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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문화 update

  •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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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년간
  • : 1975-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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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6)~2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310
선도문화
28권0호(2020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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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승휴의 학술사상과 원나라 중국 이해

저자 : 이경룡 ( Lee Kyeng Lyo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3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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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는 고려말기 문인이며 관원이었으며 『동안거사집』을 남겼다. 본 논문은 문집에 실린 그의 학술사상과 원나라 중국의 이해를 살펴보았다. 젊었을 때 유불도 삼교합일에 따라 삶과 학술을 설계하고 훌륭한 문인이 되려고 하였다. 삼교합일은 불교의 마음수양, 도교의 양생술, 유학의 경세 각기 다른 역할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경세는 현대의 사회과학에 해당하며 마음수양과 양생술은 인문학과 의학에 가깝다. 따라서 삼교합일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40대 이후부터 경세 관료가 되려고 역대왕조의 계승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연구하였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고 『제왕운기』를 편찬하였다. 중요한 것은 인류세상을 경세하였다는 단군에 그치지 않고 우주의 창조주와 주재자로서 종교적 영군(靈君)이라고 승격시켰다. 영군은 경세뿐만 아니라 심신 수련의 최종 목표로서 종교적 주재자이다. 따라서 영군은 삼교합일의 종교적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군은 심신 수련에서 유가의 도심과 불교의 영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국 심학의 철학적 근원이 되었다.
그는 원나라에 사신 가서 원나라의 학술변화를 보았고 문인들과 교유하여 그의 시문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원나라 학계는 성리학이 개인 수양의 도학에서 경세학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의 경세학은 동아시아 성리학의 변화를 반영하였다. 그는 평생 동안의 수양공부 결과로 만년에는 이신(怡神)에 경지에 이르고 외적으로는 사사무애의 원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Lee, Seung Hui(李承休) was a notable scholar and official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and left a collection of works. This paper make clear his scholarly thoughts and his understanding of the Yuan Dynasty China in the literature book. When he was young, he planed to join together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三敎合一) in his life and learning and tried to become a great literary official. The three schools were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mind-building in Buddhism, curing in Taoism, and administration of state affairs in Confucianism. After his 40s, he studied the succession of previous dynasties and the rise and fall of the states in order to become a competent government official. Therefore, he understood the history of Dangun-Joseon(檀君朝鮮) and compiled the “Jewangungi(帝王韻紀)” and understood Dangun(檀君) as Yeon-gun(靈君) of Spiritual Creator and Dominator of the whole universe and all human being. Young-gun has laid a foundation as the dominator of every human souls and all things in Korean metaphysical philosophy, which is equivalent to the moral mind(道心) of Confucianism and the watchful spirit(靈明) of Buddhism. He lived in the capital of the Yuan Dynasty and be aware of the New Confucianism(性理學) in Yuan Dynasty and associated with the literati, so his poems received high praise. At that time, the New Confucianism traditions of the Yuan Dynasty was shifting from individual-discipline(個人修養) to administration of state affairs(經世). His thought of state affairs(經世思想) reflected some of the change in the New Confucianism. In his later years, he rose to the status of calm happiness in mind(怡神) and externally to the full mature level of amicable love to every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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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고려 중, 후기 역사 서술문체의 다변화와 이승휴의 선택

저자 : 심경호 ( Sim Kyung H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5-124 (7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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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제왕운기(帝王韻紀)』는 몽고 침략과 친원 정권의 수립 이후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선양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영사시(詠史詩)로서 역사학이나 국문학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 속에 담긴 문화적 위기의식과 저항정신은 일연(一然)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동기와 같아서, 단군을 한국사체계 속에 편입시켰다는 점도 주목된다. 『제왕운기』는 세 번에 걸쳐 편집되었다. 초고본을 수정할 때 이승휴는 원과 고려 왕조를 찬양하고 당시의 국왕 충렬왕의 왕권을 공고히 하려는 의식을 담아내었다. 고려 중엽, 후기에는 자국의 역사를 정리하려는 의식이 강하여 여러 다양한 형식의 역사서들이 편찬되었다. 1286년(충렬왕 12) 11월에는 원나라에 보낼 국사를 사관(史館)의 오양우(吳良遇) 등에게 편수하게 한 일도 있다. 원나라의 요구에 의한 역사서 편찬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이승휴는 독자적인 역사관과 정통관, 문명의식을 지니고 『제왕운기』를 편찬했다. 이승휴는 시양식의 선별에 각별한 의식을 지니고, 『제왕운기』를 시의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오언시와 칠언시를 구별하고, 오언시로 맨 마지막의 「본조군왕세계연대(本朝君王世系年代)」를 작성했다.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통해 '본의 일'을 서술하고자 하여, 본 조의 역사를 노래할 때 특별히 오언시를 사용했다.


