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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2005-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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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8)~23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234
개념과 소통
23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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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동하는 동아시아의 1919 : ― 혁명의 기점으로서의 3·1운동과 5·4운동 ―

저자 : 백영서 ( Youngseo Baik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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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5·4운동은 한중간에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어 보는 관계로 20세기에 작동해 왔다. 필자는 여기에서 양자의 '세계사적 의의'를 글로벌한 역사 속의 '동시성'이라는 관점에서 재정립하고자 한다. 또한 두 사건의 개별성에도 주목하기 위해 '연동하는 동아시아'라는 시각을 활용한다. 세계 체제에 접속되면서도 제국일본, 반(半)식민지 중국, 식민지 한국 세 나라가 그 위계 구조에서 다른 위치를 점한 채 상호작용하는 동아시아적 양상에 좀 더 주목할 것이다. 반식민지였던 중국과 식민지 조선의 반일 민족운동을 상호대조하면서 반식민지와 식민지라는 차이가 갖는 의미를 탐구해 볼 것이다. 이 점을 중시하는 것은 (반)식민지 근대의 복잡성을 꿰뚫어 보고 거기 내재된 근대극복의 계기를 찾기 위해서이다. 이때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동시 수행을 의미하는 '이중과제론'은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양자를 어떻게 (재)기억하는가는 역사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실 문제이다. 양자를 새롭게 조명하는 하나의 방법적 모색이 필요한 시점에 직면해 필자는 두 사건을 '3·1혁명'과 '5·4혁명'으로 호명(呼名)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이 과제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3·1운동과 5·4운동에 나타난 민의 결집양상은 두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모두 혁명으로 파악하려는 필자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The March 1st Movement in Korea and the May 4th Movement in China, which both occurred in 1919, have often been thought to reflect each other like two mirrors. This paper is an attempt to re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se two events in terms of simultaneity, and thus to articulate their world-historical significance. Their distinctive historical character is also understood through the perspective of an interlocking East Asia, by which is meant that although imperial Japan, semi-colonial China, and colonial Korea were all connected to the modern world-system, these three states each occupied different positions within the hierarchy of interstate relations. The differences between the anti-Japanese national movements of colonial Korea and those of semi-colonial China deserve particular attention, since they help to reveal the complexities of (semi-)colonial modernity, and may provide some clues for overcoming modernity. In this context the theory of the Double Project of Modernity is useful, which describes the process of simultaneously adapting to and overcoming modernity. The (re)remembrance of the March 1st Movement and the May 4th Movement is more than a historical issue: it is also an existential issue.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se two events should be beyond doubt, and to make this clear it is proposed to rename them respectively as the March 1st Revolution and the May 4th Revolution. This renaming is surely justified by the way that people gathered at these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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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운동 이후의 열정과 광기

저자 : 이주라 ( Jura Lee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9-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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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광인이라는 표상을 통해 3·1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 사회에 지속되던 저항의 열정을 추적하였다. 3·1운동은 일반적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3·1운동의 전개 과정에서는 폭력적 진압에 대항하는 폭력 시위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견 표명을 위해 자연적으로 발생한 폭력 시위도 존재하였다. 3·1운동 이후 민중의 폭력적 저항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개조론의 입장에 서 있던 지식인 계층은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이라 규정하였다. 후일담 소설은 3·1운동의 열정과 그후 진행되는 사회운동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언론보도 또한 불온한 문서의 배포나 독립 자금 모집을 광인의 소행으로 치부하면서 무장 폭력투쟁 노선에 대한 민중의 관심을 차단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폭력으로 지배 계층을 직접적으로 징치하는 광인의 표상에 열광하였다. 신문 기사에서는 정신병원을 소개한다는 빌미로 정신병자들의 정치적 발언을 공개하며 총독부 정치를 비판하였고, 대중은 <아리랑>과 「탈춤」과 같은 작품에 나오는 광인들에게 공감하였다. 1920년대 광인 표상은 단순히 근대 질서에서 배제된 비정상성을 보여 주는 표상이 아니라, 3·1운동 이후에도 식지 않는 민중의 열정과 체제에 저항하려는 민중의 의지를 보여 주는 표상이다.


