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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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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976-0604
  • :
  • : 불교와 문화→동아시아불교문화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7)~39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539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0호(2019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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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선(韓國禪)의 보편성과 특수성 - 보조(普照) 지눌(知訥)과 진각(眞覺) 혜심(慧諶)을 중심으로 -

저자 : 한가람 ( Han Ga-ram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2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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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법인 간화선(看話禪)이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고 누구를 중심으로 대중화 됐으며, 과연 어떻게 오늘날에 정착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과정을 추적하는 논문이다. 사실 오롯한 한국만의 '불교', 한국만의 '선법'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불교가 지정학적으로 인도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동점(東漸)된 사실만 보더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불교의 '선법'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한국에서 유행했던 선법, 그리고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선법 역시도 불교의 '동점'이라는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한국만의 독자적인 선법만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선법은 동아시아 내에서 중국, 일본 등과는 다른 특수성을 담지(擔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한국 선법 형성에 기여했던 보조 지눌과 이를 대중화하고 정착화 시킨 공로가 큰 혜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은 비단 당시 중국 불교에서 유행했던 선법을 수용한 인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재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법으로 계승·발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선 보조 지눌은 규봉 종밀과 대혜 종고의 선법을 수용하여 한국 불교의 선법을 형성한 인물이다. 지눌은 규봉 종밀과 대혜 종고의 사상을 많이 접하고 그들의 저서를 많이 탐독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지눌은 단순히 이들의 사상을 순수하게 수용하는 입장에만 그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받아 들여 한국의 선법으로 형성하였다. 보조 지눌이 생존하였던 당시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두 중국 불조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시대상을 고려하여 불교의 선교일치(禪敎一致), 그리고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강조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반조법'과 '간화선'이라는 한국의 선법을 형성하였다.
보조 지눌을 통해 형성된 한국의 선법은 혜심을 통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지눌이 한국에 간화선을 받아들인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 체계와 방향성, 나아가 현재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간화선에 가깝게 발전시킨 인물은 혜심으로 볼 수 있다. 慧諶은 간화선의 대중화에 주력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狗子無佛性話'를 통한 중국 불교 선법과의 변별성, 그리고 한국 불교만의 독자성을 담보할 노력도 시도하였다. 더욱이 혜심은 지눌이 최상근기에 간화선을 둔 것과는 달리, 화두를 참구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변별적 계승으로 현재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법인 '간화선'이 자리매김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현재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법인 '간화선'이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고 정착되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에 한국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간화선'이 단순히 불교의 동점 과정에서 중국적 요소의 이식(移植)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선법은 보조 지눌의 '비판적 수용'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를 혜심이 더욱 대중화시키려는 노력이 더해진 산물이다. 이러한 결과를 확인해 볼 때, 한국의 '간화선'은 지역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 내에서의 특수성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This study set out to track a process of Ganhwaseon, a zen doctrine representing Korean Buddhism, being developed including which channels were involved in its formation, who led its popularization, and how it could settle down in today's world. There can be no “Buddhism” and “zen doctrine” unique only to Korea, indeed, which cannot be denied given that Buddhism originated in India geopolitically and later moved eastward. It is the same with the “zen doctrine” of Korean Buddhism. Both the zen doctrines that were in vogue in the nation in the past and the zen doctrine representing Korea today cannot ignore the fact relevance of Buddhism' “eastward move” and argue that there is Korea's own independent zen doctrine. Despite these, however, there is no denying that the current zen doctrine in Korea contains its own unique features different from that of China and Japan in East Asia. The present study thus decided to investigate Bojo Jinul that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Korean zen doctrine and Hyesim that contributed to its popularization and settlement since they accepted the zen doctrine that was in vogue in Chinese Buddhism those days and further inherited and developed it into the zen doctrine representing Korean Buddhism today.
Bojo Jinul accepted the zen doctrines of Gyubong Jongmil and Daehye Jonggo, forming the zen doctrine of Korean Buddhism. He was much exposed to their ideas and indulged in the reading of their works, in which process he accepted their ideas critically instead of accepting them purely and based the formation of Korean zen doctrine on them. It was closely related to the situations where he was in. While accepting the ideas of these two founders of Buddhism in China, he took into consideration the aspects of his times and put an emphasis on Seon-Gyo Agreement and Donojeomsu in Buddhism. Based on these, he created two types of Korean zen doctrine called “Banjobeop” and “Ganhwaseon.”