Yi, Seung Hyu(李承休, 1224-1300)'s Jewang Un'gi (Songs of Emperors and Kings) is a historical poem (詠史詩) that was composed to promote ethnic identity and independence after the Mongolian invasion and the establishment of pro-Yuan regime. The poem is highly appreciated in history and Korean literature. Spirit of crisis and resistance in the poem is identical to a motivation for creation of Samguk Yusa by Iryeon, incorporating Dangun in history of Korea. Jewang Un'gi was edited three times. When Yi Seung-hyu edited the first manuscript edition, he praised Yuan and Goryeo, and expressed an intention to strengthen the sovereign power of King Chungnyeol. In the middle and late Goryeo period, historical books in various format were published with a will to organize the history of own country. In November 1286 (12th year of Chungnyeol), a court historian O Yangwu was ordered to edit a Korean history for Yuan dynasty. This shows that there was a case of publishing a history book by demand of Yuan. However at the time, Yi Seung-hyu published Jewang Un'gi, with his own historical view and an idea of authenticity and civilization. Yi paid particular attention to selection of poetic style, thus he present Jewang Un'gi in a format of poetry. Yi distinguished five-words poetry from seven-words poetry in his work, composing Bonjo Gunwang Segye Yondae (The Chronicle and Genealogy of Our Sovereign) in a five-words poem in the last part. In Jewang Un'gi, Yi Seung-hyu wanted to describe 'events of our country,' and he used five-words poetry when he narrated the history of the country in partic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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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30년대 대종교 계열 학자들의 이승휴와 제왕운기에 대한 연구

저자 : 조남호 ( Cho Nam H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5-16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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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종교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학자들의 『제왕운기』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1930년대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에 대한 논의는 단군에 대한 잠시 꺼져가던 불을 다시 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의 발견과 발행은 촉매역할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황의돈과 나카무라 히데타카는 발견과 발행에 역할을 하였고, 최익한은 이승휴에 대해 심도깊은 연구를 하였고, 정인보와 안재홍은 자기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이승휴를 논평하였다. 정인보는 『제왕운기』에서 단군의 홍익인간을 말한 점에서 그것을 인정하였지만, 단군을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제왕운기』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안재홍은 언어적 관점으로 『제왕운기』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이승휴의 단군 기록이 조선에서도 정통사관이 되었음을 논증한 점에서 일치한다. 고려 말에 이어 일제 강점기가 단군연구의 부흥기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 나카무라는 일본인 학자 답게 단군전설이 고려 말에 점차로 만들어진 인물이고 『제왕운기』에 나타나는 단군의 강역은 고려시대의 판도를 넓히려는 욕망으로 보고 있는데 비해 대종교계열의 학자들은 단군전설과 판도가 전조선에 관계한 존재와 국가로 보고 있다. 이것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단군을 다르게 보는 점이다.


This essay focuses on the study of Dejeong-gyo scholars on Jewangunki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discussion of Jewangunki in the 1930's helped to re-fire the fire that had been fading away for some time at the parishioner. In particular, the discovery and publication of Jewangunki served as catalysts. Among them, Hwang Yi Dong and Nakamura Hidetaka played a role in discovering and publishing, Choi Yik Han studied Lee Soung Hue deeply, and Jung In Bo and Ahn Jae Hong criticized him with their own historical perspective. Jung In Bo admitted it in point of Hongikyingan, but he was critic in point of view of Tan gun as a human being. Nevertheless, they all agree that Lee Seung Hue's records have become orthodox views in Chosun. This means that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occupation after the end of Goryeo has become a period of reconstruction for the study of the Tangun. On the other hand, Nakamura, like a Japanese scholar, said Tangun was created gradually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and he was considered a desire to expand the territory of the Goryeo Dynasty. Dejeong-gyo scholars saw him as Tangun Chosun Dynasty. The legend and territory of Tangun Chosun Dynasty is real. This is why Japanese and Koreans look at him differe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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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배달국 초 백두산 천평문화의 개시와 한민족(예맥족·새밝족·맥족)의 형성

