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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일본학 update

THE HALLYM JOURNAL OF JAPANESE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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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6)~33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349
한림일본학
33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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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일본의 지방창생의 현황 : 앞으로의 한국지역정책에의 시사를 중심으로

저자 : 김현선 ( Hyun-sun Kim ) , 네모토나오키 ( Naoki Nemoto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5-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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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구는 2008년의 12,808만명을 기점으로 감소의 길로 들어섰다. 이러한 상황속에서2014년 9월 3일에 발족된 제2차 아베내각(개조)이 최우선 과제로 언급한 정책이 바로 '지방창생'이며,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거론되어진 것이 이른바 '마쓰다 레포트('마쓰다 쇼크'라고도불린다.)'이다. 이에 따르면, 2040년까지 인구재생생산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젊은여성(만20세에서 만39세의 여성인구)이 50%이상 감소하는 시정촌은 약1,800자치단체 중 896자치단체에 달할것으로 추계하고, 이들을 '소멸가능성도시'라고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소멸가능성도시로 지명된 896자치단체는 물론 일본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를 '지방소멸론'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지방소멸론은 한국에서도 소개되어, 일본과 같은 방법으로 인구시뮬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한국보다 먼저 시작된 일본의 지역정책, 특히 지방창생에 대해서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본 후(국가의 시점에서 접근), 하코다테시와 토쿠시마현의 카미야마쵸 2곳의 사례를 검토함으로서(지역의 시점에서 접근), 향후의 한국지역정책의 방향성을 고찰한다.
다음의 3가지를 강조한다. ①국가는 인구문제를 그 원인으로 하고 있는 지역정책을 보다장기적인 시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단기간의 인구증가정책은 자치단체간의 경쟁만을 불러일으킬 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 국가보조금이라는 조건하에 자치단체를 획일화시키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②자치단체는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물적자원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것을 종합적으로 활용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즉, 국가보조금이라는 조건에 지역정책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그 지역에 맞는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③시민은 자신들이 지역정책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공유/공감해야 한다. 즉, 지역이 안고 있는 과제를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과제로서 받아드리는리얼리티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국가, 자치단체, 시민이 해야 할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가 정책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책에 임할 때, 인구문제를 원인으로 하는 지역정책은 조금씩 그 성과를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의 지역정책(공공시설/인프라 건설을 중심으로 한 하드면의 강화)과는 달리, 현재의 지역정책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시민의식의 향상 및 시민의 공감형성(생애학습을 통한 소프트면의 강화, 상기③)일 것이다. 그리고 국가(행정)와 시민사이에 위치하는 NPO는 앞으로의 지역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Japan's population has been steadily declining since it reached a peak of 12,808 million in 2008. In the midst of this decline, the 2nd Abe Cabinet (Reshuffled) launched its Regional Revitalization Policy and made it as the top priority. This policy, which was implemented on 3 September 2014, was triggered by the so-called 'Masuda Report' (also known as the 'Masuda Shock'). The report estimated that the population of young women aged 20 to 39 living in suburban and rural areas would fall to more than half of its current number by 2040. In theory, therefore, many communities in Japan would invariably go extinct as a result of the decline. According to this theory, of 1800 municipalities in the nation, 896 regions face this extinction.
In this paper, we refer to this theory of rapid population decline in local community as 'Regional Extinction'. The 'Regional Extinction' theory was also introduced to Korea, where the similar population decline has been experience. The population simulation has been implemented in the same way the 'Masuda Report'used.
In this paper, we study the overall contents of the Regional Revitalization Policy, as well its related strategies, from the perspective of a central government. Following which, we will examine two specific cases, Hakodate and Kamiyama Town in the Tokushima Prefecture, from the perspective of a local government. As Japan implemented its strategies before Korea, we will use our findings to provide the direction of the regional revitalization policy that Korea should take.
We emphasize the three following points: ①As the extinction of regions arises from population problems, the central government should approach the regional policy from a long-term viewpoint. In other words, a short-term population growth policy, which only serves to promote competition between local governments, should not be the primary solution. The government should also reconsider its policy of distributing national subsidies uniformly across all municipalities. ②Local governments must not only know available resources, but also understand the skillsets of their people. Following which, they should promote the policies that make full use of these human resources. In other words, local policies should not be arbitrarily made to fit the conditions dictated by central government subsidies. Rather, it is necessary to plan a policy that fits the region, even if it takes longer time. ③ Citizens must recognize themselves as the main player of the regional policy and take ownership of it. In other words, it is necessary to create an environment where local issues are challenged by citizens themselves.
The central government, local governments and citizens have different role to play. However, when each group recognizes their irreplaceable role and takes ownership of the regional policy, the population issue can be dealt with slowly but steadily. Unlike the past regional policies, which centered around strengthening public facilities and infrastructure construction, which is required the current regional policy, is the improvement of civic consciousness and the development of empathy among citizens ③through the soft strategy of lifelong learning. The NPO, which works in cooperation with the central government (or the local government), and the citizens, will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regional policy of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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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간에 속박된 사람들 - 식민지 조선의 민사 법제와 공통법 -

