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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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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3회
  • : 1229-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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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47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76
유학연구
47권0호(2019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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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계 성혼의 가정교육

저자 : 진성수 ( Chin Sung-su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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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우계 성혼의 성장과정과 가학(家學)으로 전해진 도학(道學)의 계승,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언으로 쓴 편지에 나타난 우계의 가정교육을 검토한 것이다. 부모의 심리적 태도가 자녀의 도덕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연구에서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가정교육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밝혀진 후, 아버지의 역할은 '가정의 경제적 책임자'에서 '자녀의 능동적 양육자'로 변하고 있다. 자녀의 행동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적절하게 조절하며 미래지향적으로 훈계하는' 아버지의 역할은 한국사회의 가정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혼 우계가 자녀에게 남긴 20편의 편지는 오늘날 매우 의미있는 자료이다. 유언 형식으로 작성한 우계의 편지로 본 가정교육의 내용은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검소한 생활 강조이다. 우계는 자신의 장례와 아들의 혼례를 간소하게 할 것을 당부한다. 둘째, 가학으로서 도학의 계승이다. 우계는 부친의 가르침과 문헌(文獻)의 유풍(遺風)이 후손에게 전해지도록 가르치고 있다. 셋째, 자녀 개인별 격려와 훈계이다. 우계는 자녀들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맞춤식 훈계와 당부를 하고 있다. 넷째, 사대부로서 우국애민 실천이다. 우계는 치국(治國)의 책임을 진 사대부로서 국가의 장래와 백성의 안녕을 걱정하며 애민(愛民)을 강조하고 있다.


This paper examines Ugyae Seong-hon's upbringing at home reflected in his letter of will which he wrote in the face of life and death and unclear succession of the moral philosophy which was his familial doctrine. It is a widely known fact that parent's emotional attitude has direct impact on shaping children's morality. After a recent research found that the father's rearing attitude has a positive effect on education at home, the role of father is changing from 'economic breadwinner of family' to 'active caretaker of child'. The new role of the father being 'warmly encouraging, appropriately controlling and practicing future-oriented discipline' of the child's behavior can address the problem of household education in Korean society. In this regard, the 20 letters left by Ugyae Seong-hon have great value these days. The content on household education as a letter written in the form of a will can be summarized in four. First, it has an emphasis on frugality. Ugyae requests to hold simple funerals and weddings of his sons. Second, it is the succession of moral philosophy as familial doctrine. Ugyae requests that the teachings of his father and the spirit of the literature be passed down to his descendants. Third, it is encouragement and discipline catered to each individual children. Ugyae encourages customizing discipline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and conditions of each child. Fourth, it is the practice of patriotism and love of the people as a gentry. Ugyae emphasizes the affection towards the people concerned about the future of the nation and the well-being of the people as a gentry who should be responsible for governing of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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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상서관(尙書觀) - 난(亂)에서 치(治)로의 지향 -

저자 : 이은호 ( Lee Eun-h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42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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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를 기점으로 대량의 경학(經學)저작이 쏟아지고 학계의 다양한 학설이 양산되는데, 이는 성리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 아래 주자학에 비판적인 학자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정통 주자학과 비판적 주자학 양자 간의 중간에 위치하는 학자를 꼽자면 바로 미수(眉叟)허목(許穆, 1595∼1682)을 들 수 있다. 미수는 유가의 역사관에 착안하여 이 세계와 역사를 치(治)와 난(亂)의 이중구조로 파악하고 난을 극복하고 치를 지향하려고 부단히 고민하였다. 그는 고문(古文)과 육경(六經) 등 선진(先秦)의 유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성왕(聖王)의 시대의 유산인 『상서』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상서』독서기인 「서설書說」에는 치란(治亂) 이중구조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서설」은 총설 1조목, 치세 10조목, 난세 9조목 등 총 20조목으로 구성되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난세의 극복과 치세의 회복에 있었다. 그가 살았던 혼란의 17세기 조선을 극복하기 위해 군주의 수신(修身), 관제(官制)와 인재등용, 덕치와 예치 그리고 형벌(刑罰) 등 4가지를 제시하였다.


