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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update

The Oriental Studies , Dong Yang Hak

  •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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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계간
  • : 1229-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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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69권0호(2017)~82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117
동양학
82권0호(2021년 0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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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심수관가(沈壽官家)의 기억, 그 변화와 활용 - 청송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갖는 의미와 관련하여

저자 : 정영구 ( Jeong¸ Young G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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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심수관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예가 중 한 명이다. 특히 400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한국 이름과 전통을 지키며 세계 최고의 도자기 명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과 애정을 받는다. 심수관가가 민족정신이나 애국심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남원과 청송에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여 학계에서도 심수관 가문에 대한 적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심수관의 행적 중 대부분이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지만 여전히 심수관 가문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를 증명할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진위여부를 판명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본고에서는 충분한 선행연구가 존재하는 이 논란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새롭게 밝혀진 결정적인 증거없이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이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1910년대부터 출간된 신문자료를 통해 심수관 일가에 대한 기억들을 분석하고 그 기억이 변화하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심수관 가문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심수관가에 전승되어오던 기억이 일제강점기에는 내선일체의 논리로, 해방 이후에는 한국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조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설의 내용으로 인해 기억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공립 박물관에 기록된 서술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과 위험성을 제고했다.


The Japanese ShimSoogwan is one of the most famous potters in Korea. In particular, he kept his Korean name and tradition for 400 years and became one of the best ceramic masters in the world. As Simsoogwan family was recognized as a symbol of national spirit or patriotism, the Simsoogwan Pottery Pavilion was established in Namwon and Cheongsong. However, there are some controversies in academia because the story about the Simsoogwan family is not a historical fact. However,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 makes it difficult to clearly determine the authenticity. Rather than jumping into this controversy, I analyzed the memories of the Shimsoogwan family through historical newspaper materials and looked at the changes in their memories. Through this, I looked at how the Shimsoogwan family started and how its roots were made. It also shed light on the aspect that the memory of Shimsoogwan family was used as a logic of 'Korea and Japan are One policy(內鮮一體)' in Japanese colonial era and again as a symbol of national spirit in Korea. And finally, I looked at the process of memory fixing due to the contents of the novel and recalled the publicity and danger that the descriptions recorded in the public exhibition hall 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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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료로 보는 애국가 짓기와 부르기의 역사

저자 : 김수현 ( Kim¸ Suhy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6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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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90년대부터 발생한 '애국가 가사 짓기'와 '애국가 부르기'의 역사를 음악사적 사료를 통해서 고찰한다.
이 논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목차를 구성하였는데, 일제강점기를 기준으로 하여, 첫째는 1910년 이전의 역사, 둘째는 1910년 이후의 역사, 셋째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동해물과 애국가'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다룬 1910년 이전의 애국가 역사는 또 다시 1890년대 '애국가 가사 짓기'가 크게 일어난 시기와 1900년대로 '애국가 노래 부르기'가 크게 유행했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 때 대한제국에서 <대한제국애국가>라는 국가도 탄생하게 되었으며 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애국가 부르기가 태극기게양과 만세삼창을 동반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으로 모든 '애국가 짓기'와 '노래 부르기'가 금지되고 애국가를 담은 모든 서적이 압수당한다.
두 번째로 다룬 1910년 이후의 역사는 다시 많은 애국창가집이 발행되고 독립운동 진영에 보급되어 애국가가 애국창가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 1910년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많은 국외 독립운동 단체에서 공식적인 의례에서 애국가를 자주 불렀지만 국내에서는 '애국가'를 짓거나 부르거나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1920년대로 나뉜다.
세 번째로 다룬 '동해물과 애국가'의 역사는 다시 1919년, 1945년이 기점이 되어 전후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무궁화가'로 시작한 '동해물과 애국가'는 처음엔 다른 애국가들과 함께 쓰였으나 1919년 이후 대표곡이 되었다. < Auld Lang Syne >의 곡조에 맞춰 부르던 '동해물과 애국가'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국가가 제정되기 전까지 안익태 곡조로 부르기로 하였다가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This paper examines how the Korean national anthem has developed in terms of lyrics and songs based on musical materials. It investigates three different periods: 1st period is the national anthem before the 1910 Japanese occupation; 2nd for after 1910; and today's version of the national anthem.
While the 1890s in the 1st period was the decade busy for “writing the lyrics of the national anthem”, the 1900s was the time when “singing the national anthem” was considered an important national practice. A national anthem called, “The Great Han Empire Anthem” that was composed at that time. As many schools adopted national anthem singing practice being accompanied by Taegeukgi hosting and shouting hurray three times, it was widely sung across the entire nation. However, the Japanese imperial rule prohibited singing the national anthem while confiscating all the books containing the national anthem.
Despite such banning, more various patriot songbooks were published after 1910 in support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as a result, different types of patriot songs were sung until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dopted an official national anthem to represent its authority in 1920s.
The national anthem beginning with the lyric of 'donghaemulgwa' that was first called as 'Mugunwhasong' was sung with other national anthem songs, but it finally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national anthem in 1919. This national anthem lyrics adopted the melody of < Auld Lang Syne > before An Ik-tae composed and introduced the national anthem, so-called, donghaemulgwa anthem, right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rule on Aug 15th, 1945. Since then, this song has been officially playing as the national anthem representing the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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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忠武公 李舜臣 北方遺蹟 南·北·露 共同調査 方案 硏究

