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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oriental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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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12)~8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9
동양미술사학
8권0호(2019년 02월) 수록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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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국(中國) 오대산(五臺山) 불광사(佛光寺) 조사탑(祖師塔)의 성당대(盛唐代) 양식(樣式)

저자 : 강병희 ( Kang Byung Hee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3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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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서성 오대산 불광사에는 구체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독특한 모습의 6각 묘탑이 남아 있다. 각 구성 양식은 구체적인 시대를 비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그 조성 배경과 사상적 의미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937년 기록 사진에 남아 있는 조사탑 이층 탑신 직령창 위에 그려진 액방(인방)과 인자 보간(인자형 두공, 인자 화반)의 모습은 남조 중기의 무덤 돌문의 아치형 문미에 표현된 인자 대공의 양식과 유사한데 이를 계승하여 회화적으로 변용된 모습이 당나라 장안의 황족과 귀족 무덤에서 확인된다. 이들과 조사탑의 것을 비교해 보면 8세기 초부터 형태가 유사하며 개원 연간의 것과는 동일한 양식이라 판단된다. 기단부와 평좌 양식도 8세기 전반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불광사 조사탑의 인자 보간 양식은 당나라 시대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결국 조사탑은 8세기 전반기에 서안, 혹은 중앙 정권의 지원 아래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를 토대로 기존의 관련 자료들을 재검토해 보면 동대전과 조사탑이 있는 사찰의 영역은 오대산과 불광사에 대한 고종과 측천무후의 정치적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으며 조사탑은 그러한 배경 속에서 해탈선사의 법손인 업장에 의해 8세기 전반 경에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An uniquely shaped hexagonal pagoda called Zushipagoda with no specific written records remains at the Foguang temple in Wutai mountain, Shanxi province, China. Different styles of each construction units make it difficult to access the exact date and religious, political background leading to the founding of the pagoda.
From the old photo taken early 20th century?, the 人 shaped supplementary bracket and forehead square(額枋) on the second floor of the pagoda, which do not exist anymore, can be seen. They are similar to the shapes found in the stone gate of the mid Southern Dynasty tombs and tomb murals of the royal families and nobility of the Tang Dynasty with slightly altered forms in painterly style. Careful comparison of these shapes with the counterparts of the Zushipagoda proves that the 人 shaped supplementary bracket and forehead square pattern began to appear at the Zushipagoda during the beginning and first half of the 8th century with the same style found in the early Tang tomb paintings.
Therefore,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pagoda might have been built in the first half of the eighth century with the support of the Tang central government. Based on this premise, reconsidering the existing literary references about the temple strongly suggests that construction of the temple complex including Dongdadian(東大殿) and the Zushipagoda was related to the political movement of the Emperor Gaozong and Empress Wuzetian, and the Zushipagoda was built around the first half of the 8th century by the disciples of the monk Jietuo under Tang government's patronage.

2나가와 용: 원어, 번역어, 그리고 시각적 재현

저자 : 강희정 ( Kang Heejung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7-6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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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토착신 나가는 중국에 전해지면서 용으로 번역되고, 기존의 용과 결합되면서 불교 미술에 표현이 됐다. 실제 존재하는 생명인 인도의 나가는 중국과 동북아시아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나가는 토착신으로서의 뱀 신앙에 더해져 다양하게 변모되었고, 힌두교 신화 속의 나가와 토착신 나가가 융합하기도 했다. 나가는 물과 관련이 깊어서 화재나 수재(水災)를 막기 위한 비보(裨補)를 목적으로 건물에 조각됐다. 중국과 동남아의 건축물에 용과 나가가 표현된 것은 같은 맥락에서, 같은 속성을 지닌 영험한 존재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동남아시아의 나가와 중국의 용은 물과 관련된 속성, 인간에게 위협적인 반신(半神)과 같은 존재, 종교와 신화의 세계에서 하급 신격(神格)으로 간주되는 공통점이 있다.


