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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논총 update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Journal of Humanites

  •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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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598-3021
  • : 2671-7921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6)~77권2호(2020) |수록논문 수 : 935
인문논총
77권2호(2020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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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한국 독립운동과 외국인 독립유공자

저자 : 도면회 ( Do Myoun-hoi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46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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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현재 한국정부에 의해 포상된 외국인 독립유공자는 9개국에 걸쳐 총 89명으로, 중국 40명, 미국 21명, 러시아 11명, 영국 6명, 캐나다 5명, 아일랜드 2명, 일본 2명, 멕시코 1명, 프랑스 1명이다. 이중 한국인 후손 19명을 제외하면 총 70명이다. 이들은 재미 한국 사회, 특히 이승만 중심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구미인, 둘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손문, 황흥, 장개석, 진과부 등 중국 국민당 요인, 셋째, 알렌, 헐버트, 에비슨, 스코필드 등 미국·캐나다 선교사들, 넷째, 베델, 멕켄지, 조지 쇼 등 영국ㆍ아일랜드인과 후세 다쓰지, 가네코 후미코 등 일본인이다. 외국인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승만, 대한민국임시정부, 선교활동 지원자로 국한된 것은,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주의ㆍ아나키즘 계열 독립운동, 이승만과 대립했던 독립운동 단체 등을 포상 대상에서 제외해 왔기 때문이다. 향후 외국인 독립유공자 포상은 지역적으로는 러시아와 중국, 동유럽, 일본으로 확대하고,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ㆍ아나키즘, 이승만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립했던 민족주의 계열까지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As of November 2019, there are a total of 89 foreigners of national merit from nine countries. Apart from 19 descendants of Koreans, their number totals 70. They are mostly missionaries from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Chinese Kuomintang members, and westerners who supported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Foreigners who supported independence movements affiliated with socialism and anarchism and various independence activist groups that opposed Rhee have been excluded from the Korean government's list of rewards. This was due to the division of Korea and the anti-communist pro-U.S. policies of the previous Korean governments. In order to achieve peace and 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foreign independence fighters should be found and acknowledged more widely. It should be expanded, geographically, to those Russia, China, Eastern Europe, and Japan locally ideologically to include socialists and anarchists, as well as nationalist groups, that were at odds with Rhee and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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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중국인 독립유공자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 사례 분석 ― 황줴(黃覺), 두쥔훼이(杜君慧), 쓰투더(司徒德)를 중심으로

저자 : 문미라 ( Moon Mira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7-7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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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서훈을 받은 중국 국적 독립유공자들은 대부분 중국국민당 계열 인사로 분류할 수 있다. 수많은 한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국민당이 오랜 기간 한국독립운동을 지원ㆍ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중국인은 다양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당 계열 이외의 인사와 활동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국민당의 지원 전체가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으로 이해되는 경향도 적지 않았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중국인 독립유공자 세명을 선정하고 그들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 활동을 살펴보았다. 국민당 계열 인물이지만 사회주의ㆍ아나키즘 성향을 가진 한인 독립운동가들과도 함께 활동했던 황줴(黃覺)는 국민당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한 인물의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두쥔훼이(杜君慧)를 통해서는 누군가의 아내나 보조자가 아니라 또 한 명의 '온전한' 독립운동가로서의 위상을 찾아줄 필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쓰투더(司徒德)와 중한문화협회는 국민당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을 현대 한중 관계라는 더 큰 시야 속에서 분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의 면면을 분석하는 작업은 중국인들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 전체상을 새롭게 조망하는 데 일조하고, 나아가 한국 독립운동에 협력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중국인 발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Most of the Chinese independence patriots, who were honored for their support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were known as Guomindang affiliates. In the process of numerous Koreans moving to China and supporting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Guomindang had long supported the movement. However, the Chinese who helped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came from various backgrounds and contexts; personnel and activities outside the Guomindang were relatively unknown. Also, there has been a tendency to regard the support of the Guomindang as support for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this regard, the current study selected three Chinese independence patriots who have not been acknowledged to date and examined their support activities for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uang Jue (黃覺), who was a member of the Guomindang but worked with socialism-and anarchism-oriented Korean independence activists dem- onstrated the need to actively evaluate various practices of a person beyond the framework of the Guomindang. The case of Du Junhui (杜君慧) called for the necessity to appreciate an independent activist as a 'full' figure, rather than as someone's wife or assistant. Finally, Si Tude (司徒德) and the China-Korea Culture Association suggested that the support of the Guomindang's independence movement of Korea could be analyzed in a larger framework of modern Korea-China relations. These examples can provide a new view of the Chinese people's overall support for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further contribute to discovering the existence of unacknowledged Chinese who cooperated with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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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공 동북당 조직의 조선민족항일혁명투쟁 인식과 방침 정책

