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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논총 update

THE TOEGYE HAK NONCHONG

  •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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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738-3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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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32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380
퇴계학논총
32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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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퇴계(退溪)와 수운(水雲)의 심학(心學) 고찰(考察)

저자 : 정재권 ( Chong Chae-kwo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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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退溪와 水雲의 心學을 한국적 儒敎의 발전과정 중 하나로 생각 할 수 있는 근거를 찾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적 유학의 발전과정 중 한 단계라고 보는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존재론적 면에서 퇴계와 수운은 불교와 달리 현실을 존재 자체로 보고 현실 속에서 이상적 세계를 열망한다. 불교나 기독교에서 내세를 말하지만 퇴계와 수운은 내세를 말하지 않는다. 퇴계의 理와 수운의 至氣는 그 개념상 표현은 다르나 이러한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둘째 실천론적 면에서 개인의 수행 방법과 그 목표는 도덕적 인간이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셋째 학문적 전통에서 보면 퇴계학맥의 현대적 전개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운의 부친은 영남 퇴계학맥의 거두이며, 수운 역시 퇴계학맥의 스승에게서 공부를 하였다. 특히 수운은 그의 심학사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많은 개념들을 퇴계와 유교적 사상과 교감하는 내용을 사용하고 있다. 즉 수운의 심학은 퇴계 심학의 현대적 전개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중 첫째에 있어서 퇴계의 理는 氣와 불가분 관계 속에 있다. 즉 인간의 도덕적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氣라는 것은 理와 분리될 수 없다. 理는 물질과 현실을 벗어나 따로 다른 시공간을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퇴계의 理와 같이 수운의 至氣 역시 현실의 도덕적 삶 속에서는 理法이면서 秩序로서 존재한다. 수운의 至氣는 天主라는 인격적 神으로서 만물과 사람 속에 내재하면서 우주와 생명을 관통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즉 至氣란 자연과 인간의 탄생과 성장 및 소멸 등의 변화과정에 한 순간이라도 분리된 적이 없는 존재이다. 至氣는 역동적이어서 개인으로 하여금 至氣체험을 하게 하고 지혜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퇴계와 수운 심학의 수행하는 방법으로서 敬이 있다. 퇴계는 居敬窮理이고, 수운은 侍天主이다. 居敬은 主一無適으로 心을 집중하여 잡념을 버리며,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窮理는 格物致知이며, 그 방법으로 博學·審問·愼思·明辯·篤行을 행하는 것이다. 居敬과 窮理는 仁을 실현하는 수레의 두 바퀴 같은 같이 함께 행해야 하는 수행이다. 수행법으로서 퇴계에게 居敬窮理가 있다면 수운에게는 侍天主가 있다. 수운 수행법의 첫 관문은 至氣體驗이다. 至氣體驗 降靈을 통하여 內有神靈을 깨닫게 된다. 降靈을 받기 위해서는 靜坐해서 呪文修鍊을 해야 한다. 시천주 수련법의 둘째 관문은 天主 한울님을 恭敬하고 畏敬하는 心과 同歸一體 정신이다. 恭敬과 敬畏의 心은 내적 수행이고, 同歸一體 정신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예절과 도덕정신이다. 결과적으로 수운의 지기체험은 퇴계의 居敬의 격물치지에 비견되고, 수운의 內有神靈은 窮理에 비견된다.
학문적 계보에 대한 것으로 水雲은 퇴계학파의 영남 계보를 계승한 부친과 스승에게서 학문을 닦은 사람이다. 수운의 심학사상 속에는 유교적 현실세계에 대한 긍정이 있고, 居敬의 수행의 방법, 유교적 천인합일의 논리가 구현되어 있으며, 세계만민평등사상과 연결되는 외연성이 발견된다. 이러한 점에서 퇴계와 수운의 심학은 두 사상과 학맥 및 유교 전반의 현대적 전개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겠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a basis to consider Studying the minds of Toegye and Suwoon as one of the development processes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Confucianism. There are three main approaches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studies. First, on the ontological point of view, Toegye and Suwun regard the reality as being different from Buddhism and aspire to the ideal world in reality. Buddhism and Christianity say the afterlife, but Toegye and Suwon do not tell the future. Toegye's li(理) and suyun's Jigi(至氣) differ in terms of concept but they have a common point in this respect. Second, from a practical point of view. The methods and goals of individuals are common in that they are moral human beings Third, in the academic tradition, it can be seen as a modern development of Toegyeokhak(退溪學). Suwun's father is the progenitor of Yeonnam Toegyehak, and Suwun also studied by the teacher of Toegyeok tradition. In particular, Suwoon uses T'oegye and Confucian concepts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his philosophical thought. In other words, the idea of Suwun in the study can be thought as the modern development of Toei studies. Considering the first of the three, Toegye's Li(理)is inseparable from Ki(氣). In other words, to be able to live human moral life, Ki is in an inseparable relation with Li. This means that Li can not occupy different time and space apart from material and reality. Like Toegye's theory, Suwoon's JiKi also exists as a law(理法) and order(秩序) in the moral life of reality. In Suwoon, Jigi(至氣) is a personality God, Heavenly Lord(天主),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being in all things and man. Jigi is also an institution that penetrates the universe and life. Jigi(至氣) has never been separated for a moment in the process of change of nature and human birth, growth and extinction. Jigi(至氣) has dynamic characteristics. And Jigi gives individuals experience and wisdom. There is reverence(敬) as a method of carrying out the study of Toegye and Suwun. In T'oegye, it is a GeGyungGungLi(居敬窮理), and in Suwoon, it is a Sichon ju(侍天主). Indulgence(居敬) means the principallessness(主一無適). This is to concentrate on the mind, to abandon bad thoughts and to correct oneself, Gung Ri(窮理) is a GyukMulChiJi(格物致知). There is a way of practicing mentalism as a way of practice, a bakhak(博學)·simmun(審問)·sinsa(愼思)·myungbyun(明辯)·dokhaeng(篤行). These two are the performances that must be done together like the two wheels of the wagon to realize In(仁). If Toegye has an GeoGyongGungLi(居敬窮理) as a method of conduct, there is a Sichonju(侍天主) spirit in Suwun. The examination of Jigi(至氣) is the first gateway to the practice of Suwoon. The code is received through the examination of Jigi(至氣), and at the same time, it realizes that there is a spirit within each person. In order to receive the spirit, you must sit still and repeat the spell. The second gate of the training method of Sichonju is to find a heart that respects and reverence Hanwool of the Heavenly Father(天主). At the same time, this spirit is expanded to wake up the spirit of returning to one. The heart of respect and reverence is inner work. The spirit that harmonizes with all develops into etiquette and moral spirit that form social relations. The experience of extreme aura(至氣體驗) is compared to indulgence(居敬), and experience of inner spirituality(內有神靈) is comparable to extreme reason(窮理). The third is about the academic genealogy. Suwoon is a person who has learned from his father who inherited the genealogy of the Toegye school and his mentor. In Suwon 's thought, there is a positive about the Confucian real world. At the same time, his ideas embody the Confucian method of execution and the logic of co-unification. There is also an extrinsic relation with equality. In this regard, I think that the study of Toegye and Suwun has a meaningful significance in that it is a modern development of Korea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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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아시아 '근세'의 '유교적 근대'와 '병학적 근대'