This paper traces the passionate resistance which persisted in colonial Joseon society following the March 1st Movement, and which was represented through the image of a madman or lunatic. This movement is generally considered to have been a nonviolent resistance movement, but during its course there were some violent demonstrations in reaction to violent suppression by the authorities, as well as some demonstrations in which political opinions were expressed through spontaneous violence. Some violent resistance also continued after the decline of the March 1st Movement, despite the judgment of intellectuals supportive of national reformation that the movement had failed. Novels which subsequently looked back on the March 1st Movement, and later social movements, were cynical about the motivations and passions of the people involved. Media reports also tried to discourage public interest in violent struggle, denouncing activism like fundraising and the distribution of subversive documents as the irrational acts of a madman. But this strategy backfired, with the public enthusiastically adopting the image of the lunatic who directly and violently attacks the ruling classes. In newspaper articles, Japanese imperialism was indirectly criticized by portraying psychiatrists and psychiatric hospitals as driven by political motives. Moreover, the public also empathized with the lunatic in works such as Arirang and Talchum (Mask Dance). During the 1920s, the representation of the lunatic was not simply an expression of abnormal people excluded from the modern order: it became a symbol of public determination to resist the system in the aftermath of the March 1s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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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19년 중국의 문단 : ― 『신청년』 그룹을 중심으로 ―

저자 : 이보경 ( Bogyeong Lee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9-10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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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9년 중국의 문단을 『신청년』 그룹의 동향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변동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신청년』을 둘러싸고 『매주평론』과 『신조』사이의 협력과 긴장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되짚어 보았다. 『신청년』 그룹이 『매주평론』을 창간한 것은 우승열패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아니라 '상호부조'를 실천하는 '신기원'에 대한 소망과 연관되어 있었다. 『신조』의 창간은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주도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신청년』 편집인들의 후속 세대 양성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신조』의 편집인들은 '밤 고양이'와 '화롯불'로 자처한다. 밤새 학술에 정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선배 세대와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신청년』, 『매주평론』, 『신조』는 단단한 트라이앵글을 형성하여 구파 문인들을 신기원의 '희생양'으로 삼아 담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5·4운동 직후 이들은 결별의 길을 걸어간다. 체포된 천두슈를 대신한 후스는 『매주평론』의 방향을 '문제'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고, 『신조』의 독서회 성격을 강화하여 '학술'에 집중하도록 견인한다. 반면 『신청년』은 '마르크스주의 특집호'를 필두로 정치적으로 보다 급진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결과 1917년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오면서 시작된 동인지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중국 문단은 이후 학술지향과 정치 지향이라는 두 개의 길로 나뉜다. 마지막으로 1919년 『신청년』 그룹의 행위를 추동한 '수치'의 '정동'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반응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essay explores Chinese literary circles of 1919, specifically the New Youth literary coterie. The changes which occurred during this period are examined through a chronological account of the tensions and interactions which arose between contributors to New Youth and other literary publications, especially The Weekly Review and Renaissance.
The founding of The Weekly Review by some of the New Youth literary coterie displayed their competitive ethos as well as their hopes for the “new era” as a expression of “mutual assistance.” Renaissance was founded by Peking University students, and the editors of New Youth saw it as a useful platform to promote their ideas to the younger generation. The editors of Renaissance described themselves as “night cats” and “brazier flames,” and they distinguished themselves from earlier generations through their relentless academic fervor. These three publications, New Youth, The Weekly Review, and Renaissance, together formed an influential triangle which successfully dominated Chinese literary circles by scapegoating traditional intellectuals in their quest to establish the new era.
After the May Fourth Movement, however, their paths divided. Following the arrest of Chen Duxiu, Hu Shi sought to change the direction of The Weekly Review by focusing on “problems.” This reinforced the academic emphasis of Renaissance, and in contrast New Youth became politically more radical, starting with a “Special Issue on Marxism,” and also relocated from Shanghai to Beijing. Chinese literary circles subsequently became increasingly concerned with academic trends and political issues. Interestingly, the New Youth literary coterie became ashamed of their former stance, which encouraged their role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Choso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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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20년대 문명·문화 개념의 교차

