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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9)~27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144
도예연구
27권0호(2018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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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티스틱 리서치와 현대도예

저자 : 김지혜 ( Jihye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2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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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각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지적이며 수행적인 과정 자 체가 독립된 연구의 한 형태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리서치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예술에서의 리서치에 대한 논의는 지난 십여 년 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아티스틱 리서치가 예술대학의 테두리 에서 지식생산의 방식으로 규정된 제도적 기원인가, 비판적 담론생산의 실천인가 하는 대립적인 입장도 쟁점이 되고 있다. 그 성립배경과 이를 둘러싼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아티스틱 리서치는 시각예 술의 범주를 넘어 예술분야 전반에 적용되는 광범위한 방법론이 되어가고 있다.
미술제작 행위를 하나의 연구 행위로 바라보는 관점은 미술이 단지 개인의 감정이나 기술적 숙련을 드러내는 영역이 아니라 미술작품의 제작행위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고 지식과 이해를 고양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티스틱 리서치는 개인적 관심사를 넘어 시대 적 맥락 속에서 인문학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이슈들을 탐구하는 상호 학제적 연구가 될 수도 있고 작 품의 제작과정이나 물질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다. 또는 과학적 원리로는 환원될 수 없지만 사물이나 물질을 직접 몸으로 다룸으로써 배우게 되는, 실제의 경험 속에서 축적되는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번 역해 내는 것일 수도 있다. 연구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연구 문제가 특정한 예술적 실천을 연구의 방법으로 했을 때 적절히 답할 수 있는 방법론이어야 할 것이다. 연구결과의 발표는 단지 결과물만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텍스트와 시각작품, 혹은 작품과 작품을 보조하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 양자 간의 설명적이지도 해석 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일 것이다.
본 연구자는 다른 어떠한 형태의 예술보다 도예분야가 아티스틱 리서치에 매우 적합한 분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틱 리서치는 상호 학제적 성격을 띠거나 수행적 측면이 강조될 수 있는데 도예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매우 적절한 분야이자 매체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매체의 물질성과 매체를 둘러싼 담론을 아티스틱 리서치의 주제와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닐 브라운스워드(Neil Brownsword)와 키스 해리슨 (Keith Harrison)의 작업을 살펴본다. 이들이 제기한 문제점, 주제들은 도자의 개념과 도자의 물질성을 이 용하여 시각화되고 있으며 작업이 구상되고 실행되는 전 과정에서 적용되는 고유한 리서치 방법론과 태도 에 의거하여 연구 과제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이들의 작업은 몸으로 체득된 지식, 기술에 대한 문제, 감각에 대한 문제 등을 언급함으로써 경험과 감각을 새로운 지식의 형태로 간주함으로써 기존 지식체계에 도전하고 있다.


The terminology, 'research', has been widely used in recent days along with a claim that art practice is also another type of independent research. The discussion on research has incited enormous dispute in the art community for the past decade. It is also intensely debated whether artistic research has been institutionally defined as the production of knowledge within the boundary of art college or whether it is a practice to generate critical dialogue. Although its genesis and related issues are still lingering, artistic research has become broad methodology applying to the overall art community as well as visual art.
The perspective on art practice as one of research activities implies that art not only reveals an individual's emotion or technical skill-sets but also contributes to exploring human beings and world and enhancing knowledge and understanding. Thus, artistic research can serve as interdisciplinary study on humanitarian, social or historical issues in the contemporary context; or exploration on art production or materials. It could also be the interpretation of implicit knowledge collected through actual experience into explicit knowledge that cannot be explained scientifically but can be acquired by physically handling objects or materials. Meanwhile, artistic research should provide methodology that can be answered when a research subject is explored through artistic practice. The presentation of research outcome defines new relationship, which is not self-explanatory, between texts and visual works or art works and any type of forms supporting art works.
I am convinced that ceramics can be more appropriate for artistic research than any other types of art since artistic research can be characterized by the interdisciplinary nature or emphasized by the performative aspect. This paper examines ceramic works by Neil Brownswood and Keith Harrison who utilize the dialogue on the materiality of medium as the subject and methodology of artistic research. They visualize their own agenda through the concept and materiality of ceramics and address research subjects based on distinctive research methods and attitude that are applied throughout the process ranging from idea generation to execution. Additionally, their ceramic practice challenges traditional knowledge by recognizing experience and sensation as the new form of knowledge as they attempt to address physically-acquired knowledge and technical and sensational issues.