The zen doctrine of Korea formed by Bojo Jinul was further developed by Hyesim. While Jinul introduced Ganhwaseon into Korea, Hyesim developed its system and directionality close to the Ganhwaseon that was found in today's Korea. He focused on the popularization of Ganhwaseon, in which process he made an attempt at distinguishing it from the zen doctrine of Chinese Buddhism through “Gujamubulseonghwa(狗子無佛性話)” and securing Korean Buddhism's own independence. Furthermore, he maintained that one could achieve a realization just through the Chamgu of Hwadu unlike Jinul that put Ganhwaseon in Choisanggeungi (最上根機). Thanks to his distinctive inheritance, “Ganhwaseon” was able to establish itself as a zen doctrine representing current Korean Buddhism.
This research process helped to figure out the process of “Ganhwaseon,” a zen doctrine representing current Korean Buddhism, being formed and settling down. The findings show that “Ganhwaseon,” which holds a firm place in Korea, does not simply represent the transplant of Chinese elements in the process of Buddhism moving eastward. The zen doctrine representing today's Korean zen doctrines was formed by Bojo Jinul's “critical acceptance” and completed by Hyesim's efforts to promote its popularization further. These findings indicate that “Ganhwaseon” of Korea has not only acquired universality beyond locality, but also has its unique features in the Buddhism of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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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려말선초(麗末鮮初)의 한국불교에 끼친 지공(指空)의 영향 검토

저자 : 염중섭 ( Youm Jung-seop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4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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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승려 지공은 1326년 3월, 원나라 제6대 황제인 晉宗의 명에 의해 금강산에 향 공양을 올리기 위한 御香使 신분으로 고려에 오게 된다. 당시 고려불교는 원 간섭기에 따른 티베트불교의 영향으로 帶妻僧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매우 혼탁해 있었다.
지공은 1328년 9월까지 총 2년 7개월을 고려에 머무는데, 이때 無生戒와 인도식의 禪佛敎로 고려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로 인해 고려불교는 戒律 정신이 환기되고, 원나라에 유학하는 禪僧들은 지공이 원의 수도인 大都에서 주석하고 있는 法源寺를 찾게 된다.
고려 말 불교를 대표하는 麗末三師 중 懶翁과 景閑은 중국 강남의 五山佛敎와 지공을 동시에 嗣法한 분들이다. 특히 나옹은 지공의 治命제자로 공민왕 만년인 1370년이 되면, 고려불교의 실질적인 제1인자로 등장하게 된다. 1370년은 지공의 화장한 靈骨이 고려로 들어오는 해이므로, 나옹의 부각 역시 지공의 영향과 관련해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나옹에 의해 262칸으로 중창(修造)되는 檜巖寺를 통해 조선전기까지 유지된다. 즉 지공의 영향은 고려불교가 티베트불교의 혼탁으로부터 신속히 정리되는 한 요인인 동시에, 인도 선불교적인 요소가 한국불교로 들어오게 되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In March 1326, an Indian monk Jigong came to Goryeo as the person in charge of offering incense offerings at Mt. Geumgang at the order of Jinjong(晉宗) the sixth emperor of the Yuan dynasty. At those days, Goryeo Buddhism was in chaos due to the influence of Tibetan Buddhism under the Yuan's interference, increasing the married monks.
Jigong stayed in Goryeo for two years and seven months until September 1328, leaving a huge impact on Goryeo Buddhism through Musaenggye(無生戒) and Indian style Zen Buddhism. As a result, Goryeo Buddhism could restore its disciplinary spirit, and the Zen monks studying in the Yuan Dynasty came to visit the Beopwon Temple where Jigong was teaching in Daedo(大都) the capital of Yuan.
Among the 3 representative monks of Late Goryeo Buddhism, Naong(懶翁) and Gyeonghan(景閑) were the successors of both the Imjejong(臨濟宗) of Chinese Gangnam and Jigong. In particular, Naong was the first Yumyeong(遺命) disciple of Jigong and emerged as the first actual leader of Goryeo Buddhism in 1370, the later period of King Gongmin's reign. As the cremated ashes of Jigong came into Goryeo in 1370, the emergence of Naong could also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the influence of Jigong.
