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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HUMANITIES

  •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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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32권0호(2021) |수록논문 수 : 320
인문과학연구
32권0호(2021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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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고구려 고분벽화 자료의 이산(離散) -근현대 쌍영총 자료를 중심으로-

저자 : 박아림 ( Ah-rim Park ) , 박지영 ( Park Jiyoung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3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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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에 걸쳐 산포된 자료로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각각의 벽화고분이 처음 축조되던 3-7세기의 고구려의 각 세기별 문화의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후의 근현대 시기의 발견, 조사, 연구의 각 과정에서의 접근과 자료 정리에서 나라와 연구자별 개별의 시각과 해석이 덧입혀져 여러 층위의 인식과 이해가 쌓여왔다. 발견 이후에 축적되거나 산포된 자료가 보여주는 고구려 벽화의 이해의 확산과 한계는 다양한 시점에서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의 이산離散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5세기대의 벽화고분 중 쌍영총을 사례연구로 한다. 최근 쌍영총의 벽화 일부가 새롭게 발견, 전시되어 근현대기에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초자료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주제이다.
쌍영총은 현재 북한 평안남도 남포특급시 룡강군 룡강읍에 소재하고 있으나 쌍영총의 널길 벽화 일부와 1910년대 일본의 오바 쓰네키치와 1990년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제작한 모사도가 한국과 일본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널길 동벽벽화가 2018년경 뒤늦게 수장고에서 발견되었다. 이전에 모사도와 유리건판으로만 알려지던 쌍영총 널길 벽화의 발견은 남한, 북한, 일본 등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자료의 활용과 해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본문에서는 근현대 자료로 본 쌍영총의 연구사와 벽화 자료에 기반한 이해와 인식을 쌍영총관련 기초자료의 현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쌍영총 널길 벽화의 발견, 한성백제박물관 소장의 북한 제작 쌍영총 모사도의 검토, 일본 도쿄예술대학미술관 소장 쌍영총 모사도의 조사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남한과 북한, 일본, 중국 등 공동의 교류를 통하여 앞으로 이루어낼 고구려 벽화 연구의 향후 지향점은 이러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이해와 인식 가운데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부분들을 정확한 자료의 공유와 공개, 발굴을 통하여 드러내고, 보다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공동의 노력을 통하여 복원해내는 것이 될 것이다.


Materials on the Koguryo tomb murals have been dispersed to several countries since they have been discovered and investigated in the early 20th century. Those materials distributed to each country have been studied and understood from each different perspectives, and have been produced a whole set of knowledge on the subject. The diaspora feature of the Koguryo murals can be well exhibition in research materials on the Twin Pillars Tomb which represents the 5th century Koguryo murals as the part of wall paintings of the Twin Pillars have been surprisingly reappeared from the storage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fter it have been buried from the eyes of people after the excavation of the tomb in 1910s.
Located at Yonggang prefecture, Nampo city, South Pyongan province of North Korea, the Twin Pillars Tomb have been excavated in 1910s and the photographs and the replica paintings as well as the fragments of wall paintings have been distributed to South Korea and Japan. The Eastern side wall of the entranceway of the tomb has been disappeared from the sit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time period, and have been known only by the partial replica paintings and dry glass plates made in the 1910s, which limited the understanding the actual composition of the wall painting and the arrangement of overall painting subject matters inside a two chambered tomb. 
Surprisingly, the east and the west side wall paintings of the entrance way of the tomb reappeared in 2018 in South Korea as they sorted out about 10 boxes of Koguryo wall painting fragments housed at the museum. The procession scene on the east side wall of the entrance way shows the 4-5 levels' procession scene consisting of about 30 people and contains the beautiful painting of Koguryo females and the carriages and the mounted warrior with armor.
The placement of large procession scene on the entrance way is very rare as for the Koguryo murals and this type of pictorial program would ask us to reconsider the general placement of Koguryo's typical subject matters of daily life scenes. As more figure paintings have been recovered from the entire wall, more in-depth interpretation on the pictorial program of the Twin Pillars Tomb could be suggested further.
This diaspora phenomenon of Koguryo murals certainly proves the unique position of Koguryo murals as a research subject which can be only accomplished by the international corporation of each country which possesses important research materials. These international efforts would make it successful to complete Koguryo mural studies and bring the most satisfied out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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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개경(開京)과 강도(江都)의 청자

