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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2018)~3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12
인문학술
3권0호(2019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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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남지역 선교기지 구축과 건축 활동 -윌슨과 스와인하트를 중심으로

저자 : 우승완 ( Woo Seong-wa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2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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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선교건축은 선교사들의 한국 적응에 따른 한옥 개조와 한국인들의 변용을 위한 개량이 반영되어 독특한 형식의 건축물을 형성하였다. 이를 통해 서양 근대 건축의 이해를 쉽게 했고, 현대건축으로 이행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특히 미국 남장로회의 선교건축은 선교지 분할 협정에 따라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에 집중되었다. 선교사들은 복음 선교를 목적으로 파견된 선교사라 할지라도 건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는데 그들의 선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전문화된 활동이 요구되었고, 그들 중 적극적으로 활동한 인물이 윌슨과 스와인하트 선교사였다.
윌슨은 남장로회 의료선교사로 파견되었지만 건축 감독을 하면서 한국인 기술자를 양성했고, 토목회사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건축활동을 하였다. 스와인하트는 영선선교사로 남장로회의 선교지역뿐만 아니라 이화여대 공사 등 다양한 건축활동을 하였다. 이들의 선교 초기에는 중국인 건축기술자에 의존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을 기술분야별로 양성했다. 윌슨과 스와인하트의 건축활동에 대한 영향으로 종합계획에 따른 선교마을이 구축될 수 있었다. 선교건축은 일본식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우리건축이 근대건축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한국건축의 한 축을 이룩했다.


Construction of modern mission sites reflects missionaries' ability to adapt to remodel Hanok Acculturation of Korean improvement leading to construction of unique styled buildings. Through this effort Koreans were able to learn western modern architecture. This serves as an opportunity to transition towards modern architecture. According to the mission site partitioning agreement,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mission construction coalition focused more in southern and northern Jeolla provinces as well as greater Gwangju City. Even though the missionaries were commissioned for spreading the gospel, they participated indirectly with construction efforts. As their involvement became more widespread, the need for professional contribution grew. But it was missionaries Wilson and Swineheart who were the most active. Wilson was commissioned as a medical missionary by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but he was active in supervising construction efforts. During his service, he fostered Korean technicians and actively contributed using his background in civil engineering. Swineheart, a Youngsun missionary, not only served in his mission territories for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but served for the construction of Ewha Womans University and other construction projects. At the onset of their missionary work, they relied on Chinese construction professionals but as time went on, they fostered Korean construction professionals. Wilson and Swineheart's roles in the construction of various mission villages were significant. Korean Mission construction numbered less than Japanese style construction, but it played a pivotal role in establishing Korean style construction as a development of modern construction.

2순천지방 최초 목사 임직자 : 정태인 목사의 삶과 목회

저자 : 차종순 ( Cha Chong-soo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71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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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목사는 1873년에 태어나 1947년까지 한국 역사의 전환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전통적인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전라남도 보성군과 고흥군이라는 외진 시골지역에서 서구 선진 학문을 보급하고, 애국적인 국가관을 확립시킨 선구적인 지도자였다.
정태인 목사는 1905년 이후 오웬과 변요한의 조사로 활동하였으며, 1913년까지 크레인 선교사의 조사로 활동하다가 순천노회의 파송을 받아 무만리교회의 목사로 임직하였다. 무만리교회의 목사로 있는 동안 교세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하였다. 3ㆍ1운동기간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1923년에는 안정된 교세를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이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순천노회를 떠나 고흥읍교회, 구례읍교회, 제주도의 삼양리, 모슬포, 고산교회를 거쳐 다시 모교회인 무만리 교회로 1937년 다시 순천노회로 복귀하였다. 복귀이후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노회에 참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태인 목사는 그의 삶을 통해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미리 살아갔다. 이런 모습이 때로는 당시대에 오히려 거부를 당하기도 하였다.


From 1873 and until his death in 1947, pastor Jung Tae-in lived during the most critical time in Korean history. Born into a traditional Confucian family but later accepting the Christian faith, Jung Tae-in disseminated western teachings and promoted patriotic views of Korea in the rural areas of Bosung and Goheung in southern Jeolla province.
After 1905, Jung Tae-in served as an assistant researcher under Owen and Johanne Byun and for Missionary Crane until 1913. He then was appointed as a pastor to Moomanri Church, dispatched by the Sunchun Presbytery. During his tenure, he worked earnestly to stabilize the church. His role was limited during the March 1st Movement. After stabilizing the church he contributed to campaign funds for the liberation movement in 1923.
After serving at various churches: Goheung Church, Gooraeup Church, Samyanri, Moseulpo and osan churches in Jeju Island he returned to his home church Moomanri in 1937. There he declined to participate in the presbytery as an act of opposing Shrine Worship. Jung Tae-in lived an exemplary life that should be patterned by future Korean Christians. However, his lifestyle attracted opposition from others.

