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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 of seo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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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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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6)~2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239
선문화연구
28권0호(2020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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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 나타난 포교관(布敎觀)과 그 지향점(指向點)

저자 : 차차석 ( Cha Cha-Seu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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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이하 『유신론』)에 나타난 포교관과 그 지향점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만해의 『유신론』은 조선말기 불교계의 개혁과 갱생을 위해 저술되었다고 평가 받는다. 이 책에 나타난 만해의 포교관은 근대세계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부응,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통찰,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사회성의 회복 등을 모색하고 있다. 논자는 먼저 이 책의 정확한 성격과 포교를 중시하게 된 배경을 그의 개혁적인 사상의 특징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서의 성격과 특징을 분석하고자 시도했다. 즉 당시의 국제정세와 국내 불교계의 현실 속에서 개혁과 포교가 지니는 상관성을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유신론』에는 포교라는 항목이 별도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였다. 이후 1931년 10월 ≪불교≫ 88호에 발표한 「조선불교의 개혁안」에서는 '경론의 번역과 대중불교의 건설'이라는 항목에서 포교에 대한 필요성이나 유관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1931년 8월 ≪불교≫ 86호에 실린 「불교 청년 총동맹에 대하여」1)라는 글에서도 '사회적 진출의 필요'를 포교와 연계해 강조하고 있다. 논자는 이상의 글과 여타 다른 자료를 참조하면서 만해가 지닌 포교관의 핵심, 포교의 방식, 포교를 통해 지향하고자 했던 불교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This article tries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Buddhist mission and its orientation described in Manhae's “Joseon Buddhism Yushin theory” (hereinafter referred to as “Yushin theory”) of Manhae. Manhae's “Yushin theory” is considered to have been written for the reform and rehabilitation of the Buddhist community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 Manhae's mission appearing in this book seeks a timely response to the transition to the modern world, fundamental insights into what Buddhism is supposed to be, and restoration of sociality through communication with the public. The writer first attempted to examine the exact nature of the book and the background behind its emphasis on missionary work from the characteristics of his reformist ideas. Therefore, an attempt was made to analyze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a representative study. In other words, it is an attempt to analyze the correlation between reforms and missionary work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of the time and the reality of the Korean Buddhist community.
Although the topic of missionary work was set separately in the “Yushin theory,” it merely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missionary work. Subsequently, in October 1931, “the Reform Proposal of Joseon Buddhism”, which was published in the No. 88 issue of the Buddhism, detailed the necessity and related details of missionary work in the section titled “Translation of Buddhist Scriptures and Construction of Public Buddhism.” The article, “About the General Alliance of the Young People of Buddhism,” which was published in the Buddhism's August 1931 issue, also demonstrated the importance of Buddhist missionary work in conjunction with the need for social advancement. Referring to the above articles and other materials, the writer tried to look at the core of Manhae's mission, the method of missionary work, and what Buddhist values he wanted to pursue through missionary work.
Preaching mission is still an important topic for contemporary global Buddhism. As the society is getting more complex, the method of missionary work has to be realized through a very complex method. Experts point out that it is necessary to find ways to constantly communicate with the public by converging education, welfare and culture. Given that, the significance of missionary work claimed by Manhae does not end with problems in the past, but is still app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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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한국불교의 현재 - 조계종을 중심으로 -

저자 : 김종인 ( Kim Jong-I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5-88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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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는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불교를 재해석하면서 근대사회에서의 불교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의 불교개혁 방안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 한국불교에서 실현되고 있고 또 일부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의 불교 재해석은 근대의 이성주의와 세속주의에 기초한 것이어서 오늘날 사람들의 상식적 사고와 감성과 궤를 같이하지만 전통불교를 계승하고 있는 조계종의 정체성과는 상충되는 면들이 있다. 그런데 만해의 개혁안의 현실에서의 실현 여부를 결정한 것은 조계종의 교리적 정체성과의 일치 여부가 아니다. 조계종은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종단의 방향 설정과 이를 위한 정책 실현에 있어서 승려의 결혼문제 외에는 만해의 불교개혁안에 제시된 것과 같은 여러 가지 개혁 방안들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시켜서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의 변화 속에서 임기응변적 대응을 하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근대적인 방향을 취하면서 만해가 제안한 안과 같은 것들을 실현시켰고, 어떤 부분에서는 필요한 개혁조치들을 취하지 않고 종단과 사원의 운영을 재래의 관습에 맡겨 두었다.