저자 : 박지영 ( Park Ji-young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37-7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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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최고급 청자의 수요처였던 고려의 수도 개경과 강도의 청자를 시기별로 정리하고, 청자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고려 전기의 청자는 '순화'명 청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청자의 위상이 최상급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고려도경』(1124)이 쓰여진 12세기 전반에는 금은기보다도 높게 평가받는 비색의 청자들도 제작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인종 장릉(1146) 청자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며, 당시 최고급 청자는 송대 궁정자기의 양식과 유사한 취향으로 제작되었다. 12~13세기 중반의 개경·강도와 관련된 출토품을 살펴보면, 전반적인 양상은 큰 변화없이 유지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시기에도 최고급 청자는 송·금 궁정자기의 양식과 유사한 형태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가마 등 기술적인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강도 시기는 순청자 계열의 송대 궁정자기 양식이 상품 上品으로 제작되는 동시에, 화려한 상감과 퇴화, 동화 장식의 청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송과의 관계가 느슨해진 강도 시기를 중심으로 고려적인 미감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강진보다는 부안의 요장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명종 지릉의 유물은 13세기 전중반 개경과 강도의 고급 청자 양상과 매우 유사하여 1202년 보다는 1255년 능보수 시에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였다. 환도 이후인 13세기 후반에 이르면,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송·금대 자기의 영향 속에서 새롭게 원 元 자기와의 관련성이 나타나는 시기로 화금청자(원숭이문 편호), 간지명 청자, '정릉'명 청자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청자의 유통은 곡물과 마찬가지로 해운을 통해 강진, 부안의 청자들이 개경과 강도로 공상供上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해저 출토 유물에서 보듯 권신 權臣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상당량이 유통되었다고 여겨진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evolution and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Goryeo celadon produced for the capitals of the dynasty, Gaegyeong and Gangdo, where there was considerable demand for celadon wares of the highest quality. As shown by the celadon jar bearing the inscription “Sunhwa” (or “Chunhua”), early Goryeo celadon was inferior to that of the mid-Goryeo period, when Goryeo celadon reached its zenith in terms of quality and popularity. According to the Illustrated Account of Goryeo (Goryeo Dogyeong, or Gaoli Tujing, 1124), the celadon produced during the early twelfth century included works that were highly prized for their attractive jade blue surface, and hence were considered more precious even than gold and silver wares. As attested by the celadon bottle discovered in the Jangneung Royal Tomb of King Injong (r. 1122-1146), Goryeo celadon wares of the highest quality originating from this period were very similar to the celadon used by the imperial court of Song. Discoveries made so far show that the high-quality celadon vessels used in the two Goryeo capitals during the twelfth and thirteenth centuries maintained the style of the vessels used at the imperial court of Song, for which new techniques and kilns had been introduced. The high-quality Goryeo celadon vessels of the Gangdo period were characterized by a plain surface reflecting the style of celadon produced for the Song imperial court. It was also during this period that such vessels began to be lavishly decorated with the techniques of inlaying, slip trailing, and copper red painting. The use of these new techniques, which eventually came to characterize Goryeo celadon, is conjectured to have been related with the growing alienation between Goryeo and Song after the former moved its capital from Gaegyeong to Gangdo. The new style of Goryeo celadon was more prominent among the works produced at the kilns in Buan rather than those in Gangjin. It is remarkable that the celadon works found in the Jireung Royal Tomb of King Myeongjong (r. 1170-1197) share many stylistic similarities with the high-quality vessels used in Gaegyeong and Gangdo in the early to mid-thirteenth century, suggesting that they were buried at the tomb not in 1202, the year the tomb was built, but in 1255, when it underwent major repairs. The celadon produced after the dynasty returned its government to Gaegyeong in the later thirteenth century began to display features related with the ceramic works of Yuan (1279-1368), as represented by the celadon wares with a gold design (i.e. a flattened jar with a monkey motif), or those engraved with inscriptions of the Chinese sexagenary cycle, and “Jeongneung”.
Celadon was transported from the kilns in Gangjin and Buan to consumers in Gaegyeong and Gangdo by the same sea routes as those used to transport tax grains. Underwater archaeological discoveries suggest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the celadon works transported to the capital were shipped there to meet the demand among Goryeo's aristocratic househ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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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회고와 창신: 홍콩 미술사 연구의 역사와 현황