3고정옥의 국문학 갈래 인식과 민요론

저자 : 김용찬 ( Kim Yong-cha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3-10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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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옥은 경성제대에서 조선문학을 전공했으며, 민요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을 제출했다. 그는 해방이 되면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의 교수가 되었고, 민요와 고전시가를 중심으로 국문학 전반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였다. 국문학 갈래들의 상호 관계를 고려하여 정리한 그의 가설은 문학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진화론적 인식에 기반한 이론적 체계는 문학사를 '발전'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는 '우리어문학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는데, 당시 학회 구성원들은 대학에서의 교육과 국문학의 체계를 세우기 위한 연구를 시급한 과제로 여겼다. 그들은 활발한 연구 활동을 전개하여, 집필에 공동으로 참여하여 『국문학사』를 비롯한 연구 성과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학회에서 발간한 학술지를 통해서 다양한 논문들과 국문학 자료들을 발표하였다. 한국전쟁으로 구성원들의 진로가 남과 북으로 갈리면서 학회는 지속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연구 성과들을 남겼다. 이 당시 고정옥의 연구 활동은 우리어문학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고정옥의 연구에 대한 평가는 민요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문학 전반에 걸친 그의 업적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국문학의 전 영역에 걸쳐 논의를 전개했던 고정옥의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고, 그 의미를 따져 보았다. 이를 통해 문학사의 가설을 세우고, 국문학 전반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했던 그의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민요를 비롯한 구비문학을 문학사의 흐름에 중요한 요소로 인식했던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정옥의 연구들을 다룬 선행 연구들을 참고하여, 한국전쟁 이전에 제출된 연구 성과들을 중심으로 국문학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는지 검토했다. 이를 통해 그가 문학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각 갈래들의 존재 양상과 상호 연관관계를 인식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학문적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요에 대한 인식과 그 의미를 따져 보았다.


Ko Jeong-Ok majored Chosun literature at Keijo Imperial University with a dissertation on Korean folksongs. After liberation of Korea, he became a professor of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Educa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published papers on Korean literature, focusing on Korean folksongs and classical poetry. His hypothesis, which was organized taking into account the mutual relations among the genres of Korea literature, demonstrates the stream of literature history manifestly. On the other hand, his theory based on the evolutionary perception has been criticized for looking at the literature history from a viewpoint of 'advancement'.
He organized 'Urieomunhakoe '(Association for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the members of which considered the studies for setting up the system of university education and Korean literature urgent. They carried out studies actively, publishing research outcomes, such as < Korean Literature History >. They also published a variety of papers and documents on Korean literature in the journal of the association. Although the association could not be continued long owing to the Korean War that separated the members into South and North, they left significant research outcomes during a short working period. The research activity of Ko Jeong-Ok during the period is closely related to Urieomunhakoe.
The assessment of the research of Ko Jeong-Ok has been focused on Korean folksongs, whereas his achievements across the Korean literature has not been evaluated sufficiently. Therefore, in this article Ko Jeong-Ok's research outcomes across the whole range of Korean literature is reviewed and evaluated in order to cast light upon his feature as a researcher who set up a hypothesis of literature history and tried theorization of Korean literature. In particular, attention is paid to his understanding of oral literature including folksongs as an important element in the stream of literature history.
Consulting previous studies on Ko Jeong-Ok's research, his methodology of the classification of Korean literature is reviewed focusing on his publications before the Korean War. This study shows how he cognized literature history as well as the existence pattern and interaction of each genre. His cognition on folksongs, which is regarded as the starting point of his academic career, is also assessed.

4이병주의 <철학적 살인>에 나타난 사랑의 법적 한계

저자 : 안광진 ( An Kwang-ji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1-116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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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의 단편소설 <철학적 살인>은 간통의 문제를 직접적인 소재로 잡고 법과 문학의 한계와 외연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민태기는 대학시절 자신과 라이벌이었던 고광식이 아내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철학적 합리화와 고민을 통해 작가는 간통의 문제와 사랑의 책임,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작가 나름의 치열한 의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문학과 법률과의 상관관계를 해석해 본다면,
첫째, 문학은 결코 법을 통해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되려 법과 다른 차원에서 그 인간성의 자유로움과 구원을 추구하고 있다.
둘째, 문학은 법적 처벌과는 달리, 또한 인간적 신념과 철학이라 간주되는 것과도 달리, 가장 인간적인 본성을 드러내 보이는 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법의 처벌과 징계를 받고 있는 인간이라 해도 그 법을 인정하고 순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입장이다. 문학은 법적 처벌을 받는 인간을 다룬다 해도 법이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대상이라는 것이다.
셋째, 문학은 법적 처벌과는 달리 인간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희망 또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소설 <철학적 살인>은 이병주의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극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처한 사랑과 질투와 구원의 문제를 심리적 묘사의 치열함으로 수준 높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의 진가는 주인공의 확신에 찬 살인 행위가 점차 변화과정을 겪으며 인간본성의 근저를 건드리고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 소설에서는 다시 한번 인간을 대하는 문학과 법률의 차이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Lee Byung-ju's short novel < Philosophy Murder > shows a direct subject of adultery, demonstrating the limitations and expansion of law and literature. The main character, Min Tae-gi, commits murder because he thinks Ko Kwang-shik, who was his rival in college, has an affair with his wife.
And through the philosophical rationalization and agony of the main character, the author shows the problem of adultery, the responsibility of love, and the psychological state of the protagonist through the intense consciousness of the writer himself.
If you interpret the correlation between the literature and the law that this novel shows,
First, literature never solves human problems through law. It seeks freedom and salvation of human nature at a different level from the law.
Second, literature, unlike legal punishment, also focuses on revealing the most human nature, as opposed to calling for human conviction and philosophy. They say that even a human being who is being punished and disciplined by the law, the literature does not going to accept the law.
Third, literature, unlike legal punishment, also offers hope for the possibility of human salvation.
Overall, the novel < Philosophical Murder > depicts the love, jealousy, and salvation of human beings in dramatic situations, as it is usually the case with Lee Byung-ju's works, with the intensity of psychological description. The true value of the story is that the protagonist's convincing murder is gradually undergoing a process of change touching the root of human nature and opening up the possibility of redemption.
This novel, meanwhile, once again concisely illustrates the difference between literature and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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