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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선교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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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2)~55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19
신학과 선교
55권0호(2019년)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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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국 남장로교회의 한국선교에 관한 소고

저자 : 주승민 ( Chu Seoung-min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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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 즉 본 논문에서도 밝혔지만 황무지와 같은 한국 땅에 복음으로 새로움을 창조했던 미국남장로교회의 선교 원리를 발굴해서 현대 한국교회 역사의 변천과정에서 그것을 적용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그럼으로써 교회 일치성을 확보하게 되고 동시에 현대 소용돌이치는 한국 사회에서 빛을 발하는 교회, 지역사회의 센터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복음 전파와 교육 선교, 그리고 의료 선교라는 '삼각 선교의 원칙'(Triangle Method)을 중심해 헌신적으로 열정적으로 거의 순교적 영성을 가지고 한국의 척박한 땅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역이 옥토로 만들어갔다. 그들의 개척정신과 희생의 정신을 다시 회복할 때 새로운 창조력을 형성하는 것 그렇게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역사의식의 문제이다. 역사를 통해 배우고 전략을 발견하고 그리고 실천해가는 그런 작업이 있다면 문제의 산은 모래 위에 지은 것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본 논문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당대에 평양이나 서울보다 훨씬 열악한 곳, 미국의 남 장로교회라고 한국의 남쪽을 선호하면서 찾아간 '7인의 선구자'들의 결의는 오늘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모든 이들이 회복시켜야 할 미덕이다. 그러한 재발견만이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풀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How can recover the real credit the Church In Korean society? That is to find out the wisdom about how is She going to confront against the challenges of situation when was her beginning line. Through thesis I made clear faithful frontiers who were trying to evangelize Korea specially to southern territory. If our present Churches have to keep their endeavour and sacrifices we can make so vital Churches in this present citical time.
Like I revealed in thesis to preach the gospel to Korean pity people and education mission including medical mission in so low level of south Korean area. These were successful elements to be talked that Korea became so strong Christian country in the whole world. In this Triangle Method of Korean mission American sou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were working to save the Korean people so sacrificially. And they made Korea as a so developed country and became fruitful soil from desolated. I believe we can say they made like a sort of the desert into furtile place.
Problem is how do we think about history. Through it to learn, to find out strategy and practice are best way to solve the mountain of dilemma. Korean present generation must be challenged to take to recover this difficult dilemma. Also for this task they have to learn how their fronteers worked in God's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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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강제병합과 한국성결교회의 시작

저자 : 정병식 ( Chung Byung Sig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7-8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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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3.1운동 백주년을 맞아 한일병합조약의 역사적 과정과 문제를 살피고, 같은 시대에 움튼 성결교회의 태동을 논했다. 용어적으로 볼 때, 한일합방 혹은 한일합병 등은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합방 혹은 합병은 서로 다른 두 체제가 평화적으로 합의하여 새 국가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나 1910년도에 이루어진 일제의 강제조치는 일제 군경의 위력에 의한 허위 문건으로 성사되었다. 병합에는 강제라는 단어가 결합해 강제병합이라고 해야 옳다. 이 논문은 한일강제병합의 시대적 배경과 절차 및 병합조약이 철저히 일제에 의해 치밀하게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다루었다.
1907년에 세워진 성결교회의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은 국가적 난세에 태동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했고, 식민지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의병의 저항이 전국에서 불같이 번져나갔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같은 해 6월 고종은 헤이그 밀사를 파견했다가 일본 통감부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했다. 그리고 순종이 즉위했다. 나라의 왕이 강제로 쫓겨나는 국난의 절정에서 한국성결교회는 복음으로 다시 생명을 심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 불과 3년 만에 일본은 한국을 강제병합시켰다. 국운 쇠락의 침체된 기운이 활발한 복음전도운동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었다. 1908년 성결교회 주도의 대부흥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1910년 겨울과 1911년 백만인구령운동이 전개되었다. 성결교회는 신앙을 통해 새 나라를 희망하도록 나라를 빼앗긴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결을 전하는 전도활동에 주력했다. 1900년대 초기 한일강제병합 시기에 성결교회가 한국사회에 끼친 커다란 공헌이 있다면 성결운동과 부흥운동을 통한 한국사회의 도덕적 갱신이다.