저자 : 왕관위 ( Wang Guanyu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73-9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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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미술사의 흥기와 발전의 맥락은 그 특수한 시공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공간적으로 중국 본토를 등에 대고 최상의 교통로인 주강(珠江) 하구가 밖으로는 남중국해에 인접하여 세계와 연결되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역시 이 지리적인 이점으로 19세기 초에 영국이 홍콩섬을 점령한 뒤 100여 년 동안 영국의 해외영토로서 발전하여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어 특별 행정자치구로 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역사이다. 중국과 영국 정부의 다른 통치 정책, 역사적으로 홍콩 문제에 대한 양국 간의 힘겨루기는 모두 홍콩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독특한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은 홍콩에서 미술사 연구가 중국 본토, 세계 지형과 깊고도 미묘하게 관련되도록 하였다.
홍콩에서 처음으로 미술사 연구를 제공한 학과가 홍콩중문대에 설립되었다. 중문대의 건립은 영국의 해외영토에서 단 한 곳의 고등학원만 허용하였던 철칙을 깨뜨렸고 영어 이외에 중국어로 수업을 하는 등 중국 전통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취지로 중국 고대문화 미술을 중심으로 홍콩에서 미술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반세기에 가까이 발전을 거듭한 학과는 이제 본토에 기댄 채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는 문화적 자세로 본토의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탐구를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중문대 미술학과와 홍콩중문대 미술관의 경우, 현지 대학 및 박물관 예술기관과 연계해 분석하고 홍콩에서 미술사 연구가 학문적 초창기에서 성숙기로 이어지는 주요 과정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여 홍콩 현지의 미술사 연구의 독특한 전통과 강점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된 다원적 지향성과 풍부한 성과를 제시하였다.


As for the context of the rise and development of the art history of Hong Kong,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specific space and time. Spatially, sitting back to Mainland China, its Pearl River estuary, the best transportation route is adjacent to the South China Sea to the outside, and it has an advantage, connected to the world. Also, thanks to this geographic advantage, it had been developed into one of the British territories overseas for about 100 years since the U.K. occupied Hong Kong Island in the early 19th century, was returned to China in 1997 and became a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These are unusual histories, too. The different governing policies between the Chinese and British governments and a trial of strength between the two countries on the issue of Hong Kong historically had profound impacts on Hong Kong society. Hong Kong's unique geographic location and historical background related studies of art history to mainland China and world topography deeply and subtly.
The department that provided research on art history for the first time in Hong Kong was opened at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The establishment of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broke the ironclad rule that had permitted only one higher education institute in British territories overseas and started research on art history in Hong Kong, centering around ancient Chinese culture and art intending to spread traditional Chinese culture, e.g. Giving classes in Chinese. The department that has been developed for nearly half a century now develops a new exploration, emphasizing the identity of the mainland and its cultural identity with a cultural attitude to go to the world, relying on the mainland. Thus,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Department of Fine Arts and 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Art Museum understood the unique tradition and strong point of research on art history in Hong Kong and presented advanced pluralistic orientation and rich achievements based on that, conducting analysis in connection with local universities, museums, and art institutions and systematically introducing the main process in which research on art history in Hong Kong continued from early academic years to a mature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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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懷故創新:香港藝術史研究的歷史與現狀

