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update

  • : 한국실학학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철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0928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9)~37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08
한국실학연구
37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조선왕조의 정책사와 근세 실학, 그리고 金堉(1580∼1658)

저자 : 이헌창 ( Lee Hun-chang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104 (9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김육을 중심축으로 하여 근세 실학의 정책과 그 의의를 고찰한다. 조선왕조는 전근대 세계에서 평균 이상의 성취를 이루고 長壽하였으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조선왕조의 정책 업적은 先秦유학, 주자학 및 근세 실학의 이념에 힘입었다. 근세 실학은 조선 초 정치체제의 발전, 임진왜란 후 생활수준, 재정 및 군사력의 개선에 이바지하였다. 16세기 궁핍해진 인민과 재정, 그리고 허약해진 군사력의 개선책을 강구하는 가운데 임진왜란의 충격을 받으면서 근세 실학은 이이- 유성룡- 김육-유형원에 의해 유학의 한 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김육의 대동법ㆍ鑄貨제도ㆍ시헌력 등 정책 활동과 업적은 17ㆍ18세기 경제적ㆍ문화적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육의 정책 지향을 계승, 발전시킨 근세 실학은 정책적 영향력이 없었지만, 국력의 강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도모하고 자주적 근대화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유효한 방책을 제시하였다. 근세 실학은 시장 육성책, 부국강병책, 외국문명의 개방적 수용론 등으로 주자학 정책론의 약점을 극복하였다. 수도권 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주자학과 근세 실학의 중간지대 엘리트가 근세 실학자와 교류하고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정책 업적을 이룬 중심 세력이고, 먼저 개화사상가로 변모하였다. 실학의 중요한 의의는 정치적 실천인 정책에서 찾을 수 있고, 정책사 연구는 실학 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다.


This paper explores policies of the early modern Silhak and their significances, focusing on Kim Yuk. The J oseon dynasty had policy achievements, including longevity, better than average among pre-industrial dynasties, but ended in colonization. The early modern Silhak became a school of Confucian thoughts, in process of seeking for policies to improve impoverished living standards, financial aggravation, and weakening military power in the 16th century, shocked by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contributed to developing the political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improving living standards, finance, and military power after the Invasion. The policy achievements of Kim Yuk. such as Daidong Law(大同法), coinage institution, Siheon calendar(時憲曆) etc, contributed to economical and cultural development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The policy achievements of the Joseon dynasty were supported by Confucianism, Neo-Confucianism, and the early modern Silhak. Though the early modern Silhak which inherited Kim Yuk's policy orientation was not inflential in policy decision, it presented policies useful for strengthening national power and preparing the ground for modernization by Koreans, which Neo-Confucians and government could not make or accept. Elites of middle zone between Neo-Confucianism and the early modern Silhak were the central force to have policy achievements, interacting with the early modern Silhak scholars, and were changed into the Enlightenment thoughters early. A significance of Silhak lies in its political practise, and studies on policy can contribute to studies on Silhak.

