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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cultural re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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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975-6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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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36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170
문물연구
36권0호(2019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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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분 축조기법을 통해 본 창녕 영산고분군의 성격

저자 : 정인태 ( Jung In-tae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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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창녕 일대의 주요 고분군인 계성고분군, 영산고분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모두 100여 기 이상의 봉토분이 조성되어, 당시 이 지역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창녕지역 세 고분군의 축조기법을 비교해보면 축조공정, 하부 봉토 성토, 호석ㆍ주구, 묘제, 벽석 축조, 두향 등에서 영산고분군과 계성고분군의 상호 유사성이 높고, 매장공간, 복개 등은 영산고분군과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 유사성을 띠고 있다.
5세기 중엽 이후부터 축조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이는 영산고분군 축조집단은 묘제, 두향, 매장주체부 축조기법 및 공통의 토기문화를 공유하는 점에서 계성고분군 축조집단과 동일한 정치체로 볼 수 있으며, 봉토와 매장주체부의 규모, 봉토 성토기법, 부장품 등을 통해 계성고분군 축조집단 내 유력 세력에 의해 조성된 고분군으로 볼 수 있다.
또 계성고분군과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은 5세기 대에 축조기법 상 관련성이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에 영산고분군과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의 수혈식석곽묘는 유사성이 보여 연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6세기 이후에는 교동과 송현동고분군과 계성고분군의 최상위 계층의 봉토분인 횡구식석실분에서 구조와 축조기법의 유사성이 보이고 있어 이 시기 두 축조집단 간의 관계도 주목된다.
따라서 5~6세기 창녕지역 세 고분군을 조성한 세력은 축조기법과 출토유물로 볼 때 지역 내 위계에 따라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here were Gyesung tombs, Yeongsan tombs, Gyo-dongㆍSonghyeon-dong tombs, which were major ancient tombs in Changnyeong in the 5th and 6th centuries. These tombs made more than 100 tombs. Therefore, Changnyeong's status was very high at the time.
A comparison was made of the method of building a mound tomb in the three tombs.
Yeongsan tombs has a lower ranking of tomb, scale of mound tomb, the soil-building technique, and burial goods than Gyeseong tombs. The construction group of Yeongsan tombs were separated from the construction group of Gyeseong tombs.
In addition, Yeongsan tombs had a similar burial space and stone building technique to the Gyo-dongㆍSonghyeon-dong tombs.
Meanwhile, in the 6th century, the construction techniques of the stone chamber tomb with horizontal entrance in Gyo-dongㆍSonghyeon-dong tombs and Gyesung tombs similar.
Therefore,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three groups shared the information of the techniques and methods for the construction of tombs.

2아라가야 토목구조물의 기술적 특징과 그 의미

저자 : 최경규 ( Choi Gyong-gyu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7-60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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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가 단계에 지배 엘리트의 무덤인 고총고분, 행정센터인 도성, 방어중심인 산성, 종교적 기념물인 신전과 사원, 재해로부터의 방어와 농경의 필수요소인 제방의 건축에는 당시 사회정치적 발전과 권력의 중앙 집중화 정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토목구조물의 조사 자료가 비교적 잘 확보된 아라가야를 대상으로, 축조 기술적 특징과 토목구조물에서 보이는 상호연관성을 살펴보고, 아라가야에서 토목구조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당시 최고의 토목공법이 사용된 거대 토목구조물인 말이산 고총고분, 가야리유적(전 아라가야 왕궁지), 안곡산성, 가야리제방의 축조에는 상호 공통된 토목공법이 확인되고 있는것을 확인하였다. 국가적 사업인 대규모 토목공사에 나타난 이러한 양상을 통해 동원된 기술자집단 또는 관리집단이 동일하였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백제 한성기 토성의 특징적인 토목공법인 토제가 말이산 고총고분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용된 양상을 통해 주변 선진토목기술의 적극적 도입을 위한 활발한 기술교류도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적 토목구조물을 축조하는 데에는 인구증가에 의한 노동력의 확보, 선진 토목기술의 축적 등이 필요하며 이를 운영ㆍ관리할 수 있는 체제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아라가야에서는 상기의 토목구조물이 5세기 후반 거의 동시기에 일률적으로 중심지에 배치되는데, 이때가 가장 강력한 국가적 역량을 보이는 시기로 생각된다.


