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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인문논총 update

Yongbong Journal of Humanities

  •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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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226-8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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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2)~55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21
용봉인문논총
55권0호(2019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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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탈북학생 문화예술 교육 실태 및 개선 방안 고찰 - 교육부 탈북학생 교육 우수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 강구섭 ( Kang Gu-sup ) , 정재훈 ( Jung Jae-hun ) , 김유연 ( Kim You-yeo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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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탈북학생 대상 문화예술 교육의 실태를 분석하고 효과적인 추진 방안 마련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탈북학생의 학교 및 사회 적응 지원을 목표로 실행되고 있는 교육부의 탈북학생 교육지원 사업에서 이뤄지고 있는 문화예술 관련 교육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탈북학생 문화예술 교육은 탈북학생의 심리 안정, 교우 관계 형성, 문화적 결핍 해소, 사회 문화적 이해 제고 등의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반적으로 내용 측면에서 문화, 교양 관련 내용이 높은 비중으로 이뤄졌으나, 심리 정서 관련 내용은 제한적으로 다뤄졌다. 연구 결과, 탈북학생 문화예술 교육의 개선을 위해 탈북학생의 배경과 특성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 개발 및 실행, 다양한 배경의 대상자를 포괄하는 문화예술 교육의 실행, 학교 안팎을 연계한 프로그램의 실행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cultural artistic education for North Korean youth migrants and draw policy suggestions and implications to improve it. For this purpose, the study analyzes the cultural-artistic Education in the elementary and secondary schools for their benefit and betterment, which is to be implemented based on their educational support considering its detailed compositions and methods.
The result of the study indicates that the education provides the developmental contents in its quantitative respect based on the cultural and liberal education. On the other hand, it shows that the contents are less supplied in terms of psychological and emotional aspects even though it's very important. However, it points out that the Cultural-Artistic Education for North Korean Youth Migrant has to provide more substantial ideas focusing on the psychological and emotional aspects in relation to its general curriculum for the enhancement of progress and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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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민구의 강화도 탈출담 연구

저자 : 김일환 ( Kim Il-hwa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1-77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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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만년의 이민구가 친구 정세규에게 보낸 편지[答鄭判書書]를 분석하였다. 만년의 이민구는 오랜 친우인 정세규의 편지에 답장을 하는 방식으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되는 과정에서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고 맡은 바 최선을 다했음을 토로했다. 이민구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에피소드에 등장한 인물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는 亡者이거나 그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행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들이 다수였다. 신중한 어조의 고백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제기된 온갖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교묘하게 구성했다. 전반부에서는 적군이 상륙한 뒤에 江華府로 복귀하지 않은 혐의를 해명했다. 후반부에는 남한산성의 포위를 뚫기 위해 전진하다 전사한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의 후임으로 임명되었지만, 안전한 강화도를 벗어나기 싫어 임지로 떠나지 않았다는 혐의를 벗기 위해 노력하였다. 생존에 해명할 때는 우연과 천우신조를 강조했고, 후반부에는 김상헌의 묘도문자가 갖는 권위를 넘어서고자 시도하였다. 이민구가 지속적으로 강화도 행적을 해명한 것은 이민구의 재주와 능력을 인정한 측에서 그를 서용하고자 하나 강화도에서 저지른 잘못과 이후의 그릇된 처신이 문제가 되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This study analyzes the letters of Lee min-gu sent to his friend Jung sae-gyu in his later years. In the form of response, Lee min-gu is demonstrating to his friend how his actions had been just and how it was his best when Gangwhado fell during Byeongja Ho'ran war. The examples he used to justify his actions mostly included people who had already passed away and cannot grant the truth or those who had been blamed just like himself. Though his words were sincere, his letters were adroit enough to escape from every suspicion. The first part was dedicated to explain why he did not return to his army as the enemy had landed on the shore. The latter part rebuts the suspicion that he did not depart from Gangwhado solely because of the safety, even though he was appointed as a governor of ChungCheongdo after the former governor had deceased while struggling to end the siege of Namhansansung Fortress. In the former part of the essay, he unconsciously stresses the importance of coincidence and god's grace. The latter part, he wishes to get over the prestige of Kim Sang-hun's tomb inscription. Lee Ming-gu was obsessed with his past as his opponents constantly casted doubt on his nomination on behalf of his person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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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서유견문』에 나타난 '조선인식' 고찰