저자 : 이정선 ( Lee Jeong-seon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9-6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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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을 중심에 놓고 공통법의 제정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이법지역과 본적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사람을 구별하는 일본의 제국 법제 형성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분명해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통법에서 말하는 '당사자가 속한 지역'이란 호적의 소재지인 본적지를 말하며, 본적지가 내지, 조선, 대만 가운데 어느 지역에 속하는지에 따라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이 구별되었다. 둘째, 이러한 공통법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법률로서, 내지와 식민지들이 이법지역을 이루는 국가 시스템을 뒷받침했다. 셋째, 제국 본토인 내지와 식민지 조선 사이에는 명백한 위계가 존재했다. 헌법이 온전히 시행되는 내지라는 공간은 중국인과 식민지민의 이주를 억제함으로써 일본인 및 문명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속지적 통치를 표방할 수 있었고, 이미 유입된 이들을 차등 대우하는 법령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보유했다. 반면 사실상 헌법 중 일부만 시행되는 공간인 식민지는 지배 민족인 일본인의 유입을 환영했다. 그들이 기존 인구를 능가해 식민지에서 인구의 다수를 점할 때 비로소 식민지도 헌법이 시행되는 내지로 전환될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조선과 조선인은 식민지(민)으로서 독자성을 유지한 채로해방을 맞았다.


This article intended to examine the formation process of imperial law system of Japan as analyzing the process of enactment of the universal law (共通法, 1918). As a result of this study, some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 "area where the party is belonged" in the universal law means permanent domicile(本籍) of the family register, so that Japanese, Korean, and Taiwanese were determined by ascertaining the legal domain to which their permanent domiciles were belonged. Second, the universal law was a law to preserve the status quo, supporting the imperial law system of Japan in which the Japan mainland and its colonies were separated in different legal territory. Third, there was a clear hierarchy between the Japan mainland and its colonies, including Korea. The Japan mainland, or the space where the Constitution was fully enforced, was able to deny the immigrant of colonial people, so Japanese living there could be ruled equally on a regional basis. On the other hand, the colony, which was actually a part of the Constitution, welcomed the immigrant of Japanese. When Japanese become the majority in colonies, the colonies would be transformed into Japan ma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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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오키나와 '일본복귀'에 대한 동시대적 요인

