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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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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383-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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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8권0호(2013)~36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140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0호(2018년 07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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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에 있어서 창조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논문에서 브루그만은 폰 라드가 신학에 있어서 창조를 “주변화(marginalization)”시킴으로 “구약신학에 있어서 창조의 상실”을 초래하였으나 창조를 구약신학 해석의 지평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구약신학에 있어서 창조의 회복”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본 논문은 먼저 브루그만이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폰 라드에 의해 상실된 창조를 회복하는 것인지를 브루그만의 『구약신학』을 예로 들어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창조의 상실을 초래한 폰 라드의 주장과 그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성경을 권위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보는 “성경적” 논의를 통해서 창조의 본래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구약신학에 있어서 창조의 진정한 회복”임을 제시하였다. 폰 라드는 소위 “역사적 신앙고백”(신명기 26:5b-9; 6:20-24; 수 24:2b-13)이 오경의 형성과정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갖고 있었고 이 “역사적 신앙고백” 안에 창조나 시내산 사건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주로 포로기 이후의 본문들에서 발견된다고 가정하며 창조교리는 구속사에 부가된 신앙적인 진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본문과 본문의 전후 문맥에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신명기 26:5b-9는 단순히 하나님의 구원을 진술하는 구원사의 요약이나 신앙고백이 아니라 출애굽과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을 회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이 선취되었음을 확언하는 것이다. 약속과 성취를 내용으로 하는 “역사적 회상”은 창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창조언약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가 언약의 신학적 근거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폰 라드는 “신앙고백 가설”에 저해가 되는 시내산 사건을 의도적으로 “역사적 신앙고백”에서 배제해 버렸으나 본문의 “성경적” 문맥은 오히려 출애굽 사건이 시내산 언약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창조는 신앙고백에 의해 형성된 구속사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경이 가장 먼저 선언한 진리이다. 성경은 창조에 대한 이해가 신학적으로 구속에 대한 이해보다 우선함을 분명히 한다. 신학의 출발점은 구원이 아니라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창세기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이 세상의 창조주로 계시하고 있다. 구약성경이 역사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신앙고백이라는 폰 라드의 견해는 성경을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지식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지 “신앙고백”이 아니다. 성경의 강조점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느냐”가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어떻게 알리셨느냐”에 있다. “상실된 창조”의 회복은 창조를 구약의 지평으로 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니고 “역사적 신앙고백”에 대한 “성경적” 논의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In his article, “The Loss and Recovery of Creation in Old Testament Theology,” Walter Brueggemann argued that Gerhard von Rad caused the loss of creation in Old Testament theology by “marginalizing” creation in theology; however, as a “new paradigm” that takes creation as the horizon of Old Testament theological interpretation emerged, the recovery of creation took place in Old Testament theology. This paper, first, critically examines if the “new paradigm” mentioned by Brueggemann would recover creation lost by von Rad. In addition, this paper diagnoses the problems with von Rad's argument causing the loss of creation in Old Testament theology, and suggests that only by the “biblical” discussion considering the bible as the word of the authoritative revelation of God would be the true recovery of creation in Old Testament theology. Von Rad argues that the so-called “the short historical creed”(Deu 26:5b-9; 6:20-24; Jos 24:2b-13) took the absolute position in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the Pentateuch, that the Creation of the world or the events of Mt. Sinai were not mentioned in “the historical Creed” but it is found in the texts written after the exilic period and that the doctrine of creation was a religious statement added to the doctrine of redemption. However, as a result of a “biblical” examination of “the short historical creed” in this paper, it is found that creation and God the Creator were implied in the biblical context of the historical creed. This means that “the historical creed” is not a summary of the history of Salvation that simply states God's Salvation or a confession. It is confirmation that the promise of God the Creator has been fulfilled, reminding people of their exodus from Egypt and their return to Canaan. “Historical anamnesis” about this promise and fulfillment is based on creation and should be understood as an extension of the creation covenant, for God's creation is the theological ground and starting point of his promise. Von Rad intentionally excludes the events of Mt. Sinai that hinders “a confession hypothesis” from the “historical confession of faith.” However, the biblical context of “the historical creed” reveals that the Exodus was conducted by God the Creator, who made a covenant at Mt. Sinai(esp. Deu 4:32-34). Creation is not a by-product of the history of salvation formed by a confession, but an actual event described in Genesis. The Bible says that the understanding of creation theologically precedes the understanding of salvation. The starting point of theology is the Bible's teaching of creation, not of salvation. Genesis reveals that God is the Creator of this world from the beginning. Von Rad's opinion that the Old Testament is a confession of divine activity in history considers the Bible as a product of human experience and knowledge, not “revelation.” The Bible is “God's