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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Cultural Studies

  •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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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1)~35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346
한국문화연구
35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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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본 규슈 출토 백제양식 금공품 연구

저자 : 이한상 ( Lee Hansa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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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지역 고분에서는 백제산 金工品이 출토된 바 있다. 熊本縣 玉名市 江田船山古墳과 大坊古墳 출토품이 그것이다. 두 무덤 모두 고고학적 조사 이전에 교란이 진행되어 부장 맥락을 알기 어려운 자료이지만, 5세기 말~6세기 초의 九州지역 무덤 속에 백제산 금공품이 묻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江田船山古墳에서 출토된 금동관, 금귀걸이, 금동신발, 장식대도는 5세기 말~6세기 초 백제 유적 출토품과 여러 특징을 공유한다. 문양이나 제작기법으로 보면 일본열도에서 모방 제작하였다기보다는 백제 중앙 공방에서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大坊古墳에서 출토된 금귀걸이는 익산 입점리고분군이나 나주 정촌고분 출토품과 매우 유사하므로 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산 금공품이 규슈지역에서 출토된 것은 당시 백제와 왜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금공품을 倭王이 입수하여 하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열도 전체의 금공품 분포 양상을 살펴보면 규슈지역 수장들이 백제로부터 개별적으로 입수했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Some of the metal crafts made at Baekje workshop were excavated from ancient tombs in Kyushu, Japan. The artifacts from Etahunayama tomb and Daibo tomb in Kumamoto Prefecture are examples. Both of the tombs were built during Baekje Woongjin era.
As both of them had been disturbed prior to the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it is difficult to know burial context. But it is noteworthy that metal crafts of Baekje were buried in the tombs of Kyushu region in the late 5th and early 6th centuries.
A gilt-bronze crown, gold earrings, gilt-bronze shoes, and an ornamental sword excavated from Etahunayama tomb are shared style characteristics with the relics of Baekje in the late 5th and early 6th centuries.
Judging from the pattern and manufacturing techniques, it is more likely that they were made at Baekje central workshop than imitated in Japan. The gilt-bronze crown and ornamental sword seem to have been made relatively earlier than the gilt-bronze shoes and gold earrings. The gold earrings were made later than gilt-bronze shoes.
The gold earrings excavated from Daibo tomb are believed to have been made in the late 5th century, partly overlapping with the excavated items of Etahunayama tomb. Similar earrings were found from Ipjeom-ri tombs in Iksan and Jeongchon tomb in Naju.
The discovery of such Baekje objects in Kyushu may have been attributed to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Japan. The Japanese king may have obtained these objects and given them to the person buried in Etahunayama tomb, but if you look at the distribution of metal crafts from all the Japanese islands, it is more likely that the heads of the Kyushu region obtained them separately from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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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선전기 경기지역 부장(副葬) 도기(陶器)에 나타난 신구(新舊)요소의 공존양상

저자 : 한혜선 ( Han Hyesu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3-7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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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경기지역에서 확인된 조선전기 분묘에서 출토된 도기를 대상으로 신구요소가 공존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조선전기 분묘유적에서 도기가 부장된 분묘의 비율은 낮은 편이며, 부장된 도기 또한 분묘 1기당 1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장 도기를 기종별로 분류한 결과 호·병·장군·명기·기타로 구분되었으며, 이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종은 호와 병이다. 호는 세부적인 형태에 따라 단경호·파수단경호·장신호·소호 등으로 나누어지며, 단경호가 가장 많이 부장되었다. 병은 나팔입병·자라병·소병으로 구분되는데, 나팔입병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단경호와 장신호는 고려후기부터 현재의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하는 중부지역에서 부장용으로 선호되었던 기종으로, 여전히 고려적 전통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동체에 여러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파수단경호, 동체가 옆으로 누운 형태의 장군, 소형으로 제작한 부장용 도기제 명기는 조선이 들어선 이후 새롭게 부장되는 품목이다. 특히 도기제 명기는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으로, 수도 한양과 인접한 경기지역이 새로운 예제의 보급과 적용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빨랐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왕조가 세워졌다고 해서 모든 제도와 문물이 일시에 변화할 수는 없다. 왕조 변화와 무관하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 이전부터 지속되던 전통적인 요소와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추진으로 인해 반영된 신요소가 일정기간 공존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조선전기 경기지역 분묘의 부장품 중 도기를 꼽을 수 있다.