2데이비드 파이(David Pye)의 Workmanship of Risk 미적 가치와 현대도자

저자 : 김효선 ( Hyosun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1-5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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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예술은 '흙'이라는 질료와 다양한 성형방법(Process)에 의해 표현되는 예술의 형태로 오랜 시간 동 안 인간의 삶과 함께 호흡 하였다. 그러므로 표현 방식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법에 근간을 두고 그것을 배제 할 수 없는 예술영역 중 하나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과거의 도자예술의 표현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므로 다른 예술 영역보다 다양성이 다소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현대 도자예술의 표현 양상은 질료에 대한 이해와 전통적인 성형방법에 기반을 두되 다양한 시각적 접근과 담론들을 생성해 내면서 표현의 확장을 유도하고 있다. 본고에서 의미하는 도자예술의 표현의 확장이란 '흙'이라는 질료의 물질적 특성과 성형방법(Process)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타 예술 영역에서 표현 할 수 없는 도자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표현을 의미한다. 이러한 확장된 표현을 함에 있어서 본 연구는 성형방법(Process)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필수 조건인 Workmanship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고자 한다.
Workmanship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만드는 기술, 기량, 솜씨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영국의 공예가 이며 이론가인 데이비드 파이(David Pye)는 단순히 기술, 기량, 솜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기술, 기량 즉 Technique의 지식을 바탕으로 작업자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 Workmanship 이라 정의하였다. 이러한 Workmanship을 파이는 Workmanship of certainly 와 Workmanship of risk로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Workmanship of certainly 만들어진 사물의 결과물들이 미리 계획된 형태, 색깔, 크기 등을 완벽하게 재 현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자의 Workmanship은 기획자에 의해 항상 규제되고 조절된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은 제작 전 프로토타입 (Prototype)에 의해 선 제작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보완하여 사물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 Workmanship of risk란 작업자가 부주의 하거나 동작의 실수 또는 순간의 사고로 작품을 망칠 수 있는 것으로 완벽하지 않은 것 즉 거칠거나 세련되지 않거나 실패한 것 같은 결과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파이의 이론을 기반으로 workmanship of risk에 중심을 두고 전개함에 있어 Workmanship of risk가 현대도예에 어떤 형식으로 표현되고 논의 되는지를 고찰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등한시 될 수 있는 수작업에서 오는 Workmanship of risk의 미학적 가치와 미래적 가능성에 대한 제시이다. 이러한 미학적 가치와 미래적 가능성 제시는 공예, 회화, 조각 그리고 현대 도예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Ceramic art has been breathing with human life for a long time in the form of art expressed by the material called 'clay' and various making processes. Therefore, it is one of the artistic areas based on traditional methods of expression and can not be excluded. Due to these characteristics, the way of expressing ceramic arts in the past was extremely limited, therefore diversity was somewhat lacking than in other artistic areas. However, the expression aspect of contemporary ceramic art is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the material and the traditional making method, but it induces the expansion of expression by creating various visual approaches and discourses. The expansion of expression mean that can understand and accept the clay material qualities and making process. This means that ceramic can express but cannot be expressed in the other field of arts. This research explores the ways in which extended expression that focused on the workmanship which is the essential and primitive in the making process.
According to the Dictionary defined the workmanship is the skill with which something was made or done. But the British craftsman and theorist David Pye defined the workmanship as influencing the behavior of the worker based on the knowledge of the technique and the skill, rather than merely the skill. Pye categorized about workmanship that is workmanship of certainly and workmanship of risk. Workmanship of certainly means that the outcome of a created object is a perfect reproduction of a pre-planned such as form, color and size. The workmanship of these results is always regulated and controlled by the planners. Completely made products are pre-fabricated by prototype before production, making it a thing to complement the problems based on it. Workmanship of risk, on the other hand, is the result of an operator being careless or mistaken of an action or an accident of the moment, which is imperfect, that is, rough, unsophisticated or unsuccessful.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examine how the risk of workmanship is expressed and discussed in contemporary ceramics in the development of workmanship of risk based on Pye theory. This is a presentation of the aesthetic value and future possibilities of workmanship of risk from manual work that can be neglected in the digital age. This aesthetic value and futuristic possibility presentation will be examined through works of crafts, paintings, sculptures and contemporary ceramic artists.

3탈(脫)매체 환경과 현대도자의 잡종성(Hybridity)