In the ancient state stage, the tombs of the ruling elite, the capital city, the fortress, the defensive center, the mountain fortress, the religious monument, a shrine and the temple, and the construction of the embankment, which are essential elements of agriculture, implies the degree of social and political development and centralization of power. For Ara-Gaya, where the survey data of these civil structures are relatively well secured, the construction technical features and interrelationships shown in the civil structure were reviewed and the implications of the civil structure were reviewed in Ara-Gaya.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common civil engineering methods were found in the construction of the Mari-san Tomb, the Gaya ruins (formerly Ara-gaya Palace), Angoksanseong Fortress, and Gayari Embankment, a large civil engineering structure where the best civil engineering methods were used at that time. This aspect of the large-scale civil engineering work, which is a national project, could be assumed to have been the same for the mobilized technical or management groups. In addition, it was possible to estimate active technological exchanges for the active introduction of advanced civil engineering technologies in the Baekje Dynasty through the highly active use of the characteristic civil engineering method of earrthen a bank, which was made during the Hanseong period of The Baekje Dynasty. Building these national civil structures requires securing workforce by population growth, accumulation of advanced civil engineering technologies, etc., and stability of the system to operate and manage them is essential. In Ara-Gaya, the above civil structures are placed uniformly in the central area almost simultaneously in the late 5th century, which is thought to be the most powerful period of national capability.