Manhae reinterpreted Buddhism with new philosophical view and suggested new direction to reform Korean Buddhism. Some of his reforming programs for Korean Buddhism have been realized but some have not. He viewed Buddhism with modern rationalism and secularism, which are in accordance with the common sense and sensitivity of the people in today. However, rationalism and secularism could be in conflicts with the religious identity of Jogye Order, which succeeds the traditional Buddhism. Nevertheless, what it determined whether the reform programs have been realized or not is not the correspondence of the religious identity with the reform programs. Except for the issue of monk's marriage, Jogye Order never had serious examination on the various reform plans, such as Manhae's reform plans, in terms of her religious identity, when she sets up direction and polices in order to adapt to modern society. Jogye Order always has taken extemporaneous responses to the rapid change of modern society. In this reason she practiced very modern reforms in some areas, but also continued to keep the outdated temple customs in many areas without refor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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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달마불식(達磨不識) 공안과 한국 선시(禪詩)의 관련성 연구 -만해용운과 설악무산의 작품을 중심으로-

저자 : 박종식 ( Baag Jong-Shi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9-132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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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수행 풍토에서 간화선 수행은 선의 종지가 전래된 이후, 중국화된 가풍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속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특히 근대이후 공안을 매개로 한 한국 문학 작품은 이러한 한국 선관의 특징을 반영하여 한국인의 미의식을 고취하였다. 달마불식의 공안이 문학적 작품으로 승화한 대표적 작품으로는 만해용운의 「알 수 없어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문학평론 위주의 만해 연구는 이러한 측면을 규명하는데 소홀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설악무산의 문학작품들에 대한 접근 역시 문학평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에 작품의 본령에 속하는 선적 해석에는 부족한 실정이었다.
본 연구의 기본 취지는 기존의 연구 경향들로부터 벗어나 만해와 설악의 문학작품 저변에 자리한 선관을 검토하기 위하여 '불식' 화두와 관련지어 재조명하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벽암록』과 『종용록』서두에 등장하는 '달마불식' 화두의 형성과정을 고찰하여 공안이 문학의 창작 동기로 작동할 수 있는 지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선어록의 독해 방법인 적기어법을 점검하고, 나아가 한국적 전개양상을 『선문염송』과 연결지어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만해와 설악의 문학작품을 통하여 그 성과를 측량할 것이다. 이는 『벽암록』이나 『종용록』 등의 중국 선전과 대조되는 『선문염송』의 찬술과 더불어 본격화된 한국 선수행의 특징을 만해와 설악의 문학성에서 규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시의 영역으로 표출되는 한국선관의 문학적 성과를 새롭게 조명하여 선문화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선관의 문학화로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문염송』에서 독자적 노선이 확립되어 전승된 한국선의 독자성은 만해에 이르러 뚜렷하게 확장되어 현대시의 성격을 지닌 시집 『님의 침묵』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설악은 전통적 선시의 영역을 시조의 형식으로 변형시키며 '한글 선시조'라는 독창적 분야를 개척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달마불식의 공안은 만해와 설악을 통하여 재가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해의 『님의 침묵』이후 만해 정신을 계승한 설악은 자신의 작품 창작 모티브가 『선문염송』에 있음을 밝히며 선수행을 생활의 미학으로 개진하고자 하였다. 특히 설악은 '불식'을 시제(詩題)로 사용하며 선의 수행을 한국의 문화적 전통으로 연결하여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The practice of Ganhwa - Seon(看話禪) in Korea Buddhism has been traced since the tradition of Seon was passed, trying to find its own attributes away from the Chinese tradition. In particular, Korean modern literary works, which have been used as a medium for Gong - An(公案), have inspired Koreans' aesthetics by reflecting these characteristics of Korean Seon. Manhae Yongwoon's < I Can't Know >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works sublimated by the Dharma Bulseek(達磨不識) as a literary work. However, the study of Manhae focused on literary criticism up to this point has been neglected to identify aspects related to Seon and Gong-An. In addition, studies on literary works of Seorak Musan were also conducted around literary criticism. Therefore, there was a lack of interpretation of Seorak Musan's work regarding the practice of Buddhism.