Naga, the indigenous god of India, was translated into dragon(龍) as it was introduced to China. It was variously created in Buddhist art when it was combined with the dragon of Han dynasty. Indian naga as a real existence has not been made in the arts of China nor Northeast Asia. Naga images in Southeast Asia had been changed into various forms in combination with indigenous belief in snake. The naga in Hindu mythology from India and the local cobra god were integrated. Furthermore the dragon, like naga, was believed to have the power to control water, so the dragon images were carved onto a building or decorated on the bridge to prevent fire or flood. The representation of dragon and naga in the buildings of China and Southeast Asia shows us that they were regarded as mythical beings with the same attributes in the same context.
Indian Naga and Chinese Dragon have a few features in common. Both of them are related to water, are a threat to human being as a semi-divine existence, and are regarded as a lower deity in the world of religion and mythology. Naga in Southeast Asia and the Chinese dragon did not merge by accident through translation.

3나가 위의 붓다 도상 연구 -서사부조에서 아이콘으로-

저자 : 노남희 ( Namhee Noh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1-9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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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동남아시아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나가 위의 붓다(Buddha on Naga)' 도상이 서사부조에서 아이콘으로 확립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나가 위의 붓다 도상은 붓다가 똬리를 튼 뱀의 몸통 위에 앉은 채로 머리 뒤로는 뱀의 머리 7개를 광배처럼 갖고 있는 모습을 지칭한다. 이 도상은 붓다가 보드가야에서의 성도 후 선정에 들었을 때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자 무찰린다(Muchalinda)라는 이름의 나가, 즉 뱀이 나타나 붓다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고 붓다의 머리 위로 자신의 머리를 펼쳐 보호하였다는 불전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나가 위의 붓다는 2~3세기 무렵 남인도에서 부조로 먼저 만들어졌다. 남인도에서 만들어진 나가 위의 붓다 부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헌의 묘사와 달리 뱀이 붓다의 몸을 감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붓다가 뱀의 몸통 위에 앉은 것으로 만들어진 점이다. 이는 조각을 만드는 데 있어 붓다라는 존재를 명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으며 불교도들에게 시각적으로 더 자연스럽게 여겨질 수 있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나가 위의 붓다 도상은 7세기 보드가야에서 독립상으로도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도상은 앞서 본 남인도 부조들과 동일하다. 일찍이 많은 불전고사들이 부조로 만들어졌지만 그 중에서도 이 도상이 독립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보드가야가 7세기에 이르러 성지로서 높은 명성과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순례자들을 위한 더 많은 기념물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곳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성도와 더불어 나가 무찰린다 고사 역시 보드가야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아 독립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특히 나가 위의 붓다 도상은 인도에서 먼저 만들어졌지만 인도보다는 이웃 동남아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고 붓다의 대표적인 도상으로 자리 잡았다. 7~8세기 무렵의 드바라바티 미술에서도 다양한 나가 위의 붓다 부조가 발견되며, 특히 10세기 이후 크메르 미술에서는 뱀의 모습이 일관된 형태로 고정되고 장엄도 더욱 정교해지기에 이른다. 이는 토지와 물을 관장하는 신인 뱀에 대한 오랜 신앙이 동남아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수호신인 뱀에 대한 토착신앙이 불교와 습합되면서 붓다를 보호하는 뱀의 이야기가 동남아에서 특히 인기를 얻게 되어 나가 위의 붓다가 붓다를 나타내는 지배적인 도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This study explores the iconography of “Buddha on Naga” focusing on its development from narrative to an icon. Buddha on Naga refers to the Buddha's image which Buddha sits on serpent's coil with its seven hoods behind his head. This iconography stems from one episode of Buddha's life; when Buddha was in meditation after the Enlightenment, a Naga named Muchalinda came to protect him from a heavy rainstorm by covering him with its body and hood.
Buddha on Naga image was first made to be reliefs in South India about 3rd century. These reliefs are distinctive as they depict Buddha sitting on the serpent's coil contrary to the description of Buddhist literature which states that the serpent's coil encircles the Buddha's body entirely. This way of representation is intended to reveal Buddha's presence clearly so that it might be considered to be natural in visual conception.
Buddha on Naga image was made to be round sculptures in Bodhgaya about 7th century whose iconography is the same as those of South India. Among many Buddha's life stories made to be reliefs, only a few of them were made to be round sculptures including Buddha on Naga. This event got the limelight along with the most important one, the Enlightenment, happened in Bodhgaya in Buddha's life so that it was considered to be significant as well. Also, the increased popularity and reputation of Bodhgaya as a pilgrimage site in 7th century led to the creation of a widened landscape of Bodhgaya with various pilgrimage spots including the Muchalinda lake, the shrine, and the Buddha on Naga's round sculpture.
Buddha on Naga image was particularly favored in Southeast Asia, becoming the representative icon of Buddha. Some Buddha on Naga images have been discovered in Dvaravati art. Furthermore, the form of serpent got more elaborated; and the overall iconography became consistent in Khmer art from the 10th century. This phenomenon is due to the long-established belief in serpent which is in charge of earth and water; this indigenous serpent cult affected preference for Muchalinda story which narrates the protection of Buddha by a Naga. That is why Buddha on Naga image acquired great dominance in Southeast Asia as a Buddha's representative icon.