저자 : 王冠宇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97-113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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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港藝術史興起與發展的脈絡, 與其所處的特殊時空緊密相關。空間上, 背靠中國大陸, 倨首交通要道珠江口岸, 向外則鄰接南海、聯通世界, 佔盡優勢。亦是因此地利, 十九世紀初期英國佔據香港島, 之後更將其逐步發展為英國海外領土百餘年, 直至1997年香港回歸中國成為特別行政區, 造就一段不尋常的歷史。中英政府不同的管治政策, 歷史上兩國在香港問題上的角力, 都曾對香港社會產生深遠影響。獨特的地理位置與歷史背景, 使得香港藝術史研究與中國內地以及世界格局都有著深入且微妙的關聯。
香港第一個提供藝術史研究的學科由香港中文大學創立。中大的建立, 打破英國的海外領土只允許一所高等學院存在的慣例, 使用英語之外的中文授課, 以推廣中國傳統文化為要旨, 奠定了香港藝術史研究以中國古代文化藝術為核心的初調。學科歷經近半個世紀的發展, 如今懷抱倚靠內地、面向世界的文化姿態, 日漸強調本土身份及文化認同, 展開一段新的探索。因此, 本文將以香港中文大學藝術系與香港中文大學文物館為例, 結合本地其他高校及文博藝術機構進行剖析, 系統介紹香港藝術史研究由學科草創到步向成熟的主要歷程, 籍此理解香港本土藝術史研究的獨特傳統與優勢, 以及在此基礎上所發展出的多元面向和豐富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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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콘셉트: 독일연방의 문화정책

저자 : 볼프강슈나이더 ( Wolfgang Schneider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15-13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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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국가의 문화주권은 문화 분야의 법률 및 행정, 특히 언어, 초, 중, 고 및 대학교육, 교육전반, 라디오, 텔레비전 및 예술에 대한 책임과 관련하며, 이는 16개의 독일연방주정부들의 주요 책임이다.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 30조에 따르면, 문화 및 교육 정책에 대한 국가의 임무와 역량은 주정부들의 소관이다. 소위 말하는 문화적 연방주의는 지역문화의 개발계획을 세우고 국가의 문화적 지원금을 주 정부들이 개별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맞게 설계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문화 정책의 컨셉에 대한 실행은 각각의 주정부 의회에서 선거를 통하여 그 주의 정권을 차지한 정당연합 안에서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주정부의 법률적 효력기간으로 계약된 시기에 한하여 공식적으로 적용된다.
이 텍스트들을 통해서 사회적 과제, 중요한 문제 및 정당 간의 정치적 차이에 대한 결과가 생성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특별한 관심은 학교와 문화정책 영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프로그램이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하고 있는지, 또는 교육 및 문화 환경에서 어떤 프로젝트들이 강조되어야 하는지에 있다.
예를 들어, “포괄적 문화에 대한 백서”(Hildesheim 2014)는 니더작센 주의 문화정책에 대한 지도제작을 통해서 가시화된 대도시 이외의 문화 활동과 사회 현상에 주목한다. 개인 및 시민참여로 행해지는 공동의 문화예술 활동이 비 상업적이고 여러 분야 및 정치영역을 교차하는 차원에서 행해진다면 포괄적인 문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문화정책 연구는 계속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A federal state's cultural sovereignty is concerned with laws and administration in the cultural field, in particular, language, elementary, middle, high, and college education, the overall education, and responsibilities for radio, television, and art, which are 16 German federal state governments' main responsibility. According to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Article 30 of the Basic Law, the state's mission and capacity for cultural and educational policy are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state governments. The so-called cultural federalism sets up a plan for the development of local culture and allows the design of the state's cultural subsidies for the needed situations individually by the state governments.
The execution of this concept of cultural policies is done through negotiation by the alliance of the political parties that took the regime of the state through the election in each state government assembly and is officially applied only during the period contracted by the period of the state government's legal effect.
Through these texts, the results of the investigation on social tasks, important issues, and political differences between political parties will be produced. Most of all, special interest is in how organically the school and the cultural policy domain are connected, what programs support culture and arts education, or what projects should be emphasized in the educational and cultural environments.
For example, “White Paper on Inclusive Culture” (Hildesheim, 2014) pays attention to cultural activities and social phenomena other than those in the visualized metropolis through mapping the cultural policies of Lower Saxony. The joint cultural and artistic activities through individual and citizen participation can be a comprehensive culture if they are done in the dimensions that cross various non-commercial fields and the political domain. Also, studies of cultural policies in this field should continue to be consid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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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Konzeptionen fur Kulturelle Bildung Kulturpolitiken im foderalen Staat Deutschland

