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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5)~29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99
기독교철학
29권0호(2020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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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신과 인과성 : 반사실적 조건문을 중심으로

저자 : 김완종 ( Kim Wan Jong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26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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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 몸담고 있는 존재자 전체는 단 하나(univocal)의 개별자도 아니며 각기 다른(equivocal) 개별자도 아니며 유사한(analogical) 개별자로 시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 존재들은 시공간 속에서 생성 소멸하며 이 과정 속에서 그것들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통속적인 어떤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 있다. 일반적(통설적으로)으로 우리는 이것을 인과관계, 인과성, 인과, 원인과 결과 등등으로 부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들은 통속적 인과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인정할 것이다. 모든 존재자들이 어떤 인과관계 속에 얽혀서 살고 있다면 인과적 관계는 존재자들에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가? 필연성은 아니더라도 어떤 인과적 법칙들이 존재자들 사이에는 있을 수밖에 없는가? 또한 법칙은 있지 않더라도 일정한 형식은 있을 수 없는가? 그리고 인과성은 시공간 속에 있는 존재자들 간에만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인가? 다시 말하면 물질적이고 신체적인 측면에서만 고려 될 수 있는 인과성이란 말인가? 비물질적이고 비시공간적인 것, 즉 정신, 영혼, 심적인 것(실체)등은 인과성 속에 포섭될 수 없는 것인가? 만약 포섭될 수 없다면 이런 것들은 없는 것인가? 정신적인 것 또는 심적인 것에 인과성이 있다면 물질적인 것과 연결해서만 인과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인가? 물질적인 것이 원인은 될 수 있지만 심적인 것은 원인이 될 수 없으며 혹 되더라도 물리적 것이 수반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물질적인 것을 배제하고 심적인 것들끼리도 인과적 관계(심심인과)를 지닐 수는 없는 것인가? 물질적인 것과 인과적 관계를 맺는 것은 물질적인 것뿐인가(인과 폐쇄성)? 이런 모든 의문들은 결국 인과성이 무엇인지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심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심적인 것과 심적인 것 간의 인과적 고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인과성은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인과성에 법칙성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적이고 개연적인 것인지가 문제이다. 필자는 본 글에서 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물리적인 것과 심적인 것, 심적인 것과 심적인 것간의 인과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과성이 있다면 이런 종류의 인과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런 인과성은 필연적인지 아니면 법칙적인지 그렇지 않으면 개연적이고 우연적인 것인지에 대한 인과적 측면을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는 본 글에서 인과성이 심신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반사실적 조건문(counterfactual)에 근거한 인과성 분석이 모든 인과성을 설명할 수 없지만 대표적 성격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주로 반사질적 조건문에 근거한 인과를 살피고 어떤 인과성이든지 난제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모색할 것이다.


If all beings are intertwined with what causality, is causality necessary for them? What causal laws, if not necessary, must exist among the beings? Also, can't there be a certain form, even if there is no law? And is causality a principle that can only be applied between beings in time and space? In other words, causality, which can only be considered in terms of material or physical property? Can non-material and non-visual, i.e., the mind, soul, mental (substance), etc. not be involved in causality? If they can't be involved, are there none of these? If there is causality in the mental or the psychological, is it inevitable to have causality only by linking it to the material? The physical may be the cause, but the mental cannot be the cause, and should it be supervened by physical property? Or can't we have causality (mental-to-mental causation)between mental property and mental property, excluding the material? Is it only physical (the causal closure) to have causal relations with physical? I think all these questions have to do with what causality is after all. Therefore, causality will not be excluded whether or not there is a causal link between the mental and the physical, the material and the physical, the mental and the mental. However, the question is whether the causality is nomological or just accidental and probable.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look at the causal aspects of how you can understand this kind of causality if it is causality, whether it is necessary or nomological, or it is probable and accidental, rather than the causality between the physical and the physical. In this article, I will look at what causality is in terms of mental and physical interaction. Therefore, I think that causality analysis based on a counterfactual statement cannot explain all causality, but can have a representative character, so I will look mainly at causality based on a counterfactual and explore that any causality has challenges and problems.

2영(Spirit)과 공간

저자 : 김유신 ( Kim Yoo Shi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5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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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의 공간은 빈 공간이라기보다도 장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현대 물리학적 존재는 단순히 물체라기보다는 복잡한 존재적 특성을 갖는다. 데카르트의 연장을 본질로 하는 물체는 아니다. 현대의 물질은 미결정성, 이중성 등을 가지고 시공간화가 되는 신비하다. 이 논문은 영(spirit)을 공간과 연결시켜 이해해 보려 한다. 영에 대한 주관적 이해를 다루고 폴 틸리히의 객관화로서의 영 개념과 판넨베르크의 장 개념과 영의 임재, 샤르뎅의 우주의 진화, 생명의 자기 초월성 등을 하나님의 영과 관계 지어 통합하려는 것을 다루었다. 끝으로 뉴턴의 공간 개념을 다루면서 삼위일체론적 신 관념에서 공간과 영의 관계가 뉴턴의 일신론적 신 관념 보다 더 분명하다는 것을 논증했다.