저자 : 백종오 ( Baek¸ Jong-oh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67-9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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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무공 이순신 북방유적의 공동조사 방안에 대해 지표조사와 발굴조사 등 고고학 조사 방안을 제시한 후 그간의 남북 공동조사와 한러 발굴조사의 경향을 검토하면서 남·북·러 공동조사의 실현 가능한 방법을 도출해 본 것이다.
이순신 북방유적은 두만강 하구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함경도 삼수의 동구비보, 경원의 건원보, 경흥의 조산보와 녹둔도 등이 대표적이다. 또 조산보 소속의 봉수 및 연대인 남산봉수와 두리산봉수, 불암수호, 고봉수호, 고조산수호, 하단수호 등도 이에 해당한다. 주변 鎭堡인 경흥진, 서수라보, 무이보, 아오지보, 아산보, 안원보, 경원진 등도 향후 함께 考究할 대상이다.
이 중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와 조산보는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 이순신이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한 역사적 현장이다. 또 1860년 북경조약 체결로 상실한 조선의 영토이기에 더욱 애잔하다. 때문에 이순신 북방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녹둔도와 조산보 등의 역사적인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첫 단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기존 남북 공동조사는 개성 만월대 고려궁성 발굴조사 외에는 미진한 편이다. 한·러 발굴조사 또한 연해주 지역의 발해 유적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시·공간적 다양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이순신 북방유적의 남·북·러 공동조사는 문화교류와 학술적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모두의 민족 영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공동조사는 녹둔도 토성, 조산보와 승전대 등 관련유구에 대하여 합의된 조사 매뉴얼에 따라 하강조사와 탐색트렌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유구의 전모를 파악한 다음, 별도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연차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된다.
이순신 북방유적에 대한 남·북·러 공동조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러 발굴조사를 시작하고, 러시아측 조사단이 북측 고고학자들을 발굴 현장에 초청하여 '충무공 이순신 북방유적 남·북·러 공동조사'를 성사시키는 것이 보다 현실적 방안으로 판단된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 북방유적 공동조사는 기존에 진행되었던 남북교류 협력 사업에 이어서 남북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러시아를 매개로 한 국제 협력 사업으로 확대시킨다면, 동북아 평화 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This article presents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methods such as earth surface and excavation investigation for the joint investigation plan of the northern relics of Admiral Yi Sunsin, and then approaches the practical method for the South-North-Russia joint investigation by examining the trends of the North-South joint investigation and Korea-Russia excavation investigation.
The northern relics of Yi Sunsin are distributed around the Tumen River estuary. Representative relics include Donggubibo(董仇非堡) of Samsu(三水), Geonwonbo(乾原堡) of Kyongwon(慶源), Josanbo(造山堡) of Kyonghung(慶興), and Nokdundo(鹿屯島) in Hamgyong Province. Also includes are Namsan Bongsu, Durisan Bongsu, Bulamsuho, Gobongsuho, Gojosansuho, and Hadansuho, which are Bongsu(烽燧, beacon fire) and Yeondae(煙臺, beacon fire stand) belong to Josanbo. Gyeongheungjin(慶興鎭), Seosurabo(西水羅堡), Muibo(撫夷堡), Aojibo(阿吾地堡), Asanbo(阿吾地堡), Anwonbo(安原堡), and Gyeongwonjin(慶源鎭), which are the neighboring Jinbo(鎭堡), are also subject to further study.
Among these, Nokdundo and Josanbo at the estuary of the Tuman River are historical sites where Yi Sunsin defeated the invasion of the Jurchen(女眞) before the outbreak of the Imjin War. It is a land of sorrow because Joseon lost it due to the Convention of Peking in 1860. Therefore, the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of the northern relics of Yi Sunsin is significant in that it is the first step for more concrete restoration of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Nokdundo and Josanbo.
Existing joint investig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are insufficient except for the excavation of Goryeo Palace Manwoldae in Kaesong. Existing Korea-Russia excavations focus only on the Balhae relics in the Maritime Province, lacking temporal and spatial diversity. Therefore, it is expected that the joint investigation on the northern relics of Yi Sunsin allows meaningful results in terms of cultural exchange and academic work because it targets the common national heroes of the two Koreas. Future joint investigation needs to conduct descent investigation and exploration trench in accordance with the agreed investigation manual for related relics such as earthen fortress of Nokdundo, Josanbo and Seungjeondae(勝戰臺). It is considered reasonable to establish a separate medium-and long-term plan and conduct annual excavation investigations after figuring out the whole aspect of the relics.
A more realistic way to accomplish a joint investigation on the northern relics of Yi Sunsin, is to start an excavation investigation between Korea and Russia, and then a Russian investigative group invite North Korean archaeologists to the excavation site to achieve “the South-North-Russia joint investigation of the northern relics of Yi Sunsin”. In particular, the joint investigation is expected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reconciliation between the two Koreas following the previously conducted inter-Korean exchange and cooperation projects. Furthermore, if the project is expanded to an international cooperation project through Russia, it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formation of a foundation for Northeast Asian peac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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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다산과 혜강의 대학관(大學觀)에 나타난 정치리더십 비교 고찰