revelation” not “a confession.” The Bible's emphasis is not on what men thought about God, but on how God let men know about Himself. The recovery of lost creation is possible through “biblical” discussion about “the historical creed,” not through the change of the paradigm that takes creation as the horizon of the Old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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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잠언에 나타나는 여인 모티프가 갖는 문학적/신학적 기능에 대한 분석이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잠언에 나타나는 다양한 여성들의 정체와 역할에 대해 신화적이나 사회문화적 접근으로 이해하려던 시도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잠언안에서 여성 모티프가 갖는 문학적/신학적 기능을 살펴봄으로 여성 모티프의 역할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잠언에서 여인은 잠언의 중심 주제인 “지혜”가 의인화 된 “지혜 여인”과 이 지혜의 상대적 개념인 “어리석음”, “미련함”이 의인화되어 나타나는 “음녀”(“이방 여인”)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잠언에 나타나는 여성 모티프를 잠언 1-9장의 화자인 아버지와 청자인 아들 사이에 형성된 문학적 배경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아버지는 삶의 중심 원리인 “지혜”를 아들에게 교육하고자 “실재적 상징”이라는 수사학적 방법을 통해 지혜라는 추상적인 원리를 지혜 여인으로 발전시켰고 지혜 여인과 대조되는 다양한 여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아들로 하여금 합당 한 선택을 함으로써 삶의 원리인 지혜를 체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합당한 배우자 선택이라는 지혜가 가장 필요한 상황 속에서 아들의 결혼 전, 배우자 선택 상황, 그리고 결혼 관계의 세 단계를 통해 전개 되고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잠언에 나타나는 지혜 여인과 음녀의 모티프는 단순히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삶의 원리인 지혜를 얻는 것과 실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인 배우자 선택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잠언에 나타나는 여인 모티프는 잠언 1-9장의 문학적 구조를 형성하며 더 나아가 잠언의 중심 주제인 지혜를 가장 실재적인 방법으로 교육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사용된 의인화 기법임을 알 수 있다.


This study intends to provide an in-depth analysis of the literary and theological function of woman motif in Proverbs 1-9 with particular attention to the tension between Woman Wisdom and her rival Woman Folly. One of the striking features of the book of Proverbs is the active and decisive roles of woman figures. These features of women are unique in the Old Testament in that women are usually subject to male supremacy. In Proverbs, various female characters such as “wisdom lady”, “woman folly”, “the adulterous woman”, and “the strange woman” appear as active agents having crucial roles in both individual and communal contexts. Even before exploring the roles of these woman figures, we need to recognize the identities of these woman in the book. Woman figures mainly appear in the instructions of the opening nine chapters of the book. In order to identify these women, scholars suggest mythical and socio-cultural approaches. In this understanding, woman characters are regarded as reflections of either goddesses in ancient myths or social minorities, such as foreign women or forbidden community members. However, these approaches show intrinsic limits as they have tried to analyze the woman figures from external perspectives rather from the context of the book of Proverbs. Thus, this study intends to understand the woman motif within the context of Proverbs 1-9, in which a father teaches wisdom to his son. Women figures in Proverbs, indeed, are literary devices which represent the choice made by the young men. For pedagogical purposes, the father utilized “realistic symbolism” by personifying the abstract concept of wisdom and folly as a woman. Both woman wisdom and woman folly gradually reveal their identities and roles following the development of discourses in Proverbs 1-9. By doing this, the tension between woman wisdom and woman folly forms the structure of Proverbs 1-9. The question of identity of woman figures also raises the question of the roles of them in the book of Proverbs. In fact, the distinctions between woman wisdom and her rival woman folly is at the heart of the teaching of wisdom. This two types of woman competitively invite the son into a relationship with them. In this context, the young man, a son in Proverbs 1-9, is called on to make a choice between these two women. The choice between woman wisdom and woman folly plays a pivotal role in forming the literary structure and theology of the book of Proverbs. When Proverbs 1-9 is understood in this way, we can get the roles of woman motif in Prover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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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대교, 이방인 그리고 사도 바울 고(故) 학성 한철하 선생님을 추모(追慕)하며

저자 : 최순봉 ( Choi Soon Bong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9-11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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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갈라디아서 1:15-17과 2:7-9 그리고 2:11-14에 대한 주석적 재고이다. 갈라디아서 2:7-8에서 예루살렘 회의가 바울은 “무할례자에게로”, 베드로는 “할례자에게로” 란 사역의 대상을 결정한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1:15-17에서 바울은 자신의 소명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말한다. 이 두 본문은 바울의 소명이 이방인/무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복음/구원을 선포하기 위하여 파송되는 유대인이란 개념은 유대교 문화 속에서 자라고 바리새 교육을 받은 바울에게 매우 불편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가서 그들을 위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구약과 유대교의 중요한 개념을 여러 경우에 재해석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 중에서 ζηλο□와 관련된 내용을 복음의 진리에 맞추어 재해석(□□□)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의 개념을 구약과 유대교로부터 자신의 소명과 연결시키는 신학적 해석을 한다. 이와 함께 바울은 자신의 소명의 실천방법을 갈라디아서 1:17에서 예루살렘, 아라비아 그리고 다메섹과 같은 장소를 언급한다. 이 장소의 언급은 그가 자신의 소명을 주장하는 갈라디아서 1:16의 본문에서도 사용한 문장이다. 실제로 그는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방인에게는 선교한 것은 그의 서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바울이 당시 유대교에서 보는 이방인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가졌음을 반증한다. 바울의 선교를 기술함에서 선교의 내용과 함께 자신의 선교여행 경로를 매우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신학적 근거에 따른 의도를 암시한다.