저자 : 김성호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1-12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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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지역의 조선민족은 19세기 중엽부터 조선반도에서 월경천 입하여 점차 형성된 새로운 한개 소수민족이다. 1910년 8월 조선이 일본에게 강점당한 후 조선의 애국지사들은 분분히 중국 동북지역으로 건너와 조선민족 이민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반일민족투쟁을 계속 진행하였다. 1921년에 탄생한 중국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의 민족이론을 준수하여 시종일관하게 각 민족의 평등, 단결과 해방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바, 최초부터 동북 조선민족의 항일투쟁에 대하여 동정하고 지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1930년 이래 동북조선민족 공산주의자들은 공산국제의 “일국일당”(一国一党) 조직원칙과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이 이미 해체된 상황에 근거하여 그들 대부분이 개인 신분으로 중공 동북당조직에 가입하여 중국혁명에 직접 참가하였다. 중국공산당은 동북조선민족공산주의자들을 통일영도하여 장기간 항일혁명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선민족을 진일보로 요해하고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경험교훈을 부단히 접수하면서 점차적으로 동북조선민족의 역사특점과 그들의 항일혁명특수성에 완전히 부합되는 일련의 정확한 방침정책들을 제정하고 실행하게 되었다. 그 주요한 내용은 조선민족 간부들을 충분히 믿고 중용하며 조선반일민족독립해방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장차 동만(东满, 지금의 연변지역)에서 일제식민통치를 뒤엎고 조선민족“자치구”를 건립할 것을 제출한 것 등이다. 중국공산당의 통일적인 영도 하에서 조선민족공산주의자들은 중국 동북혁명과 조선혁명을 모두 완성해야 하는 “두 개의 혁명사명”(双重革命使命)을 짊어지고 동북의 여러 민족들과 긴밀히 단결하여 어깨 겯고 함께 싸우면서 동북항일혁명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큰 역할을 하였으며 돌출한 공헌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점차 김일성 장군을 위수로 한 조선공산주의혁명의 견강한 영도핵심역량이 형성되었으며 중국 조선족사회의 제1대 혁명간부들이 양성되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정확한 민족정책을 제정하고 집행하여 온 위대한 투쟁역사이며 동북 여러 민족이 대단결을 실현하고 함께 항일혁명승리를 취득한 빛나는 역사 과정이며 동시에 중조 두 나라 인민들이 함께 동방 반파쑈 전쟁터에서 어깨 겯고 싸워 선혈과 생명으로 중조 두 나라의 “동지와 형제”의 견실한 우의친선을 마련한 귀중한 역사기록이기도 하다.


中国东北的朝鲜民族是19世纪中叶开始从朝鲜半岛越境迁入而逐渐形成的新的少数民族。1910年朝鲜被日本强制吞并之后, 朝鲜爱国志士们纷纷转移到中国东北地区, 以朝鲜民族移民社会为基础, 继续进行反日民族斗争。1921年成立的中国共产党, 诞生伊始就遵循马列主义的民族理论, 始终如一地为了实现各民族平等, 团结和解放而努力奋斗, 一开始就对东北朝鲜民族的抗日斗争坚持同情和支持的认识和方针。
1930年以来, 东北朝鲜民族共产主义者根据共产国际的 “一国一党”组织原则和朝鲜共产党中央组织业已解体的实际情况, 大都以个人身份加入中共东北党组织, 直接参加了中国东北革命运动。中共东北党组织在统一领导东北朝鲜民族共产主义者进行长期的抗日革命运动中, 进一步了解和正确认识朝鲜民族, 并且不断地接受其经验教训, 逐步制定和贯策执行了基本符合东北朝鲜民族历史特点及其抗日革命特殊性的一系列正确的方针政策。其主要内容是充分信任和重用朝鲜民族革命干部, 积极支援朝鲜反日民族独立解放运动, 主张在中国朝鲜民族聚居地东满地区推翻日帝殖民统治, 将建立朝鲜民族 “自治区” 等。
在中国共产党正确的统一领导下, 东北朝鲜民族共产主义者肩负要完成中国革命和朝鲜革命的 “双重革命使命”, 与东北各族人民紧密团结, 并肩战斗, 并在东北抗日游击战争中占有重要的地位, 发挥重大的作用, 做出了突出的贡献。在这一过程中逐步形成了以金日成将军为首的朝鲜共产主义革命久经考验的坚强的领导核心队伍, 也培养了中国朝鲜族社会第一代革命干部群体。
这一段历史是中国共产党制定和执行正确的朝鲜民族方针政策的伟大的斗争历史, 是东北各族人民实现大团结, 共同取得抗日革命胜利的光辉的历史记录, 同时, 是中朝两国人民在东方反法西斯战场并肩战斗, 共同用鲜血和生命奠定中朝两国革命 “同志加兄弟” 的坚实友谊关系的宝贵的历史过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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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30년대 전반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의 사회운동과 그 역사적 의미

