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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사학 update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education

  • : 한국교육사학회
  • : 사회과학분야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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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5-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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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2권0호(1978)~42권1호(2020) |수록논문 수 : 662
한국교육사학
42권1호(2020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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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조선총독부 학무국 조선인 관료 연구

저자 : 강명숙 ( Kang Myung-sook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2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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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학무국 조선인 관료의 규모와 인적사항을 정리하고 그 특성을 논의하였다. 1941년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근무한 조선인 관료 74명을 조사하고, 사무관 편수관 시학관 등의 조선인고위 관료 20명의 면면과 특징을 정리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유일하게 조선인 국장을 배출했고, 조선인 고위 관료와 조선인 관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서였다. 학무국 내의 과별 조선인 고위 관료 상황을 보면 학무과에는 조선인 고위 관료가 없었고, 편집과에는 장기 근무의 조선인 편수관이 1~2명 있었으나 1명은 시학관 겸직이었다. 사회과에는 제국대학 졸업 혹은 고등문관 시험 합격 등의 배경을 가진 학력 엘리트 조선인이 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1921년 이후 전문적 교육을 받고 풍부한 교육 경험을 가진 조선인 시학관이 매년 1명씩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고위 관료들이 조선인의 입장에서 조선 사정을 고려하며 정책을 실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 결과 영향력이나 파워가 없는 “양념용” 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해방 후에도 이들이 교육계에서 청산되지 않았음은 경계해야 한다.


This paper addresses the size and features of Korean educational bureaucrats in the Chosen Colonial Government General. It surveys 74 members of staffs who worked in the ministry of education in Chosen Colonial Government General until 1941 and examines the features of 20 high-ranking Korean bureaucrats such as deputy director. The ministry of education was the only ministry which had Korean heads and a relatively high proportion of its staff was Korean. As to high-ranking Korean bureaucrats in each department within the ministry, there was no Korean high-ranking bureaucrat in the department of academic affairs, one or two long-serving Korean editorial director in the department of editorial, one of whom is also academic supervisor(Sihakwan). In the department of social affairs, there were many promising Korean directors who graduated from Imperial College or passed the higher civil servant examination. Additionally, every year after 1921, there was one Korean academic supervisor(Sihakwan) who got professional training and had plentiful experiences in education. It is hard to say that Korean high-ranking bureaucrats considered the situation of their own nationality. However, it needs a precautious approach that they were not settled out even after the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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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의 '교육효적자(敎育效積者)' - 식민권력이 표창한 모범교원들 -

저자 : 김광규 ( Kim Kwangkyu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3-60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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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교원 포상 제도인 교육효적자 표창을 받은 교원의 면면과 교육공적을 통해 일제강점기 교원이라는 직업의 식민지적 특성을 살펴본 것이다. 교육효적자 표창 교원의 대다수는 공립초등학교 일본인 교원이었다. 이들의 대다수는 강점 전후에 조선에 부임한 초빙교원들로, 자신들이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조선 초등교육의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교육효적자 선장 제도는 우선적으로 이들에 대한 포상의 의미가 컸다고 볼 수 있다. 교육효적자 표창 교원의 교육공적에서 분량과 내용의 구체성이 높은 것은 실업·직업교육과 사회교육 활동에 대한 것이었다. 교원이 학교 안에서는 학생에게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을 시키고, 학교 밖으로 나가 졸업생과 지역민의 생활에까지 관여하는 것이 중요한 교육공적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사회교육은 식민권력에 민을 순응시킨다는 폭력성, 반민족성이 중첩된다. 따라서 교원의 사회교육 활동은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 위신을 높일 수 있는 교육적 헌신에서 식민권력에의 보조, 순종으로 왜곡되어 버린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교원이라는 직업에 씌워진 식민지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교원이 학식과 도덕, 전문성을 겸비한 교육자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갖추는 데 족쇄가 되었다.


This paper analyzes the educational accomplishments of the teachers recogniz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as exemplary teacher in colonial Korea and identifies their colonial characteristics. The vast majority of teachers who recognized as exemplary teacher were Japanese principals at public elementary schools. They thought that they had developed many elementary educations in Joseon through many difficulties and were proud of it. It was the social education activity that the specificity of quantity and content was high in educational accomplishments. That teachers do social education activities was not just that teachers had to concentrate on student education at school, but they also had to care graduates, parents, and locals outside of school. It was regarded as an important educational achievements for teachers to give labor to students in the name of practical education, to involve the lives of graduates and local people. That has shackled teachers' social standing as educators with knowledge, morals and professionalism. This is the colonial characteristics of teacher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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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대 전환기 한국 전통교육체제의 새로운 모색과 좌절