The basic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terpret literary works of Manhae and Seorak in relation to Buddhist practice. To this end, we reviewed Dharma Bulseek Gong - An that appears in Beokamrok(碧巖錄) and Jongyongrok(從容錄). In addition, it identified the point where Gong - An can act as a motivation for creating literature.
In addition, we reviewed Jeokgi - Eobeop(賊機語法), which is a method of reading Seon Text. In addition, the Korean development pattern will be reviewed in connection with SeonmoonYeomsong, and finally, the results will be measured through literary works of Manhae and Seorak. In addition to the publication of SeonmoonYeomsong, which contrasts with Chinese Text such as Beokamrok and Jongyongrok, I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Buddhist practice in Manhae and Seorak's literary works. Thus, it is to expand the horizon of research on Seon culture to the literary art of Seon-guan(禪觀) by newly illuminating the literary achievements of Korean Buddhism expressed in the realm of Seon poetry(禪詩).
In conclusion, the originality of the Korean Seon, which was passed down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an independent route in SeonmoonYeomsong, was markedly expanded to Manhae, and the poetry Nim's silence with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poetry was presented. In addition, Seorak transformed the domain of traditional poetry into a form of Sijo(時調) and pioneered the original field of Korean Hangeul Sijo. In this regard, it can be said that Dharma Bulseek Gong-An was reworked through Manhae and Seorak. Seorak uses SeonmoonYeomsong as the motive for the creation of his work. Also, it aimed to improve Buddhist practice into aesthetics of life. In particular, Seorak uses Bulseek(不識) as the title of the work and can be regarded as successful in literary imagery by linking Buddhist Seon practice with Korean cultural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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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초기불교 선정론에 있어서 케짜리 무드라의 재발견

저자 : 양영순 ( Yang Young-S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3-176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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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붓다를 정각으로 이끈 정통적인 수행은 중도에 기반한 사선성과 삼명통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본고는 정각이전 6년간 바라문의 선정과 당시 사문들의 단식고행 등의 수행이 붓다의 정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특히 대표적으로 『삿짜까에 대한 큰 경』에 나타난 '혀를 입천장에 말아 올리는 기법'이 동시대 불교 수행과 유사한 내용을 다수 담고 있는 『마이트 라야니야 우파니샤드』, 『비슈누스므리티』 등에 나타난다. 이 기법은 이후 신체를 단련하는 하타요가에서 핵심적인 중요 무드라, '케짜리 무드라'의 일상적이고 초기적인 형태인 '나브호 무드라'와 같은 것이다.
본고 Ⅱ, Ⅲ장에서 이 기법의 정의 및 방법,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케짜리비드야』, 『하타요가프라디피카』 등의 다양한 하타요가 문헌에서 자세히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Ⅲ장에서 초기불전에 나타난 각종 케짜리 무드라 관련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특히 Ⅳ장에서는 케짜리 무드라와 관련된 지식 호흡(쿰바카) 및 광명상 수습(샴바비무드라 관련)을 종합하여 초기불교의 선정론의 맥락에서 케짜리 무드라를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 초기불전에서 ① 케짜리 무드라라는 용어는 나타나지 않지만, 신체의 수습(kāyabhāvanā)으로서 혀를 입천장에 대면서 하는 명상이라는 점에서 초기 형태의 케짜리 무드라(= 나브호 무드라)가 분명히 나타난다. ② 방법은 숨을 참는 지식호흡과 병행하여 행하며, ③ 효능은 기아와 갈증의 극복이라는 신체적인 일 뿐 아니라 부정적 사유를 억제시키고 고요한 명상상태로 진입하도록 돕는 것으로서, ④ 이는 더 나아가 사유를 중지시키는 궁극적인 기법과도 관련되어 있다. ⑤ 또한 케짜리 무드라는 빛을 관상하는 광명상 명상의 전단계로서 기능하기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⑥ 마지막으로 구차제정으로 종합된 초기불교 선정론에 있어서, 케짜리 무드라의 내적 작용과 본질이 공무변처정 뿐 아니라 비상비 비상처정, 상수멸정에 이르는 주로 사무색정과 깊이 관련됨을 유추할 수 있다.