저자 : 노연숙 ( Roh Yeon-sook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9-11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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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서유견문』에 투영된 유길준의 조선인식을 살펴보고자했다. 그동안 『서유견문』은 제목 그대로 '서구 유람의 결과물'로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다보니 외형적으로 소개된 서구 제도나 새로운 개념어 분석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시선에서 벗어나 『서유견문』의 자체적인 특성으로서 조선인식에 주목하고자 했다.
『서유견문』에서 유길준은 서구의 풍습과 제도에 치중해서 이를 소개하는 것에만 급급해하지않고, 조선을 중심으로 조선에 필요한 것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세계관과도 직결되는데, 그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대함에 있어서 중용을 취하고자 했다. 그에게 중용이란 조선인이 야만(문명이 자행하는 폭력)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유길준은 중용의 태도로 전통적인 것, 조선 본래의 것을 중심에 두고 과거와의 연속적인 관점에서 서구 문명의 제도를 답습하고자 했다. 그는 서구와 같은 문명국의 수립을 기원하되, 서구 문명에 잠식되는 식민지가 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했다. 조선을 정신적인 문명국으로 규정하고, 조선을 중심으로 서구 제도(특히 근대 교육과 법률)를 도입하여, 세계문명국과 견줄 수 있는 보호가 불필요한 대등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다.
이 맥락에서 『서유견문』은 단순한 국정개혁서가 아니라 조선의 미래를 조선인과 함께 도모하고자 했던 최초의 정치서다. 그가 조선독자를 염두에 두고 조선인식을 표출했다는 점은 다음과 같은 단서들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의식적으로 한문이 아닌 국한문을 쓴 점, 조선독자를 상정해서 경고와 당부를 하고 있는 점, 단순히 서구 제도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기원을 살피고 장단점을 분석한 점, 전통 실학과의 연속성 속에서 조선의 자긍심을 강조한 점 등이 그렇다. 그러므로 『서유견문』은 다각도에서 재차 주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In this article, I tried to examine Yu Gil-Joon's perception of Chosun, reflected in the book 'Seoyugyeonmun'. In the meantime, 'Seoyugyeonmun' has been in the spotlight as the result of a 'Western cruise', as it was titled. As a result, the focus tends to be on Western institutions introduced outwardly or on analyzing new conceptual words. In this article, I took a break from this view and tried to focus on the perception of Chosun as its own characteristic of the 'Seoyugyeonmun'.
In 'Seoyugyeonmun', Yu Gil-joon was not only focused on introducing the customs and systems of the West, but instead wanted to selectively accommodate the needs of Chosun. It is also directly related to his worldview, in which he want to take the moderation in dealing with all things and phenomena. For him, the moderation was the only way for a Korean to live in a world of barbarism (violence in civilization).
Yu Gil-joon tried to follow the Western civilization system in a continuous view from the past, centering on the traditional and the original of Chosun, with a modest attitude. He prayed for the establishment of a civilized country like the West, but was thoroughly wary of becoming a colony of Western civilization. By defining Chosun as a spiritual civilized country, and by introducing Western institutions (especially modern education and law) centering on Chosun, he wanted to create an equal country with no protection needed, that could be comparable to the world's civilized countries.
In this context, the 'Seoyugyeonmun' is not just a reform instruction of state affairs, but the first political book that tried to promote the future of Chosun with Koreans. The fact that he expressed the Perception of Chosun with Korean readers in mind can be seen in the following clues. They include consciously writing Korean and Chinese Characters, not only Chinese, warning and requesting Korean readers, not just praising the Western system, but examining the origins and analyzing the pros and cons, and emphasizing the pride of Chosun in the continuity with traditional practical science. Therefore, the 'Seoyugyeonmun' needs to be noted again from various an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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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샹탈 아케르만(Chantal Akerman)의 초기 영화에 나타난 벨기에 문화예술의 영향력 연구

