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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유럽철학연구 update

Researches in Contemporary European Philosophy

  • : 한국해석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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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해석학연구(~2015) → 현대유럽철학연구(2015~)

수록정보
수록범위 : 38권0호(2015)~48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78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0호(2018년)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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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칸트와 바제도우 :칸트의 교육 철학과 바제도우의 학교 개혁

저자 : 조관성 ( Kwan-sung Cho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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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내재적 해석과 (해체적 해설이 아닌) 건설적 해설의 방법으로 칸트와 바제도우를 대조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연구 과제를 연구 목적으로 추구한다. ①바제도우가 구상하는 교육학의 기본 윤곽을 그의 교육학 원전에 기초하여 정식화하고자 한다. ②바제도우가 안중에 두고 있는 교육 이론의 특징을 또는 그가 주장하는 교육학 원리를 그가 교육학함에서 가고 있는 자연적 교육의 길과 선실후명의 길과 학교 개혁의 길에 주목하여 특히 코메니우스와 루소 그리고 칸트를 고려하여 그리고 이들 사이의 영향 관계에 착안하여 발굴하고자 한다. ③바제도우는 칸트와 함께 그 당시 사회적 문화적 생활 세계를 공유하면서 교육 철학이나 교육 이론 보다 교육 실천과 교육운동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실험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이 학교를 통하여 실제로 교육 개혁을 지향하는 학교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연구는 바제도우가 실행하고자 하는 학교 개혁을 칸트와 관계 지어 다루면서 바제도우와 칸트가 학교 개혁이라는 동일한 도상에서 각각 의존하고 있는 서로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을 두 사람 사이의 영향 관계에 주시하여 해명하고자 한다.


Diese Abhandlung, die eine immanent aufschliessende, die inneren Bezuge freilegende Interpretation in der Weise der konstruktiven Exposition von Kant und Basedow versucht, hat zum Ziel, die folgenden drei Aufgaben zu erfullen. Erstens wird bestrebt, anhand der zwei padagogischen Werke Basedows seine Grundgedanken der Padagogik auszuarbeiten. Zweitens wird beabsichtigt, im Blick auf Comenius, Rousseau, Kant und Basesow die drei von Basedow beschrittenen padagogischen Wege bzw. die drei von ihm bevorzugten padagogischen Hauptinteressen (d.h. die physische Erziehung, Res Ante Nominem, Schulreform) als die Grundzuge der Padagogik Basedows herauszuarbeiten. Drittens wird der Versuch unternommen, im Hinblick auf die umstrittene Wechselwirkung von Kants spekulativ gefarbten Erziehungsphilosophie und Basedows praktisch orientierten Erziehungslehre das Verhaltnis von Kant und Basedow besonders im Themenbereich der Schulreform aufzuzei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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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존재와 시간』의 서문에 대한 고찰

