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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학 update

Journal of TASAN Studies

  • : 다산학술문화재단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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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598-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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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0)~33권0호(2018) |수록논문 수 : 276
다산학
33권0호(2018년 1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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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약용의 역학관 형성에 미친 모기령의 영향

저자 : 방인 ( Bang I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4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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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다산 정약용의 역학사상의 형성에 미친 모기령의 영향을 밝히려는 데 있다. 다산은 「제모대가자모역괘도설題毛大可子母易卦圖說」에서 모기령의 자모역괘설子母易卦說이 괘변설卦變說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고 비난하였다. 다산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본다면 다산과 모기령의 추이설은 뚜렷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첫째, 다산이 『주역사전』에서 썼던 추이推移라는 용어도 모기령이 『중씨역』에서 이미 사용했던 용어이다. 둘째, 다산이 유취類聚와 군분群分의 관점에 의하여 역괘易卦를 벽괘辟卦과 연괘衍卦로 분류한 것도 모기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셋째, 다산이 소과와 중부를 벽괘에 포함시킨 것도 역시 모기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넷째, 모기령은 추이를 연역계사의 원리로 보았는데, 이 점에서도 다산의 견해는 모기령과 일치한다. 다산이 모기령의 추이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효변설에서는 모기령의 영향을 받은 바가 거의 없다. 다산은 모기령이 역사易詞 해석에서 오류를 범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그가 효변에 대해서 무지無知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모기령은 효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다만 모기령은 효변을 점변占變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보았으며, 연역계사의 원리로 보지는 않았다. 모기령이 효변을 오역설五易說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효변을 역사易詞 해석의 원리로 간주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산의 관점에서는 추이 뿐 아니라 효변도 역시 연역계사의 원리가 된다.


This paper aims at analyzing Mao Qiling's influence on Tasan Jeong Yak-yong's view of the Changes. Tasan made a fierce criticism on Mao Qiling's theory of the interchangeability between the so-called son hexagram and the mother hexagram. It must be acknowledged that Mao Qiling's theory has a lot of ingenious aspects. But at the same time, it has a critical problem as Tasan indicated. Nevertheless, if we take Tasan's statement as read, there is a danger to conceal the fact that he also accommodated some parts of Mao Qiling's theory. Mao Qiling's influence is especially conspicuous in his tuiyi(推移) theory. Firstly, the division of 64 hexagrams into two parts of bigua(闢卦) and yangua(衍卦) is influenced by Mao Qiling because it depends on Mao Qiling's classification of gathered(類聚) and dispersed(群分) hexagrams. Secondly, the term of the tuiyi is also commonly used both in Tasan and Mao Qiling. Thirdly, the inclusion of the xiaoguo(小過) and zhongfu(中孚) hexagrams seems to be influenced by Mao Qiling. Fourthly, Mao Qiling's standpoint that tuiyi is the principle of linking the hexagram image with the words and phrases of the Zhouyi(演易繫辭) is also shared by Tasan. On the other part, Tasan was hardly influenced in the case of yaobain (爻變) theory. According to Tasan's opinion, the fundamental reason that Mao Qiling committed the fallacy lies in his ignorance about the theory of yaobian. But Tasan's assertion that Mao Qiling was ignorant of the yaobian theory should be critcally reconsidered. Mao Qiling had the exact knowledge that the yao(爻) changes when it is laoyang or laoyin and that the previous original hexagram(本卦, bengua) is transformed into the altered hexagram(之卦, zhigua). However, he did not think that it should be the principle of linking the hexagram image with the words and phrases of the Zhouyi. Also the fact that Mao Qiling did not include the yaobain in the five yi theory(五易說) shows that he did not regard it as the method of interpreting the words of the Zhouyi. But from Tasan's perspective, not only the tuiyi but also the yaobain becomes the principle of linking the hexagram image with the words and phrases of the Zhou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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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출토문헌을 통해 본 다산 정약용 역학 고찰