Generally, the orthodox practice that the Gautama Siddhartha to the First Enlightenment(正覺) is considered the four meditation(四禪) and the three super knowledge(三明), which is based on the midway(中道).
However, this paper focused on the possibility that the meditation(dhyāna) of Brahmana and fasting practice of Śramaṇa for the past six years effected on the Buddha's practice directly or indirectly. In particular, “Technique for placing the tongue on the palate” in Mahāsacchaka Sutta is shown in Maitrāyanīya Upaniṣad, Viṣṇusmṛti etc. These texts contain many similar contents to contemporary Buddhist practice. And This technique is the same as the “Nabho Mudra”, which is a daily and accessible version of the “Khecarī mudrā.” This mudrā is an important essential practice in Haṭhayoga.
In chapters Ⅱ and Ⅲ of this paper, I reviewed the Kecarī mudrā's definition, method, and physical and mental function of Kecarī mudrā in detail from the Haṭayoga literature. I analyzed the contents of Kecarī mudrā in various text, which is the Khecarīvidyā, Gorakṣaśataka, Haṭhapradīpikā, Geraṇḍasaṃhitā. Furthermore, in chapter Ⅲ, the contents of various Khecarī mudrā that appeared in the early Buddhist literature were analyzed. Particularly, in chapter Ⅳ, the breath-holding(kumbhaka, 止息) and the practice of light meditation (related to Śāmbhavī mudrā) were synthesized in the context of the early Buddhist Meditation theory.
As a result of this study, in the early Buddhist literature, Firstly, the term Khecarī mudrā does not appear. However, the easy form of Khecarī mudrā(= Nabho Mudrā) is apparent in that it is a meditation that puts the tongue on the palate as a physical practice(kāyabhāvanā). Secondly, The method is carried out in parallel with breath - holding. Thirdly, It has a physical effect that overcomes hunger and thirst, and also has a mental effect that suppresses thoughts and makes a calm meditation state. Fourthly, the technique has the efficacy to stop distracting thoughts. Fifty, it can be seen that it also functions as a preliminary stage of meditation of light(光明想), which contemplates light. Sixty, it can be inferred that in the early Buddhist meditation theory, the Nine - steps of meditation(九次第定), the function and essence of Khecarī mudrā are deeply 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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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암 인환(顥菴印幻)의 수행과 포교

저자 : 오경후 ( Oh Kyeong-Hwo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7-20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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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인환은 21세기 한국 현대불교의 대표적 인물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부산 선암사에서 원허 효선과 석암 혜수를 스승으로 출가하였다. 수행력과 덕화가 높았던 스승과의 인연은 인환이 평생을 수행자로 살아가는데 이정표 역할을 했다. 그는 출가 이후 통도사와 해인사에서 교학을 공부했고, 운허 용하와 함께 한국 최초의 불교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수행할 때는 참선과 기도 등을 통해 자신의 수행력을 재발견하고 향상시키기도 하였다. 일본고마자와 대학과 동경대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한국불교학의 현실과 발전을 위해 고민하기도 했다. 인환은 캐나다를 비롯한 미국 등에서 한국교포를 대상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조국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국제포교를 통해 한국불교를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참선수행과 대승경전을 중심으로 한 그의 포교활동은 교포들에게 자긍심과 함께 불교가 지닌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귀국 후 인환은 동국대학교 교수와 정각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퇴임 후 인환은 전국을 다니면서 일반대중을 상대로 참선수행과 교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인환은 평생을 수행자로 살다가 수행자로 갔다.


