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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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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6)~127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040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0호(2020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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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성제국대학의 사회학 교육 - 제도와 사람들 (1926-1945)

저자 : 김필동 ( Kim Pil-dong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75 (6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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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개교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는 사회학강좌(社會學講座)가 설치되어 있었고, 총독부는 1928년에 사회학제2강좌를 설치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이는 총독부가 3.1운동으로 동요된 민심을 수습하고 통치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의 학문적·교육적 역할이 긴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사태는 제2강좌 설치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을 양성하지 않는 이상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민심 수습과 통치 안정을 위해 사회학적 연구는 필요하지만, 전문 사회학도를 양성하는 데는 일본 정부와 총독부가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결과 사회학 과목들(사회학개론, 사회학 연습, 사회학특수연구)은 오래동안 법문학부 다른 전공 학생들의 선택과목에 머물러 있었으며, 강좌 담임교수 아키바 타카시(秋葉隆)는 혼자서 이 과목들을 담당했다. 또한 그는 학문적 관심이 같은 종교학 교수와 함께 조선과 동아시아 지역의 무속(巫俗) 연구에 주력하고 있었다.
1942년 사회학교육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스즈키 에이타로(鈴木榮太郞) 조교수가 충원되고, 사회학전공 학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 경제의 변화와 일제의 중국 침략에 따른 사회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 사회학전공 학생수가 크게 증가했고, 사회학 강의수도 늘어났다. 또한 학생들은 사회조사에 참여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고, 1943년 10월에는 경성제대에서 열린 일본사회학대회에 참가하는 특별한 경험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전황(戰況)이 악화되자 일본정부는 그동안 유예해온 '학도출신(學徒出陣)'을 단행하게 되었고, 다수의 학생들이 1943년 12월부터 입영(入營)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키바 교수는 학생들의 입영을 적극 독려했다. 학생들의 입영으로 정상적인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1941년 이후 입학한 2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서 졸업자는 겨우 3명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경성제대의 사회학은 후진 양성이란 측면에서 성과를 낼 수 없었고, 해방 후 한국에서 활동할 전문 사회학자를 길러내지 못한 채 종막을 고했다. 일부 학생이 해방 후 경성대학을 통해 학업을 이어갔지만, 이후 학계에서 활동한 지도적 인물은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성제대에 사회학강좌와 전공이 있었다는 제도적 유산은 해방 후 경성대학과 서울대학교에 사회학과가 설치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경성제대의 유산은, 그것이 내장한 유럽적 학문 전통과 함께, 해방 후 극복·청산 담론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적 학문체제로의 압도적인 경사(傾斜)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경성제대 유산의 문제는 단절 또는 계승의 차원으로 단순화해서 생각할 수 없는 학문적 논제로 남아 있다.


The Faculty of Law and Literature at Keijō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KIU), which opened in 1926, had a lectural chair of sociology (社會學講座), while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朝鮮總督府) also planned to establish a second lectural chair of sociology in 1928. However, the situation developed into a strange course not only that the second lectural chair fail, but that did not train students majoring in sociology. This is believed because the Government-General felt burdened on fostering students majoring in sociology, although sociological researches were necessary to settle down public sentiment and stabilize governance which had been shaken by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As a result, sociology subjects have long remained elective subjects for students of other majors in the Faculty, and Akiba Takashi (秋葉隆), the professor in sociology, was in charge of them alone.
In 1942, there were significant changes in sociology education, because an assistant professor Suzuki Eitaro (鈴木榮太郞) was recruited and the lectural chair of sociology was able to receive students majoring in sociology. These changes reflected the Joseon economy's changes and the growing social demand for sociology following the Japanese invasion of China. As a result, the number of students majoring in sociology has increased significantly, and the number of sociology subjects has also increased. In addition, Students had the experience of participating in social survey and fieldwork. In October 1943, they also had the unique experience of participating in the 18th Conference of Japanese Sociological Society held at KIU. However, as the war situation worsened around that time, the Japanese Government implemented a suspended “Going to war of students (學徒出陣)” and many students joined the military from December 1943. In the process, Akiba encouraged students to join the military. KIU's regular education failed to materialize, resulting in only three graduates (including 2 Japanese) out of more than 20 students enrolled since 1941.
As a result, the sociology education of KIU could not produce the academic successor generation to work in Korea after Liberation. Some students continued their studies through Kyungsung University (京城大學) after liberation, but only one of them worked as a professor of sociology. However, the institutional legacy of having a lectural chair and students majoring in sociology had a decisive impact on the establishment of sociology department at Kyungsung University and Seoul National University. However, the KIU's legacy and its embedded European academic tradition had been criticized and led to an overwhelming skewness to the American academic system. Thus, the issue of KIU's legacy remains an academic topic that cannot be simplified to the dimension of disconnection or succ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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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설·추석 명절 공휴일의 계보학 - 20세기 한국 '국민문화' 형성의 한 경로에 대하여