저자 : 박종배 ( Park Jong-bae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1-88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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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대원군 집권기, 개항기, 갑오개혁 이후의 세 시기로 나누어 한국 근대 시기에 전통교육체제가 어떤 변화를 모색하였고 그것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대체로 말하여 대원군 집권기의 경우 전통적 교육체제는 서원 철폐라는 위기 속에서도 성균관·향교 등 관학의 진흥이라는 기회를 동시를 맞았다. 하지만 아직은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명분에 치중하여 시세에 부응한 변화의 모색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1876년의 개항 이후 개화 정책이 본격화하는 1880년대의 경우 조선 정부는 육영공원(育英公院) 등 신식교육을 확대하면서도 『신설학교절목(新設學校節目)』 (1886) 등을 통한 전통교육체제의 개편을 병행하는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시기 경주부윤 정현석은 1882년에 향공보거법(鄕貢保擧法)에 따른 지방교육 진흥책으로 작성한 『향학조례(鄕學條例)』 를 통해 전통적 교육체제와 신학문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태학규제(太學規制)』 (1893)에서 볼 수 있듯이, 적극적인 개화 정책 속에서 조선 정부가 선택한 유학교육(儒學敎育) 진흥정책은 갑오개혁 1년 전까지도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러나 1894년의 갑오개혁 이후 조선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은 전통교육을 배제한 채 신학제(新學制)를 수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였고, 이에 따라 성균관·향교 등 전통적인 유학 교육기관들은 학제상의 의미를 상실한 채 점차 형해화해 갔다. 결국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성균관·향교 등 전통적인 유학 교육기관들은 학교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문묘 향사를 위주로 하는 교화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통적 교육체제를 지탱해 왔던 힘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한국 근대교육의 동력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This paper divided into three periods following the reign of Heungseon Daewongun, the opening of the port and the Gabo Reform, and looked at what changes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sought during the modern Korean period and how it was thwarted. Generally speaking, during the reign of Heungseon Daewongun,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had the opportunity to promote national school education, including Sungkyunkwan and Hyanggyo, even amid the crisis of abolishing Seowon. However, the attempt at the time focused on the protection of traditional learning and the expulsion of wickedness(衛正斥邪), and did not go as far as seeking changes that lived up to the times. In the 1880s, when the policy of enlightenment began in earnest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in 1876, the Joseon government promoted educational reform policies that expanded the modern education, including National Academy for the cultivation of the Elite(育英公院), while simultaneously reforming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through the Act on the Establishment of Schools(新設學校節目)(1886). The Local School Ordinance(鄕學條例), enacted and implemented by Jung Hyun-suk in 1882 as a measure to promote local education, showed the possibility of co-existence of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and new studies of the West. The Confucian school education promotion policy pursued by the Joseon government was still implemented even a year before the Gabo Reform. However, after the Gabo Reform in 1894, the Joseon government's education reform policy took a drastic turn toward establishing a new school system, excluding traditional education, and thus, traditional educational institutions such as Sungkyunkwan and Hyanggyo gradually lost their meaning to the school system. However, although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failed to convert to modern education, the power that had sustained it for a long time did not disappear but still served as a driving force for modern education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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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중국의 근대 학제 개혁

저자 : 이경자 ( Lee Kyung-ja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9-110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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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국의 근대 교육 개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학제개혁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대표적인 근대 학제로 시행이 된 임인·계묘학제(壬寅癸卯學制)임자·계축학제(壬子癸丑學制), 임술학제(壬戌學制)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아가 이러한 학제 개혁이 국내외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이고,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중국근대의 학제 개혁은 아편전쟁(阿片戰爭),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 양무운동(洋務運動), 변법자강운동(變法自疆運動), 청일전쟁(淸日戰爭) 등 내란과 외세의 침입으로 인해 서구의 앞선 기술을 도입하여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필요성에서 제기되었다. 이에 임인·계묘학제를 비롯하여 임자·계축학제, 임술학제가 완성되어 중국의 근대 교육 발전에 기여를 하였다. 학제 개혁을 통해 중국은 전통 교육에서 서양식 근대 교육으로의 전환, 신식학교의 설립, 중국 최초의 교육부 설치, 소학교와 여성 교육의 확대 및 교육 체제가 구비되었다. 이로써 중국 근대 교육의 발전을 촉진하고, 현대교육의 토대를 완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근대의 학제 개혁 과정이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전통교육의 과오나 장단점을 제대로 비판하여 계승하지 못하고 일본과 미국의 학제를 모방하여 중국의 상황에 맞게 안착시키지 못해 여러 갈등을 야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제도의 주체적 수용의 문제를 어느 범주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남기고 있다.


This paper focused on the reform of the school system and considered the background of the reform of the school system in order to understand how China's modern education reform works. Based on this, I looked at the renyin·guimao school system(壬寅癸卯學制) renzi·guichou school system(壬子癸丑學制), renxu school system(壬戌學制). I have thought about what the impact of the reform of the school system has on both domestic and abroad and what challenges are left for us now. The reform of the school system in China's modern was come out because of the need to save the country by introducing advanced technology in the West, as well as civil wars such as the Opium War(阿片戰爭), Taiping Rebellion(太平天國運動), Yang-wu movement(洋務運動), bianfazijiang movement(變法自疆運動), Sino-Japanese War(淸日戰爭). In this regard, the renyin·guimao school system as well as renzi·guichou school system, renxu school system were completed and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modern education in China. Through the reform of the school system, China was equipped with a transition from traditional to Western modern education, the establishment of a new school, the establishment of the first Chinese education ministry, the expansion of primary school and women's education and the education system. It has contributed to promoting the development of modern Chinese education and laying the foundation of modern education. However, if we look at the course of modern school system reform and its contents, We can find that we have failed to properly criticize and inherit the merits and demerits of traditional education, and have failed to settle within China by imitating the Japanese and American school systems. This still left us with the task of what category to allow the question of accepting the subjectivity of the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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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관무재 대거 정시 운영 연구: 『시예등록』을 중심으로