In light of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3.1 Movement, this thesis will debate the historical process and the issues regarding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The use of the words, the Japanese union with Korea is not appropriate. Union denotes a peaceful agreement on the part of two different types of government to form a new type of government. But the forceful actions on the part of the Japanese government was based on the use of false documents and the implementation of militaristic force. In terms of a union the word force is more applicable. This thesis dealt with the forceful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n terms of the background of the times, the procedure and the cunningly crafted illegal actions of the Japanese government.
The birth of the Oriental Missions Society of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came in 1907, at a time of national crisis. As the victor of the Russo-Japanese War in 1904, the Japanese forcefully emphasized the Ulsa Treaty and openly stated its desire for colonization. The patriotic resistance spread like wildfire throughout Korea. In 1907 a national financial repatriation movement developed. In June of the same year, Ko Chong sent a Korean emissary to the Hague and the Japanese responded by removing him from power, followed by Soon Chong's ascension to the throne. In the midst of the Korean king being removed from power,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once again began to sow life through the gospel. Barely three years later the Japanese forcibly annexed Korea. The depressed spirit due to the binding of the nation was being revitalized through the evangelical movement. In 1908 with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at the forefront, a great revival broke out, with Seoul at the center, leading into the winter of 1910 and the 1911 one million people movement.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through faith spread the gospel to the people of this country which had her land taken away to hope for a new nation. If there is a great contribution made by the Korean Evangelical Holiness Church to the Korean society in the period of the Japanese annexation in the early 1900s, it would be the moral reforms of the Korean society through the holiness movements and reviv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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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후기 로마제국의 축제문화와 기독교 ―암브로시우스 시대를 중점적으로

저자 : 황훈식 ( Hwang Hun Sik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3-11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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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로마제국 사회에서 다신론적 전통로마 문화와 새로운 문화인 유신론적 기독교 문화의 만남은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낳았다. 380년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로마제국의 국가종교로 선언되어 로마제국 안에서 소위 '제국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할 때, 이러한 현상은 뚜렷이 관찰된다. 특히 기독교의 국교화 이전과 이후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는 4세기 암브로시우스의 밀라노 교회에서는 두 문화의 문화적 공존과 융합, 수용과 배재, 동화와 변용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현장은 바로 축제였다. 전통적인 로마축제 문화는 자체적으로 고대축제들의 자체적 사멸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축제들(경기들과 황제숭배일)이 만들어지는 발전을 이루었고, 4세기 기독교회의 축제들은 예식과 예배, 순교자기념들 등의 모습으로 확대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축제문화속에 담겨진 사상과 가치들은 서로 상반되어 배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두 축제문화는 공존하면서 나아갔고 상대의 문화를 대체하거나, 상대의 문화적 요소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정치적 힘의 논리나 종교적 배타성의 영역에서 바라본 결과가 아닌, 인류문화발달사적인 관점에서 나타나고 있는 '로마문화의 기독교화 그리고 기독교문화의 로마화'라는 현상이었다. 문화적 과도기에 서 있었던 두 문화는 결국 새 시대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적합한 문화를 선택하거나, 변용 혹은 동화되어 현재적 융합을 지나 앞으로 수용될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Cultural encounters of the polytheistic traditional culture of Rome and the monotheistic new culture of Christianity in the late Roman Empire have resulted in various cultural phenomena. This phenomenon can be observed in 380 when Christianity officially declared as the national religion of the Roman Empire and began to become a so-called “imperial Church” in the Roman Empire. In particular, in the Church of Ambrosius in Milan in the 4th century, which included the periods before and after the state religion of Christianity in the late Roman Empire, the cultural coexistence, fusion, acceptance, exclusion, assimilat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two cultures appeared and this place war a festival. The traditional festival culture of Rome has developed itself in that ancient festivals have been killed, new festivals (games and emperor worship) have been made, and Christian festivals of the 4th century also expanded and developed into ceremonies, worship, and martyr celebrations etc. The two festivals are conflicting with each other in spirit and values. However, in a transitional situation, two festivals have coexisted and have moved forward, replacing their culture or reacting to their cultural elements, It was a way of developing. This is not the result of political power or religious exclusiveness, but rather the phenomenon of 'the Romanization of Roman culture and the Romanization of Christian culture' which is emerging from the viewpoint of the development of human culture. The two cultures in the cultural transition eventually selected a suitable culture that could contain new ideologies and values in the new era, or were transforming or assimilating to create a culture that would be accepted past the present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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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초대 교회에 출현한 이단

