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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5-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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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5)~27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187
기독교철학
27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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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알브레히트 리츨의 인식론과 신학적 함의 고찰

저자 : 김상엽 ( Kim Sang Yeup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2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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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B. Ritschl, 1822-1889)의 인식론(epistemology)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의 인식론이 제시하는 신학적 함의를 고찰하는 데 있다. 특히 리츨이 플라톤(Plato, BC 427-347)과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헤르만 로체(Rudolf Hermann Lotze, 1817-1881)의 인식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고찰하며 리츨 인식론의 특성을 도출할 것이다. 그리고 리츨의 인식론이 그의 신론과 기독론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것이다.
리츨은 유럽의 인식론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그것은 플라톤의 인식론, 칸트의 인식론, 로체의 인식론이었다. 리츨은 주체와 객체를 지나치게 분리시키고, 주체와 관계없는 객체를 설정한다는 이유를 들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거부했다. 그리고 칸트의 물 자체(Ding an sich)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주체가 물 자체를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역동성 개념을 추가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리츨은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로체에게서 발견했다. 로체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언제나 상호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상호 관련성을 통해서 주체는 객체를 인식할 수 있다. 로체의 이러한 인식론을 수용한 리츨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형태의 인식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리츨의 신학에 영향을 미친다. 리츨은 기독교 신앙의 대상들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하여 형이상학적인 진리들을 알 수 없다고 보았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내는 사랑, 그리스도가 사역 가운데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거룩, 의, 공의, 전지, 편재 등은 적절하지 않은 속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선재와 신성 등은 부정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 기독교 철학이 지향해야 할 인식론이 무엇인지 고찰하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what features the epistemology of Albrecht B. Ritschl(1822-1889) has, and to examine the theological implications that his epistemology suggests. In particular, I will consider how Ritschl reacts to the epistemologies of Plato (BC 427-347), Immanuel Kant (Immanuel Kant, 1724-1804), and Hermann Lotze (Rudolf Hermann Lotze, 1817-1881), and drive what Ritschl's epistemological characteristics are. Finally, how his epistemology affects theology, including the doctrine of God, Christology, will be analyzed.
Ritschl divided European epistemology into three main categories. It was Plato's epistemology, Kant's epistemology, Lotze's epistemology. Ritschl rejected Plato's concept of Idea, which excessively separates the subject from the object, and sets up objects that are unrelated to the subject. And because accepting the concept of 'Ding an sich' of Kant as it is, the subject becomes unknown, the concept of dynamism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was critically accepted.
Ritschl has found the ideological foundation to overcome these limitations in Lotze. Lotze saw that there was always a correlation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This association allows the subject to recognize the object. Admitting Lotze's epistemology, Ritschl forms a thoroughly subjective form of epistemology
This affects theology of Ritschl. He saw objects of Christian faith as unknown as they are. He saw no metaphysical truths about God and Christ. Only through the love that God reveals in our relationship, and the work of Christ done in this world, can we know God and Christ. God's holiness, righteousness, justice, omniscience, omnipresence, etc., became not proper attributes, and the pre-existence and deity of Christ were denied.
Through this study, I would like to examine once again what the proper epistemology of Christian philosophy should be.