저자 : 이상무 ( Lee Sangmoo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1-13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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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시예등록』의 기사를 분석하고, 『시예등록』에 나타난 관무재 대거 문신정시와 유생정시의 운영 방식을 확인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시예등록』은 『속대전』이 정리되기 이전 시기의 관무재, 열무, 별시재, 별시사, 관무재 대거 유생정시 및 문신정시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으며, 특히 무과연구에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는 자료이다. 『시예등록』에 수록된 관무재대거 정시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당시의 관례에 따라 관무재의 대거(對擧)로 문신정시와 유생정시는 번갈아 가면서 시행되었다. 이는 후대에 규정이 확립되기 이전에 이미 이러한 관례에 따라 운영하고자 했다는 점을 『시예등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관무재의 일정이 촉박하게 결정되었으므로, 관무재 대거 유생정시도 촉박한 일정으로 결정되었다. 관무재나 관무재의 대거로 실시되는 문신정시의 응시 대상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관무재 대거 유생정시도 성균관과 한성 주변의 유생들을 주된 응시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문신정시의 경우 그 당시에는 관무재에 대거해서만 실시하였다. 이는 『시예등록』의 기사나 『승정원일기』의 기사를 확인해보면 당시의 문신정시 관련 기사는 관무재의 대거와 관련해서만 나타났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하면 『시예등록』의 관무재 대거 시험들은 점차 전례들을 만들어가면서 관례화되었고, 이러한 관례들이 『속대전』에 수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례를 기본으로 하되 상황에 맞게 변통하여 제도를 운영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articles of Siyedeunglok(試藝謄錄) and to check the operation of the Concomitant Munsinjeongsi(文臣庭試) and Yusaengjeongsi(儒生庭試) with Gwanmujae(觀武才). Siyedeunglok(試藝謄錄) is an important source of information on the specific operation status of Mungwa(文科) and Mugwa(武科) at 17-18th Century. Siyedeunglok(試藝謄錄) contains a wealth of data on Gwanmujae, Yeolmu(閱武), Byeolsisa(別試射), Byulsijae(別試才) and the Concomitant Munsinjeongsi and Yusaengjeongsi with Gwanmujae. We can confirm the following facts about Concomitant Munsinjeongsi and Yusaengjeongsi with Gwanmujae listed in Siyedeunglok(試藝謄錄). First, according to the customs at that time, Munsinjeongsi and Yusaengjeongsi were alternately performed with Gwanmujae. Second, since the schedule of Gwanmujae was determined tightly, the Yusaengjeongsi were also decided on a tight schedule. Third, in the case of Munsinjeongsi, it was carried out only with Gwanmujae at that time. In summary, the concomitant test with Gwanmujae listed in Siyedeunglok(試藝謄錄) have become more and more customary in the making of precedents, and these customs have been included in Sokdaejeon(續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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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동독과 북한의 학생교류사: 사회주의 형제국가 간의 문화·외교정책의 마지막 단계에서

저자 : 만프레드하이네만 ( Manfred Heinemann ) , 유진영 ( Jinyoung Yu )

발행기관 : 한국교육사학회 간행물 : 한국교육사학 42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5-154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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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즉 독일민주공화국 (German Democratic Republic, GDR)은 창설 직후 소련과 학생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동독은 1951년 6·25 전쟁 당시 사회주의 연대 캠페인 내에서 일방적인 방식으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학생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1952년에 북한의 첫 학생대표단이 동독 베를린에 도착했고 뒤이어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때까지 다섯 번이나 계속해서 학생대표단이 동독으로 갔다. 북한학생들은 이전에 해외생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학습 및 생활 여건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 후 처음 몇 년 동안 동독의 대학들은 대규모의 북한학생 그룹을 돌보아야만 했다. 본 연구에서는 동독 고등교육기관의 사료에 근거해서 1958년부터 1990년 동독의 붕괴까지 동독과 북한 간 학생교류의 실제와 종결까지의 과정을 제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동독 문화정책안에 숨겨진 교류에 대한 동기, 구조, 구상 및 그 결과를 제시하고자 한다.


After its foundation,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GDR) discussed first a student exchange understanding with the SOVIET-UNION and joined a socialist solidarity campaign with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KOREA (DPRK) during the Korean War in 1951. In 1952 a first group of about one hundred mostly male arrived in the GDR, followed in the coming years by additional “delegations”. As these students had no prior experience of living abroad, a heavy investment in learning and living conditions was required. This article discusses the period after and why the cooperation suddenly was discontinued in the 1960s. Based on first hand archival interior documentation, it gives insight into the mostly undiscovered conditions, motivation and ideological debates. It contributes to the experiences of non-successful cultural exchange-policy in general and within the Socialist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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