저자 : 미즈노나오키 , 조은진(역)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1-164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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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지배기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은 조선인과는 동떨어진 생활환경 속에서 식민지 지배자로서 존재했는데,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전반에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기소되는 일본인이 비록 소수지만 등장했다. 재조일본인 가운데도 직공, 노동자로서 일하는 자가 일정한 비율로 존재했고,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조선에서 태어나거나 조선에서 자란 재조일본인 2세가 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과 접할 기회를 가져 조선인을 대등한 존재로 여기는 동시에 식민지 사회의 모순에 눈을 돌려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1929년에서 1934년 사이에 치안유지법 위반 용의로 58명의 일본인이 검거되어 그 가운데 34명이 기소되었다. 이들 검거 사건은 일본인 단독 활동, 일본인이 주체가 된 그룹 활동, 조선인이 주체가 된 운동에 참가 등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이들 검거자 대부분이 직공, 고원·용인 등 중하층 노동자이거나, 경제적으로 곤궁한 가정에서 자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 사회운동은 식민지 지배에 비판적인 인식으로부터 그 변혁을 지향하는 주장이나 일본의 대륙침략에 반대하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재조 일본인의 사회운동은 극히 미약하여 식민지 지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식민지 사회에서 지배자의 지위에 있는 재조일본인의 일부가 식민지 지배를 비판·부정하는 활동을 벌였다는 사실과 그 역사적 의미는 인식·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植民地支配期の朝鮮に居住する日本人は朝鮮人とは隔絶された生活環境の中で、植民地の支配者として存在していたが、1920年代末から1930年代前半の時期には治安維持法違反で検挙、起訴される日本人が僅かだが見られた。在朝日本人の中にも職工·労働者として働く者が一定の比率で存在しており、社会的に低い階層に属する者もいた。また、朝鮮生まれ、あるいは朝鮮育ちの在朝日本人2世が増えていた。このような状況の中で朝鮮人と接する機会を持ち、朝鮮人を対等な存在とみなすと同時に、植民地社会の矛盾に目を向けて、それを解決しようとする者も現われた。
各種の資料によれば、1929年から1934年までの間に治安維持法違反容疑で58名の日本人が検挙され、そのうち34名が起訴された。これらの検挙事件は、日本人単独の活動、日本人を主体とするグループの活動、朝鮮人主体の運動への参加の3つに分類することができる。また、これら検挙者の多くが職工、雇員·傭人などの中下層労働者であるか、経済的に困窮する家庭の育ちであったことを指摘することができる。
これらの社会運動の中では、植民地支配に批判的な認識からその変革をめざす主張や日本の大陸侵略に反対する主張が掲げられることもあった。
在朝日本人の社会運動はきわめて微弱であり、植民地支配に影響を与えることもほとんどなかったが、植民地社会において支配者の地位に立つ在朝日本人の一部が植民地支配を批判·否定する活動を行なったという事実とその歴史的意味は、認識、確認されるべき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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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깨비와 사귀어 덕보기>의 설화권 설정 시론(試論)