This stream was maintained till the early Joseon through Hoeam Temple, which was re-established into 262 rooms by Naong. In short, the influence of Jigong was one of the factors that promptly purified the Goryeo Buddhism from turbulent Tibetan Buddhism and at the same time, the Indian Zen Buddhism was brought into Kore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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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의 승과, 선시(選試) 혁파에 대한 고찰

저자 : 문상련 ( Moon Sang-le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1-7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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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세조 이후, 중종 대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선시(選試)의 혁파 과정을 고찰하였다. 세조 7년 시행된 금방조건(禁防條件)에 반해 예종 1년에 시행된 금승조건(禁僧條件)은 선시 혁파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성종 23년에는 금승절목(禁僧節目)에 의거해 도첩 발급을 정지했으며, 동년 7월에 편찬된 『대전속록』에서 '도승(度僧)' 조가 폐기되었다. 그리고 연산군 10년에는 양종도회소(兩宗都會所)가 폐기되었으며, 중종 7년경에 이르러 양종이 혁파되었다. 한편 중종 4년에 도승(度僧)의 법이 혁파되어, 비록 선시(選試)와 도첩제는 존재했으나 시행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중종 11년 4월에는 선왕과 선후(先后)를 위한 기신재(忌晨齋) 때 승(僧)이 없어 여러 절의 승을 초청해 겨우 재를 베푸는 상황이었다. 이후 같은 해 8월에는 기신재마저 혁파되어, 더 이상 도승(度僧)의 필요성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경국대전』 중 「도승」 조가 삭제되어 선시(選試)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게 되었다. 중종 후반에는 승인호패(僧人號牌)의 발급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도첩제가 시행되었지만, 이것은 『경국대전』에 따른 시재행(試才行)과 정전(丁錢) 납부를 통한 도첩 발급, 그리고 시경(試經)을 통한 승직자 선출이라는, 선시(選試)의 규범을 벗어난 예였음을 서술하였다.


This study traced the process of abolishing the triennial examination from King Sejo through King Yejong to King Chungchong. Unlike the measure to become a monk introduced in the seventh year of King Sejo's reign, the measure to forbid becoming a monk introduced in the first year of King Yejong's reign was the starting point in the abolition of the triennial examination.
In the 23rd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the issue of an identity tag was suspended based on the example items to forbid becoming a monk. The item of entering the monastic life was deleted from Taezonsokrok published in July of the same year. In the tenth year of King Yeonsahn's reign, the council of two denominations was abolished. In the seventh year of King Chungchong's reign, the two denominations were abolished. In the fourth year of King Chungchong's reign, the law on entering the monastic life was abolished with the triennial examination and the monastic identity tag system not in effect.
In April in the 11th year of King Chungchong's reign, there were no monks available for Gishin-jae(ancestor worship ceremony) for previous kings and queens. They had to invite monks from several Buddhist temples to hold the ancestor worship ceremony. In August of the same year, even Gishin-jae was abolished, which meant there was no more need to enter the monastic life. In December of the same year, the item of entering the monastic life was abolished from Gyunggukdaejeon, which removed even the ground for the existence of the triennial examination.
In the latter part of King Chungchong's reign, a different form of monastic identity tag system came into effect through the issuance of a monastic identity tag, but it was an exception from the principles of the triennial examination including the talent test based on Gyunggukdaejeon, issue of a monastic identity tag according to paid money for the compensation of forced military duties, and election of officials of the monks based on the sutra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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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해 한용운의 대승 선사상과 인생 연구 - 『선(禪)과 인생』을 중심으로 -

저자 : 오철우 ( Oh Cheol-woo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1-10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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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인생』은 만해가 1932년 『불교(佛敎)』지 2월호에 발표한 불교논설문 중 한 편이다. 만해 한용운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다양한 각도로 이루어져왔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선사상에 관한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만해연구가 주로 문학중심의 편향된 경향으로 진행되어왔었기 때문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으며,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불교학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해의 불교사상 내지 선사상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여전히 아쉬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만해는 선(禪)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몇 편의 산문으로 남겼다. 만해의 글들이 주로 문학이나 사회상에 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본 논문은 이 중에서도 만해의 선사상이 충실하게 개진된 것으로 여겨지는 『선과 인생』을 중심으로 만해의 선과 인생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그의 대승 선사상이 사회운동에 어떠한 사상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유추해보고자 한다.