Hoam inhwan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figures of Korean modern Buddhism in the 21st century. He became a monk as a disciple of Wonheo Hyo-sun and Seok-am Hye-su at Sunam Temple in Busan. The relationship with the teacher, who had high performance and virtue, served as a milestone for Inhwan's life as a monk.
He studied teaching at Tongdo Temple and Haein Temple after monk, and also compiled the first Buddhist dictionary in Korea with Unhe Yong-ha. When performing in the Odaesan Destruction Palace(五臺山 寂滅寶宮), he also improved his performance through meditation and prayer. After studying at Komazawa University and Tokyo University in Japan and receiving a Ph.D., he also worried about the reality and development of Korean Buddhism. Inhwan has actively engaged in missionary work with Koreans in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His missionary work, centered on the true martial arts and the Buddhist scriptures, provided a chance for Koreans to reflect on Buddhism's meaning. After returning to Korea, Inhwan served as professor of Dongguk University and Jeong Kak-won. After his retirement, Inhwan traveled all over the country to teach the true martial arts and the Buddhist scriptures. Inhwan lived as a monk for the rest of his life, then went as a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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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근대 한국 비구니의 선수행(禪修行) 문화와 선맥 전승 연구

저자 : 임홍경 ( Im Hong-Gung ) , 홍상욱 ( Hong Sang-O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9-253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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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 비구니는 교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숫자나 역할이 비구에 비해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 지방의 비구 고승이 수행하는 산중에 딸린 암자를 중심으로 비구니들의 수가 차츰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비구니 수행도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비구니교단의 수행가풍과 수행환경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비구니의 역할이 교육, 도량불사, 포교,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크게 확대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종단내에서 비구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대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근대 비구니의 禪修行과 문화, 그리고 선맥전승을 살펴봄으로써 대한불교 조계종의 비구니 수행자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종단에 대한 비구니의 역할과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개화기 이후 일본불교가 조선에 밀려들어오는 가운데서도 한국 선불교는 중흥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불교의 전통이 왜색화 되어 가는 경향은 계속 되었다. 급기야 만공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고승들을 중심으로 교단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21년 선학원이 설립되자 선학원은 불교 전통을 지키는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당시 비구니들도 이러한 수행전통을 따랐으며 그 가운데 일부의 비구니들은 선학원의 안거에 함께 수선(修禪)하거나 불교전통 수호 운동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비구니 대중이 모여서 수행하는 도량이 차츰 설립되었는데 대표적인 비구니 암자로는 해인사의 비구니암자, 수덕사의 견성암, 월정사의 지장암, 대승사의 윤필암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비구니들은 수선안거의 전통과 가풍을 형성하면서 다수의 비구니가 비구 선지식에게 인가를 받음으로써 비구니도 선맥을 전승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비구니들은 선대 비구니의 수행가풍과 전승을 통해서 신심과 지혜를 얻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비구니로서 정체성 재확립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욱 수행 원력을 굳건히 하여 현시대에 적합한 수행정진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Modern Korean Bhikkhunis (Buddhist nun) were infinitesimal in their number and role as members of the Buddhist denomination. By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the number of Bhikkhunis gradually increased, which based on hermitages in the mountains developed by Bhikkhu monks in the provinces. As a result, the performance of the bhikkhuni gradually increased, and the practice asceticism style and training execution environment were established. However proper evaluation or treatment of Bhikkhunis had not been conducted within Buddhist organization even though their roles had been gradual expended in various fields such as education, Buddhist monks, missionary work, and welfare. Thus, this study considered Seon practice and its culture, to establish the identity of the bhikkhuni as member of the Jogye Order of Korean modern Buddhism and explored its role and progression in forward.