저자 : 한충수 ( Choong-su Han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7-5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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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에는 여덟 개의 절로 된 긴 서론이 선행한다. 서론은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 장은 존재 물음의 필연성, 구조 그리고 우위에 대해서 논하고, 두 번째 장은 존재 물음을 해결하기 위한 이중의 과제를 소개하고, 탐구의 방법을 밝힌다. 그런데 이러한 서론의 앞에는 길이가 약 반 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텍스트가 놓여 있다. 하이데거는 다른 작품에서 그 텍스트를 서문(Vorwort)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서문은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적은 글인데, 『존재와 시간』의 서문은 책의 내용의 일부만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데거는 존재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두 개의 과제, 즉 시간을 존재에 대한 물음의 초월론적 지평으로 설명하는 것과 존재론의 역사를 현상학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수행하고자 한다. 그런데 서문은 첫 번째 과제만 소개하고, 해체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다. 본 논문은 왜 『존재와 시간』의 서문이 두 번째 과제에 대한 소개를 생략하는가라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본 논문이 제시할 이유는 서문에서 전통 존재론의 해체 작업이 이미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가 구태여 해체의 과제를 짧은 서문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Die Einleitung von Sein und Zeit besteht aus acht Paragrafen. Sie gliedert sich in zwei Teile. Der erste Teil behandelt die Notwendigkeit, die Struktur und den Vorrang der Seinsfrage. Im zweiten Teil stellt sich Heidegger zwei Aufgaben fur die Ausarbeitung der Seinsfrage. Dieser Einleitung aber geht ein kurzer Text voran, den Heidegger Vorwort in der Einleitung zu “Was ist Metaphysik?” nennt. In der Regel ist ein Vorwort derjenige Text, der den Inhalt eines Buches skizziert. Aber das Vorwort von Sein und Zeit erwahnt nicht den vollstandigen Inhalt, sondern nur die eine Aufgabe, namlich die Interpretaion der Zeit als Horizont des Seinsverstandnisses. Also wird die Aufgabe der Destruktion nicht genannt. Der vorliegende Beitrag setzt sich daher mit folgender Frage auseinander, warum Heidegger die zweite Aufgabe im Vorwort nicht erwahnt. Die Antwort auf diese Frage lautet, wie zu zeigen sein wird, dass die Destruktion nicht eigens im Vorwort erwahnt zu werden braucht, weil sie schon dort vollzogen w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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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문성의 새로운 정초시도로서의 카시러의 상징철학 :카시러의 언어이해 및 상징 개념을 중심으로

저자 : 최성환 ( Sung-hwan Choi ) , 노영환 ( Young-hwan Noh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1-9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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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학문성 논의는 항상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어 왔으며, 크게 보면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간의 대립의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20세기 초반에는 생철학과 논리실증주의가 각각 주관주의와 객관주의라는 양 극단을 대표하는 사조로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카시러는 자신의 상징철학을 통해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는 인간 정신이 '상징화'라는 매개적 활동을 통해서 삶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이해방식 하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이 해소된다고 보았다. 상징화를 통해서 주관성은 객관화되고, 객관성은 주관성의 구성활동에 의한 결과물로서 파악됨으로써, 객관성은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된다. 그리고 카시러의 철학에서 이러한 이해의 구체적인 방식은 '상징 형식들'과 '상징적 함축'이라는 개념과의 관련 속에서 해명된다. 이러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과 결합은 카시러의 언어 철학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이와 관련된 그의 논의는 19세기 경험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출발한다. 이 당시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것의 발생적 기원을 묻는 문제였으며, 이때 언어는 그 기원적 측면에서 주관적인 정동을 표출하는 '흥분음운' 혹은 객관적인 대상을 모방하는 '모방음운'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시러는 기원적 차원에서부터 이미 인간 언어에서는 상징화를 매개로 한 주관성과 객관성의 상호연관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호연관에 대한 그의 언어 철학적 논의는 W. v. 훔볼트(Wilhelm v. Humboldt)의 언어관이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객관화 활동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단초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언어 철학에서 인간 정신의 객관화의 구체적인 방식으로서 '은유적 사유'에 근거한 언어적 표현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는 은유적 사유를 매개로 객관적 세계 이해의 가능성을 확보한다. 카시러는 이러한 일련의 논의를 통해서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에 대한 해소와, 더 나아가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우리들에게 제시해준다.