저자 : 이혜란 ( Lee Hye Ra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7-208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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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깨비와 사귀어 덕보기>의 설화권역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방언권과 민속권의 비교를 통하여 그 설화권을 공고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도깨비와 사귀어 덕보기>의 변이를 토대로 가설로 제시한 설화권역을 공고히 하고자 한 것은 해당 설화가 문화권이라는 특정 공간 속에서 오랜 기간 삶과 문화를 공동으로 축적해 온 공동체의 특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특성이 해당 설화에 나타나는 '문화적 표현'의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제시된 설화권역이 가설이기 때문에 그 경계 또한 어설프게 존재할 수 있다. 때문에 방언권과 민속권의 비교를 통해 그 경계의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각 설화권역의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 각편의 변이를 도출하여 지도에 기호화하였다. 해당 설화는 주인공이 '도깨비를 만나는 과정'과 도깨비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도깨비를 퇴치하는 과정'이 활발한 변이를 보이며 전승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도깨비를 만나는 과정'에서는 주인공과 도깨비와의 '만남 매개'와 '만남 계기'가 활발한 변이를 보이고 있으며, '도깨비를 퇴치하는 과정'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도깨비의 대응'이 활발한 변이를 보이며 해당 설화의 유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지도에 기호화한 결과 해당 설화의 권역을 평안도 일대로 구분되는 < 권역 A >,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를 아우르는 < 권역 B >, 전라도에 해당하는 < 권역 C >, 경상도에 해당하는 < 권역 D >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제시한 설화권역이 가설이기 때문에 <도깨비와 사귀어 덕보기>에서 표현되는 '여위다'의 방언 분포도와 방언권역과의 비교를 통하여 그 권역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더불어 <도깨비와 사귀어 덕보기>는 아직까지 15세기 어형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같은 대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민속권과도 비교하였다.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는 도깨비고사를 토대로 지도에 기호화하여 그 분포를 확인한 결과 < 권역 B >에서는 도깨비가 '섬김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는 반면 < 권역 C >에서는 '퇴치의 대상'으로서의 도깨비가 우세하게 전승되고 있어 <도깨비와 사귀어 덕보기>의 유형을 형성하고 있다고 추론하였다. 때문에 문화권이라는 특정 공간 속에서 설화 또한 공동체의 특성을 담아 변형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설화에서도 최소한의 '문화적 표현방식'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This paper aims to come up with a hypothesis on the regional tale zone in the motif of < getting on well with doggaebi and getting benefits > and solidify the concept of the kulturkreise through the comparison of dialect regions, boundaries between two distinct linguistic regions and the areas of folklore. The main reason for the attempt to solidify the concept of the kulturkreise presented as a hypothesis based on variations of the motif of < getting on well with doggaebi and getting benefits > is that the tale of this type retains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mmunity, which has accumulated forms of life and culture in a specific locality over a long period of time. These characteristics of the community are a part of the 'cultural expression' presented in the tales. However, as the concept of the kulturkreise is a hypothesis, the boundary line can be blurry. That is why this paper attempts to prove the validity of the boundary through the comparison of the regions of dialect and the regions of folklore.
In order to identify the boundaries of each area of culture, the variations of each version are derived and marked with signs on the map. The process in which 'the hero comes across the doggaebi', accumulates wealth by taking advantage of the doggaebi and gets rid of the doggaebi, shows a wide range of variety; furthermore, in the process of getting rid of the doggaebi, the countermeasures of the doggaebi against the hero are varied and comprise the type of tales. The areas of the corresponding tales are demarcated and presented as follows: region A comprising Pyeongan-do, region B comprising Gyeonggi-do, Gangwon-do, and Chungcheong-do, region C covering Jeolla-do, and region D covering Gyeongsang-do.
As the concept of the regional tale zone is hypothetical, by comparing the distribution of the dialect variations of the word “yeowida” with the regions of dialect, it is confirmed that the two regions overlap. In addition, the forms of the words of the 15th century are still used in < getting on well with doggaebi and getting benefits >. By marking signs on the map based on the doggaebi-gosa now in decline and identifying their distributions, in Region B, it is possible to establish that the doggaebi appears as “the object of serving”, while in Region C, the concept of doggaebi as 'the objective of eradication' is dominantly passed down to posterity, and is presumed to contribute to formation of the type of < getting on well with doggaebi and getting benefits >. Therefore, this paper confirms that tales express the characteristics and transform them in a specific locality, and comes up with the possibility of at least finding out 'the method of cultural ex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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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재난 이후 인문학적 실천 ― 세월호의 '바람'에게