In moder physics, space is not an empty one rather filled with fields. And the matter and the bodies in view of modern physics are not simple materials. They have various complex properties. They are not Cartesian Matter whose essence is 'extension' Fundamental particles constituting matters have duality instead of unity, indefiniteness, instead of definiteness spacial-temporalization of matters which seem to be mysterious. In this context this paper tries to understand Spirit in relation with space. We try to deal with the subjective understanding of Spirit, The understandings of Spirit in Paul Tillich, Pannenberg, and Chardin are discussed in relation with modern concept of matter. Finally Newton's concept of space is discussed and it is argued that Trinitarian God gives us clearer view about the relation between space and Spirit than Newton's monotheistic God.

3코나투스(conatus)와 스피노자 연구의 현실주의 동향

저자 : 소민재 ( So Min Jae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1-9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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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을 통해 필자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철학의 스피노자 연구 동향을 개관하고 스피노자의 주요 사상가운데 코나투스 개념이 현대 스피노자 연구자들의 현실주의 동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개괄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심이 연구자들의 현실주의(Realism) 경향과 밀접하다는 점을 전제하고 널리 알려진 스피노자 연구 자료 분석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현대 철학의 현실주의 연구 경향에도 불구하고 실증적 추론이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난제와 관련하여, 코나투스 개념을 중심으로 합리적 추론 방식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던 스피노자 철학의 고유성이 현재 다시 주목 받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나투스 개념이 기독교 철학(Christian Philosophy)의 연구 주제 확장과 연구 방법의 개선에 유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rvey the Spinoza research trend of modern philosophy, focusing on the concept of Conatus of Spinoza, and examine how the Conatus concept among Spinoza's main ideas is related to the realistic trend of modern research on Spinoza. This study also is to point out that the modern research trend on Spinoza philosophy is closely related to researchers' Realism tends and to prove it by analyzing well-known researches on Spinoza. Likewise, despite the tendency of realist research in modern philosophy, it also points out that, concerning difficult challenges that empirical reasoning or empirical rules cannot explain, the uniqueness of the philosophy of Spinoza, which attempted to solve problems through a rational argument based on the concept of Conathus, is again drawing attention. Finally, this study is to clarify that the concept of Conatus can be beneficial for the expansion of the research subject and the improvement of the research method of Christian Philosophy.

4뇌과학과 심리학의 학제간 접근을 시도한 인간 이해: 베르그손의 철학적 방법론을 중심으로

저자 : 양선진 ( Yang Sun Ji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3-125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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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법이 통과되면서 인성에 대한 논의가 철학계에서 재점화되었다. 인간의 본성은 전통적으로 철학의 중요한 주제였지만 최근의 생명공학기술의 발전과 신경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새롭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가 생겼다. 생명공학과 뇌과학에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DNA 또는 신경세포덩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인간의 고유한 정신적 활동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분과학문으로서의 심리학과 진화심리학 및 진화론은 인간을 동물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인식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최근의 학문적 경향성에 귀 기울이면서도 생리학, 생명공학 또는 뇌과학에 함몰되지 않고 동시에 최근의 자연과학에 귀 기울이면서도 독자적인 학문적 방법론을 주장한 베르그손의 철학적 방법론을 논의하려고 한다. 본 논문은 베르그손의 사유 자체보다는 베르그손의 사유가 형성된 방법에 초점을 두었으며 그의 방법론은 학제적이며 융합적 사고의 전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르그손은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인 육체와 정신의 문제를 당시의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탐구한다. 베르그손은 자신의 저서인 『물질과 기억』에서 생리학적, 물리화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철학을 구축한다. 베르그손에게 물질이란 뇌를 의미하며 기억이란 정신을 의미한다. 본 논문은 지각(perception)이라는 구체적 인간의 경험속에서 철학적 주제를 탐구한다. 지각이란 인간의 뇌의 활동을 전제하며 동시에 정신의 개입을 요청한다. 뇌의 활동만으로는 지각 자체는 무의미하지만 여기에 과거의 기억이라는 정신이 개입하는 순간에 지각은 현재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베르그손은 데카르트의 전통적인 육체와 정신의 구분이라는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실체중심의 이원론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뇌와 기억이 함께 공존하는 심리학적이며 생리·물리학적 일원론을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육체인 뇌와 정신인 기억은 엄연히 구별된 실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점에서 베르그손은 이원론적 일원론자라는 독특한 심리철학적 입장을 유지한다.