Beginning in 17th century, Confucian classics started to flood and various theories of academia were published. This is related to the emergence of the scholars who are critical about Neo-Confucianism. Though their critics were all based on understanding of Zhu-xi. It is Misu(眉叟) her mok (許穆, 1595-1682) who stands between classic Zhu-xi and critical Zhu-xi. Misu understood the world and history as dual structure of governance and confusion based on Confucianism's historical view. He concerned a lot to overcome the confusion and aim at order. He is considered to have been interested in the study of Pre- Qin such as ancient texts and the Sixth Classics. Especially, he was interested in the 《Shangshu》, a legacy of the sage king era. His book review of the 《Shangshu》, the 《Seoseol》reveals his world view of dual structure between governance and confusion well. 《Seoseol》is consisted of 20 articles. Except for general review of article 1, it is consisted of 10 articles, records of peaceful times and 9 articles, records of turbulent times. His ultimate goal was to overcome the confusion and stabilize the world. In order to overcome the turbulent 17th century Joseon, he suggested the four things: the moral, the rule and recruitment of the talent, the virtue and manner, and the punishments of the mon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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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율곡학파 학자들의 『대학』 공부론 연구 - 부념(浮念)과 편념(偏念)에 관한 호론과 낙론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

저자 : 정연수 ( Jung Yeon-so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3-6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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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율곡의 『대학』 공부론을 기반으로 호론과 낙론 학자들이 부념(浮念)과 편념(偏念)에 관한 『대학』 공부론을 어떻게 전개하고 있는지 사상사적 맥락에서 살펴 보았다.
호론과 낙론 학자들은 악념을 제거하는 성의 공부 이후에 부념을 다스리는 정심 공부와 편념을 다스리는 수신 공부까지 이루어야 성인의 마음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율곡의 『대학』 공부론을 발전시킨다. 다만, 부념을 다스리는 정심 공부를 정시(靜時)로 보는 호론 학자들의 주장을 낙론 학자들이 비판하면서 『대학』 공부론에 관한 논쟁이 전개된다.
호론 학자들은 대체로 『대학』 정심장에 제시된 성찰의 방식이 동시(動時) 상으로 나아가 사려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부념에 해당하는 네 가지 병통의 기미가 있다는 것을 포착하자마자 그 즉시 놓아버리는 것으로 요약되기 때문에 『대학』의 정심 공부가 마음의 본체를 존양하는 정시(靜時) 상의 공부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낙론 학자들은 대체로 『대학』 정심장에서 말하는 심(心)은 마음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정시(靜時)의 미발심(未發心)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심 공부를 동정(動靜)을 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율곡은 부념을 가볍게 비추어보자마자 그 즉시 놓아버리는 공부(輕輕照管·輕輕放退)와 같은 맥락에서 이연평의 미발체인(未發體認) 공부를 논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호론 학자들과 같이 부념을 다스리는 정심 공부를 정시(靜時)의 미발 공부로 분속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율곡이 정심 공부를 미발과 이발을 아울러 존양과 성찰을 함께 논한 측면에서 보자면, 낙론 학자들과 같이 정심 공부가 동정(動靜)을 겸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도 정시(靜時)의 공부가 있다는 것은 호론이나 낙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다만, 호론 학자들이 대체로 『대학』의 정심 공부 자체를 『중용』의 미발 공부로 이해한다면, 낙론 학자들 중에서는 『대학』의 정심 공부가 동시(動時)에 해당하지만 체용일원(體用一源)의 논리에 의해 미발 공부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율곡학파 학자들 사이에서 부념을 다스리는 정심 공부와 편념을 다스리는 수신 공부에 관한 문제는 단순하게 부념과 편념을 다스리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학』과 『중용』을 하나의 공부 체계로 이해하는 논의로 발전된다고 하겠다.