The debates on philosophy as a scientific character have always been an important issue, which has largely been developed around the conflict between subjectivism and objectivism In the early 20th century this was manifested in the dispute between Lebensphilosophie and logical Positivism. Cassirer, in this period, attempted to overcome the confrontation through his symbol philosophy. He thought that human spirit interprets life indirectly through the mediating function of 'symbolization' and that this can resolve the conflict. Subjectivity is objectified through symbolization, and objectivity is understood as a result of the composition of subjectivity. So objectivity is understood at a new level, and Cassirer finds its specific principle in the concept of 'symbolic forms' and 'symbolic pregnancy'. A similar conflict and resolution can also be found in Cassirer's philosophy of language. He begins by critically examining the methodology of empirical science in the 19th century. At that time, the task of linguistics was mostly concerned with the origin of language. Hence language was limitedly understood as either an subjective expression of excitement or onomatopoeic imitation of an objective things. But he mainta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is mediated by symbolism in human language. His view on this interrelationship owes much to Wilhelm von Humboldt who developed the idea of the objectification of human mind. However, Cassirer took this idea further and suggested the idea of linguistic expression of 'metaphorical thinking' as a specific method of human activity of objectification. Therefore, language, through metaphorical thinking, is what secures the possibility of understanding the objective world. Through these discussions, Cassirer not only presents us a resolution to the conflict between subjectivism and objectivism but also a possible way of understanding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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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혐오의 시대, 주체와 타인 :레비나스와 지젝의 대화를 통해

저자 : 박현정 ( Hyun-jung Park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3-138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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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혐오의 시대, 타인과의 공존을 고민해야 할 필요에 대한 하나의 존재론적 응답이다. 본 논문은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와 지젝(Slavoj Zizek, 1949-)을 대화 속으로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주체가 타인을 수용하는 일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다. '타자성의 철학'을 통해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와 책임'을 요청했던 레비나스에 맞서, 지젝은 우리가 타인에게 투사한 가면을 찢어발기고 파열하는 '괴물성'을 경고한다. 그러나 면밀한 존재론적 고찰을 통해 볼 때, 두 철학자의 이와 같은 외적 차이는 그들이 직면한 공통의 사태(외재성의 내재성)에 속한역설 자체를 가시화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두 철학자는 모두 '동일성의 철학'에 맞서 주체의 현실을 넘어서는 무한 혹은 실재를 숙고한다. 이들이 사유한 타자는 '구체적 보편성'으로서, 오로지 존재자들을 현상시키는 주체의 실존을 통해서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에서 특정한 동일자이게 된 주체는, 타자가 '부정적'인 까닭에, 스스로의 동일성을 넘어서는 방식으로만 비로소 타자로 되돌아가게 된다. '타자성'(외재성)에 대한 깊은 수용이야말로 내가 '주체'(내재성)로서 존재해 가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이 때 타자와의 관계로서 있는 한, 주체는 불가피하게 타자의 또 다른 구체적 현현인 타인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제 두 철학자에게는 이 타인들은 단순한 방해물이 아니라 타자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다. 주체가 자기의 동일성'으로부터' 넘어선다는 것을 숙고할 때, 우리는 지젝의편에 서게 된다, 우리는 현실적 질서의 불완전성 혹은 비일관성을 뜻하는 '실재'(혹은 타자)로부터 주체의 '자유'의 가능성을 부여받고 현실의 상징적 구조를 다시 쓸 수 있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상징적 구조는 단순한 장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동일성을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 질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동일성이 고집하는 특정한 지위를 넘어서서 '정의'의 이름으로 연대할 것이 요구된다. 지젝에서는 관점을 갖는 주체의 의식이 바로 그 관점을 강요하는 구조적 무의식을 다시 쓰는 포괄적 변화의 중심에 놓이고, 이때 타인들은 현실의 결여를 드러냄으로써 행위의 출발점이 되는 동시에 실재적 동등성을 부여받아야 할 자들로서 행위의 목적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체가 동일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넘어섬'의 가능성을 숙고할 때, 우리는 레비나스의 편에 서게 된다. 레비나스는 현실에의 안주를 넘어설 수 있는 동력을, 주체의 '외부로부터' 밀어닥치는 것에서 찾는다. 지젝의 타자가 상상계-상징계-실재의 세 차원을 가지며 이로써 주체 역시 현실에 강하게 묶인 반면, 레비나스의 주체는 '자아'의 '자기'에의 연관으로 이해되며 타인은 저 '자기'에 대해 철저히 '외부성'으로 상정되어 있는 덕분이다. 타인의 낯선 침입이 우리의 살과 피를 가진 우리를 찢어 불러내며 아픔 속에서 나 자신의 의지에 반해 자기의 몫을 내어주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일은 바로, 지젝에서는 우리에게 위협이자 동시에 연대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졌던 타인이 타자의 '얼굴'로서 가하는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가까움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다. 주체가 자기를 넘어서 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정의'를 지향할 수 있는 '자유'에 종속되지 않는 '사랑'의 '의무'가, 그것도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가 존재론적으로 앞서야 한다. 이들의 '대립'은 타자성이 동일자인 나에게 외재적인 방식으로 내재한다는 역설적인 사태를 드러내고, 바로 이 사태야말로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깊이 숙고해야 할 지점임을 알려준다. 이 역설적인 사태로 인해 나는 나로서 있는 동시에 나로서 있지 않고, 타인은 단순히 추상적인 윤리의 논의거리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는 나 자신과 (부정적) 보편자와의 관계 맺음의 일부다. 현실에서 나와 타인 사이를 가르는 온갖 동일성과 그것에 딸린 차이들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 지금과 같이 나의 이익을 고집하고 타인에게 증오를 돌리며 타인을 배제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의 존재를 보장받으려 하는 그런 태도와는 다른 존재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존재방식이란 내가 나의 동일성을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이며 이는 나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방식에서든 나의 의무를 극대화하는 방식에서든 결국, 우리 스스로가 타자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획득해야 할 우리 자신의 실존의 과제일 것이다.