The Gentile-Mission in the Second Temple Judaism was unusual. Paul called himself as a Minister of Christ Jesus to the Gentiles in the priestly service of the gospel of God (Rom 15:16). He states also in Galatians 2:7-8 that “I had been entrusted with the gospel to the uncircumcised, just as Cephas had been entrusted with the gospel to the circumcised”. Therefore, it has closely to do with the understanding of his passion of Mission for the Gentiles and the knowing his connotations for his divine calling in the Pauline Epistles. Paul reinterpreted conceptions of “ζηλο□” or “ζηλο□ θεου” and “□□□” as he earned in his Jewish background for Gentile-Mission. Paul himself pursued to archive the conception of the “ζηλωτη□” in Judaism. The description of his Jewish period of “zeal” basically refers to the names Phinehas, Elijah and Makkabar. In this sense, it is very difficult to imagine that Paul, as a Jew, especially a Pharisee, would come to the Goim. Paul was a fanatical Jew under the Jewish character of the typical Second Temple Judaism (Acts 8:1-3; Gal 1:13ff; Phil 3:5f). After converting to Christianity, however, he worked the hermeneutic thinking of the Heilsgeschichte. St. Paul was enthusiastic for his Gentile-Mission and spent all of his life. In Galatians 1:16, Paul defines his gospel as the Revelation from God, which he did not receive from any person directly. Many commentaries focus on 1:16a to emphasize the authority his apostleship. But 16b went unnoticed. It is also implicit that he wishes to have his vocation with geographical and ethical / religious references. Therefore, it is significant that Paul himself could be connoted as to what an apostle he is to the Gentiles. There is one more doubt about his mission to Gentiles. What is the reason for Paul to categorize the Gentiles who carry out his mission? We find a group that the Gentiles do not stay in the land of Israel. It has been Paul's vocation from the beginning that he has to differentiate between the Gentiles, both geographically and ethically / religiously, in the two Preposions (Gal 1:15-17; 2:11-14). This is very unlikely to make Paul avoid arguing with Cephas and the other people from Jerusalem. There is a suggestive possibility, described by Paul himself, that Paul's missionary activity in unaccountable Arabia times could probably be pr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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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03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개정에 대한 'ACTS 신학공관(共觀)'의 관점에 따른 평가

저자 : 신종철 ( Shin Jong Cheol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3-154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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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미국 북장로교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개정이 이루어졌다. 개정의 모습은 제16장 7항, 제22장 3항, 제25장 6항등이 삭제 혹은 문체가 수정 되었다. 그리고 선언적 진술문과 성령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34장,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를 기술하고 있는 35장이 첨가되었다. 이러한 1903년 신앙고백서 개정에 대하여 'ACTS 신학공관'의 관점에서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고백서 개정안은 'ACTS 신학공관'의 '기독교 중심 진리 강조의 입장'에서 볼 때 개정된 신앙고백서는 정통신앙의 약화를 초래하게 하는 근거를 제공하였다. 둘째, 'ACTS 신학공관' '바른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첨부된 선언적 진술문, 제35장 등을 포함한 개정된 신앙고백의 내용은 정통 칼빈주의 입장에서 약간 빗나가게 하고 조금은 알미니안(Arminian)으로 방향으로 선회하게 하였다. 셋째, 『신앙고백서』의 개정의 결과로 나타난 컴버랜드 장로교회와의 통합은 자유주의자의 수적인 우세와 그 발판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었다. 이것은 'ACTS 신학공관 ' '교회연합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건전한 교회일치 운동이 아니었다. 넷째, 'ACTS 신학공관' '참 신앙인 양육운동' 관점에서 보면 1903년 신앙고백서 개정은 올바른 신앙인들을 양성하기는커녕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을 소유한 인물들을 더욱더 양성하게 만들었다. 다섯째 'ACTS 신학공관' '교회 회복 운동'에서 볼 때 컴버랜드 교회들과 연합된 후, 장로교회 안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관한 서약을 보다 “넓은” 혹은 “느슨한”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교회 회복을 어렵게 만들었다. 교회의 회복보다는 교회 내에 논쟁을 야기 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근본주의 대(對) 현대주의 논쟁'으로 극렬하게 표현되었다. 오늘날에 극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젠더주의' 혹은 '동성애 문제'등도 신앙고백의 개정운동과 비슷한 양상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은근히 거부하고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슬로건 하에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1903년 신앙고백서 개정은 'ACTS신학공관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이 명확해 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보존하고 전파하기위하여 더욱더 'ACTS 신학공관'을 강조하고 교육하며 강화시켜야만 한다.