저자 : 정경희 ( Jung Kyung Hee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1-240 (8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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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B.C.4000년~B.C.2400년경 동북아에서 만개한 상고문화를 '맥족-배달국-선도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으로써 한민족의 기원을 '[맥족(환웅족 + 웅족)] + 예족(호족) → 한민족(예맥족·새밝족·맥족)'으로 정리한 연구이다. 1980년대 이후 동북아 고고학의 발달로 한국사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는 배달국사가 복원되면서 한국인의 종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방향은 대체로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한민족(예맥족)의 성립기는 배달국이며 배달국문화의 요체인 선도제천문화로 인해 토템족에서 천손족으로의 정체성 전환이 있었다. 전기 신석기 웅족·호족은 토템족 단계에 머물렀지만, 후기 신석기·금석 병용기 배달국 개창을 계기로 환웅족과 웅족·호족의 결합으로 한민족(예맥족·새밝족·맥족)이 형성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선도제천문화'가 민족문화의 요체가 되면서 한민족은 토템족에서 천손족으로 변모되었다.
둘째, 배달국시기 정립된 한민족의 선도제천문화는 주변 지역으로 널리 전파, 주변민족까지 천손족으로 변모시켰다. 배달국 이후 단군조선 시기에 이르기까기 한민족의 선도제천문화와 천손사상은 중원지역으로 전파, 중국문명을 개도하였을 뿐아니라 북방제족을 매개로 동·서·남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일대로 전파되었다. 배달국 선도제천문화와 천손사상은 인류문화의 발전 방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제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차원을 넘어 인류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origin of the Korean people(Han韓 race), i.e. '[Maek貊 race(Hwanung桓雄 race + Ung熊 race)] + Yeh(濊) race(Ho虎 race) → Han race(Yemaek濊貊 race·Saepark새밝 race·Maek race)', according to a research perspective that recognizes the ancient culture between 4000B.C.~2400B.C. in full bloom in Northeast Asia as 'Baedalkook-Sundo(仙道) culture'
As Confucian historical recognition became popular in Korean society, the history of the formation of the Korean people in early Baedalkook and the history of Baedalkook, Dangun Chosun(檀君朝鮮), and Buyeo(夫餘), which embraced the northern peoples with Sundo Heaven Ritual(祭天) Culture, were forgotten. Nowadays, with the development of Northeast Asian archeology, the 'Baedalkook-Sundo culture', the true starting point of Korean history, has been restored, and it is possible to clarify the ethnic and cultural identity of Koreans.
First, in the early Neolithic period, the Ung race and Ho race were only Totems, but after the opening of the late Neolithic and Chalcolithic periods, the Korean people were newly formed through the combination of the Hwanung·Ung·Ho races and the Sundo Heaven Ritual Culture became the national culture. As a result, the Korean people changed from Totem people to Chunson(天孫) people.
Second, the Sundo Heaven Ritual Culture and the Chunson(天孫) thought of the Korean people during Baedalkook and Dangun Chosun periods spread beyond the East, West, and South Asia through the northern peoples to Eurasia, forming the basic framework of the world's ancient civilizations and elevating the dignity of human history. The Sundo Heaven Ritual Culture and the Chunson thought of Baedalkook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human culture beyond the national culture by presenting deep understanding and insights into the direction of human culture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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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풀이의 기원적 의미 재고 -화랑과 화랭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저자 : 정혜원 ( Jung Hye Wo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1-278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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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살(煞)을 풀다'라고 알려져 있는 현행 '살풀이'의 의미 재고를 통해, 살풀이가무악의 담당계층이 화랑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현행 살풀이는 승무와 더불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전통가무악으로서 전통예인들의 수준 높은 기예가 담겨 있다. 전통예인들은 화랭이, 재인, 광대 등으로 이들의 연원은 신라사회의 화랑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고에서는 살풀이의 연원을 신라 화랑의 향가 '도솔가'에서 새롭게 찾고, 도솔가와 화랑의 연관성을 밝힘으로써 현재까지도 살풀이가 화랭이 집단에서 연희되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두 도솔가를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도솔가의 의미는 신라최초의 가악이자 화랑이 주도한 국행천신제의의 종합예술이었다. 당시 부족국가를 병합한 신라는 각 부족의 제천의식을 수용하고 이를 불교의 세계관과 결합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장차 삼국통일을 위한 정치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사회에 퍼져있던 불교의 미륵신앙이 토착신앙과 습합되었으며, 도솔가는 도솔천 미륵불의 현현이자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화랑이 국행 천신제의를 담당하며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제신가무악(祭神歌舞樂)이었다.
신라시대 화랑의 도솔가는 진골귀족으로서 화랑이 가졌던 정치적 위상과 종교적 지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고려 중기이후 화랑파와 불교파는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유교파와 극렬하게 대립되다가 중앙 정권에서 점차 세력을 상실한다. 이후 배타적인 성격의 유교가 조선의 건국이념이 되면서 화랑파와 불교파는 정치적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고, 화랑은 최하층 천민계급으로 전락하여 종교적 기능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고려후기에 악을 담당하는 계층으로써 법적으로 신분이 세습되고 정치·사회적인 지위를 제약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 최고의 종교 예술가 집단인 세습무부 집단을 형성하며, 관·군·민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신라시대 화랑계층이 국행 천신제의에서 올리던 도솔가는 도솔풀이 무가와 도솔풀이시나위 음악, 그리고 도솔풀이춤으로 전승되어 판소리, 산조와 살풀이춤의 모태가 되었다. 이로써 신라시대 '화랑'의 '사뇌가' 형식의 '도솔가'는 현재 '화랭이' 재인집단의 '시나위' 형식의 '살풀이'로 전개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attempts to improve Salpuri dance's significances and natures through finding the origins of Salpuri dance in “Dosolga” which is one of the first ancient Korean poetry. According to Kim Bu-sik's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and Il-yeon's 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 “Dosolga” is the first song and dance in the Silla Dynasty and a synthetic art of national ritual ceremony for heavenly gods which Hwarang carry out. The Silla Dynasty, had conquered several tribal states, want to legitimize The Silla's reign and form a political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ree nations by unifying each tribe's ritual ceremonies and marrying them with the Buddhist view of the world. In the meantime, Maitreya faith was spread out in the Silla society, and Hwarang were honored as the manifestation of Maitreya.
Hwarang's “Dosolga” shows Hwarang's political and religious status as the aristocratic class in the Silla Dynasty. However, Hwarang and the Buddhist faction lost power at national politics. When the Joseon Dynasty chose the Confucianism as its founding principle of a nation, they lost their political status and were degraded to the lowest class who handled religious matters.
Yet, they formed hereditary-mubus, circles of Joseon's highest artists, and played musicians the royal court and ordinary society. In the meantime, “Dosolga,” music for song and dance which Hwarang played at ritual ceremony in the Silla Dynasty, was inherited to Dosolpuri shamanic songs, Dosolpuri-Sinawi songs, and Dosolpuri dance, and each of them were the beginning of Pansori, Sanjo (Free-style Solo), and Salpuri dance. it can confirm with affinity between “Dosolga”-Hwarang-Hyangga in the Silla Dynasty and Dosolpuri-Hwaraengi-Sinawi music.
Salpuri music have natures of ritual ceremony and improvisation which were originated from the ancient Silla Dynasty and inherited by Hwarang. In the Joseon Dynasty, Hwarang were degraded to the lowest class who handled religious matters and artistic performances. As hereditary-mubus in the Colonial period formed mutual exchange with Kisaeng's arts, Salpuri music lost its nature as ritual ceremony and fell to Salpuri dance's accompaniment. When raising the original sense of Salpuri's, however, it should be considered as a solemn music for ritual ceremony and a synthetic art with sophisticated improvisation, not music for recreations or superstitious ceremon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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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국권회복(1945년) 이후 '3.1혁명'에 대한 평가·인식 및 그 의미