In this thesis, based on Yulgok's theory to study “Daehak”, it was examined how scholars of Horn and Nakron developed the theory to study “Daehak” regarding Bunyeom and Pyeonnyeom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ideas. The scholars of Horon and Nakron developed Yulgok's theory to study "Daehak" arguing that one could fully recover a saint's mind only after studying Seongeui(誠意, sincerity) to get rid of Aknyeom(惡念, an evil intention), Jeongsim(正心, an upright heart) to control Bunyeom, and Susin(修身, moral training) to control study and Pyeonnyeom. Yet, as scholars of Nakron criticized Horon scholars' argument considering the study of Jeongsim to control Bunyeom as Jeongsi(靜時, calm time), the controversy over the theory to study "Daehak" developed.
The scholars of Horon generally insisted that because the method of Seongchal(省察, introspection) suggested in “Jeongsimjang(正心章, Chapter of Upright Heart)” of “Daehak” was not going into Dongsi(動時, dynamic time) and fathoming with Saryeo(思慮, consideration), but releasing it at the very moment of catching the indication of four troubles relevant to Bunyeom, the study on Jeongsim in "Daehak" should be the study of Jeongsi(靜時, calm time) for Jonyang(存養, developing good nature) of the main part of mind. On the other hand, the scholars of Nakron mostly contended that because Sim(心, mind) discussed in “Jeongsimjang” of “Daehak” referred to the whole mind and was not limited to Mibalsim(未發心, mind not manifested yet) of Jeongsi(靜時, calm time), the study on Jeongsim should include Dongjeong(動靜, movements).
Yulgok once commented on Lee Yeon-pyeong(李延平)'s study on Mi-bal-che-in(未發體 認) in the same context of the study methods of release at the very moment of light reflection(輕輕照管·輕輕放退). In this respect, study on Jeongsim to control Bunyeom can be separated and belong to the study on Mibal of Jeongsi(靜時, calm time) as the scholars of Horon did. On the other hand, from the aspect that regarding the study on Jeongsim, Yulgok discussed both Jonyang(存養, developing good nature) and Seongchal(省察, introspection) with Mibal(未發, not manifested) and Yibal(已發, already manifested) together, it seems to have no problem to think of Jeongsim as the study including Dongjeong(動靜, movements).
There were no different opinions between the scholars of Horon and those of Nakron regarding that there was study of Jeongsi(靜時, calm time) in “Daehak”, too. However, while the scholars of Horon usually understood the study of Jeongsim in “Daehak” itself as the study of Mibal in “Jungyong”, some scholars of Nakron thought that even though the study of Jeongsim of “Daehak” corresponded to Dongsi(動時, dynamic time), it included the study on Mibal because of the logic of Che-yong-il-won(體用一源). It can be said that the discussion over the study of Jeongsim to control Bunyeom and the study of Susin to control Pyeonnyeom were not limited to the proposal of the methodology to just control Bunyeom and Pyeonnyeom, but developed into the understanding of “Daehak” and “Jungyong” as one system of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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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양명학은 괄목할만한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양적으로 팽창한 만큼이나, 질적으로도 우수한 결과를 이루어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1995년, 한국양명학회 창립 이후, 한국양명학 연구는 ①조선에 양명학이 유입되는 시기, ②한국양명학의 특징 또는 정체성 찾기, ③하곡 정제두의 사상 또는 그 주변의 자료 탐색, ④강화양명학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양명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외의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거론해 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것은 한국양명학 연구가 그만큼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글은 한국양명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재고할 만한 문제의식을 단편적으로 엮어 보았다. 또 필자는 '하곡학'이나 '강화양명학'에 대한 연구로부터 벗어나, '포스트-하곡학'과 '포스트-강화양명학'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거론하였다. 이것은 한국양명학을 연구함에 있어 그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고에서는 성호학파 가운데 '성호좌파'의 유자들이 양명학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또는 양명학과 서학은 어떠한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언해보았다. 이외에도, 과거 한국에서의 양명학 연구가 지지부진했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물론 이 부분은 한국양명학 연구의 자료, 전거(典據)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제시함) 등,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나열해 보았다.