KCI등재

217세기 전반 호서대동법의 성립배경 -權盼(1564∼1631)의 활동을 중심으로-

저자 : 최주희 ( Choi Joo-he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05-136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권반은 양촌 權近(1352∼1409)의 후손이자 尹國馨(1543∼1611)의 사위로 초입사 과정부터 조정에서 주목받는 인재였다. 임진왜란 직후 대명사신의 잦은 방문에 긴밀히 대응하고 후금의 성장에 따른 군사 방어와 외교적 조율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권반은 문장과 실무를 두루 갖춘 인물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이에 선조 28년(1595) 문과에 급제한 이후 중앙의 청요직 뿐 아니라 안주목사, 대동찰방, 강화부사, 함경감사 등 군사ㆍ외교의 요충지에 부임하여 민감한 현안을 주도적으로 처리하였다. 광해군대에는 안주성을 개축하는 일에 실무를 담당하였으며, 대동찰방에 임명되어 칙사를 응접하고 위법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자신의 본향인 경상도에 감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기효신서』에 근거해 군병의 모집과 훈련을 강조하였으며, 사대동을 시행하여 공납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호서대동법의 초안을 작성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호조참판직을 유지하며 李元翼(1547∼1634), 李曙(1580∼1637) 등과 공물변통안을 논의하고 삼도대동법의 실무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대 폐모론에 참여한 혐의로 관직 승진에 부담을 느끼면서 여러 차례 체직을 청하였다. 이로 인해 인조 3년(1625) 삼도대동법이 폐지된 후로는 대동법의 후속 논의를 이끄는 데 주도하지 못하였다. 대신 강화부사와 함경감사, 충청감사 등 외관직에 부임하며 주로 산성 보수와 군비 확충, 군적 정리 등에 주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반에 대한 후대의 기억은 호서대동법의 초안을 만듦으로써 훗날 金堉(1580∼1658)이 호서대동법을 중앙에 발의할 수 있도록 한 장본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권반이 작성한 문적은 단지 중앙의 공물가를 토지 1결당 면포 1필, 쌀 2두로 전환하는 변통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도대동법의 좌절을 겪으며 치밀하게 고민하여 만든 대안이었다. 권반의 문적에는 도 단위이기는 하지만 대동법 시행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공물상정안이 담겼으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충청도에 무분별하게 징수되던 각종 공물ㆍ역가를 현실화한 것이었다. 권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왕실진상과 전선가, 지방관수 등 지방의 각종 잡역가를 대동세에 포함시킴으로써 삼도대동법 시행기 반대동에 따른 백성들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비록 결당 수취하는 대동세가 다소 적게 책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대동미를 경상납분과 대동유치분으로 나누어 지방재정을 현실화 한 호서대동법의 성립 배경을 권반에게서 찾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Gweon Ban(權盼, 1564∼1631), who served as the Gwanchal-sa magistrate for the Chungcheong-do province during King Injo's reign, created the first draft of 『Hoseo Daedong Samok(湖西大同事目, Plan for the Daedong-beob law application in the Hoseo region)』, and laid the groundwork for Kim Yuk(金堉), who ultimately launched the Daedong-beob law in the Chungcheong-do province. This draft he created was a product of brainstorming which coincided with all kinds of troubles the "Samdo (Three Provinces) Daedong-beob" law was going through during Injo's reign. Kim Yuk carefully reviewed Gweon Ban's draft, and strongly recommended to the government to initiate the Hoseo Daedong-beob law.
Included in Gweon's draft was a comprehensive platform for Daedong taxation named "Gongmul Sangjeong-an(貢物詳定案, List of Items to be collected as Local tributes)," which was a modified version of a taxation plan involving the Chungcheong-do province's general tribute items(貢物) and labor fees(役價), that had been in disarray since the Imjin Wae'ran war. ㆍ What should be noted is the fact that the plan intended to have several kinds of miscellaneous taxes, such as tributes for the royal family, the Warship Cost Tax("Jeonseon-ga, 戰船價") and ordinary local administrative costs[官需], be absorbed into the Daedong tax. This was an attempt to address previous criticism of Samdo Daedong-beob actually being 'Half-Daedong("半大同")' in its execution. Of course, the Daedong tax for each Gyeol unit was established relatively low, but the Daedong tax to be collected was divided into two brackets : the group to be transferred to central (after collection), and the group to remain for local authorities' needs. After all, it was a reasonable compromise for local finance too. In that regard, Gweon Ban's draft indeed served as the foundation for the final version of 『Hoseo Daedong Samok』.