저자 : 이행훈 ( Haenghoon Lee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5-14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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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대의 성취를 보편으로 한 문명론은 1920년대에 들어서 흔들렸다. 세계대전의 참화는 역사의 진보와 문명의 발달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가져왔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각과 문명의 향방에 대한 각성을 요청했다. 사회개조론의 유행과 문화운동의 확산 속에 문화 개념이 문명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 문명과 문화 개념의 상호 연관과 의미망의 변화는 역사의미론 탐구의 소재로 충분하다. 천도교 기관지인 『개벽』은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성찰과 함께 근대 전환의 방향을 모색하는 상이한 주체의 다양한 담론을 살펴보기에 유용한 자료다. 문명·문화를 중심으로 한 역사 인식과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와 대상 및 방법이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발화 주체와 개념의 수행성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물질-문명, 정신-문화의 개념틀이 직조되는 과정과 개념의 의미망이 상호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했다. 정신을 근본으로 하는 문명·문화 담론에서 두 개념의 경계는 여전히 불명확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한편 문명의 보편성과 문화의 특수성 구도가 구체화한 것도 이 시기 개념 운동의 중요한 특징이다. 보편문명의 권위가 해체되면서 민족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가 들어설 자리가 마련되었다. 조선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주체의 시선으로 연구하여 고유한 특성을 기술한 다종의 문화사 출판이 연달았다. 문명의 보편성은 점차 형체를 잃어 갔으나 조선문화의 특수성은 보편성과 대비하여 구체화되었다. 조선의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적 특수성은 타자와의 대비를 통해 발현될 수 있었다. 문화사 서술은 일제에 의한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과제만이 아니라, 식민주의에 맞서는 주체 기획과도 맞물려 있다. 도덕, 윤리를 본위로 하는 민족문화의 재발명은 물질문명에 빼앗긴 주체의 회복을 염원했다.


The received understanding that civilization was more or less synonymous with the achievements of the modern Western world showed signs of faltering during the 1920s. The ravages of World War Ⅰ had prompted many to doubt the significance of historical progress towards civilization, and demanded a reconsideration of human nature and a reappraisal of what constitutes true civilization. The increasing pressure for social reforms and the burgeoning cultural movement led to the concept of 'culture' emerging as the core of the civilization discourse. The conceptual interconnections and semantic changes of the terms 'civilization' and 'culture' during this period provide an interesting and significant subject for historical semantics. Gaebyeok, the bulletin of Cheondogyo, is very useful in this context: it offers a variety of discourses by different individuals who had examined modern Western civilization and were seeking new directions for modernity. The various combinations of historical conception, subjects and objects of discourse, and methodologies allow recognition of the relations between the subjects of speech and conceptual performance. In particular, this analysis emphasizes the semantic intersection of two conceptual frames: material-civilization vs. mental-culture. The boundary between these was still vaguely defined in the 1920s, and the frame of universal civilization and particular cultures gradually crystallized during this period. As the authority of universal civilization waned, the unique history and culture of each nation could emerge. A succession of books appeared on various themes, describing the distinctive traits of Joseon history and culture. Now that civilization was no longer seen as universal, the specific characteristics of Joseon culture were concomitantly more evident, and Joseon's national identity and singular cultural were perceived by contrast with those of other places. Writing about cultural history was more than the rectification of distortions imposed by Japan upon Joseon history: it was also a positive project on the part of the subject against colonialism. The reinvention of Joseon's national culture, which was founded on a moral and ethical perspective, reflected the subject's aspiration for recovery, which had been repressed by material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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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을 통한 『서북학회월보』와 『태극학보』의 담론적 상관관계 연구