This paper is an ontological answer to the need to deliberate on the coexistence with others in the era of hatred. This paper aims to reveal the possibilities and difficulties of the relationship with others, by developing the argument through the dialogue between Levinas (Emmanuel Levinas, 1906 - 1995) and Zizek (Slavoj Zizek, 1949-). Against Levinas who asks us for our unconditional hospitality and responsibility to others in his 'philosophy of otherness,' Zizek gives us a strict warning against the monstrosity which ruptures from inside the masks we project to others. However, through a more detailed ontological review, it turns out that these external difference of the two philosophers visualizes the very paradox of what they are facing in common: the interiority of exteriority. Both philosophers stand against the'philosophy of identity' and contemplate the Other(infinity) or negativity(the Real) that is beyond the reality of the subject. The Other as the 'concrete universality' exists only through the existence of the subject to whom the phenomena appear. However, because the Other is 'negative,' the particular subject can return to the Otherness only in a manner that one goes beyond the identity of oneself. It means that deep acceptance of 'Otherness'(exteriority) is the only way I exist as a 'subject'(interiority). Here, as long as the subject is in relation to the Other, the subject inevitably faces another person, another concrete manifestation of the Other. To both of the philosophers, these others are not just the barriers, but the only pathway to the Other. We are on the side of Zizek when we consider that subject transcends 'from' its own identity. From the 'Real' (or the Other) which means the incompleteness or inconsistency of the actual order, we can be given the 'liberty' to re-inscribe the social structure. At the same time, because the symbolic structure of our society is not merely an obstacle, but what constitutes my own identity, solidarity is required in the name of 'justice' against the social status involving our identities. In Zizek, the 'consciousness' of the subject in its perspective is at the center of a radical change that rewrites the structural unconsciousness that forces the perspective. And here others are the triggers of the 'act' in their exposure of the lack of reality, and the purposes at the same time in their need to be invested the real equality. However, when we consider the subject's possibility of 'going beyond' its identity, we stand on the side of Levinas. Levinas finds the motivity for the transcendence far from the content with reality, as invading from 'outside' of the subject. Because while the Other to Zizek is a three-dimensional loop between the imaginal, the symbolic and the Real, and therefore the subject is strongly tied to the reality, the subject to Levinas is understood as the relation of 'the I'(moi) to 'myself'(soi), and others are thoroughly assumed to be the 'exteriority' against 'oneself.' An unfamiliar invasion of others tears out us in flesh and blood and demands that we should give them our share in pain even in contrary to my own will. And my openness begins with the 'physical and direct proximity' of the naked 'face' of the others who to Zizek have the dual status as the threat to us and at the same time the object of solidarity. In order for the subject to go beyond itself, the duty of 'love' that is not dependent on the 'freedom' which aims for 'justice,' that is, the most concrete and direct duty must precede. Their 'confrontation' reveals the paradoxical situation that the Other is extimate(inherent but inassimilable), and this is the very matter that we should ponder more deeply for our relationship with others. Because of this paradoxical situation, I am myself and not myself at the same time, and others are not simply an object of the discussion for abstract ethics. Relationship with others is par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e and the (negative) Universal. We all know that all ident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myself and others need to be treated in a different way than they are now in my insisting on my own interests, assuring my presence showing hatred towards others. Perhaps the possibility of the other way of being depends on how much I can open my identity. And whether in the way of maximizing my freedom or in maximizing my duty, in the end, it is our urgent task to rewrite our own existence in acceptance of Other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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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영성 훈련에 대한 두 관점 :푸코와 아도의 논의를 중심으로

