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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논총 update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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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598-3021
  • : 2671-7921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6)~76권2호(2019) |수록논문 수 : 871
인문논총
76권2호(2019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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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동군의 대(對)소련 정보사상전과 백계러시아인 정책

저자 : 김인수 ( Kim In-so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53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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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전 시대 제국 일본의 정보사상전 속에서 소수자(minority)가 처한 위치의 고유성(singularity)이 가장 극명한 형태로 표출된 것은, 만주국이 표방한 민족협화의 한 구성요소이자 소비에트연합(소련)의 정치적 반대자('反共'), 또 동시에 인종적·민족적 차원에서 러시아인(및 카자크, 그루지아 등 여러 하위 민족들)의 범주 안에 들어 있었던 이른바 '백계러시아인'(白系露人; 白系ロシア人) 문제였다. 관동군은 이들을 정보사상전, 선전전, 모략전의 수단이자 대상으로 삼았다. 관동군은 소련의 정보사상전 기법을 세심하게 관찰, 학습했고, 이를 역용(逆用)했다. 관동군은 백계러시아인을 정보사상전 부대로 편성하여 활용했고, 이들의 농업이민을 통해 소련과의 완충지대(buffer-zone)를 구축하려 했다. 나아가, 이들에 근거한 자치정권의 창출을 기획하기도 했다.
관동군의 입장에서 백계러시아인은 소련에 대한 이해, 견제, 개입에서 소련에 관한 지식의 자원(resources)이자 선전/모략의 유용한 도구였다. 또, 백계러시아인은 '반혁명 조국복귀'의 열망을 체현한 주체였다. 그러나 그들은 러시아인의 민족적 소질을 내포하고 있기에 방첩/경계의 관리대상, 위험한 존재로도 인지되었다. 백계러시아인이 지닌 속성, 이를테면 (1) 반공의 이념과 (2) 러시아인으로서의 민족적 소질은 근원적으로 상호 모순과 상충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계러시아인 사회 내부의 분파갈등, 만주국의 민족협화 정책과의 불화, (반공) 이념과 (러시아인) 민족의 충돌, 적계와 백계 러시아인 식별의 한계,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소련의 군사적 우세 속에서 백계러시아인을 활용한 관동군의 정보사상전은 결국 실패로 종결되었다.
관동군의 대(對)소련 정보사상전, 백계러시아인 정책은 제국들 간의 총력전에서 하위 민족집단이 자리한 장소의 성격, 그리고 이를 매개로 한 정치기획의 행방을 추적, 관찰하는 데에 대단히 유용한 함의를 제공한다.


The most obvious feature of the position of the ethnic minority during the World War II in the Far East was represented through the problem of White Russians. White Russians, who were the anti-Communist groups in Russia, were the targets of the 'Ethnic Harmony Policy' (民族協和政策) advocated by Manchukuo (滿洲國). They represented an ambivalent existence, included in the category of Russians on a racial and ethnic perspective. The Kwantung Army (關東軍) tried to study the intelligence warfare techniques of the Soviet Union and used the White Russians as a means of intelligence, propaganda and conspiracy warfare. It also established a buffer-zone with the Soviet Union by utilizing the agricultural immigrants of White Russians. In addition, the Kwantung Army planned to create autonomous governments for them.