저자 : 전성규 ( Seongkyu Jeon ) , 김병준 ( Byungjun Kim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1-188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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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디지털인문학 방법론을 통해 『서북학회월보』와 『태극학보』의 상관성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근대계몽기 1905~1910년 사이 발간된 학회보 및 협회보의 상관성을 정량적으로 연구해 본 결과, 재일본 유학생 잡지 사이의 유사도를 제외하고 국내와 유학생 잡지 중 『서북학회월보』와 『태극학보』의 유사도가 가장 높게 나왔다.
『서북학회월보』 내에서의 기사 유사도 히트맵을 그려 봄으로써 『서북학회월보』내에서 기사의 논조 변화와 시기, 그것과 『태극학보』와의 영향 관계를 설명하고, 두 학회지 간의 기사 코사인 유사도(cosine similarity) 분석을 통해 필진의 구체화와 기사 간 영향 관계를 확인하였다.
또한 두 학회지와 전체 근대계몽기 학술장의 비교를 위해 근대계몽기 10여 종의 학회지를 대상으로 TF-IDF(Term Frequency-Inverse Document Frequency) 가중치가 높은 단어군과 두 학회지의 TF-IDF 가중치가 높은 단어군을 뽑아 제시하였다. '국가'·'국민'·'문명' 등 기존의 개념사 연구가 주목해 온 주도 개념어들이 실제 근대계몽기 학술장에서 중요성이 높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교육'·'청년'·'공자' 등의 개념들과 관련해 『서북학회월보』와 『태극학보』가 담론의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The relationship between Seobuk Monthly Magazine and Taeguek Bulletin was investigated using a digital humanities methodology. In a quantitative analysis of correlations among a wide variety of academic and association publications between 1905 and 1910 (the modern enlightenment period), these two showed the greatest degree of similarity, with the sole exception of correlations among Japanese and Korean student magazines.
Similarity heatmaps of articles in Seobuk Monthly Magazine and Taeguek Bulletin highlight changes in their tone, and the inflection point explains their interrelationship. Based on a cosine similarity between the articles of the two publications, it was confirmed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articles resulted from writers who contributed to both.
In addition, keywords were extracted from whole magazines published in the modern enlightenment period, including from Seobuk Monthly Magazine and Taeguek Bulletin, based on TF-IDF weighting. This allows a comparison of the two magazines with academic publications from modern fields of study, which reveals that concept words which had been considered important in earlier conceptual history research, such as 'nation,' 'people' and 'civilization' were very important in academic publications of the modern enlightenment period. Also, for the terms 'education,' 'youth,' and 'Confucius,' there is a significant discrepancy between the discourse of Seobuk Monthly Magazine and Taeguek Bulle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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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유길준의 문명사회 구상과 스코틀랜드 계몽사상 : ― 유길준, 후쿠자와 유키치, 존 힐 버튼의 사상연쇄 ―

저자 : 장인성 ( Insung Jang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9-235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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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은 『서유견문』(1895)에서 근대한국이 지향할 개인, 사회, 국가를 구상하였다. 유길준은 버튼(John Hill Burton)의 『경제학교본』(1852)의 번역서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서양사정 외편』(1868)을 참조해서 문명사회론을 전개하였다. 유길준의 문명사회론은 후쿠자와를 매개로 스코틀랜드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유학적 정치관과 자신의 사상을 담아 주체적으로 서술한 것이었다. 이 논고의 목적은 유길준에 보이는 버튼, 후쿠자와와의 사상연쇄의 양상을 밝히고 유길준의 문명사회 구상의 내용과 성격을 해명하는 데 있다.
유길준의 문명사회 구상은 '개화', '인민', '인세', '방국' 개념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유길준은 전통적 윤리를 보전하면서 법과 규칙에 의해 규율되는 문명사회로 나아갈 '개화'를 모색하였다. '개화'는 후쿠자와의 '문명개화'와 구별되는 한국적 특수성을 함축한 말이었다. '인세'는 후쿠자와의 '인간 교제' 개념보다는 사회 영역을 가리키는 버튼의 'society'에 가까운 말이었다. 유길준은 후쿠자와의 '통의 (right)'와 '직분(duty)'을 유학의 '통의' 개념으로 이해하였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였다. 유길준은 'people'(버튼)의 번역어 '국민'(후쿠자와)을 '인민'으로 치환하였고, 국민국가 형성보다는 군주에 충성하는 인민의 의무를 강조하였다. 유길준은 주권을 가진 '방국' 개념을 상정하는 한편, 사직왕조를 뜻하는 전통적 '국가' 개념을 견지하였다. 유길준은 군주의 권위에 의존하는 사회질서를 모색하였다. 그의 문명사회 구상은 보수주의를 토대로 했다.


In his book Seoyugyeonmun (西遊見聞, 1895) Yu Gil-Jun envisaged the modern form of Korean civilized society by proposing a new conceptual framework of individual, society and the state. He developed his theory of civilized society by reference to Fukuzawa's Seiyojijo Gaihen (西洋事情外編, 1868), which was a translation of Political Economy (1852) by the Scottish Enlightenment author John Hill Burton. Despite borrowing a lot of terms and sentences from Fukuzawa, Yu explicitly articulated his own ideas by reinterpreting Fukuzawa in the context of Confucian thought. This paper explores which concepts Yu accepted from Burton and Fukuzawa, and how he incorporated these into his philosophy, as well as examining the ways in which his ideas about a civilized society differ from theirs.
Yu's conception of a Korean civilized society can be understood most readily from such terms as Gaewha (開化, civilization), Inmin (人民, people), Inse (人世, society) and Bangkug (邦國, state). Yu believed that Gaewha could be realized by establishing a society regulated by laws and rules, but his adherence to Confucian ethics distinguish his conception of Gaewha from Fukuzawa's term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文明開化). Yu's term Inse is closer to Burton's “society” for describing the social realm, a meaning which Fukuzawa's Ningen Kosai (人間交際) seems to lack. Yu reinterpreted Fukuzawa's terms Tsugi (通義, right) and Shokubun (職分, duty), by adding a Confucian dimension to their meanings. He also replaced Fukuzawa's word Kokumin (國民) by Inmin (人民), effectively assuming that people owe loyalty to the monarch rather than to the nation. Indeed, Yu's vision of a Korean civilized society was conditioned by the traditional concept of Gugga (國家) in which order is maintained by the monarch's authority, a clearly conservative ex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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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메이지 일본의 국체론적 계몽주의 : ― 이데올로기로서의 '교(敎)'와 계몽의 구조 ―