A revision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was made at the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at was held in 1903. Chapter XVI(Section 7), Chapter XXII (Section 3) and Chapter XXV(Section 6) were amended in their literary style. Also its Declaratory Statement, Chapter XXXIV on the Holy Spirit and Chapter XXXV on the Love of God and Mission were added. We can evaluate the revision to the Confession of Faith in 1903 from the viewpoint of the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as the following. First, the revisions to the Confession of Faith from the viewpoint of the central truth of Christianity in the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can be evaluated as havings opened a way to weaken the orthodoxy of faith. Second, the addition of the Declaratory Statement, Chapters XXXIV and XXXV can be evaluated, from the viewpoint of 'Sound Theology Movement' in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as slightly deviating from the orthodox Calvinist standpoint toward the Arminian standpoint. Third, the merging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Cumberland Presbyterian which resulted from the revision of the Confessions of Faith, has made for liberals' numerical predominance in the denomination. This was not a sound church unity movement if we evaluate it from the viewpoint of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Fourth, from the viewpoint of the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it has failed to nurture true believers and has bred and multiplied ministers trained in liberal theology, who do not accept the Bible as the word of God. Fifth, from the viewpoint of 'Church Renewal Movement' in the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there were changes in understanding of the subscription to the Westminster Confession in a more broad or loose way, after the merging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Cumberland Presbyterian Church. This has made the church renewal movement more difficult. The revisions have caused more controversy within the church rather than creating church renewal. This was intensely demonstrated through the events of the 'Fundamentalist-Modernist controversy.' The challenge of gender-ism or homosexual problem which is taking place in the present day is similar to the revision movement of Confession of faith. It subtly rejects the Bible as being the Word of God and attacks Christian faith under the slogan 'God's universal love for all people.' The problem of the 1903 revisions of the Confession of Faith is clear from the viewpoint of the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We must emphasize, educate and strengthen the 'ACTS Theological Synoptic Movement' to preserve the historical Christian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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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데오토코스에 대한 개혁신학적 평가

저자 : 김용준 ( Kim Yong Jun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55-18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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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고대 기독론을 결정한 공의회를 마리아 숭배와 신화와 연결시켜 이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해로 인해 그들은 역사 안에서 기독론적인 결정을 마리아 숭배와 신화 연결된 로마교회의 역사로서 고려했고, 교회의 신학과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중에 가장 심각한 오류는 데오토코스를 마리아 숭배와 신화와의 혼합으로 여기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서고 넘어짐의 교리를 파괴하여 기독교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다. 첫째, 데오토코스 문제는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대립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리아 교구와 안디옥의 교구는 가장 중심된 비잔틴의 교구였다. 그러나 삼위일체 논쟁이 주로 알렉산드리아(아리우스, 아폴리나리우스) 출신들로부터 이루어진 결과로 많은 안디옥 출신들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장 중에 데오토코스에 대한 이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대립했다. 그러나 디오도레와 데오도레로 대표되는 안디옥 신학 역시 기독론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논쟁의 중심에 있는 네스토리우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신학은 '내주'라는 개념 속에서 그리스도가 두 위격이 연합하여 한 위격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고, 후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둘째, 기독론 논쟁과 관련된 중요한 용어들이 있다. 우선적으로 안디옥이 주장했던 안드로포토코스, 네스토리우스가 중재하려고 했던 크리스토토코스, 마지막으로 알렉산들이아 교회가 유지하고 있었던 데오토코코스이다. 1) 이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용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과 연관된 것이다. 우선 안드로포토코스는 마리아가 품은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디오도레와 데오도레의 신학에서처럼 주로 '내주' 사상에 기초하여서 두 그리스도를 지시하게 된다. 두번째로는 크리스토토코스이다. 이 용어는 네스토리우스가 표면적으로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를 중재하기위해 제시한 용어였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 역시, 내주의 교리 속에서, 두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데오토코스이다. 공의회는 지속적으로 데오토코스를 정통적인 교리를 인정하였다(431/433(화해신조)/451).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왜곡이 일어났다. 2) 이 왜곡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다. 하나는 에베소 공의회를 마리아 숭배를 결정한 회의로 왜곡하였다. 이로 인해 마치 교회가 처음부터 마리아 숭배를 지지 한 것처럼 혼동하도록 했고, 마리아 숭배 중심에 데오토코스를 세워놓았다. 두 번째 왜곡은 데오토코스를 이방의 신화와 연결시켜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의 왜곡이었다. 이들은 동정녀 탄생을 사실로 보지 않고, 신화로 보았기 때문에, 데오토코스 역시 신화이며, 따라서 거부하였다. 결론적으로 데오토코스는 마리아가 아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문제였다. 개혁신학은 공의회를 따른다. 특별히 개혁신학자들(칼빈/바빙크)은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였다. 