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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연구 update

The journal of gamsung

  •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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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2093-7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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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10)~21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49
감성연구
21권0호(2020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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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 폭력과 죽음으로서의 여순사건 ―

저자 : 문동규 ( Mun Dong-kyu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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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은 아직도 그 진상이 밝혀지고 있지 않다. 여순사건은 기억과 망각 사이에, 아니 탈은폐와 은폐 사이에 서 있다. 여순 사건이 비은폐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순사건에서 비은폐되어야 할 것 중 여기에서는 '폭력'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4연대 군인들의 봉기에서 시작된 여순사건은 전남 동부 지역민들이 봉기에 합세한 국민의 봉기였다. 물론 '동족상잔 결사반대'와 '미군 즉시 철퇴'라는 강령으로 출발했던 이 사건은 그 강령을 이룩하지 못하고 폭력과 죽음이라는 결과로 끝났다. 여순사건에서 시민(일반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토벌 대상이었다. 그래서 일명 봉기군에 협력한 협력자 색출 과정에서 전남 동부지역공동체는 산산이 부서졌고, 이때 전남 동부 지역민들은 '비국민', '빨갱이'가 되었다. 여순사건은 폭력에 의해 죽음이 춤을 추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여순사건에서 폭력에 의한 죽음의 장소 중 하나는 '학교'였다. 이때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골고다'였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죽은 그들의 죽음은 죽음으로 기억되지 않고 망각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진 개죽음이 되었다.


The truth of Yeosu-Suncheon Incident that occurred on October 19, 1948 are still unknown. Yeosu-Suncheon Incident stands between memory and forgetting or unconcealment and concealment. This is why the Yeosu-Suncheon Incident should be uncovered. Among the things that should be uncovered in the Yeosu-Suncheon Incident, the issues addressed in this article are 'violence' and 'death'. Yeosu-Suncheon Incident which started from the uprising of The 14th soldiers, was the uprising of the people who joined the uprising of the eastern people of Jeonnam. Of course, this incident which started with a code called 'opposition to fratricidal war' and 'immediate withdrawal of the US Army', resulted in violence and death without achieving the code. In Yeosu-Suncheon Incident, citizens(ordinary people) were not objects of protection but objects of subjugation. So, in the process of searching for partners who cooperated with the so-called uprising army, the Eastern Jeonnam community was shattered, and the people of the eastern part of Jeonnam became 'non-citizens' and 'red'. Yeosu-Suncheon Incident was an incident in which death danced by violence. However, one of the places of death by violence in Yeosu-Suncheon Incident was 'school'. So, at this time, the school was not a school, but 'Golgoda'. And the deaths of those who died without knowing the reason became a useless death that disappeared from this world, not remembered a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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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간적 전환' 이후의 장소, 감성 그리고 로컬리티

저자 : 이상봉 ( Lee Sang-b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6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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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후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는 용어가 학계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전환이라는 용어가 지금까지 소홀히 여겨지던 어떤 측면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하면, 공간적 전환이란 그동안 인간의 사회활동이 이루어지는 빈 용기나 배경 정도로 여겨지던 공간에 다시 주목해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공간적 전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우리가 공간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비롯해 공간적 전환이 의미하는 구체적인 전환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공간적 전환이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탈근대적 대안을 모색하는, 이른바 탈근대 담론의 흐름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주목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점에 입각하여, 전환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①공간에서 장소로 ②이성에서 감성으로 ③국가에서 로컬로 라는 세 가지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고, 그러한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전략들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장소, 감성, 로컬이라는 세 가지 대안적 가치가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새로운 사회구성 속에서 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탈근대적인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Since the mid-1990s, the term 'spatial turn' has been widely spoken in the academic world. Note that the term 'turn' is used when one becomes interested in a certain aspect that has been neglected so far. It would mean that we need to pay attention to the space that has been regarded as empty container or background for human social activities again. Here, in order for us to properly understand the meaning of spatial turn, why should we pay attention to space again?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examine the specific content and meaning of turn that spatial turn means. First of all, this article pays attention to the fact that spatial turn is one of the contexts of so-called post-modern discourse that seeks a post-modern alternative based on reflection on modernity. Next, based on these viewpoints, I will present three alternative values of 'turn': 1) From space to place 2) From reason to emotion 3) From nation-state to local as the specific contents of turn. And I would like to consider practical strategies for realizing these values. In particular, it is analyzed that the three alternative values of place, emotion, and local are interrelated, and that these values can be presented as a post-modern alternative way of life combined with each other in a new spatial composition of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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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성(對待性)과 감통(感通)의 공동체 ― 빗장공동체에서 트임 공동체로 ―

