarely held in the Namgok-ro region after the death of King Sejong, the main road which went into decline once eventually failed to regain its fun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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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선과 명의 초피(貂皮) 교역 연구

저자 : 한성주 ( Han Seong-joo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7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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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貂皮는 주로 明의 使臣에 대한 예물 또는 선물로 활용되었다. 명의 사신들이 머무는 使臣館에서 金銀과 초피 무역을 금지한 것도 국가적 차원의 초피 증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점차 조선에 온 명의 사신들은 조선과의 초피 무역을 주도하였다. 세종 때 명의 사신들은 毛皮 무역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는데, 당시 모피 무역의 중심 물품은 초피였다. 이후 명의 사신들은 사신관에서의 사적인 무역까지 요구하였다. 마침내 성종 때는 사신관에서 초피를 비롯한 각종 물품들의 무역이 허가되었다.
한편 원래 명에 보내는 조선의 朝貢品에는 초피가 없었다. 그렇지만 세종 때 태종의 양위와 세종의 즉위라는 시점에서 초피 등을 보냈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초피를 명에 예물로 보낸 것이다. 이후 성종 때 명 황제가 조선에 별도의 進獻品을 요구하였는데, 이 別進獻(別貢)에 초피가 포함되었다. 명 황제가 조선에 별진헌을 요구한 것은 宣德帝의 후궁이었던 恭愼夫人 韓氏와 조선 출신 환관 鄭同 때문이었다.
명 사신들이 조선에 초피를 요구하거나, 무역에 나선 것은 당시 명에서 초피가 점차 유행하기 시작한 것에 원인이 있었다. 명 황제가 초피를 별진헌에 포함시킨 것도 명에서의 초피 유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명 황제는 자신의 생일에 맞춰 별진헌의 정례화를 요구하였는데, 조선은 초피 등이 조선의 산물이 아니고 女眞의 땅에서 구하는 것이라며 별진헌 물품의 감면을 요청하였다. 마침내 공신부인 한씨의 죽음과 정동의 죽음을 계기로 초피등의 물품을 줄여서 보낸 후, 감면을 요청하여 별진헌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명 사신들에 대한 초피 증여나 무역은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조선에서도 초피 등의 모피물이 희귀하게 되어 명 사신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사실 모피물이 희귀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조선에서도 초피의 유행으로 그 수요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었다. 초피의 유행은 초피의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上等의 초피는 여진과의 무역을 통해 마련하고 있었다. 이에 명에 대한 별진헌 정지 이후 명과의 초피 무역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Sable in Early Joseon was mainly used as a present for envoy of Ming. Joseon Prohibited foreign trade for gold, silver, and sable at accomodations for envoy from Ming. This prohibition was for presenting sable in national level. However, as time had passed, envoys of Ming sent to Joseon led sable trade with Joseon. Envoys of Ming sent to Joseon in the reign of King Sejong requested sable trade officially. Then times, main trade item among fur was sable. After then, the envoys asked for private trade at the accomodations. At last, foreign trade for some items including sable at the accomodations was allowed in Seongjong.
In the past, there had been no sable among tributes sent to Ming. But at the time when Taejong handed over throne to Sejong, Joseon sent sable etc. to Ming. This was the first time for Joseon to send sable as a tribute to Ming. In the reign of Seongjong, the emperor of Ming requested separate tributes(別進獻[別貢]). Then, the separate tributes included sable. The emperor's request was for royal concubine of Xuande Emperor(宣德帝), Gongshinbuin Han(恭愼夫人 韓氏) and eunuch Jeong Dong(鄭同) come from Joseon. Because sable became popular more and more in Ming then, envoys from Ming asked for sable or were engaged in foreign trade. It is thought that request for separate tribute for sable by the emperor of Ming was closely related to popularity of sable in Ming.
In the other hand, the emperor of Ming asked separate tribute sent regularly celebrating his birthday. However, Joseon requested to reduce size of separate tribute, saying that sable etc. were not produced in Joseon while they came from Jurchen. Coincidently, Gongshinbuin Han(恭愼夫人 韓氏) and eunuch Jeong Dong(鄭同) died so that Joseon reduced tributes like sable etc. At last, separate tribute existed no longer.
Since then, tribute or trade of sable for envoys from Ming had been remarkably reduced. Therefore, in Joseon, fur like sable became rare so that Joseon could not respond to requirements from envoys of Ming. In fact, fur was not rare. Rather, demand in Joseon for sable increased because of high popularity of sable. Popularity of sable brought increase of sable demand and price increase. High grade sable was imported from Jurchen. Accordingly, after separate tribute for Ming stopped, it was inevitable for sable trade with Ming to be redu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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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냉전과 탈냉전 시기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성격 : 전쟁과 평화, 통일 문제를 중심으로