저자 : 김분선 ( Bun-sun Kim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9-1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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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자기 배려'에 대한 명확한 해명의 일환으로 푸코가 차용했던 '영성 훈련'의 개념을 분석한다. 또 영성 훈련을 푸코와 동일한 자료들에 의거하여 분석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 아도의 논의를 보여줄 것이다. 아도는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영성 훈련에 대한 주요 개념들을 논의한다. 이는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에 등장하는 영성 훈련의 개념들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두 학자 모두가 고대 철학의 주요 논점을 영성 훈련으로 보고 있고 이때 영성 훈련의 개념을 '생활양식'과 '지혜', '삶의 기술 연마'로 집약하여 설명한다는 유사점이 있다. 또 두 학자 모두가 고대 철학의 정신을 '삶의 철학'에서 발견하려 한다는 점을 미뤄볼 때 이들이 파악하고 있는 영성 훈련의 개념은 동일한 이해의 뿌리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아도가 영성 훈련을 활용하고 있는 푸코의 후기 연구를 오역의 결과라고 지적하면서 그가 차용하고 있는 영성 훈련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아도의 비판은 푸코 후기 연구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은 '영성 훈련'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활용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각에서 문제화하고 있는 두 학자의 논점이 대립하는 이유를 규명하여 그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푸코와 아도가 '영성 훈련'을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가 두 학자의 사유틀의 차이에 있다는 점을 논구하고 이러한 사유틀의 차이는 두 학자의 불일치한 세계관에 기인한 양상임을 해명할 것이다.


This paper analyzes the concept of 'spiritual training' that Foucault used to clarify 'self - consideration'. This paper also inspects Hadot's point, which uses the same conception as Foucault but shows a different interpretation. Hadot discusses key concepts of spiritual training in what is ancient philosophy. Both scholars are looking at the main points of ancient philosophy in Philosophy of Existential Life such as 'lifestyle', 'wisdom', and 'training of life skills'. In this sense, the concept of spiritual training that the two scholars use is rooted in the same understanding. But what is interesting is that Hadot evaluates the notion of spiritual training that Foucault applies as a misunderstanding. And furthermore, It is used that regarded as a critical assessment of the later studies of Foucault. So I scrutinize the position of the two opponents and elucidate why they conflict with some reason. From this, I argue that the difference between the viewpoints of the two scholars is due to differences frame of thought, and that differences frame of thought are fundamentally caused by contrariety in world-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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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상징형식으로서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유머 :에른스트 카시러의 해석을 중심으로