2M. 하이데거 전기 철학의 종교철학적 함의 - 신의 해방과 인간의 자유를 위한 신앙성찰 -

저자 : 박담회 ( Park Da Moi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5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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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마르틴 하이데거 전기철학의 실존논의 안에서 신의 해방과 인간의 자유를 위한 종교철학적 함의를 발굴하고, 그것을 통해 참다운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신앙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라는 메마른 제도 혹은 교리, 율법이라는 활기를 잃어버린 가르침으로 박제된 신을 무한히 생동하는 초월의 영역으로 해방시키고, 그런 박제된 신의 지배아래 억압받는 인간을 진정한 신앙의 영역으로 방면하는 작업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객관적 종교에 대한 이러한 비판과 현실에서 실행되는 주관적 신앙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곧 신을 인간의 틀 지움으로부터 무한히 해방시키는 작업임과 동시에 인간을 세계 에 물들어있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회복으로 인도하는 작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철학적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계한다. 우선 2장에서는 신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퇴락의 필연성과 구원의 가능성이라는 이중적인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는 퇴락과 구원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에서는 역설적으로 병존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3장에서는 인간적 실존에 은폐된 신적인 실존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의식의 초월적 능력을 분석할 것이다. 이어 4장에서는 그러한 인간적 실존이 신적인 실존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맺게 되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무화', '말함', '응답'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해명할 것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의 인간다움'과 '신의 신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신의 해방과 인간의 자유에 이르게 하는지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앞선 논의에 터하여 하이데거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종교철학적 함의, 즉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 참다운 종교의 가능성과 신을 왜곡하지 않는 진정한 신앙의 가능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nd out the possibility of religion-philosophical implication and reflection in the existence-discussion of Heidegger's early philosophy. In particular, the so-called implications and possibilities here refer to the liberation of God as God itself, and at the same time, the freedom of human from being fallen in the world. In Chapter 2, we will reveal that human exists in the relationship of despair and salvation in terms of the necessity of destruction and possibility of salvation. In Chapter 3, we will analyze how the possibilities of hidden existence hidden in human existence attain realism centering on the transcendental ability of consciousness. In chapter 4, we will explain the way, man and God meet and communicate in the process of transcending such human existence to divine existence through the concept of 'Nichtigung (becoming nothing)', 'Rede (talking)', and 'Antworten (responding).' This section will be a definitive clue as to what Heidegger speaks of humanity and divinity of human being, and how this is connected to the liberation of God and human freedom. In conclusion, Heidegger's philosophy will reexamine in what way, he gives us the religion-philosophical insights for liberation of God and freedom of human.

3『싱 오버 미』(Sing Over Me): 영화와 신학의 대화를 통한 동성애 고찰

저자 : 서나영 ( Seo Na Young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7-9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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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신학자들의 연구와 영화 안에 담긴 구체적인 이미지 세계가 유익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제를 바탕으로, 영화 『싱 오버 미』(Sing Over Me)의 분석을 통하여 기독교와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실제적 접근 방법에 대한 유익한 담론을 위한 것이다. 영화는 시청각 예술의 한 형식으로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특정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문화 속에서 쉽게 접하며 누리고 있는 이 영화예술의 영향력은 현재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재구성하기에 충분하다. 영화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긍정적 작용을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돕는 신앙생활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반면, 다양한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하나님을 멀리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와 학자들은 시각적인 이미지의 우려로 인해 영화를 신학적 사고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고, 문화 속 깊이 자리 잡은 영화의 영성을 논하여 문화를 해석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듯하다. 그리하여 본 논문은 신학과 영화가 서로 깊이 상호작용 할 수 있음을 제안하고, 신중한 비평과 함께 유익한 대화상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제이콥 킨드버그(Jacob Kindberg) 감독의 영화 『싱 오버 미』는 기독교 신앙과 동성애에 관한 신학적 문제에 밝은 조명을 비취기 위한 의미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이 영화는 현대의 시편 작곡자인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동성애 치유를 받은 그의 이야기와 저니건의 음악과 사역을 통한 구원의 놀라운 여정을 담은 예술작품이다. 시대의 난제인 동성애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공유함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과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의 구체적인 과제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Sing Over Me, that theologians' world of abstract concepts and film makers' world of concrete images can be brought into fruitful dialogue. Through the form of a film, one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emonstrate, byway of theologically analyzing the film Sing Over Me, that theologians'world of abstract concepts and film makers' world of concrete images can be brought into fruitful dialogue. Through the form of a film, one can convey a particular message in a way more effective than with writing or speech. Surely the power of film is enough to change and reshape one's belief system or the way to live, especially in this twenty-first century. This powerful source has a huge impact on church and Christians as well. Films can lead us to God by helping us to know Him, but they also can be a channel to away from God by offering the chance to experience dangerous world views. Unfortunately, churches have failed to solve the crucial task of engaging spirituality with films. Due to a suspicion of visual images, Christian scholars have hesitated to use film as a source for theological reflection. Theology, however, can deeply interact with film. This dialogue of theology with film should be a fruitful conversation with a careful critique. Embracing this fact, therefore, Sing Over Me can be a meaningful media for shedding light on Christian faith and the theological issues on homosexuality. This film is about the life story of modern-day psalmist, Dennis Jernigan. His story of homosexuality and the cure through the relationship with Jesus Christ, and a remarkable journey of salvation through his music and ministry provides telling meaningful message to churches and Christians. This film shares the unbelievable story through an art form so that Reformed churches have a deeper understanding of God's love and search a specific tasks on this difficult issue.