This thesis concretely examined the coexistence aspect of new and old elements, targeting the pottery excavated from graves of Gyeonggi region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 the results of analysis, in the grave ruins of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ratio of graves with pottery was low, and in most cases, one from the pottery was buried in each grave.
The grave pottery were divided into jar, bottle, Jang-gun, Myeong-gi, and others. Out of them, the types occupying the highest percentage were jars and bottles. The jars were divided into short-necked jar, handle short-necked jar, tall-but-narrow-at-the-bottom jar, and small jar; the short-necked jar was buried the most. The bottles were divided into trumpet-mouthed bottle, terrapin-shaped bottle, and small bottle. The trumpet-mouthed bottle occupied more than 90% out of bottles found in the graves. As the types preferred for the purpose of burial in the central region including Gyeonggi-do and Chungcheong-do from the late Goryeo Dynasty, the short-necked jar and tall-but-narrow-at-the-bottom jar show that the tradition of Goryeo was still maintained. On the other hand, the handle short-necked jar with handles in different shapes, Jang-gun with the body lying on its side, and the pottery Myeong-gi for grave produced in small size, are the items newly buried from the Joseon Dynasty. Especially, as the pottery Myeong-gi was very hard to find in other regions, it is an example showing that Gyeonggi region close to the capital Hanyang was faster to spread and apply the new ritual system, compared to other regions.
Even when the new dynasty is established, every system and culture cannot be changed at once because people in the space are the same regardless of the change of dynasty. At this time, it is so natural that the traditional elements that have been passed down, coexist with the new elements reflecting the introduction of a new system. The pottery could be pointed out among grave goods of Gyeonggi-do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s a case concretely showing this 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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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해암(海巖) 유경종(柳慶種) 가문의 인장(印章) 활용 양상에 대한 연구

저자 : 김동준 ( Kim Dongju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7-11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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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에서 인장(印章)은 흥미로운 대상인데도 아직은 연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고는 18세기 경기도 안산(安山)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경종(柳慶種)과 그 주변인물에 집중하여 인장이 활용되는 한 양상을 살폈다.
제2장에서는 유경종의 『해암고(海巖稿)』를 통해 인장 관련 증언들을 조사했다. 그는 20대에서 60대까지 인장에 대한 기록을 비교적 풍부하게 남겼다. 그의 인장 취향은 시서화(詩書畵) 및 전각(篆刻)을 바탕으로 삼았으며 특히 처남인 강세황과의 예술적 교감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행적과 증언을 통해 파악된 내용은 유경종의 주변에서 향유된 그림과 인영집(印影集), 현전 실물 인장 등을 해석하는 데 소중한 단서가 되었다.
제3장에서는 유경종의 가문에서 인장이 실제로 활용된 양상을 고찰했다. 첫째,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에 주목하여 유경종을 위시한 주변인물들이 활발하게 인장을 사용했음을 증명했다. 둘째, 인영집인 『해암인소(海巖印所)』를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이 귀중한 책자는 강세황이 유경종에게 선사한 인장 236방을 날인한 인보(印譜)를 원본으로 하여 유경종의 오촌 조카인 유신(柳賮)이 임모한 것이다. 수록된 인장과 서발문을 통해, 그들이 소장한 인장의 실제와 인장에 대한 인식을 밝혔다. 마지막으로는 실물로 전하는 인장을 조명했다. 진주유씨 가문이 안산시의 성호기념관에 위탁한 약 29방의 인장 안에는 위에서 조사한 그림 및 인보에 사용된 그 실물이 포함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시화첩과 인보 그리고 인장 실물을 두루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사례가 바로 18세기 유경종 가문임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당대 조선에서 인장이 향유되는 현장을 보다 선명히 조명해 볼 수 있었다.