저자 : 장복동 ( Jang Bok-d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3-9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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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통 사상, 특히 유학의 관계의 미학, 관계의 정치를 떠받치는 대대성과 감통의 논리를 추론하여 현대 사회의 관계의 해체, 연대의 붕괴, 공동체의 균열에 대응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찾는데 목적을 둔다. 이에 따라 대대성에 공동체의 상호의존적, 삼투적, 포섭적 구성 원리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감성적 교류와 합리적 소통을 함축한다는 관점에서 감통 공동체·트임 공동체에서 계층 간의 차별을 확산하고 증폭시키면서 동시에 계층의 단계를 쪼개는 배제와 차별의 상징이기도 한 빗장공동체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결국 트임 공동체는 공동체의 성원과 화합하지만 주체로서의 자각 없이 전체성에 매몰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윤리에 기초한다. 아울러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지만 한편으로 치우쳐 당파를 구성하지 않는 '주이불비(周而不比)'의 공동체 정신, 자존적 삶을 추구하지만 무한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집단을 이루면서도 결코 빗장공동체로 편입되지 않는 '군이부당(群而不黨)'의 삶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대대'와 '감통'을 동양적 사유의 중심에 정초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관계의 의미와 공동체를 해명하는데 쓰이는 다양한 개념들 사이에서 '대대'의 개념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전거와 여러 사례들을 충실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감통'의 개념에 있어서도 이미 숱하게 쓰이는 다양한 개념들과 의미론적 연관성 혹은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 보완해야 한다.


This paper aims to search for a new way of constructing community vis-à-vis the ongoing disintegration of social relations, the breakdown of solidarity, the inoperativeness of community in the contemporary world. In so doing, it traces the logic of Daedaeseong(oppositional inclusive exclusion) and of Gamgtong(affective connectivity) both of which buttress the relational aesthetics and politics in the traditional thought, especially in Confucianism Daedaeseong is configured as a principle of inter-dependency, osmosis, and inter-subsumption in the construction of community. As the concept implicates emotional interaction and rational communication, it helps conceptualize such ideas as Gamtong community and/or Unlocking Community as an alternative forms to the gated community that not only expands and amplifies gaps between classes/strata, but also fractionalizes each class/statum and that, thus, is a symbol of exclusion and discrimination in itself.
The Unlocking Community hinges upon the ethics of Wha-Ii-Bu-Dong (harmonious and not subjugated) where members of a community are concordant but their self-reflexivity and subjectivity are not subsumed under the unified totality. Further, it pursues the communal consciousness of Ju-Ii-Bul-Bi(all-embracing and not partial) where community members harmonize with each other without becoming factional, and of Gun-Il-Bu-Dang(gathering with others and not parochial) where they seek for self-sufficient life without being swept by the fierce competition and they form collectivity without being swallowed by the gated community.
Still, identifying the meaning of Daedae and Gamtong at the center of the Oriental thought invites some theoretical challenges. In order to prove the theoretical validity of the concept of Daedae in comparison with various other concepts utilized to explicate the meaning of relation and community, many pertinent examples and cases have to be explored. Likewise, Gamtong has to be explained in its semantic association and difference with other various concepts of relationality and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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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플라톤 『파이돈』 편과 철학을 하는 즐거움의 순수함