『선과 인생』에서 만해는 일반사람들도 선을 가깝게 여길 수 있도록 '선'을 '마음을 닦는 정신수양'으로 규정함으로써 선의 대중화ㆍ사회화 의지를 확실하게 드러내었다. 또한 깊은 산중이 아닌 일상생활 중에서도 참선수행이 가능하다며 승속불이(僧俗不二)의 수행법을 강조하였다. 또한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은 무심(無心)ㆍ무착(無着)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최상승의 도라는 것과, 나아가 법성(法性)만이 불성이 아니며 유정물 뿐 아니라 무정물도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불성관에 바탕한 대승선심으로 중생구제를 사회적 활용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불교개혁사상과 사회독립운동에도 확고한 사상적 기저가 되고 있다.


This article attempts to figure out Manhae's view of Seon Buddhism. Studies and discourses on his writings have been so far mostly focused on his literary works, especially poems. Manhae, however, being a Buddhist monk above all his other identities, also wrote several articles on Buddhism, especially Seon Buddhism. It is needless to say that due attention should be paid to his views on Buddhism for comprehensive and appropriate understanding of his ideas and activities. This study looks into some features of Manhae's opinions of Buddhism expressed in his article “Seon and Life.”
“Seon and Life” was one of Ven. Manhae's writings on Buddhism, published in the monthly megazine Bulgyo (Buddhism) in February 1932. Manhae expressed his Seon Buddhist doctrines in it in somewhat full scale. It therefore is a good material for studies of Mahae's views of Buddhism.
According to Manhae, Seon is all about “spiritual discipline of the Mind.” By saying so, he expressed his intention for popularization or 'socialization' of Seon. He also advocated the Seon practice based upon the principle of “non-duality of monks and laity” by saying that practice should be done in everyday life as well as in 'deep and remote mountains.' Manhae understood the doctrine that all sentient beings have the Buddha-nature in them as meaning that not only living beings but also all non-living things in the world universally have the Buddha-nature. He also presented his view of gyeonseong (insight into the self-nature; Japanese 'kensho') based upon such a concept of Buddha-nature.
The very basis of Manhae's view of Seon was his understanding of the doctrine of Buddha-nature. He regarded the core Mahayana doctrine of Buddha-nature as implying that all human beings have the same Buddha-nature and are thus absolutely equal. His social activities, intended for salvation of sentient beings, are also grounded in such a view of Seon as mentioned above. We may quite safely say that Manhae's ideal for reformation of Buddhism and his social activities, including struggles for national independence, were all firmly based upon his Seon Buddhist 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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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임제삼구에 대한 백파긍선의 해석

저자 : 전무규 ( Jun Moo-kyoo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5-13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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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파 긍선은 임제삼구를 독창적인 안목으로 해석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선종 오가의 모든 언구들을 판석하고 분류하여 '삼종선'으로 체계화하려 하였다. 백파는 『선문오종강요사기』에서 임제삼구를 '능량칭형(의미 지시자)'과 '소량법체(지시되는 의미)'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임제삼구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제3구'라고 하는 언어 행위가 현상 너머의 실상을 지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에 대한 모든 접근 방식들은 제3구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선문의 모든 언구들이 제3구임을 이해하고, 그 속에 갖추어진 삼현과 삼요를 깨닫는다면 제3구도 또한 공능이 크다는 것이 백파의 결론이다.
『선문수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향상'과 '향하'다. 백파는 향상과 향하, 혹은 본분과 신훈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구를 구분한다. 도식적으로 요약하자면, 제1구는 향상과 향하가 일체화된 삼요를 깨닫는 조사선이고, 제2구는 향상과 향하가 일체화되지 못한 삼현을 깨닫는 여래선이며, 제3구는 언어에 의한 이론적 깨달음으로, 삼구를 깨닫는 의리선이다. 그러나 제3구 안에는 이미 삼요와 삼현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향하 속에는 이미 향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Baekpa Geungseon interpreted Linji's three statements inventively, which he tried to use as the criteria for analysing and classifying all the words and phrases from all the Seon schools, so as to systemize theories of Seon by assigning them among three categories, so-called samjong Seon 三種禪, three-fold Taxonomy of Seon.