저자 : 우에치사토코 ( Satoko Uechi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3-92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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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을 앞둔 무렵 오키나와측에서 표출된 일본 '복귀'에 대한정치적 지향성의 원인으로서 동시대적인 요인을 강조한다. '복귀'를 지지한 오키나와 출신의지식인들은 태평양전쟁 전의 기억과 경험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형성하였다. 예를 들면 나카요시 료코(仲吉良光)는 태평양 전쟁 전의 일본과 오키나와의 역사적·문화적 근접성을 이유로 오키나와의 일본으로의 복귀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동시에 태평양전쟁 전부터 공산주의자들은 처음에는 공산주의의 교의에 근거하여 '분리독립·재통합'을 주장하였으나, 전후 동아시아에서 냉전대립에 직면하게 되자 '분리독립없은 통합론'으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한편 오키나와의 일반인에 의한 일본으로의 '복귀'에 대한 지지는 동시대적인 요인을 통해 보다 잘 설명되어질 수 있다. 즉, GHQ점령 하 일본에서 '넌 재페니스'로 취급되던 코리안에 대한 심각한 탄압과 미군기지의 집중적인 건설에 수반된 오키나와 사회의 급격하고도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품었던 불안과 불만이 이에 해당한다. 1951년 시점에서 오키나와의 일본'복귀'지향을 '역사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동시대적인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shed light on the factors related to postwar Okinawans' preference for “reversion to Japan” prior to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Pro-reversion intellectuals shaped their political opinions based on their memories and experiences of the prewar period. Ryoko Nakayoshi characterizes Okinawa's reversion to Japan as “natural” because of the historical and cultural closeness of Japan and Okinawa before the outbreak of the war. In a similar vein, communists argues for “independence and reunion”, a rhetoric which stemmed from the communist orthodoxy, then switched to a rhetoric of “direct reunion” with Japan due to cold war antagonism in postwar East Asia. Pro-reversion preference among ordinary Okinawans is better explained by the historic factors of: Serious suppression of “non-Japanese” Koreans in GHQ-controlled Japan and anxiety and complaints caused by the rapid and drastic change of Okinawan society due to the intensive construction of U.S bases. These historic factors should be taken into full consideration in order to “historicize” the orientation of Okinawans to the reversion to Japan in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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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류큐 고전예능의 '전승자'는 누구인가? : 고전예능 승계와 정치성

저자 : 고야준코 ( Goya Junko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93-111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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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 국가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로써 지정된 류큐음악과 류큐무용, 그리고 구미오도리(組踊)는 그 역사를 류큐왕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여겨지며 류큐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예능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그 내실은 일본의 메이지시기에 오키나와가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의 창출' 통해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
본고에서는 메이지기 고전예능을 둘러싼 예능의 '전승자'의 변화에 주목하여, 류큐고전예능을 둘러싼 근대사를 류큐처분, 그리고 태평양전쟁이라는 두가지 커다란 전환점을 축으로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메이지기 폐번치현 이후 류큐고전예능의 대중화와 '예능가문'의 아이덴터티의 형성과정, 고전예능의 '전승자'로써 여성무용가의 탄생에 대해 살펴보고, 전후에는 유파의 등장과 사범면허제도를 축으로 한 새로운 계승을 위한 시스템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고찰하였다.


The Ryukyuan classical performing arts have been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of Japan. It is believed that they are inherited from the Ryukyu Kingdom period (from the 15th to the 19th century).
However, the Ryukyuan classical performing arts were not “traditional” form of art, but invented tradition in the modernization of Okinawa since the Meiji-period.
This paper aims to rethink the modern history of the Ryukyuan classical performing arts by focusing on the two turning points in the modern Okinawan history: “Ryukyu-shobun” (the forced annexation of Ryukyu into Japan) and the post-war period under the American occupation. The topics such as the popularization of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the indentity transformation of the successors, the appearance of the female performing artists, and the formation of the “Ryuha” (schools) are consid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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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모던 걸의 재현을 압도적으로 그려내었던 쇼치쿠 멜로드라마(특히 명랑노선)의 대표적 작가, 시마즈 야스지로의 작품을 중심으로 모던 걸과 신여성이 지방과 아시아로 이주하는재현상의 변화가 당대, 추구되어진 일본식 근대화와 제국주의에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대해서 분석한다. 시마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은 남성들이 가진 지방과 아시아에로의 시선을 모던걸에게 전치시킨다. 즉 영화속의 여성들은 서구식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진 모던걸인데 그들은 도시문화를 향유하지만, 그것의 물질만능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가족이나 연인이 일본, 조선, 만주 그리고 중국의 지방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하자, 그들에게 동참한다.
이 현상은 식민지 정책을 기반으로 한 아시아의 확장이라는 목적에 의한 현상이며 사실 서구보다 더 서구적인 일본이 “근대초극”과“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기치를 내건 당대 상황과 맞아떨어지는데, 즉 이것은 “범아시아주의”의 핵심이었던 미국화를 부정하고 로컬로써의 장소를“아시아”로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의 매개자로 모던 걸이 도용(appropriation)되는 부분은 다분히 징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구적 근대성의 아이콘이었던모던 걸을 이러한 정책과 사상속에 겹치게 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서구 근대성을 초극하려고했고, 또한 외양은 여전히 모던한 이미지를 고수함으로써, 이미 근대화된 일본이 아시아적 가치를 이성적으로 겸비하게 된, 서구보다 더 우수한 존재임을 선전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실제의 일본의 신여성이 이러한 정책에 이용되어 갔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이글은 이러한 현상을 다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본 제국의 젠더정치를 비판하고자 한다. 또한 부연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식민지 조선의 영화들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This paper argues how the images of modern girls and their representations have changed in Shimazu Yasujiro's films as the women moved to the local and other Asia during the time of Japan's modernization and imperialism. Shimazu Yasujiro's films replace Japanese men's gaze toward the local and other Asia into modern girl's one. In other words, the women in the films participate in them, when their family or lover decided to move to the colonies of Japan, chosun, manchuria and china, because the modern girls were frustrated with life in the city, even though they were educated with western-style education and occupation. This phenomenon can be coincided with Japan's colonial expansion of Asia and it provides certain implications that modern girl played as a agent of social change in history.
Also, it can be read in the similar thoughts such as “overcoming by modernity”in Japan and its expansion or “the return to Japan (Asia)”at the time. In other words, this is a movement in which Japanese tried to rediscover the local as part of“Asia,”by denying Ameicanization that is the keypoint of “Pan-Asianism.”Furthermore, I examine that this phenomenon can be applied to films in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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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근대 일본의 원구도(元寇圖)와 <몽골침입에마키(蒙古襲來繪詞)>