저자 : 김도민 ( Kim Do-mi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1-19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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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민족주의가 냉전과 탈냉전 시기 어떠한 형태로 역사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민족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자 했다.
냉전 시기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는 1950년대 이승만 정권과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기를 살펴보았다.
첫째 이승만정권은 한국 민족주의의 반공적 성격을 혈연적, 폐쇄적인 단일 민족주의 특성과 연결 시켰다. 그러나 한국 지식인들은 냉전의 한복판을 살았음에도 약소 민족에 대한 연대와 반식민, 반전 사상을 노래하기도 했다. 둘째 1960년대 박정희정권은 민족 주체성, 한국적 민족주의를 주장했으며 반면 저항세력은 한일협정반대를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은 가짜 민족주의이며 자신들이 진정한 민족주의 세력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일협정 반대 세력들은 1965년 베트남파병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약소민족과의 연대성을 상실했다.
탈냉전 시기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전개는 1990년대와 2000년 전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첫째 1990년 전후 탈냉전의 도래와 함께 한국 민족주의는 고양됐는데, 특히 반미(反美)와 반일(反日)의 형태를 보였는데 이는 모두 '가부장'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즉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는 등장했음에도 그들은 남성적, 반일 혹은 반미 민족주의라는 맥락에서 주목받았을 뿐, '위안부' 시스템을 낳은 전쟁체제와 여성인권은 한국 민족주의의 고양 속에서 외려 배제되었다.
둘째 2000년을 전후하여 평화와 인권을 중심에 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활발해 졌다. 아래로부터의 평화를 향한 새로운 흐름은 문재인 정권이 이전 정권과 달리 2018년 평화와 번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즉 평화와 인권, 차별없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기존의 가부장적, 발전주의적, 혈연적, 폐쇄적이던 한국 민족주의를 아래에서부터 변화시키고 있었다.
2018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변화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가 주목 받는 현재, 한국 민족주의는 수직적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성찰하면서 수평적 연대를 위해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평적 연대의 가치는 평화와 인권이어야 한다.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Korean nationalism in the period of the Cold War and the Post-Cold War era, and aims to present the direction of Korean nationalism around the issue of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Korean nationalism has sometimes pursued horizontal solidarity among the minorities as a resistance nationalism, but it has also functioned as a vertical discrimination power of a strong and superior nationalism.
As the South-North Korea relations and North Korea-America relations change in 2018, the issue of peace and 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s attracting attention. Korean nationalism should be reconstructed for horizontal solidarity while reflecting on the history of vertical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And the value of the horizontal solidarity must be peace and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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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원학 진흥에 있어 기초자치단체와 지역대학의 역할

저자 : 이상균 ( Lee Sang-kyun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3-22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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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를 국가발전의 역량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의 시행으로 제도화되었다. 이로 인해 지역학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강원도에서도 2002년 개소하였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2010년 폐지된 강원학연구센터가 2018년 다시 개소되는 등 강원학은 진흥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강원도 단위의 강원학이 발전하려면 기초자치단체인 시·군 지역학이 동반 성장해야 한다. 지역학을 주민들이 실감할 수 있는 실천적 학문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연구결과를 정책에 반영하여 시행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점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기초자치단체는 지역학 연구기반 구축을 위해 연구자를 양성하고, 지역학 저변확대를 위한 대중화 정책을 시행해야한다. 지역학에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연구지원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과 우수성 발굴을 위한 연구와 자료집적을 지원하는 등 정신적·물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기반 조성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기초자치단체별로 연구수행 구심 기구가 있어야 한다. 재정의 안정성과 운영의 자율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기초자치단체 출연 민관결합 구조의 연구소 설립이 필요하다.
강원지역대학들이 표방하는 '지역과 相生, 지역발전 기여'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협력하여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원학은 대학과 지자체가 협력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분야이다. 지역대학들은 지자체와의 협력모델을 구축하여 강원학연구의 수요에 맞는 연구를 수행하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대학이 강원학을 매개로 자치단체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강원학연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학내 연구자와 연구기관을 결집하여 연구영역을 분담하고 새로운 연구 담론과 정책을 개발·제안할 허브기관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학의 강원학연구 의지와 역량을 자치단체에 제시하여야 한다. 대학은 강원학연구나 정책개발뿐 아니라 전문인력 인프라를 기반으로 자치단체의 지역학 최대 현안 과제인 아카이브구축을 위한 기초 작업 수행과 지역학연구 후속세대 양성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 역량강화를 통한 자치단체와의 강원학연구 협력은 궁극적으로 '강원학 진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고 대학과 지역사회의 소통 확장과 지역학문을 기반한 산학협력 우수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Based on enforcement 「Area culture promotion act」in 2014, Regional studies came into the spotlight. The center of Gangwon area studies was closed in 2010. But it was reopened in 2018. Gangwon area studies now are turning point of promotion.
In order to develop Gangwon area studies of metropolitan council, regional studies in a local government must be developed. A local government part is very important because their role is to lead practical studies which residents realized meaning of studies(The Regional studies popularization policy). The policy of making Regional studies and Regional studies popularization policy were needed. In order to make research foundation construction, Research institute of Public-Private Cooperation which secured autonomy of management and finance stability has to be founded
Local Universities have to construct mutual cooperation model and develop the policy in accordance with demand of Gangwon area studies. Gangwon area studies is one of the most suitable areas of cooperating between a local government and university. The hub institute which will develop new study discussion and suggest policy has to be developed. Through this, the hub institute has to suggest a local government to the will and power of Gangwon area studies. And the hub institute will build on infrastructure, professional resources and cultivate people of talent in order to construct archive which is the most important task. A cooperative study between a local government and Gangwon area studies will ultimately achieve a common goal(“Promotion of Gangwonhak”) and suggest extension of the communication and the great model of the interaction between University and Industry based on regional study.