4중국(中國) 녕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의 고원수당묘(固原隋唐墓)와 염지당묘(鹽池唐墓) 벽화(壁畵)와 석각연구(石刻硏究)

저자 : 박아림 ( Ah Rim Park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3-11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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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래 발굴하기 시작한 당 벽화묘는 대다수가 陝西關中의 西安市郊와 부근의 禮泉縣, 乾縣, 長安縣, 三原縣, 富平縣과 咸陽市郊에 집중 분포한다. 山西 太原, 寧夏 高原, 新疆 吐魯番 등지에서도 당묘 벽화가 출토되었다. 당대는 중국 고분벽화의 발달에서 가장 전성기에 해당하나 고분 내의 벽화의 주제나 구성은 인물화 중심으로 주로 현실세계를 반영하여 비교적 단순하며 사신을 제외하고 천상세계의 묘사는 드문 편이다. 당묘는 또한 부장용의 수가 많고 종류가 다양하며 북조 도용보다 진전된 세련된 표현과 기법을 보여준다. 한대 곽거병묘에 시초가 보이는 陵墓 神道의 조각상들은 남북조를 거쳐 당에 이르면 대형화ㆍ정형화한다.
본 논문은 영하 고원수당묘와 염지당묘를 사례로 선택하여 소그드의 昭武九姓 가운데 하나인 史氏姓과 何氏姓의 소그드묘장을 고찰하여 두 지역의 묘장의 구조와 벽화 제재, 부장품에 나타난 특징을 통하여 해당 시기의 묘장에 드러난 문화적 변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Tang mural tombs which have been excavated since 1950s are mostly distributed in the Guanzhong region of the Shaanxi province where the royal family and the nobility as well as the high officials of the Tang capital resided. In addition, Taiyuan in Shanxi, Guyuan in Ningxia, and Turfan in Xinjiang are also the major locations where Tang mural tombs have been discovered.
This paper chose the Sui-Tang tombs in Guyuan and Yanchi, Ningxia as the case study of the Sogdian burials during the Sui-Tang periods. The Shi family tombs in Guyuan and the He family tombs in Yanchi will shed a light on the understanding the burial practices, the architectural features, the burial artifacts of the Sogdians in the 7th century showing the cultural acculturation of that region.