저자 : 문유진 ( Yujin Moo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3-81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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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문화적 생산으로서 동시대 예술 활동을 '잡종성(hybridity)'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도자 매체에 대한 관념과 인식의 변화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동시대 도자 예술이 그려내는 잡종의 풍경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아방가르드의 반동과 전복, 포스트모던적 반복과 참조의 시대를 거쳐 융합과 통섭의 정신이 사 회의 모든 영역을 휩쓸고 있는 현재의 시대 상황을 논한다.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화 의 잡종화(hybridization)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토양 속에서 전개된 잡종 적 예술의 징후들을 포착한 문화이론과 예술 비평들을 소개한다. 다음으로는, 기술 발전과 혁신이 거듭 됨에 따라 전통적 매체 관념이 무효화되고 뒤섞여 새로운 매체 관념이 생성되는 동시대 예술의 탈(脫)매체 (post-medium)적 조건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예술 형식의 범주와 위계질서에 따르는 열등한 정체성과 물질에 기반한 매체특정성(medium-specificity)에 한정되지 않는, 넓은 의미의 예술 형식으로서 도자의 동시대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했다. 더불어, 도자를 매체 혹은 탈매체로 활용하는 예술 활동 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잡종적 언어들을 고찰한다. 특히, 동시대 예술의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은 주변, 이주와 같은 키워드로 표상되는 문화정체성의 주제 내에서 잡종화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예술 활동의 잡종적 수사 자체보다는 그것을 발생시킨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보다 무게를 두었다.
본 연구는 문화이론, 매체비평, 사회생물학 분야의 대표적인 선행 연구들이 정립해 놓은 탁월한 개념 과 태도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리하여 과정이자 환경으로서, 궁극적으로 생산과 사용 측면에서 모두 다양 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예술적 장치로서, 융합의 방법론이자 철학인 통섭으로서의 도자 매체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질문해 보고자 한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oncept of 'hybridity' that has come to the fore as a keyword in the contemporary art practices when considered as cultural productions. Then, it discusses how the contemporary artistic practices of ceramics conjure up the landscape of hybrids by reviewing different ideas of the medium of ceramics and the aspect of changes through time in understanding of this ideas.
Primarily, I present the state of the period that came out of the era of the avant-garde marked by resistance and subversion, then the era of post-modernism characterized by repetition and reference to the past and finally to arrive at the current circumstance in which the spirit of fusion and consilience is sweeping over all areas of the society. Based on the perception of such situation, I will take a detailed look at the process of hybridization of culture, and then introduce the culture theories and art criticisms that capture the symptoms of hybrid art that sprang up from the spoil of the post-modernism in the late 20th century. Subsequently, I will study the theoretical backgrounds behind the post-medium condition in contemporary art discourses which explains how advancing technology and continual innovation resulted in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a medium to be nullified and blended for the new concept of a medium to be created. Through this, I attempt to understand the contemporaneous context of ceramics as an art form in a broader sense where it is not limited by the medium-specificity that is based on the inferior identity and the material that follows formalistic categories of art hierarchy. Furthermore, artistic practices in which the ceramics is treated as a medium or as a post-medium and the hybrid vocabulary they employ are to be analyzed. More specifically, I will review the meaning of hybridity within the scope of cultural identities that is marked by the keywords that have become the main interests of the contemporary art such as marginality and migration. By doing this, I intend to give more weight to the context that gave rise to the conditions that influenced the artistic practices rather than the rhetorics of hybridity.
As a conclusion, I want to point out that this research takes from the accomplished concepts and approaches of the culture theory, media criticism, and sociobiology. Therefore with a caution, I attempt to pose my question about the possibility of ceramics as an artistic device that serves as a process and a condition at the same time, which may increase diversity in the aspects of both production and consumption, and ceramics as a medium of consilience ― a methodology and philosophy of convergence.

4사물의 형상을 기억하는 과정으로서의 도자조형

저자 : 장민아 ( Minah Cha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83-102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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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사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며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렴풋한 이미지로 배경에 묻혀 덩어리가 되어버린 사물들, 너무 익숙해져버린 사물들 은 어느새 공기처럼 인지되지 못하는 희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런 무뎌진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각각의 사물에 주목하는 것에서 필자의 작업은 시작된다. 날마다 지나치는 일상 속에 이름 모를 형태들, 기능을 다하고 버려진 쓸모를 잃은 사물들. 그것들의 쓰임을 떠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기록하여 작품을 통해 사물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선을 공유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사물'을 마주하고, 기억의 장에 새기고, 회상하여 점토로 표현한 기록이다.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철학과 예술에서 드러난 사물을 논의한다. Ⅰ장에서는 연구배경과 목적을 밝히고, Ⅱ장에 서는 물질을 통한 사유의 활동을 창조적 사고이자 생의 활동으로 본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이론을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다양한 예술 분야에 나타난 사물의 모습을 다룬다. 회화에서는 익명으로 전환된 사물의 위치를 조금씩 달리하며 유기적으로 생성되는 관계를 화면에 담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를, 문학에서는 인간중심적인 관념론의 시선에 희생당해 온 사물의 입장에 서고자 한 시인 프랑시스 퐁쥬(Francis Ponge)와 사물로 발발한 내면사고의 흐름을 기록한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를 꼽았다. Ⅲ장에서는 사물을 표현하는 매체가 되는 도자의 특성을 촉각성과 변화가능성의 두 가지로 니콜체르비니(Nicole Cherubini)와 키스 해리슨(Keith Harrison)의 작품을 통해 진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자의 작품을 전개, 기술하였다.
작업을 통해 일상의 장막에 가려진 사물들의 본 모습을 밝히고 이를 새로운 시선으로 기록하고자 하였다. 각각의 사물들을 통해 기억의 범주를 넓혀나가며 탐구한 필자처럼,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자가 주변 의 사물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또 이에 주의를 기울여 삶의 순간들이 생의 창조적 활동으로 넘쳐 나기를 바라는 바이다.