저자 : 한순미 ( Han Soonmi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9-245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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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트라우마는 미디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염되었고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의 변화를 긴급하게 촉구했다. 이 글의 목적은 세월호 이후 인문학의 영역에서 어떤 쟁점들이 제기되어 왔는지를 세월호 전과 후에 출간된 몇 편의 논문과 저서, 매체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2장에서는 세월호 이후 낯선 구조를 지닌 문장들이 출현하고 있는 현상을 읽고, 몇몇 개념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사유가 출현하게 된 맥락을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세월호, 5ㆍ18 광주, 아우슈비츠, 후쿠시마 등의 교차점에서 어떤 사유와 글쓰기의 실천해 왔는지를 읽어본다. 마지막 4장에서는 세월호 이후 애도와 치유를 위한 노력의 한계를 짚어보면서 마무리할 예정이다. 다양한 재난들로 인한 개념과 인식의 변화를 계보학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은 향후 수행할 과제로 남겨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인문학의 영역에서 제기한 논의들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난 재난들에서 무엇을 어떻게 다시 진단하고 성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안겨준다. 분명한 것은 자연적, 사회적, 역사적 재난들이 한 국가라는 범위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몸은 재난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이다.


After the Ferry Sewol disaster, trauma was quickly transmitted through the media and urgently called for a change in cognition that something had to be done.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look at what issues have been raised in the realm of humanities since Ferry Sewol, focusing on several papers, books and media published before and after Ferry Sewol.
First, in Section 2, we read about the emergence of sentences with unfamiliar structures since Ferry Sewol and looked at the context in which new issues emerged by reinterpreting some concepts. In the following Section 3, we analyze what thinking and how writing has been practiced at the intersection of other historical and social disasters such as Ferry Sewol, 5ㆍ18 Gwangju, Auschwitz and Fukushima. The final Section 4 will conclude by pointing to the limitations of forgiveness, mourning and healing efforts after Ferry Sewol. The task of genealogically exploring changes in concepts and perceptions caused by historical and social disasters remains a task to be carried out in the future.
Discussions raised in the realm of humanities after the Ferry Sewol disaster give rise to new concerns about what and how to re-diagnose and reflect on disasters in East Asia and around the world. What is clear is that natural, social and historical disasters are not issues to be dealt with within the scope of a cross-border. In this regard, our bodies are a community connected by dis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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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성에서 평화로 ― 김기림 문학의 일본어 번역과 전망

저자 : 다카하시아즈사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7-286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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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 시기로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김기림 문학(시, 수필, 평론)의 일본어 번역 상황을 검토하고 그 전망을 제시하였다. 우선 김기림의 문학은 식민지기에 출판된 김소운의 『젖빛 구름』과 『조선시집』에 실렸다. 김소운의 번역은 일본 서정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결과 일본 독자 역시 이 시집들에 실린 김기림 시를 서정시로 읽었을 것이다. 특히 김소운의 『조선시집』은 해방 후 창원사(1953년)에서 다시 출판되었고 이어서 이와나미서점(1954년)에서 거듭 간행했기 때문에, 김기림의 시를 서정시로 이해하는 시각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다른 한 편, 출판 부수와 유통 범위는 한정되어 있었지만 재일조선인 지식인과 조선 문학에 진지한 관심을 갖추었던 일본인들은 『조선시집』에 실려지지 않은 김기림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김기림의 새로운 면모를 일본에 소개하였다. 재일조선인 시인 허남기는 제국 일본에 저항의 자세를 유지한 시인들의 시를 모아서 『조선시선』(1955)을 간행한다. 김기림이 월북작가라는 사실 또한 허남기의 시집을 통해 일본에 소개되며, 그의 시 역시 일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한편 본격적으로 조선문학을 연구한 일본인들이 조직한 '조선문학의 회' 회원들은 문학사적인 관심으로 김기림 시를 번역하였다. 연구자 오무라 마스오가 대표적인 번역가이며, 그는 일본에서 김기림을 모더니즘 시인으로 소개하면서 그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2000년대 이후 김기림에 대한 일본의 이해는 이전 보다 다양해졌다. 아오야기 유우코는 단행본 『조선문학의 지성 김기림』(2009)을 통해 김기림 문학(시, 수필, 평론)을 체계적으로 번역하였다. 아오야기는 식민지시기와 해방 후의 김기림을 연속적으로 파악하여 그 문학의 전체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는 김기림의 '지성'이 서양 모더니즘 문학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완전히 서양과 일본 모더니즘 문학을 추수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갖추었다고 평가하였다. 나아가 김기림의 '지성'이 해방 후 새로운 민족 문학을 추구했던 그의 활동으로 이어지는데, 해방 후 김기림의 문학적 실천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상황 속에 수행되었기 때문에, 아오야기는 김기림의 해방 후 활동을 '평화에의 소원'이라고 평가했다. 김기림에 대한 아오야기의 재평가는 이후 김기림을 “근대라는 거친 파고를 넘어 큰 바다로 향했던 한 마리나비”로 기억하는 센다이의 기념비 설립 및 각종 행사로 계승되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은 김소운의 『조선시집』에 수록된 식민지 조선의 시를 충실히 다시 번역하여 『재역 조선시집』(2007)을 출판했다. 김기림의 시 역시 다시 번역되었으며, 『재역 조선시집』을 통해 김기림의 시는 일본 서정시의 특징을 지닌 시가 아니라 모더니즘 시인의 작품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김기림의 기행문 「간도기행」의 번역이나 한국의 식민지 모던걸에 관한 연구서의 번역을 통해서 저널리스트로서 김기림의 면모 역시 일본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최근 도호쿠대학 내에 김기림 기념비가 건립된 것에서 볼 수 있듯, 김기림 문학의 여러 면모가 드러나면서 앞으로 일본에서 김기림 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확산과 새로운 연구 네트워크의 형성 가능성 역시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김기림의 일본 유학 경험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면 서구 모더니즘과도 구별되고 제국 일본의 사상과도 구별되는, 식민지 조선의 '지성' 김기림의 문학과 사상이 보다 입체적으로 연구되기를 기대한다.