저자 : 민진영 ( Min Jin-you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5-15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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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샹탈 아케르만이 브뤼셀에서 제작한 초기영화들을 중심으로 그녀의 영화에 나타난 벨기에 문화예술의 영향력을 살펴본 연구이다. 그녀는 프랑스어와 플랑드르어가 혼존하고 라틴문화와 게르만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 벨기에에서 태어나 21세까지 계속 머물렀다. 영화에 입문한 이후 그녀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이주의 삶을 살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영화안에서 벨기에의 문화와의 연결성을 찾을 수 없는 초국가적이고 디아스포라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모국 벨기에에 정규적으로 머물렀었고, 벨기에의 문화유산의 영향을 적잖게 받았었다. 본 연구는 그녀의 영화 속에 내재된 벨기에적 성격을 규명하고 벨기에 문화예술과 그녀의 초기 영화들과의 유사성을 연구하였다.
아케르만의 부모에게 벨기에는 이주민으로서 정착한 곳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홀로코스트에서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쇼아 세대였다. 가정 분위기 속에 유대적 율법과 절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수동성이 자리하고 있었고 따라서 아케르만에게 벨기에는 제한되고 답답한 장소, 뛰쳐나가야 할 장소로 종종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화에는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력과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마술적 사실주의적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벨기에 문화예술의 전통이 영화쟝르에 가미되어 벨기에 영화의 독창적 스타일이 자리잡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바로 앙드레 델보 감독이다. 아케르만의 영화는 그녀 스스로 인정한 적이 없지만, 델보 감독의 영화와 닮아 있다. 인식에서 소외로의 즉각적 전환이라는 점에서 두 감독 사이의 유사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인식에서 소외로의 즉각적 전환은 벨기에 예술 사조 중에서 마술적 사실주의 사조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얀 반 아이크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에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찾아볼 수 있고 아케르만 초기 영화의 주요 장면에는 이 화가들의 회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아케르만의 영화에는 마술적 사실주의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벨기에식 노래와 춤이 자아내는 극적인 감정 고조, 낯설고 신비한 풍경이 야기하는 평범한 인간의 일탈, 제스처의 클로즈업과 이중적 시선을 통해 일상의 낯설음으로의 전환 역시 아케르만의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벨기에성이다.
방황과 방랑의 여성 감독 아케르만은 노마디즘이나 유대적 디아스포라로 이제껏 조명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모국 벨기에에 대한 뿌리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으며, 벨기에의 예술가들로부터 부지불식간으로 영향받았음을 알 수 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belgitude in Chantal Akerman's early films produced in Brussels. In Belgium French and Flemish languages are alive and coexist Latin and Germanic cultures. Akerman was born there and lived in Brussels until the age of 21. Since entering the world of cinema, she has lived a life of migration all over the world. Consequently, this study explores the similarities between Belgian art and her first films.
The Jewish director was also an immigrant to Belgium, and she is first generation after the Shoah. Her mother was the only one to survive the Holocaust from her family. Her family practiced Judaic law, which established her sense of moderation and trauma about the world was in place, and thus, for Akerman, Belgium would already have been stigmatized as a restricted and frustrating place.
Nevertheless, her films from the 1970s and 1980s were influenced by Flemish paintings and magical realism through Belgian art. Magic realism mainly shows the immediate change from perception to alienation. In art, we find it in the paintings of Jan van Eyck and Rene Magritte. In the films of Akerman we can also find the similarity with Andre Delvaux, who is a representative of the Belgian cinema. These two filmmakers both use the truth of gesture and the double gaze in their films.
The Belgian reading of Akerman's films had been absent due to various competing agendas, it is fair to acknowledge that this present study is itself produced by developments in contemporary cinematographic theory. This reconquest of the Belgian affinity at Akerman must therefore be considered justified because her first several films include the politics of space, place and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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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진 월남사지(月南寺址) 삼층석탑(三層石塔)과 탑지(塔址)에 대한 고찰