In the meantime, Korean Yang-ming Studies has achieved remarkable research results. However, it is necessary to reflect on whether the results have been as good as those that have been quantitatively expanded.
In particular, since the foundation of the Korean Yangmyeong Society in 1995, the study of Korean Yang-ming Studies has mainly been conducted in the period of the inflow of Yangmyonghak into Joseon, in search of the identity of Korean characteristics, in search of data on the ideas or surroundings of Hagok-Jeongjeongdu, and in Ganghwa- Yangmyonghak. However, there is now a need to address a variety of problematic ideas in studying Korean Yang-ming Studies.
This is proof that there is so much accumulation of research in Korean quantum medicine. In the course of studying Korean quantum science, the paper presented at least a fragmentary idea of the problem that one might think about.
In addition, I explained the need for post-harvestology and post-hardened biomedical research, moving away from the field of research in Haagokhak and Ganghwa Yangmyeong. This is because it is necessary to broaden its horizons in studying Korean anthropology.
For example, this paper raised the question of why the "Left" members of the Sung Ho School advocated Yang Myung-hak, and what kind of functional relationship Yang Ming and Seo-hak have.
In addition, we have mentioned a variety of problematic ideas, such as where were the fundamental causes of the slow research in Korean quantum science (which, of course, suggests that there were problems with the previous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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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조와 다산 경학연구의 이론적 차이 고찰

저자 : 심순옥 ( Sim Soon-ok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3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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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후기의 경학 연구에서 이루어졌던 경학의 연구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17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 경학 체계는 강력한 체제 유지의 정통 이념으로 주자학이 강화됨과 외부로부터 도입된 새로운 사상 조류 즉 양명학의 확산과 서학에의 관심 등으로 도학·주자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대두하여 주자의 경학 체계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 및 체계의 재검토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였다 특히 정조 연간에는 중국에서 확장일로에 있던 고거지학(考據之學) 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 외에 서학과 좀 더 앞서 도입된 양명학에 대한 비판이나 극복 혹은 옹호 등이 대표적인 양상이었다. 이러한 학문적 격랑기에 경학사의 올바른 구성이나 경학의 연구 방법론에 대한 확립은 매우 중요하였다. 본고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주자학을 기본 텍스트로 하여 계승되던 조선 후기 경학사에서, 군주이면서 학자이기를 지향하고 '우문일념'(右文一念)으로 문치에 주력하였던 정조의 규장각에 소속된 학자들을 통한 저술과 출판 기능 등 정조의 경학 연구 방법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정조는 삼대 성왕들의 道가 공자를 거쳐 주자로 이어졌다고 여겼다. 따라서 주자를 존숭함이 바로 공자를 존숭함과 동시 유학을 지키고 정학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를 학문 정책의 방향으로 잡았으며, 후대로 올수록 학자들의 견해차로 인해 경전 원문에 대한 주석이 늘어나 논란에 휩쓸리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주석을 배제하고 경서의 원문만 정리한 문헌을 보급하고자 하였다. 또한 주자학에 대하여 다소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반 성리학적(反性理學的)인 입장에서 경학을 연구하였으며, 사고의 합리적인 면과 주석의 실학적인 성향이 짙은 다산 정약용의 경학 연구방향을 비교 검토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자 함을 목표로 하였다.


As for the condition of Jingxue(經學)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the interpretational system of Jingxue, which had played a basic role as the standard of universal values in East Asia, was being re-interpreted for the establishment of new study of loyalty(義理之 學). In addition, in the 17th century, it was reinforced as a traditional ideology to maintain a strong system, and as critical understanding of the study of Tao(道學) and Chu-tzu's doctrine(朱子學) became influential with the spread of a new ideology introduced from the outside, that is, study of Yangming(陽明學) and growing interest in the western study(西學), the necessity to re-interpret Chu-tzu's Jingxue(經學) system was emphasized and the movement to review the system were active.
In particular, the interest in Gogeojihak(考據之學), which was expanding in China during Jeongjo's days, increased. In addition, criticism, overcoming or advocacy of western study and the study of Yangming that had been introduced a bit earlier were the representative aspects. In this academically tumultuous period, proper construction of Jingxue history or the establishment of the research methodology of Jingxue were very important.
This research aims at examining Jeongjo's research methodology of Jingxue, such as writings and publications through the scholars belonging to Kyujangkak of Jeongjo, who was a king and also pursued to be a scholar, and focused on literary rule of 'Wumunilnyeom(右文一念)', in the history of Jingxue succeeded with Chu-tzu's doctrine as the fundamental text in the latter part of Joseon. Jeongjo thought that Tao(道) of three generations of sage kings was connected from Confucius(孔子) to Chu-tzu(朱子). Therefore, he believed that reverence for Chu-tzu was the very respect for Confucius and simultaneously, protection of Confucianism and support for Jeonghak(正學).
Moreover, he chose it as the direction for academic policy, and didn't just sit back and watch the situation where the increasing annotations on the original text of Inhaekyungjeon due to the differences in scholars' opinions in the coming generations brought about controversy, and tried to disseminate the documents in which annotations were excluded and only the original text of Confucian classics were summarized. Furthermore, he studied Kyunghak from an anti-Confucian position with a rather critical view on Chu-tzu's doctrine. This study also aims at examining common features and differences in Jeongjo and Dasan Jeong Yak-yong, who had strong reasonable ideas and tendency of Shilhak(實學), through comparativ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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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치는 무위(無爲)인가 유위(有爲)인가? - 정약용과 레뀌돈의 관점 비교 -