本稿では、朝鮮の植民地期から2010年代にかけて行われた金起林文学(詩、随筆、評論)の日本での翻訳状況について提示し、金起林文学の翻訳がどのような研究のネットワークを形成するかについて考察した。まず、金起林の詩は削除金素雲の『乳色の雲』 (1939年)と『朝鮮詩集』(1943年)に収録された。金素雲の翻訳は、日本の抒情詩の美しさが表現されたものとして高く評価されたため、日本の読者もこれらの詩集に収録された金起林の詩を抒情詩として読むことになったと考えられる。さらに、金素雲の『朝鮮詩集』は解放後に創元社(1953年)と岩波書店(1954年)から再び刊行された。岩波文庫の『朝鮮詩集』は今日でも版を重ねて出版されているため、日本では金起林の詩は抒情詩的な特徴を持つ作品として位置づけられてきたといえる。
一方で、1950年代以降には、出版部数と書籍の流通の規模は限られていたが、在日朝鮮人知識人と朝鮮文学に関心を持ちながら研究を行っていた日本人が 『朝鮮詩集』に収録されていない金起林の作品を翻訳し、これまで知られていなかった金起林の新たな面を日本の読者に示すことになった。在日朝鮮人詩人許南麒は、帝国日本に抵抗し続けた朝鮮の詩人の作品を集めて『朝鮮詩選』(1955年)を出版したが、そこには金起林の作品も収録された。許南麒の『朝鮮詩選』では、金起林が越北作家であるという背景が紹介されるとともに、金起林の詩の中でも日本への抵抗的な姿勢が目立つものが翻訳された。また、朝鮮文学の翻訳と研究を行っていた 「朝鮮文学の会」の会員らは、文学史的な関心から金起林の詩を翻訳した。同会の会員で、朝鮮文学研究者の大村益夫は、金起林の詩を翻訳するとともに、金起林がモダニズム詩人であるということを日本の読者に紹介した。
2000年代以降には、日本においてより多様な金起林文学の翻訳が行われるようになった。青柳優子は、金起林の著作(詩、随筆、評論)を体系的に翻訳し、『朝鮮文学の知性 金起林』(2009)を出版した。青柳は金起林が植民地期から解放後にかけて新たな文学を確立しようとしていたことに注目した。具体的には、金起林の「知性」が西洋のモダニズム文学を追随するのではなく、むしろ「知性」をとおして日本への批判的な視座を獲得することになり、さらにその「知性」は解放後には新たな民族文学を追求する活動へとつながったとした。そのような金起林の実践が朝鮮半島の分断状況の中で行われたため、青柳は金起林の解放後の活動を「平和への願い」として高く評価した。金起林をめぐる青柳の再評価は、「近代という荒波を越え大海原に向かった一羽の蝶」として金起林を追悼する仙台·東北大学の金起林記念碑や、記念碑の建立をきっかけに開催されたさまざまなシンポジウムや企画展などにおいて継承されていった。
また、2000年代には在日朝鮮人詩人金時鐘が金素雲の『朝鮮詩集』に収録された詩を原作に忠実に翻訳し、『再訳 朝鮮詩集』(2007年)を出版した。『再訳 朝鮮詩集』をとおして、金起林の詩は日本の抒情詩的な特徴を持つものではなく、モダニズム詩人の作品として提示されることになった。また、翻訳家斎藤真理子による金起林の紀行文「間島紀行」の翻訳や、韓国における植民地のモダンガールをめぐる研究書が日本語に翻訳されたことで、金起林をめぐるジャーナリストという面が新たに注目されはじめた。
このように、日本では金起林について多様な角度から翻訳と研究が進められつつある。また、2018年に東北大学に金起林記念碑が建立されたことをきっかけにさまざまなシンポジウムや展示が行われたように、今後日本において金起林文学への関心がより高まり、新たな研究のネットワークが形成されることが考えられる。さらに、金起林が日本に留学していた時期についての研究が進めば、これまで西洋と日本のモダニズム文学と共に論じられることが多かった金起林の「知性」について、また別の角度から接近することが可能にな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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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본의 '국수주의'와 '일본주의'의 진폭 그리고 '번신'(翻身) 제국주의