그러나 자금에 혹자는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이해를 따른다. 그러나 이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교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Liberal Theologians try to connect the decision of ancient ecumenical Council to the Mariolatry and Myth. On the basis of this understanding, they regarded all Christological decisions in history as Roman church's history connected with Mariolatry and Myth. These theologians distort the Theology and the history of Church. The most serious Christological err is the understanding of the term Theotokos, which is wrongly regarded as mixtures between Mariolatry and Myth. However, this theological idea is not just. Firstly, the term Theotokos is one of contradictions between theologies of Alexandria and Antioch. Both have authoritative positions in Byzantine Church. However, the church of Antioch doubted Alexandrian concept Theotokos as heretical, for the controversy surrounding the doctrine of the Trinity was caused by two Alexandrians (Arius and Apollinarius). So, they confronted each other. Theology of Antioch presented by Diodore of Tarsus and Theodore of Mopsuestia had also a heretical concept as inhabitatio surrounding Christology. They influenced Nestorius, following the concept inhabitatio, to be at the heart of Christological controversy in A.D 431. Antioch theologians regarded Christ as one person being the union of two persons on the basis of the concept inhabitatio, which implies that two persons in Christ are still held. They were condemned as heretics. Secondly, the controversy surrounding Christology connected closely with several concepts. Above all, there is Anthropotokos which implies a bearer of man, was used by Antioch, second is Christotokos, as a bearer of Christ, which was superficially regarded as intercession between Churches of Alexandria and Antioch by Nestorius. Finally, Theotokos, a bearer of God, which generally was the orthodoxy term in eastern church. 1) These ideas are basically not connected with Mary, but with the deity of Christ. So, Anthropotokos is indicative of being, whom Mary conceived, as a human being. So as Diodore and Theodore held, on the basis of idea of inhabitatio, it is indicative of two Christs. Next is the Nestorian term Christotokos, a bearer of Christ, in which Nestorius held nothing other than two Christs on the basis of the understanding of inhabitatio. Finally, Theotokos which was approved as orthodoxy doctrine by ecumenical Council. In spite of it, the Nestorian distortion of the term Theotokos, as a term for Mary, not for Christ's deity, has been considered legitimate. 2) Two distortions of the term Thetokos on basis of Mariology occur as follow. One distortion which the Ephesian Council in 431 approved officially was the concept of Mariolatry. It made people misunderstood that term Theotokos caused Mariolatry from the beginning. The other is that the Theotokos was on the basis of other religious myth. It was the concept which liberal theologians' distorted in the concerning the Theotokos as Myth. They didn't believe virgin birth as historical fact, but as myth. Therefore, they identified Theotokos with Myth, and rejected it. This paper concludes that the concept of Theotokos is not about Mary's deity, but about the deity of Christ. Reformed theology follows the ecumenical council's direction on this matter. Reformed theologians (Calvin and Bavinck) condemned Nestorianism. However, there are currently some who follow Nestorius' understanding on the two persons of Christ. However, to deny the term Theotokos by following Nestorius is to destroy the doctrine of standing and falling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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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회심의 표지는 쉽게 단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또한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판단 할 권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은 회심에 대한 부정적 측면이 아닌 참된 회심의 표지들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요소들을 탐구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자신과 목회 현장에서 참된 회심을 점검할 수 있는 시금석을 제공해 주고, 영적 성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12세기 클레어보어의 버나드와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외 회심론과 참된 회심의 공통적인 표지들로 고려할 수 있는 요소들을 탐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신학적 측면에서 첫째, 회심은 근래에 주로 논의되는 회개와 믿음 측면에 국한시키는 것보다 신자들의 삶 전 과정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회심에 있어서, 믿음과 회개에 앞서는 일차적 중생과 후속하는 이차적인 중생(회개, 성화)을 구분하거나 분리하는 것은 영적 생명의 연속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첫 신앙을 갖게 한 중생과, 이로 인한 갖게 된 믿음의 결과인 회개의 삶은 단절되지 않은 연속적인 과정이다. 둘째, 첫 회심과 이어지는 연속적인 과정으로서의 회심에서, 다양한 성령의 사역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말씀과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않는 내적 말씀 또는 성령의 사역은 그 근거가 상실된다. 참된 회심의 공통적인 표지들로 고려할 수 있는 요소들은, 첫째, 첫 회심과 함께 지속적인 말씀에 대한 체험적 지식, 즉 객관적인 계시, 성경 말씀을 더욱 깊이 알게 되고 그 결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신뢰하는 삶은 모든 신자들의 삶의 토대와 영적 양식이 된다. 둘째, 이로부터 내적으로 지속적인 전인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 그 중심은 회개의 삶의 첫 번째 요소인 죄를 죽이고 정복하는 삶이다. 그 결과는 내외적인 겸손으로 이어진다. 셋째, 첫 번째 표지의 외적 결과로서, 또한 회개의 삶의 두 번째 요소인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사는 것으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참된 하나님의 사랑과 악을 선으로 갚는데 까지 발전해 나가는 이웃 사랑이다.