저자 : 김봉진 ( Kim Bongji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5-6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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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란 나이토 코난(內藤湖南)이 만든 용어이다. 이로써 그는 중국 '근세'론을 제기 했다. 이를 통해 중국 '근세'의 구성 요소를 추출할 수 있다. 그런데 기시모토 미오(岸本美緖)는 중국 '근세'론의 변종인 동아시아 '근세'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때 중국 '근 세'론의 틀은 거의 형체를 잃을 만큼 변질된다. 이러한 변질은 중국 '근세'와 일본 '근 세'의 정합성 여부 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그 답은 '거의 없음'이다. 한편 미야지마 히 로시(宮嶋博史)는 동아시아 '유교적 근대'론을 제안한다. 필자는 그 의의와 문제점을 검 토한다. 이와 함께 '유교적 근 대'론을 일본/사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오히려 일본의 '병학적 근대'론을 그 대안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The term 'early modern (period)' was coined by Naito Konan(內藤湖南). By this, he suggested the theory of Chinese 'early modern (period).' From his theory, we may extract the constitutive elements of Chinese 'early modern (period).' By the way, Kishimoto Mio(岸本美緖) developed the theory of East Asian 'early modern (period).' At this time, however, the Chinese 'early modern (period)' has deteriorated in its frame, almost lost its shape. This entails a question whether there is any coordination between the Chinese and Japanese 'early modern (period)' or not. The answer is 'there is none for the most part.' As contrasted with this, Miyazima Hiroshi(宮嶋博史) proposed the theory of the 'Confucian modern.' I will examine its significance as well as problems. And I will indicate, it is hard to apply that theoy to Japan or the Japanese history. On the contrary, I would rather suggest the theory of the Japanese 'military science modern' as an altern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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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교 국가주의'와 문화권력, 그 속박과 해방