저자 : 르엉미번 ( Luong My Va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1-16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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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무위정치(無爲政治)에 대한 정약용과 레뀌돈의 관점을 살펴본 것이다. 무위(혹은 유위有爲)정치라는 주제는 덕치(德治)나 위정자의 수신(修身), 교화(敎化), 왕도(王道) 등과 같은 유교의 정치철학 속에 있는 근본적인 주제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이다. 애초에 공자(孔子)가 순(舜)임금의 이상적 정치를 '무위이치'로 여겨서 유교의 정치사상사에서 유학자들은 이러한 확언을 논의하지 않고 그냥 무위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과 의견이 많이 있었다. 주희에 이르러서 무위정치란 덕으로 정치를 함으로써 위정자(임금)의 수덕(修德)의 작위가 보이지 않아서 무위라고 불리고, 그 덕이 궁극적으로 이르면 백성에게 하는 교화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필요하지 않게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설명은 널리 시인되고 용납되었다. 비록 왕의 수신과 덕치에 강조하더라도 무위정치라는 이론에 있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제어되지 못함으로 실제의 정치에 폐단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정약용은 무위정치에 대한 성리학과 주희의 관점을 직접 살펴보고 비판하였다. 그는 무위가 현학과 청담의 폐단사술이지 성인의 진정한 이론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공자가 말한 무위는 인재 등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뿐이고 이상적 정치가 유위의 정치 즉 위정자가 끊임없이 분발한 행동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베트남 성리학자인 레뀌돈은 이상의 정치를 무위정치로 여기지만 무위정치에 대한 그의 해석은 유위정치에 대한 정약용의 해석과 같은 점이 많이 있었다. 즉 그는 위정자의 적극적인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므로 레뀌돈이 이해한 무위는 이상적 정치가 이룰 수 있는 상태뿐이지 정치를 하기 위한 어느 방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무위와 유위정치에 대한 정약용과 레뀌돈의 관점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사상적 사조의 속에 있더라도 두 학자 간의 유사점이 있으며, 또한 이러한 유사점은 두 학자의 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하고 진보한 점이라고 할 것이다.


In this paper the author considers some main contents of Jeong Yak Yong and Le Quy Don's thought on non-action politics (無爲政治). Non-action (or active (有爲) in contrary) politics is a topic closely connected to other key topics of Confucian political philosophy such as rule-of-morality (德治), self-cultivation (修身), cultural transformation (敎化), the way of King (王道) etc. Right from the beginning of Confucianism, Confucius confirmed that Emperor Shun's ideal politics was the non-action politics, therefore in the history of Confucian political philosophy, Confucian scholars did not consider that confirmation, they only discussed about what non-action politics was. However to that question, there were many different answers. From Zhu Xi downward, almost all Neo-Confucian scholars agreed that non-action politics was governing relying on the morality, in that situation the politician's self-cultivation could not be seen, hence it was called 'non-action'. And when that cultivation reached the extreme point, then the cultural transformation of people could automatically occur without intervention of other treasures or methods. However, although they emphasized the aspect of the king's self-cultivation and the rule-of-morality, the meaning of 'do nothing' in the 'non-action politics' cannot be perfectly rejected and it caused several evils in the real political life. In that situation, Jeong Yak Yong considered and criticized directly the thought of Neo-Confucianism and Zhu Xi on 'non-action politics'. He thought that 'non-action' was nothing but the heretical thought of the Mysterious learning (玄學) and the Pure discussion (淸談), not the genuine thought of Confucian sages. The 'non-action' that Confucius said was only the emphasis on the necessity of the engagement of talents in governing the country. The true politics must be active, meaning the unceasing activities of the politicians. In another respect, Le Quy Don - the Vietnamese Neo-Confucian scholar - although admitted that non-action politics was the ideal politics, as the orthodox Confucianism, but his interpretation of 'non-action politics' was similar to Jeong Yak Yong's 'active politics', that is to say Le Quy Don affirmed the positive activities of the politicians and their influence to the real political life.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non-action' in Le Quy Don's thought seems only a state that the ideal politics can reach to, not some method to control the politics. Considering two scholars' thought on 'non-action politics', we can see similarities of them, regardless of the fact that they were from different schools of Confucianism and different countries. And those similarities can be seen as the distinguishing and progressive features of their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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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의당 박세화의 한시에 대한 일면모 - 용하동, 용하구곡을 중심으로 -