저자 : 김경수 ( Kim¸ Kyungs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9-11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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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는 독창적이며 탈성리학적인 철학체계를 수립하여, 조선후기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고심한 대표적 실학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 다산과 혜강의 이러한 실천적 성격은 정치철학 분야에서 집약되어 나타나기에, 『대학』 해석에 나타난 양자의 정치리더십을 비교하는 것은 그 철학적 특징들을 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본고에서는 정치리더십을 핵심역량과 그 행위의 성격으로 분류하여 각각에 해당하는 철학적 특징들을 비교고찰한다. 먼저 정치리더십의 핵심역량에서는 다산과 혜강이 정치지도자의 자격 요건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다음으로 행위의 성격에서는 핵심역량이 치인의 정치행위로 발휘될 때 나타나는 특징의 상이함을 비교한다. 다산과 혜강의 『대학』 해석에 나타난 핵심 키워드는 각각 '추서'와 '추측'이다. 그러므로 정치리더십의 비교는 추서와 추측 개념이 정치리더십의 핵심역량과 행위의 성격에 작용하는 양상을 추적하는 것을 연구방법으로 삼는다.
이러한 비교 분석은 개화기 이전 국가 개혁론에 관한 민족 주체적 사유의 원형과 그 발전양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상사적 의의를 갖는다.