저자 : 신운용 ( Shin Woon Yong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9-316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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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이글에서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학계와 일반인 일부의 폄하 논란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권회복 이후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의 평가와 인식을 살펴보았다. 해방공간에서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서로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학원 강사 설민석 등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폄하는 공주산주의 세력의 주장에 큰 영향을 받은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이글에서 밝혔다.
공산주의 세력의 3.1혁명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3.1혁명은 부르조아 민족주의의 최후 단계로 민중의 계급적 자각으로 공산주의 운동이 민족독립투쟁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은 “이적행위자' 또는 '인민배반자'라는 극단적 평가와 인식을 갖고 있으며, 임시정부에 대해서도 '반인민적 정부'라고 규정하였다. 이는 현재 북측 정권의 평가와 인식으로 이어졌고, 북한의 3.1혁명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김일성 일가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3.1혁명은 실패하였으며, 그 원인이 공산주의 세력과 김일성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 북한의 '움직일 수 없는' 해석이다. 사실 한국근대 민족운동은 민족주의 세력·아나키스트 세력·공산주의 세력·종교 세력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주체들이 전개하였다. 이 점에서 북한의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기술은 근본적으로 역사 왜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북한의 3.1혁명에 대한 평가와 인식은 지수걸 등이 참여한 『3·1민족해방 운동연구』 에 그대로 반영되어 3.1혁명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큰 원인이 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설민석과 같이 극단적으로 주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In this article, I reviewed the evaluation and recognition of the minzok juuiist(민족주의) and communist forces after the restoration of the national rights in order to clarify the cause of the Undervaluation of the academic and ordinary people of the 33 representatives of the 3.1 Revolution. In the liberation space, the evaluation and recognition of the 3.1 Revolution and the 33 representatives of the 3.1 Revolution appeared to face each other. the Undervaluation of the 33 representatives, such as Sul Min-Suk, is based on the so-called progressive historians of Korea who were greatly influenced by the claims of the Communist.
The basic perception of the 3.1 revolution of the communist forces is that “the 3.1 revolution was the last stage of bourgeois nationalism and the communist movement became the mainstream of the national independence struggle as the people's class awareness”. Even the evaluations and perceptions of the communists against the 33 representatives were extensively assessed as acts benefiting the enemy” or “people traitors”, and the provisional government(대한민국임시정부) was also defined as a “government against the people.” This led to the evaluation and recognition of the present North Korean regime, and the history of the 3.1 Revolution of North Korea was reconstructed centering on the Kim Il Sung family, unlike the historical facts. In this perspective, the 3.1 revolution was a failure, and the North Korean interpretation was that the cause was the absence of communist forces and Kim Il Sung.
In fact, various entities such as nationalist, anarchist, communist, and religious forces developed Korean modern national movement. In this regard, the description of the 3.1 Revolution and the 33 representatives in the DPRK is basically a history distor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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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현대문명의 위기와 후천개벽 사상의 포스트모던적 함의