저자 : Wolfgang Schneider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31-146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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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 Kulturhoheit der Lander bezeichnet man die primare Zustandigkeit der 16 deutschen Bundeslander bezuglich der Gesetzgebung und Verwaltung auf dem Gebiet der Kultur, also insbesondere die Zustandigkeit fur Sprache, Schul-und Hochschulwesen, Bildung, Rundfunk, Fernsehen und Kunst. Nach dem Grundgesetz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Artikel 30 liegen die staatlichen Aufgaben und Kompetenzen fur die Kultur-und Bildungspolitik in ihren Handen. Der sogenannte Kulturfoderalismus ermoglicht es regionale Kulturentwicklungsplanungen zu erstellen und staatliche Kulturforderungen landesspezifisch zu gestalten.
Die Konzeptionen dieser Kulturpolitiken werden nach den jeweiligen Wahlen zu den Landtagen von den Koalitionen der Regierungsparteien neu verhandelt und in Vertragen fur die Legislaturperiode formuliert. Eine Untersuchung dieser Texte kann Ergebnisse generieren, anhand derer gesellschaftliche Herausforderungen, inhaltliche Schwerpunkte und parteipolitische Unterschiede diskutiert werden konnen. Von besonderem Interesse ist dabei. wie die Politikbereiche Schule und Kultur miteinander in Verbindung gebracht werden, mit welchen Programmen Kulturelle Bildung Forderung erfahrt und welche Projekte in der Bildungs-und Kulturlandschaft Akzente zu setzen versuchen.
Im „Weißbuch Breitenkultur“ (Hildesheim 2014) wird zum Beispiel mittels einer kulturpolitischen Kartografie des Landes Niedersachsen auf ein gesellschaftliche Phanomens aufmerksam gemacht, das die Kulturarbeit jenseits der großen Stadte in den Fokus nimmt. Gemeinsames kulturelles und kunstlerisches Tun mit individueller Teilhabe und burgerschaftlichem Engagement auf einer nicht kommerziellen, sparten-und politikfeldubergreifenden Ebene, das kann Breitenkultur sein. Und uber dieses Feld der Kulturpolitikforschung ware weiter nachzuden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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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북한 소재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연구현황