KCI등재

8조지 포레스트(George Forrest, 1873-1932)의 윈난(雲南)식물채집과 이미지의 오류

저자 : 심혁주 ( Sim Hyuk-joo )

발행기관 : 강원사학회 간행물 : 강원사학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1-24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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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포레스트(George Forrest, 1873~1932)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식물학자다. 그는 1904년 중국 윈난(雲南)으로 식물채집을 위해 떠난 이래로 1932년 59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중국 서남부를 28년간 6번씩이나 탐험했다. 그가 중국으로 탐험을 떠난 이유는 당시 국가적 차원의 목적, 즉 유럽의 인류사와 자연사에 대한 학문적 인식의 확대와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욕망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당시 동아시아로 번지고 있었던 희귀 꽃과 열대식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포레스트는 찾고자 했던 꽃과 식물을 발견하기까지 중국 윈난일대에서 처음 경험하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큰 곤경을 겪었다. 당시 그가 직면한 윈난의 그것들은 서구에서는 접촉하지 못했던 인종, 기후, 종교, 식물들이었다.
본문의 목적은 식물학자 조지 포레스트가 경험한 중국 윈난 일대의 공간을 그의 서구적인 시선과 그로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타자의 이미지와 그 오류를 추적하고자한다. 19세기 서구에서 중국 윈난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가본 사람이 전파한 단편적인 느낌과 인상 그리고 그들이 전파하고 유통한 이미지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포레스트가 남긴 기록과 인상의 이미지들은 실지 윈난의 공간이 갖고 있던 특수성과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본문은 먼저 조지 포레스트가 탐험했던 중국 서남부(윈난과 티베트)지역과 식물채집의 동선을 추적하면서 당시 그가 체험한 장소의 풍토성을 추적하고 영국에 들여온 식물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그가 인식했던 중국 안의 윈난이라는 공간은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그가 식물채집과는 별개로 인식했던 그곳의 지형, 풍토, 인종 그리고 위생 등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았으며 그런 경험과 인식이 윈난을 어떤 개념적 공간으로 이미지화 되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George Forrest (1873-1932) is a botanist from Scotland. Since his departure for plant collection in Yunnan, China in May 1904, he has explored the southwest of China six times in 28 years, until his death at the age of 59 in 1932. The reason why he went to China was because of the purpose of the national dimension at the time, the expansion of academic awareness of human history and natural history, and the desire for new space, but personally, because of the curiosity about rare flowers and tropical plants that had spread to East Asia at that time . He suffered a great deal of trouble because of the climate and mystery of the space he first experienced in Yunnan, China, until he discovered the flowers and plants he was looking for. Those of Yunnan that he faced at the time were places, environments and races that he did not experience in the Wes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aise a misunderstanding of the space that China 's Yunnan experienced in George Forest experienced by his western gaze and the' otherization 'of the space formed naturally by him. Considering that those who have not been to Yunnan in the West at the time have finally believed in the fragmented feelings and impressions of the people who have gone through and the spread of the image, the records and impressions left by Forrest may have a gap in the climate of Yunnan's climate will be.
In order to highlight the theme consciousness, the text will first trace the trace of vegetation in the southwest part of China (Yunnan and Tibet), which George Forest explored, and trace the history of the climate of the place he felt at that time, and examine the plants brought to England. Through this, he examined the peculiarity of Yunnan in China, which he recognized at that time, and how he looked at the space, topography, climate, race and hygiene that he recognized separately from plant collection, I want to track whether it is "ty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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