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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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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0호(1986)~122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993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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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네트워크형 사회에서 단체형 사회로 ― 3·1운동기 유림의 사회적 존재와 문명의식

저자 : 백광렬 ( Baek Kwang Ryeol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50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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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1운동기 근대적인 사회가 성립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유림이 처한 상황과 위상이 어떠했으며, 그들이 제시한 문명화의 길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었는가를, 3·1운동 및 파리장서사건에 대한 유림의 관련을 소재로 해서 살펴본 것이다. 종래 유림이 3·1운동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통념과는 달리 최근에는 이 시기 유림의 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특히, 지방 유지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유림세력은 서울에서의 독립선언 이후 지방에서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파리장서운동으로 유림의 민족의식이 대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같은 운동의 성과에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존재하던 유림들의 존재형태가 미친 영향이 크다. 이 같은 네트워크형 조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유림이 표방한 유교 이념의 본원적 측면, 즉 효제를 근본원리로 한 인간 관계의 동심원적 확산이라는 원리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점차로 법인적 단체에 의해 공적 영역이 주조되어 가던 근대사회에서 이 같은 네트워크적 이념과 조직형태는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유림 민족운동 중 다수는 유교 본연의 이념으로부터 일정정도 이탈한 '개신유림'에 의해 주도되었다. 유교인들의 법인적 단체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유교 본연의 '내수적 처세'를 강조하는 유림도 여전히 존재했고 그것의 사상적 기여도 무시하지 못한다.


This article explores the situation and the status that the Korean Confucianists took and the visions of civilization that they had in the End of Joseon Dynasty to 3·1 Movement period where the modern society is established through the relation to the 3·1 Movement and Paris Long letter Petition Case. Unlike the conventional belief that Confucianists did not play a role in the 3·1 movement, it has been given much attention to their activity recently. Especially, since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Seoul, the Confucianists who had the social status of local elites made a great contribution to extension of demonstration in the provinces. And as a result of Paris Long letter Petition movement, the Confucianists' national consciousness became known to the outside world. There is a great impact of the existence of the Confucianists which existed with the nationwide network on the performance of these movements. This network type organization is not a product of chance but reflects the principle aspect of Confucian ideology proclaimed by Confucianists, that is, the principle of concentric extension of human relations based on Filial piety and fraternal submission. However, in the modern society, where the public domain was gradually formed by a corporate group, such network ideology and organizational forms were under the pressure of change. In fact, many of the Confucianists national movements were led by the 'reformist Confucianists', which deviated from Confucian inborn ideology. Confucianists corporative groups also appeared. However, there is also Confucists that emphasizes Confucianism's “inner development” value and its ideological contribution can not be ign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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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 사회학의 개척자 김현준의 재발견

저자 : 김필동 ( Kim Pil-dong ) , 최태관 ( Choi Tae-kwa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1-116 (6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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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김현준(金賢準, 1898~1949)은 나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유학하여 1912~1916년 휘문의숙을 다녔다. 이후 그는 대지주이자 사업가이며, 지역사회 활동가였던 부친 김병두(金炳斗, 1883~1942)의 지원을 받아 1918~1922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에서 동·서양의 철학을 공부한 뒤, 1922년 독일에 유학하였다. 그는 라이프치히대학 철학부에서 사회학과 신문학·경제학·통계학 등을 두루 공부했으며, 1928년 2월 이 대학에서 「동아시아(일본·중국·한국) 근대 신문의 체재(體裁) 비교」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했다. 이 논문은 한국 최초의 신문학 분야 박사학위논문인 동시에 사회학적 관점과 문제의식이 투영된 논문으로서,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의 신문을 일본·중국의 신문과 함께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귀국 직후부터 독일에서의 공부를 바탕으로 책과 논문의 집필에 들어갔던 김현준은 1929~1935년 기간에 보성전문학교 강사와 조선일보의 논설반 위원,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 등을 역임했으며, 사회학을 강의하는 동시에 집필 활동에 몰두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학 저술이자 교과서인 『근대사회학』(1930)을 통해 독일 사회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당대의 사회문제를 이론적 전문성과 실천적 문제의식을 갖고 분석한 논문들을 다수 발표했으며, 폭넓은 사회과학적 안목과 외국 체험에 바탕을 둔 계몽적인 기고문들을 다수 발표했다. 따라서 그는 일제 식민지 지배 하의 근대 학문 수용기에 사회학의 연구와 교육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노력한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그의 전 생애 중에서 1936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것이다. 그동안 사회학자 김현준의 진면목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연구를 통해 그 전체상이 조명됨으로써, 그를 한국 사회학을 개척한 인물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이 연구가 마중물이 되어, 그의 학문적 업적은 물론 그가 살았던 시기의 학문 상황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is to shed new light on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Kim Heun-chun (金賢準, 1898-1949) who was a pioneer of Korean sociology, but has been nearly forgotten until now. Born in 1898 in Naju, Jeollanam-do, he studied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ies at Toyo College (東洋大學) in Tokyo, Japan in 1918-1922. Then he went to Germany in 1922, to study sociology, journalism and statistics at the University of Leipzig. In 1928, he submitted what is considered Korean's first Ph.D. dissertation in Journalism to the University, entitled “The Formats of Modern Newspapers in East Asia (Japan, China and Korea),” which was also on the basis of sociological and comparative perspectives.
After returning to Korea in 1928, he began writing books and papers based on his study experiences in Germany. He also served as a lecturer at Bosung College (1929-1932), an editorial writer at the Chosun-Ilbo (1932-1933) and a lecturer at the Central Buddhist College (1933-1935). In this period, he introduced German sociology to colonial Korea through his book called Modern Sociology (1930), the first Korean textbook on the sociology. Furthermore he wrote many academic essays and enlightening articles using theoretical perspectives, critical analysis and foreign cultural experiences, while giving public lectures of sociology and social problems. This led him to become a pioneer of Korean sociology during the period of modern academic acculturation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his exploratory work is mainly focused on Kim Heun-chun's life until 1936. Hopefully this work leads to more in-depth studies of his academic achievements and the academic circumstances of the time in which he l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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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말, 일제시기 의복의 변화와 생활양식 ― 양복의 도입을 중심으로