4자크 엘륄의 인격주의 운동과 혁명적 기독교

저자 : 이상민 ( Lee Sang Mi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1-14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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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엘륄의 인격주의 운동은 다음 같은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혁명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모든 모델, 곧 민주 정당이나 각종 연맹이나 전체주의 정당의 모델에서 벗어나야 하고,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변혁을 이루어야 하며, 그 변혁에는 공동체적 방식만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륄에게 혁명은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필요한 혁명'이라고 부르는 '진정한 혁명'은 사회 및 문명 전체와 관련되고, 기술화에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기술 환경 속에서의 인간 존재 자체와 관련된다. 결국, '필요한 혁명'은 기술화된 국가와 기술 사회에 맞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혁명을 통한 급격한 단절은 가능하지 않고, 기술 사회에서는 진정한 혁명 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기술 사회에서 혁명이 더는 가능하지 않고 '필요한 혁명'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듯 하지만, 기술 사회에서 인간은 여전히 '반란'을 시도할 수 있고, 자신에게 강요되는 것을 본능적이고 자발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완전히 새로운 기술 사회에서 지나간 혁명 모델은 전혀 유용하지 않고, 유일하게 혁명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개인의 의식이며, 자유로운 인간에 의해서만 혁명이 이루어질 따름이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혁명은 권력 차지가 아니라, 현대 기술의 긍정적 잠재력을 확보하면서 인간 해방이라는 방향으로 현대 기술들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혁명을 통해 기술이 종속될 수 있는 동시에, 체계로서의 기술 체계가 파괴될 수 있고, 국가의 권력이 사라질 수 있으며, 평등이 실현될 수 있고, 소외가 그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본질적인 특성은 '필요한 혁명'을 시도하려는 갈망에 대립하는 문명의 깊은 정체 상태가 있다는 것이고, '진정한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본 문제가 국가 형태나 경제 형태를 바꾸는 것이라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야 할 세상의 문명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의 혁명적 역할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본질적으로 혁명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회적 순응과 완전히 결별한 상태에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통해 예언적 사명을 부여받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종말론의 힘을 지닌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한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을 기술적 독재에 맞설 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상황에 놓이게 한다. 결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기독교는 '혁명적 기독교'이며, 자신들이 사는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Le mouvement personnaliste de Jacques Ellul fonde sur des valeurs chretiennes, a pour point de depart l'idee suivante : pour mettre en pratique les activites revolutionnaires, il faudra quitter tous les modèles existants tels que les partis democratiques, toutes sortes de federations ou encore les partis totalitaires. Il faudra alors executer cette reforme de façon individuelle et collective et n'y appliquer que la methode communautaire. Chez Ellul, la revolution consiste à reformer fondamentalement la societe. Ainsi cette revolution authentique qu'il appelle aussi 'la revolution necessaire' est relative à la societe et à toute la civilisation. Elle est directement liee à la technicisation et est en relation avec l'etre humain lui-meme. En somme, 'la revolution necessaire' consiste à se dresser contre l'État technicise et la societe technicienne. Pourtant, la rupture brusque engendree par cette revolution n'est pas possible dans notre societe moderne et la veritable conscience revolutionnaire ne peut etre trouvee dans la societe technicienne. De ce fait, il semble que la revolution ne soit plus possible et que l'espoir de 'la revolution necessaire' ait dispau dans la societe technicienne. Cependant l'homme peut essayer de declencher 'la revolte' et refuser de manière instinctive et consciente ce qui s'impose à lui-meme. C'est ainsi que les modèles revolutionnaires desuets ne sont en aucun cas efficaces dans notre societe technicienne tout à fait nouvelle, et que le seul lieu où la revolution pourrait s'effectuer, c'est dans la conscience individuelle. En effet, la revolution ne peut s'accomplir que par l'homme libre, la seule revoluion possible dans cette situation etant de ne pas s'emparer du pouvoir, mais d'orienter les techniques modernes vers la liberation de l'homme en preservant leurs cotes positifs. Grace à cette revolution, la technique pourra etre subordonnee, le système technicien en tant que système pourra etre detruit, le pouvoir de l'État pourra disparaitre, l'egalite pourra etre mise en place et la desalienation pourra cesser. Or, les caracterisques essentielles de notre temps, c'est qu'il existe un statisme profond de la civilisation en opposition avec l'ardent desir de tenter 'la revolution necessaire', ce qui rend impossible 'la revolution authentique'. Si le problème fondamental n'est pas de changer de formes economiques, mais de transformer la structure de notre civilisation qui devrait etre mise en question, ce sont les Chretiens qui sont appeles à remplir ce role revolutionnaire. Ils doivent reconnaitre que leur situation est essentiellement revolutionnaire. En effet, dans notre realite, les Chretiens detiennent la force eschatologique, en raison de la mission prophetique qui leur est attribuee au moyen de leurs idees et actions, puisqu'ils sont parfaitement separes de tous les conformismes sociaux. C'est ainsi que l'esperance du retour glorieux de Jesus Christ fait que les Chretiens se retrouvent dans une situation revolutionnaire où ils peuvent faire face à la dictature technicienne. Au bout du compte, s'il y a un christianisme authentique susceptible de transformer la societe, c'est bien justement 'le christianisme revolutionnaire', et s'il y a des personnes capables de transformer la societe, ce sont indubitablement les Chretiens.