저자 : 원용준 ( Won Yong-joo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1-6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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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다산 정약용의 역학 이론 중 '상象'에 관한 이론을 청화간淸華簡 『서법筮法』과 비교 고찰하여 그의 역학 연구 방법론이 지니는 독창성과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청화간 『서법』은 서점筮占체계의 전국시대 점술문헌이다. 『서법』에는 『주역』처럼 괘가 있고, 괘명卦名이 있는데 각각의 괘, 효는 '상'을 가지고 있다. 그 점사占辭 또한 '상'을 가지고 길흉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서법』이 '상'을 매우 중시하는 문헌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보면 『주역』을 포함한 전국시대의 서점문헌들은 '상'을 중시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춘추시대 서점 기록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좌전』의 점례占例를 보면 『주역』을 해석할 때 '상'을 가지고 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고대 『주역』은 '상'을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상'이 『주역』 해석의 관건임을 논술하고 『주역』 이해의 기본은 「설괘전」의 물상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설괘전」에 없는 물상을 『좌전』 등을 이용하여 보충하고 있다. 만약 청화간 『서법』의 물상을 알았다면 이를 가지고 『주역』의 물상을 보충했을 것이다. 또한 정약용 효변설의 착안 역시 청화간 『서법』과 비교하여 볼 때 고대 『역』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정약용은 「설괘전」을 두 부분으로 나눠 제1장~제3장은 공자가 지었지만 그 뒷부분은 공자보다 더 오래전 성인이 지었다고 본다. 「설괘전」 제1장~제3장은 마왕퇴백서 『역전』 「충衷」을 통해 「계사전」의 한 부분이었음이 밝혀져 있기 때문에, 정약용의 「설괘전」 분석은 공자 저술 부분만 제외하면 매우 정확하다고 하겠다.
아직 근대적 학문 이론이 도입되기 이전에 독창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주역』 연구에 활용했다는 점이 정약용 역학의 뛰어남을 증명한다고 생각된다.


This paper explores creativity and meaning of Tasan(茶山) Jeong Yak-yong(丁若鏞)'s research methodology in Yeokhak(易學) by comparing and investigating a theory regarding xiang(象) among Yeokhak theories with the Qinghuajian(淸華簡) “Shifa(筮法)”.
The Qinghuajian “Shifa” is a divination text about the system of shizhan(筮占) written in the Warring Sates period. In “Shifa”, there is a gua(卦) just as the Zhou Yi(周易) has. It also includes guaming(卦名) and each gua and yao have its xiang. Furthermore, the divination statements often determine good and bad fortune 吉凶(jixiong) by analyzing its xiang, and therefore, it can be considered that “Shifa” may put emphasis on xiang. In conclusion,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the texts related to shizhan of the Warring Sates period, including the Zhou Yi, emphasized on xiang.
According to divination cases of the Zuo Zhuan(左傳), containing plentiful records of divination during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the Zhou Yi had been often interpreted by analyzing xiang. From this, it can be regarded that the ancient Zhou Yi might be understood focusing on xiang.
Tasan Jeong Yak-yong stated that xiang is the key to interpret the Zhou Yi and the basis for understanding it is to use wuxiang(物象) of the “Shuogua Zhuan(說卦傳)”. He supplemented the missing wuxiang in it with reference to the Zuo Zhuan and other texts. If he had known the wuxiang in the Qinghuajian “Shifa”, he would have supplemented the Zhou Yi's wuxiang based on it. Moreover, Jeong Yak-yong divided the “Shuogua Zhuan” into two parts; chapter one to three had been written by Confucius, on the other hand, the other chapters had been completed by an ancient sage before Confucius. Jeong Yak-yong's analysis on the “Shuogua Zhuan” is very accurate, except for his mention about Confucius' writing because chapter one to three of the “Shuogua Zhuan” turned out that they were the parts of the “Xici Zhuan(繫辭傳)” through the chapter “Zhong(衷)” of the silk manuscript Yi Zhuan(易傳) excavated at Mawangdui(馬王堆).
It is Jeong Yak-yong's distinction that he applied creative methodologies into his research for the Zhou Yi much before being introduced moder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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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기원과 진위에 대한 연구 ― 정약용丁若鏞의 관점을 중심으로