While Japanese Buddhism was flooding into Joseon after the enlightenment period, Korean Seon Buddhism has been great revival. However, there were tendency some part of Korean Buddhist tradition has become similar to Japanese Buddhism. So Mangong and other ancient monks arose the movement in order to protect the legitimacy of the Korean Buddhism, and Seonhakwon was established in 1921, which became center of Buddhist tradition in present.
In this background history, Bhikkhunis were also participated in this movement for Buddhist tradition. Under the guidance of a monk, the Seon training environement for Bhikkhunis has been developed and transmission of the SeonMac. Hermitages of Haeinsa Temple, Kyunseongam of Sudeoksa Temple, Jijangam of Woljeongsa Temple, and Yunpilam of Daeseungsa Temple are representative Bhikkuni sailors who are well equipped with the conditions of Seon Practice.
In era of diverse changing, it is hoped that Bhikkuni re-establish their identity, and need to get faith and wisdom through the training from the predecessors. Based on this, they will strengthen for their practice and have progress in various aspects in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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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년대 말 70년대 중기 법정(法頂)의 사회민주화 운동 연구(硏究) - 『영혼의 모음』에 나타난 원고를 중심으로 -

저자 : 여태동 ( Yeo¸ Tae-Do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6-296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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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법정스님(1932~2010)을 평가할 때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한 수필가로 인식한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초기 저작의 상당한 부분에서 사회민주화에 대한 글들이 보이고 이와 관련된 활동도 상당히 한 것으로 파악된다.
출가 후 1959년 해인사에서 정식 스님이 되는 비구계를 받을 때까지 경전과 참선수행에 매진했던 법정스님은 1958년 민주화 인사인 황산덕 서울대 법대교수를 만난다. 그로부터 당시 진보 사상지였던 ≪사상계≫지(誌)를 꾸준히 받아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운다.
또한 1960년부터는 통도사에서 운허스님이 주도했던 『불교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하면서 신문과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해인사와 서울을 오갈 때는 서울 선학원 앞에서 스님이 5.16 군사쿠데타로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회민주화에 대한 발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법정스님은 사회민주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표현했다. 서울생활에서는 봉은사 다래헌에 주석하면서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의 주필 겸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다양한 글을 썼고 ≪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함석헌 목사와 ≪사상계≫ 사장이었던 장준하 선생과도 교류를 하며 사회민주화에 투신하기도 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내용에 중점을 두고 법정스님의 최초의 수필집인 『영혼의 모음』에 보이는 법정스님의 사회민주화에 대한 글들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Social Democratization Movement of Ven. Beop - jeong from the late 1960s to the mid - 1970s, focusing on the manuscripts of Original Sound of Souls.
Generally, Ven. Beop - jeong(1932~2010) is recognized as an essayist who practiced the teachings of “Non-possession.” However, many of Beop - jeong's early writings reveal his ardent thought on the social democratization and his activities related to it.
From renouncing the secular life until becoming a formal monk at Haeinsa Temple in 1957, Beop - jeong worked hard on the Buddhist Scriptures and Seon (禪: meditation). Actually, a turning point in his life is to meet Hwang San-deok, a law professo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pro - democracy figure in 1958. Since then, he has steadily subscribed Sasanggye(≪사상계≫)”, which was a progressive magazine at that time, and it has developed critical views on the world.
In addition, since 1960, he participated in the “Buddhist Dictionary” compilation project led by Ven. Unheo at Tongdosa Temple, and he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newspapers and news. He continued to work for the project, coming and going to Haeinsa Temple and Seoul. At that time, he happened to watch a monk bleeding while meddling in the May 16 Military-Coup in front of Seonhakwon in Seoul. After experiencing that scene of accident, he offered a prayer for social democratization of Korea.