5당대(唐代) 연유도기(鉛釉陶器)의 생산 및 수출 지역의 변화와 그 의미

저자 : 김은경 ( Kim Eun-kyoung )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1-15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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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는 축적된 연유기술을 바탕으로 화려한 삼채도기 문화를 꽃피운 시기였다. 당대의 연유도기는 이전의 단색 연유기술과 달리 다양한 색상의 구현이 가능했으며, 세 가지 색 이상을 혼용하기도 하여 시각적인 화려함이 극대화되었다. 소위 당삼채라는 당대의 대표적 연유도기는 7세기 중반 盛唐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주로 부장품인 明器로 활용되었으나 출토 상황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적지 않게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당대의 연유도기는 화북 및 화남 등 여러 窯場에서 생산되었으며, 중국 내 소비와 함께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로까지 널리 수출되어 활발한 소비가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 당대의 주력 생산품이었던 당대 연유도기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수출에 관한 그간 학계의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관련 논제들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간 동아시아에 비해 덜 주목되었던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의 출토 사례를 중심으로 해외 전파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몇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먼저 여러 발굴성과를 토대로 살펴보면, 당대 厚葬문화 덕에 初唐부터 이미 삼채 도용이 대규모로 생산되었고, 이는 황족묘나 고관대작 분묘 출토품을 통해 어렵지 않게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섬서 서안의 中堡村이나 하남성의 張思忠夫婦墓 등의 출토 예를 통해, 無官職이거나 중상급의 평민계층 사이까지 폭넓게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어 이는 당대의 전형적 부장문화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8세기 중엽 안녹산의 난(755~763) 이후, 화려한 당삼채의 생산이 종식되고 대신 백유녹채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이는 성당기의 삼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채유 도기로 성당시기 당삼채는 부장용 명기의 성격이 강했으나, 9세기 백유녹채도기는 실용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백유녹채도기의 제작을 촉구한 역사적 배경은 바로 8세기 후반 이후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진 서아시아, 즉 이슬람제국과의 교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9세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슬람과의 도자무역은 결과적으로 이슬람 시장과 영향력에 대한 당나라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판단된다. 이는 단순히 동방의 연유 도기가 이슬람권에 수출된 것이 아니라 이슬람권의 기호를 중국 측이 수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The Tang Dynasty was a period when three colors of pottery flourished based on the accumulated technology of lead glaze. Lead-glazed Stoneware of the Tang Dynasty was able to implement a variety of colors, unlike previous monochrome lead-glaze technology, and it was possible to combine more than three colors to maximize its magnificence. Tang sancai [the three-colored ware], which is the representative lead-glazed stoneware in tang dynasty became popular after the High Tang Dynasty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It was mainly used as a grave goods, but according to the excavation data it is confirmed that used in everyday life. According to today's archaeological findings, the lead-glazed Stoneware of the Tang Dynasty was produced by several kiln sites, including both northern and southern part of China. Along with consumption in China, it has been widely exported to East Asia as well as Southeast Asia and West Asia and had been actively consumed.
In this study, I wanted to introduce the research results of academia on the production, consumption and export of the Lead-glazed Stoneware in the Tang Dynasty, which was the main product of the Tang Dynasty, and examine related issues. In addition, plans to examine Overseas propagation and its meaning with the focus on the cases of excavated in Southeast Asia and Western Asia, which have been less noticeable than in East Asia. As a result, I was able to draw a few conclusions. On the basis of various excavation results, three-colored ware figure have already been produced on a large scale from Early Tang due to the lavish burial culture of the Tang Dynasty, This can be easily estimated through the Excavated article of the royal family tomb or high office tomb. on the other hands, it can be confirmed that sancai figures had been enjoyed among the upper middle class including non-official civilians by the excavations of zhongbaocun(中堡村) in Xi'an and Tomb of Zhang SiZhong(張思忠夫婦墓) in Henan province.
However, after the middle of the 8th century An Lushan Rebellion(安史之亂,755~763), the production of magnificent three-colored ware was terminated and the production of green on white lead-glazed Stoneware became active. This is a new glaze colored pottery which is different from the three colored pottery of High Tang Dynasty. The three colored pottery of the High Tang Dynasty were mainly grave goods, but the 9th green on white lead-glazed Stoneware was close to a practical war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historical background that prompted the production of this green on white lead-glazed Stoneware was the trade with West Asia, that is to say Islamic empire, through the sea route since the late 8th century. In particular, the explosive growth of ceramic trade with Islam in the 9th century is consequently attributed to Tang's attitude toward the Islamic market and its influence. This is not merely the export of lead glazed stoneware of Eastern to the Islamic world, It should be seen as the result of China's acceptance of the Islamic tastes.

6한국의 팔경도

저자 : 조민주

발행기관 : 동양미술사학회 간행물 : 동양미술사학 8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5-160 (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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