저자 : 황병기 ( Hwang Byong-kee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71-111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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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약용의 관점을 중심으로 하여 하도와 낙서의 기원과 진위에 대한 논란들을 분석한 글이다. 다만 그 기원과 진위를 확정하기 위해 기획된 글은 아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출현은 고대 중국의 최초의 기록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여전히 신화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주역』 「계사전」, 『상서』, 『춘추위』, 『논어』 등에서 하도낙서의 설 등을 발견할 수 있으나 부호인지 문장인지 알 수 없으며, 그림인지 책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중국 송 대에 현시화顯示化된 현재의 하도와 낙서 그림도 고래古來의 신화를 이성적인 사유의 프레임(frame)으로 해석하고자 한 중국인들의 노력의 소산일 뿐이다.
통행본 『주역』의 역전易傳(十翼)에서 하도와 낙서를 언급하였으나, 역경易經과 역전易傳을 포함한 통행본 『주역』 어디에도 하도낙서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송 대에 시각화된 하도낙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역사상 어떤 기록에도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하도낙서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오늘날의 하도낙서와 유사한 형태로 남아 있는 북송 이전의 용마도龍馬圖, 신귀도神龜圖 등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청대 고증학자들에 의해 선천도, 하도낙서는 진단陳摶이 정현鄭玄의 설에 근거하여 발명하였고 여기에 五行說이 덧붙여졌으며, 이것을 소옹이 체계화하였고 이를 주희朱熹가 전면 수용하여 보편화된 것임이 밝혀졌다.
오늘날 소옹의 하도낙서는 압도적인 위상을 지니며, 역학 자체뿐만 아니라 역학에 근거한 기타 술수학術數學에서 절대지존의 위치에 있다. 특히 하도낙서에 의한 방위와 시간, 수리는 현재 유행하는 거의 모든 술수학의 생명줄과도 같다. 그것이 진단陳摶 이래의 도상학자圖象學者들이 의도했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소옹의 하도낙서가 없었다면 오늘날 점술계占術界의 판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희에 의해 수용된 하도낙서의 권위는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초 다산 정약용은 하도와 낙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였고, 철저히 부정하였다. 그것들이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소옹과 주희의 선천후천, 하도낙서설을 여러 각도에서 비판하였다. 서법筮法과 역리易理의 관계, 신화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관념성과 진실성, 내외음양의 불일치성 등의 관계에서 비중 있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소옹이 하도낙서를 그리고 주희가 그것을 채택한 이후의 역학은 하도낙서와 선천후천설을 『역』과 분리해서 논의할 수 없을 정도의 학술적 진보와 다양한 학술적 전개가 있어왔다. 특히 조선의 역학은 송 대에 수립된 도상학의 바탕 위에서 전개된 것들이다. 따라서 정약용의 합리적 추론과는 별도로 하도낙서의 도상圖像이 가져온 상수역학의 전개와 발전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This paper analyzes the controversies about the historical origins and authenticity of Hetu(河圖) and Luoshu(洛書), focusing on Jeong Yak-yong's viewpoint. However, it is not intended to confirm its origin and authenticity.
The emergence of Hetu and Luoshu is still mythical from the earliest records of ancient China to the present day. It can be found the signs of Hetu and Luoshu in the Classics of Chinese such as the Zhouyi(周易), the Analects of Confucius(論語), the Shangshu(尙書), the Chunqiuwei(春秋緯) and so forth. But we do not even know whether it is a picture or a book, whether it is a code or a sentence. It is only a result of Chinese efforts to interpret the myths of the paintings of Hetu and Luoshu in the Song Dynasty in China as frames of rational thinking.
Hetu and Luoshu is referred in the Commentary to the Book of Changes such as Xici(繫辭), but it is difficult to grasp the exact reality of Hetu and Luoshu. No one in history has ever seen the Hetu and Luoshu we see today, until the Hetu and Luoshu was visualized in the Song Dynasty in China. The Longmatu(龍馬圖) and the Shenguitu(神龜圖) before the Song Dynasty in China, which remained in a form similar to today's Hetu and Luoshu, did not originally exist. By the researchers of ancient documents, documental archaeology of the Qing Dynasty in China, Diagram of Early Heaven(先天圖), Hetu and Luoshu were revealed that Chentuan(陳摶) invented it based on the theory of Zhengxuan(鄭玄), here the theory of Five Agents was added, after that it was organized by Shaoyong(邵雍), finally it was accepted and universalized by Zhuxi(朱熹). It is also difficult to grasp the reality of Hetu and Luoshu even through recent excavated materials.
Today, Shaoyong's Hetu and Luoshu has an overwhelming status, and it is in the position of absolute authority in other divining arts based on the theory of the Zhouyi as well as the theory of the Zhouyi itself. Bearings, time, and mathematical principle by Hetu and Luoshu, especially, are the lifelines of almost all of the current divining arts. Without Shaoyong's Hetu and Luoshu, the landscape of today's divining arts would have been different.
The writings about the Zhouyi of Korea were born in the era when the authority of the Hetu and Luoshu sublimated into the Transcendental and ultimate status by Zhuxi. It is not an exaggeration to say that the studies of the Zhouyi of Korea is based on the Iconographic Image-numerology(圖象學) of the Song Dynasty in China, whether it is the learning of Meaning and Principle or the learning of Image and Number.
However, Tasan Jeong Yak-yong(茶山 丁若鏞) in the earlier 19 century made fundamental suspicions about Hetu and Luoshu and denied them thoroughly. Because he thought they were myths made in later generations. He criticized from the various angles against the theory of Early Heaven and Later Heaven(先天後天說) and the Hetu and Luoshu of Shaoyong and Zhuxi.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ivining arts and the principles of the Book of Changes, mythical thinking and rational thinking, ideology and truth, and the inconsistency between inner and outer yin-yang are included in his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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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약용의 소옹과 주희 『주역周易』 수리설 비판에 대한 재조명 ― 『역학서언』의 「주자본의발미」와 「소자선천론」을 중심으로