저자 : 전성곤 ( Jun Sung Ko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7-89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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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근대 이행기 한국과 일본에서 형성한 '유교국가주의'를 담론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외래사상인 유교를 자국화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공통과 차이점을 밝혀냈다. 이러한 '외래문화의 자국화'는, 새로운 '문화권력 획득'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신채호와 오카와 슈메이가 유교 이론에 근거를 두고, 서구도 의식하면서, 기존 유교와 차이성을 두면서 진보적 사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또한 맹자의 내재천(內在天) 논리를 받아들여 아(我)와 비아(非我)를 설정하고, 아와 비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신채호는, 아와 비아는 끊임없이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카와 슈메이는 아 속에 비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아의 세계를 아의 세계에서 통일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채호는 평등의 의미를, 국민이 애국심을 갖기 위해 상하 구분없이 모두에게 역사를 인지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오카와 슈메이는 평등의 의미를 국민 전체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평등이며, 그것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성층화 된 공동체를 제안했다. 이러한 인식은, 신채호에게 상대주의적 관점을 형성하게 했고, 충군과 애국도 군주가 아니라 국가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반면 오카와 슈메이는 국가와 황실을 연결시켜, '유교국가주의=천황국가주의'를 세계주의로 가두고자 했던 것이다.


In this paper, we looked at the process of creating ' Confucianismnationalism' in Korea and Japan during the modern transition period. They have discovered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the process of localizing Confucianism, a foreign ideology. This is interpreted in this thesis as "nationalization = acquisition of cultural power." Although Shin chae-ho and Ookawa Syumei had common ground in their logic of combining Ah(Self 我) and Biah(Others 非我), they differed in the content of global universal thought as a nation, a royal family issue and an extension of the national anthem. The first finding was that Shin Chae-ho and Okawa Shumei were common in embracing Western theories based on Confucian theory, and trying to create a progressive logic that differs from existing Confucianism.. Shin Chae-ho claimed that "Ah and Biah must continue their struggle for their own self in order to advance to unity." On the other hand, Ookawa Syumei argued that they can unite the world of Biah in the world of Ah. The logic was that it could be unified with Biah. He argued that the important concept for him was education and training, and that he should faithfully practice it. This perception led Shin Chae-ho to form a relativistic view and to argue that loyalty and patriotism should be transferred to the state, not to the monarchy. On the other hand, Ookawa Syumei established a royal family on the nation and incorporated emperorism into universalism as idealism based on Confu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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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퇴계의 수령관(守令觀)