5기독교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가할 것인가

저자 : 최태연 ( Choi Tae Yon )

발행기관 : 한국기독교철학회 간행물 : 기독교철학 2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1-17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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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나는 기독교예술의 구체적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기독교예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며 어떤 예술작품이 좋은 기독교예술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다분히 기독교미학적인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제가 이 글에서 다룰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기독교예술의 정의의 문제이다. 두 번째로는 기독교예술의 평가에 관한 문제이다. 기독교예술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은 기독교미학의 첫 번째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독교예술의 내용과 범위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서 기독교예술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기독교예술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첫 번째로는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제안한 '상관관계의 방법'(method of correlation)이다. 이 방법은 어떤 예술작품의 작가가 크리스천인지 또는 작품의 주제가 기독교와 직접 관계된 것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틸리히에게 기독교의 내용들은 인간의 역사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와의 상관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비록 비기독교인이 그린 회화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경험하는 실재의 '심층적 차원'을 표현했다면 그것은 '기독교적' 예술이다. 틸리히는 이런 방식으로 예술을 규정하는 원리를 '프로테스탄트적'(protestant)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기독교예술을 정의하면 기독교예술은 그 외연이 매우 넓어진다. 모든 예술작품이 기독교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당연히 이 정의가 내포하는 문제는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경계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또 어떤 작품을 '심층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주관적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이 정의의 장점은 기독교미학이나 예술비평이 다룰 수 있는 예술의 범위가 매우 확장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기독교 예술철학자 캘빈 시어벨트(Calvin Seerveld)가 제시한 정의이다. 그는 기독교예술이 다른 예술작품과 다른 이유가 그 작품에 담긴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벨트는 기독교예술을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의 열매로서 산출된 예술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시어벨트는 단순히 크리스천 화가에 의해 그려졌다고 해서 기독교예술이 아니라, 작품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담겨 있어야만 진정한 기독교예술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의 장점은 기독교예술을 명확하고도 진지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정의는 기독교예술의 외연을 매우 축소시킨다. 또한 크리스천 예술가가 기독교세계관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작품을 만드는 경우 이 정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 대립적인 기독교예술의 정의가운데서 어느 정의를 따를 것인가의 문제가 생겨난다. 여기서 나는 미국의 루터교 학자 진 에드워드 비스(Gene Edward Veith Jr.)가 제안한 방법인 어거스틴의 예술론을 통해 틸리히와 시어벨트를 중재하고자 시도한다. 비스에 따르면 어거스틴은 틸리히와 유사하게 하나님이 모든 미와 진리의 근원이므로 비기독교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기독교적 로고스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어거스틴은 기독교신앙과 세계관에 부합되지 않는 문학이나 연극 작품 안에 있는 비기독교적인 요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따라서 어거스틴을 따라 기독교예술을 정의한다면 기독교예술 안에 두 가지 평가기준의 공존이 가능해 질 수 있다. 