저자 : 정경훈 ( Jung Kyung-hun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1-18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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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말 인물인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1834~1910)의 한시 작품을 고찰한 것이다. 박세화는 함경도 고원 출신으로 존중화(尊中華), 양이적(攘夷狄)과 숭정학(崇正學), 벽이단(闢異端)을 주장한 위정척사 계열의 학자이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충북 사군 지역으로 본거지를 옮겨 의당학파의 학단을 구성하였고 화서학파와 간재학파의 학설을 절충적으로 취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박세화는 충북 제천지역에 위치한 월악산 인근의 용하동에 용하구곡을 설정하고 이 지역을 근거지 삼아 문인들의 강학과 학단을 결속시켰다. 용하동, 용하계곡, 용하구곡 등은 박세화에게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면서 문학적 사유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박세화의 사상적 기저를 완성시키고 내수(內修)에 힘쓸 수 있는 사유 공간이었고 박세화에게 다양한 시재(詩材)를 제공해준 곳이기도 하다.
박세화는 이곳을 빈번하게 왕래하며 조수초목과 자연산수에서 나오는 감흥과 다양한 느낌을 묘사한 한시 속에 투영하였다. 용하구곡의 산, 물, 바위를 소재로 이루어진 이들 작품들은 대규모 유람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감흥을 표현한 결과물들이다.


This paper is a study of Park Se-hwa's Chinese poems. Park Se-hwa was born from Hamhung, North Hamgyong Province, and he gradually becomes south and formed a school of thought.
Park Se-hwa insisted on respect chinese culture(尊中華), denounce the foreign power(攘 夷狄), establish a correct study(崇正學) and reject heresy(闢異端). He is a scholar of the expulsion of wickedness family. He fasted for 23 days in a shameful incident in 1910, killing himself.
Park Se-hwa set up Yonghadong(用夏洞) near Wolaksan Mountain in Chungcheongbuk-do Province. Based on this area, he united the liberal arts and academia with the writers. Yonghadong(用夏洞) and Yonghagugok(用夏九曲) are special spaces for Park Se-hwa. This is where he created his philosophical foundation and provided literature. Park Se-hwa visited this place frequently and left behind various poems. The city is home to birds and animals, flowers and the beautiful natural environment of Yonghadong(用夏洞). The mountains, water, and rocks in Yonghadong(用夏洞) were also beautiful materials. Park Se-hwa is a Confucian knowledge and an excellent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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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현대 법치주의에서 공자 직(直)의 의미

저자 : 손미애 ( Son Mi-ae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7-20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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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현대 법치주의 사회에서 공자의 직(直) 개념의 유효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법치주의는 실정법을 중심으로 한다. 실정법이란 자연법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성문법·관습법·판례법 등을 말한다. 인간의 본성에 의거한 보편적 성격의 자연법과는 달리 실정법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어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다. 반면 자연법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 적용될 수 있는 영구불변의 법을 의미한다. 자연법은 실정법 위에 있다고 하여 실정법을 보충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정법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법치주의는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정법에 의거한 '법실증주의적 태도'는 법만능주의를 낳는 부작용을 야기하였다. 법실증주의 하에서 우리는 도덕적 직관 능력과는 상관없이 외부에 규정된 인위적 제도인 '법'을 따라야만 한다. 이 때, 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객관적 기준이 되지만, 악법일지라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문제점을 도출한다.
인간의 도덕 법칙에 집중한 공자의 사상은 현대 법치주의 사회에서 어떤 형식화 된 규제도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단적인 예로 공자는 '덕으로써 원한을 갚는 것은 어떻습니까?'라는 혹자의 질문에 '정직으로써 원한을 갚을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공자의 답변은 법과 제도가 아닌 도덕의 영역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공자의 직(直)은 실정법에 근간한 우리 사회에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까?