Even though stamps are interesting objects in Korean culture, there have not been many researches on them. Thus, this thesis concretely researched a phase of utilizing stamps by focusing on Liu Gyungjong(柳慶種) actively working in Ansan(安山) region of Gyeonggi-do in the 18th century, and also on the people around him.
Chapter2 examines the testimonies related to stamps through 『Haeamgo(海巖稿)』by Liu Gyungjong. He left relatively plentiful records of stamps from his 20s to his 60s. His taste in stamps was based on paintings which incorporated poetry and calligraphy as well as the art of engraving stamps. All this originated from an artistic relationship between him and his brother-in-law Kang Sehwang(姜世晃). The contents that were understood through records and testimonies became precious clues for interpreting the paintings enjoyed by surroundings of Liu Gyungjong, his collection of stamps, and actual stamps.
Chapter3 considers the actual utilization of stamps by the family of Liu Gyungjong. First, through analyzing < Hyeojeongseungjipdo(玄亭勝集圖) >, the research shows that Liu Gyungjong and the people around him actively used stamps. Second, the chapter introduces a collection of stamps 『Haeaminseo(海巖印所)』. This precious booklet of stamps is a copy of original text of Inbo that was sealed with 236 stamps and presented by Kang Sehwang to Liu Gyungjong. The copy was made by Liu Sin(柳賮) who was a cousin of Liu Gyungjong. Through these stamps, the prologue and the epilogue, the reality of stamps in the collections and the perception of those stamps is revealed. Lastly, the stamps themselves are reviewed. Roughly 29 stamps entrusted by Jinju(晉州) Liu Clan to Seongho(星湖) Memorial Hall in Ansan City include the actual articles used for Inbo(印譜) and the paintings researched above.
In conclusion, the family of Liu Gyungjong of the 18th century was a rare case in that we are able to verify all the books of poetry & paintings, Inbo, and the actual stamps. Through this study, the utilization of stamps in the Joseon Dynasty is more clearly illumin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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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채용신 초상화의 도상학-병풍배설형 초상화를 중심으로-

저자 : 김소연 ( Kim Soyeon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9-145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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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석지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그린 초상화 가운데 인물의 배경으로 산수병풍을 활용한 형식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에 여백으로 남겨두었던 바탕을 쪽빛 장황의 산수병이 대체하는 것인데, 1920년대 많은 예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초상사진과의 연관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나, 초상화마다 서로 다른 유형의 산수와 세밀한 묘사의 한옥 구조가 구별되어 등장한다는 점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본고에서는 평강 채씨 일문 채면묵을 그린 <채면묵 초상>을 통해, 병풍의 산수풍경이 초상화 주인공의 일생이나 업적을 드러내는 서사적인 특징을 지니기도 했음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병풍이 배설된 형식, 즉 병풍이 평면적으로 활짝 펼쳐 놓인 경우와 가운데 폭이 더 깊숙이 들여 놓이면서 인물과 병풍사이에 보다 큰 공간이 생기는 예를 구분했다. 산수병 배설형식의 초상화는 남성, 여성의 초상이 모두 제작되고, 한정된 지물을 통해 유형화되었음을 관찰해 보기도 했다. 한편, 병풍과 배경, 지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채용신의 <자화상>을 살펴보는 데 단초를 제공한다. 현재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며 흑백사진만 남아 한정된 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근대기 초상 전문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기록한 드문 작품이며, 산수병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한 갖가지 물건으로 장엄한 특색을 보인다. 이에 <자화상>의 표상을 면밀히 살피고, 양식적 추이에 기반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해 보며, 채용신 초상화 연구의 폭을 넓혀보고자 했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particular form of Seokji Chae Yong-shin's portraits which use folding screen of landscape as the background of the subject. This is a method which replaces the method of leaving the background blank with folding screen of landscape, belonging to the later years of Chae Yong-shin. Of course, that Chae Yong-shin used folding screens of landscape as a background cannot entirely exclude the connection with portrait photography; however, it requires attention that different type of landscapes and meticulously described Korean-style houses appear distinctively per portrait. Especially, this study examines how the landscapes in the folding screen have a narrative function of portraying the life or the achievements of the person drawn through < Portrait of Chae Myun-muk >, which drew Chae Myun-muk, a fellow member of the Pyun-gang Chae family.
This process of folding screens placement produces certain methods; a case where the folding screen is parallel to the mat on the floor and a case where it is placed deeper in the center where the person is and leaving a big space between the person and the folding screen. On the other hand, a thorough analysis on the folding screens, the landscape, and the features of the belongings provide a clue to examining < Self-Portrait > by Chae Yong-shin. Although it is an artwork which its existence is unclear except for a black-and-white picture, it is a rare artwork in which portrait painter of Korean modern period has recorded the image of his or her own self, with magnificent characteristics shown through various items projecting his identity, including the folding screen of landscape. This study attempts to analyze the meanings of such and estimate the date of production based on the changes of the style, widening the study of Chae Yong-shin's portr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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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문사(人文社)의 출판 기획 연구-단행본 출판과 총서 기획을 중심으로-