From the standpoint of the Kwantung Army, White Russians were both resources of knowledge about the Soviet Union and useful tools for propaganda. The White Russians were also the ones who had a desire to revert to an anti-revolutionary homeland. However, at the same time, they were considered as a danger because they were targets of espionage and vigilance, and they embodied Russian ethnicity. The attributes of White Russians were inherently conflicted and contradictory: the internal political conflicts of White Russians' society, the clash between anti-communist ideals and the Russian national ethnicity, and the inability to distinguish between Red Russians (the revolutionists) and White Russians. The Kwantung Army's intelligence warfare against the Soviet Union through the White Russians during World War II clearly shows the character of the space in which the sub-ethnic groups were located. There is a huge contradiction and ambivalence between desire and neurosis in the Kwantung Army's policy towards the White Russ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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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도 독립운동가 R. B. 보스와 조선 ― '간(間)-제국'적 시점에서 반식민지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저자 : 미즈타니사토시 ( Mizutani Satoshi ) , 심희찬역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5-104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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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령 인도에서 영국인총독 암살미수사건에 관여했으며 일본제국에 망명했던 독립운동가 R. B. 보스(1886-1945)는 1934년 5월 식민지조선에 건너갔다. 경성에 일주일동안 머물면서 보스는 총독을 비롯한 일본인 고관들에게 연일 접대를 받았으며, 거기서 만난 조선인들을 일본에 대한 저항을 그만두고 협력하라며 설득했다. 영국제국에서 반식민지주의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 어째서 일본제국의 피지배자에게는 다른 태도를 취한 것일까? 이 <모순>을 검토하는 일은 식민지주의 및 그 저항을 살펴보는 역사학적 작업이 된다. 지배를 다루건, 저항을 다루건 지금까지 식민지주의에 관한 역사연구는 소여의 일정한 제국 공간 안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성을 다루어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종래의 방법론을 가지고는 1934년 경성에서 보여준 보스의 언동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서로 다른 제국 사이의 관계성 속에서 식민지주의와 그 저항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간-제국사>(trans-imperial history)의 시점이 필요하다. 이 글은 보스가 보여준 <모순>을 검토하고 간-제국적 시점에서 영국제국과 일본제국의 반식민지주의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While in India under British rule, R. B. Bose (1886-1945) ― a militant independence activist ― was involved in an attempted assassination of the Governor-General, forcing him into migrating to Japan, where he would continue his anti-colonial activities in exile. In May 1934, Bose visited Seoul, the capital of Korea, a nation which was under Japanese rule. During his one-week stay there, he was greeted day after day by high-ranking Japanese officials of the colonial state and was found to try and persuade those Koreans with whom he interacted into cooperating with the Japanese rulers. Why was it the case that someone who was in the very forefront of anti-colonial struggle in one empire ended up discouraging it in another? This is nothing short of a contradiction. Contemplating this contradiction, the paper argues, will help us consider what both colonialism and anti-colonialism were in a new light. Conventional historical studies of colonialism have mostly revolved arou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uler and ruled in one given empire. But such a framework would fail to help us see why and how R. B. Bose did what did in Seoul that year. What is required as an alternative is a 'trans-imperial' perspective ― a perspective which allows the histories of both colonialism and anti-colonialism to be situated within the relations between different empires in question. Through elucidating the reasons behind Bose's contradictory stance to Korean's struggle against Japan, this essay will rethink the meanings of anti-colonialism from the perspective of the trans-impe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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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오키나와 귀속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화민국 정부의 동향 ― 1940~50년대를 중심으로

저자 : 나리타치히로 , 후지이다케시역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5-14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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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전후한 시기부터 195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 정부와 중화민국 정부(이하 국부)가 오키나와 귀속문제에 어떻게 관여하려고 했는지 실증적으로 밝히는 데 있다. 오키나와는 현재는 일본의 한 현(縣)이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가 체재를 유지했으며 1945년부터 1972년까지는 미국의 배타적 통치 아래 놓였다. 이 글에서는 종전 뒤 동아시아 냉전 구조의 형성이 오키나와 귀속문제에 미친 영향과 오키나와 귀속을 둘러싼 미, 일, 류 3자의 동향, 오키나와 귀속 결정을 전후한 시기의 국부, 한국 정부 동향에 유의하면서 오키나와 반환이 구체화되기 이전 단계에서 오키나와가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살펴보았다.