저자 : 이예안 ( Yeaann Lee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7-272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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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메이지 계몽사상에 관한 종래의 논의가 메이지 초기 메이로쿠샤의 문명개화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즉메이지 계몽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이로쿠샤의 문명개화론뿐 아니라 제정일치 및 신도국교화 입장에서 나온 문명개화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 두 방향의 논의가 메이지 후기 국체론의 영향 아래 다양한 갈래의 계몽주의로 전개되었다는 이해다. 그 갈래들 가운데 본고에서는, 신도국교화 논의에서 출발해 일본형 정교분리를 거쳐 국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근대계몽사상의 비판적 전유가 일어난 점에 주목했다. 특히 국체론의 핵심을 이루는 '교' 개념이 정치·종교·교육 영역에 걸쳐 분화·재편되는 과정에서, 신성권위에 의한 '가르침'이 하달되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깨달음'이 요청된 상황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몽의 의미와 주체가 이분된 동시에 불가분의 관계로 제시된 지점에 국체론적 계몽주의가 성립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로부터는 국체 이데올로기로서 '교'가 작동할 때, 신성권위의 이름을 빌린 외부 주체에 의한 명령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요구된 신앙적 깨달음이 계몽의 구조를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에 대한 판단과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대적 의미의 계몽 주체의 형성이 억제되었다는 문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reexamines the prevailing understanding of the Meiji Enlightenment in terms of the discourse on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conducted by Meirokusha in the early Meiji period. Specifically, it extends the discourse on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beyond the confines of Meirokusha to also include the discourses of those advocating the unity of church and state and the establishment of a state religion. Such discourses gave rise to various forms of enlightenment in the late Meiji period, of which this paper explores the critical appropriation of modern western enlightenment that occurred in the process of formation of Kokutai (national polity) theory, hence the enlightenment of Kokutai. There is a particular focus on the division and reorganization of the concept of 敎 (teaching / religion), since it was the key concept in Kokutai theory and enlightenment was only relevant to Kokutai theory in this context. This analysis shows that when the adherents of Kokutai understood it as a religion, and 敎 (teaching / religion) was seen in ideological terms, then enlightenment appeared in a distorted form as a discipline required by divine authority. Another finding is that when rational judgment and criticism of the Kokutai religion were not allowed, this suppressed the formation of the individual subject of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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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의 멜로드라마적 성격 연구