저자 : 서승희 ( Seo Seunghui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7-191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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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인문사(人文社)의 출판 기획을 중심으로 식민지 후반기 출판 문화 장과 문학 담론의 관계를 분석했다. 우선 인문사 사장 최재서의 출판 관련 글쓰기를 중심으로 1930년대 중반 이후 문학 시장의 현황을 개관한 후, 인문사의 운영 방식과 출간물의 성격을 정리했다. 인문사의 출간물은 조선의 언어, 역사, 문학 관련 서적, 서구문학 번역서, 월간 비평지 『인문평론』, 『조선문예연감』 및 『조선작품연감』 등을 망라하는 다양성을 지녔다. 이와 같은 출판기획의 근본적 목표는 당대 문학의 쇄신을 통해 창작과 비평을 활성화하고 대중 교양을 앙양하는 데 있었다. 전작장편소설총서와 세계명작소설총서는 이와 같은 목표가 빚어낸 핵심 결과물이다. '전작'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설 출판의 관행을 바꾸고, 고전이 아닌 동시대의 명작을 번역해 독자층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던 인문사의 기획은 이른바 전환기라는 맥락 속에서 문학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문 교양의 가능성과 임계점을 동시에 드러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인문사의 출판 기획을 실증적으로 재구했다는 점, 식민지 후반기 문학 생산의 토대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Inmunsa(人文社) is a publishing company, which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literary and cultural discourses during the colonial Joseon from the late 1930s to the early 1940s. Inmunsa's publications diversely covered Joseon language, history, culture and literature-related books, as well as monthly reviews 『In-Mun-Ppyung-Non』, 『Jo-Seon-Mun-Ye-Yeon-Gam(Joseon Cultural and Artistic Yearbook)』, and Jo-Seon-Jak-Pum-Yeon-Gam(Yearbook of Joseon Works)』. This study firstly made a general survey of the status of the literary marketplace during the late colonial era, focusing on the publication-related writing of Choi, Jae-seo, a president of Inmunsa. Next, this paper examined the management system of Inmunsa and classified volumes published by Inmunsa into two criteria: practicality and literary value. This study also analyzed the meaning and status of the entire long-length novel series and the world's great novel series that were the key planning projects of Inmunsa. Though its publications, Inmunsa attempted to study the orientation of reality in the transition period by remodeling novels, as well as to spread of culture by translating great novels. On the other hand, it revealed the possibility and the limitation of liberal arts in the late colonial era, at the same time. In conclusion, this discussion has significance by empirically reconstructing the publishments of Inmunsa and looking into the foundation and the environment of literary production during the colonial age, in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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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식민지 조선의 '독신' 범주 구성과 모순적 작동-결혼실패자와 독신주의자 사이-