저자 : 엄연석 ( Eom Yeon-seok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3-14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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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옹과 주희의 『주역周易』 수리설과 정약용의 『역학서언易學緖言』에 포함된 평론으로서 「주자본의발미朱子本義發微」와 「소자선천론邵子先天論」에 나타난 다산의 수리설을 비교하고, 이들 사이의 상관적 특성과 차이를 재조명하였다. 본고에서는 정약용이 소옹의 선천 수리역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반면, 주희의 수리역학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수용하면서 이론적 한계를 비판한 내용을 점검하였다. 소옹의 수리설을 중심으로 하는 선천역학 사상이 괘효상을 수리數理의 연산과 결합하여 자연과 사회역사를 설명하는 체계를 지니고 있다. 소옹의 학설에서는 태극太極을 말하기는 하지만, 주희가 말한 도덕적 근원으로서의 리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이에 비하여 주희는 『주역』을 상수역학과 변역變易의 관점에서 보았으나, 궁극적 목표에서는 의리역학적 특색을 가지는 만큼, 부분적으로 상수역학 이론을 제시하면서도 기와 상수에 대한 리의 우선성을 견지하였다. 반면에 정약용은 경험주의적 현상론의 관점에서 드러난 괘와 그 배후에 숨어 있는 괘의 역동적 변화양상에 대한 여러 이론적 설명체계를 통하여 귀납적으로 길흉회인의 기준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현상론적 관점에 치우침으로써 때로 14벽괘에 대한 설명과 가일배법에 대한 설명에서는 정합적이지 않은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정약용은 소옹의 수학은 주로 비판하였으나, 주희의 변역 이론은 옹호하면서도 역리사법易理四法을 중심으로 하는 경험론적 수리역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정약용의 역학을 구성하는 중심개념을 요약한다면 자연의 여러 변화의 수리적 질서와 변화를 뜻하는 '추推'에서 찾을 수 있다.


This essay tried to reilluminate about Jeong Yak-yong's critical examination of Zhu Xi, and Shao Yong's mathmatical principle of the Zhouyi seen in Zhuzi Benyi Fawei and Treatise on Shaozi's Earlier Heaven of Yixue Xuyuan. This paper examined the contents through which while criticized actively mathmatical principle of the Zhouyi of Shaozi's Earlier Heaven, Jeong Yak-yong accepted Zhu Xi's mathmatical principle of the Zhouyi or criticized a theoretical limitation.
Shao Yong's Earlier Heaven mathmatical principle of the Zhouyi has the system by which one explains nature and social history through simbol of hexagram and lines combined with numerical calculation. His theory said the Great Ultimate but it is not the same meaning with principle as the moral origin in Zhu Xi. On the other hand Zhu Xi understands the Zhouyi in view of symbol and modification, his theory has characteristic of moral principle of the Zhouyi in a final goal. Accordingly he suggested partly symbol and numerology of the Zhouyi, at the same time adhered to the priority of principle over material forces & symbol and number.
Compared to this, Jeong Yak-yong emphasized aspects of dynamical change of the hexagram(卦) connoted between exposed hexagram and lurking one according to the experimentalist approach. And he intended to establish inductively criterion of good or ill fortune, regret and stinginess through these several explanation.
However, he sometimes suggested a farfetched argument in the descriptions of the fourteen byeokkwae(十四闢卦) and duplication method of one adding(加一倍法) by being partial in phenomenalistical point of view. Summing up, Jeong Yak-yong criticized generally Shao Yong's mathmatical principle of the Zhouyi, but advocated modification theory of Zhu Xi. Moreover he empiricism mathematical principle of Yixue orientated towards the four law involved in principle of the Zhouyi(易理四法). If one should summarize core concept of Jeong Yak-yong's Yixue, he could seek from 'inference(推)' which means several numeral order and changes of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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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邵雍先天學與茶山之辨僞