Discerning the marks of true conversion is challenging, Moreover, no one has a right to judge true conversion of other people from the viewpoint of the traditional reformed theology such as “the finite is not capable of containing the infinite,” Nevertheless, this paper examines the marks of true conversion which can be considered sufficient signs of true conversion to Christ. Establishing this will provide, not only the norms for examining one's own true conversion, but also direction for the proper growth of our spiritual lives, excluding a negative approach to true conversion, even though the most studies of true conversion generally deal with both true marks and uncertain marks of real conversion. There are three reasons why the methodology of this paper adopts a comparative study on the marks of true conversion between 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 and Jonathan Edwards (1703-1758). First, St. Bernard and Jonathan Edwards share common thoughts on the topic of conversion and its marks. Second, conversion within both theologies contain a balance and harmony of theology and piety, doctrine and praxis. Third, Edwards' True Grace and Bernard's On Conversion have been influential and decisive elements of conversion. There ar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the experiences and theories of conversion of Bernard and Edwards. Both theologians share essence of conversion is (1) the direct work of Holy Spirit, a transformation of the whole by the calling of the Word (vocatio verbalis) and raising faith and repentance by regeneration. They see (2) the continuity of conversion (repentance): Even if the whole of conversion to God is understood under the terms repentance and faith, conversion should be understood more broadly, which is shared by the view of John Calvin i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1536, 1559). Because it breaks up the continuity of the spiritual life to make it a distinction and a separation between the primary regeneration, which precedes faith and repentance, and the subsequent secondary regeneration (renewal or repentance), which is shared by the view of Herman Bavinck in Reformed Dogmatics (Vol. 4). and (3) a variety of works of Holy Spirit in conversion experience of two theologians; The modes of applying of inner Word: inner voice (Bernard) and supernatural light (Edwards), and also the power of the Word resolved the problems: inward and outward temptations (Bernard), more deep understanding of biblical doctrines. (Edward). This paper finds common signs of true conversion which can be considered sufficient marks. First, it is the power of the Word of God that enables the transformation of the whole human being, both inwardly and outwardly. At the same time, it is the responsibility of man: the battle against sins (Bernard), the pursuit of all of the means of grace (Edwards). Second, as a result of getting known God the Father and Christ Himself by the work of the Word of God, it will be especially improved the progress of holiness to overcome sins as mortification of one part of repentance. Third, it can also be practiced a true love to God (for Himself) for whom one does all thing which no matter what he can to honor Him, and a true love to neighbors (for neighbors-self) from to love them who love oneself, through being patience against evil, to overcome evil with good, as vivification of the other part of repen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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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선교가 복음주의 선교여야 하는 이유 : 프랑크푸르트 선언문 다시읽기를 중심으로

저자 : 박영환 ( Park Young Whan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33-272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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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WCC 4차 웁살라 총회의 선교목표가 “인간화”라는 선언은 세계선교사역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선교의 부수적 사역인 “사회참여” 혹은 “사회봉사”가 자리를 잡았다. 복음주의 선교의 복음전도로 본 “복음화”는 에큐메니칼 선교의 “인간화”에 세계선교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설자리를 잃어버렸을 때, 피터 바엘 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 에큐메니칼 선교내의 복음주의 입장에 선 학자들이 “프랑크푸르트 선언문”(The frankfurt Declaration)을 발표하게 되었다. 본 선언문은 선교의 주제가 인간화가 아니고 복음화라는 명확한 정답을 제시해준 제안서며, 설명서다. 이 부분의 연구가 한국선교신학회에 거의 없었다. 여기에 '다시읽기'작업으로 재정리하여, 혼돈스러운 복음주의선교입장을 바로 세우고, 에큐메니칼 선교의 과제를 재정리하였다. 선교는 양 진영의 통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증거하는 성경의 복음이 지닌 진리를 복음전도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부분에 양 진영이 신뢰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복음주의선교도 에큐메니칼 선교의 협력 없이는 세계선교가 불가능함을 알아야한다. 선교는 교회의 역할과 사역중심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선포되어져야 한다. 즉 복음전도는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며 제일가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세계선교의 정체성으로, 복음주의 선교가 선교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The declaration of “humanization” as the goal of the mission in the 4th as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Uppsala in 1968, resulted in losing the identity of the world missionary work, but the social participation or service had emerged as the identity of the mission. German evangelical scholars who led by Peter Beyerhaus in the Ecumenical mission announced the “Frankfurt Statement” when the mission of the “Evangelism” lost the hegemony of the mission by the “Humanization” of the Ecumenical mission. This new statement was a manual that states the theme of the mission is not humanization but evangelization. In this regard, this type of the research has not been conducted in the Korean Mission Theological Society. Therefore, this study is to set up a clear viewpoint of the evangelical mission by the “Re-Reading” work and rearrange the task of Ecumenical Mission. The mission is to reveal the truth of the gospel by the Holy Bible and show to the world the life of the Christian rather than ideological controversy between the Evangelical and Ecumenical missions. To success, the world mission, both the Evangelical and Ecumenical missions should cooperate and trust each other. The mission involves the work of God's salvation in the church ministry. The most important and valuable moment in the mission is to own the eternal life. This is the reason why the Evangelism should focus on the mission filed and this is the identity of the World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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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계종교들의 고통관의 유형들 : 성취하는 하나님 나라

