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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o-Soviet Affairs

  •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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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계간
  • : 1012-3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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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1호(1975)~43권3호(2019) |수록논문 수 : 1,709
중소연구
43권3호(2019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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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국의 군사개혁과 군사현대화에 관한 연구

저자 : 奇世璨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45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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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군사개혁은 변화하는 안보환경 하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그 영향력을 투사하기 위해 군사력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중국 육군은 '구역 방어형(區域防禦型)'에서 '전역 기동형(全域機動型)'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중국 해군의 경우 대양해군으로의 기치를 내세우며 '근해방어형(近海防禦型)'에서 '근해방어(近海防禦)'와 '원양호위(遠洋護衛)' 조합형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중국 공군은 '국토방공형(國土防空型)'에서 '공방겸비형(攻防兼備型)'으로의 전환을 실현하고 있다. 핵전력에 있어서도 중국은 '제2포병'을 '로켓군'으로 재명명하고 지휘구조개선, 핵무기의 질적 양적 증가, 그리고 투발수단 및 사거리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주변의 전략환경과 현재의 전력 수준을 모두 고려해 볼 때 중국군은 자국의 영토에 대한 방어능력과 그 주변에 대한 통제력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지적인 군사 능력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이 아직 그 이상의 대양작전이나 원거리 군사투사 능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중국이 해외 군사기지 능력을 강화하고 있어 앞으로 중국군의 원거리 군사투사 능력도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고도의 기술무기가 필요한 현대전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중국이 민간차원의 고도기술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을 도모한다면 중국군은 향후 상당한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중국의 강대국화는 궁극적으로 미·중 경쟁 구조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군사 불균형으로 인한 군비경쟁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제한된 지역에서 방어적인 전쟁을 상정하던 것에서 벗어나 남중국해와 태평양, 그리고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공세적 성격의 첨단군사력 확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 및 일본의 영향권과 충돌하여 동북아 지역에 불안정을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이 지역 내의 안전과 평화를 모두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주국방태세와 다자협력 등을 통해 중국 군사력이라는 잠재적 위협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A Military Reform that China seeks, focuses on the military strength to protect its interest and to project its influence under the changing security environment. PLA(People's Liberation Army) Army tries to reorient from 'theater defense(區域防禦型)' to 'trans-theater mobility(全域機動型)', PLA Navy is shifting its focus from 'offshore waters defense(近海防禦型)' to the combination of 'offshore waters defense(近海防禦)' with 'open seas protection(遠洋護衛),' and PLA Air Force is endeavoring to shift its focus from 'territorial air defense(國土防空型)' to 'both defense and offense(攻 防兼備型).' In the area of nuclear capability, China renamed its 'Second Artillery' to a 'Rocket Forces,' made an effort to improve on command structure, promote quality and quantity of nuclear weapon and its Delivery means and extended range.
Considering both a surrounding strategic environment and its contemporary forces level, PLA is seen to have secure defense ability of its territorial and peripheral control. Despite its local military capability, PLA is still seen not have acquired seas operation or long distances military projection capability. However, as China is now strengthening capacity in overseas military base, long distances military projection of PLA is also expected to see more development. In the light of modern warfare which favors high-technology weapons, if China promotes military enhancement on the bases of high-technology, PLA would be able to possess a reasonable degree of military forces.
China's power ultimately will not only intensify the competition between U.S. and China but will also bring arms race for military unbalance in North East Asia. Especially, China's military enhancement aims for securing cutting age military force's offensive tendency in South China Sea, Pacific, and space while breaking away from its defensive warfare in limited areas. It has a fair chance of bringing a instability in North East Asia if it conflicts with the influence of the U.S. and Japan in the future. Therefore ROK needs to prepare potential threat of China's military through self-reliant defense posture and multilateral cooperation in order to achieve both security and peace in local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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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진핑 신시대 중국의 대만정책과 양안관계의 변화 : '평화발전'에서 '평화통일'로의 이행