저자 : 임충군 ( Zhong-jun Li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49-17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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邵雍以≪易傳≫爲据作伏羲先天圖和文王后天圖, 建立了先天之學。 由于朱熹的倡導, 確立了邵氏先天之學在易學中的學術地位, 深深影響了宋以后的易學, 成爲易學硏究不可或缺的內容。 然而由于其眞實性受到后世的質疑, 以毛奇齡、 黃宗羲爲代表的易學家從文本出發, 對于邵氏先天學進行猛烈的批判。 韓國學者茶山丁若镛受其影響, 運用其自己獨到的易學理論, 以文本爲据, 對邵雍先天之學加以淸算。 茶山易學辨僞與淸初易學辨僞相同, 其意義是纠正了易學解釋脫離文本繁衍滋生及忽略訓诂、 偏重義理的傾向, 重塑嚴謹笃實的學風, 幷運用考證方法檢討宋代以來流行的圖書、 先天之學, 捍衛了≪周易≫文本的權威性和合法性, 辨淸易學源流, 對探討易學文本的形成和揭示其本意有着重大的學術意義。 爲重要的是, 茶山透過反思與批判邵子朱熹等人的先天之學, 確立了恢復和重建漢代象數之學的目標。 而其整個易學體系正是在批判和吸收漢宋象數易學基礎上建構起來的。 當然, 茶山對于邵氏先天之學硏究, 與淸初易學家相同, 有其不可避免的缺陷。 卽以當今哲學解釋學的視野觀之, 回歸易學文本固然重要, 而對于文本創造性解釋更爲重要。 宋易先天學屬于“僞學”, 一槪摈棄之, 顯然欠妥。


Based on the Yi zhuan, Shao Yong(1011~1077) created Fuxi Xiantian(Former Heaven) image and King Wen Houtian(Latter Heaven) image so as to establish his Xiantian theory. Because of Zhu Xi's(1130~1200) advocacy, the academic position of Shao's Xiantian theory in the study of Zhouyi was established, which deeply influenced the Yi studies after the Song Dynasty(960~1279) and became an indispensable part in theYi studies. As its authenticity was questioned by later scholars, these scholars represented by Mao Qiling(1623~1716) and Huang Zongxi(1610~1695) criticized Shao's Xiantian theory fiercely from the text. Influenced by these scholars, Korean scholar Jeong Yak-yong(1762~1836) applied his unique Yi theory to distinguish Shao's Xiantian theory on the basis of text. Similar to the distinction of Yi studies in the early Qing Dynasty, the significance of Jeong Yak-yong's distinction is to correct the trends of interpretation divorcing from text, neglect of exegesis and the emphasis on moral principles so as to reshape a rigorous academic style. In addition, he used the textual research method to review the prevalent studies about Hetu, Luoshu and Xiantian theory since the Song Dynasty, defended the authoritativeness and legitimacy of the Zhouyi text, and distinguished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Yi studies. It is of great academic significance for exploring the formation of Zhouyi text and revealing its original intention. More importantly, Jeong Yak-yong established the goal of restoring and reconstructing the image-numerology of the Han Dynasty(202BC~220AD) by reflecting on and criticizing the Xiantian theory of scholars like Shao Yong and Zhu Xi. And his entire system of Yi was constructed on the basis of criticizing and absorbing the image-numerology in the Han and Song dynasties. Although Jeong Yak-yong's research on Shao's Xiantian theory is the same as that of the Yi scholars in the early Qing Dynasty and has its inevitable defects, in the view of the current philosophical hermeneutics, it is important to return to the text of Zhouyi, but it is more important for the creative interpretation of the text. The idea of considering Xiantian theory in the Song Dynasty as “pseudo-learning” and the intention to reject it completely is obviously not appropri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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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筮天下之萬事萬物 : 丁若鏞≪乾卦≫解的特色和意義