This paper tries to examine the validity of Confucius' Jik(直) concept in the Modern Rule of Law society. Modern rule of law centers on Positive Law. Positive Law is a concept that runs counter to Natural Law, such as the statute law, the customary law, and the case law. Unlike Natural Laws of universal character based on human nature, Positive Law is variable and relative with the involvement of Human will. On the other hand, Natural Law means permanent and invincible law that can be applied to all times and places. Natural Law's supplement the Positive Law by being above the Positive Law, and sometimes serve as a guide to the Positive Law.
Today, It can be said that the Rule of Law is within the scope of the Positive Law. However, the 'Legal Positivism attitude' in accordance with the Positive Law has led to the side effects of 'almighty law'. Under the Rule of Law, We must follow the Law, the artificial system prescribed outside, regardless of moral intuition ability. The Law is an objective standard that applies to everyone, but even Unjust laws produce problems that must be followed.
Confucius's idea of focusing on the law of morality seems to be impossible for any formalized regulation in a Modern Rule of Law. For example, Someone ask “Why don't you avenge your as a Virtue(德)?”, Confucius answers “Give you back the grudge as a honesty(Jik, 直).” Confucius' answer seems to be limited to the moral area, not law and system. Can Confucius' Jik(直) be legally binding on society based on the Positive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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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순자 '악론(樂論)'과 묵자 '비악(非樂)'의 내재적 동일성 고찰

저자 : 황성규 ( Hwang Seong-kyu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9-23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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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순자의 「악론(樂論)」편에 내재된 관점을 살펴보고, 묵자의 「비악(非樂)」편과의 상호 동일성 등을 살펴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순자가 보기에 '악(樂)'이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악한 기운을 멀리하는 것이며, 사회를 도리에 맞게 이끌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화시키는 등의 공능을 지닌 규범이다. 이에 반해 묵자는 굶주리고, 헐벗고, 지친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악'은 이로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반대하였다. 이처럼 양자 사이에는 매우 명확한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자와 묵자의 '악'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면 첫째, 양자 모두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심미적 기능으로서의 '악'을 긍정하고 있으며, 둘째 '악'이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타락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고, 셋째 예술로서의 '악'은 이상적 공동체 구현을 위한 수단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순자와 묵자의 '악'에 대한 관점은 상호 대립된 것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동일한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This article focuses on looking at the viewpoint inherent in Xun zi's 樂論(Music Theory) and examining the 非樂(Non-Music) Theory of Mozi.
Xunzi sees the "Music" refers to the ability to move the mind of a person away from the evil spirit, and to maintain and harmonize the order of society by bringing society to the common duty. On the other hands Mo zi was opposed to the “Music Theory” because he found that “Music theory” was not beneficial the people who lived in hungry, naked and weary lives. As such, there seems to be a very clear difference between the two.
But if you look at the claims of the concept of “Music and Non-Music Theories” there are similarities of the two. First, both affirm “Music” as an aesthetic function expressing human emotion. Second they both weary of “Music” losing its natural function and becoming corrupt. Third, they both shows that “Music”, as an art should be a means for the ideal community.
Therefore, they consider that the viewpoints of the Xun zi's “Music theory” and Mo zi's “Non-Music” are not mutually conflicting but have the same inten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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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동서양 심성론의 측면에서 본 왕양명의 양지(良知)의 자족성(自足性)에 대한 고찰

저자 : 황진수 ( Hwang Jin-soo )