저자 : 申相振 ( Shin Sang Ji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7-79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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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의 대만정책이 어떠한 요인의 영향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대만이 중국의 공세적 통일정책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의 정책변화에 따라 양안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한편, 중국의 대만정책 변화와 양안관계의 전환이 주는 함의를 도출하였다.
중국이 2050년까지 중화민족의 부흥 실현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대만에서 '탈중국화'가 진행되면서, 시진핑이 대만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상정하게 되었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이 대만정책을 공세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며, '92합의'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경직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중국의 대만정책이 유연성을 결여하고 미·중관계가 군사안보 영역까지 대립국면으로 치닫게 되면서, 중국과 대만이 전방위에 걸쳐 갈등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시진핑 신시대' 양안관계가 평화발전이라는 현상유지 지향적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통일과 독립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에 따라 금세기 중반까지 중국이 실현하고자 하는 중화민족의 부흥은 대만문제로 인해 엄중한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This article discusses what factors influence China's policy toward Taiwan in Xi Jinping New Era, and how Taiwan responds to China's offensive unification policy. In addition, this study analyzed the changing direction of China-Taiwan relations in accordance with the policy changes of China and Taiwan, and derived the implications of China's policy changes toward Taiwan and changes in cross-Taiwan Strait relations.
The author also analyzed that China has proposed a goal of realizing the revival of the Chinese people by 2050. And as the “de-Chineseization” progressed rapidly in Taiwan after Tsai Ing-wen elected as the president, Xi Jinping was supposed to solve the Taiwan problem urgently. As a result, China has begun to aggressively implement Taiwan policy. This paper discussed that China starts rigidly interpreting and applying the '92 Consensus' and 'One China' principles.
This paper concluded that the relation between China and Taiwan is entering a phase of forcing Taiwan choose between independence and unification in Xi Jinping New Era. Accordingly, the revival of the chinese people, which China intends to realize by the middle of this century, is expected to undergo severe trials due to the Taiwan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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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러 국경분계선 분쟁의 해결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동인연구 - 시대별 설명변수들의 통시적 상호연계성을 중심으로 -

저자 : 朴滿濬 ( Park Man Jun ) , 馬敏鎬 ( Ma Min H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81-119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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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 간의 국경분계선 분쟁에서 종국적으로 해결된 사례들 중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동인을 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러 국경분계선 문제 해결과정이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는 그 출발점인 봉건 시기의 네르친스크 조약이나, 훗날 아이훈-이리-북경·천진 조약으로 이어지는 근대의 불평등 조약, 혹은 당대적 맥락에서의 1960년대 중소 국경분쟁 과정과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중소 국경분계선 해결과정 등 각기 시기적으로 분절된 연구들이 그 중심을 이뤄왔기 때문에 사실상 통시적 맥락에서 형성되어온 분쟁해결의 궁극적인 동인들이 어떻게 하나 된 역사적 맥락으로 작용함으로써 궁극적인 해결과 귀결되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통시적 접근을 통해 역사 속의 어떠한 동인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옴으로써 장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환경변화에 속에서도 서로의 이견차이를 절충할 수 있는 접점을 거시인과적으로 찾을 수 있었는지를 유사 증명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In these years, among Global border Conflicts, the solved process case of Sino-Russian border Conflicts remain us convincible. but because of the divided case studies, (for example Treaty of Nerchinsk, the unequal treaties system of Modern China, 1960s' Sino-Soviet border Conflicts, and from the late 1990s to the early 2000s the solving process of Sino-Russian border Conflicts etc), untill now, we can not find out the diachronic motives of ultimate solution in these topics. what are the real historical motives of accommodating Sino-Russian border Conflicts in “Macro-Casual Analysis” and “Parallel Demonstration of Theory”? so this paper is aimed at solving that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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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중수교 교섭 과정 연구