저자 : 엄기표 ( Eom Gi-py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3-201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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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로 曹溪山修禪社의 2세 국사였던 眞覺國師慧諶의 탑비와 함께 독특한 양식의 삼층석탑이 건립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중요 사찰로 알려져 있었다. 여러 번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발굴 시 삼층석탑 외에 또 다른 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塔址유구가 발견되어 몇 가지 의문점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쌍탑 가람의 조성 시기와 배치, 탑지와 현존하는 삼층 석탑과의 관계, 서로 다른 양식의 석탑 문제, 삼층석탑의 건립 시기 등이다. 이중에서 탑지 유구와 쌍탑가람 문제, 또 다른 석탑 부재의 성격 문제는 전체 사역에 대한 발굴이 완료되어야만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전면적으로 해체되면서 각 부재의 치석 상태와 결구 수법 등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월남사의 연혁과 중창 시기, 고려시대 호남지역 불교계의 동향과 승려들의 활동, 월남사지 발굴 조사로 확인된 유적과 유물의 출토 양상,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조영 기법과 양식, 해체된 석탑 부재들의 현황과 치석 수법 등 다양한 측면들을 고려할 때 12세기 후반경이나 13세기 초반 경 월남사가 중창될 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월남사의 중창과 삼층석탑의 건립은 최씨 무인정권의 지원을 받아 호남지역이 고려 불교계를 리드해가고 있을 때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삼층석탑은 백제계열 석탑 중에서는 가장 늦은 시기에 건립되었고 어느 시기에 붕괴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후기에 들어와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백제계열 석탑과 전통적으로 계승된 조탑 기술이 혼재되어 있는독특한 조영 기법과양식을 보이고 있는석탑이라 할 수있다.


The Wolnamsa-temple site of the Korea Dynasty located at the foot of Mt. Wolchul. This temple was built Tabbi for monk Gingakguksa and a unique style of construction of the three-story Stone Pagoda. There have been discovered to have been done several times. As a result, many remains and relics were excavated. This temple was created during the Baekje Period is likely to have high. Formed by a certain scale at the end of Silla. Significantly during the Korea dynasty build again, is perceived as the formerly prosperous. During the Joseon Dynasty, partly in act, there has been remained. This temple is estimated that was destroyed the right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Stone Pagoda remains was discovered during excavation threw some questions. It is that the timing and placement of two pagodas,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nd Stone Pagoda remains in the existing relationship, Stone Pagoda of different form and style, establishment of the three-story Stone Pagoda of time, and so on. Completely breaking apart and the three-story Stone Pagoda in the method carefully, including a stone cutting the state and structure of a frame can look at.
The three-story Stone Pagoda of Wolnamsa-Temple was built during from the late 12th and early 13th centuries, considering that history and build time of the Wolnamsa-Temple, activities of Buddhist monks and trends of the Honam region, identified pattern of relics and heritages as the excavation, construction method and style of the three-story Stone Pagoda, stone cutting the state and structure of a frame from the joint method. Building again of the Wolnamsa-temple and construction of the three-story Stone Pagoda had been identified as a deep relationship and considered when the Honam region leading to the Buddhists. It was one of the latest time among the series of Baekje style Stone Pagoda in the Korea Dynasty. At some point apparently collapsed.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newly reconstructed on the position of the current and estimated to be. This three-story Stone Pagoda of Wolnamsa-Temple was showed unique style of skill that relocated to the traditional method and Paekche Style Stone Pag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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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근대적 인과율의 해석에 대하여

저자 : 원승룡 ( Won Seung-y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3-23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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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인식론의 문제는 인과율을 둘러싼 논쟁에 가장 잘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당대 새로이 정립되는 자연과학의 법칙들과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과율은 인식의 근거는 물론 존재의 근거에 관련되어 근대 이전이나 근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에 따라 필자는 흄과 칸트의 근대적 인과율 논쟁을 중심으로 이를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 개념이나 현대의 인과 개념의 해석과 연결시켜 그 변이와 차이를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칸트의 인과율을 충분근거율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입장과, 인과적 설명 논증의 구조 안에서 인과율을 해석하는 현대 과학론자들의 입장을 다루려고 한다. 이러한 인과율의 해석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보편적 인과율이 결국 지식 일반의 본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이 서양 인식론의 토대였다는 것을 밝혀 보고자 한다.