저자 : 구교선 ( Koo Kyo-su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7-13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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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에 대한 풍성한 논의를 담고 있는 플라톤의 두 대화편인 『국가』와 『필레보스』에서 우리는 고통과 혼합된 즐거움과 대비되는 순수한 즐거움을 다루고 그 대표적인 예로 가지계를 탐구하는 즐거움을 언급하는 다양한 논의를 접할 수 있다. 반면 철학함과 즐거움이 주요한 화두로 다루어지는 『파이돈』에서 우리는 순수한 즐거움에 대한 어떠한 진지한 철학적 언급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본고는 본 대화편에 따를 때도 철학을 하는 즐거움은 고통이 선행하지도 않고, 고통이 뒤따르지도 않으며, 고통이 공존하지도 않는 순수한 즐거움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먼저 필자는 본 대화편의 드라마적 도입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을 하는 즐거움의 순수함이라는 화두에 유념하면서 대화편의 본론을 읽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필자는 반대되는 어떤 것이 있는 것들은 그것들에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필연적이라 말하는 '순환 논변'은 모든 즐거움에는 이에 선행하는 고통 및 이에 뒤따르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통이 선행하지도 않으며 뒤따르지도 않는 종류의 즐거움이 존재할 가능성을 승인해준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서로의 논변을 제출하는 문답의 과정을 통한 철학함이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대화편의 몇몇 장면들을 분석하고, 저승에서 진리를 온전히 획득할 것을 기대하며 이승에서도 최대한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철학자에게는 진리 탐구를 위한 문답의 과정이 결코 고통을 주는 일일 수 없다는 점을 특별히 '논변혐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의를 분석하는 방식을 통해 주장했다.


In Plato's Republic and Philebus which spill much ink on pleasure, we can find explicit comments on pure pleasure, namely, the kind of pleasure which is free from pain; whereas, there is no serious comment on this kind of pleasure in the Phaedo which also spends several pages discussing the issues related to pleasure. Yet, this study maintains that this dialogue alludes to the point that, at least, the pleasure of doing philosophy is pure.
First, I claim that the dramatic introduction of this dialogue invites its readers to consider the issue of pure pleasure while reading the heart of this work. Next, I argue that the Cyclical Argument, which insists that whatever has an opposite comes to be only from its opposite, implies not that pleasure comes to be only from pain but that there is pure kind of pleasure. Finally, I go through some passages which seem to imply that doing philosophy through questioning and answering could be painful; I then maintain that the philosopher, who makes every effort to get closest to the truth with a hope to entirely achieve it in Hades, is not in pain while joining a process of questioning and answ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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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청준의 「시간의 문」에 나타난 시간은유 연구

저자 : 임보람 ( Im Bo-ram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5-15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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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이청준의 소설 「시간의 문」(1982)에 나타나는 시간은유가 작가의식을 고찰하는데 적합한 언어임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이로써 이 글은 시간은유의 패턴을 분석하여, 이 은유가 수사적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 목적을 위해 레이코프와 존슨의 개념적 은유를 입론으로 삼았고, 은유가 상상적 구조로서 그 소설의 상황들에 적용할 수 있는 이상화된 모형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마크 존슨의 주장에 뒷받침을 얻었다. 또한 은유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마크 존슨의 주장에 힘입어, 이글은 시간은유가 인물들의 심리를 보다 밀접하게 살필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이 글은 작가 이청준이 시간은유를 형상화하기 위해 '시간은 문'의 은유를 제시하였다고 가정하였다. 작가는 '문'의 '열다'의 속성을 '문'에 사상시켜 시간의 개념을 규정하였다. 그래서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문'의 열림에 의해 '흐름'의 이미지 도식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 도식을 소설 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시간을 '사진속에서의 시간'으로 한정했다. 따라서 '사진', '시간', '문'은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모티프로서 서사 전체를 이해하는 데 관여된 요소들을 수렴시키는 구심표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의 문'의 은유패턴은 각각 '사진-문', '사람-문'으로 나타났음을 밝혔다.
이상으로 이 글은 「시간의 문」에서 작가 이청준이 자기 실종까지 감행하면서 자신과 타자의 시간을 중첩 시켜 타자와의 관계망을 만드는 유종열이라는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이겹의 시간이 만인이 공유할 수 있는 미래의 시간으로 흘러가도록 시간은유를 활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로써 이글은 이청준이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타자들과의 진정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을 생성할 수 있는 윤리적 모형으로 시간은유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글은 이청준이 「시간의 문」을 창작할 당시 고통스러운 현실에 작가로서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시간은유를 활용하였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This article have intended to the pattern of time metaphor, which appears in Lee Chung-jun's novel “The Door of Time”(1982). This article was intended to analyze the pattern of time metaphor and it reveals that this metaphor is being used as a rhetorical strategy.
For this purpose, the conceptual metaphors of Reicoff and Johnson were used as a proponent and it was supported by Mark Johnson's claim that metaphor, as an imaginary structure, could provide an idealized model that could be applied to the circumstances of the novel.
In addition, on the back of Mark Johnson's claim that metaphor provides a rich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Eagle began the discussion on the premise that Time metaphors has the ability to look more closely at the psychology of the characters.
Drawing upon these facts, the article assumes that author Lee Chung-jun presented a metaphor for 'Time is Door' to represent time-metaphor. The author defined the concept of time by thinking about the nature of 'Open' in 'Door'. So the abstract concept of time has been given the schematic image of 'flow' by the opening of 'door'. And in order to shape this schematics more specifically in the novel, I limited the time to “time in the picture.“
Therefore, 'photos', 'time' and 'door' are the motifs that form the central axis of the narrative and have become centripetal markers that converge the elements involved in understanding the whole narrative. In the process, the metaphor pattern of “The Door of Time” revealed that it appeared as “Photo-Door” and “People-Door,” respectively.
In "The Door of Time," the article revealed that writer Lee Chung-jun is using time-consuming time to make sure that this overlap of time flows into the future time that everyone can share by presenting a character named Yoo Jong-yeol, who even goes missing and creates a network of relationships with the others. Therefore, Eagle could see that Lee Chung-joon was offering a reason for time as an ethical model that could create time that would enable real encounters with hitters through literary imagination.In conclusion, Eagle "The Door of Time," Lee is painful reality, as a writer, to respond to the creation time and with metaphor as well as a transition strategy.Be alle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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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암(眉巖) 유희춘가(柳希春家)의 수창시(酬唱詩)를 통한 의사소통과 문학교육적 의의