저자 : 공제욱 ( Kong Jaewook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7-15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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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식문화의 변화과정을 한말과 일제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 때에 양복 입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1900년에는 관복 자체를 양복으로 바꾸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진 배경을 살펴보고, 이에 대해 어떠한 저항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지지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일반 서민들은 처음에는 양복을 친일과 매국의 상징으로 여기다가 점차 이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개화기 이후 한국 복식문화의 변화는 한편으로는 양복의 도입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한복 개량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한복 개량 논의는 남성복보다는 여성 의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양복화 과정의 계층별, 성별 분화가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양복화 과정은 상층 남성부터 시작하여 상층 여성, 그리고 중간층 남성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밟은 것이다. 계층별로는 상층이 먼저 입고, 성별로는 남성이 먼저 입기 시작한 다음에 차츰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 그리고 여성이 착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또한 양복에 익숙해지는 과정, 다시 말하면 양복 입는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과정에 군복과 교복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교복으로 양복을 입은 것이 양복 착용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This study explores the transformation of Korean clothing culture with a focus on the last period of the Chosôn Dynasty and Japanese colonial period. In 1895, as a result of Eulmi social reform, authorities allowed the wearing of Western clothing and in 1900 Western-style uniforms became the official attire of government officials.
This study examines the contextual background leading to these transformations in attire and the reasoning of those in support and those who resisted. For most people, wearing Western clothing and suits was first regarded as pro-Japanese and anti-patriotic, but gradually came to be objects of envy. After enlightenment period, the transformation of the Korean clothing culture led, on the one hand, to the introduction of the Western clothing, and on the other hand, to changes in Hanbok (Korean traditional clothes) wearing, which focused on enhancing women's hanbok in particular. In these contexts, the transformation of clothing was both class and gender differentiated. The tailoring of Westernized clothing started from upper-class men to women. It then became a trend of middle-strata men and later middle-strata women. The male-to-female trend setting moved from upper to middle and later to lower classes. The research also shows that military and school uniforms played crucial role in the formation of habitus in the wearing of Western clothes. The standardization of Western-style school uniforms normalized Western-style suit we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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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식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적 탈구

저자 : 강진연 ( Kang Jin-yeon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9-18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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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근대와 근대의 혼종성을 수반한다. 정치적 영역에서 식민국가는 전제적 권력과 하부구조적 권력이 혼재된 방식으로 지배하며 식민지민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긴장관계를 갖는다. 경제적 영역에서 전통적 농업경제의 원리는 제국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도입된 시장경제 원리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식민지 사회의 제도적 영역에서 등장하는 혼종적 성격의 중요성은 식민지민들 사이의 관계 변화를 거쳐 결과적으로 식민지 사회의 재구성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통해 나타난 혼종적 변화가 조선에서 가져온 사회적 결과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식민지배 조건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탈구의 내용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전통적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작동했던 사회적 원리와 구성원들 사이에서 인정 되었던 관습적 내용의 권리가 식민 조건을 매개로 제도적 변화를 거치며 보호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권리가 식민지배의 제도적 영역에서 구성되지 못하면서 소작쟁의와 노동쟁의 등의 사회운동의 형태로 표출됨에 따라 조선인들 사이의 내적 경계가 새롭게 구획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일제시기 조선인들의 집합적 권리의 요구가 결과적으로 식민 사회 내부의 갈등과 반목을 초래하면서 성원권의 분절로 이어지는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식민지배를 매개로 시장경제의 원리가 도입되면서 나타난 사회적 탈구의 한 단면을 조명한다.