3태봉국 철원도성의 축조기법과 공간구성

저자 : 심정보 ( Sim Jeong-bo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1-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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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896년 철원성에 도읍하였다가 898년 송악 발어참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901년에는 국호를 고려(高麗)라고 하였다. 그러나 903년 철원지역에서 새 도읍지를 선정하게 되었으며, 904년 7월에 청주 사람 1千戶를 사민(徙民)하여 철원도성에 살게 하고, 서울로 삼았다. 철원도성을 새도읍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청주 사람들의 이주가 부각된 것은 도성 마무리 공사에 청주인들의 역할이 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철원도성을 서울로 삼은 지 1년 만인 905년 7월에 궁예가 철원도성(鐵圓都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궁예가 철원도성에 도읍을 정하게 된 것은 고구려 고지(故地) 탈환에 만족하지 않고 후삼국을 통일하여 동방의 대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비록 왕건 일파의 쿠데타로 원대한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궁예의 이 야심찬 계획은 초기 국호인 고려를 계승한 태조 왕건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철원도성은 궁예가 꿈을 잃어버린 마지막 현장이기도 하지만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 역사적인 시작점이기도 하다.
철원 풍천원 언덕에 축조된 철원도성은 한반도의 중심에 입지하고 있으면서, 비무장지대(DMZ)의 남·북측에 거의 반분되어 걸쳐있음으로 해서 남북공동 발굴조사의 적격지로서 남북 화해무드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태봉국의 도성이 입지한 철원은 '비록 땅이 메마르지만 넓은 들과 낮은 산을 가지고 있어 두메 속에 하나의 도회지를 이루었다'는 『택리지』의 기록처럼 넓은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정은 궁예가 철원에 도읍하기 30년 전에 만들어진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명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궁예가 903년에 도읍을 선정하기 위하여 순행할 시에 이러한 입지적인 조건이 풍천원터로 결정하는데 우선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철원도성은 자연지형에 순응하며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설계되었음이 파악된다.
철원도성의 규모는 궁성 1.8㎞, 내성 7.7㎞, 외성 12.5㎞ 정도로 외성의 규모에 비하여 내성의 규모가 큰 편이라 하겠다.
철원도성의 초기 plan은 발어참성을 모본으로 하여 궁성과 내성으로만 구획된 형태를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내성의 동벽과 서벽 외곽에는 큰 내가 흐르고 있어 완축 당시의 자연해자로 활용하여 방어력을 높이려 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궁성은 풍천원 구릉의 가장 높은 평탄 대지에 평면 사다리형태로 축조되었다. 궁성의 동벽과 서벽 외곽에 자연 구(溝)가 형성되어 해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자연 해자의 지형적 영향으로 평면 방형 형태를 띠지 못하고 사다리형태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외성이 다시 축조되면서 '回'자형 3중 성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외성의 축조로 궁예의 야심을 펼칠 도성이 완성된 것이라 하겠다.
외성 남벽에는 3개소에 성문이 개설되어 있었을 것으로 파악되는데, 남서문에서 내성 남문을 거쳐 궁성 남문까지 거의 일직선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남서문이 정문으로 판단된다.
철원도성의 축조기법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의 철원도성에 대한 내용과 『철원의 성곽과 봉수』에 수록된 답사기의 내용에 모두 외성은 흙과 돌로 쌓았다는 것이다. 답사 시의 현장 사진을 보면 돌과 흙이 교대로 축조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축성 재료가 다른 돌과 흙을 교대로 펼치고 다진 것을 『화성성역의궤』에는 교전교축(交塡交築)이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전교축으로 축조한 성곽에 경주 월성, 충주 탄금대토성, 당진 성산리산성, 제주 항파두리성, 부분적이지만 강화 중성과 외성, 한산읍성, 경주읍성, 수원 화성이 현재까지 조사 결과 확인된 상태이고, 발해 상경성 외성과 팔련성 외성 남문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잠정적으로 철원도성도 교전교축에 의한 축조기법 범주에 넣고자 한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금속활자는 이미 궁예에 의하여 건립된 금서성(禁書省)에서 주조하였다는 것이다. 2015년과 2016년에 수습된 금속활자 5점은 모두 만월대 서부건축군의 남쪽부분에서 수습된 것으로 천덕전(天德殿) 등 궁예시기에 궁궐 전각이 있었던 구역이다. 앞으로 남북공동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철원도성의 정확한 규모 및 축조기법과 함께 궁성 내 금서성(禁書省) 범위에서 금속활자가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공동 발굴조사의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Gung Ye designated Cheolwonseong Fortress as the capital of his state in 896. He then moved the capital to Baleochamseong Fortress in Songak in 898 and named the kingdom Goryeo. In 903, he had again a new capital in the Cheolwon area and in July 904, he ordered 1,000 households in Cheongju to move into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which became the kingdom's capital. What is visible in the process of transferring the capital to Cheolwondoseong is the fact that Cheongju's residents moved into this new capital fortress. This would mean that those from Cheongju played an important role in completing the fortress. In July 905, a year after designating Cheolwondoseong as his capital fortress, Gung Ye moved the capital town to Cheolwon..
Gung Ye's designation of Cheolwondoseong as the capital fortress originates from his ambition to build a great nation in the East by unifying the Later Three Kingdoms of Korea; he wasn't satisfied with just regaining the former territory of Goguryeo. Gung Ye didn't realize this ambitious dream because of the coup staged by Wang Geon's faction. However, the dream ended up coming true through Taejo Wang Geon who served as a successor of Goryeo, the name Gung Ye had initially given to the kingdom. In short,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is the last place where Gung Ye lost his dream but at the same time, it is also a historic starting point where Wang Geon founded the kingdom of Goryeo.
Built on Pungcheonwon Hill in Cheolwon,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is located in the heart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Korean Demilitarized Zone, almost half of the fortress is on the North side, and its another half, on the South side. As a site fit for the two Koreas' joint excavation projects, the fortress has drawn attention as a symbol of inter-Korean reconciliation.
Cheolwon, where the capital fortress of Taebong State is located, is a large plain area. Indeed, Korean geography book Taekriji explains that “although it is a dry area, it has large fields and low mountains so it forms a town in an out-of-the-way mountain village.” Such geographical conditions are also made clear in the inscription of the statue of the Buddha at Dopiansa Buddhist Temple which was built 30 years before Gung Ye moved the capital to Cheolwon. These conditions would have played a major role in leading him to designate Pungcheonwon Hill as the location of the capital fortress when he visited the area in 903 to choose a site for his capital town. According to research, it is evident that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was designed to make the best use of the existing natural topography.
As for the size of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its palace wall is 1.8㎞ long, its inner wall, 7.7㎞ long and its outer wall, 12.5㎞ long. In other words, its inner wall is relatively long, considering the length of its outer wall.
Modeled after Baleochamseong Fortress, the initial plan of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would have included only its palace wall and inner wall. The inner wall has a large stream flowing outside the wall's eastern and western parts. After the completion of the fortress, this stream would have been used as a natural moat to strengthen the local defense. The palace wall was constructed in the shape of a flat trapezoid in the highest flat area of Pungcheonwon Hill. A ditch located outside the east and west of the palace wall serves as a moat. This natural moat's geographical form led the palace wall to become a trapezoid, not a square. Later on, an outer wall was built, resulting in a triple-layer fortress. The construction of this outer wall means the completion of a capital fortress symbolizing Gung Ye's ambition.
In the south of the outer wall, there would have been three fortress gates. The sites of the gates are connected in an almost straight line. This line starts from the southwest gate, passes through the south gate of the inner wall and reaches the south gate of the palace wall. This means that the southwest gate would have been the main gate of the fortress.
Construction techniques used for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are described in two books: Study of Treasured Ancient Sites in Joseon (segment on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and Fortress and Signal-Fire in Cheolwon (essay on a field trip). These references all agree that the outer wall of the fortress was built of earth and stone. The photos taken during the field trip show that stone and earth are piled alternately. Such a technique of spreading and hardening different construction materials like stone and earth is called gyojeongyochuk (filling and piling alternately). Korean fortresses built with this technique include Wolseong Fortress in Gyeongju, Tangeumdaetoseong in Chungju, Seongsanrisanseong Fortress in Dangjin and Hangpaduriseong in Jeju. Meanwhile, partial results of research confirm this technique in other fortresses: middle and outer walls in Ganghwa, town fortress in Gyeongju and Hwaseong Fortress. The technique is also found in the outer wall of Sanggyeongseong in Balhae and the south gate site of Palryeonseong's outer wall. It is difficult to draw a quick conclusion before excavation, but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would also have been built with the gyojeongyochuk technique.
What is also notable is the fact that Korea's first metal movable type was made at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called Geumseoseong which was established by Gung Ye. Five pieces of metal movable type that were collected in 2015 and 2016 all came from the southern part of the western building group of Manwoldae, main palace of the Goryeo dynasty. This is a zone that used to have royal palace buildings like Cheondeokjeon during the reign of Gung Ye. If the two Koreas conduct a joint excavation project, they could clarify the exact size and construction techniques of Cheolwondoseong Capital Fortress. They are also expected to discover metal movable type in the zone of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 Geumseoseong inside the palace wall. That is why an inter-Korean excavation project needs to be launched.