저자 : 백광열 ( Baek Kwang Ryeol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7-127 (5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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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 현대 사회에서 전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전통 명절인 설·추석이 오늘날 근대국민국가의 시간관리체계의 일환인 법정공휴일에 포함되기까지의 과정을 장기사적 시야에서 살펴본 것이다. 왜 많은 명절 중에 설·추석이 공휴일 체계에 들어가게 되었고, 또 어떤 명절은 배제되게 되었는가. 짧은 시기에 대한 분석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통명절과 현대 공휴일이 가지는 교집합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하였다. 또, 명절과 공휴일에 대한 공식제도적 측면만이 아니라 그것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주체의 상호작용에도 주목하였다. 조선후기 시간관념(세시)과 그에 관련된 실천(풍속)의 제도화로서 명절의 존재는 근대전환기를 통과하면서 다양한 주체가 작용하는 경로를 거쳐서 오늘날 '민족의 명절'이라는 '국민문화'의 기원이 되었다. 한말 근대국가로의 개혁과정에서는 서구식 달력체계가 수용되고 국가적 기념일 제도가 형성되면서 대민적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민간의 명절 관념이 공휴일 체계와 조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국가부재의 상황에서도 민간의 명절 관념은 공공화, 제도화되어 갔으며, 이것은 해방 이후 공휴일 체계로 이어지게 된다. 이같은 과정 속에서 많은 대중으로부터 수평적인 참여를 구가하던 실천들, 예컨대 단오 명절의 실천은 공휴일 체계 속으로 편입되지 못하였고, 반대로 설, 추석의 가족적 실천이 공휴일에 포함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의 일상문화를 담당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그리고 그러한 주체의 형성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남긴다.


This article is a way of asking about the meaning of tradition in modern Korean society, and takes a long-term historical view of the process of the traditional holidays, Lunar New Year and Chuseok, which are part of the time management system of modern people today. Why did the Lunar New Year and Chuseok fall into the holiday system during many holidays, and some holidays were excluded? Because there is a limit to the analysis of the local area of the short period of time, the long-term perspective was discussed focusing on the intersection of traditional and modern holidays. In addition, attention was paid not only to the official institutional aspects of holidays, but also to the practices of the masses responding to the system. As an institutionalization of time-concepts (sesi) and related practices (trend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 existence of holidays was the origin of the 'national culture' of today's national holiday through the path of various subjects as they passed through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As the Western calendar system was accepted and the national holiday system was formed in the process of reform into the modern state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public-private holiday concept came to encounter the public holiday system. Japanese colonial era Even in the absence of a state, the concept of a private holiday became public and institutionalized, which led to a public holiday system after liberation. In this process, the practice of horizontal participation from many people, especially the custom of Dano holiday, was not incorporated into the holiday system, while the family practice of Lunar New Year and Chuseok, was included in the holiday. This phenomenon leaves the question of who is responsible for the daily culture of Korean society and what are the necessary conditions for the formation of such a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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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정희 정권의 사회 개입과 유예된 현대 - 1960~70년대 사회개발정책과 소비적 삶의 문제

저자 : 김명수 ( Kim Myeongsoo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9-183 (5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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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60년대 중후반부터 사회개발 구상이란 이름으로 전개된 사회 개입을 일상적 현대성의 조직이란 관점에서 분석한다. 사회개발 또는 복지의 변용이란 시각에서 정책 전개를 설명해온 선행연구들과 달리, 이 글은 정권의 현대화노선에 부합하는 가정 및 도시 생활의 양식을 창출하려는 목적 아래 실행된 정책 개입의 내용과 그에 따른 사회적 결과에 주목한다. 사회개발 구상을 낳은 실제적 배경이 경제개발로 인한 사회(도시)문제의 처리를 위한 모색에 있었음을 강조하는 한편, 이에 대한 정치(책)적 처방이 유신체제로 이어지는 전환기를 거치면서 본격화되었음을 지적한다. '내핍생활'에 근거한 가정(사회)생활 규범을 창안하고 소비적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들을 '최소화'함으로써, 소비주의에 근거한 일상적 현대성의 도래를 늦추려는 정치적 기획이 전개됐음을 주장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형성된 예외공간 자체가 내핍생활 규범에 균열을 내고 소비적 삶을 선취하도록 하는 적극적 기능을 수행했음을 강조한다. 내핍생활에 대한 압력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발현된 예외적 소비생활의 형상으로부터 소비주의의 태동을 가능케 만든 특수한 조건 역시 성찰한다.