Objects surround our lives. We think that we know what we see everyday life, but we do not. The things we see are just vague images mixed with the background. People cannot perceive objects like the air because they will soon get used to having them around. The thing we see, we cannot see. From there, my work has been started. The objects we passing by all the time, the objects thrown away their lack of uses, no matter they are in order or not, I want to see them as themselves. Through my artwork, I want to share the vision which makes us to see the essence of the objects we encountered.
In this paper, I attempt to see the objects as they are and express it through clay. Before covering my artwork, I'd like to see the object that are appeared in philosophy and art. In Chapter Ⅱ, I describe the background and purpose. Then following Chapter Ⅱ, I deal with the philosopher Henri Bergson and his theory about how one conceives the objects through memory which makes our life active. After that, I present three artists whose theme focused on objects. In painting, I introduce Georgio Morandi who framed the delicate relationship among the anonymous objects. In literature, I mention poet Francis Ponge who takes the side of object which has been sacrificed by the human centered perspective and the novelist, Marcel Proust who wrote down every trace of thinking triggered by objects. Chapter Ⅲ shows the feature of ceramic by mentioning ceramist, Nicole Cherubini and Keith Harrison. Later on, I explain my art work based on the research we looked.
Through this paper, I unveil the essence of the objects and record it by the contraction of memory. Like I spread my art work through the objects around, I hope the audience will also experience splendid encounters brought about by the objects in their daily life.

5남송~건륭시기 여요자기(汝窯瓷器)의 실체에 대한 인식의 변천과 여요자기의 유전(流傳)

저자 : 이희관 ( Heegwan L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03-13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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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청량사여요지에서 출토된 천청유자기와 이른바 傳世汝窯瓷器 사이에 器種 · 氷裂 · 紋樣 · 裝燒技法 등의 측면에서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 원인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필자는 양자 사이에 이러한 괴리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 여요가 소멸하고 난 이후 여요자기의 실체에 대한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위에서 각별히 남송초기부터 건륭시기에 이르기까지 여요자기의 실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그 토대가 된 여요자기의 實狀이 무엇이고 그 실물자료가 어떻게 流傳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역대의 문헌에 언급된 여요자기에 대한 내용 가운데 그 대부분은 그다지 구체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적지 않다. 심지어는 여요가 아닌 다른 요장에서 제작된 자기나 여요자기 위조품을 여요자기로 오인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경우도 있다. 여요자기의 실물자료가 극히 희소하고 아울러 여요자기 위조품이 적지 않게 유통되던 당시에 그러한 상황은 피하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여요자기의 실체를 파악할 때까지 여요자기의 실체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바탕 위 에서 이루어지고 계속적으로 단순 또는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러한 인식을 토대로 구축된 역대의 여요자기상이 여요자기의 실체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었을 리가 없다. 적어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왜곡된 것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힘들다고 판단된다.
여요가 소멸하고 난 후 사람들은 이렇게 형성된 여요자기상에 견주어 여요자기를 판별하였다. 오늘날 전세여요자기로 일컬어지는 실물자료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다시 말하면, 왜곡된 역대 여요자기상의 所産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던 이른바 傳世汝窯瓷器와 청량사여요지에서 출토 된 천청유자기 사이에 괴리 현상이 생긴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Some significant differences have been observed between Tianquingyou wares (天靑釉瓷器, blue sky color glazed wares) recovered from the Qingliangsi Ru kiln site and so-called Surviving Ru wares (傳世汝窯瓷器) in terms of types of wares, glaze cracks, patterns, methods of zhangshao(裝燒), etc. Taking note of this observation, this study started from the following question: What caused the differences? To find an answer to the question, this study assumed that thes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would be closely related to the recognition of Ru ware after the disappearance of Ru kiln. In particular, this study examined how the image of Ru ware had been perceived from the early South Song Dynasty to the period of Qianlong Emperor; what the actual image of Ru ware - the foundation for the recognition - was like; and how Ru wares had been widely sprea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drawn.
Most of the contents about Ru ware mentioned in the historical literatures were not concrete and objective enough, and also did not correspond much with the actual image. It is also highly likely that those produced in other kilns or fake Ru wares could be mistaken for originals. This can be attributed to the facts that there were only scarce pieces of original Ru wares, and that a significant quantity of fake Ru wares had been widely distributed. They seem to be inevitable situations during the period.
The image of Ru ware perceived during the period continued to be simply or excessively reproduced based on this foundation until the actual image of Ru ware was identified in the 20th century. The image of Ru ware built on the mistaken perception cannot have accurately reflected the actual image of Ru ware. At least from the perspective of today, it seems to be difficult to deny the conclusion that the image was distorted to some extent.
After the disappearance of Ru kiln, people have distinguished Ru wares based on the image built through this process. Actual pieces that are classified as Surviving Ru wares today seem to be the results of the image of Ru ware that was created, that is, was distorted through the process. The gaps between so-called Surviving Ru wares (傳世汝窯瓷器) and Tianquingyou wares recovered from the Qingliangsi Ru kiln site - the starting point of this study - can be fully understood from this perspective.