저자 : 전세영 ( Jeon Sae-young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1-13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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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퇴계가 수령의 자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가를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퇴계가 수령과 관리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 자료는 편지 48건과 교서 3건으로, 모두 51건이다. 그의 수령관이 나타난 편지와 교서를 받은 인물은 아들, 제자, 지인 등 모두 19명이었다.
수령이 갖추어야 할 자세로 퇴계가 강조한 44개의 요소를 대별하면 업무수행자세, 몸가짐과 태도, 마음가짐의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퇴계는 수령의 업무수행 자세를 가장 중시하였고, 몸가짐과 태도, 마음가짐이 그 뒤를 이었다. 수령의 업무수행자세 중 퇴계가 가장 강조한 것은 '법과 규정의 준수'였고, 그 다음이 '애민'이었으며, '가혹행정 금지'가 그 뒤를 이었다. 수령의 몸가짐과 태도에서 퇴계는 '의에 합당한 물건의 수취'를 역설함으로써, 그가 가장 강조한 '법과 규정의 준수'를 그대로 확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퇴계 수령관의 밑바탕에는 기본적으로 수령은 자기수양이 되어 있어야 하고, 학문을 통해 이를 지속해야 하며, 또한 행이후학(行而後學)해야 한다는 유교의 원칙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퇴계의 수령관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특징은 그의 보수성이었다. 퇴계는 관리의 위계질서를 역설함으로써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한 측면은 있었지만, 관리가 자신의 위치에 맞는 언동만을 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질서가 안고 있는 문제점 해소에는 소극적인 면을 나타내었다.


This article aims to study what Toegye had thought about the attitudes of local governor. There are 48 letters and three king's messages, all 51 of which are references to the attitudes of local governor and government officials of Toegye. The total number of people who received the letter and king's messages was 19 including his son, students and acquaintances etc.
There are 44 elements emphasized by Toegye in the posture that public officials should have, they can be divided into three types: attitudes in carrying out their duties, behaviors, and mental attitudes. Toegye placed the most importance on public officials' attitudes in carrying out their duties among them, their behaviors and mental attitudes followed. What Toegye emphasized the most in attitudes in carrying out their duties of local governor was 'compliance with laws and regulations', the next was 'love of the people', and 'stop to harsh administration' followed. Toegye emphasized that local governor should 'receive something worthy of righteousness' in behaviors of him. In this regard, we can see that he applies his most emphasized 'compliance with laws and regulations'.
At the base of the Toegye's viewpoints of local governor, he basically had to be self-disciplined, and to continue this through academic studies, there was a Confucian principle that he should study after practicing love of the people. Another characteristic found in the Toegye's viewpoints of local governor was his conservative feature. Although Toegye has emphasized the stability of the organization by accentuating the hierarchy of public officials, he argued that the public official should only act in accordance with his position, and showed a passive aspect in solving the problem of the existing social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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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경제육전』의 성립 배경과 편찬자 조준의 『주례』 인식

저자 : 김인규 ( Kim In-gyu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33-15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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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경제육전』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육전』은 태조 6년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부속기관인 검상조례사(檢詳條例司)에서 조준(趙浚)의 책임 하에 편찬된 조선 최초의 법전으로 흔히 『경제원육전(經濟元六典』 또는 『원육전(元六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법전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바로 개찬작업이 추진되어, 『속육전(續六典)』, 『경제육전원집상절(經濟六典元集詳節)』, 『경제육전원전(經濟六典元典)』, 『경제육전속전(經濟六典續典)』, 『신속육전(新續六典)』 등으로 개찬(改撰)되어 반포하였고, 편찬 책임자에 따라 조준육전(趙浚六典)·하륜육전(河崙六典)·이직육전(李稷六典)·황희육전(黃喜六典)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제육전』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으므로 체재와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인용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전·호전·예전·병전·형전·공전의 육전(六典)과 각 전마다 여러 강목(綱目)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복원한 책으로 전봉덕인 수습한 『경제육전습유(經濟六典拾遺)』 (아세아문화사, 1989)과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편한 『경제육전집록(經濟六典輯錄)』 (신서원, 2018)이 있다.
특히 『경제육전』편찬 책임자인 조준(趙浚)은 <진시무소(陳時務疏)>에서 6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고, 백관(百官)의 근본인 6부가 정사(政事)가 나오는 곳이라 하여, 『주례』의 육관(六官)제도를 재현시키고자 노력하였다.