저자 : 김철수 ( Kim Chul Soo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17-35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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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의 중요한 근원은 서구 근대적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은 기계론적 자연관에 근거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자유와 이성을 확보했고 산업혁명과 근대국가의 현대문명을 형성하여 왔다. 현대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류의 삶은 풍요로워졌고 합리적 문명건설이 가능해졌지만 현 인류가 근대적 세계관에 고착되어 발전을 추구하고 달성할수록 행복하기 보다는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생태적 문제들과 심리적 불안이 가중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크리쉬나의 수레처럼 끊임 없이 달려온 현대문명이다. 현대문명의 현재 상황은 불안하고 위태로우며, 우리는 현대문명 이후 곧 포스트모던 시대를 담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서구 근대적 세계관에 대한 반성과 현대 이후의 세계관의 모색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현재 인류의 문명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현대문명 위기와 현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후천개벽 사상은 좋은 기반을 제공해 준다. 19세기 조선사회에서 전개되었던 후천개벽 사상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문명에 적합한 세계관적 토대를 제공하여 준다. 모든 존재들의 근원적인 시·공간적 통일이라는 통일체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후천개벽 사상은 존재물을 대립과 갈등 보다는 조화와 상생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온 우주를 자신 안에 품고 있는 우주적인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포스트모던적 삶은 자신에 내재된 우주성을 깨닫고 자신과 세계와의 통일성을 회복하는 것이 된다. 메타종교는 인간개벽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며 새로운 문명을 여는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Modern civilization is confronted with serious crisis, and stands at the crossroads of great transformation. The important basis of modern civilization is a world-view of modern Western Europe, that is dualism and a mechanistic world-view. This world-view has been a base in development of modern Western civilization as scientific technology, economic capitalism, civil society, political institution such as nation-state, so far as modern religions. But in these days, modern civilization pumps a huge amount of social, political, institutional, ecological problems, and we are hoping for a transformation to new civilization. This new civilization is based on a holistic world-view as distinct from modern civilization. The many components of new civilization are embedded in the thought of the Later-World Transformation. This thought has developed by greatest religious thinker as Choi Su-un, Kim Il-bu, Kang Jeung-san in the 19th century of Korea. Accordingly,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clarify a holistic world-view of coming new civilization and the function of meta-religion in post-modern era. In order to do this, the focus will be on its relationship of characters the Later-World Transformation' thought and post-modern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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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본신도 신악가(神樂歌)의 신격(神格)연구 - 아지메(阿知女)를 중심으로