6대한도기 활동시기의 전혁림 도자회화 연구

저자 : 이현주 ( Hyeonju L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5-15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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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대 도자회화의 영역을 새롭게 구축했던 전혁림(全爀林, 1916~2010)의 대한도기 활동시기에 관한 연구이다. 대한도기는 부산 영도에 자리 잡았던 근대도자산업체로, 1917년 일제가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설립한 일본경질도기의 분공장 성격을 지닌 조선경질도기가 그 전신이다. 해방 후 일본경질도기는 귀속재산 불하과정에서 1950년 양산출신의 자유당 국회의원인 지영진에게 낙찰되면서 대한도기주식회사로 개칭되었다.
전후복구 이후 대한도기는 전통생산방식에서 근대적 공업생산방식으로 전환한 일본경질도기의 생산 방식과 분업체제를 수용하여 단시간에 부산지역의 명실상부한 도자업체로 자리잡았다. 특히 여기에서 생산되는 도자접시는 수작업으로 화가들이 직접 그린 것으로 회화사적으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 도화작 업에는 6.25 한국 전란 당시 부산으로 피란 온 다수의 화가들이 참여하였는데, 대한도기로서는 우수한 화 가를 도화작업에 참여시킬 수 있었고 화가들에게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대한도기의 핸드페인팅 도자접시는 변관식으로 대표되는 산수화 계열 접시, 김은호로 대표되는 인물 화 계열 접시, 김은호의 제자들에 의해 구축된 풍속화 계열접시와 전혁림으로 대표되는 서양화 계열의 접 시로 분류된다. 핸드페인팅 도화작업에 참여한 화가들은 그것이 전통적인 화업에서 벗어난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에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전혁림은 자신의 모든 작품에 사인을 기입하였으며, 회사의 주문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한 인물로 주목 된다.
1933년 통영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1938년 <부산미술전람회>, 1949년 <경남미술연구회전>(부산역전 공 회당), 1952년 <제1회 개인전>(밀다원), 1953년 <제2회 개인전>(피가로다방) 등 부산에서 활동한 전혁림은 도화작업에도 일찍부터 관심이 컸다. 그는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대한도기에서 일했는데, 이 시기 그는 작가로서의 예술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인식을 확고히 다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도자회화의 영역을 확대하여 자신의 도조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데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The study of this paper is about Jeon Hyuk-rim's early work on pottery manufacturing in Korea and Daehan pottery(Daehan Dogi), a modern ceramic industry that has been in Yeongdo island, Busan since the liberation of Korea. Daehan pottery was established in 1917 by Japan as a part of its colonial policy, which is a branch office of 'Japan Ironstone Chinaware Mfg. Co. Ltd'(Japanese Gyeongjil Dogi), is the predecessor of 'Joseon Ironstone Chinaware Mfg. Co. Ltd'. The Busan factory became the headquarters of the new 'Japan Ironstone Chinaware Mfg. Co. Ltd'. in 1925, after it merged with the 'Joseon Ironstone Chinaware Mfg. Co. Ltd'. in 1920.
After Korean post-war restoration, Daehan pottery(Daehan Dogi) became a real ceramics company in a short time by adopting division of labor as well as the production method of 'Japan Ironstone Chinaware Mfg. Co. Ltd'(Japanese Gyeongjil Dogi), the method of which was changed into a modern industrial production method from a traditional one. The pottery dishes produced here are hand-drawn by artists, drawing attention from the history of painting. The painting involved a number of artists who came to Busan during the Korean War, who were able to engage in the painting and help the artists survive the whirlpool of war.
The hand painting ceramic dish of Daehan pottery(Daehan Dogi) is classified as a dish of landscape painting by Byeon Gwan-sik, a character dish represented by Kim Eun-ho, a genre dish built by Kim Eun-ho's disciples, and a plate of Western painting series represented by Jeon Hyuk-rim.
Almost all of the artists who participated in the hand-painting process did not give their real names to their works because they thought it was out of the traditional painting business. However, Jeon Hyuk-rim (1916-2010) signed all of his works and was not limited to the company's orders, but also focused on keeping his art world from beginning to end.
Jeon Hyuk-rim worked in Daehan pottery(Daehan Dogi) from 1956 to 1962, during which time he established a firm recognition as a writer and as an artist, thereby expanding the field of ceramics and creating his own ceramic art world.