The act of personality education being passed, The philosophical world is to discuss on the personality. The human nature is an important topic of the philosophy but the scientists think that the development of the biotechnology and brainscience makes the understanding of human nature possible. It is dominant to them that the human is DNAs or the mass of neurons. they deny that the human has a mental property. Since the 19th century, based on the emergence of psychology as a discipline, the evolutionary psychology and darwinism, they consider that the human being and the animal is the same. Bergson concentrating upon the recent academic trends, essay to inquire into closely his own academic methodology. This paper will show that Bergson`s philosophy is his methodology rather than his thought itself. His methodology is based on convergent thinking of many disciplines. His typical thinking is convergent. He explores the physical and mental problems which is bsed on the scientific achievements of his time. Bergson in his book "Matter and Memory" developpe his philosophy which is based on the physiological, psychological, and physical and chemical data. “Matter” is to indicate the brain, “Memory” is to instruct the mind. This paper explores philosophical themes, specifically, the human experience of perception. The premise is the perception of the human brain activity and at the same time, it requests the intervention of the spirit. The brain activity alone is meaningless and the perception at the moment involved in a spirit of past memories is meaning. Therefore, Bergson criticizes the dualistic vision that separates the traditional physical and mental and argues monistic perspective which coexist with brain and memory. He acknowledges the distinct reality between the body of the brain and the spirit of the memory. In this regard, Bergson maintains the unique psychologico-philosophical positions.

5감정의 선악의 기준 문제: 기독교적 관점에서

저자 : 양성만 ( Yang Song Ma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17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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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감정에 대해 풍부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어떤 감정은 권장하고, 어떤 감정은 금지한다. 이것을 보면서 선함 감정과 악한 감정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우리는 이 물음의 답을 구하기 위해 먼저 감정의 본질에 대한 현대 학계의 토론을 살펴보고 인지주의 감정론에 설 때에 감정에 대한 합리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한다. 엘리엇은 감정에 관한 이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인지주의적 입장에 설 때에 이성과 감정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점을 밝힌 후, 이 입장에서 구약과 신약의 감정에 관한 발언들을 분석하고 정리한다. 그리고 선한 분노란 바른 지식과 가치관, 즉 바른 믿음에 의한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파울리슨은 분노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파악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이를 시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이라고 규정한다. 사람이 이렇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도덕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분노의 배경에 있는 욕망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분노의 선악이 결정된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한 분노를 '자비를 향한 건설적 불쾌'라고 부르면서 이 분노의 특성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건설적 분노가 그 백성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하다. 이렇게 엘리엇이나 파울리슨은 분노가 모두 악한 것이 아니고 선할 수 있음을 보인다. 엘리엇의 기준과 파울리슨의 기준은 겉보기에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같다.


The Bible speaks abundantly about emotions, encourages some of them, and prohibits some of them. This fact raises the question of what is the criterion that distinguishes between good emotions and evil emotions. To answer this question, we first examine modern academic debate about the nature of emotions, and confirm that rational evaluation of emotions is possible when we stand in the position of cognitivism. Elliott embraces this discussion of emotions, reveals that it is possible to integrate reason and feelings in a cognitive position, and then analyzes and organizes statements about the emotion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And he claims that when an emotion is based on right knowledge and values, right faith, it is good one. According to Pawlison, you feel angry when you experience what happened as a moral offense or an unpleasant frustration and seek to correct it. Man can feel angry because he was created as a moral being. The goodness and badness of an anger is determined on what kind of desire the anger is based on. Pawlison goes a step further and calls good anger “constructive displeasure of mercy,” and explains what it is and how God's constructive anger works on his people. Elliott and Pawlison thus show that anger is not all evil but can be good. Elliott's criterion and Paulison's criterion seem to be different in appearance, but the content is the same.