저자 : 박명희 ( Park Myoung-hui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1-18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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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眉巖 柳希春家 사람들이 남긴 수창시를 통한 의사소통의 실상을 정리하고, 문학교육적 의의를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였다.
유희춘 가족이 지은 수창시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총 12회분이다. 수창에 참여한 가족은 유희춘과 그의 부인 송덕봉, 유희춘의 아들 유경렴과 사위 윤관중 등이다. 그 외에 성인으로서 수창시 창작에 참여하지 않은 가족으로는 유경렴의 처와 윤관중의 처 은우엄마, 후처 구질덕 등이 있다. 이들이 수창시 창작에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文才와 관련된다고 보았다.
유희춘 가족은 새 집을 지었을 때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수창하였고, 눈이 오는 날 느낌이 일어 수창하였으며, 중양절에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흥이 무르익자 수창하는 등 여러 상황에서 수창시를 지었다. 또한 대다수의 수창시는 유희춘 부부가 지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유희춘 가족이 남긴 수창시는 의사소통적인 측면에서 문학교육적인 의의가 있다. 특히, 유희춘 가족은 평소 권위보다는 동등함과 배려가 몸에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교육이란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며, 배우는 사람은 그러한 작품을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점에서 유희춘 가족의 수창시를 통해 인간 대 인간의 동등함, 배려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어서 또 다른 문학교육적인 의의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This study aimed to speculate on writing process of Suchangsi(reading poetry) by Miam Yoo Hee-Chun's family and reality of discourse in the poetry, and investigate the literature and educational meaning and value.
Of the poetry written by Miam's family, 12 verses were inherited. They were written by Yoo Hee-Chun, his wife Song Deok-Bong, son Yoo Gyeong-Ryom and son-in-law Yoon Gwan-Jung.
The 12 pieces of Suchangsi were usually creative. To speculate on their creative aspects, they had natural atmosphere of daily life. That is, Suchangsi written by Miam's family is a sort of everyday life poetry and although they were hard to understand as rhetoric techniques were used, they could be understood. Also, Song Deok-Bong appeared in almost of the 12 pieces of Suchangsi and Yoo Hee-Chun recognized her literary talent and encouraged her writing. In other words, his family members respected and gave consideration of each other's talent and through Suchangsi.
Suchangsi written by Yoo Hee-Chun's family was special in the modern perspective where communication was absent. His family showed cooperation and unity and communicated actively through Suchangsi. In this aspect, the Suchangsi written by Yoo Hee-Chun's family was an example of communication, which indicates the meaning of literature and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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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경화된 감정의 위험성과 정서 조율의 중요성 ― 안톤 체호프의 단편 「관리의 죽음」, 「드라마」를 통해 ―