Through this process, Beop - jeong expressed his various ideas about social democratization. While staying at Daraeheon of Bongeunsa Temple in Seoul, he wrote diverse articles as an editor - in - chief and editorial writer of “Dae - Han Bulgyo”, which was the forerunner paper of “Buddhist Newspaper.” And he also worked for the journal of Ssialeui Sori(≪씨□의 소리≫), and kept good company with Pastor Ham Seok - hun and Jang Joon - ha. Jang Joon-ha was a president of the Sasanggye(≪사상계≫) and dedicated himself to the social democratization. Considering these points, I tried to analyze the writings of Ven. Beop - jeong's social democratization, focusing on his first collection of essays, Original Sound of Sou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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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옥관빈의 근대 중국불교혁신운동과 불자약창 설립 - 안창호 계몽사상과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

저자 : 박영환 ( Park Young-Hw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97-33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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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경계에 서 있었던 옥관빈은 독립운동가, 실업가, 불교개혁가, 불교거사로서 길지 않은 42년간의 생을 살았다. 스승 안창호의 영향 아래 신민회의 핵심 취지인 '신민(新民)'과 '자신(自新)', 즉 자력에 의한 신민을 수용하였고, 이는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상해망명 초기에 '여덕양행'설립에서부터 1924년 이슬람교에 가입해서 제기한 회교혁신운동, 1926년 불교에 귀의하여 태허대사를 도와 법원(法苑)을 설립, 「중국불교진흥책」을 통해 불교혁신과 계몽운동을 추진한 것에 이르기까지, 당시 시대정신인 신민·자신·혁신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그는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잡지 출간, 도서관 설립, 학교 설립 등 계몽운동을 주장하고 실행하였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1928년 『국민공론』잡지를 창간하고 5.4운동의 핵심정신인 '과학'과 '민주'를 주창하였다.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중생구제를 발원하며 제약회사인 '불자약창'을 상해에 설립, 중의약의 과학화를 선도하여 현대 중의약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도 결코 작지 않다. 그의 핵심정신은 멀리는 양계초 신민설, 자강, 계몽사상 등 신문화운동의 계승과 일정한 관계가 있으며, 가까이로는 안창호 신민·자강·자신의 계승이자, 5.4운동의 핵심이념인 과학·민주 정신을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Ok Gwan - bin, an independent activist, businessman Buddhist reformer, and Buddhist devotee who stood on the border between Korea and China, lived a 42 - year - long blue life. Under the influence of his teacher, Ahn Chang - ho, he accepted the core pursuits of the 'Shinminheo' which were 'progressive renewal of citizens' and 'self - renewal.' In other words, he accepted self - reliant renewal of oneself, and this became the motto of his life. From the establishment of the company, 'Yeodeok Yanghang' in his early years of Shanghai exile, the Islamic Reform Movement that was brought up again after he joined Islam in 1924, his return to Buddhism by helping Master Taixu to establish Bop - wen in 1926, to the promotion of Buddhist innovation and enlightenment through 「Chinese Buddhism Promotion Plan」, it is concluded that all of them were closely related to the ideas of 'progressive renewal of citizens', 'self - renewal', and 'The Innovation movement.' Therefore, he constantly practiced enlightenment movements, such as publishing magazines and establishing libraries and schools. Along with these, in 1928, he published a magazine called 'National Public Affairs' and advocated 'science' and 'democracy', the core spirits of the 5·4 Movement. Ok Gwan - bin's credit to contributing to the development of modern Chinese medicine by establishing the medical company Fo Ci in Shanghai through initiating 'Save sentient beings' (based on the ideology described in the earlier sentence) and by leaving the scientific development of Chinese medicine is never small. The foundation and core ideas of his ideology are distantly relatd to the succession of Yanggyecho Thought and closely related to the core ideology of the 5·4 movement, 'science' and 'democracy' that he practiced throughout his life, which is also the succession of Ahn Chang - ho's 'progressive renewal of citizens', 'self - strengthening' and 'self - renew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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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동화사 내원암 목조보살좌상 연구