저자 : 김용철 ( Yong-chol Kim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9-17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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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과 가미카제(神風)로 인한 격퇴의 경험은 일본의 전통적인 신국사상의 강화와 함께 국가의식의 고양과 신불의 영험에 대한 의존적 관념이고양되는 계기가 되었고 원구도가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회화 분야에서 몽골침입을 형상화한 원구도의 수량은 적고, 도상도 일정하지 않았고 막말유신기에 활동한 기쿠치 요사이(菊池容 齋)의 원구도에서는 가미카제에 의해 풍비박산 나는 몽골병선이 강조되어 있다.
메이지(明治)시대 전기까지 가미카제를 중심으로 묘사된 원구도의 도상에 큰 변화가 나타난것은 <몽골침입에마키(蒙古襲來繪詞)>가 천황가에 헌납되고 일반에 알려진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야노가(大矢野家)가 소장하고 있던 <몽골침입에마키>가 1890년 천황가에 헌납되고 원구도의 도상에 영향을 준 것은 1894년 청일전쟁의 발발 직후 원구기념비(元寇記念碑) 건립운동에 관여한 화가 야다 잇쇼(矢田一嘯)에 의해서다. 기쿠치 요사이에게서 그림을 배우고미국에 유학하여 서양화법을 익힌 야다 잇쇼는 1896년에는 <원구대유회(元寇大油繪)>를 완성하여 일반대중에 공개했다. 전부 14점으로 이루어진 <원구대유회>는 기쿠치 요사이의 가미카제 장면과 <몽골침입에마키>의 장면 등을 융합, 활용하여 이전에 없던 화면을 제시함으로써원구도의 도상에서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했다. 특히 <몽골침입에마키> 가운데 오야노가 삼형제가 몽골전함에 다가가는 장면을 활용하여 더욱 큰 스케일의 화면에 드라마틱한 장면을 제시하였고,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였다. 이후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원구도는 곤도 다네오(權藤種 雄), 이소다 죠슈(磯田長秋) 등의 그림에 계승되며 도상의 고정화 현상을 보였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종반 몽골침입 장면 또는 '가미카제' 장면의 형상화가 적어진 현상은 가미카제특공대의 비중증대와 반비례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The experience that the Mongol invasions of Japan took placed in 1274 and 1281, and Japan was spared by kamikaze became a source to strengthen Japanese traditional consciousness as a divine land, thought of nation, and reliance on the gods in Buddhism Shinto. Its experience also inspired the birth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元寇圖). With an exception of Moko Shurai Ekotoba(蒙古襲來繪詞: Illustrated Account of the Mongol Invasion), in comparison with the 14th century literature, such as Taiheiki(太平記), Hachimangudokun(八幡愚童訓), Masukagami (增鏡), the number of the Mongol Invasions Painting is limited and its representation was not constant.
In the early examples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which was painted in Edo Period Ema(繪馬),or Ukiyoe (浮世繪) by UTAGAWA Kuniyoshi(歌川國 芳:1798-1861), various scenes, including ground battles, both sides of camps, and naval battle, were enumerated while Mongolian armed vessels were emphasized as destroyed by kamikaze in KIKUCHI Yosai(菊池容齋:1788- 1878)'s Painting of Mongolian Invasions.
The significant change in the images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was related to the donation of Moko Shurai Ekotoba(蒙古襲來繪詞: Illustrated Account of the Mongol Invasion) to Royal Family by Oyano(大矢野) Family in the early Meiji period. The painter who drove changes in the image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and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to establish the Monument of Mongl Invasions which were launched with the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in 1894, was Yada Issho(矢田一嘯:1859-1913). He studied Western style painting in America after studying Japanese painting as student of KIKUCHI Yosai. After completing Grand Oil Painting of Mongol Invasion in 1896, he opened to people. In the Grand Oil Painting of Mongol Invasion which composed of 14 pieces, YADA created new image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with usage of Moko Shurai Ekotoba and Kamikaze Scene seen in the KIKUCHI's Painting of Mongol Invasion. In particular, he completed the dramatic and dynamic scene with usage of scene of OYANO brothers in Moko Shurai Ekotoba, which became a pattern.
During the time of the Asia-Pacific War, GONDO Taneo(權藤種男:1891 - 1954) and ISODA Choshu(磯田長秋:1880-1947) were succeeded to the same image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and its image was never changed since then. Moreover, while the number of Mongol Invasions Painting or Kamikaze diminished its images, as a phenomenon of inverse proportion which appeared with increase of Kamikaze suicide commando during the end of same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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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나가노올림픽 만들어낸 유산 : 올림픽의 과제와 분석