The key problems of modern epistemology largely revolve around the debates over the problem of the Law of causality. It is because the notion of causality was closely intertwined with the laws of newly arising natural sciences of the time. However, as the notion of causality is connected with the ground of being(ratio essendi) as well as that of cognition(ratio cognoscendi), it has long been the locus of diverging philosophical interpretations. In this respect, critically investigating the debates between Hume and Kant over the problem of causality, I try to review the nature of the debate in connection with Aristotelian and contemporary conceptions of causality. Concerning the re-interpretations of causality after those of Hume and Kant, I will cover the scientist notion of causality, which is confined within the scope of causal explanation, and Schopenhauer's view of causality, in which he critically interprets Kant's notion of causality in terms of the principle of ground(Der Satz vom Grund). Despite of differences of interpretations I will conclude that the universal Law of causality in the western epistemology has functioned commonly as a ground of ratinal knowledge in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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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중 해양문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저자 : 이광재 ( Li Guang-zai ) , 정도미 ( Jeong Do-mi ) , 임환모 ( Lim Hwan-m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3-25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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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중 바다 서사를 살핌으로써 양국 문화 구성원의 사유체계를 이해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이때 특기할 점은, 세부 영역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양국의 바다 서사가 해양문학으로 성립되는 과정 및 향후 방향성의 측면에서 일정부분 유사성을 띤다는 것이다.
가령 한·중 양국에서 바다 서사를 둘러싼 연구 동향은 각국이 처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바다 서사를 해양문학이라는 장르적 위치에 귀속시키는 과정이었다. 때문에 초창기 해양문학은 인간 주체의 이용 대상으로 인식되는 바다를 분석하고 세분화 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이후 바다 서사를 둘러싼 핵심 논의는 해양문학의 장르화 개념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바다 속성에 기반한 심도 깊은 탐구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바다가 인간과 상호 공존을 이루는 독립적 주체로 부상함에 따라, 인간 삶과 접점을 이루는 바다가 어떻게 서사 내 재현되고 있는가의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때문에 이 시기 해양문학은 바다와 인간 삶을 함께 견주어 볼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한다.
한·중 해양문학은 양국의 구성원이 바다를 접하거나 이해하는 방식과 맞물려 꾸준히 변화를 보이며, 다양한 형태로 담론화 되어왔다. 또한 과학기술의 증대와 맞물려 앞으로의 해양문학 역시 더욱 확장된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This paper studies the sea-narrative between Korea and China, and tries to understand the thought system of cultural members of the two countries. The point is, despite the differences in detail, the two countries's sea-narrative are similar in terms of the process of forming sea-literature and future direction.
For example, research trends in Korea and China have been influenced by external factors and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the sea. And as a result, the sea-narrative was defined as sea-literature. Therefore, initial stage's sea-literature attempted to recognize, analyze and refine the sea used by humans.
Later, the discussion on sea-narrative goes from discussing the genre of sea-literature to research based on sea attributes. Because the sea is recognized as an independent entity that coexists with humans. Sea-literature now pays attention to the question of how the sea is exposed to the narrative. In the end, sea-literature offers new possibilities for recognizing and looking at the sea and humans together.
Korean and Chinese sea-literature refers to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the sea by cultural members of both countries. This change steadily and is discussed in various forms. Finally, after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 discussion of sea-literature will be further expa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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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표준국어대사전』의 프랑스어 차용어 기술 연구