This paper is a study of the Six Codes of Governance. As everyone knows, the Six Codes of Governance is the first law of Joseon that was compiled at Geomsangjoryesa (檢詳條例司: office in charge of legislation), an affiliate of the Dopyeongeuisasa (都評議使司: supreme council), under the responsibility of Jo Jun (趙浚) in the 6th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 It is also often referred to as Basic Six Codes of Governance (經濟元六典) or Basic Six Codes (元六典), However, soon after this code was enforced, the correction work was carried out immediately and promulgated as Amended Six Codes (續六典), Detailed Collection of Six Codes of Governance (經濟六典元集詳節), Original Text of Six Codes of Governance (經濟六典元典), Text of Amendment of Six Codes of Governance (經濟六典續典), New Amended Six Codes (新續六典), etc. And according the person in charge of the compilation is was referred as Six Codes of Jo Jun (趙浚六典)·Six Codes of Ha Ryun (河崙六典)·Six Codes of Lee Jik (李稷六典)·Six Codes of Hwang Hui (黃喜六典), etc.
However, since the Six Codes of Governance is not communicated today, its format and content are not known exactly. But according to many direct or indirect citations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e may know that it was separated in Six Codes (六典); Code of Administration of Personnel, Code of Taxation, Code of Rites, Code of Military Affairs, Code of Criminal Law, Code of Public Works and each code was classified in several articles (綱目). The Addendum of Six Codes of Governance (經濟六典拾遺, Asea Culture Publisher, 1989) collected by Jeon Bong-deok and the Collection of Six Codes of Governance published by the National Studies of Yonsei University (Sinseowon, 2018) are the restorations of the Six Codes.
In particular, Jo Jun (趙浚), who was in charge of compilation of the Six Codes of Governance,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he Six Divisions in his comments of "JishiMuso (陳時務疏)", and tried to restore the system of Six Ministries (六官) of the Rites of Zhou saying that they are foundation of all government officials and where the political affairs come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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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의 인심도심(人心道心) 사상

저자 : 전병욱 ( Jeon Byoung-ok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59-18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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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논자는 穌齋 盧守愼을 한국 도학파의 한 계승자로서 조명하였다. 靜庵 趙光祖 이래로 道學者들은 성균관 교육체계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성리학 공부에 있어 개념이나 이론체계를 익히는 것보다는 『소학』을 평생 읽으면서 그 안의 규범을 실천해 나가도록 권장하였다. 그들은 朱子의 정신으로 돌아가 주자처럼 스스로의 사유와 실천을 통해 자신의 철학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다. 穌齋는 바로 이 도학 전통의 분위기 속에 성장하였으며 高峯 奇大升과 栗谷 李珥도 이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退溪 李滉의 경우는 이 기존 한국의 도학자들과는 달리 독서를 비롯한 格物致知를 중시하는 입장을 가졌다. 그는 元나라 시기 학자들의 성과를 朱子학술의 주류적 발전으로 긍정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퇴계가 주도한 새로운 사조가 형성되는 시기에 穌齋는 기존 도학자들처럼 실천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整庵 羅欽順의 도움을 빌리기도 하였고 陽明王守仁의 도움도 받았다. 퇴계와 소재 사이의 대립을 한국 도학파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 한 입장과 도학의 전통 위에 관학의 전통까지 통합시키려 한 입장 간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재의 人心道心說은 율곡이 그 방향을 일부 계승하고 동시에 조금 더 원만한 방식으로 발전시킨 뒤로는 성리학의 발전사에서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조선 학자들 중에서 거의 처음으로 주자와 다른 학설을 과감하게 주창한 소재의 인심도심설은 조선성리학의 발전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In this article, I shed new light Noh Soo-shin as a successor to Dohak school. Dohak school who focus on moral practice are critical of school education centered on Sungkyunkwan. Rather than learning about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Neo-Confucianism, they encouraged reading Xiaoxue(小學) and practicing its rules for life. They returned to the spirit of Zhuxi and tried to build their own philosophy through reason and practice, just like Zhuxi. Noh Soo-shin grew up in the very spirit of this Dohak school.
Toegye, unlike this common Dohak school's scholar, has a position that values reading and research. He actively accepted the research results of the early scholars of the Yuan Dynasty as the development of Zhuxi's phiolosophy. However, Noh Soo-shin tried to build his own philosophy by himself and borrowed Luoqianshun's help in the process, as well as Wangyangming's help. It may be an interpretation to understand the contradictions between Noh Soo-shin and Toegye as a conflict between the two sides of the school to inherit and develop Dohak and the school to integrate the Sungkyunkwan' education.
As Yulgok inherited Noh Soo-shin's theory and developed further, it seems that his theory of the Human Mind and the Moral Mind no longer had an influence in the history of Neo-Confucianism in Chosun. However, research on his theory will have to be conducted more actively in order to gain a comprehensive view on the Human Mind and the Moral Mind of Neo-Confucianism in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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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중국 유가의 혈연문제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연구