In the Seonmun ojong gangyo sagi, Baekpa explains Linji's three statements with new concepts of neungnyang chinghyeong (能量秤衡, a scale for measuring) and soryang beopche (所量法體, the Dharma itself to be measured), suggesting absolutely new way to understand Linji's three statements. He argues that as though the third statement can't point to the Reality beyond all the phenomena, nevertheless there is no way to approach the Reality except the third statement. Therefore, Baekpa concludes, if we could understand that all the words and phrases from Buddha or Seon masters are of the third statements, and then penetrate the three essentials 三要 and three mysteries 三玄 in there, we would be making the best use of merits and ability of the third statement.
In the Seonmun sugyeong, Baekpa distinguishes three statements from one another based on hyangsang (向上, ultimate state) and hyangha (向下, actualization). To put it shortly, the first statement is the Patriarch Seon at which we attain the three essentials, where hyangsang and hyangha are integrated into one; the second statement is the Tathagata Seon at which we attain the three mysteries, where only hyangsang is sought without hyangha; the third statement is the Principle Seon at which we only attain the three statements that have only hyangha without hyangsang. However, because the third statement is already furnished with the three essentials and mysteries, hyangha seems to include hyangsang in it already. Therefore, although all the words and phrases left by Buddha or Seon masters are the third statement of hyangha as long as they are language, if we could find the three mysteries and essentials hidden in it, the third statement of hyangha would be none other than hyang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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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벽암록』 「지도무난(至道無難)」 공안의 분석

저자 : 박인성 ( Bak In-seong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5-16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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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에는 조주의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簡擇)”과 관련된 공안이 4칙 들어 있다. 제2칙, 제57칙, 제58칙, 제59칙이다. 모두 “지도무난 유혐간택” 즉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을 꺼릴 뿐이다”로 시작되는데, 제2칙은 조주의 말로 되어 있고, 다른 3개의 본칙은 한 승려의 말로 되어 있다. 조주는 승려와 나누는 문답을 통해 사구(死句)로 시작된 이 화두를 활구(活句)로 드러내고 있다. 제2칙에서는 “명백에 머물지 않거늘 무엇을 소중히 간직합니까?”, 제57칙에서는 “어떠한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제58칙에서는 “당시 사람이 이 말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제59본칙에서는 “말을 하자마자 이는 간택입니다. 스님은 어떻게 사람들을 위하겠습니까?” 하는 승려의 질문에 대해 각각 “나도 알지 못한다”(제2칙), “천상천하 유아독존”(제57칙), “'지도무난 유혐간택'을 말할 때마다 분간해서 말한 적이 없다”(제58칙), “지도무난 유혐간택”(제59칙)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조주는 “지도무난 유혐간택”을 사구에서 활구로 전환시키고 있다. 우리들은 사구를 활구로 드러나게 하는, 조주와 승려 간의 문답을 읽어 가는 동안 단순히 이해하는 데 그치고 있었던 “극도무난 유혐간택”이 간택(簡擇)과 지도(至道)의 상대적 관계를 나타내면서도 이 말 자체가 무의미의 활구로서 이러한 상대적 관계를 초월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증득의 길로 인도된다.


In the Red Cliff Record[碧岩錄] we can see four Gongans related to Joju's teaching as to the aphorism “The supreme Way is without difficulty, just avoid discrimination”. These Gongans are based on the 2th case[本則], the 57 case, the 58 case, and the 59 case. All these Gongans begin with mentioning “The supreme Way is without difficulty, just avoid discrimination”.
The monks' questions are “Since you are not in clarity, what do you preserve?” in the 2th Case, “Since you don't know, why then do you say you are not in clarity” in the 57th, “What is not discriminating?” in the 58th, and “As soon as there are words spoken, this is discrimination. So how do you help people?” in the 59th. Joju's answers are “Even I don't know”(2th), “In the whole universe I alone am the honored one”(57th), “Once someone asked me, and I simply couldn't explain for five years”(58th), “It's just this: The supreme Way has no difficuties. Just avoid discrimination”(59th). By answering the monks' questions respectively, Josu is turning “The supreme Way is without difficulty. Just avoid discrimination” as a dead phrase [死句] into that as a living phrase[活句]
While we're reading the question and answer between Joju and a monk, the aphorism “The supreme Way is without difficulty, just avoid discrimination” which we just understand through our intelligence at once represents the negativity-based relationships between discrimination and the supreme Way and transcends them revealing itself as the living phrase of nonsense, in the course of which we ends up being immediately led to attaining the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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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스토아학파와 초기불교의 욕망과 감정 이론

저자 : 이찬훈 ( Lee Chan-h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3-194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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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철학과 불교는 인간이 겪는 근원적이고 절박한 고통을 해결하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인생 그 자체를 문제 삼았던 가장 실천적인 철학에 속한다. 스토아철학과 불교는 인간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욕망과 감정에서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던 점에서 그 지향점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욕망과 감정에 대한 스토아학파와 초기불교의 이론을 자세히 살피고 그 특징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갖고 있는 의미와 문제점도 검토함으로써, 진정으로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가 욕망과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가를 논해보고자 한다.