1940년대부터 1952년에 걸친 시기는 오키나와의 귀속이 가장 애매한 시기로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의 전후처리에 임한 장제스는 한때는 미국과 중국에 의한 공동 신탁통치를 주장했다. 그러나 국부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함으로써 국제적인 영향력을 잃어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서 일본에 잠재주권을 인정하면서 미국이 대일평화조약 제3조에 따라 오키나와를 배타적으로 통치하는 방식이 확정되었다. 동아시아 냉전 구조가 형성되는 가운데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강화되었으며 애초에는 국내 상황 때문에 오키나와 귀속문제에 무관심했던 한국 정부도 한국전쟁을 거쳐 자국의 안전이 오키나와 기지와 직결되어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때 침묵을 지키던 국부 역시 1953년 아마미군도 반환을 계기로 오키나와 귀속문제에 다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1954년에 국부와 한국 정부는 아세아민족반공연맹(APACL)을 결성하고 여기에 류큐 대표를 참여시키며 오키나와에도 반공연맹을 조직하게 함으로써 오키나와를 반공 독립 쪽으로 향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일본복귀론의 뿌리가 단단했으며, 또 미국 정부가 APACL 회의에 오키나와 출신자가 참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오키나와의 지위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우려해 현지 미국 기관(USCAR)이 공개적으로 APACL 지부 결성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명한 것 등으로 인해 오키나와 현지에서 그것에 대한 지지는 확산되지 않았다. 더욱이 APACL 자체도 1956년까지 일본 참가를 두고 한국 정부와 국부가 대립함으로써 기능부전에 빠졌기 때문에 이 시기에 류큐 독립론이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식되는 일은 없었다.
1956년이 되자 토지문제를 계기로 오키나와에서 현상 변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관계 각국은 새로운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 정부와 국부는 일본의 반공 태도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현상 유지 또는 오키나와 독립을 요구하는 입장을 재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양자가 바란 반공 독립국가로서의 '류큐'는 일본복귀론이 거세지던 실제 오키나와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本稿の目的は、終戰前後から1950年代後半に至るまでの時期に、 韓國政府及び中華民國政府 (以下國府) が沖繩の歸屬問題にいかに關與しようとしていたのかを實證的に明らかにすることである。沖繩は現在は日本の一縣であるが、 近代に至るまでは琉球王國という獨立國家の體裁を保っており、 1945年から1972年までは米國の排他的統治下に置かれていた。本稿では、終戰後の東アジアの冷戰構造の形成が沖繩の歸屬問題に與えた影響や、沖繩の歸屬をめぐる日米琉三者の動向、沖繩の歸屬決定前後の國府·韓國政府の動向に注意を拂いつつ、沖繩返還が具體化する以前の段階において、沖繩が東アジアにおいていかに認識されていたのかを檢討した。
1940年代から1952年にかけては沖繩の歸屬が最も曖昧な時期であり、連合國の一員として日本の戰後處理にあたった蔣介石は、一時期は米中による共同信託統治を主張していた。しかし、國府は國共內戰での敗北によって國際的な影響力を失い、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會議において、日本に潛在主權を認めつつも、米國が對日平和條約第三條に基づき沖繩を排他的統治するという方式が確定した。東アジアの冷戰構造が形成される中で沖繩の米軍基地は强化され、當初は國內の狀況から沖繩の歸屬問題に無關心であった韓國政府も、朝鮮戰爭を經て自國の安全が沖繩基地と直結していると認識す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また、一時期は沈默を保っていた國府も、 1953年の奄美群島の返還を契機として、沖繩の歸屬問題に再び關心を向けるようになった。
1954年に、國府及び韓國政府はアジア民族反共連盟 (APACL) を結成し、ここに琉球代表を參加させ、沖繩にも反共連盟を組織させることで、沖繩を反共·獨立の方向に向かわせようと試みた。しかし、沖繩現地では日本復歸論が根强く、また米國政府が同會議への沖繩出身者の參加により、國際社會において沖繩の地位に對する誤解が生まれかねないと懸念し、現地米國機關 (USCAR) が公然とAPACL支部結成への不支持を表明したことなどから、沖繩現地で支持を廣げ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さらに、 APACL自體も1956年まで日本の參加をめぐる韓台間の對立により機能不全に陷っていたため、この間に琉球獨立論が國際社會に廣く認識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
1956年になると、土地問題を契機として沖繩で現狀變更への要求が高まったことから、關係各國は新たな對應を迫られることとなった。この中で、韓國政府と國府は日本の反共態度の曖昧さを理由に、現狀維持あるいは沖繩の獨立を求める立場を再確認することとなる。しかし、兩者が望んだ反共·獨立國家としての 「琉球」 は、日本復歸論が高まる實際の沖繩の姿とはかけはなれたものでしか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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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형』(論衡)의 「골상편」(骨相篇)에 나타난 명(命)과 성(性)의 연구

저자 : 김우정 ( Kim Woojung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1-17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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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충(王充)은 『논형』에서 부귀빈천을 주관하는 명(命)은 하늘의 기운과 여러 별들의 정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명(命)은 개인들에게 각각 다르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늘로부터 주어진 명(命)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충은 사람의 행실을 결정하는 성(性)을 개인의 노력과 교육에 의해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왕충은 교육을 통해서 악(惡)한 사람을 선(善)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왕충은 「골상편」에서 명(命)과 성(性)이 동시에 골상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하늘로부터 부여된 명(命)과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 있는 성(性)이 동일한 관점을 지녀야 함을 의미한다. 