4영도 영선동(瀛仙洞) 궁형(弓形) 석축에 관한 소고(小考)

저자 : 李亨在 ( Lee Hyung-jae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7-102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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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 정유 양란 당시 왜군 보급선단 주체는 부산에 그 근거지를 두게 되었는데 그들의 주둔지가 부산성을 비롯한 추목도 단성(椎木島 端城)과 박문구 단성(迫門口 端城)으로 알려져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에는 당시 부산포를 왜 수군의 본영, 보급창, 소굴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각종 자료와 현지답사를 통해서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100번지에 위치하는 영선초등학교 주변 일대를 왜성으로 추정하고자 한다. 즉 영선 초등학교 운동장 서쪽 축대가 궁형성렬, 허튼층쌓기 축조수법, 상하 70°~75°의 기울기 등의 특징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남해안 일대에 축조한 왜성의 특징이 잘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 남해안에 분포하는 왜성의 환경과 입지를 비교해도 대차가 없기 때문이다.


From 1592 to 1598 Wae invaded Joseon. Accoring to the records at that time, there was Busan Waesung, Jasungdae Waesung, Chumokdo Dansung and Bakmungu Dansung in Busan and it was used as a supply base Wae Navy However, Chumokdo Dansung, and Bakmungu Dansung have not been identified. The location of Chumokdo Dansung is disussed in this paper.
According to the map of Busan which was produced in 1917, it can be seen that there was a Young seon dong Wansung the elementary school in Youngdo-gu, Busan.
Actually, there are castle wall to the western part of elementary school playground. In this paper, it is assumed that the are Young seon dong Wansung based on the construction technique, structural features and Round type castle wall.
This wall made 75° at an angle stone the pile is hutunchung.

5뉴 뮤지올로지 개념을 적용한 서부산 지역 문화자원 활성화 방안

저자 : 조선경 ( Jo Seon-gyeong )

발행기관 : 동아문화재단 간행물 : 문물연구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3-12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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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도시의 패러다임은 성장 위주의 개발 정책에서 문화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물리적인 환경 정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지역문화의 근원인 문화자원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실정이다.
연구사례로 선정한 서부산은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강 문화권으로 지역민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역사·자연·산업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 주도의 대규모 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문화자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문화자원이 파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으로 주목 받는 '뉴 뮤지올로지(New Museology)' 개념을 서부산 지역에 적용하여 문화자원을 보존 및 활용하고 지역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Today's urban paradigm is shifting from growth-oriented development policies to sustainable development that takes into account culture. However, there is still a lack of consideration for cultural resources, the source of regional culture, with focus on physical environment maintenance.
West Busan, selected as the research case, is a river culture area located at the mouth of the Nakdong River that maintains the unique lifestyle of the local people and is full of historical, natural, and industrial resources. However, due to the recent government-led large-scale development projects, cultural resources are being destroyed before in-depth understanding of them is achieved.
Therefore, this study intends to conserve and utilize cultural resources and seek ways to revitalize the region by applying the concept of 'New museology', which is attracting attention as a sustainable development plan, to the West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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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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