Stoic philosophy and Buddhism are among the most practical philosophies that have questioned life itself in that it seeks a way of life to solve the fundamental and desperate sufferings of human beings and to live truly happy. Stoic philosophy and Buddhism can be said to be in the same direction because they found the source of human suffering in desire and feelings and searched for a solution. This paper examines the Stoic and early Buddhism theories of desires and feelings and compares their characteristics. And by examining their meanings and problems, we will discuss how we must deal with desires and feelings for a truly human and happ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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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마경』의 불이사상(不二思想)을 통해 본 전쟁과 평화관(平和觀)

저자 : 윤성문 ( Yoon Sung-mun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5-21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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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모든 차원의 비폭력을 뜻하는 말로 아힘사가 쓰이고 있으며, 불교적인 평화의 가르침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모든 경우에 아힘사가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현대사회는 과거의 재래식 전쟁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삶 모든 면에서 전쟁을 볼 수 있으며 매순간 평화가 깨지며 전쟁으로 돌입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전쟁이란 한쪽이 추구하는 욕망이 다른 쪽의 욕망과 충돌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한쪽은 다른 쪽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기 쪽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려 한다. 여기에서 전쟁을 비롯한 온갖 투쟁이 발생하여 중생들의 심리적 불안과 전쟁상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마경』에서 설하는 불이사상은 일방적인 한쪽의 자비이거나 포기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대립하는 양자의 해체를 통해 평화를 구현하고자 한다. 대립하는 둘의 자기해체, 즉 공성을 구현하는 것에 의해 양자는 평등성으로 회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양자 모두의 텅 빔은 역설적으로 양자 모두가 절대긍정으로 돌아옴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부정에 의해 상호간의 대립이 사라진 자리에 각자 새로운 존재로 회복되는 절대긍정의 관점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행을 실천한다면, 경제ㆍ무역 등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와 미래의 대치상황을 해결해 갈 수 있는 희망의 빛줄기를 비출 수 있으며 궁극의 평화와 안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Ahimsa is used to mean nonviolence on all levels and is widely used as a teaching of Buddhist peace. However, it is my view that ahimsa can not be regarded as applied in all cases.
In particular, modern society can not see peace through past conventional wars but wars in all aspects of life. At the same time, every moment, peace breaks down and comes into the form of going into war. Indeed, in every way modern people are in a state of war. War is caused by a conflict of one's desires with another's desires. And the one denies the other's existence and tries to attract it to his side.
In this regard, the idea that all beings are one in the Vimalakirti Buddhist elder does not mean biased toward one side. This is not a way of one-sided mercy or giving up, but an implementation through self-deconstruction between two opposing bases. Both can be restored to equality by implementing self-dissolution or realizing the property of emptiness between opposing beings.