저자 : 주희연 ( Ju Hee Yeon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1-14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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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기는 기독교의 정통교리가 완성된 시기이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4개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와 기독론이
라는 기독교 교리의 금자탑이 완성되었다. 초대 교회는 이제 공고히
다져진 기독교 정통 교리들로 인해 사상적으로 큰 성장을 하게 되었고
기독교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것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정통교리 확립의 성공은, 더불어 그것과 반하는 패배자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데, 교회는 이들을 일컬어 '이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한마디로 기독교 정통에서 제외된 교리와 사상들이며 공교회의
승인으로부터 단호히 거부되었다. 기독교의 정통성이 분명하게 갖춰질수
록 이들 이단들의 허점과 오류는 더욱 뚜렷하고 투명하게 그 모습들을
드러내게 되었다.
초대 교회 이단 논쟁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것은 아리우스주의 논쟁으로, 아리우스주의는 3-4세기에 걸쳐 많은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교회를 소란케 하고 혼동케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이단으로 인해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소집하게 되었고, 교회는 드디어 진리의 옥석을 가리기 위한 강도 높은 점검을 스스로 거치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아리우스주의와의 논쟁은 아타나시우스라는 위대한 교부를 탄생시켰고 동시에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령의 정체성을 정확히 확인케 하여 준 일련의 수준 높은 기독교 사상의 체계과정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 정통교리 확립을 위한 4세기 교부들의 업적은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었으며, 종국적으로 아리우스주의는 정통에 위배되는 이단으로 정죄를 받으며, 추방되었다.
본 연구의 관심은 바로 4세기에 출현했던 이런 아리우스주의처럼 초대 교회에서 이단이라고 정죄 받고 공교회의 승인에서 거부된 이들 이단들의 출현을 중점적으로 고찰해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초대교회를 위험과 혼란에 빠뜨렸던 이들 이단들의 탄생배경과 근거를 살펴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와 같은 고찰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첫째,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이유로 이 같은 이단들에게 현혹되어 이탈되었는가? 둘째, 초대 기독교 사회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오게 된 이단의 출현의 반사적 결과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교회에 어떠한 기능으로 작용하였겠는가? 이다. 이들은 분명히 기독교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위협하였던 역기능으로 작용되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들의 역기능이 정통 교리의 체계성과 그 확립을 보다 신속하게 촉진시켜 준 하나의 긍정적인 동력의 촉진제로 작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단의 출현은 오히려 초대교회 기독교교리와 사상의 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되었음이 틀림없다.


The third and fourth century saw the Christian Orthodox doctrines completed. Those main two doctrines, which are Trinity and Christology founded through the four major Ecumenical Councils became known as a representative of Christian Orthodoxy in the fourth century. These doctrines led the early church grown and matured by ideas and became paramount to organize the Christian thought.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not only successful Orthodox Christian groups but also rejected groups as being not biblical or against the Orthodoxy. The latter became known as Heresy. The more christian orthodox doctrinal development be advanced the more the errors and holes of the heresies be clear and proved transparently.
It was the Arianism that came to the forefront in the Heresy controversies. The Arianism made really confusing the early church through the third and fourth century. Nevertheless The Emperor Constantine summoned to key biblical scholars and bishops to settle the issue at Nicaea in 325. It was the first 'ecumenical council' or 'world council'. Others were to follow for the purpose of sorting out similar controversies. Finally The early orthodoxy church began to examine highly themselves to distinguish between good and bad of the truth. On the one hand Athanasius became a great spokesman and scholar who helped condemn the Arian controversy as he clarified the issue concerning the Holy Spirit and the Trinity.
Hence the great patriarchs like Athanasius accomplished remarkable works for the church in the fourth century. Their devotion, godly resolution and their outstanding intelligence settled all of controversies and rescued the early church threatening from the heresy. Eventually the Arianism was exiled as a Heresy.
My research will mainly consider the roots, dangers and condemnation of these early church heresies. I will study the historical and social backgrounds that enabled these heresies to arise and endanger the church.
Questions will be researched such as ; First, What caused the early christians to be deviated from the orthodoxy? and What made them to be deceived from the truth? Second, What was the effect of rising controversies of heresy? Were the controversies a good thing for the church's identity and well-being?
Heresy put the early church to confusions in wrong way. As a result it produced a dysfunction in the early christian church. Nevertheless On the one hand the early church was growing and developing on establishing christian thoughts and doctrines. Furthermore the church was raising it's identity and protecting from heresies. Hence the early church had an positive step forward for developments of systemicity and establishment of orthodox doctrines.
Therefore I attempt to show that Heresies took the positive roll of a growth hormone for the growth of the early church through my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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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천지역학의 콘텐츠로서 펄 벅의 다문화사상과 대중문학 고찰