즉 명(命)이 바꿀 수 없으면 성(性)도 바꿀 수 없거나 성(性)을 바꿀 수 있으며 명(命)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왕충이 「골상편」에서 명(命)과 성(性)이 동시에 골상에 나타난다고 주장한 것은 명(命)과 같이 성(性)도 바꿀 수 없다는 전제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솔성편」(率性篇)에서 성(性)은 교육과 교화를 통해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두 곳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왕충은 명(命)과 성(性)에 대해서 스스로 모순되는 관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왕충은 性의 개념을 단순히 善惡을 지닌 측면만 설명한 것이 아니라 수명과 관련된 개념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골상편」에 나타난 性의 개념은 수명과 관련된 性의 개념과 동일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Wangchong (王充) claimed that Tianming (天命), which is responsible for riches and honors or poverty and lowliness (富貴貧賤), was determined by the energy of the sky and the energy of the various stars in Lunheng (論衡). Asserting that these Tianming (天命) are given differently to individuals, Wangchong (王充) argued that Tianming (天命) given from sky cannot be overcome by individual efforts. However, Wangchong (王充) insisted that Benxing (本性), which determines the good and the bad (善 惡) of the individuals, can be changed by individual effort and education. In other words, he argued that education could turn a bad person into a good person. Wangchong (王充) claimed that Tianming (天命) and Benxing (本性) show up on Guxiang (骨相) at the same time. But this argument means that Tianming (天命), granted from sky, and Benxing (本性), which can be changed by the efforts of individuals, should have the same perspective. If the Tianming (天命) cannot be changed, neither should Benxing (本性) be able to be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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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이인직의 「혈의 누」에 나타난 만국공법과 외국 인식

저자 : 이경재 ( Lee Kyungjae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5-20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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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 친일과 근대지향이 연결되는 지점을 만국공법(萬國公法)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기존의 논의에서는 청일전쟁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친일배청(親日排淸)의 의식이 드러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이 글은 친일배청의 태도를 낳는 진정한 이유는 만국공법에 있으며, 이것의 준수 여부에 따라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이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인직이 강조한 것은 일본과 청이라는 개별 국가에 대한 지지 여부가 아니라, 만국공법을 따르는 세계와 따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구분이었다. 그동안 옥련이가 청군이 아닌 일본군의 총알을 맞은 장면은 텍스트의 균열 정도로만 이해되어 왔지만, 만국공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청이 만국공법을 어기고 총알에 독을 묻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혈의 누」에서 청이 만국공법과 무관한 존재로 그려진 것은 임오군란을 빌미로 1882년 8월 조선과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한 후, 조공체제 형식에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미하여 조선의 자주권을 부인한 것과 관련된다. 이에 맞서 조선정부는 만국공법을 이용하여 장정체제에 저항하고자 하였다. 청일전쟁이 발발한 시점에서 보자면, 청의 만국공법에 대한 무지 내지는 오용이야말로 일본과 대비되는 가장 부정적인 모습으로서 반청의 주요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창작되던 20세기 초에는 을사조약을 계기로 일본 역시 만국공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나갔다. 「혈의 누」에는 을사조약 당시 일본이 내세운 보호국론을 체화한 일본인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통해 만국공법과 관련하여 일본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인직은 결코 만국공법이 지닌 근원적인 한계, 즉 강대국의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논리라는 측면까지 인식하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혈의 누」에서 미국이라는 공간이 유토피아로 형상화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미국이 이상적으로 형상화되는 이유 역시 만국공법과 맥락이 닿아 있다. 옥련과 구완서가 미국과 접촉하는 입구에는 중국인 캉유웨이(康有爲)가 존재하는데, 그는 『실리공법전서(實理公法全書)』를 통해 만국공법을 자연적 이치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인류의 평등과 자주권을 주장하였던 사상가다. 이러한 캉유웨이가 힘을 지니고 활동하는 미국이라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만국공법의 진정한 모범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된다. 