Dasan Jeong Yakyong and Haegang Choi Hangi are well known with the representative sirhak scholars as addressing the problems which overcome social chaos in late Joseon dynasty and recover public order, establishing post Neo-Confucianism's and inventive philosophy. For these practical characters are summarized at political philosophy, it has the merit of examining clearly that compares Dasan and Haegang's political leadership though the interpretation of Great Learning.
In this paper, we classifies political leadership into core competencies and characters of action. After that, we compares philosophical characters between Dasan and Haegang's interpretation of Daxue on the classified section. In the core competencies of political leadership section, qualification requirements of political leader are analyzed. In the characters of action section, philosophical character's differences appeared when the core competencies turn into political activities are analyzed. Those are Chuseo(推恕) and Chuchk(推測) implied in Dasan and Haegang's interpretation of Great Learning as a core conception. Thus, the comparison of political leadership between them has a method of study investigating how these two core conceptions are functioned to core competencies and characters of action.
Above all, these comparisons have significance on identifying the original form and development aspect of nationalistic thought about state reformation ideas before the enlightenment period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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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는 우리 민족의 하늘에 대한 원형적 심상(archetypal image)이 내재해 있다. 단군신화에는 한국인의 하늘관념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고, 또 신선사상의 비의(秘義)들이 숨겨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는 뫼비우스적인 순환 운동을 보인다. 이 뫼비우스의 구조에서 하늘은 땅으로의 의지를 보여준다. 땅으로의 의지는 '홍익인간'이고 그 실현은 '재세이화'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하늘을 향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하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하늘의 의지가 땅으로 향하기 때문에 순환적으로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향한 욕망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의 특성은 '하늘'로 그리고 다시 '땅'으로의 순환적 의지를 갖는 민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조선은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통치를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의 하늘 - 경험이 극도로 쇠퇴한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성리학은 단군신화의 하늘 관념과 신선사상을 잇고 있다. 한국 성리학의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천명'을 주제로 논쟁이 이뤄지는 16세기 전반이다. 「천명도(天命圖)」는 16세기 전반의 한국 성리학의 특징이 집약적이고 상징적으로 함유되어 있다. 「천명도」에 계승된 단군신화의 문화적 유전자는 초월적 하느님으로서의 관념과, 하늘과 사람 사이에 아무런 사이가 없다는 '천인무간(天人無間)' 사상이다. 이것은 이법천(理法天)의 특성을 갖는 중국의 천관과 다르다. 중국과 다른 하늘관념으로 인해, 우주론적 관심이 아니라, 심성론적이고 수양론적인 관심을 주된 것으로 하는 조선 유학의 특징이 형성된다. 그리고 수양론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주자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In Dangun mythology, there is an inherent archetypal image of the heaven of our people. The myth of Dan-gun best describes the idea of Korean heaven, and the secret of Korean Sin-seon (Taoism) thought is hidden in it. The overall composition shows a mobius-like circular movement from Heaven(God) to earth and back to Heaven. In the structure of this Mobius circle, Heaven (God) shows a will to the earth. The will to the earth is expressed in 'Hong-ik-in-gan(humanitarianism)' and the realization of it is expressed by 'Jae-sae-i-hwa(Ruling the world with reason)'. On the other hand, humans show their will to Heaven. But the desire to be heaven is, in turn, the desire for 'Hong-ik-in-gan' and 'Jae-sae-i-hwa', because the will of Heaven is directed to the earth. In other words,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s can be defined as people with a cyclical will to Heaven and again to the earth.
Joseon was a period of extreme decline in Heaven-experience of the Korean people as they began to rule according to the ideology of Neo-Confucianism. Nevertheless, the Joseon Neo- Confucianism continued to inherit the idea of Heaven and Korean Sin-seon(Taoism) thought in Dangun myth.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Neo-Confucianism began to emerge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when the debate over the theme of 'Chenmyeong(Providence)' took place. 'Cheonmyeongdo' contains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Neo-Confucianism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in an intensive and symbolic manner. The cultural heritage of Dangun mythology inherited to the 'Cheon-myeong-do' is the idea of transcendental God and the 'Cheon-in-mu-gan' that there is no gap between Heaven and man. This is different from the idea of Chinese Heaven, which has the characteristics of 'Yi Beopcheon(理法天H, Heaven as laws and principles)'. Due to the different Heaven concepts from China's, the characteristics of Joseon Confucianism are formed, not cosmological interests, but psychosocial and self-cultivational interests. And in terms of the methodology of the theory of self-cultivation, Joseon Neo-Confucianism takes a different path from Zhu X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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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양명학연론』 및 그 재출간본들의 오류 연구