저자 : 한자기 ( Tze-ki Ho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73-191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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眾所周知≪易經≫文本複雜, 包括八卦六十四卦、卦辭爻辭、和≪十翼≫。從漢代至清末, 易學家先後建立三個注易範式:(1)象數易學, (2)義理易學, (3)兼顧義理和卜筮的人生易學。本文將從這三個注易範式去探討丁若鏞(1762~1836)的易學體系。本文的主要論點是, 丁若鏞是徘徊于漢代象數易和朱熹占卜易之間, 試圖平衡兩種貌似矛盾的觀點:一個著重遵從自然定律, 在事物的千變萬化中尋找安身立命之處;一個著重流轉和應變, 凸顯占卜者對當下的了解和化“危”為“機”的勇氣。本文將以≪乾卦≫為例, 比較李鼎祚≪周易集解≫、王弼≪周易注≫、朱熹≪周易本義≫, 和丁若鏞≪周易四箋≫的≪乾卦≫解, 從而凸顯丁若鏞≪乾卦≫解的獨特風格, 進而探討他對“≪易≫本為卜筮而作”的解讀。


In imperial China(221 BCE~1911 CE), there had been three commentarial paradigms for interpreting the Yijing(Book of Changes): (1) the imaginary and numerological method, (2) the philosophical method, and (3) the method of moral cultivation based on divination. Each of these methods was unique in rending the Yijing as a text that dealt with uncertainty. In this article, I will examine Jeong Yak-Yong's(1762~1836) Yijing commentary by comparing his interpretation of Qian hexagram(#1) with those of Chinese exegetes in the Han period, the Wei-Jin period, and the Southern Song period. The comparison is to highlight Jeong's ambition to combine the imaginary and numerological method of the Han period with the divination method of the South Song period. The combination, I contend, indicates Jeong's special interest in the Yijing hexagrams as symbols of the complexity and serendipity of hum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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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정약용 국가론의 논리와 성격

저자 : 김문용 ( Kim Moon-yong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95-23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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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국가론은 이 질문에 대한 19세기적 답안에 해당한다. 그것은 당시 조선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2천여 년 역사의 유교적 지식과 관점이 응축된 결과이다.
다산의 국가론에는 논리적 측면에서 가족과 국가, 예와 법, 교화와 제산의 문제들이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세 쌍의 요소들은 각각 국가의 주권(sovereignty), 국가의 기제(apparatus), 국가의 기능(function) 문제를 반영하고 지배하였다. 우리는 이 요소들을 매개로 다산의 국가론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특징으로 추출할 수 있다.
첫째, 다산은 봉건제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 하에 세경世卿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여기저기 노출하였지만, 『경세유표』에서 그것의 제도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는 가족ㆍ국가의 비유가 영향력을 약화시켜 가고 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다산은 일왕지법一王之法 관념을 통해 일관되고 균평하며 엄격한 국가 통치기제를 수립하는 데 집중하면서, 동시에 예와 법의 동일시 내지 혼용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는 예의 도덕성과 자발성 측면을 중시했지만, 반대로 그것이 위계질서를 강화하고 새로운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었다.
셋째, 다산은 교화를 위한 방법으로 제산을 중시했지만, 균산 위주의 제산에서 증산 위주의 제산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주목을 받는다. 이 점은 궁극적으로 유교적 균평 이념의 와해는 아니더라도, 그것의 심각한 동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산의 국가론은 유교국가론의 백미이자 완결편에 해당한다. 그것은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왕과 귀족 이외의 기타 사회세력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권위주의적 질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What is a state? The theory of state of Jeong Yak-yong(1762~1836) corresponds to the 19th century answer to this question. It reflects the social aspect of Joseon at the time, while it is the result of the condensation of Confucian knowledge and view of more than 2,000 years of history on the other hand.
Three pairs of factors, namely family and state, proprieties and law, edification and occupation-providing, were forming tensions in his theory of state. Each pairs reflected and dominated the problems of state sovereignty, apparatus and functions respectively. We can use these factors to achieve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he exposed expectations about the role of aristocrats here and there under a positive view of Chinese feudalism, but did not attempt to institutionalize it in Gyeongse Yupyo. This is related to the situation where the analogy between family and state have been weakening their influence.
Second, he focused on establishing a consistent, egalitarian and strict governance system of the state through the law of the Only King while maintaining the viewpoint of identifying the law with the proprieties. He emphasized moral and spontaneous aspects of the proprieties, but on the contrary he overlooked that it could strengthen the hierarchy and promote new conflicts in the society.
Third, occupation-providing was emphasized as a method for edification, but it is noteworthy that it changed its direction from equity-oriented to growth-oriented. This was something that could ultimately lead to serious turmoil of Confucian egalitarianism, if not the collapse of it.
Jeong Yak-yong's theory of state corresponds to the highlight and conclusion of that of Confucianism. It had limitations such as that despite its many achievements, it had no understanding of other social forces other than king and aristocrat and could not escape from the concept of authoritarian social order.