The emptiness of both parties paradoxically means that the opponent, who is the target of both parties, returns to the affirmative. When all the other parties are accommodated in a full state, the two parties can establish a new relationship with the other party, where the opposition has vanished due to self-denial. Through this, it can be established that each is restored to a new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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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말나식과 함께 작용하는 심소법 고찰 - 대수번뇌를 중심으로 -

저자 : 김명우 ( Kim Myung-woo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9-24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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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5위백법으로 나눈다. 이것을 크게 나누면 5위, 즉 심법(1), 심소법(51), 색법(11), 심불상응행법(24), 무위법(6)이다. 자세하게 나누면 100개이다. 이중에 마음[식]은 다시 주체적인 측면인 심왕과 부수적 작용인 심소로 나눈다. 심왕은 8가지(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이다. 심소는 51가지이다. 이중에 번뇌는 근본번뇌(6), 수번뇌(20)로 나눈다. 이 글은 수번뇌 중에서 대수번뇌의 본질과 작용을 밝히는 것이다. 번뇌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시끄럽게 하고 어지럽게 한다. 다시 말해 번뇌는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러므로 번뇌를 제거해야 우리는 편한 삶을 살 수 있다. 특히 대수번뇌는 미세하게 말나식과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제거하기도 힘들다. 대수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번뇌의 본질과 작용, 즉 그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우선 대수번뇌는 번뇌 중에서 유일하게 의식 및 말나식과 함께 작용한다. 말나식은 염심[불선과 유부무기]이다. 그러므로 말나식과 작용하려면 대수번뇌도 염심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그리고 7가지 종류의 대수번뇌인 도거와 혼침, 불신, 해태와 방일, 실념, 산란의 본성과 작용에 대해 여러 유식논서[유식삼십송석, 대승아비달마잡집론 등]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도거는 '과거의 즐거운 경험을 떠올려 마음이 적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며, 행사와 사마타[지]를 장애하는 것을 작용으로 삼으며', 혼침은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며, 경안과 비파사나[관]을 장애하는 것을 작용으로 삼는다'고 정의했다. 불신은 '진리를 알지도, 삼보를 좋아하지도, 능력을 바라지도 않아 마음이 더러운 것을 본성으로 하며, 믿음을 장애하여 게으름의 의지처를 작용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리고 해태와 방일은 게으른 것이다. 해태는 '선을 닦고 악을 끊는 것에 게으른 것'뿐 만 아니라 악을 열심히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방일은 '더러움을 방지하고 깨끗함을 닦는 것에 게으른 것이며, 번뇌로부터 마음을 방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실념은 '과거의 경험을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본성이며, 기억을 장애하고 산란의 의지처를 작용으로 삼는다'고 정의했다. 산란은 '마음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마음을 확산하는 것]이 본성이며, 바른 사마디를 장애하여 악혜의 의지처를 작용으로 삼는다'고 기술하였다. 그리고 산란은 구체적인 대상이 정해지지 않는 것이 도거와 다르고 하였다. 더불어 도거 등이 어떻게 번뇌가 되며, 어느 근본 번뇌에서 파생하였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직해』는 『성론』의 입장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주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잡집론』, 『삼심송석』의 주석 내용은 거의 동일하였다. 이를 통해 호법과 안혜의 심소에 대한 해석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The vijnapti-matra divides the existing sarva-dharma into five-step and one hundred-dharma. This is largely divided into five-steps: citta-dharma(1), caitta-dharma (51), rupa-dharma(11), citta-asamyukta(24) and asamskrta-dharma(6). It is 100 pieces in detail. Mind[vijnana] is again divided into subjective aspect citta( mind-king) and incidental action caitta(mental-factors). citta(mind-king) is eight (caksur-vijnanaㆍsrotavijnanaㆍghrana-vijnanaㆍjihva-vijnanaㆍkaya-vijnanaㆍsad-vijnanaㆍmano-vijnanaㆍalaya-vijnana. There are 51 kinds of caitta. Of these, klesa is divided into mula-klesa(6) and upaklesa(20). This article reveals the nature and function of maha-upaklesa among upaklesa. klesa makes our body and mind loud and dizzy. In other words, klesa afflicts us. Therefore, we need to remove klesa to live a comfortable life. Especially, maha-upaklesa is difficult to remove because it works with mano-vijnana finely. To get rid of maha-upaklesa, we need to know the nature and function of klesa, ie, its mechanism.
First of all maha-upaklesa works with consciousness-vijnana and mano-vijnana uniquely among klesa. mano-vijnana is klesita-citta. Therefore, to work with mano-vijnana, maha-upaklesa also has to have the function of klesita-citta. And many vijnapti-matra writings [Tv, Mahayanabhidharma-samuccaya-vyakhya etc] about the essential and secondary properties of eight kinds of maha-upaklesa, auddhatya and styana, asraddhya, kausidya and pramada, musita-smrt, viksepa.