Colonial rule paves the way for hybridity of modernity and pre-modernity. In a political domain, colonial states tend to dominate indigenous societies by wielding both despotic power and infra-structural control, while maintaining fundamental differences and tensions that separate them from those whom they colonize. In an economic sphere, colonial power directs special attention to maximizing the demands and interests of the empire, thus reformulating an institutional setting, which in turn leads to the coexistence of traditional and market economic principles within the colonized society. Of particular importance is that this hybridity or heterogeneity in the colony plays a pivotal role in transforming relationships among the indigenous people and reconstructing the colonized community itself. Focusing on Korea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his article examines institutional changes conducted by Japanese colonial power and the reconstruction of social relationships and membership right among Koreans. To this end, the article explores social dislocation in Korea as an aspect of the social consequences of Japanese colonialism. In particular, it exposes ways in which the colonial institutional rearrangements of the 1910s, such as land cadastral survey and land tax reform, led to the disintegration of traditional local communities and social principles, thus invalidating traditionally acknowledged and protected customary rights of peasants. Colonial Korea began to see the rise of a new social group of semi-peasant and semi-worker who were subjected to colonial despotism in their working conditions. These oppressive conditions led to tenant disputes and workers disputes aimed at securing their subsistence rights. These series of changes eventually shaped internal boundaries among the indigenous community. Through this historical analysis, the article elucidates social dislocations, which impacted the indigenous community under the Japanese colonial dom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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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미국의 교육원조가 미국 유학과 관련된 제도적·문화적 변화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한국에서 미국 유학을 매우 선호하는 현상은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기원을 미군정 이후, 특히 1950~60년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의 교육원조사업은 미국 유학의 사회적 위상 변화와 편중 현상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는 미국 유학 선호를 정당화했으며, 공금을 지원받는 미국 유학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가 발전을 위한 사회적 행위로 여겨졌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와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의 수혜자는 소수였지만, 한국 사회에서 미국 유학이 개인적 행위를 넘어 사회적 관례로 굳어지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미국의 교육원조는 1950~60년대에 일시적이고 예외적이었으나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상당 부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 탓이다. 교육원조가 끝난 후에 한국의 민간단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수많은 미국 유학 경험자들이 미국 유학의 사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담론을 재생산했다.


This research analyzed the impact of U.S. educational aid on institutional and cultural changes related to studying in the United States with a focus on the Minnesota Project and Fulbright Program. South Korea's preference for studying in the U.S. results from distinctive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Social awareness in South Korea that the US had become a hegemony after World War II further heightened Korean preferences for studying abroad in the US. These preferences were heightened greatly with U.S. military presence in South Korea after the Korean War. The U.S. educational aid program provided opportunities that made the idea both popular and a mark of high social status. Recipients of such funds were seen less as those pursing private interests as opposed to social actors working for national developmental aims. Though few, the beneficiaries of those educational aids contributed greatly to making a study abroad in the U.S. more a social rather than personal act. U.S. educational aid was temporary but particularly noteworthy during the 1950s and 60s. Its impact continues today, largely due to a culture now reproduced domestically namely, those Koreans who originally benefit from that aid normalized study in the U.S. as respectable cultural capital in South Korea. In addition, various foundations in South Korea supplanted the U.S. aid programs of the past, which has further institutionalized study abroad in the U.S. as valuable in South Korean domestic mind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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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동서 대분기와 현대화(론)의 문제 ― (서구적) 보편주의와 동아시아 역사상