저자 : 추정희 ( Jung-hee Chu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69-19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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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의 상징형식의 철학의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유머를 해석하고자 한다. 카시러가 주장하는 상징형식은 인간정신의 객관화 작용과 매개작용을 드러내는 문화형식이다. 카시러의 많은 문화연구들은 바로 이러한 상징형식, 문화형식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특히 희극적인 드라마의 유머 역시 당시의 영국의 정신의 삶을 객관화하고, 매개하고, 구체화한 상징형식으로 이해한다. 본 논문은 샤프츠베리의 주장들을 통해서, 당시에 주류를 형성한 경험주의와 청교도주의에 대립하는 그 시대의 정신의 삶을 살펴보고 그러한 정신을 반영하는 상징형식으로서 셰익스피어 희극들을 그 실례로 제시한다. 셰익스피어는 청교도주의에 의해 거부된 신념의 자유, 인간정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유머의 형식으로 표출한다. 샤프츠베리는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과 그러한 순수한 인식의 쾌로서 유머의 관련성을 주장한다. 카시러의 상징형식의 방법론에서 본다면, 셰익스피어의 유머는 자유의 이념을 근간에 두고 있으며 그 고유의 형식과 방향을 지니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의 유머로부터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유머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유머라는 상징형식이 자기 고유의 법칙과 방향을 지니고 있음을 살펴본다.


This study interprets William Shakespeare(1564-1616)'s comedy and humor from Ernst Cassirer(1874-1945)'s symbolic form. Symbolic form that Ernst Cassirer claims is the cultural form in that human mind shows objectification and intermediation of itself. His many cultural studies are about symbolic forms. Shakespeare drama and humor also are symbolic forms that objectified and gave shape to life of mind in England in the 16th Century. This study examines minds of the day as neoplatonism and cambridge school, in particular, Anthony Ashley Cooper Shaftesbury(1671-1713) coming up against empiricism and puritanism that formed the mainstream in those day. It presents Shakespeare's comedy as an example symbolizing those mind. In the form of humor, Shakespeare maintains the freedom of mind that is denied by puritanism and shows rational insights into life. Shaftesbury maintains the relationship between this insights in life and the humor in neoplatonism and aesthetics. Both arguments are essentially based on freedom of mind. In that symbolic form is based on the Idea of freedom, Shakespeare's humor is a symbolic form as the work of activity of mind. From the thinking way of symbolic form, Shakespeare's humor has a its own and special way and direction. It is a intermediary form in conflicting aspects of life. In this regard, there is a possibility of humor. On the other hand, it has a limit in that it reconciles and equalizes this conflicting aspects. Possibility and limit of humor show the fact that it has its own law and direction. So, Shakespeare's comedy and humor as symbolic forms represent the life of mind of the day and have a spiritual value that would deliver to new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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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역의 해석학적 쟁점 :해석과 번역의 수렴점과 발산점을 중심으로

저자 : 윤성우 ( Seong-woo Yun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99-22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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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가지는 인문학적 중요성과 그 역량에 비하면 번역과 번역자의 비가시성, 즉 철저하게 번역과 번역자의 역할과 위상이 숨겨져 있거나 평가절하 되는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본 논문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번역이 가지는 해석학적 쟁점이나 함의를 '해석'의 그것과 상관관계의 관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해석/번역의 대상의 문제, 해석/번역의 목표의 문제, 해석/번역의 윤리적 성격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대상의 문제 차원에서는 그 대상은 언어 또는 텍스트라는 점을 밝힌다. 목표의 문제 차원에서는 의문의 여지없이 많은 사람들은 의미의 추출이나 의미의 매개, 의미의 (재)구현라고 말할 것이지만 필자는 언어와 그 언어의 해석이나 번역에서 그 '의미'가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번역에서는 원문의 의미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의미가 표현되는 원문의 방식과 축적된 기법에 이르기까지 번역문 속에서 옮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해석됨직함이 없는 작품은 진정한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제안해 본다. 윤리의 문제 차원에서 해석/번역은 모두 텍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해석자/번역자를 제약하고, 자신을 전복시키는 자신 아닌 것, 즉 타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디는 열린 주체, 즉 탈중심적 주체를 모색한다는 점을 밝힌다.