저자 : 한경애 ( Han¸ Kyungae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9-16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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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연론』은 1933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이다. 이 글은 1953년 잡지 『思想界』에 다시 분재됐고(6월호 및 7월호), 이후 단행본과 전집 등에도 재수록돼 몇 차례 출간됐다. 『薝園國學散藁』(文敎社, 1955), 삼성문화문고 11(삼성문화재단, 1972), 담원정인보전집 2(연세대학교 출판부, 1983) 등이다.
이런 이력을 지닌 『양명학연론』은 『동아일보』 연재 이후 저자 자신의 수정 기회를 갖지 못해 수많은 오류를 그대로 안고 있는 글로 남아 있다. 시간을 다투며 조판을 해야 했을 신문 연재본에 오류가 많은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뒤 이를 바로잡지 못한 상태에서 저자가 납북돼 사망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양명학연론』 텍스트의 가장 어처구니없는 문제점은 현재 이용되고 있는 후대 간본들에서 본문과 인용문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왕수인의 글을 정인보의 글로 오해하게 돼 있다는 얘기고, 실제로 그렇게 오해해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문장이 어디서 끊어지는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아 내용 파악을 어렵게 한다. 구절이나 문장이 누락되는 경우도 많고, 오자와 탈자는 더욱 셀 수 없을 정도다. 기존의 『양명학연론』 텍스트는 연재본이든 후대의 재출간본이든 너무나도 많은 오류를 안고 있어 그대로 번역하거나 학술 자료로 쓰기 어려운 상태다.
이러한 오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원래의 연재본과 후대에 출간된 각 간본들을 교차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연재본이든 후대 간본이든 조판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일차 걸러낼 수 있고, 그런 단순 실수 이외의 부분을 저자 정인보의 본래 문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The Expound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was a series of articles in the Dong-A Ilbo in 1933. This article was published in two separate articles in 1953 in the Sasanggye (June and July issue). Since then, the book has been re-released several times in books and the complete series of publications. These include Damwon Gukhak Sango 薝園國學散藁 (Mungyosa, 1955), Samsung Cultural Library No. 11 (Samsung Cultural Foundation, 1972), and Damwon Jeonginbo's Complete Series Collection 2 (Yonsei University Press, 1983). The Expound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which has such a history of series and publication, remains with many errors. The author did not have the opportunity to revise it after the Dong-A Ilbo series. Even if there were too many errors in the newspaper series that had to be typeset within strict timing, The fatal reason was that the author was kidnapped by North Korea and died without correcting it. The most absurd problem of The Expound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texts is that the texts and quotations are being used in a mess in the later editions currently in use. For example, there are cases in which Wang Soo-in's writing is misunderstood as Jeong In-bo's, which is cited incorrectly. It is also challenging to grasp the content itself as it is often unclear where the sentence breaks.
In many cases, verses or sentences are omitted, and there are countless typographical errors. The existing The Expound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text has many errors, whether serial or later re-published, and is difficult to translate or use as academic material. It is essential to cross-validate the original series and each subsequent publication to correct those errors. In the process, whether it is a serial or later edition, mistakes made in the typesetting process can be first filtered out, except for such simple mistakes, the original sentences of the author Jeong In-bo can be consid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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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동양학연구원(東洋學硏究院) 50년의 성과와 과제