저자 : 조원일 ( Cho Wonil ) , 김종규 ( Kim Jongkyu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85-20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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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중국의 고대 사상가들은 현실성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곧 그들이 현실에 기초한 사고를 중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은 통상적으로 구체적인 사안에 직면해야 만이 비로소 사력을 다하여 해결의 방법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그들 대부분 모두가 상황에 부합하는 사고를 학설의 시작점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선진시대의 제자백가 모두는 이러한 사고 맥락 속에서 제각기 독특한 학설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며, 현실적 성격이 강했던 유가사상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중국의 유가사상은 현세적 성격이 강한 사상체계로서 그들의 관심은 현실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생활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도덕충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혈연의 문제와 도덕문제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유가사상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형성하였는데, 본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고대 중국 사회에서의 혈연과 도덕 사이의 충돌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유가사상이 혈연의 문제와 도덕문제의 관계에 관하여 어떠한 입장과 주장을 펼쳤는지에 대하여 역점을 두어 논의를 진행해보도록 하겠다.


In general, Chinese ancient thinkers can be said to have not been favorable to deviations from reality. That is, they regarded thoughts based on reality as important. In addition, they usually searched for solutions desperately only when they faced concrete issues. In other words, most of them have taken those thoughts that correspond to situations as the starting points of their theories. All philosophers and scholars in ancient times developed their own unique theories in this context of thinking. Confucian thoughts, which had a strong realistic nature, were no exception.
Confucian thoughts are a system of thought with a strong worldly nature and their interest can be said to have been focused on problems in reality. Humans become to face diverse forms of the problems of moral conflicts in real life and one of which can be said to be the collision between the issues of blood ties and moral issues. Confucian thoughts formed their own unique system of thought on these very problems. The issue of collision between blood ties and morality in ancient Chinese society will be addressed in the body. In the body, discussions will be carried on focusing on Confucian thought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blood tie issues and moral problems in the situation of the times. Such a study addresses a field that cannot be found in previous studies in South Korea, and it is hoped that this study will play a role of a touchstone in the studies of such a field. Therefore, in the body, the relationship between blood tie issues and morality in ancient China will be analyzed centering on filial piety, the independence of morality, and the universality of a sense of mo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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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호문(權好文) 시가(詩歌)에 형상화된 독악(獨樂)과 처사문학(處士文學)