저자 : 이희용 ( Lee Heeyong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7-171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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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오늘날 지역학의 개발 방향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라 펄 벅의 실천적 삶과 대중문학에서 나타난 그녀의 박애정신, 다문화 사상, 그리고 글로컬적 시민정신을 부천지역학의 주요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해 우선 본 연구는 펄 벅의 실천적 삶과 문학에 나타난 문화 다양성 사상을 발견하고, 그녀의 대중 문학에 담겨 있는 글로컬 시민의식을 규명한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부천 지역학을 통해 펄 벅의 박애정신은 생명정신 및 나눔정신과 더불어 부천 지역의 정신적 뿌리로 자리매김 됨으로써 부천 시민의 정체성 및 공동체 의식강화를 위한 중요한 정신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 펄 벅의 다문화적인 삶과 다문화 사상은 부천을 비롯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국내외 도시에서 다문화 교육을 위한 실천적 모델로 활용될 수 있어 부천지역학의 주요 콘텐츠로 구성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펄 벅의 문학에 담겨 있는 글로컬 시민정신은 유네스코 창의문학 도시에 적합한 부천의 새로운 시민의식을 형성시키고 고양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천의 지속가능한 미래 발전을 위해 부천지역학의 콘텐츠로 개발되기에 충분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This article points out modern direction developing the area study and according to that aims to set down Perl S. Buck's benevolent spirit, multicultural Thought and glocal citizenship as a main content of Bucheon's Area Studies, In order to achieve the object of this study, I investigated Perl S. Buck's thought of cultural diversity in her practical life and literature and established glocal citizenship in her popular literature. As follows is suggested on the conclusion. The first suggestion is that through Bucheon's Area Studies will Perl S. Buck's benevolent spirit give a important spiritual base for strengthen of Bucheon's citizen identity and community's consciousness along with the spirit of life and the spirit of sharing. Second is that Perl S. Buck's multicultural life and multicultural Thought must be developed as a main content of Bucheon's Area Studies, because they can be utilized as a practical model for cultural education in home and abroad cities which enter a multicultural society including Bucheon. Finally, it is that glocal citizenship in Perl S. Buck's popular literature can enough be developed as a main content of Bucheon's Area Studies for Bucheon's sustainable future development , because it could play a crucial role in form and enhance of Bucheon's new citizenship suitable to UNESCO the Creative Cities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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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

저자 : 소형근 ( So Hyeong Geun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3-20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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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구약성서의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죽음과 사후세계를 다루기에 앞서 구약성서의 인간이해를 다루었으며, 또한 구약성서의 죽음이해를 다루었다. 또한 죽은 자, 즉 사자(死者)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를 살펴보았고, 구약성서에 나타난 부활사상을 소개했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인간은 '흙'(창 2:7)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며, 하나님의 '생명호흡'(창 2:7)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론적인 존재이며,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생명호흡'을 거두어 가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었다(시 104:29-30).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고대 이집트에 비하면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서는 '영생'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단 2회 인간에게 사용됨). 또한 구약성서는 인간이 죽으면, '쉐올', '보르', '샤하트', '케베르'로 내려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죽은 자는 '조상에게로 돌아간다', 혹은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간다'로 말하고 있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족묘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함께 매장하는 관습 때문으로 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자가 사후에 조상들의 모임에 들어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오경의 법전에서 '신접자'와 '초혼자'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금지규정은 역으로 당시 고대이스라엘의 민중 신앙을 반영하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야훼신앙의 핵심 사상에서는 철저히 금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부활사상을 볼 수 있는 본문은 두 곳이다. 이사야 26:19과 다니엘 12:2이다. 이 두 본문은 모두 묵시문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는 죽은 자의 다음 세계에 대한 묘사를 침묵하고 있으며, 키르베트엘-콤에서 나온 명문에서는 야훼를 '나의 수호신'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물론 이 명문은 구약성서의 전통 야훼신앙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사자(死者)에 대한 민간신앙으로 볼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death and the afterlife of the Old Testament. To begin with, this article deals with human understanding, death understanding and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n the Old Testament. The conclusions obtained here are as follows: Man is made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the breath of life(Gen 2:7), therefore man is fatalistic being who must return to the ground, and if the Creator God wants, he can at any time take away human life(Ps 104:29-30). Compared to ancient Egypt, the death understanding of the ancient Israel was not very interested in the afterlife. In this sense, the Old Testament has few reference to the everlasting life(only in Ps 133:3; Dan 12:2). Also the dead in the Old Testament goes to the fathers(Gen 15:15; Num 20:26) and to gather unto his people(Gen 25:8), and descends to Sheol, Bor, Shahat and Qeber. This seems to be due to the custom of ancient Israelite making family graves and burying them together, and on the other hand, it seems that the dead are trying to continue their national identity by joining a group of ancestors after death. The laws of the Pentateuch prohibits the conduct of a consulter with familiar spirits and necromancer(Lev 19:31; Deu 18:11), it can be inferred that these prohibitions reflected the popular faith of ancient Israel. However, this is strictly forbidden in the core ideas of Israelite Jahwism. There are two texts(Isa 26:19; Dan 12:2) that show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Both texts have something in common: Apocalyptic Literature. Also the Old testament is almost silent on the description of the dead, and the inscription of Ḫ. el-Kom wrote God as 'my guardian'. Of course, this inscription does not reflect the traditional Jahwism of the Old Testamentm, but it can be seen as a folk belief in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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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언약신학의 관점에서 본 웨슬리안 성결론 ―한국 개신교의 개혁과 연합, 성숙을 위한 제안