저자 : 이정숙 ( Jeongsook Lee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3-29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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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를 분석함으로써 유신체제기 대중의 욕망이 구조화되는 데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둔다. 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를 멜로드라마적 성격과 연결 지어 보고자 하는 본 연구의 관심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가족 단위의 현실적인 요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도시로 간 여성들이 왜 새삼 '지식'을 요구하는 사회적 차원과 연결되었는가 하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이들은 교육을 받고 싶었으나 '진학'의 진입 장벽에 부딪혀서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던 배움에 대한 오랜 욕망을 품고 있었으며, 이 욕망과 별개로 어느 순간 사용주와 대결해야 하는 '지식'의 필요성과 접속한다. 저 두 개의 지식, 즉 욕망으로서의 지식과 사회적·정치적 존재가 요구하는 지식이 한 개인의 삶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지점에 여성 노동자 수기가 존재한다. 이 두 지식이 한 사람의 생애사(life-story)에서 통합·배치되는 장면이 저널리즘의 한 양식이 됨으로써 비로소 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는 대중성과 정치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 연구의 주요 대상인 '여성 노동자 수기'란 석정남, 장남수, 송효순 등 노동조합 결성 과정을 경험한 공장노동자뿐만 아니라 도시로 유입되어 식모, 차장, 가내수공업 업무 등에 종사한 여성들이 쓴 수기를 두루 의미한다. 이러한 범주 설정은 여성 노동자 수기가 노동자 정체성이 깃든 수기인 동시에 '여성 수기'라는 장르의 시대적인 확산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착목한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 수기의 멜로드라마적 성격을 산업화 시기 센티멘털리즘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결절 지점으로 착안하고 있다.
멜로드라마가 작동하는 지점은 규율 권력이 여성젠더에게 부과하고자 했던 노동의 보람, 건전한 사회의 기풍 등의 이율배반적 모순에 “단일감정적(monopathic)”인 정서 구조로써 대항하면서 발생하는 센티멘털리즘에 기반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빈곤의 지속적인 압박은 도시에서 생활지식을 습득한 여성이 필연적으로 센티멘털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이 감정의 핵심은 눈물과 슬픔 그리고 우애를 바탕으로 한 연민이며, 가부장적 도덕에 대한 심문을 포함하여 사회의 불평등을 자신들이 겪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로써 재구성한다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중산층 여성의 젠더 이데올로기와 이반하는 여성노동자의 도덕률이 새로이 발생하며, 이들의 감정 구조가 계급적으로 대중의 상상력을 확산시킨다. 이 점이 노동하는 여성, 사회의 밑바닥 구조를 경험한 여성이 글쓰기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부여하며, 현실 제도의 부조리를 단죄하는 도덕적 상상력이 이들이 쓴 수기가 멜로드라마적으로 스토리텔링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필연성의 바탕이 된다. 개발주의 이데올로기의 우세속에서 진행된 한국적 '산업소설'의 형성은 애초부터 부조리한 세계·구조와의 싸움을 매개로 한 멜로드라마적인 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This study analyzes the memoirs of female laborers of the 1960s and 1970s during a period of great economic and social change when the authoritarian regime was attempting to restructure the desires of the public. These women were bearing the brunt of raising their families in very challenging conditions: poverty was a fact of life and many migrated to the cities to mitigate its effects. Perhaps surprisingly, however, these memoirs reveal a melodramatic imaginative quality. So how and why did these women become connected to the social strata from which they acquired such 'knowing'.
It is clear from their writings that they desired to pursue their educations further than the prevailing social conditions would allow, and they subsequently encountered the necessity of 'knowledge' when confronting employers at some point, regardless of such desires, The memoirs of female laborers encompass and incorporate both forms of knowing, i.e. the knowing as unfulfilled desire and the knowing required by a social / political being. This integration of these two ways of knowing informed the life-stories of these women, becoming a form of journalism, so that these memoirs from the 1960-70s have both popular appeal and political importance.
The female laborers' memoirs which form the main subject of this study include some written by factory laborers during unionization struggles, such as Seok Jeongnam, Jang Namsu, and Song Hyosun, and also some by women who worked as housekeepers, bus conductors, and in cottage industries. The identities formed by these category settings are expressed in their memoirs, but all of them also shared some common features. Indeed, this study considers the melodramatic characteristics of female laborers' memoirs in the 1960-1970s to be an important cultural nodal point which reveals sentimentalism during the period of industrialization. The central focus of the melodrama is based on sentimentalism as a single monolithic emotional structure arising as a reaction against their daily suffering and gendered subjugation. Facing the reality of pervasive inequality and the relentless pressure of poverty, these women who were newly acquainted with living in the city were inevitably vulnerable to escaping into sentimentalism. At the heart of this emotional reaction is compassion based on sisterhood and shared tears. It became a way to process and restructure the anger they experienced when faced with the absurd reality of social inequality, sometimes resulting in the questioning of patriarchal morality. In consequence the gender ideology of middle-class women and the moral perceptions of female laborers becomes estranged, so that female laborers and other women at the lowest levels of society emerge as new subjects in the writings of the era. Ultimately then, it was the moral imagination of these women, who were confronted by an absurdly unjust social system, which gave rise to such a melodramatic type of storytelling. In parallel, Korean 'industrial novels,' written under the prevailing ideology of developmentalism, also have a melodramatic structure in response to a similar struggle with an absurd and unjus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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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역사·유물론적 문학이론의 계보 : ― 비평동인회 크리티카 외, 『소설을 생각한다』 (문예출판사, 2018) ―

저자 : 이경재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23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17-334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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