저자 : 이희정 ( Lee Hee-J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간행물 : 선문화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37-38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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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팔공산 내원암(內院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산내부속 암자이다. 이 절은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와 '동화사사적비(桐華寺事跡碑)'에는 1626년(인조 4년)에 유찬(留贊)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1727 년 무월(霧月)이 중건하고, 일제강점기인 1937년 보월대사(寶月大師)가 삼창(三創)하였다 한다. 지금의 비구니 선원은 1958년 국일암 승려 장일(長一)이 원명과 이룬 것으로 동화사 내원암 목조보살좌상은 이때 인근의 폐사로부터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내원암 보살상은 머리에 높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당당한 신체에 근엄한 인상을 갖고 있으며, 천의식 착의법은 조선전기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옷 모습으로 17세기 전반 경상도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보살좌상이다. 이 상이 갖고 있는 얼굴과 전체적으로 긴 신체비례, 가늘고 긴 여성스러운 손, 도드라진 이륜의 귀 등 세부적 표현까지 청허의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불좌상(1640)과 같은 특징으로 같은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청허는 원오계 조각승으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수련과정을 보냈으며, 1610년 대부터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현진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내원암 보살상과 심우사 아미타상 등은 현진·청헌계 조각승과 협업하였다. 1640년을 전후한 시기에 청허의 활동권 중심이 경상도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계파의 분화가 이루어지 되었으며, 경상권에서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원오의 죽음 혹은 선배조각승의 은퇴 등 여러 이유로 구심점이 약화되었거나 불교를 억압하는 분위기에 조각승 스스로 자생하기 위한 자구책일 지 모른다.
내원암 보살상은 심우사 불상과 함께 청허의 가장 빠른 작품으로, 17세기 전반조선 후기 불상의 보편적인 양식은 물론 이전 시기 양식까지 확인되어 청허가 갖고 있는 폭넓은 불상의 이해와 조각적 역량을 보이기에 충분한 상으로 그 중요성이 무엇보다 크다 할 것이다.


Naewonam is a hermitage of Donghwasa Temple located in Palgongsan Mountain in Daegu City, Republic of Korea. In 1958 when the hermitage underwent a renovation, a wooden Bodhisattva statue was transferred from a ruined temple nearby and enshrined in Naewonam Hermitage.
The Wooden Seated Bodhisattva of Naewonam Hermitage wears a tall, splendid crown and seats in confident posture with facial expressions conveying solemn mood. With a robe draped over its shoulder, the Bodhisattva wears a skirt covering from its chest to the lower body with long laces and edge of the skirt. The way the Bodhisattva is dressed succeeds the modality of Buddhist statues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Few statues from the late Joseon Dynasty shows such features. The detailed and subtle expressions of the statue including the shape of the face, hands, and ears, body ratio and facial expressions are similar with the Wooden Seated Amitabha Buddha of Simwoosa Temple located in Geochang County, Korea carved by a monk scultor Cheongheo in 1640. Such similarity gives us good grounds to belive that the Bodhisattva of Naewonam was created by the same monk sculptor.
As a member of the Won - o Circle, Cheongheo worked and trained with other monk sculptors from the same circle including Wono, Gakmin and Hengsa in Jeolla-do and Chungcheong-do Province of Korea. Starting with collaboration with Hyunjin, a celebrated monk sculptor of the 1610's from Gyeongsang - do Province, Chengheo worked with other monk sculptors from Hyunjin Circle such as Beophyeon and Hyeonyun to create the Bodhisattva Statue of Naewonam and Amitabha of Simwoosa Temple. It is estimated that Cheongheo continued his artistic career in Gyeongsang - do Province around 1640 when the statues were made. Given that no major artistic activity by Wono Circle except for those by Cheongheo has been identified since the 1610's, relocation of Cheongheo might be linked with the decline of Won - o Circle supposedly caused by the death of Wono, his master, and retirement of senior monk sculptors. The Bodhisattva of Naewonam Hermitage made in Gyeongsang - do Province, one of Cheongheo's earliest works demonstrates signature traits of Buddhist statues of the early 17th century as well as splendid yet subtle expressions of the earlier times. As such, the Bodhisattva of Naewonam Hermitage holds great significance as the statue embraces Cheongheo's profound understanding on Buddhist statues and considerable potential as a sculp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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