저자 : 장기영 ( Kiyeong Chang )

발행기관 :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간행물 : 신학과 선교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1-24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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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지금까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존 웨슬리의 언약신학을 소개하고, 그 구조와 특징, 무엇보다 성결론적 함의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타락 전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으셨으나, 타락 후 인류와는 행위언약을 폐기하고 은혜언약을 맺으셨다고 가르쳤다. 은혜언약 아래에서의 두 시대를 유대교 시대와 기독교 시대로 구분한 후, 유대교 시대도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의 온전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시대로 가르쳤다. 기독교 시대에 대해서는 유대교 시대보다 더 뛰어난 계시와 성령의 능력 부으심을 통해 이 세상에서 성결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설명한다.
이에 비해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하나님께서 타락 전 아담과 행위언약, 타락 후 인류와 은혜언약을 맺으셨다고 주장하면서도, 율법의 요구를 행위언약의 지속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언약신학의 구조는 이중예정론을 뒷받침한다. 유기된 자에게는 행위언약이 적용되며, 택자에게는 은혜언약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 행위언약의 엄격한 요구를 충족하기 힘들다는 논리로 이 세상에서 성결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칭의는 은혜언약의 요구인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믿음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의 전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 언약신학과 웨슬리 언약신학의 차이가 두드러짐에도 두 신학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종교개혁 신학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약신학은 두 전통 간 신뢰와 화합, 협력을 가능케 하는 신학적 요소가 될 수 있다.


This article introduces John Wesley's covenant theology: its structure, characteristics, and especially implications concerning entire sanctification. Wesley dealt with various concepts of covenants, dispensations, and types of the law, following the outline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1. Covenant of works (applying to Adam alone): moral law as norm, obedience as condition of fellowship with God. 2. Covenant of grace: moral law as norm, faith as condition of fellowship with God. Under covenent of grace: a. Mosaic dispensation: moral law as norm, faith in ceremonial mediation, leading to obedience of the letter, as condition of fellowship. b. Gospel dispensation: moral law as norm, faith in Christ-mediation ― whose authenticity is attested by spiritual, loving obedience ― as the condition of fellowship with God. Wesley taught salvific sufficiency of both Mosaic dispensation and Gospel dispensation, and that under Gospel dispensation, God gives not only more excellent revelation but also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for sanctification.
In contrast, Reformed covenant theology supports double predestination, identifying the demands of the law with the continuity of covenant of works, and then applying covenant of works to the damned, and covenant of grace to the elect. It also denies the possibility of entire sanctification in this life, insisting that believers cannot satisfy the demands of covenant of works. It also insists that imputation of Christ's active obedience as well as passive obedience is necessary for justification in order to satisfy the demands of both covenant of works and covenant of grace.
Reformed covenant theology and Wesley's covenant theology coincide with each other in that they preserve the essence of the Reformation theology. So covenant theology can help dialogue,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between the Reformed and the Wesleyan 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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