저자 : 김철웅 ( Kim¸ Cheolwoo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69-18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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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연구원의 전신은 東洋學硏究所로 1970년 9월 28일에 설립되었다. 동양학연구소는 2011년 9월에 동양학연구원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동양학연구원은 開院 50주년을 맞이하였다. 동양학연구원 50년의 활동과 성과를 되짚어보면서 향후 발전을 위한 과제들을 제시해보았다.
동양학연구원의 가장 큰 업적은 『韓國漢字語辭典』과 『漢韓大辭典』의 완간일 것이다. 동양학연구원은 30여년간의 노력 끝에 『한국한자어사전』과 『한한대사전』 편찬을 완성하였다. 이들 사전을 완간한 이후, 『이두사전』, 『한국고유한자자전』 등 학계가 필요로 하는 각종 사전을 지속적으로 편찬할 예정이다. 동양학연구원은 등재학술지 『東洋學』 발간, 동양학학술회의의 개최, 동양학총서 간행 등을 통해 동양학 발전에 기여해 왔다. 앞으로도 『東洋學』과 동양학총서의 지속적인 간행, 학술 가치가 높은 동양학학술회의 개최 등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동양학연구원은 역사문화연구소,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소, 동아시아교류연구소 등의 산하 연구소를 두고 있다. 앞으로 동양학연구원은 연구원 체제의 근간인 산하 연구소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양학연구원은 체제 개편과 함께 새롭게 아시아학을 표방하였다. 이제 아시아학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은 연구 영역과 목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자 확충과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연구 활동의 확장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좀 더 안정적인 예산이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동양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효용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시대와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양학연구원의 앞날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60년, 70주년에 즈음해서는 동양학연구원이 단국대학교의 중추 연구기관을 넘어 국내외 아시아학의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괄목상대한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succeeds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which was founded in September 28, 1970. The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was reorganized into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in September 2011 and is now continuing. This year is the 50th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This paper traces back the Academy's 50-year activities and achievements, and suggests tasks for the future developments.
The greatest accomplishment of the Academy is the completion of the Dictionary of Korean-Chinese Characters and the Great Chinese-Korean Dictionary. At the end of the 30 some years of efforts, the Academy completed the compilation of the Dictionary of Korean-Chinese Characters and the Great Chinese-Korean Dictionary. After the completion of these dictionaries, the Academy is planning to continuously compile dictionaries, such as the Yidu Dictionary and the Korean-origin Chinese Character Dictionary, which the academic world requires. The Academy has contributed to oriental studies' developments by publishing the Oriental Studies that is a journal listed in the Korea Citation Index, hosting annually the Academic Conference for Asian Studies, publishing “Asian Studies Series”, and so on. For the future, the Academy should contribute to academic advancements by consistently publishing the Oriental Studies and “Asian Studies Series”, and continuously hosting the academically highly valuable Academic Conference for Asian Studies. The Academy under itself has Institute of History & Culture, Institute of East Asian Traditional Culture, and Institute of East Asian Interchanges as its subsidiary institutes. The Academy should search for the methodologies to invigorate its subsidiary institutes which are the bases of the academy system.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renewedly professed for Asian studies within its systemic reorganization. The Academy should establish its research areas and goals as much as it professes Asian studies. Also, the expansion of researcher pool and the budget support are necessary to back it up. In order to expand and reinvigorate research activities, stabler budget should be supported.
Currently, the Humanities including Asian studies goes through the era pursuing usefulness and economic feasibility. In such a circumstance, it is predictable that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shall face a lot of difficulties in its future. I hope that the Academy of Asian Studies will make remarkable progress so that it can become a central institution for Asian studies at home and abroad beyond Dankook University's central research institute around the time of the next 60th or 70th anniver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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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의 성과와 전망

저자 : 진재교 ( Jin¸ Jae Ky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89-21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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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8년에 설립한 대동문화연구원을 확대 개편한 동아시아학술원의 20년 성과와 전망을 제시하였다. 2000년에 개원한 동아시아학술원은 연구기관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협업과 융복합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교육과 연구의 통합, 대학의 연구기관에 교육 기능을 결합한 전략, 학술 장에서 학술적인 장기 의제의 제안과 실현 방법론의 제시 등으로 한국 대학에서 연구기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여 그동안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동아시아학술원은 지난 20여 년 노력의 결과 2002년 이후 동아시아학술원의 동아시아학과와 한문고전번역 협동과정 등에서 박사 학를 받은 12명이 대학의 교수로 진출하였고, 연구과제로 참여한 박사 86명은 국내외 대학의 교수나 학술 연구기관에 진출한 바 있다. 대학의 연구기관으로서 새로운 연구·교육의 결합 방식을 통한 성장은 한국인문학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uggest the achievements and prospects of the Academy of East Asian Studies, which was expanded and reorganized from the Daedong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established in 1958. The Academy of East Asian Studies, which opened in 2000, was a research institute to present a model of collaboration and convergence betwee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The integration of education and research, the strategy of combining educational functions with university research institutes, the proposal of academic long-term agendas, and the presentation of practical methodologies in the academic sphere, has drawn much attention from Korean universities and has been subject to benchmarking.
As a result of its efforts over the past two decades, twelve Ph.D.s from the Academy of East Asian Studies and the Translating Pre-modern Korean Text in Classical Chinese have got a professor position at university since 2002. Furthermore, while 86 Ph.D.s who participated in a research project have become a professor position at universities or as a researcher at academic institutes. The growth of the Academy of East Asian Studies through the combination of new research and education as a research institute at a university drove the simultaneous growth of Korean humanities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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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연구 현황과 향후 과제