이인직의 「혈의 누」는 친일소설 이전에 만국공법으로 상징되는 근대에 대한 맹목적인 지향을 보여준 작품으로 새롭게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It has been mentioned that, in Tears of Blood, the consciousness of the one-sided pro-Japanese dynasties was revealed in the process of the shaping of the Sino-Japanese War. The true reason for the pro-Japanese attitude is in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compliance to which determines on which side of the dichotomy between civilization and barbarism one belongs to. Lee In-jik's emphasis is not on the support of individual countries such as Japan and China, but on the division between the world that follows the laws of nation states and the world that does not. It is therefore reasonable to reassess the scene where Ok Ryun is hit by the bullets of the Japanese army rather than the Qing army; this is not a crack in the text, as previously believed, since from the aspect of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it is reasonable to say that Qing is the poison applied to the bullet. In 1882, the Qing Dynasty was portrayed as an irrelevant entity to the entire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This is related to the denying of the sovereignty of Joseon. Against this backdrop, the Joseon government tried to resist the system of rule by using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At the time when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ignorance or misuse of the Qing Dynasty's civilization law was the most negative aspect compared to Japan, and it was the main focus of anti-Qing sentiment. However, at the time that the work was created, the recognition of Japan as a nation that did not observe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was spread widely. In Tears of Blood, there is a scene in which Japanese criticize Japan's problems in relation to the nation's public works law through the negative image of the Japanese who embodied Japan's protectionism at the time of the Treaty of Friendship. However, it seems that Lee In-jik never perceived the fundamental limitations of the nation-state law, that is, the logic that supports the imperialism of the great power. This can be seen through the formation of utopia in the space of the United States. The reason why the United States is so idealized is also inextricably linked with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At the entrance to the contact with the United States is the Chinese Kangyuwai (康有爲), who through the whole book 『實理公法全書』 raised national law to the level of natural reason and claimed the equality and independence of mankind. The space of the United States where Kangyuwai is working with power naturally has a status of being a true example of the public law of all nations. Lee In-jik's Tears of Blood is a work that shows a blind intention toward modernity which is symbolized by the nation-state, and should not merely be approached as a pro-Japanese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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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관념사로 본 1910년대 '개인' 개념의 수용 양상 ― 유명론적 전환과 개체로서 '개인' 인식

저자 : 윤상현 ( Yun Sang Hyu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5-23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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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는 한일합병과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주자학적 세계로부터 일본을 통한 본격적인 서구지식의 유입이라는 일종의 지적 전환기였다. 1900년대-1910년대 지식인들은 '理'의 보편적 존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논쟁이나 비판을 겪지 않은 상황에서 단독으로 존립 가능한, 자연과 분리된 근본적인 인식 단위인 개체로서 '개인'이라는 관념을 기의(記意)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는 개체에 선행하는, 人道로 현현되어야 할 '天道'라는 보편적 실재의 인식적 자리가 늘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교가 대대적인 비판에 직면했던 1905년에서 1910년 사이에 4대 종교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와 관련된다.