This paper analyzes the social intervention implemented under the name of social development initiative since the mid-to-late 1960s in terms of construction of ordinary modernity. Unlike preceding studies that explain the development of 'social development' policy from the social development or welfare transformation perspective, this article focuses on the implementation and social consequences of policy interventions used to create family life norms and establish urban order in line with the Park Chung-hee regime's modernization scheme. It first attends to the social development initiative that arose from social (urban) needs arising from economic development, pointing out that political (policy) prescriptions had begun in earnest during transitions leading up to the creation of the Yushin regime. In this context, the paper argues that the Park Chung-hee regime developed a political plan to slow ordinary modernity with consumerism that created living household standards (social norms) based on 'austerity' and 'minimizing' spaces where consumer activities take place. It also found that the consequent 'exceptional spaces' formed also played active roles in breaking up the norms of austerity and evincing consumer life. The paper reflects on the particular conditions that led to the consumerism and the consumption life under austerity that helped to shap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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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민주화프레임과 학생운동네트웍, 그리고 5·18민중항쟁 - 1980년 전남대 학생운동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최정기 ( Choi Junggie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5-21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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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질문은 아래와 같다. 첫째, 1980년 봄에 있었던 전남대 학생운동과 5·18민중항쟁의 상호관련성은 있는가? 둘째, 5·18민중항쟁에서 전남대 학생들은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셋째, 학생들이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한 요인은 무엇인가?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80년 봄의 전남대 학생운동은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프레임의 형성 및 확산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까지 확산된 민주화프레임 덕분에 광주지역에서는 신군부의 5·17조치와 5·18국가폭력에 맞서는 민중항쟁이 가능했다. 둘째, 전남대 학생들은 5·18민중항쟁 시 다양한 방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고, 항쟁의 유지 및 방향 정립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 셋째, 이러한 활동은 학생운동 네트웍과 학생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저항을 향한 흐름의 구성체 때문에 가능했다. 학생운동 네트웍은 일종의 이웃연결망 역할을 하면서 참여의 계기가 되었으며, 저항을 향한 흐름의 구성체는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동력을 제공하였다.


The question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is there any correlation between the student movement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in the spring of 1980 and the May 18 People's Movement? Second, what activities did Chonnam National University students do in the May 18 People's Movement? Third, if students participated in the May 18 People's Resistance despite the threat of life, what made it possible?
Th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 student movement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in the spring of 1980 had a very strong influence on the formation and spread of democratization frame for students and citizens. Thanks to the democratization frame that spread to citizens, People of the Gwangju area was able to stage a people's uprising against the May 18 national violence of the new military. Second, the students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actively engaged in various activities during the May 18 People's Movement and contributed substantially to the maintenance and direction of the uprising. Third, These activities were possible because of the student movement network and the formation of the flow toward resistance created among the students, The student movement network served as a kind of neighborhood-network and became an mechanism for participation. The formation of the flow toward resistance provided the power for students to participate despite the threat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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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90년대 수도권 형성과 한국 도시성의 전환

저자 : 김백영 ( Kim Baek Yung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9-25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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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한강의 기적'으로 표상되는 한국의 압축 근대화의 중핵 지대로서 20세기 후반 한국사회 특유의 압축 도시화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이 글에서는 1990년대 수도권 광역대도시권 형성의 초기 국면에 주목하여 이 시기 한국 도시성의 변화 양상을 다음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았다. 첫째는 도시정치 레짐 차원의 변화로, 이 시기 서울시에서는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과 역사 바로세우기(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사업이라는 두 가지 기념비적인 관 주도적 사업과 더불어 지방자치제 시행에 따라 다양한 정책적 전환이 모색되었다. 하지만 관선에서 민선으로의 제도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도시정치 레짐은 이전 시기의 관성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연속성이 두드러졌다. 둘째는 물리적 공간·환경 차원의 변화다. 1990년대는 수도권 제1기 신도시 개발과 더불어 도시개발의 광역화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시기로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생활환경 개선 및 수도권 교통대란 해소 등 도시인프라 확충 문제가 시급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셋째는 도시사회의 문화적·의식적 차원의 변화다. 이 시기는 소득수준과 교육수준 향상과 더불어 아파트 주거문화를 비롯한 대도시 신흥 중산층 생활양식이 확산되면서 중산층 소비문화 현상이 크게 늘어난 시기이자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외상적 사건이 시민의식에 큰 충격을 던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주도된 도시개발의 관행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후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대자본이 주도하는 시장 주도적 개발방식은 더욱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처럼 1990년대는 민주화 이후 사회체제의 일시적 이완과 문화적 일탈이 나타난 시기임과 동시에 시민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환경문제 등 새로운 도시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암중모색되는 시기였다. 1980년대의 경제호황과 도시성장을 계기로 형성되기 시작한 수도권 거대도시권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도시화와 계층간 양극화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87년체제'의 정착과 '97년체제'의 도입 사이에 수도권이 경험한 도시성의 전환은 20세기말 한국 도시성의 과도기적 변화 양상을 다차원적 역동성으로 보여준다.