저자 : 안점식 ( Ahn Jum Sik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73-30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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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세계종교들에 나타나는 고통관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기독교 세계관의 특징을 부각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세계종교들은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는데, 먼저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입각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불교와 힌두교 등은 고통의 문제를 인식의 문제로 환원시키는데, 우주의 실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종교들은 고통의 문제를 실존적, 인식적 차원에서 주로 다룸으로써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면이 있다. 이와 반대로 고통의 문제를 통치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올바른 통치구조나 통치자의 자질을 논하는 인본주의 세계관들이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은 유교, 노장사상, 맑시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들은 이상적 통치 하에서 고통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현세적 이상주의이지만, 개인적인 불행이나 자아의 문제를 깊이 다루지 못한다. 정령숭배에서는 행복과 불행, 그리고 고통의 문제가 초자연적인 영들이나 힘의 소행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영이나 힘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주술이 발전한다. 그러나 정령숭배는 자아의 문제도, 사회적 차원에서 고통의 문제를 다루지도 못한다. 이슬람과 같은 유신론 종교는 신이 죄에 대해 심판하거나 믿음을 시험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신론의 고통관에서는 여러 가지 신정론적인 주제들이 제기된다. 기독교의 고통관은 포괄적이고 통섭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종교들이 이해하는 고통의 원인과 해결책이 편향된 것으로 본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 나라에서 고통의 원인들이 어떻게 제거되고 인간의 염원이 어떻게 포괄적으로 성취되는지를 보여준다.


This article highlights the uniqueness of the Christian worldview by analyzing and comparing the views on suffering in world religions. World religions deal with the problem of suffering. They try to identify the cause of suffering and suggest solutions. Hinduism and Buddhism reduce the problem of suffering to a question of perception, insisting that having a correct perception of the reality of the universe is a way to be liberated from suffering. These religions deal with the problem of suffering in terms of the existential, cognitive dimension, and are lack of dealing with social dimension. On the contrary, there are humanistic worldviews such as Confucianism, philosophical Taoism and Marxism which reduce the problem of suffering to a problem of reigning society. They discuss the proper structure of reign and the qualities of the ruler. These worldviews are this-worldly idealism that thinks that the problem of suffering is resolved under ideal rule, but it does not deal with the problem of self or personal misfortune. In animism, suffering is thought to be caused by supernatural spirits or forces, and therefore, develops sorcery to control or manipulate them. However, animism does not deal with the problem of self or reign in order to solve the problem of suffering. Islam, as a theistic religion, insists that suffering occurs because God punishes sin and to test faith. However, in the theistic religions, various theodicean issues are raised. The Christian view of suffering is comprehensive and integrated in nature by which the biased views of world religions can be corrected by it. The Christian worldview shows how the causes of suffering are eventually removed and the human desires are comprehensively accomplished in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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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신 냉전 시대 중동 이슬람 갈등상황의 선교적 함의

저자 : 장훈태 ( Chang Hun Tae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09-360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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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중동 지역은 수년에 걸친 혼란과 정치적 역학 관계가 더욱 복잡해져 가고 있다. 이후 중동은 2016년 초부터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단절, 수니파와 시아파의 본격적 갈등, 이슬람국가(IS)의 자행과 퇴락, 끊임없는 중동지역 테러와 시리아의 내전,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내전과 미사일 공격 등의 사건들로 인해 신 냉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동을 향한 복음전도와 평화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외부자적 관점에서 중동의 현실을 바로 바라보고, 복음을 통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중동 사람들의 삶을 끄집어내는 지표가 되는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동에서 이슬람은 삶이자 철학이며, 종교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행동규범이며 삶의 방식이다. 이들의 전통문화는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문화와 전통에 따라 행동하며, 가부장적 사회의 전통이 지배한다. 물론 신도시의 형성과 함께 이들의 생활방식에도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두 번째는 중동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동 이슬람 지역은 단일공동체가 아니다. 종교적 문화적으로 다양성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며 갈등이 존재하는 지역이다. 물론 중동의 종교적 갈등은 단순한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라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세 번째는 중동의 영토 분쟁에 대한 이해이다. 중동은 종교적 분쟁 뿐 아니라 다양한 영토 분쟁이 존재한다.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화 정책으로 인해 형성된 국경에 대해서 중동 사람들은 주권 개념으로 연결하여 거부감을 갖는다. 