7서울 종로(鐘路) 청진지구(淸進地區) 출토 근대 도자의 성격과 특징

저자 : 엄승희 ( Seunghui Eo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57-19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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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청진지구 유적은 2004년 제6지구가 공식 발굴 조사된 이래 현재까지 총 19개 지구 가운데 7지 구를 제외하면 조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조사지에서는 모두 조선후기층과 근, 현대층위가 발견되어 근대 도자유물들이 수습되었다. 현재까지 근대 도자유물이 출토된 유적에 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고 일부 유물에 한해 지표자료로 활용되는데 그친다. 청진지구 유적을 근대 도자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이유는 유구의 총 면적과 구역이 상당히 광범위한데다 한양도성 중심가의 소비유적으로서 괄목할만한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조부터 수도 중심에 위치했던 청진동은 일대에 관아와 궁궐들이 즐비하였고 市廛이 형성되어 대중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근대 이후는 청진동 서측의 중학천로를 따라 料亭들이 들어서면서 향락문화가 발전했고, 일제의 관공서와 교육기관들이 들어서고 주요 상권의 대부분을 일본인들이 장악하면서 이곳에 유통되던 도자들도 변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결과, 청진지구 유적에서 수습된 유물들은 조질 백자와 수출용, 내수용 일본자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이 유물들은 일대에 형성된 상업시설과 주거시설, 관공기관 등에서 복합적으로 사용했던 그릇들로 확인된다. 유구의 90% 이상이 교란, 훼손되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청진동이 근대 기에 들어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건물지들이 들어서고 증, 개축되는 과정에서 종로의 다른 지역과는 차별된 문화권을 형성한 것은 분명하다. 도자의 구입은 가깝게는 시전의 沙器店과 廣藏市場 등을 통해 가능 했고, 인근 중구 南大門市場에서도 다종다양한 도자들이 유통되어 거주자들에게 수요공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청진동은 中區를 잇는 수많은 水橋들을 통해 각 방면의 교류가 원활했다. 특히 근대 기 廣通橋를 통해 형성된 도자문화와 도자교역은 중구에서 활동하던 일본 일본자기 상인들과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원동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들의 밀집지로 불리던 종로구임에도 불구하고 청진동의 발굴내역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정황을 토대로 한다면 매우 특별한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즉 재조일본인 관료들과 일본인 상인들이 다양한 계층의 조선인들과 공존하면서 새로운 도자문화를 형성시킨 지역이다.


The examination of the historic ruins of the Cheongjin Districts (19 districts in total) in Jongno-gu that continued to be conducted since the official excavation of the District 6 in 2004 has been completed except 8 districts. In the excavation site, the stratum of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and the ones of modern and contemporary period were discovered, and modern ceramic relics were unearthed. Until now, the study on the ruins from which modern ceramic relics were excavated was not conducted, and only some relics are using as a teaching material.
The reason we pay attention to the ruins of the Cheongjin Districts with respect to modern ceramic is that the total area of the ruins and the districts are very broad, and some remarkable relics showing the ruins were places of consumption were unearthed. Cheongjin-dong was a place where there were a lot of comings and goings of people because, since Chosun dynasty began, this place was located in the center of capital city and was lined with governmental offices and castles, and also Sijeon (a market that consisted of many shops that were licensed by government) was formed.
In the modern period, yojeongs (high class Korean style restaurants) began to stand in a row along the sides of Junghak stream in the west of Cheongjin-dong, therefore pleasure-seeking culture developed, and also Japanese governmental offices and educational institutions were established and Japanese merchants hold the dominant position in the most sectors of local commerce. So it seems that these situations made the characteristics of the ceramics that were distributed into the region change.
The result of the excavation of Cheongjin Districts ruins shows that jojil white porcelain and Japanese porcelain for domestic consumption and for export are in the majority. And it has been confirmed that these earthenware relics were used in the commercial facilities and residential areas and governmental agencies in the region. Because more that 90% of the ruins has been disturbed or destroyed,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the actual state of the ruins, but it is obvious that Cheongjin-dong began to have different features from the other regions of Jongno in the process of the advent of a variety of building areas and enlargements and reconstructions of the buildings. It seems that it was possible to purchase ceramics from nearby porcelain shops of Sijeon or 'Kwangjang market', and also in the 'Namdaemun market' in Jung-gu, various kinds of ceramics were available to the residents.
Cheongjin-dong was able to have active contacts with Jung-gu in many sectors thanks to many bridges linking the two regions. Especially, the ceramic culture and trade formed through 'Gwangtong bridge' seems to have been driving forces promoting trade with Japanese porcelain merchants in Jung-gu. The results of the excavation of Cheongjin-dong shows that, even though Jongno-gu was the region that was densely populated by Koreans, it was a special region where new ceramic culture was formed while Japanese governmental officers and merchants coexisted with various Korean residents of all social standings.