저자 : 전성곤 ( Jun Sung Kon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7-32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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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일본이 국수(国粋)를 어떠한 방식으로 맥락화하여 국가주의의 논리를 합리화했는가 그 변용과정을 설명해내고자 한다. 일본은 내셔널리티(Nationality)를 '국수'라고 번역하면서, 국가주의를 창출해냈고 이 국가주의 논리에 침잠하게 되면서 그것으로부터의 탈맥락화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국수'의 세계화(worlding) 프로세스 속에 '내재한 원리'를 밝혀내는 것은 일본 국가주의 사유구조를 밝히는데 있어서 매우 유의미하다고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국수를 사용하면서 반서구화와 반한학(漢學)이라는 제3의 입장을 지향하면서 출발했다. 서구의 내셔널리티를 국수로 번역하고, 이 국수라는 용어를 국수주의, 일본주의 변용시켜가면서 국가주의나 제국주의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의 근거는 인간의 자유ㆍ해방ㆍ개인 인식의 각성을 해결한다는 '보편적 세계성'을 지향한다는 점에 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수주의에서 일본주의로 나아가면서 만들어낸 세계주의는 '국민 도덕론'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론을 통한 전체주의'로 귀착해간 것이다. 즉 역설적으로 '세계화 문맥'은 '국가주의 = 제국주의'의 공정화(公定化)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본 논고에서는 서구 이론들이 가진 '개념'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그 서구어를 모국어와 접목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세계성'을 살펴보고, 어떻게 '주체'를 설명하는지를 살펴본다.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서 '개인의 각성'에 주목하여, 국수주의와 일본주의라는 지반을 형성하는 논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만들어낸 지적 논리는 서구의 셸링(Schelling),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영향과 왕양명의 양지(良知)이론, 그리고 그린(Green)과 니체(Nietzsche)의 논리를 니치렌(日連)과 접목시키면서 만들어낸 세계관이었다. 그 세계관은 국수주의나 일본주의, 그리고 세계주의의 진폭 속에서 만들어낸 '세계적 시각'이었던 것이다. 즉 서구로부터 빌려온 '세계주의'를 내부의 '국민주의'와 '황조'(皇祖)를 상속하는 부자연스러움 속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이 부자연스러움을 인지하는 주체를 찾기 위해서는 바로 국수주의가 번신(翻身)하여 '국가주의 =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세계' 속에서 '세계'를 탐구한 것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how Japan recontextualized nationalism to rationalize the logic of imperialism and identifying the transformation process. In the view of the researcher, Japan created its own nationalism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nationality” as kokusui (国粋, lit. national characteristic) and giving the concept new meanings. Therefore, engrossed in its own logic of nationalism or imperialism, Japan has not yet reached the stage of decontextualization. In this respect, identifying which principle is intrinsic in Japan's worlding process of chauvinism is thought to be significant in revealing the thought structure reflected in Japanese imperialism. Japan's chauvinism and Japaneseism were born from an attempt to overcome the ambivalent position of anti-Western and anti-Chinese study. The concept of 'nationality' in the West was translated as kokusui, and the term was taken from the standpoint that it is irrelevant to imperialism and nationalism. In this context, it was claimed that the term connoted the pursuit of cosmopolitanity as a solution to the problems related to human freedom, liberation and awakening. Nevertheless, the worlding context created based on chauvinism and Japaneseism was a process centered on Japan and served the rationalization of totalitarianism and the justification of imperialism. This process led to the birth of the new concept of cosmopolitanism, which was national morality, and this ultimately resulted in totalism based on morality. To elaborate on this process, this paper first examines the attitude of accepting the concepts of Western theories and the cosmopolitanity found in the way of grafting the Western concepts onto the native language, and how it explains the matter of the subject. This approach will enable to identify the logic that forms the foundation of Japanese chauvinism and Japaneseism, with a focus on the issue of individual awakening as a universal human issue. The intellectual logic that gave birth to Japanese chauvinism and Japaneseism was a new worldview forged by combining Wang Yangming's theory of liangzhi (良知, lit. original knowing) and the thoughts of Green and Nietzsche with Nichiren Buddhism, under the influence of Schelling and Schopenhauer. This worldview was thus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created under nationalism, Japaneseism and cosmopolitanism. That is, it was conceived by the unnatural connection of cosmopolitanism borrowed from the West to the internal nationalism and emperor system. To find a subject that can recognize this unnaturalness, there is a need for the awareness of the process where this chauvinism was transformed into a means to explore the world in the world system of the time that was towards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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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현창(顯彰) ― 베트남의 '기억 공작'은 어떻게 가동되는가