저자 : 李熙玉 ( Lee Hee-ok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1-15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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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교섭과정에 대한 외교문서들은 여전히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한중수교협상에 참여했던 외교관들의 자서전이 출판되고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베일에 싸여있던 교섭과정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협상과정의 주요한 쟁점들은 문서화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실무 외교관들 사이에서 기억의 차이도 있다. 이 연구는 기존의 문헌에 대한 연구와 실무 외교관들의 구술을 교차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교협상 과정을 밝히고자 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한중수교 협상과정을 맥락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고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어느 국가가 수교 의지가 강했는가에 대해서는 한중 양국 모두 적극성을 발휘했기 때문에 차이가 크지 않았다. 둘째, 한중수교에 이르는 상황에서 1985년 어뢰정 사건의 외교적 해결과정은 한중의 외교정책의 전환과 맞물려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셋째, 중화민국과 북한의 반발을 고려해 철저한 보안과 비밀 속에서 진행되었고, 중국이 북한에 먼저 통보하고 설득한 이후, 한국이 중화민국을 설득하는 단계적 과정을 거쳤다. 넷째, 수교협상 과정에서 이른바 비선(秘線)조직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다섯째, 한국은 한국-중화민국의 단교 방식과 한국전쟁의 책임 문제 제기를 내부적으로 검토했으나, 실제로는 쟁점화하지 않았고 이면합의도 없었다. 이러한 한중수교 협상의 원만한 처리과정은 한중관계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협상과정이 비교적 투명했기 때문에 한소수교 때와는 달리 양국의 국내정치의 쟁점이 발생하지 않았다.


Diplomatic documents on the negotiation process between Korea and China are still treated as secret one. However, the publication of autobiographies and interviews of diplomats who participated in the Korea-China diplomatic normalization have revealed important clues to the secretive process. But the key issue has been difficult to document, and in fact, there are difference in memory among diplomats. This study was intended to “thick descriptio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diplomatic relations by cross-checking the oral testimony of working-level diplomats in the study of existing literature research. This has allowed us to identify several of the following: First, it was of it was of little importance to which countries were willing to establish diplomatic ties, as both Seoul and Beijing were active. Second, resolving the torpedo boat accident was an important watershed in 1985 to reach the diplomatic ties between two countries. Third, it was conducted in tight security and secrecy in consideration of the backlash from China and North Korea, and after China notified and persuaded the North first, Korea went through the process of persuading the China. Fourth, the role of the secret line in the diplomatic relations negotiation process was limited. Fifth, Korea internally reviewed the way of severance between Korea-China relations and responsibility for the Korean War, but did not make an issue of it and there was no secret agreement. Such a negotiation process between Seoul and Beijing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the rapid development of the Korea-China relations, and since the negotiation process was relatively transparent, domestic political issues between the two countries did not arise, unlike the Korea-Soviet Union diplomatic negot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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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러시아의 국가주의와 대외정책

저자 : 李鴻燮 ( Lee Hongsub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3-18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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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가주의적 성격은 2000년대 푸틴의 등장과 함께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국가권력의 확대, 민족주의의 고조, 군사력 증강을 특징으로 하는 러시아의 국가주의는 개인적 특성을 강조하는 푸틴주의와는 차별되는 개념이다. 국가주의의 등장은 무엇보다 서방과의 화해시도가 좌절되면서 강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방의 국내정세 개입은 지속적인 중앙권력의 강화로 나타났고 이런 과정에서 푸틴은 자신을 '러시아 가치'의 파수꾼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을 짜르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자리매김은 전통적으로 강한 지도자에 대한 요구가 높은 러시아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국가주의는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반서방주의'로 나타났다. 또한 서방을 대신해서 '아시아 중시정책'을 전개하여 국가발전의 돌파구로 삼고자 하였다. 또한 과거 친서방 정책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유라시아지역, 특히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회복 및 확대 모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국가주의는 공세적 외교정책의 원인이 된 것이다.


Russia's statism has been strengthened with the emergence of Putin in the 2000s. It is characterized by the expansion of state power, the rise of nationalism, and the strengthening of military power. It is different from Putinism, which emphasizes individual characteristics.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rise of statism has been reinforced by the frustration of reconciliation with the West. Political intervention by the West has reinforced Russia's central power, and in this process, Putin tends to identify himself with the tsar, recognizing himself as a watchman of “Russian values.” This tendency served him to gain support from the Russian people, who are in high demand for strong leaders. Statism has inevitably given rise to anti-Westernism in Russian foreign policy. In addition, on behalf of the West, Russia emphasized Asia as a gateway for national development. It also seeks to recover and expand its influence in the Eurasian region, particularly Central Asia, which has been lost due to pro-Western policy. In other words, statism became the cause of Russia's assertive foreig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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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디지털 권위주의와 통제 메카니즘의 확산 : 중국, 러시아 모델과 한국에 대한 함의