저자 : 배정구 ( Bae Jung-goo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9-21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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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화된 감정의 위험성을 살펴보는 동시에 정서 조율의 중요성을 탐구하기 위해 쓰였다. 인간의 감정 행위와 정서 전달이 공감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또 일관되게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 과정의 중요성과 조율의 문제에 대한 입장은 상대적으로 진행이 덜 이루어졌다고 보아 왔다. 따라서 본고는 상대방과의 공감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써 자기감정의 조절과 정서적 조율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중심 작품인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관리의 죽음」과 「드라마」에는 타자와의 정서적 교류에 실패한 등장인물들의 파국적 결말과 촌극과도 같은 해프닝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공감을 위시한 일방적인 정서전달은 결국 상대와 자신에게 감정의 경화를 일으켜, 상대의 죽음 혹은 나의 죽음이라는 우리 모두의 죽음을 목도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감이라는 상대방과의 합일을 위해서는 상대 감정에 대한 스스로의 예상과 예측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타자의 심적 공간에 여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감정의 조정과 정서의 조율을 통해 이루어진 공감이라는 공통감각으로의 접속과 경험은 우리를 보다 사람답게 또 두텁고 폭넓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This article is written to study the importance of emotional attunement while looking at the risk of hardened emotions. It has been consistently and sustainedly known that communicate feelings and to express emotions should pursue getting empathy. However, studies on the importance of the process and emotional attunement have been relatively less advanced. Therefore, this article is intended to address the issues of self-emotional control and emotional attunement as an important factor for empathy with the other party. The main works, Anton Chekhov's short stories "The death of government clerk" and "The play," depict the catastrophic ending and skit of characters who have failed to engage in emotional interaction with others. One-sided emotional communicate for fake empathy is to eventually harden the feelings for the other and himself, making us all witness the death of the other or my death. Therefore, in order to integrate with the other party of empathy, one should be able to reduce one's own expectations and predictions of the other's feelings to a minimum and provide leeway in the other's mental space. This is because the connection and experience to a common sense of empathy through the coordination of emotions and emotional attunement are essential factors that enable us to live a thicker, wide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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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청년 감정노동자를 위한 인문예술치료프로그램 개발과정에서의 문제와 인문학적 과제

저자 : 김익진 ( Kim Ik-jin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9-24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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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감정노동자를 위한 인문·예술 치유 프로그램 개발>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문학적 분석이 감정노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인식의 차원에서부터 진행되어야 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감정노동의 문제는 노동문제이기 이전에 감정의 문제다. 인간의 감정은 현대 과학으로도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오묘한 인간의 특질이다. 감정의 본질에 대한 이해과정을 생략한 채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행위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이다. 인문학은 언제나 과학이 다양한 실험적 노력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고자 할 때마다 도달하는 한계점에서 경험적 추론과 상상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인문학의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감정노동을 궁극적으로 노동의 문제로 접근하여 그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역할이라면 인문학의 역할은 감정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하여 감정노동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의 문제를 노동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바라볼 때 그것은 경제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가 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감정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바라볼 때 그것은 인간의 실존의 문제 전반을 다루는 온전한 인간학이 될 수 있다.


In the course of conducting research on the subject of < Development of Humanities and Arts Healing Program for Young Emotional Workers >, we could realize that humanities analysis should be conducted from a more fundamental level of awareness of emotional labor. The problem of emotional labor is a matter of emotion before it is a labor problem. Human emotions are a peculiar trait of humans that even modern science cannot grasp. It was as dangerous as building a house in the sand to proceed with the study of emotional labor without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the nature of emotion.
The humanities have always tried to overcome the limits through empirical reasoning and imagination at the limit that science reaches whenever it tries to explain humans and society through various experimental efforts. And this role of humanities will continue in the future. If the role of social science is to ultimately approach emotional labor as a matter of labor and seek a solution, the role of humanities can be to find a solution to emotional labor starting from a more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emotions. When looking at the problem of emotional labor with the problem of labor at the center, it is often discussed at the economic and social level, whereas when looking at the problem of emotion at the center, it is a complete human science that deals with the whole problem of human 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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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감성적 주체되기 ― 1980년대 한국 청년들의 네트워킹 전략을 중심으로 ―