저자 : 최성은 ( Choe Songeun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47-17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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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북한에 있는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주요작품들을 살펴보면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진행되어온 우리 학계의 연구현황을 정리하고, 미술사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을 제기하여, 향후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조사와 연구의 방향을 밝혀본 것이다.
북한지역 고려시대 주요 불교조각을 석불과 석탑조각, 철불. 금동불 등, 재료별로 나누어 보았는데, 지역적으로는 크게 세 지역(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황해남북도, 서경이었던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남북도, 고려 화엄불교의 성지였던 금강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수도 개경 일대의 불상들은 남경이었던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지역으로 연결되고, 여기서 다시 남한강을 따라 원주, 충주지역으로 확대된다. 수도 개경과 서경, 남경 등, 행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경영되었던 중심사찰들이 육상로와 수로의 주요 거점에 세워진 지방의 여러 사찰들과 상호 영향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었음은 남북한 불교조각의 지리적 분포를 조망함으로써 유추가 가능하다.
남북교류를 통해 이루어졌던 금강산과 개성 지역 관광으로 일시적으로 당일 또는 단기 여행이 가능하기도 하였으나 연구자들의 실물조사는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도록에 게재된 도판이나 일제강점기에 촬영되었던 흑백필름을 가지고 연구되었다는 점에서 연구 환경이 매우 제한되고 열악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소재 불상들에 대한 연구는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있어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남한 소재 자료만으로는 밝히기 어려운 점을 명확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It is the purpose of this paper to discuss the major images and monuments of the Goryeo period in North Korea and to summarize the scholarly research from South Korea between 1980 and present. In doing so, we will focus on several important objects or monuments of the Goryeo period in North Korea, highlight the art-historical problems associated with them, and suggest a new direction for future studies of Goryeo Buddhist sculpture.
Goryeo Buddhist sculptures of North Korea are categorized by their materials : stone Buddha and relief on stone pagodas, iron Buddha, and gilt-bronze Buddha. They are found mainly across three areas : in the Hwanghae province with Gaeseong(開城, Capital of Goryeo dynasty) at the center, in the Pyeongan province with Pyeongyang(平壤, West Capital of Goryeo Dynasty) at the center, and in the Gangwon Province with Mt. Keumgang(金剛山, sacred place of Avatamsaka Buddhism of Goryeo period) at the center. Buddhist images at Capital Gaeseong are connected in style and iconography to those in the Gyeonggi Province with Seoul(the North Capital of Goryeo dynasty) at the center. They also spread to Wonju(原州) of the Ganwon province and Chungju(忠州) of the Chungcheong province along the southern Han River. It is assumed from the geographic distribution of Buddhist sculptures in South and North Korea that the major monasteries serving as religious and administrative bases in Gaegseong(Capital), Pyeongyang(West Capital) and Seoul(South Capital) were related to the temples constructed along the land and river traffic routes.
To carry out cultural exchange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emporarily allowed South Korean people to travel Mt. Keumgang and Gaeseong area on guided one-day tours(Gaeseong) or package tours(Mt. Keumgang). But it was not possible for scholars of South Korea to investigate images and monuments for their research. Unable to see real images at the major Buddhist temples of the Goryeo period, scholars used photographs published in the catalog and black and white negative films taken during the period of the Japanese occupation, for their research on Buddhist sculptures in North Korea. Despite these challenges, the research on the Buddhist sculptures in North Korea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exploring many problems associated with Buddhist images and monuments of the Go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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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남북한 무형문화재 교류 협력 방안

저자 : 이귀영 ( Lee Gwiyoung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179-20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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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의 무형문화재 개념은 대동소이하다. 남한의 무형문화재는 북한에서는 비물질유산으로 칭해진다. 남과 북은 모두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개념을 담고 있다.
남한의 무형문화재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서 법제화되기 시작하여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로 분법화되었으며 전형보존 원칙을 지향하고 있다. 북한은 2015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유산보호법>에서 '비물질유산'을 규정하고 있으며, 2019년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여 원형보존 원칙 등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남한은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전통공연·예술, 전통기술, 전통생활관습, 의례·의식, 전통놀이·무예, 전통지식, 구전전통 및 표현 등 7개 범주 146종을 지정하였다. 북한은 구전전통과 표현, 전통예술, 사회적관습과 례식 및 명절행사, 자연과 우주와 관련한 지식과 관습, 전통수공예 등 5개범주 112종목의 '국가비물질유산'을 등록하였다.
남북 무형문화유산 교류 협력 실행을 위한 기본 방향으로 ①무형유산의 전형이 보존되는 방향으로 교류 협력 진행, ②남북 상호 간 신뢰와 존중, ③무형유산의 교류 협력을 인도적 차원으로 격상, ④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단계별로 접근, ⑤남북 상호 상생하는 교류 협력, ⑥남과 북간국력 차이에 따른 남북 주도의 현실 고려, ⑦국민적 지지와 공감대 형성의 교류 협력, ⑧미래지향적 교류 협력 등의 기본 방향이 필요하다.
이를 기본 방향으로, 보다 구체적 교류 협력 실행방안으로서 ①조사 연구와 연구자의 교류, ②자료의 축적, 정보화, ③무형문화유산의 원형(전형) 탐색과 보존, ④전시, 공연과 남북 기능보유자의 교류, ⑤민관협력의 강화, ⑥국제 사회에서의 남북 공조 강화, ⑦무형유산을 위한 상시평화공간 조성, ⑧미래지향적이고 지속적인 법, 제도의 정비, ⑨교류 협력의 단계적, 지속적 추진방안 등의 추진이 필요하다.