저자 : 禹坪均 ( Woo Pyung Kyu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1-233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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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디지털 권위주의의 유형을 중국모델과 러시아 모델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것이 한국에 주는 의미를 도출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디지털 권위주의와 디지털 하이브리드 체제의 특성이 정치체제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중국 모델은 정치적 개방의 수준이 낮은 환경 하에서 발전했으며, 특히 인터넷은 국가 검열과 감시에 적합한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시진핑 체제 하의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큰 디지털감옥을 만들어냈으며 디지털 권위주의의 초기 환경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감시기술이 발전해 나갈수록 중국 모델은 글로벌 수준에서 확대될 가능성이 높으며, 차세대 무선통신인 5G 네트워크로 인해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국가들에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모델은 중국 모델에 비해 4가지 구분되는 기술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1) SORM 시스템을 통한 인터넷 트래픽 감시 2) 수집되고 있는 정보를 통제하지 않고 SORM 블랙 박스를 설치하도록 ISPs에 요구하는 억압적인 법적 구조 3) ISPs와 다른 기업들에 대한 위협과 국가의 포섭 4) (내용 여과(filtration)보다) 정보 조작(information manipulation)에 치중. 러시아 모델은 중국보다 낮은 기술력과 비용을 들여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러시아 모델에 대한 선호도 역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인터넷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에 해당되며, 과거 중국과 러시아가 취했던 초기 방식과 유사하게 단계적으로 넷 상에서 차단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확대하기 보다는 시민사회의 논의에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합의점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This paper has a purpose to suggest the China model and the Russian model as the types of digital authoritarianism, then to advise the implication from these to Korea. The China Model has been developed under the circumstances of the lower openness of political liberty, and has created arguably the world's largest open air digital prison. The China model provides an early glimpse of what digital authoritarianism might have in store. As Chinese surveillance technology improve in quality, the global demand for the China model of digital authoritarianism will likely grow. With 5G networks on the horizon, illiberal and hybrid regimes throughout Asia, the Middle East, Africa, and Latin America will all build out surveillance systems over the coming decade. Russian digital authoritarianism that it from the Chinese model has some technical characteristics. 1) Surveillance of internet traffic by the SORM system 2) repressive legal structure that requires ISPs to install SORM black boxes without control over the information being collected 3) intimidation and state capture of ISPs and other firms 4) information manipulation(rather that content filtration). Russia's model may be appealing, relative low-tech and low-cost alternative to the Chinese model. Korean freedom on the Net in 2018 by the Freedom House is “partly free.” South Korea is implementing a blocking policy on the Internet in stages, similar to the initial approach taken by China and Russia in the past. Therefore, it is important to try to find consensus with openness to discussions in civil society rather than to expand the state's direct inter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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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라시아경제연합과 디지털경제 : 경제연합의 촉매요인 분석

저자 : 朴智園 ( Park Ji-won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5-26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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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은 디지털 경제육성을 통해 회원국 간 경제적 구심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디지털 경제 발전 국가프로그램에서 디지털 제도와 표준마련에 힘쓰면서 동시에 EAEU 내에서도 디지털 접근성을 개선하여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보통신기업들의 EAEU 진출 및 네트워크 개선 활동이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자국 디지털 기반의 공고화를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하였는데 국영기업인 스베르방크가 이것을 주도하였다.
러시아의 디지털 경제 구축과 이를 통한 EAEU의 구심력 강화는 이와 같이 디지털 인프라구축과 플랫폼 마련이라는 두 가지 방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카자흐스탄의 디지털 경제육성책은 EAEU 차원에서 구심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자국경제의 디지털화에 초점을 두면서 러시아의 디지털 경제육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The Eurasian Economic Union (EAEU) is striving to strengthen its economic centripetal power among member countries through digital economic development. Russia is working on digital systems and standards in its national programs for digital economic development, while also promoting activities to build digital infrastructure by improving digital accessibility within the EAEU. Russia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companies' activities improving their networks are helping to do this. The Russian government also created an online platform to build a digital base, led by state-run Sverbunk.
Russia's digital economy and its strengthening of the EAEU's core strength are being achieved simultaneously in two ways: building digital infrastructure and building platforms.On the other hand, Kazakhstan's digital economy-building measures are different from Russia's digital economy, focusing on digitalizing its economy rather than strengthening its core power at the EAEU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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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벨라루스 민족 정체성의 이상과 현실