Contrairement a l'importance humaniste de traduction et a sa potentialite , la non-visibilite de la traduction et des traducteurs, c'est-a-dire les roles et le statut de la traduction et des traducteurs caches ou devalues n'est pas le seul probleme d'aujourd'hui. Dans cet article, nous essayons de traiter les problemes hermeneutiques ou les capacites de traduction bases sur cette conscience en termes de correlation avec celle d '≪interpretation≫. Plus specifiquement, il traite du probleme de l'objet de l'interpretation/traduction, du probleme de l'objectif d'interpretation/traduction et du caractere ethique de l'interpretation/traduction. Au niveau du probleme de l'objet, nous revelons que l'objet commun est un langage ou un texte. Au niveau du probleme du but, beaucoup diraient, sans doute, que le but commun est l'extraction du sens, la mediation du sens, ou la (re)mise en oeuvre du sens, mais nous insistons sur le fait que le 'sens' n'est pas tout dans l'interpretation ou la traduction. En particulier, dans la traduction, nous soulignons que nous avons besoin de traduire meme les techniques accumulees et la maniere du texte original dans lequel le sens est exprime, plutot que de reproduire le sens des textes originaux. Il est egalement suggere qu'un texte sans interpretabilite n'est pas un vrai texte a interpreter. En termes de questions ethiques, l'interpretation/traduction impose l'interprete/ traducteur a s'ouvrir sur des rencontres de l'autre qui pourrait les bouverser. Apres tout, a travers l'interpretation/traduction, le sujet decentre se poursuit.

KCI등재

8기억의 우리말 뜻매김

저자 : 구연상 ( Yeon-sang Gu )

발행기관 : 한국해석학회 간행물 : 현대유럽철학연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21-25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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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학계는 그동안 한자 우리말 “기억(記憶)”과 빨리어 “사띠(Sati)” 사이에 놓인 개념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염(念)”이나 “마음집중”, “알아차림”, “마음챙김”, “주의깊음”, “마음지킴” 등의 새로운 번역을 시도해 왔다. 이 글은 이러한 시도를 더 넓혀 “기억”이라는 낱말과 '기억 현상' 사이의 불일치를 메우고자 한다. 먼저, 나는 “기억”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로크, 베르그송, 후설 등)가 보관창고(保管倉庫) 비유와 기록(記錄)과의 유비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일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기억의 단계와 과정 그리고 그 종류를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자료들을 빌려 설명한 뒤 이러한 '기억현상'을 새롭게 갈무리할 우리말로 “아로새김”을 제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로새김”의 뜻을 기억 현상에 얽힌 '여러 짜개'를 '한데 아울러 새김'으로 매기단한 뒤, 이러한 뜻매김(정의/定義)이 정당한 까닭을 지각 현상과 구성 기억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밝힐 것이다.


In Buddihist studies, there have been new attempts to translate a Sino-Korean word "memory", which refers to a Pali word "Sati", into various expressions such as "desire", "concentration", "awareness", "mindfulness", "watchfulness", "keeping one's mind" and so on, in order to reduce a discrepancy in meanings between the two concepts. In line with this effort, but in wider aspect, this paper aims to make up the gap between the word "memory" and "to memorize" as a phenomenon. To this end, first, the paper examines the views on the word "memory" by philosophers(Plato, Aristotle, Augustinus, Locke, Bergson and so on), to identify that they were derived from the metaphor of warehouse and the analogy of records. Nextly, the paper explains the phases and processes of memorizing with their types, by bringing the literatures from cognitive science and brain science. Based on this, the paper suggests a new Korean word "A-ro-sae-gi-da", (which means "keeping something in mind" in English) as an alternative for the term of "memorizing". Last, but not least, after defining its meaning as 'combining several elements altogether", the paper justifies such a definition with supporting analysis on 'being aware' and the structured memories as the res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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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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