저자 : 정지영 ( Jung Jiyoung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93-22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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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지배하에 조선에는 '법률혼인주의'가 선언되고 근대적 '법률혼'이 제도화되었다. 이로부터 법적으로 혼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부부 중심의 결혼제도가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연애에 기반한 결혼으로 성립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소가정'을 이상적인 가족으로 보는 담론들이 구성되고 있었다. 그 '스위트홈'의 이상과 대비되어, '독신'인 상태는 불안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소가정은 식민지 조선에서 '종법적 호주제' 체계 속에 배치된 모순적 제도였다. 또 경제적 자립 기반이 부실한 식민지의 현실에서 근대적 '스위트홈'을 이루는 조건을 갖추기도 어려웠다. 이렇듯 연애도, 결혼도 어려운 상황에서 '독신'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등장했다. 이 연구는 식민지기의 신문과 잡지 기사 등의 자료에서 '독신', '독신자' 그리고 '노처녀', '노총각' 등이 관련된 사건들이 보도된 양상에 주목하여 '독신'을 둘러싼 담론이 구성되는 과정을 읽어본 것이다. 부부관계 밖의 독신자들은 짧은 수명, 잦은 질병, 우울함과 자살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가시화되고, 이들은 '부부자'의 타자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근대적인 삶의 양식으로서 독신생활과 독신주의에 대한 선망도 피어나고 있었다. 식민지의 '독신'이라는 범주는 결혼관계의 타자로 설정된 것이지만, '종법적 소가족 부부'라는 모순적 관계에 포섭되지 않고 그 혼인 체계에 틈을 내는 새로운 선택지이기도 했다.


In July 1, 1923, the “principle of legal marriage” was declared in Choso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institution of marriage centered on the married couple was thus created. At the same time, the discourse which idealized “small families” formed by love marriage was being constructed. In contrast to the ideal of a “sweet home,” the “unmarried” status was discussed as unstable and abnormal. However, “small family” was contradictory to the “patrilineal household registration system.” Moreover, it was difficult to secure the financial conditions to have the modern “sweet home” in the colonized Choson. A new category, “singlehood,” appeared in this context where neither love nor marriage was easy to achieve.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es in which the discourse on “singlehood” was constructed, focusing on the ways in which the incidents related to “singlehood,” “single persons,” “old maids,” and “old bachelors” were reported in newspapers and magazines. The unmarried people were made visible in relation to short life expectancy, frequent illnesses, depression, and suicides. They were constructed as the Other of the “married.” On the other hand, singlehood and single life were envied as the new modern lifestyle. While the category of “singlehood” was established as the Other of marriage, it was also a new option which made cracks to the marriage system without being caught in the contradictory relationship of “married couple of patrilineal smal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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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가주도 전원개발계획의 출현-통합한전의 설립과 제1차 전원개발계획을 중심으로-