더욱이 이 지역은 부족사회 정체성과 자원의 문제가 연결되어 갈등이 심각하며, 종교적 갈등까지 더해져 부족과 국가의 영토 문제로 인한 내전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중동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이슬람의 영성문화를 바르게 인식하고 그에 따른 복음의 적용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중동의 중심 벨트인 시아파 벨트와 수니파 벨트를 활용한 선교적 전략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중동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인식하고 교회의 변혁을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동의 복음화가 지정학적, 종교적, 국제정치 관계를 포함해 문화적 다원성 등의 복학접인 요인들이 있음을 파악하고, 이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The Middle East has experienced more confusion and political dynamics over the years since 2011. In addition, the Age of New Cold War in the Middle East from the beginning of 2016 has started from a break in relations between Saudi Arabia and Iran, a conflict between sunni and Shi'a, the violence and destruction of the Islamic State, continuous Terrorism in middle East area and the civil wars in Syria, and the civil wars and missile attacks in Yemen and Saudi Arabia, etc. It is very important to find a way to evangelize the gospel and peace towards the Middle East under these situations. Therefore, Christians should continue to look directly at the realities of the Middle East from an external perspective, and try to find ways to heal their pain with the gospel. The first thing to do is to understand the traditional culture, which is an indicator of the lives of Middle Eastern people. In the Middle East, Islam is the life and philosophy, a code of conduct and a way of life that goes beyond the boundaries of religion. Their traditional culture emphasizes communality and at the same time recognizes the coexistence of various cultures. These people also act to follow culture and tradition, and are dominated by the traditions of the patriarchal society. Of course, it should be noted that their lifestyles were beginning to change with the formation of new cities. Second,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religion of the Middle East. The Middle East Muslim region is not a single community, but rather has a history of diversity in religious and cultural, and conflicts in different nationalities and religions. Of course, it should be understood that the religious conflict in the Middle East was caused not just by religious issues but by political conflicts. Third, it is to understand the territorial disputes in the Middle East. There are various territorial disputes as well as religious disputes in the Middle East. People in this area have rejected boundaries which are formed by the policies of colonialization of Western powers by linking to the concept of sovereignty. Moreover, this region has had serious conflicts, along with the connection of tribal social identity and resource issues, and has continuously been going civil wars because of tribal and national territory issues with religious conflicts. Eventually,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ese situations and precede multiple efforts evangelizing the gospel in the Middle East. First, we need to recognize the spirituality of Islam and apply the gospel accordingly. Next, we should establish missional strategies by using the Shi'a-belt and Sunni-belt of the Middle East. It should also recognize structural changes in Middle Eastern traditions and customs, and make efforts transform the church. In conclusion, we need to understand that evangelization of the Middle East is connected with complex factors such as geopolitical, religious, international politics, and even cultural diversity of the Middle East. Furthermore, we also should concern how these issues should be considered in the eyes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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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수용전념치료의 심리적 유연성 분석과 기독교적 평가

저자 : 김준수 ( Kim Jun Soo )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학연구소 간행물 :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61-396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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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심리적 유연성을 상담의 목표로 하는 인지치료의 제 3의 물결이라고 하는 수용전념치료의 개론적 이해와 역사 그리고 유용성을 살펴보고 기독교적인 평가와 적용 가능성을 기술하였다. 전통적인 인지행동치료는 인지를 하나의 행동으로 인식하고 내담자의 왜곡된 인지의 변화를 행동 변화의 치료핵심으로 보았다. 그러나 수용전념치료는 내담자의 인지적 왜곡을 교정하는 대신에 내담자의 심리적 수용성을 강화시켜주는 과정을 통해서 인지적 왜곡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치료적 효과를 강조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심리적 경직성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과 같은 심리적 장애들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심리적 유연성의 향상은 다양한 심리적 장애를 호전시키는 것으로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밝혀지고 있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수용전념치료에서 치료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심리적 유연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관계구성틀 이론과 인지적 융합을 설명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어떻게 인간의 언어가 심리적 경직을 유발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수용전념 치료의 대표적인 치료도구인 마음챙김의 뿌리와 진행과정을 기독교 상담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기독교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였다. 특히 심리적 유연성과 영적 성숙은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유사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영적 성숙은 신자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는 것이며 신자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메타인지(성령인지)의 기능이 강화되고 그 결과로 심리적 유연성이 개선될 수 있음을 기술하였다.


This article focuses on the basic understanding and brief history of one of the third wave therapies called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ACT) and its evaluation and application from the Christian perspective. Psychological flexibility, which is the goal of the ACT, is defined as paying attention to present moment and taking value guided effective action. The greater your psychological flexibility, the better you can handle painful thoughts and feelings and the more effectively you can take action to make your life meaningful. Psychological inflexibility is considered one of the main cause of depression and anxiety disorder. In this article, in order to understand psychological flexibility, a theory of human language called relational frame theory(RFT) and the cognitive fusion are explored. The mindfulness, the ACT's main psychological technique to enhance psychological flexibility, is evaluated from the Christian counseling perspective. This article closes with the comparison between the psychological flexibility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spiritual mat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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