저자 : 고승관 ( Ko Seung-gwa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07-23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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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 權好文(1532∼1587)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嶺南士林이며 退溪學派의 정통성과 學脈을 계승하였다. 조선 초기 經世學위주의 儒學이 士林派를 통하여 점차 실천철학적 윤리적 규범을 더욱 강조하게 되면서, 『小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것은 학문의 진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하여 증명하고 人格修養의 기본으로 삼고자 한 道學的 학풍으로 계승되었다.
이와 같은 성리학의 理論哲學과 實踐哲學의 兩面은 분리될 수 없는 士林의 이념이었으며 道學의 기본을 형성하는 학문적 기반이었다. 그런데 송암과 같이 과거를 통한 관리로서의 經國濟民의 이상을 접고, 오로지 산수에 은거하여 이론철학으로서 성리학적 진리를 생활 속의 실천을 통하여 실현하고자 한 사림계층은, 비록 정치적 관심을 버리지는 못하였을지라도 그 산수은거의 목적을 性理學의 학문적 연구와 실천적 가치의 구현을 이념으로 삼았으니 이들을 일컬어 處士階層이라 하였다.
조선조 대표적인 처사 중 한 명인 송암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산수생활을 閑居라고 하였다. 한거는 공간적 의미로는 隱居이면서 內面的의미는 정치적 삶에서 벗어난 산수생활이라 할 수 있다. 송암은 이 無悶齋 閑居를 통한 感情的 孤獨을 理性的 認識을 통해 자아성찰의 가치실현으로 전환하였다. 곧 현실 초탈적 시적 서경으로서 고독의 시경을 개척하였다고 할 것이니, 獨樂의 詩境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Song-am Kwon Ho-moon lived a practical life of Confucianism living with nature in Muminjae, realized the principle in living with nature and attained the perfection of moral through the nature union, and proposed typical treatments. Therefore, Songam accumulated aesthetic experience through Sansuyusang and a poet who symbolized it in his work. We thus studied poetic boundary and aesthetic representation of Hangeo and dokrak in Kwon Ho-moon's poetry from Sansu aesthetic point of view.
First, Songam's Hangeo is the recovery of self-reflective life rejecting the state of overbearing, and the practice of moral. He said that Hangeo is to experience the pleasure of seeking after moral in nature, and emphasized practical discipline in real life rejecting the state of overbearing for Confucian scholars in the Joseon Dynasty.
Second, Songam's Sansueungeo is the greatest conversion of life, the firm commitment to a new life, and the execution of resolution. As Songam tried to keep his life as a Confucian scholar, he was trying to set a new goal of life and find a new direction.
Third, Song-am escaped from the realistic goal of Imperial examination, was aware of Daeah consciousness, and pioneered a new spiritual boundary through self-reflection.
Fourth, due to Songam's emotional loneliness of failure of Imperial examination, he pioneered the realm of real-world lyricism by combing with the feelings of Sansuchinhwa through living in Muminjae. He could realize the value of self-reflection by rational awareness in emotional loneliness through psychological awareness in living Muminjae. It will be said that he pioneered lone lyricism as poetic lyricism transcending reality, and the lyricism of Hangeo and Dokrak is included.
Fifth, Songam's poetry symbolized the pleasure of realizing Daea consciousness by rational awareness. Therefore, the pleasure originated from the loneliness of Songam's poetry is not merely physical pleasure but the pleasure from the moment of enlightenment by recognition of the self - consciousness derived from the practice of moral. In short, Songam regarded the garden forest, which is called Muminjae, as an aesthetic object and symbolized its beauty in the art form of poetry.