발행기관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간행물 : 유학연구 4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3-26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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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명대의 유학자인 왕양명(王陽明)이 주장한 '치양지(致良知)'설의 '양지'가 그가 주장한 대로 과연 '자족성(自足性)'을 가지는 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자족성'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넉넉하여 충분한 성질'이란 뜻이다. 어느 것이 자족적이라는 말은 본래의 자신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다른 어떤 가치가 부가된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더 증대되지는 않을 정도로 완전무결하다는 말이다. 양명은 “성인의 도(道)는 내 본성 안에 자족한데, 예전에 사물에서 이치를 구한 것은 잘 못이었다” 라고 하고 “마음밖에는 이치가 없다(心外無理)”라는 심즉리(心卽理) 사상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가 만년에 주장한 '치양지'설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양명은 결국 천리(天理)가 곧 양지이며, 이 양지는 외부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구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덕성지지(德性之知)가 리(理)이며 견문지지(見聞之知)는 부차적인 것이라 하였다. 또 양지를 사물에 이르게 하면 그 사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즉 치양지만 하면 천하의 모든 이치를 다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그의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과 다른 견해들 밝혀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선진시대부터 신유학에 이르는 심(心)에 대한 여러 담론들, 특히 맹자, 순자, 이고, 북송오자, 주희 등의 주장과 청대 대진(戴震)의 주장, 그리고 서양 고대 철학자들인 프로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인간본성에 대한 시각을 함께 살펴보았다. 『전습록』상에서 양명이 말한 양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친구 고동교(顧東橋)와 제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점들도 검토하였다. 다산의 치양지에 대한 비판내용과 현대의 과학적 시각등도 함께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양지가 양명이 주장한 대로 스스로 넉넉하여 충분한 '자족성'을 갖추고 있다는 논리의 타당성이 부족함을 알 수 있었고, 아울러 동양과 서양의 지(知)에 대한 차별적 개념을 융합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연구의 필요성도 찾아 볼 수 있었다.


In this paper, we will look into whether the Intuitive Knowledge(良知) coming from Wang Yang Ming(renowned philosopher of Ming Dynasty)'s opinion of Extension of Intuitive Knowledge(致良知) really has the Self-sufficiency(自足性) as he claimed. The dictionary definition of 'self-sufficiency' says 'the state of being sufficiently enough', and this means that the addition of any other value to the one who does not possess that value will not increase one's own value further, in other words, 'perfectly complete and enough'. Yang Ming maintained "The Tao(道) of saint is self-sufficient with my human nature, and it was wrong for me to seek for Li(理) from outside things in the past", and "There is no Li outside of my mind."
This opinion has not changed much in his argument on the Extension of Intuitive Knowledge that he claimed in his later years. Yang Ming, after all, claimed that Intuitive Knowledge is very right Heaven Li(天理) and this cannot be obtained from the outside, and rather only should be sought for from the inner mind. Accordingly, the Intuitive of Virtue(德性之知) had been considered as Li by Yang Ming and Intuitive of Experience(見 聞之知) being as secondary. It is true that many different questions and opinions from other pre and post philosophers had been raised about his Extension of Intuitive Knowledge argument, that is by extending Intuitive Knowledge residing at his own mind to all other things on earth, he can finally realize and grasp all the Li's of those things.
Thus, this paper has reviewed a variety of discourse on mind nature(心性) from the Pre-Qin down to Neo-Confucianism period, especially focusing on those Mengzi, Xunzi, LiGao(李翶), five philosophers of Northern Song Dynasty and Zhuxi's. In addition, also reviewed the Qi(氣) thought of Daizhen who was a famous philosopher from Qing Dynasty period. Besides, looked at the views of human nature, such as the ancient Western philosophers Prothagoras and Aristotle. Summarized and analyzed the meaning of the concept of Intuitive Knowledge described in various different terms and thoughts at << Chuan Xi Lu(傳習錄) >>, and reviewed as well those questions raised by his own student GuDongQiao in response to his teaching. In addition, also investigated Dasan's critics on Yang Ming's Extension of Intuitive Knowledge argument and the modern scientific perspectives on this. As a result, we could find out Yang Ming's argument that Intuitive Knowledge(良知) has the self-sufficiency(自足性) leading to the ethical and moral life was lacking the validity basis, and the need for the convergence research about two different concepts of Knowledge between Eastern and Western wor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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