저자 : 이강민 ( Lee Gang Mi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5-410 (5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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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일본 신도(神道)에서 최고위의 신은 흔히 태양신이자 천황가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오가미(天照大神)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헤이안(平安)시대 중기에 채록되어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는 신악가 가사들에서는 천조대신이 아닌 '아지메(阿知女)'가 주요한 제신(祭神)으로 등장한다. 그것도 상당히 일관성 있게 여러 곳에서 등장하며, 신악 가사내용의 앞뒤 관계로 살펴 볼 때도, 신악가에서 가장 중요한 제신의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고 있다.
본고에서는 신악가 속에 등장하는 아지메 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사내용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그 위상을 새롭게 밝혀보고자 시도하였다. 또한 기존의 일본 신도학자들이 바라 본 아지메에 관한 주장들도 비판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자 하였다.
기왕의 일본학자들도 아지메의 신격과 유래에 대해 주목한 바 있는데, 대체로 신도학자들은 신대(神代)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아메노우즈메(天鈿女)로 보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큐슈를 중심으로 한 해인(海人) 부족인 아즈미(安曇,阿曇)씨(氏)의 조신(祖神)인 아즈미이소라(安曇磯良)라고 보는 설과, 한국어로 소녀(少女)·아가씨(娘)을 의미하는 알(아루,阿只)에서 연원하여 아루(알)메→앗찌메→아찌메로 변화된 것으로 보는 설과 단군의 어머니 웅녀라는 설 그리고 아지메는 천(天)·지(地)·인(人)이라는 설 등이 있다.
한편, 천조대신은 언제부터 어떻게 하여 현재와 같이 천황가의 최고조 상신이 되었는지를 밝힌 연구가 있어 주목을 끌게 된다. 그는 민속학자인 오리구치시노부(折口信夫)의 지도로 국학원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츠쿠시 노부자네(築紫申眞)이다. 그는 『아마테라스의 탄생(2002)』이란 저서에서, 현재 천황가의 조상신인 천조대신(여신)은 7세기 말에 천황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이라고 주장하며, 그 이전의 천황가에서는 자연신인 태양신[(남신(男神), 일신(日神) 또는 오오히루메노무치(大日靈貴)로 기록됨]을 제사 모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저명한 신도학자들의 이론들에 기반 할 뿐만 아니라 『고사기』, 『일본서기』, 『속일본기』와 같은 문헌들 속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어 함부로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신악가에 등장하는 아지메와 오오히루메노무치(大日靈貴)와의 신격위상을 비교하는데 상당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아지메는 여신이다. 그와 함께 신악가 가사인 '한신(韓神)' 노래속에서 '아지메'가 곧 '한(韓)'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지메는 천·지·인의 의미라는 천황가 아악장의 해석이 있다. 또한 아지메는 고대 신라(지금의 경상도 지역)어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종합하면, 아지메는 바로 『징심록 부도지』에 나오는 마고삼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본 연구는 기왕의 학자들과 다른 관점에서 신악가사 속의 '아지메(阿知女)'의 위상과 신격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가 신악가 연구와 해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In general, the highest god of Japanese Sintoism is commonly known as Amaterasu Ohokami(天照大神), the sun god and the ancestor god of Japanese emperor family. However, in the lyrics of the Gagura songs(神樂歌), which were reportedly written in the middle of the Heian era(平安時代),“Ajime(阿知女)”rather than “Amaterasu” appears as a major divinity. It also appears quite consistently often and appears to have the meaning of the most important ritual among the Gagura songs, when viewed in relation to the lyrics.
It is strange that Amaterasu is not the main deity in the lyrics, and that Azime is enshrined as the main deity. However, since it is a fact, this paper attempts to clarify its status by citing the lyrics directly about the god Ajime appearing in the Gagura songs. We also looked at the claims about Azime's reality, which were claimed by Japanese Shinto scholars.
Historical Japanese scholars have also paid attention to Ajime's deity and origin, and most Shinto scholars have a view of 天鈿女(Amenouzume) appearing in the myths of the gods. In addition, it is said that ``"Azumi-Isora(安曇磯良), the god of ``Azmi tribe(安曇(阿曇)氏)'', a seaman tribe centered on Kyushu, and Azime was transferred from Arume to Atzime and back to Azime'' and there are theories of mother Ungyeo(熊女,Dahngun' mother) and Azime of heaven, earth, and man.
On the other hand, Amaterasu is attracting attention because there is a study that revealed how and when it became the ancestor god of the Japanese emperor family as it is now. He is Tzukusi-nobuzane(築紫申眞), a graduate of the Faculty of Literature, Japanase Kookhakwon University, under the guidance of folklore scholar Origuchi(折口信夫). In his book The Birth of Amaterasu, he claimed that the god of ancestors, the ancestor god of the current emperor, was created by the emperor at the end of the seventh century. And the former emperor's family claims to have worshiped the natural god, the sun god (written as 日神 or 大日靈貴). His arguments are not only based on the theories of prominent Shinto scholars, but also based on such documents as Kozikii(古事記), Nihonshoki(日本書紀), and Sok-nihonki(續日本記), and are hard to ignore. In addition, this paper suggests significant implications for comparing the divinity phase between Ajime and Ohhirume(大日靈貴).
Azime is the goddess. At the same time, we can see that Azime is the god of '한 (韓)' in the lyrics(韓神)of the Gagura song. In addition, it can be seen that Azime has the meaning of heaven, earth, and man. Azime is also most likely an ancient Silla (now Gyeongsang-do) language. Summarizing all the situations like this, Azime finds out that she is the same as the Mago in Jingsim Lok Budoji(『澄心錄 符都誌』). This study attempted to look at the deity of “Ajime(阿知女) in the the lyrics of the Japanese Gagura,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KCI등재