저자 : 마틴그로스하임 ( Martin Grossheim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27-356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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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역사'는 여전히 공산당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기억 공작'(memory machine)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선전된다.
본 논문에서는 베트남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기억 공작'의 양상을 두 가지 사례 연구를 통해서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2017년에 베트남에서 거행된 러시아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식이며, 두 번째 사례는 베트남 역사 교과서 속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묘사 방식이다.
베트남에서는 지난 20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식을 장중하면서 정통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와 동시에 사실상 베트남 공산당의 역사적 관점과 해석을 선전하는 독점 매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20세기의 베트남 역사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수립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세계 사회주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 위치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In this article I claim that history is still an important source of legitimacy for the Communist Party of Vietnam. The 'correct view' of history is propagated and defended by a 'memory machine'.
To illustrate the inner workings of the Vietnamese I present two case-studies: the commemoration of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Russian October Revolution in 2017 in Vietnam and the representation of the history of socialism in Vietnamese history textbooks.
I show that by celebrating anniversaries such as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Russian October Revolution in orthodox ways and by preserving the monopoly of the propagation of history via textbooks used at schools and university Vietnam's history in the twentieth century is still presented as part of the world history of socialism and as being deeply inspired by the construction of socialism in the Soviet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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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토마스 아퀴나스의 경제 정의 사상 ― 가격이론과 대부이론을 중심으로

저자 : 김율 ( Kim Yul )

발행기관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간행물 : 인문논총 77권 2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7-385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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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토마스의 가격이론과 대부이론을 중심으로 그의 경제 정의 사상을 일별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정의로운 가격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과 그의 대부 금지 논변이 하나의 공통된 통찰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하려 한다. 두 이론을 연결시키는 공통된 통찰은 '소유하지 않은 것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도덕률로 표현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일실이익(逸失利益)에 대한 요구권의 부정으로 나타난다. 토마스의 가격이론에서 나타나는 정의로운 가격 결정의 이중적 원리는 그의 대부이론에서 실질손실과 일실이익의 구별로 이어지게 된다. 토마스는 일실이익에 대한 요구권을 단호하게 부정하지만, 실질손실에 대한 요구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양자를 구별해서 취급하는 토마스의 태도는, 윤리신학의 관점과 경제 현실 간의 긴장을 인정하고 양자를 조화시키려는 입장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The goal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omas Aquinas's thought on economic justice based on his theory of the just price and usury. This paper insists that his theory of the just price and that of usury are intrinsically connected by sharing one common moral precept that nobody may not sell what he does not have. Aquinas's double principle for determining just price leads to his distinction between damnum emergens and lucrum cessans in his theory of usury. Aquinas approved the claim on damnum emergens whereas he negated the claim on lucrum cessans. Aquinas's treatments of damnum emergens and lucrum cessans shows that he was well aware of the tension between the doctrine of moral theology and the reality of economic life and that he attempted to reconcile this 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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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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