저자 : 안정옥 ( Ahn Jung-ok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3-265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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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부터 새로운 세계사, 동서 대분기와 동아시아 발전경로에 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서양 중심주의 세계사 인식과 동아시아 역사상을 비판하여 동아시아 현대화를 새롭게 검토하는 지적 계기가 된다. 이 글은 이러한 연구들의 기여를 일정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결함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은 검토를 수행한다. 먼저, 대분기를 전후하여 전개된 서양 지식인들의 비유럽 세계와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분기가 (자유주의적) 보편주의의 모순 그리고 19세기에 보이는 현대화론의 징후적인 출현과 어떠한 관련을 맺는가를 살핀다. 다음으로, 동아시아의 현대화와 동아시아 역사상이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를 일본과 한국에 소개된 현대화의 기획을 사례로 검토한다. 1950년대 이후 동아시아는 미국발 현대화론을 '검증'하는 곳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동서 대분기와 동아시아 발전 경로 연구는 20세기 현대화론의 의미와 한계를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결론에서는 새로운 대분기 연구와 관련하여 현대화론의 의미를 살피고 새로운 대분기 연구의 한계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서양화와 현대화는 온전히 분리되지 않지만 하나도 아닌 관계를 맺어 왔다. 서양중심주의 비판과 서양에 대한 추격 발전 모델의 지양은 이른바 '서양의 지방화'나 '동아시아 본질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보편주의의 발명과 결합되어야 한다.


This article analyses the intellectual divergences of modernization ideas in liberal thoughts and theories ― before and after the Great Divergence ― including the 20th century Modernization project under the US hegemony. From the 1990s, new intellectual trends such as New Global History or World History, California School, studies on East Asian Development Path shed new lights on East Asian history and its modern trajectories. Based on insights drawn from intellectual trends, this research discusses the significances and limits of (European) universalism found in liberal theories of modernization. This article also considers the limits of post-colonial critiques of Eurocentrism. Going beyond the paradigm of catching up with the West should be the processes of inventing new universalism(s), which could not be reduced to 'Provincializing Europe' or any regional paroch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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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사회적 공간의 노모스와 사회신정론 ― 『사회학자와 역사학자』에서의 사회학적 성찰성

저자 : 김건우 ( Kim Kunwoo )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9-324 (5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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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부르디외와 샤르티에의 대담집인 『사회학자와 역사학자』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하나는 이 대담의 진행에 따라 부르디외 사회학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따라가면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과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고 생각하고 개념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범주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한계짓고, 사고를 규정하는 사고의 사고되지 않은 범주에 대한 탐색은 부르디외적인 의미에서 성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그의 성찰성의 사회학을 그 자신에게 돌려주는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고는 그의 사회학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자 한다. 성찰성의 무대가 되는 장은 '근본적 법칙과 분할의 원리'라는 노모스를 따른다. 이는 부르디외의 '상징혁명'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중요할 뿐 아니라, '아노미의 제도화'로서 장의 구성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본고는 이런 의미에서 그의 사회학을 '사회적 공간의 노모스'에 대한 사회학이라고 이해한다. 그에게 '구별'의 문제가 중요했던 이유 역시 이 점에 있었다. 이러한 노모스의 사회학으로서 부르디외 사회학은 그 역사사회학적인 계기와 동력을 갖고 있는데, 이는 “신정론은 언제나 사회신정론 Soziodizeen 이다.”라는 그의 정식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신정론은 국가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더불어 사회신정론은 곧, 사회적 세계의 노모스를 탈신화화하기 위한 성찰적 사회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This article applies a dual approach to analyzing Pierre Bourdieu and Roger Chartier's The Sociologist and the Historian, a compilation of radio interviews between the scholars. The first investigates the categorical frameworks that shed light on Bourdieu's understanding of the social world and space with these stimulative interviews with Chartier, a prestigious historian. The second focuses on his sociological problematique, conspicuously absent that makes it possible for him to think sociologically and conceptualize the social world and social space. It is reflexivity in Bourdieu's sense to delimit what is recognizable and to explore classifications that often determine how we visualize social space without considering the conditions of the 'distinction'. This work thus aims to turn his reflexive sociology to his own manifest and latent work. In this context, a more general name-giving attempt is necessary to comprehend Bourdieu's sociology, namely 'Nomos of social space'. The field, champ, which is no other than the stage of reflexivity follows Nomos, a fundamental law and a principle of division, which means to divide, to partition, principles of division and vision. This is crucial to Bourdieu's 'symbolic revolution', but essential to apprehend the constitution of the field as 'an institutionalization of anomie'. Nomos of the social space is intrinsic to the reflexive sociology of Bourdieu. And his historical-sociological confirmation for this is as follows: “Theodicy is constantly sociodicy.” This sociodicy is also interwined with a soci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state. Sociodicy/sociodicee turns out to be nothing more than another name for a reflexive sociology aimed at de-mystification of the Nomos of the soci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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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사자에 대한 상충하는 기억들

저자 : 강인철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37-351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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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유학생, 유(留)+학(學)+생(生)

저자 : 박천웅

발행기관 : 한국사회사학회 간행물 :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22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55-362 (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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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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