First of all, auddhatya 'takes the mind to avyupasama as the nature to recall the pleasant experience of the past, and acts as a disability to upeksa and samadhi', and styana is the nature of being free from the mind[akarmanyata], and acts as an obstacle to prasrabdhi and Vipassana Defined. asraddhya said, 'I do not know the truth, I do not like the tri-ratna, I do not want the power, I am the nature with the unclean mind, the disorder with sraddha and the idleness of laziness.' And kausidya and pramada are lazy. kausidya is 'lazy to wipe kusala and to break akusala', and pramada is 'lazy to prevent dirt and wipe cleanliness'. musita-smrti defines 'the fact that it is the nature that can not clearly remember the past experience, it interferes with memory and acts on viksepa's will.' viksepa stated that 'it is the nature to flow the mind in a worse way, and it interferes with the right samadhi and acts as a will of bad wisdom'. In addition, we looked at how kausidya, etc., became klesa and which derived from mula-klesa.
Through this, we can see that 『Jikhae(直解)』 was succeeded the position of 『Sungron(成論)』. On the other hand, the contents of the commentary on 『Mahayanabhidharma-samuccaya-vyakhya』, 『Tv』 are almost identical. This is an ideological difference between Dharmapala and Sthiramati's on cai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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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론서(肇論序)」의 주석(注釋) 연구

저자 : 조병활 ( Cho Byung-hwal )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간행물 : 동아시아불교문화 3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49-27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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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론』은 중국사상의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다. 중국불교역사의 매 시기마다 『조론』에 관한 주석서와 글들이 등장했다. 진나라(陳,557-589) 혜달(慧達)이 쓴 「조론서(肇論序)」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글은 『조론』을 체계적으로는 분석한 주석서는 아니다. 『조론』에 포함된 글들을 종합적으로 조망한 짧은 글이다. 「종본의」와 『조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초기의 글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나라 원강(元康)과 송나라 진수정원(晉水淨源, 1011-1088)은 각각 『조론소』와 『조론집해령모초』에서 「조론서」를 상세하게 주해(注解)했다. 송나라 늑담효월(泐潭曉月)도 「조론서」를 해설한 『협과조론서주(夾科肇論序注)』를 지었다. 이해력이 아주 뛰어났던 원강은 장안 안국사에 주석하며 중관(中觀)의 이치를 밝히는 글들을 지었다. 낭야혜각(琅琊慧覺)의 제자인 늑담효월의 생애를 알려주는 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불일계숭(佛日契嵩, 1007-1072)의 글을 모은 『담진문집(鐔津文集)』에 「여석문월선사(與石門月禪師)」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효월과 계숭이 친밀한 관계임을 알 수 있는 정도다. 송대 화엄학의 중흥조를 평가되는 정원은 『조론』과 『조론중오집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론집해령모초』를 1061년 전당(錢塘, 항주) 현성정사(賢聖精舍)에서 찬술했다. 원강의 『조론소』는 「조론서」에 대한 현존하는 최초의 체계적인 주석이다. 『협과조론서주』와 『조론집해령모초』는 송나라의 불교 상황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고는 원강·효월·정원의 생애를 조망한 뒤 그들이 「조론서」를 어떤 입장에서 풀었는지, 세 편 주석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Zhao Lun is a book that takes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flow of Chinese thought. Every time in the history of Chinese Buddhism, annotations and writings about Zhao Lun appeared. Preface of Zhao Lun written by Huida in the Chen Dynasty is one of them. This is not a systematic analysis of Zhao Lun. It is a short article that comprehensively looks at the articles included in Zhao Lun. It is noteworthy that it is the early writings in which the words Introductory Chapter and Zhao Lun appeared. YuanKang of the Tang Dynasty and JingYuan of the Song Dynasty commented Zhao Lun in the Annotation of Zhao Lun and Zhao Lun Ji Jie Ling Mo Chao respectively. LeTanXiaoYue of the Song Dynasty also wrote Jia Ke Zhao Lun Xu Zhu. It is relatively long among the three. YuanKang's Annotation of Zhao Lun is the first existing systematic commentary on Preface of Zhao Lun. It is noteworthy that XiaoYue's Annotation of Zhao Lun and JingYuan's Annotation of Zhao Lun inform the buddhist situation of the Song Dynasty. After reviewing the life of YuanKang, XiaoYue, and JingYuan, this paper intensively examined how they interpreted Zhao Lun and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three annotations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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