It is a well-known fact that the Seoul metropolitan area is the core area of Korea's compressed modernization, represented as the “miracle of the Han River.” This area is a region which shows the unique compressed urbanization of Korean society in the late 20th century. Focusing on the process of Seoul's metropolitanization in the 1990s, this article investigates three aspects of Korean urbanism and its changing patterns during this period. The first is the change of urban politico-administrative regime caused by the enforcement of the local autonomy act. Reflecting the politico-societal achievements of democratization of the so-called 'the regime of 1987,' the method of election of regional government heads has changed in early the 1990s. However, the practice of the authoritarian era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of urban politics persisted. The second is the change in urban spatial and environmental dimensions. In the 1990s, the development of new cities in the metropolitan area and the development of urban regions spread across the country, and urban infrastructure issues such as the mass transportation network connecting Seoul and surrounding satellite cities into one metropolitan area emerged as urgent social requirements. The third is the change in the level of urban culture and civic consciousness. During this period, Seoul had several historical breaks that differentiated it from the previous periods: the government-led projects (e.g., the 600th anniversary of the capital's designation and the demolition of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building) and the traumatic incidents (e.g., the collapse of Seongsu Bridge and the collapse of Sampoong Department Store). In addition, rising income and education levels and the emerging urban middle class in megacity areas led to higher a culture of urban mass consumption. While these changes provided an opportunity to reflect and improve the past practices of urban development, the authoritarian government's capital-driven, market-oriented development also pushed the spread into new cities and beyond the Seoul metropolitan area. Despite the temporary relaxation and anomie of the urban governmental regime after the political democratization, civil society's growth continues to alleviate new urban and environmental problems. The 1980s Seoul metropolitan area was destined to face a neoliberal change in urbanism heightened by socio-economical polarization after the 1997 financial crisis. As such, the great transformation of Korean urbanism between the '88 Seoul Olympic Games and the 1997 financial crisis has taken place primarily in the Seoul metropolitan area. These findings underline Korean urbanism's multidimensional dynamism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between democratization and neo-liber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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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90년대 피씨통신과 취향공동체의 형성

저자 : 정윤수 ( Jeong Yoonsoo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5-295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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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으로 요약되는 전환의 시기다.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는 취향공동체의 의미 있는 형성이 전개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나 피터슨의 '옴니보어' 개념 등이 1990년대 이후 전개된 이른바 '문화의 시대'를 분석하는 데 일정한 의의를 갖고 활용되었다. 이 연구는 1990년대의 문화 현상이 왕성한 문화 소비를 통한 문화적 현시의 측면이 있으나 동시에 문화를 통한 개인의 발견이나 다중정체성의 추구 등의 유의미한 실천이 전개되었다고 판단하고 1990년대의 피씨통신과 그 기술기반 위에서 전개된 문화 현상, 즉 '매니아' 현상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하여 당시의 주요한 문헌과 사회 통계를 활용하였으며 연구자 개인의 경험 및 그 당시 활동한 전문가 5인의 인터뷰를 활용하였다. 연구 결과, 1990년대의 대표적인 문화 현상인 '매니아'에 대한 기존의 구도, 즉 '왕성한 소비자인가 / 문화적 항체인가'라는 이분법이 현실적 근거가 취약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연구는 문화를 매개로 한 자기 욕망의 긍정과 타자와의 교류 과정으로 요약되는 90년대의 취향공동체 형성이 그 자체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실천으로 유의미하게 지속되었다고 판단하였다.


The 1990s was a period of transformation that can be summed up as a combination of political democratization, economic growth, and cultural diversity. This study analyzed personal computer communication of the 1990s and the “mania” cultural phenomenon as a “community of taste.” To this end, this research uses empirical studies and social statistics along with personal experiences of researchers and interviews of five informants who were experts at that time. The study found that the dichotomous composition of popular culture and “mania,” a representative cultural phenomenon of the '90s, weakens in contemporary literature and memories throughout the period. The cultural experiences of the '90s, which affirmed one's desires through culture and interpersonal exchange, were crucial and continuously meaningful throughout Korean society's cultural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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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야만을 넘어서

저자 : 니클라스루만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9-317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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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니클라스 루만의 「야만을 넘어서」 해설

저자 : 김건우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19-334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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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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