저자 : 최혜경 ( Choe Hye-gyeong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9-28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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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960년대의 청년은 '혁명의 주체'였다. 그리고 1970,80년대의 청년은 '정치적 저항과 엄숙주의로부터 이탈하는 문화적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준 가장 진취적인 집단'이자 '근대적 속성의 담지자'로 불리어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는 '88만원 세대, 니트족, 알부자족, 3포·5포·7포 세대, 캥거루족, 빨대족, 노답세대, 낙타세대, 민달팽이족' 등이다. 이것은 빈곤과 고립의 특성을 함의한다. 이들은 생존의 원리로 승자독식의 논리가 강요되는 경제 시대 속에서 속물화·원자화·파편화된 주체이다. 한편,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내재화하며 불안 지속, 무기력감, 정서적 무감각, 부정 정서의 만성화를 경험하게 된 '둔감성의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 대해 이처럼 자조적 평가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의 청년들이 개별화된 시각에 기반하고 있을 뿐, 여전히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시각도 있다. 또한 청년층이 문화자본주의와 문화상품화의 흐름 속에서 팬덤 문화를 구성하는 등, 소비주체로서 새로운 위치를 점하려는 시도를 보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청년 소외 담론을 생성하고 그 논의의 지형을 이용하는 과정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청년 세대를 객체화해 온 관점에 대한 반성이자, 시민 사회의 동력을 청년과 함께 회복하기 위한 공조(共助)적 입장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한국사회 청년 세대에 대한 앞서의 자조적 진단과 사회적 배경에 관한 근원적 비판을 모두 수렴하여, 문제적 양상에 대한 방법론적 대응을 구상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즉, 이 글은 차츰 냉각·탈각·둔감화되어 온 청년의 사회적 감수성 양상을 문제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대조적으로 '가열된 감수성의 시대', 이를테면 유기체적 신체와 사회적 신체를 동일시하거나 긴밀한 관계로 인식했던 '연대적 감성의 시대'를 탐색할 것이다. 한국의 1980년대는 특히 청년의 사회적 감수성을 담은 다량의 발화가 다층적으로 중첩되어있으면서 당대의 시대의식이 오늘에 이르는 시대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1980년대 청년동인지의 문학적 발화를 분석하며 감성적 피동성을 극복하기 위한 감성적 주체의 전략을 간취해보기로 한다.
결국 이 글은 삶의 사회적 맥락을 감지하고 이해하며 공존·공생에 이바지하는 행동 전략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론적 논의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글의 목적은 현재 기성세대가 되었거나 노년층에 다다른 이전의 청년들과 오늘날의 새로운 청년들이 공존·공생하고 보완·번영하기 위한 설계를 인문학적 측면에서 구체화하는 데 있다. 1980년대에 나타난 청년의 발화를 분석하고 오늘의 정황과 비교하면서, 오늘날의 세대 감성과 인식에 변용 가능한 감성적 도구와 그것의 사용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당대의 청년들이 예견하거나 견인하고자 했던 미래상과 오늘을 비교하면서, 오늘의 상실된 양상이 혹여 과거로부터 쟁취한 미래는 아닌지 득과 실의 면면을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In Korea, the youth of the 1960s was the "principle of revolution" And the youth of the 1970s and 1980s has been called "the most enterprising group that showed the possibility of cultural resistance breaking away from political resistance and solemnism" and "the embodiment of modern attributes." However, the term referring to today's youth is "the 880,000 won generation, the knit race, the 'Al-bu-za', 3 Po, 5 po and 7 Po generation, the kangaroo tribe, the straw generation, the 'No-Dab' age, the camel generation, and the slug tribe". This is characteristic of poverty and isolation. They are the subjects of snobization, atomicization, and fragmentation in an economic era in which the logic of 'winner-occupies all alone' is enforced as a principle of survival. On the other hand, it is a 'generation of insensitivity' that internalizes the disparity between ideal and reality and experiences chronic anxiety, lethargy, emotional insensitivity, and negative emotion.
However, the self-deprecation assessment of today's youth is not all that is being raised. Some admit that young people in the 2010s are based on individualized perspectives, and that they are still actively expressing their perceptions, values and empathy toward themselves and society. There is also a positive assessment that the youth have attempted to gain a new position as a consumer entity, forming a fandom culture amid the trend of cultural capitalism and cultural merchandising. On a more fundamental level, there is also criticism of the process of creating a youth alienation discourse and using the geography of the discussion. This is a reflection of the view that has so far objectified the youth generation and a cooperative stance to restore the momentum of civil society with the youth.
In the article, the focus is on mapping out a methodological response to the problematic aspects, collecting both the previous self-help diagnosis of the youth generation in Korean society today and the fundamental criticism of the social background. In other words, this article takes the social sensitivities of young people who have gradually cooled down and degraded. In contrast, it will explore the “era of heated sensitivities," such as the era of synchronic sensitivities that have identified or perceived the body of an organism and its social body as close relationships. The 1980s in Korea are a time when the age-consciousness of the era is reaching the present day, especially when a large number of utterances are overlaid with the social sensibility of young people. Therefore, the text will analyze the literary fire of the young people's contemporaries in the 1980s and take into account the emotional subject's strategy to overcome emotional passives.
In the end, this article is a methodological discussion to sense and understand the social context of life and to build an action strategy that contributes to coexistence and symbiosis. Ultimatel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pecify in humanistic terms the design for co-existence, symbiosis, complement and prosperity among now older generations, former youths who are now elderly, and new youths today. Analyzing the youth's speech in the 1980s and comparing it with today's context, we expect to find an emotional tool that can be transformed in today's generational sensibilities and its principles of use. Also, by comparing today's future with what the youth of the day wanted to predict or tow, we could reevaluate the face of gain and deceit as to whether the lost aspect is not the future that has been won from the past.