6그리스 비극의 격행대화 (Stichomythie)와 선문답 비교연구: 르네 지라르의 차이소멸 개념 중심으로

저자 : 정일권 ( Chung¸ Il Kwae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3-19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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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불교의 선문답을 그리스 비극의 격행대화 (Stichomythie)와 비교한 이후 양자를 르네 지라르 (René Girard)의 제의 이론에서 등장하는 무차별화 혹은 차이소멸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그 동안 반논리적이고 역설적인 불교의 선문답은 통과 제의적 상황에서 이탈해서 오해되곤 했다. 깨달음을 향한 통과제의적 문맥 안에서 선문답은 일종의 차이소멸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The Pauline Epistles take a formal structure. The issue is where the foundation of their formal structure is. For the solution to this, researchers focus on two views. One is the view that the Pauline Epistles are based on ancient letter writing. The other is one that they are base on rhetorical form.
In this paper I support that the formal structure of the Pauline Epistles is within the category of rhetoric. That they are within the category of rhetoric means that Paul wrote his letters as the speeches. Therefore, they follow rhetorical rules. The basis that they can be regarded as a category of rhetoric lies in the speeches they were sent to the group/the community in. When we compare ancient letters written on papyri with the Pauline Epistles, this fact become much more apparent. Ancient letters are for an individual or a few persons whereas a subject of the Pauline Epistles is the group/the community, which evinces the fact that they belong to rhetorical category.
The basis that they are in rhetorical category is found through rhetorical evidence. That they are for brothers, verbal speeches, and have equal authority with speaking makes sure that the Pauline Epistles are in rhetorical category.Buddhist kōan as a Girardian simulation of crisis can be compared with stichomythia in Greek tragedy as verbal contests. For Girard, if the art of Greek tragedy is to be defined in a single phrase, we might call attention to one of its most characteristic traits: the opposition of symmetrical elements. There is no aspect of the plot, form, or language of a tragedy in which this symmetrical pattern does not recur. The core of the drama is that the two protagonists exchange insults and accusations with increasing earnestness and rapidity. The Greek public is brought to these “verbal contests.” The symmetry of the tragic dialogue is perfectly mirrored by the stichomythia, in which the two protagonists address one another in alternating lines. Stichomythia is particularly well suited to sections of dramatic dialogue where two characters are in violent dispute. The rhythmic intensity of the alternating lines combined with quick, biting ripostes in the dialogue can be quite powerful. In tragic dialogue hot words, as Girard puts it, are substituted for cold steel. But whether the violence is physical or verbal, the suspense remains the same. The adversaries match blow for blow, and they seem so evenly matched that it is impossible to predict the outcome of the battle.
The agonistic or conflictual nature of verbal contest is a typical element of the Buddhist kōan. Kōan as a kind of verbal contest can be understood as a simulacrum of crisis within the context of Buddhist initiation. The agonistic or conflictual nature of Chan dialogues, sometimes called Dharma battles,has often been pointed out, but it is usually downplayed as a 'skillful means' used by master to test and awaken his disciple. Clearly, this interpretation, for Faure, cannot simply be taked for granted in the case of those masters whom Linji called “blind shavepates and wild foxes.” Quite possibly, many of them were symbolically, socially, or psychologically empowered by their (symmetrical) confrontations with novices. This encounter produces a winner and a loser; and the gain and the loss are very real: like the 'deadly words' of witchcraft, the dialogue seems to activate quasi-magical forces. Mon-dō(question-answer)is verbal battle(Wortgefecht)between master and disciple.
But this violent, agonistic or conflictual nature of Chan dialogues, language game was sometimes misunderstood in the sense of playful quality of language. These violent methods of linguistic simulation of the sacrificial crisis within the context of Buddhist initiation are to be understood as representing a (initiatory) play of differentiation and undifferentiation in Girardian sense. For Girard, great theater is necessarily “a play of differentiation and undifferentiation.” Buddhist (no)-theater and ritual process of (initiatory) meditation can be also considered in this sense. Girard subordinates play to religion, and in particular to the sacrificial crisis. Play has a religious origin, to be sure, for Girard, insofar as it reproduces certain aspects of the sacrificial crisis.

7실존주의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고찰

저자 : 최용준 ( Choi Yong Joo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9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1-22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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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란 모든 삶의 의미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해 주로 양차 세계대전 및 경제 공황 이후 생겨난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계관은 19세기에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실존주의와 신을 인정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뉜다. 이 실존주의는 지금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나름대로 매력적인 장점들이 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들도 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이 실존주의의 내용을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누어 각각 구체적으로 고찰한 후 사르트르 및 까뮈 같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과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및 마르셀과 같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을 언급한다. 그 후 이 세계관의 장점들을 먼저 생각해 본 후 이 사상이 자체적으로 드러내는 내적 모순이나 단점들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 단점들에 대해 기독교 세계관은 어떤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는지 언급한 후 결론을 맺는다.


Existentialism is a worldview which came out mainly after the two world wars and the Great Depression to overcome nihilistic worldview which basically denies any meaning of life. This worldview was first introduced by S. Kierkegaard, a Danish philosopher in the 19th century. It is divided into atheistic and so humanistic existentialism, denying the existence of God and theistic existentialism which acknowledges that of God. This worldview is still very active because it has some attractive and strong aspects but it has critically weak points, too. This article, therefore, discusses the concrete contents of atheistic and theistic existentialism first and then mentions the representative atheistic thinkers such as J. P. Sartre and A. Camus and theistic thinkers such as S. Kierkegaard, K. Jaspers and G. Marcel. After that, not only its strong aspects but also its weak and self-contradictory points are investigated. In conclusion, an attempt is made to offer alternatives to the weak points from the Christian world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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