KCI등재

8레귀돈의 도덕적 인간형과 법제적 국가론

저자 : 전성건 ( Jeon Sung-kun )

발행기관 : 다산학술문화재단 간행물 : 다산학 33권 0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235-26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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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베트남 사상사에서 대표적 인물로 평가되는 레귀돈黎貴惇(호는 계당桂堂, 1726∼1784)은, 베트남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중국의 역사는 물론 자국의 역사에 대해 깊은 주의를 기울였으며, 유교를 진흥시키기 위해 십삼경을 비롯한 경사자집의 독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에게서 보이는 두드러진 학문적 특징은 상수학을 기반으로 한 기학의 입장에서 천문과 지리 그리고 인사를 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특징은 추산推算과 추측測量의 학문 방법인 추험推驗을 적용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레귀돈의 추험을 기반으로 한 기학의 학문은 그의 인간형과 국가론에서도 적용된다.
레귀돈은 또한 유학자로서 군왕을 비롯한 신하들이 성현의 덕을 소유할 것을 주문한다. 그 다음, 군왕과 신하는 재才ㆍ량量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기본 능력을 재와 량에서 찾는 것으로, 재와 량은 각각 영명英明ㆍ탁월卓越 및 견내堅忍ㆍ내심耐心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군왕은 신하의 시선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군왕의 조력자로서 대신大臣의 역할을 최대화하여 군왕의 탐재모리貪財牟利를 제한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고 레귀돈이 보는 인간형이 전형적인 도덕군자형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공동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제된 상태에서 군왕과 신하는 법제를 통해 국가를 조직한다. 도덕성 및 재능과 국량을 보유한 군왕과 신하가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법제이다. 레귀돈은 도덕과 법제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법제를 통해 도덕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레귀돈은 법제를 장악하고 있어야 국가는 평안해지고, 사회는 도덕과 예의를 지킬 수 있으며, 인심은 정직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왕도王道와 패술覇術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도 보인다. 그는 왕도와 패술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레귀돈에게는 왕도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패술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레귀돈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도덕적 인간형과 법제적 국가관은 그가 세勢와 리理의 두 관점에서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회와 국가는 물론 세계와 우주의 근본 양상은 변화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는다. 그러므로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일은 생로병사와 흥망성쇠가 반복된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인사人事의 통합적 관점이다. 그 가운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인사와 지리였고, 그것의 투영이 바로 덕행德行과 지세地勢의 문제였다. 덕행은 군왕과 대신을 비롯한 베트남 위정자에 대한 관심이고, 지세는 베트남의 지리에 대한 관심이었다.


This paper is intended to look at the human form and national view that Le Quy Don thought. As a confucian scholar, he orders the king and his officials to own the king's property. Then, the king and his subjects must have a spirit. The basic ability to manage the nation is found in wealth and quantity, and the wealth and quantity are embodied in wisdom and volition respectively.
With this premise in place, the king and his subjects organize the nation through legislation. It was chosen by the king and his subjects, who possessed morality and talent and national content, as a means of governing the world. The ruling party does not consider the issue of morality and legislation dichotomically. It is because he believe that morality can be realized through legislation. The ruling party believes that having control of the legal system can make the nation peaceful, society can keep morals and manners, and people can be honest.
The moral and legal aspects that the ruling party is focusing on are looking at the changing world from the two perspectives of the state of affairs and principle. The fundamental aspects of the world and the universe, as well as society and countries, inevitably go through the process of change. Therefore, everything and the rise and fall are repeated. What is needed to understand this properly is the unified view of astronomy. Among them, his most important consideration was personnel and geography, and his projection was the problem of virtuous conduct and top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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