특히 비기독교예술가의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서 기독교의 로고스를 찾아낼 수 있으며 기독교예술가의 작품에서는 그 내용과 기독교세계관적 함의를 아울러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기독교예술을 폭넓게 정의한 다음에 나는 어떤 예술이 좋은 기독교예술이고 어떤 예술은 그렇지 않은지를 분간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좋은 기독교예술 작품은 내용과 형식과 세계관에서 훌륭하며 기독교적이다. 반면에 나쁜, 즉 단지 존재만 하는 기독교예술 작품은 내용, 형식, 세계관에서 빈약하거나 왜곡되어 있다. 이런 나쁜 작품으로는 키치나 이데올로기에 물든 작품을 들 수 있다. 그러면 이 두 주제를 차례대로 검토해 보겠다. 한 가지 고려할 점은 여기서 기독교예술이라고 표현한 예술은 실제로는 '기독교미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present criteria for how to define Christian art and what works of art are good Christian art. There are two issues of Christian aesthetics. First, there
is the definition of Christian art. Depending on how Christian art is defined, the content and scope of Christian art vary. First I compared the "method of correlation" proposed by the theologian Paul Tillich with the definition offered by the Christian art philosopher Calvin Seerveld. Tillich does not question which artist is Christian or whether the subject of the work is directly related to Christianity. For Tillich, even if it is a non-Christian painting, it is a "Christian" art if it expresses the "deep dimension" of the reality that humans experience. The advantage of this definition is that the scope of art that can be handled by Christian aesthetics or art criticism is greatly expanded. On the other hand, Seerveld says that not only is it painted by a Christian artist, but it is only true Christian art if the Christian worldview is contained in the work. The advantage of this definition is that it defines Christian art clearly and seriously. But this definition greatly reduces the appearance of Christian art. I present one alternative definition between these two opposing definitions of Christian art. That is how to mediate Tillich and Seerveld through Augustine's art theory, as suggested by American Lutheran scholar Gene Edward Veith. Augustine saw that, similar to Tillich, God is the source of all beauty and truth, so he could find Christian logos in the works of non-Christian artists. At the same time, Augustine harshly criticized non-Christian elements in literature or theater works, assessing whether the works conform to Christian beliefs and worldviews. Thus, if Christian art is defined along Augustine, there can be two definitions of coexistence within Christian art. Secondly, I presented the criteria for distinguishing which art is good Christian art and which art is not. The evaluation standard of good Christian art is to look at art from as some aspects as possible, looking at form, content and worldview. That is, when the form, content and worldview are well harmonized with each other and integrated, the work can be said to be the best work. On the other hand, it is a bad Christian art when it is poor in form and content, like Kitsch, or influenced by a world view distorted by racial prejudice or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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