저자 : 하영동 ( Ha Young-d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7-28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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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나라 사이의 다양한 교류는 각 언어의 접촉을 동반하게 되고 그 접촉의 흔적을 상대방의 언어에 남기게 된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한국과 프랑스도 두 나라 사이의 지속적인 접촉의 흔적을 한국어와 프랑스어에 남기고 있다. 각각의 언어 사전은 자신의 언어에 잘 정착된 차용어들에 낱말의 지위를 부여하고 등재하게 된다. 본 연구는 『표준국어대사전』에 기술된 프랑스어 차용어를 대상으로 거시구조와 미시구조 기술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거시구조에서는 표제어의 선정과 문제점을 논의하고 미시구조에서는 원어 정보와 뜻풀이, 순환성과 순화어 제시, 전문용어 분류의 문제점 등을 다루고 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총 765개의 프랑스어 차용어로 등재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은 명사이다. 그 중에는 '모르모트'나 '아라카르트'처럼 프랑스어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언중들이 널리 쓰지 않는 낱말들도 등재되어 있다. 반면에 '모기지'나 '에콜', '팜므파탈'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게 되는 외래어들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미시정보 기술과 관련해서 본 연구는 차용어의 출처 언어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원어가 잘못 표기된 경우를 밝혀냈다. 그리고 뜻풀이에서는 백과정보가 잘못되었거나, 상위어의 선택과 부가정보가 잘못된 경우와 뜻풀이에 사용된 낱말들이 표제어로 등재되지 않는, 다시 말해서 순환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순환성이 지켜져야 사전의 완전한 해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전 기술에 있어 순환성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어 분류 표시와 관련해서는 분류의 원칙과 이 원칙의 일관성 있는 적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특히 『표준국어대사전』은 고유명사에는 언어명을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책명인 '팡세'와 '페스트'에는 <프>라는 원어 표시를 하고, 같은 책명에 속하는 '디바가시옹'과 '르네'에는 원어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사전 내용의 일관성 있는 기술을 위해서는 세운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할 것이다.
사전은 내용의 정확성이 생명이다. 이용자들이 사전을 참조하는 것은 사전의 내용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언어의 표준을 제공하는 사전의 내용이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말과 글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언어 사전의 재판관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사전 내용의 기술에 더 많은 정확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Formal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Korea and France began in 1886, when the France-Korea Treaty was signed. However, both countries had already previous contacts. In 1835, for the first time as a Western priest, Pierre-Philibert Maubant began his missionary work in Korea. In 1855, the St. Joseph Seminary was established in Jecheon Baron and the education of the French language began along with various Western sciences.
The various exchanges between both countries were inevitably accompanied by mutual linguistic contacts and traces of those remained in each language. A typical Korean word introduced into the French language is 'Won', the monetary unit of Korea. It is used as a masculine noun in French although the gender of the noun does not exist in Korean. Typical French words that were introduced into the Korean language include 'cafe', 'baguette', 'vacances', etc. And these words are used without distinction of gender and of number which are characteristics of the French language. These loanwords are widely used in Korea and can be said to be foreign words well suited to the Korean language. It is natural to assign Korean word status to these foreign words and thus to register them in the Korean dictionar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description on French loanwords registered in the Pyojun Korean Dictionary, compiled by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As far as the macrostructure is concerned, problems of the selection of French loanwords as headwords are discussed. As regards the microstructure, problems of the information on the original language, the definition, the principle of the circulation, the suggestion of a more appropriate word and the classification of the terminology are examined.
In this Dictionary, which contains 765 French loan entries, there are some borrowed words that should not be listed due to their rareness. On the other hand, there are some words that should be listed because of their usefulness but that were not registered. This study reveals that the source language information on some French words is wrong and some original words are misprinted. Besides, it also points out that the principle of circulation which stipulates that the words used in the definition should be listed in the entry is not observed and that the encyclopedic information about some French terms is wrong. Regarding the classification of the terminology, it emphasizes the need for consistent application of the principles of classification.

KCI등재

9『장자』 우언과 『광인일기』 광인의 형상 고찰

저자 : 한영걸 ( Han Yong-jie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간행물 : 용봉인문논총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89-31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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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와 루쉰은 서로 다른 시대 사람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모두 광인이라는 인물을 형상화하였다는 연계점이 있다. 지금까지 장자와 루쉰을 연계 지은 연구는 많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장자』의 우언과 루쉰 『광인일기』 광인의 형상을 연관 지어 고찰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는 루쉰의 문학 창작에 끼친 『장자』의 영향을 규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장자』의 우언과 『광인일기』의 광인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장자』의 우언과 루쉰 『광인일기』 광인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광인의 형상 반유가적 입장, 반항정신과 광기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Although Zhuangzi and Luxun are people of different ages, there is a connection between the two in that they both embodied a mad man figure in their respective works. There have not been many studies linking Zhuangzi and Luxun up until now, and rarely any study has been done comparing the mad man figures of Zhuangzi's 'Fable' and Luxun's 'A Madman's Diary'. This article compares the mad men appearing in both Zhuangzi's 'Fable' and Luxun's 'A Madman's Diary' with the aim of paving an way for identifying the influence of Zhuangzi on Luxun's literary creation.
the similarity and difference between the mad man in Zhuangzi 'Fable' and the one in Luxun 'A Madman's Diary' was compared in terms of madman figure and semi-ethical po and sitionspirit of rebellion and m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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