저자 : 朴惠慶 ( Park Hye Kyung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65-29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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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벨라루스가 독자적인 민족 정체성을 추구해 가는 과정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벨라루스는 지리적으로는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계, 슬라브인과 발트인의 경계, 가톨릭과 정교의 혼합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의미를 가진 나라로 설명된다. 독립 이후 벨라루스는 여전히 러시아의 형제국가로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젊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벨라루스 민족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공론화 되고 있다.
벨라루스는 유럽의 중앙이라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벨라루스의 고유한 문명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끊임없이 주변 강대국들의 각축의 장이 되도록 만들었다. 벨라루스가 민족 정체성을 탐색하는 길에는 세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러시아를 지향할 것인가, 유럽을 지향할 것인가, 혹은 벨라루스의 중립성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관점에 따라 세대 간의 대립도 확인할 수 있고, 권력주체와 일반 대중들 사이의 인식의 차이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항상 벨라루스와 러시아간 정치 현실의 변화가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process of pursuit of national identity of Belarus since its independence from the Soviet Union in 1991. Belarus is geographically located in the center of Europe, but its geopolitical meaning is very complicated, because historically it has always been a boundary between the Eastern and Western Europe, the Slavic and the Baltic countries, and a Catholic and an Orthodox. Since independence, Belarus still maintains a close relationship with Russia politically and economically. However, in recent years various opinions about a national identity of Belarus have been publicized, especially among young intellectuals.
Belarus has played a role of a buffer state between Western Europe and Russia because of its geographical location as a center of Europe. But it did not help a development of its own civilization, and rather made it the arena of surrounding great powers. There are three options for Belarus in the process of seeking its national identity: Belarus as an European country or a brother of Russia, or maintaining a political neutrality. But in reality the political dynamics between Belarus and Russia has much more influence on the life of Belarussia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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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키예프-제2 예루살렘설의 기원과 전개

저자 : 鄭英珠 ( Jung Youngjoo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99-33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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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는 동슬라브인이 정교를 처음 도입한 도시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11세기부터 키예프의 성직자들은 키예프를 기독교 성지와 연관시키며 키예프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했다. 다만 키예프에 신성을 부여하는 초기에 루스인들에게 있어 키예프는 콘스탄티노플의, 콘스탄티노플은 예루살렘의 변주였다.
본고에서는 우선 키예프-제2 예루살렘설의 자세한 내용과 형성과정을 살펴본다. 다음으로 키예프 루스인들이 키예프에 예루살렘을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하며 연관성과 계승권을 주장하게 되었는지 조망한다. 이어서 모스크바-제3 로마설과의 연관성을 짚어보고, 키예프-제2 예루살렘설에서 시작한 루스인들의 메시아주의가 모스크바-제3 로마설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본다. 끝으로 키예프-제2 예루살렘설이 근 현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회에서 재조명되는 양상을 살펴본다.


Kyiv, Ukraine carries a special meaning because it is the city where Eastern Slavs adopted Orthodox Christianity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11th century, clerics of Kyiv associated the city as a sacred place for Christianity and emphasized the roles and missions of Kyiv. However, in the beginning of divinizing Kyiv, the city was a variation of Constantinople which was also a variation of Jerusalem for the people of Rus.
This paper first examines the details and formation of the concept of “Kyiv as the second Jerusalem” and sheds light on how the people of Kyivan Rus recreated Jerusalem in the city, claiming the association and their succession rights of Kyiv. Next, this research discusses its correlation with the “Moscow as the third Rome” Concept and the process how the Messianism by Rus people, which started from the concept of “Kyiv as the second Jerusalem”, leads to the concept of “Moscow as the third Rome”. Finally, this paper analyzes how the concept of “Kyiv as the second Jerusalem” is shed new light on in modern and contemporary societies of Russia and Uk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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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영남. 『중국의 엘리트 정치: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민음사(2019.9).

저자 : 신원우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간행물 : 중소연구 43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33-340 (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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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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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대구가톨릭대학교 (52건)
  • 7 성균관대학교 (48건)
  • 8 경희대학교 (45건)
  • 9 이화여자대학교 (34건)
  • 10 경북대학교 (2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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