1910년대 지식인들의 '개인' 개념은 한말 국수론(國粹論)과 연관된 민족유기체(民族有機體) 내에서 '개인' 관념이거나, 적극적으로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과 사회계약설을 부인하는 '개인' 관념이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오륜적 친족-국가 관계망의 성리학적 사회유기체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분자적 '개인'이라는 개체적 인식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사회유기체적 인식에 개인 개념을 결합한 형태가 주류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서구의 유명론(唯名論)적 인식이 사회진화론의 개체적 전제를 통해 유입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소수였지만 개체적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인격적인 천(天) 관념보다 법칙적인 천(天) 관념을 유지했던 경우 1920년 이후에도 자유와 평등을 누릴 가치가 있는 인간의 지위는 노력을 통해 획득되어야하는 존재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While the intellectual group Hakchikang has been recognized as a leading liberal force in previous studies, this article shows that some concepts of the 'individual' in 1910s' Hakchikang lies within the ethnic organism associated with the theory of 'Nationalism'(國粹論). Unlike the intellectuals of the late Joseon Dynasty, such as Yu Gil-joon and Park Young-hyo, their notion of the 'individual' prominently denied 'Natural Right' and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the'. Instead of dismantling the stereotypic social organic worldview of the Neo-Confucianism kinship-state network and forming a new world view based on the individual perception of the molecular 'individual', it shows that the combination of the existing concept of social organism and the concept of the individual was mainstream. Meanwhile there was a case where the western recognition of nominalism was introduced through the individual premise of social evolution theory. Though only a small number expressed it explicitly, it also became an occasion for the spread of individual awar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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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제강점기 문학에 고지(告知)된 '철거명령'

저자 : 박정희 ( Park Jung-hee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7-26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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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에 따른 '빈민철거' 문제에 대한 문학의 대응과 그 의미를 고찰했다. 1930년대 중후반 경성시가지계획의 확정과 그 추진은 이전의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수준을 넘어 대대적인 빈민철거를 야기했으며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식민권력은 시가지의 확장과 도시정화를 통해 '대경성'을 구축하고자 토막민들에게 '철거명령장'을 고지했다. 법질서에 의한 철거명령은 토막민들을 추방과 배제를 통해 '벌거벗은 생명'으로 내몰았다. 토막민들은 '공식적 철거명령'에 저항해 '진정서'를 내거나 시위를 하지만 '토지 불법 점유자'인 까닭에 철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도시 빈민의 삶을 다룬 문학 작품 가운데 '철거' 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하거나 이 문제에 천착한 작품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본 연구에서 주목한 작품들은 경성의 도시화에 따른 대대적인 '빈민철거'의 문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기 문학에 고지된 '철거명령'은 토막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한 고발이나 집단적 저항의 문제를 다루는 차원을 넘어서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특히 토막촌에 고지된 '철거명령'의 상황을 지식인의 '이념철거'의 알레고리적 상황으로 형상화한 염상섭의 「불똥」(1934)과 송영의 『이 봄이 가기 전에』(1937)는 이 시기 '철거명령'에 대한 문학적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여름」(1940)은 식민권력의 '병참기지로서의 도시 건설'과 '철거명령'이 결합된 폭력성의 맨얼굴을 징후적으로 포착하고 있으며, 「군맹」(1940)은 철거민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인물의 몰락을 통해 '벌거벗은 생명'의 출구 없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연구는 그간 다루어진 바 없는 일제강점기의 문학과 철거의 문제를 최초로 다루었다. 식민지 근대성이나 도시화의 보편적인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식민지 주거철거의 특수성을 문학의 차원에서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철거와 문학'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더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considers how literary works responded to the 'demolition of the poor' according to city planning near the end of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zation and what they meant. Confirmation and advancement of town planning in Gyengseong in the middle and late 1930s led to the massive demolition of the poor, which went beyond the previous intermittent level, and became a social problem. The colonial authority notified shanty town inhabitants of 'demolition orders' in order to build 'Great Gyeongseong' by widening up the area and cleaning up the city. The inhabitants were forced out to be 'la nuda vita' by the demolition order, via deportation and exclusion. They resisted the 'official demolition orders' by submitting 'petitions' and by holding demonstrations, but they could not stop the demolition since they were 'illegal occupants'.