저자 : 이시자카유지 ( Yuji Ishizaka ) , 서정완 ( Johng-wan Suh )

발행기관 :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간행물 : 한림일본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3-19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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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어 수많은 올림픽 유산=레거시가 만들어졌고, 대회 이후로 시선을 돌리면, 경기장의 사후활용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다수의 미해결 문제도 병존한다. 바로 올림픽의 선행 사례인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대한 검증은 향후 평창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향후 한국 강릉 또는 평창에서 일어날 과제를 전망하는 데 본고의 목적이 있다.
나가노 올림픽은 개최된 지 20년이 경과하여 올림픽 유산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나가노올림픽이 남긴 유산과 부에 대한 검증과 지역변용을 검토함으로써 향후 강릉에 어떠한 변화가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며 본고는 첫째, 올림픽 레거시를 유무형,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그리고 시간축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검증을 시도하였다. 둘째, 나가노시의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부채와 경기시설의 사후활용(유지비)의 현황에 대해 검토하였다. 셋째, 자원봉사 조직의 결성 넷째, 가루이자와정, 하쿠바손이 경험한 지역변용에 대해 차례로 검토한다.


This paper was written based on a report of the Post Olympic Forum (organized by the Institute of Japanese Studies, Hallym University) at Gangneung Green City Experience Center(E-ZEN) in Gangneung on 3 July 2018. The PyeongChang Winter Olympic Games were held in Korea in February 2018 and generated significant legacies. One of the most important challenges is to reuse the Olympic venues and public spaces after the games.
This paper is by no means a thorough review, but provides some issues that olympic cities, including Pyeongchang and Gangneung, will be facing with the case of the 1998 Nagano Winter Olympic Games in Japan. Since the 1998 Nagano Winter Olympic Games were held approximately 20 years ago, the Nagano experience can provide important lessons for Pyeongchang and Gangneung considering the legacies of the Olympics. In this paper, I will delve into 1) the evaluating and exploring the Olympic legacies: tangible and intangible/ positive and negative/ temporal changes after the Olympics, 2) the outstanding amounts of municipal bonds and the maintenance costs for the athletic venues which has become a huge burden for municipal budgets in Nagano, 3) some volunteer organizations, and 4) the changes of small villages, including Karuizawa and Hakuba, in Nagano after hosting the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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