The concept of intangible properties of North Korea is almost same as that of intangible properties of South Korea, which is called immaterial heritage in North Korea. South and North Korea follows the concept of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 in the UNESCO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outh Korea's intangible properties aim for the principle of the prototype preservation, which were enacted from the 'Cultural Properties Protection Law' of 1962 and divided to the 'Act on Preservation and Promotion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2015. North Korea stipulated 'immaterial heritage' in the 'National Heritage Protection Ac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n 2015 and presents a direction on the principle of the original state preservation through the revision of 'Socialist Constitution' in 2019.
South Korea designated seven categories such as traditional performance․ arts, traditional technology, traditional living practices, rituals․ceremonies, traditional plays․martial arts, traditional knowledge, and oral tradition․ expressions and about 150 items as the national designated cultural properties. North Korea registered five categories such as oral tradition․expressions, traditional arts, social practices․ceremonies․seasonal customs events, knowledge and practices regarding nature and space and traditional handcrafts and about 110 items as 'National Immaterial Heritage'.
The fundamental direction to execute the exchange collaboration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South and North Korea is needed as follows : 1) execution of the exchange collaboration to lead the preservation of prototype of intangible heritage, 2) mutual trust and respect of South and North Korea, 3) elevation to the humanitarian level for the exchange collaboration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4) a gradual approach according to the development of South and North Korea's relations, 5) the exchange collaboration to co-exist South and North Korea mutually, 6) consideration on reality leading by South and North Korea according to the power difference of two nations, 7) the exchange collaboration to form a national support and a bond of sympathy, 8) the future-oriented exchange collaboration. 
The more concrete executing plans for the exchange collaboration based on the above is also needed as follows : 1) exchange of research and study and researchers, 2) accumulation of materials and informatization, 3) search and preservation of the original state of Intangible heritage, 4) exchange of exhibitions, performances, and artisans of South and North Korea, 5) reinforcement of the cooperation in the public and private sectors, 6) reinforcement of the cooper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7) creation of everyday peaceful space for intangible heritage, 8) organization of the law and system for future-oriented and sustainable promotion, 9) gradual and sustainable promotion plans of the exchange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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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획논문-남북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 『조선력대미술가편람』을 통해 본 북한의 미술인명사전 편찬