8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책과 도자공예 : 1960~1970년대 '대한뉴스' 보도내용을 중심으로

저자 : 송지호 ( Jiho So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91-22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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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타율적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가 예술이 되어 미술공예가 되거나 일본인들의 관상애호품으로 타자화된 문제는 그 궤도를 수정하지 못하고 대한민국에 와서 더 고착화 되었다. 오히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전통공예'와 '현대공예' 혹은 '전승공예'와 '미술공예'라는 이중적 구조는 더욱 확대 재 생산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그 이전 시기보다 '전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문화재의 중요성 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높아져 공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었고, 공예가 대학교육에 편입되면서 대학 출신의 공예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과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 회(이하 상공미전)과 동아공예대전 등의 정부와 민간 주도의 다양한 공모전을 통해 공예인구의 작품 발표 기회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공예를 둘러싼 문화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기 타자화 된 공예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계의 배경에는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정책과 문화정책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판단 하에 <대한뉴스> 보도내용을 통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노력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권력 찬탈의 불법성을 만회하고자 강력한 경제발전 정책과 문예중흥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민 내부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민족주의 이념을 수단으로 활용했다. 민족주의를 도구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대한뉴스> 보도내용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강조한 전통은 계승해야할 대상이 아닌 정권의 자의대로 선택된 호국정신, 실학 사상, '신라의 삼국통일'과 같은 선별된 전통이었다. 1960~70년대 문화재 보존 및 발굴, 활발한 박물관 전시 와 전통에 대한 담론에도 불구하고 도자공예는 공예의 정체성과 일상생활 문화로서의 가치를 재정립하지 못한 채, 식민지 시기 타자화된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더불어 강력한 수출주도 경제정책 아래, 지원, 육성된 도자산업도 결국 수출상품과 관광민예품이라는 수출증대를 목표로 한 것에 불과했다.


In the process of colonial modernization, the problem of craft becoming arts, and otherized as Japanese ornamental favorites became more and more fixed in Korea, without modifying its orbit. Rather, through the Park Chung Hee regime in the 1960s and 1970s, the dual structure of 'traditional crafts' and 'modern crafts' or 'traditional crafts' and 'arts crafts' was further enlarged and reproduced. On the surface, there were more discussions about 'tradition' than before, and the social awareness of the importance of cultural properties and artifacts had increased, and social interest in craft had increased. The number of craftmen who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increased dramatically as crafts had been included in the college education system, And there were many opportunities to present artistic works through various contests the government-led, such as the National Art Exhibition, the National Commercial and Indurstrial Design Exhibition, and the private sector, such as the Donga Craft Competition. However, despite the quantitative expansion of the culture surrounding these crafts, it failed to overcome the problems of otherized crafts in the colonial period. This study is aimed to find out the background of this limitation through the report of < Daehan News >, based on the judgment that the economic development policies and cultural policies of the Park Chung Hee administration of the 1960s and 1970s had a strong influence.
The Park Chung Hee regime adopted a strong economic development policy and a cultural policy in order to compensate for the illegality of the oppression of power. In the process, the nationalism ideology was used as a means to enhance the solidarity among the people. In the process of instrumentalizing nationalism, it emphasized 'tradition', and this fact was revealed in the press coverage of < Daehan News >. However, the tradition emphasized by the Park Chung Hee administration was a invention of tradition such as the spirit of the patriotism, Silhak Thought, and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of Silla, which were chosen not as objects to be succeeded but as those of the regime. Despite the preservation and excavation of cultural assets, active on museum exhibitions, and the discourse on traditions in the 1960s and 1970s, it is failed to modify the otherization of the colonial period without redefining the identity of craft and its value as a daily life culture. In addition, the strong export-led ceramic industry, supported and developed under economic policies, was only aimed at increasing exports and tourism.

915세기 조선 왕실이 택한 관요 자기와 선별배경

저자 : 오영인 ( Youngin Oh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23-24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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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시대 관요의 설치와 운영이 왕실의 요구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토대로 조선 왕실의 정 책과 인식이 관요 자기의 제작과 양식에 미친 직간접적인 영향에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 15세기 경기도 광 주 일대의 가마를 중심으로 관요 설치에 따른 자기 제작양상과 추이를 밝히고, 조선 왕실이 보인 명 황실의 사여 혹은 진헌에 대한 태도와 명 제도의 수용, 그리고 자기에 대한 인식에 주목하여 관요 자기의 종류 와 선별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경기도 광주 일대 가마는 왕실이 요구하는 자기 제작을 주도하며 15세기 중반부터 다수의 백자와 함께 청자를 일부 제작하였다. 이는 15세기 후반 관요의 설치와 운영으로 이어졌고, 관요는 왕실의 요구를 반영하여 백자의 양적·질적 수준의 확보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백자 위주의 제작을 두고 단순히 유교적 국가에서 강조하는 검약에서 그 배경을 찾는 것이 기존 학계의 견해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이뤄진 15 세기 중반은 조선 왕조의 근간을 다지려는 노력과 함께 명과의 관계에 주목하여 여러 노력을 기울이던 시 기였다. 더욱이 관요의 자기 제작양상은 당시 명대 경덕진요의 경우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명 황실이 조선 왕실에 공식적으로 전한 자기의 종류와 일정부분 일치하였다.
조선 왕실은 일찍이 명의 책봉국으로써 개국의 당위성과 문물 정비의 근간을 명으로부터 찾았고, 명 황실과의 우호적인 관계 하에 유교적 의례구조에 합당한 의전을 수행하며 독립 국가로써의 품위와 격조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명 황실은 조선 왕실에 여러 기물을 사여하고 칙서를 내림으로써 황실의 권위를 보여 주려 하였고, 조선 왕실은 사여 받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조선 왕실의 입장에서 사여 받은 자기는 뛰어난 품질을 가진 대상이자 관리에 공을 들였던 대상이었다. 여기에 명 황제의 대리인인 사신으로부터 사용을 허락받았고 나아가 왕실용 기물의 범으로 자리 잡아 오랜 기간 관요 자기의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명 황실에서는 어기 및 제기로 백자가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에 전한 자기의 대다수가 백 자에 해당하였다. 즉, 관요는 백자를 중심으로 제작함으로써 명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전해 받은 자기에 대 한 일종의 재현을 행하였고, 조선 왕실이 지향하고자 하였던 대상이 명 황실이었음을 보여주었다.