9고전(古典)에 담겨있는 꿈과 해몽에 대한 고찰

저자 : 조규문 ( Cho Kyu Mun )

발행기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간행물 : 선도문화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11-442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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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잠을 잘 때 꿈을 꾼다. 꿈은 생리적이고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의 연속이다. 꿈에 나타나는 모든 심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인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꿈에 대해 알아야 한다.
꿈에 대한 연구를 통해 꿈이 사람의 삶, 정신, 건강 그리고 생활 등에 미치는 기능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동서양의 모든 민족과 인간은 꿈과 꿈의 해석에 관심을 가져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꿈은 수면 중에 영혼이 활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열자는 심리적 상태에 따라 거듭하여 발생하는 환영의 연속일 뿐이라 했다.
사람들은 꿈을 학문적으로 다루고 연구하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런데 우리가 꾸는 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꿈은 종류가 많아서 모든 꿈에 대해 하나의 종합적이고 통일 된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는 점도 꿈에 대한 연구의 장애가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꿈은 고전, 문학, 역사, 설화, 민속,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고 현재도 우리 삶에서 함께 진행 중이다. 그리고 꿈에 보여 지는 상에 대한 꿈의 해석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꿈에 나타나는 상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도 있지만 사람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환경, 가치관 등에 따라 같은 꿈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 해석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꿈에 대한 많은 내용들이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논문의 성향과 진행 편의상 크게 심리학, 고전, 문학, 역사, 종교에 담겨 있는 꿈과 해몽으로 나누어 다루어 보았다. 이같은 연구의 내용을 토대로 모든 꿈들은 꿈을 꾸게 된 사람의 과거나 현재의 상태를 통해 꿈의 해석에 있어 심리적 상태와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예지적 기능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Humans dream when they sleep. Dreams are physiological and psychological phenomena. Every image that appears in a dream has meaning. Therefore, to understand your inner self, you need to know about your dreams. Since ancient times, all peoples in the East and West have been interested in dreams and interpretations of dreams, and have been trying to deal with them academically. However, there are many kinds of dreams, which makes it difficult to find a comprehensive and unified theory for all dreams. Dreams appear in a wide range of fields, including classics, literature, history, tales, and folklore, and are still working together in our lives. Although there are many contents about dreams in these various fields, this paper deals with psychology, psychoanalysis, literature, history, and dream interpretation for the purpose of dissertation and convenience. Based on the contents of this study, all dreams examined the dream in a comprehensive and in-depth way by focusing on the predictive function in the interpretation of dream through the past or present state of the person who drea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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