저자 : 황정연 ( Hwang Jung-yon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07-23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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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북한화가 리재현이 편찬한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4년 초판/1999년 증보판)의 편찬체제와 내용 검토를 통해 우리나라 미술인명사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미술사적·사전학적 의의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은 북한에서 발간된 최초의 미술가 인명사전이자 총 987명에 달하는 화가, 서예가, 조각가, 공예가, 미술사가, 평론가를 비롯해 건축장식가, 무대미술가, 도안가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활동한 작가들의 약력을 두루 수록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종합미술가사전으로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 대한 미술사적 가치에 대해 다음의 측면을 언급할 수 있다. 우선 實見이 어려운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품 등을 다수 소개했다는 점, 국내 학계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북한에 작품이 전래된 18~19세기 群小 작가들이 다수 수록된 점, 국내에는 자료가 부족한 북한 근현대 작가들의 정보가 풍부해 한국미술사 일부를 채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전학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 후기 人物錄에서 출발해 『근역서화징』(1928)으로 대표되는 근대식 인명사전의 전통을 계승한 측면이 있고, 1960년대 이후 출간된 북한의 역사·미술사전의 경향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미술가사전 편찬의 흐름이 반영되었다고 평가된다.
다만, 월북학자들의 1950·60년대 성과에 기초하다 보니 이후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누락되었고 조선시대 서화, 특히 문인화나 궁중회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작품해석, 용어에 있어 남북한 편차를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사전이 당대 사회문화적 여건, 학문 수준을 가장 집약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는 사실에 비추어, 『조선력대미술가편람』이 분단 이후 북한에서 진행된 미술사 연구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자료라고 하는 점은 분명하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significance of art history and lexicography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artist name dictionary through a review of the compilation system and contents of the A Guide to Korean Artists through the Ages (Joseon ryeokdae misulga pyeollam) compiled in 1999 by North Korean painter Li Jae-hyeon.
This Guide is the first dictionary of artists published in North Korea, with a total of 987 painters, calligraphers, sculptors, craftsmen, art historians, critics, architectural decorators, stage artists, design artists, and other ones who have been active in their fields in North Korea.
The following aspects can be mentioned for the value of art history in A Guide to Korean Artists through the Ages. First of all, the fact that it introduces a large number of the collections of the Joseon Art Museum in Pyongyang, which is difficult to get to, the fact that many small artists from the 18th to 19th centuries who had been handed down to North Korea, although they did not receive much attention from South Korea. It is possible to fill part of the history of Korean art due to the wealth of information.
From a biographical point of view, there is the fact that inherits the tradition of a modern-style human name dictionary, which is represented by Documents Painters and Calligraphers in Our Country(Geunyeok seohwa jing) by Oh Se-chang. It can be evaluated as a material reflecting the current of Korean artist dictionaries.
However, since the contents based on the past achievements by North Korean scholars have been maintained, many new informations on painters and calligraphers have been omitted, and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Koreas in the view of the calligraphers, interpretation of works, and terminology concerned the Joseon arts.
In conclusion, it is clear that A Guide to Korean Artists through the Ages contains useful resource for grasping the reality of art history research conducted in North Korea after the Division in 1953.

KCI등재

10여자 중·고등학생의 4월혁명 참여 -덕성여자중학교 학생의 참여와 희생을 중심으로-

저자 : 한상권 ( Han Sang Kwon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2권 0호 발행 연도 : 2021 페이지 : pp. 239-281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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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주권재민을 국민 스스로 획득한 승리의 역사이다. 지금까지 4월 혁명은 대학생이 중심이 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4월혁명의 초기국면에서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주도하다가 4월 18일 이후에 가서야 대학생이 중심이 된다. 4월혁명에서 중·고등학생은 대학생보다 더 '먼저' 시위를 시작하였고, 더 '길게' 싸웠으며, 더 '많이' 피를 흘렸다. 4월혁명에서 희생된 여자 중·고등학생은 4명이다. 희생자는 모두 중학생인데 그 중 2명이 덕성여자중학교 학생이다. 이들 두 명의 4월혁명 참여와 희생을 알아본다.


The April Revolution marks the first time in our history that the people have won sovereignty over themselves. So far, the April Revolution has been known to be centered on university students. However, in the early stages of the April Revolution, high school students and middle school students led the way, but only after April 18th, university students become the center. In the April Revolution,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began protesting “first” than university students, fought “longer” and lost more blood. Four female middle school students were killed in the April Revolution, two of whom are students from Duksung Girls' Middle School. Let's look at the participation and sacrifice of these two women in the April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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