저자 : 오선실 ( Oh Sunsil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27-26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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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 전력망 체계는 국가가 미리 전력수요를 예측, 관리하고 그에 적합한 전력체계를 기획하는 국가주도 개발계획을 통해 성장해왔다. 이러한 계획에 따른 전원개발사업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전원개발기구로서 통합한전을 출범하고 제1차 전원개발계획을 입안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원개발계획은 경제발전의 기반이 되는 수력, 화력 발전방법과 비율, 발전소의 위치와 용량, 송배전망의 배치까지 수많은 쟁점들을 포함했고, 무엇보다 엄청난 자금과 물자를 동원하는 대규모 건설사업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수요공급 예측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이 논문은 경제발전의 토대로서 시급한 전력 확충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바탕으로 군사정부가 설립한 통합한전이 제1차 전원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가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1960년대 초 한국 사회가 추구한 근대 산업화의 목표와 구상을 확인하고자 한다. 더욱이 1960년대 초 부족한 건설 자금을 미국의 차관기구로부터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원개발계획 구상은 한국의 산업정책뿐 아니라 미국의 제3세계정책과도 조응해야했다. 이러한 제1차 전원개발사업의 성과와 한계는 1964년 비교적 빠르게 이뤄진 무제한 송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대도시에 풍부한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산업성장의 토대를 만들었지만, 배전망 확충 없는 전력체계의 성장은 전기사용 지역을 확대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In July 1961, the Military government established the Korea Electric Power Company (KEPCO) as the nationalized power. The KEPCO was a technology enterprise and also a subordinate organization under the control of the military government. Thus the industrial policy of military government was reflected in KEPCO's business direction. The first project of KEPCO was the establishment of the first five-year electrical power resource development plan (1962-1966). By working together with the Ministry of Commerce and Industry (MCI, Sanggong-bu), KEPCO had to adjust the plan's details such as the generation amount, plant location, construction time in order to keep pace with the first five-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 of the military government. Most of all, they wanted to supply enough electricity to use for the factories and establish a stable base for the growth of industry, but there was a limit to implementing their plans due to a lack of time and funding. The needed funds could have been provided by USAID, but USAID requested that KEPCO to receive technological advice for the plant design from American experts as a pre-requisite for the loan. These demands were difficult to complete in a short time, so the construction of the plant was delayed. In April 1964, the Pusan thermal power plant (130MW) was completed, and connected to the power system. KEPCO then announced “unlimited transmission” as a way of showing the economic growth taking place smoothly during the first year after Park's election as president. The unlimited transmission, however, was only for the major industrial cities such as Seoul and Pusan. The company was not installing new transmission lines or expanding its distribution network; most of South Korean areas still had no electr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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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북한의 인민 만들기와 감정 정치-'신해방지구' 『개성신문』 분석을 중심으로-

저자 : 한모니까 ( Hahn Monica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61-29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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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북한의 인민 만들기를 감정 정치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연구이다. '신해방지구'에서 발행된 조선노동당기관지 『개성신문』에 등장하는 감정 언어들과 서사를 분석하여, 북한 사람들의 공적 감정들의 특징을 다룬다. 북한은 단순히 사람을 통제한 것이 아닌 사람의 감정을 통제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공포가 아닌 적개심, 이승만 정권기의 경험은 수치와 실망, 북한 인민으로의 편입에 대해서는 행복과 명예감 등 특정 대상을 상대로 하는 감정들이 키워지거나 억제되었다. 이 감정들 간에도 위계화가 이루어졌는데, 최고 단계의 감정은 행복과 명예감이었다. '불타오르는 적개심', '뼈저리게 뉘우치는 수치스러운 과거', '눈시울 뜨거워지는 행복'과 같이 감정에 대한 묘사는 늘 신체적 느낌들과 결부되어 이루어졌다.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한 연상이 마음에 머물지 않고 신체의 즉각적인 반응으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선전선동이 전개되었던 거의 모든 공간과 매체는 감정 정치가 펼쳐지는 장이었다. 북한은 신해방지구의 다양한 배경과 복잡한 감정을 가진 개인들을 '북한 인민이라면 누구나' '한결같은 마음'을 표출하는 감정 공동체로 만들어갔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North Korea's making of the Inmin(人民) in terms of emotional politics. This analyzes the emotional languages and narrative structure appearing in the North Korean Workers Party newspaper “Kaeseong Newspaper” published in the “New Liberation Area” and characterizes the public emotions of North Koreans.
The North Korean government controlled not only the people of North Korea, but their emotions. The emotions around certain subjects were either raised or suppressed; for example, the hostility toward the United States, the feelings of disgrace and disappointment over the experience of Rhee Seung-man's regime, and the happiness and honor of sharing an identity as the North Korean people. There was a hierarchy among these emotions with the highest level of emotion being happiness and honor. The descriptions of emotions themselves, such as 'burning hostility', 'a shameful past that raches like a sore bones', and 'happiness that feels like warm tears,' have always been associated with physical feelings. This means that the association with a particular subject does not simply create emotion but leads to an immediate physiological reaction. Almost all the space and media in which propaganda and agitation had spread were the fields of emotional politics. North Korea has made individuals with complex emotions and various backgrounds in the New Liberation Area a “emotional community” with a “unified mind” for all North Kor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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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내가 겪은 6.25 전쟁

저자 : 임관택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간행물 : 한국문화연구 35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301-318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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