저자 : 주영하 ( Joo¸ Youngha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15-25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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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하 '한중연장서각')의 연구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살피는 글이다. 한중연장서각은 조선시대 국가왕실과 민간 사대부 문중의 고전적(古典籍)을 조사·수집·보존처리·관리·연구하는 기관이다. 1981년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로부터 조선왕실 고전적이 이관된 이후, 한중연장서각은 국가왕실 고전적의 연구와 함께 민간 사대부 문중의 고전적을 조사·수집해 왔다. 한중연장서각이 2011년 이전에 수행해온 연구 과제 대부분은 국학진흥연구사업과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본예산이 대폭 증액되면서 한중연장서각의 인적·물적 여건은 그 전과 달리 본격적인 고전적 종합 연구기관의 면모를 갖추었다. 2019년부터 한중연장서각의 연구자들은 '장서각 고전적 관리 시스템(Jangseogak Archive Resource Management System, 이후 JARMS)을 통해서 고전적의 서지·해제·이미지구축·보존처리상태·수장위치·반출상태 등의 작업을 웹사이트 기반에서 수행하고 있다. JARMS가 내부 연구용 도구라면 웹사이트 '디지털장서각'과 '한국고문서자료관'은 외부에서 한중연장서각의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향후 한중연장서각은 '장서각 책의 문화사' 프로젝트에 모든 연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장서각 책의 문화사'는 ① 책의 생산과 유통, ② 책에 담긴 지식, ③ 책의 물질적 기반인 종이 등의 3분야로 구성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축적해온 책과 지식에 얽힌 역사는 향후 한중연장서각의 핵심 연구 성과가 될 것이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current state of the research in the Jangseogak Archives at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AKS Jangseogak Archives) and its upcoming tasks. The AKS Jangseogak Archives is an institute that survey, collect, process to conserve, oversee, and study the old books and documents from the court of Chosŏn (1392~1910) and private literati families (munjung). Ever since the Office of Jangseogak at the Bureau of Cultural Properties Preservation transferred the old books and documents of the Chosŏn court to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in 1981, the AKS Jangseogak Archives has conducted research on the documents of the royal archive on the one hand, and surveyed and collected books and written materials from private munjung on the other. Prior to 2011, the AKS Jangseogak Archives relied its research entirely on the support of the Committee for Promotion of National Learning (Gukhak jinheung yeon'gu sa'eop chjin wiweonhoe) and the Korean Studies Promotion Service (Han'gukhak jinheung sa'eoptan). Since the 2012, with a drastic budgetary increase for its material and staffing conditions, the AKS Jangseogak Archives has been reshaped into a full-scale research institution of old books and documents. The research staff at the AKS Jangseogak Archives has been carrying out on web-site platforms their projects on bibliographical records, introductions, digital images, states of conservation, archive locations, and availability of the collected old documents through the Jangseogak Archive Resource Management System, JARMS). Whereas the JARMS is an internal research tool, the web sites, Digital Jangseogak (Dijiteol Jangseogak, jsg.aks.ac.kr) and Archive of Old Documents of Korea (Han'guk Gomunseo Jaryogwan, archive.aks.sc.kr), are the platforms through which scholars can access the materials collected in the AKS Jangseogak Archives from the outside. In the coming years, the AKS Jangseogak Archives plans to focus its research on the project entitled “The Cultural History of Books at Jangseogak Archives,” which comprises three areas: The production and circulation of the book, the knowledge contained in the book, and the paper that is the material basis of the book. The AKS Jangseogak Archives will produce the core research achievements on the history of books and knowledge that the people of Chosŏn had accumu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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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东方、东方学与东方主义

저자 : 李雪涛 ( Li Xueta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8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53-263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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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以“ 东方”、“东方学” 以及 “东方主义” 概念在西方的逻辑发展为中心, 从德语的脉络出发, 对西方世界的东方观念以及 “东方学” 在西方的历史进行了系统的批判性考察。在剖析作为后殖民主义术语的“东方主义” 的过程中, 作者认为, 如果以黑格尔辩证法正反合三一式来看待东方学发展的话, 第二次世界大战后在东亚重建的东亚研究, 并非简单的回归, 而是超越了原先的 “国学”(正题)和西方的 “东方学”(反题)的 “合题” 式研究, 并对这一理论观点作了初步的综合性阐述。


Based on the German context, this paper systematically and critically examines the logical development of the concepts Orient and Orientalism as well as the history of Orientalism in the west. In the analysis of the post-colonial term Orientalism, it is proposed that the development of Orientalism can be viewed in the light of the triads of Hegel's dialectics. The East Asian Studies reconstructed in East Asia after World War II was not simply an academic return, but the studies of “synthesis” that transcended the original Guoxue (National Learning), the thesis in the east and Orientalism, the antithesis in the west. A comprehensive illustration is applied as a preliminary study of this theoretic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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