KCI등재

10항쟁을 쓴다는 것 ― 5·18 일기에서 실천(practice)과 감응(affect) ―

저자 : 박경섭 ( Park Kyung-seop )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간행물 : 감성연구 21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5-322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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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18 기록물 중 하나인 시민들이 직접 쓴 일기를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고 항쟁의 감응을 드러내고자 한다. 일기는 사적 기록이지만 항쟁을 쓴 일기는 공적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항쟁의 시공간에 뿌리내리고 있는 일기는 5·18이 시민들에게 준 충격과 다양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5·18 일기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은 인류학의 민족지 생산과 쓰기에 대한 논의들을 참고하여 항쟁, 일기, 독자 사이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접근한다. 5·18 일기의 특징은 일기 형식의 유사한 자료들과 비교했을 때 항쟁의 시공간과 분리되지 않으며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기술의 혼동을 드러낸다. 항쟁 기간 중 일기의 저자들은 기존의 관념이 흔들리고 새로운 관념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항쟁이 야기한 감정들은 기존 관념들의 이행과 변이라는 측면에서 '감응'이다. 특히 애도라는 감응은 항쟁의 종결로 인한 슬픔과 무력감을 넘어서 항쟁의 신체와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신체를 향한 움직임이다. 항쟁 속에 쓴 일기는 집합 기억과 5·18의 공식적 내러티브를 통해 희미해진 항쟁의 다양한 얼굴 중 하나이다.


This study intends to understand the diary written by citizens, one of the 5·18 records, as an practice and to reveal affects of the uprising. The diary is a private record, but the diary in which the uprising was written also has a public character. The diary, rooted in the time and space of the uprising, reveals the shock and various emotions the 5·18 gave to citizens. In order to understand and explain the 5·18 diary, this article refers to the discussions on the production and writing of ethnographies in anthropology to reflectively approac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truggle and the diary and the reader. The characteristics of 5·18 diary are not separated from the time and space of the uprising when compared with similar data in the diary format, and reveal the confusion between objective description and subjective description. During the uprising, the authors of the diary were imagining new ones as the existing ideas were shaken. The emotions caused by the uprising are “affect” in terms of the transition and transformation of existing ideas. In particular, the feeling of mourning in the diary is a movement toward a new body through separation from the body of the struggle, beyond the feeling of sadness and helplessness caused by the end of the struggle. The diary written in the uprising is one of the various faces of the uprising, blurred through collective memory and the official narrative of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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