Among literary works dealing with the life of the poor in a colonial city, it is not easy to identify works that either focus on or inquire into the 'demolition' problem. The central subject of the works that this study pays attention to is the massive 'demolition of the poor' due to the urban- ization of Gyeongseong at the end of Japanese colonization era. 'Demolition order' notifications appearing in literature at this time make a point beyond revealing the shanty town inhabitants' lives in poverty or dealing with collective resistance. Before This Spring is Over (1937), which approaches the 'demolition order' situation of the shanty towns as an allegory situation of the intellectual's 'ideology demolition', is particularly a representative work that demonstrates the literary developments that came out of the 'demolition orders' of this period. In addition, Summer (1940) symptomatically captures the violence which emerged out of the combination of the 'construction of the city as a logistics base' and 'demolition orders', and Foolish People (1940) symbolizes exitlessness of 'the naked life' through the fall of characters who maximize personal gains using the displaced people's anxiety.
This is the first study to have covered the demolition problem and literary works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dealing with this issue. It is a meaningful investigation of the distinctiveness of the demolition of colonial housing that could not be turned into a universal problem of colonial modernity or urbanization at the literary level. It is expected that interest in 'demolition and literature' will be increased in relation to the history of Korean modern literature as a result of this study.

KCI등재

8종교적 인공지능 시뮬레이션 ― 스타크-베인브릿지와 뒤르켐의 종교적 인지 모형 비교연구

저자 : 박욱주 ( Park Wook Joo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6권 2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1-312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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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물음들 가운데는 인간의 종교성과 관련된 물음이 속해 있다. “과연 인공지능은 종교적 신앙을 재현할 수 있는가?” 본 연구는 종교사회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윌리엄 심스 베인브릿지(William Sims Bainbridge)가 인간의 종교성과 초자연자에 대한 신앙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2006년경 이행한 기계학습 실험을 주요 탐구사례로 선정한다. 그리고 해당 실험에 반영된 인간의 종교성과 신앙에 대한 사회인지 이론, 이를 기계학습 시뮬레이션으로 현실화하기 위해 기획된 시나리오, 실험에 활용된 일부 수학적-통계적 기법과 그 원리에 대한 종교학적 고찰과 반성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스타크-베인브릿지와 뒤르켐의 종교론과 종교적 인지 모형을 비교해 고찰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양측 간 다소 중대한 이견들이 존재하긴 해도, 베인브릿지의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에 반영된 스타크-베인브릿지 종교론의 통찰들은 뒤르켐의 종교학 방법론 관점으로 볼 때 상당부분 타당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원초적 종교성의 발원지를 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수행되는 사회적 행위로부터 찾고, 이를 종교적 인지의 범주적 준거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의 종교적 본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양측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One of the important contemporary questions about the possibilities and limits of artificial intelligence is concerned with human religiosity. “Can artificial intelligence simulate religious faith?” The present study investigates the implications of a machine learning experiment of William Sims Bainbridge, an outstanding researcher in the field of the sociology of religion and cognitive science. He attempted to simulate human religiosity and faith in supernatural beings in 2006. The focus is on three factors: his social cognitive theory to explain human religiosity and faith, a scenario for the actualization of this theory, and a mathematical-statistical strategy and its principles applied to experiment. In this comparative analysis of the Stark-Bainbridge model of religion and religious cognition and that of Durkheim, it is demonstrated that the insights of Stark and Bainbridge found in Bainbridge's artificial intelligence simulation would likely be acknowledged as vali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Durkheimian methodology of religious studies, despite some significant differences between them. Most importantly, it seems certain that what Stark-Bainbridge and the Durkheimian model of religious cognition have in common is that they locate the origin of primitive religiosity in society, in continuous social processes. It also seems certain that they both translate the social processes into the categorizing norms of religious cognition so as to illuminate the religious nature of human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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