KCI등재

9사대부적 이상의 성실한 실천 - 택당 이식 시 연구 -

저자 : 허윤진 ( Yoonjin Hur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35-26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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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澤堂集』에 소재한 澤堂 李植(1584~1647)의 시를 통해 택당이 사대부적인 이상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구현하였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위해 사대부의 개념 안에 내포된 학문하는 존재로서의 선비[士]와 出仕한 존재로서의 정치관료[大夫]의 함의를 분절하여 논의하였다. 택당은 학문하는 존재로서 사대부 계급이 지닌 의미를 중시하였기에, 과거시험이나 黨目과 같은 현실적인 요인에 좌우되지 않고 학문적인 진리를 끝까지 추구하였다. 그에게 출세한 사대부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였기에, 險地로서 기피되었던 지역들에 나아가서도 그곳들의 의미를 충실히 탐구한 좋은 시편들을 남길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사대부의 윤리-정치학은 고난을 통해서만 온전히 성취될 수 있는 것이었다.
택당은 사대부로서의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 고난을 감당한다. 이것은 크게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의 고난, 귀향과 은거의 삶을 희생하는 데에서 오는 정서적 차원의 고난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治國으로 인해 齊家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을 때 택당은 깊은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택당은 이와 동시에 사대부로서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자신의 고난을 절대화하지 않고, 고난의 문제를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이들의 실존적 문제로 확장한다. 특히 古樂府의 표제와 주제를 차용함으로써, 자신이 경험한 고난을 민중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는 면모를 보인다.


This essay investigates how Taekdang Yi Sik realized the literati ideal in multiple dimensions, focusing on his poetry from The Selected Works of Taekdang. For this purpose, I articulate the concept of the literati(士大夫) into the scholar(士) and the official(大夫). Taekdang pursued academic truth painstakingly, without being controlled by the success or failure of cⅣil service examination or the political party. He regarded the literati as those who serve for the country and its people and he created outstanding poems on the marginal regions which most officials avoided being assigned to and serving for. For him, the ethical politics of the literati could be achieved only through passion.
In this context, Taekdang took on his own passion to commit himself to the mission as a literatus. His passion can be perceⅣed in terms of: physical and embodied passion; and emotional passion resulting from sacrificing hermitage in nature with his beloved family. He was especially in deep agony when he could not take care of his family properly due to his duty for the country. At the same time, he never idealized his own mission and public responsibility; instead, he deepened the meaning of passion into the existential issue of every commoner who was lⅣing on the road. Especially, he interpreted his own passion on a more unⅣersal, popular level, adapting the titles and themes of East-Asian classical ballads.

KCI등재

10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신라해적

저자 : 성해준 ( Sung Hae Jun )

발행기관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간행물 : 퇴계학논총 32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67-29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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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반 한반도의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한반도를 통일하였지만, 그 후 내부분열로 인한 민심의 악화와 정치적 불안으로 생활의 곤경에 직면한 백성들이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倭에서의 교역을 빙자한 약탈행위는 일본의 신라에 대한 인식을 더욱 나쁘게 하였다. 흔히 일본 역사에서 말하는 신라 도적인 新羅寇는 통일 신라와 신라멸망 이후 후삼국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에 한반도 남부출신 유민이나 도래인 도적에 의한 약탈행위를 말한다.
일본측 사료에는 많은 피해를 준 신라유민이나 도적들의 해적행위 가운데 조직적인 집단도 많아 신라지역의 강력한 호족세력이 관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측 사료에는 일본 도서연안에서 도적행위를 한 신라구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신라인의 일본연안에서 저지른 도적행위를 일본측이 기록한 신라해적 문헌 및 동아시아 해적관을 중심으로 하여 신라유민의 실체를 고찰하였다.


In the mid 7th century, Shilla that had been relatively less powerful succeeded in the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ith the help of the T'ang nation. But since then, Shilla was internally divided to worsen the public sentiment, break down political stability and fall lives of the public into plight. As a consequence, some people of the country crossed national borders for their livelihood. In particular, they used to commit looting under the mask of trade with Japan. This made Japan think even worse of Shilla. According to Japanese history, there were Shilla pirates, usually dubbed as Shillagu, who looted Japan as they refuged or came over from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r to Japan amid political and social turbulences in the periods of Unified Shilla and post-Three Kingdom Nations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unified country.
Japanese historical records put that many Shilla refugees or thefts who damaged a lot by piracy were organized group members, so it is presumed that they were involved with local powerful clans of Shilla. By the way, there's few Korean historical records about Shillagu that pirated the coast of Japanese island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what Shilla pirates were by examining how they pirated Japanese coastal areas and by reviewing Japanese literature on Shilla pirates and the then East Asian view of pi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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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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