This article is intended to take note of direct or indirect impact of policy in the Joseon Dynasty valid in manufacturing and characteristic of Royal kilns ceramic. It determined the installation of Royal kilns and the consequential alterations and characteristic of ceramic in Gwangjo, Gyeonggi-do the 15th Century, observed results carefully a Royal attitude granted ceramics by Ming, import of Ming system, perception toward the ceramics.
Since the mid-15th century, some kilns in Gwangjo, Gyeonggi-do produced a little celadon with a number of porcelain by Royal demand. With the common opinion, it is a suggested background to produce focusing on porcelain thought based on Confucianism. Merely, the mid-15th century was a period trying to prepare a framework for Dynasty, to have respect to Ming in the Joseon. Really, the then characteristic of Royal kilns ceramic has echoes of that of Jingdezhenyao in Ming and granted ceramics by Ming.
The Royal Court of Joseon Dynasty looked for appropriateness of the foundation and source of maintenance of civilization from Ming, would like to show dignity as an independent state with the friendly relationship of Ming. On the one hand, the Royal Court of Ming Dynasty granted the Joseon Dynasty many kinds of article to show the Imperial authority, the Royal Court of Joseon Dynasty would read too much into those. In other words, Ming imperial ceramics became accepted as screamers and valuables by excelling in management in the Joseon Dynasty. As heard from Ming envoy sent to the Joseon Dynasty, the Royal Court of Joseon Dynasty would use those by Ming's allowance and allegedly make a model in the manufacture of Royal kilns ceramic. Then the Royal Court of Ming Dynasty used porcelain as the dishes and utensils used in ancestral rites, bestowed many porcelains on the Joseon Dynasty. In short, characteristic of Royal kilns ceramic in the Joseon Dynasty, on porcelain, deserved to be assessed to make a kind of return for Ming imperial ceramics. Furthermore, it showed the name of the Joseon Dynasty subject who tried to promote as the Ming Dynasty.

10선(線)을 중심으로 한 도자형태의 공간적 이미지 표현

저자 : 최윤정 ( Yoonjeong Choi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간행물 : 도예연구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51-271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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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을 통해 선의 공간적 이미지 표현을 위한 도자예술의 제작기법 연구를 제시하고자 한다. 선은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서 표현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선은 1차원의 점이 가지고 있는 추상적인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3차원의 물리적 입체와 공간이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함축적인 조형 표현 요소이다. 따라서 조형 요소로서 가장 감각적이며 동시에 논리적인 개념을 압축하고 있는 조형 언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선이 가지는 고유한 성격은 공간감이라는 조형 원리를 도자예술에서 점토의 물성을 이용한 표현기법 연구를 통하여 직감적이고 함축적으로 공간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두 개 이상의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공간감은 상대적이며 거리감을 동반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빛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빛은 물리적으로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두개 이상의 물질 사이에 거리감과 깊이감을 상이하게 작용하게 하며 다양한 심상을 일으킨다. 물질적인 양감이 강하게 작용하는 도자예술에 서선이라는 기초적인 조형 언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입체가 가지는 상대적 조형 원리인 공간감을 표현 하기 위해 점토의 고유한 성질인 가소성과 수분을 이용한 제작기법을 연구하고 선의 공간적 이미지를 표현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present techniques to deliver a spatial image of porcelain via lines. Lines, by nature, are the most fundamental component of modeling, embodying expression in and of itself. While lines are formed by unlimited dots of one dimension, they, once connected, are able to express three dimensional physical spaces and more visually. For this reason, lines are one of the most sensual and stereoscopic languages in the field of modeling. Using this unique nature of lines, we are able to create a very intuitive and implicative space, or perception thereof, out of clay in the field of porcelain art. Our perception of space exists relatively between two or more substances, accompanied by the distance. Lights may affect this in such a manner that lights may distort a physical depth and width between two substances, creating a variety of images. In order to embody a sense of space with the minimized usage of lines on porcelain, this research will discuss techniques for regulating the plasticity and moisture of 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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