KCI등재

3잠곡 김육의 초상화 세 점에 대하여 -제작과 전승을 중심으로-

저자 : 조인수 ( Cho In-soo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7-168 (3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선후기의 관인학자 金堉은 명청 교체기에 네 차례 중국을 방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인 화가로부터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현재 모두 세 점의 김육초상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중국 화가의 손으로 그려진 만큼 당시 조선의 초상화와는 형식과 기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또한 후대에 肅宗, 英祖, 正祖가 각각 畵像贊을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김육 초상화의 제작과 전승 과정을 상세하게 살펴보면서 그림으로서 조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도 함께 분석한다. 즉 무슨 이유로 김육이 다소 특이한 모습으로 자신의 초상을 제작하도록 했으며, 어째서 후대 임금들이 김육의 초상화를 높이 평가했는지 살펴본다.
김육이 중국에서 그려온 세 점 초상화는 신문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으며 실용적인 지식을 중시했던 김육의 실학적 태도가 반영되어 제작되었으며, 그로인 하여 기존 조선의 초상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형식이 나타난다는 선구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역대 임금들의 찬문에서는 민생을 향상시키고 국가재정을 안정시키려 노력한 김육의 업적과 함께 도덕과 공리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노련한 재상으로 찬미하고 있다.


In the late Joseon period, Kim Yuk, an eminent literati high-official, visited China four times as an envoy and witnessed the drastic transition from the Ming to the Qing dynasties. While he stayed in Beijing and Shenyang, he has drawn his portraits from Chinese painters. At present, three portraits of Kim Yuk are survived. These paintings were executed by the hands of Chinese painters, and there are differences in style and technique from the portraits by Joseon Korean painters at the time. It is also significant that later Kings Sukjong, Yeongjo, and Jeongjo composed royal eulogies for the portraits. In their eulogies on the portraits, the kings praised Kim Yuk for his accomplishment to stabilize the national finances and to improve the welfare of the people
This paper examines the process of making and transmitting Kim Yuk's portraits in detail and analyzes the social functions as well as the artistic features. It delves into the reasons why Kim Yuk had made his portraits with an unusual iconography, and why the later kings highly praised him through his portraits.
Three portraits of Kim Yuk clearly exhibit how Kim Yuk was active in accepting new culture and focused on practical knowledge. As a result, they stand out as pioneering examples of the new visual representations which were unconventional to the portrait tradition of the Joseon society.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선시대 경학사에서 윤휴는 이전의 유학자와는 다른 사상적 특징을 보여준다. 즉 윤휴는 기존의 주자학적 경학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경학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윤휴의 독자적 경학을 잘 보여주는 것이 그의 『讀書記ㆍ中庸』이다. 특히 윤휴는 『讀書記ㆍ中庸』에서 하늘[天]에 대한 인식이 기존의 주자학적 天인식과 달리 보다 종교적인 天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畏天'이다. 이 '畏天' 개념은 윤휴 이전 李德弘, 趙翼등의 중용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윤휴의 중용학에서 이 '畏天' 사상을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윤휴의 이러한 '畏天' 사상은 선진시기 유교 문헌 특히 고경인 삼경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주역』 震卦象傳의 “천둥이 거듭해서 치는 상이 震卦이다. 군자는 이러한 상을 관찰하여 두려워하고 수양하고 반성한다.”라는 구절, 『상서』 周書泰誓上의 “나 소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여”라는 구절, 그리고 『시경』 周頌淸廟之什我將의 “나는 밤낮으로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며”라는 구절을 분석하였다.
윤휴 경학의 종교적 성격을 나타내는 '畏天' 사상은 17세기 조선경학사에 있어서 古學的경향의 한 측면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원인으로 당시 조선시대에 영향을 미쳤던 명대의 古學的학풍에서도 찾을 수 있다. 17세기 윤휴 경학의 고학적 성격에 대한 원인을 명대의 고학적 학풍에서 찾으려는 기존의 연구 결과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윤휴는 자신의 중용학의 연원을 고경의 하나인 『상서』에서 찾고 있다. 윤휴는 中庸之圖에서 중용의 연원을 『상서』 虞書益稷의 “하늘의 명을 삼가 경계하여 때마다 조심하고 일마다 조심해야 한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윤휴는 '하늘의 명을 삼가 경계하다(勅天之命)'라는 『상서』의 말을 자신의 중용학의 연원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 '勅天之命'에는 '畏天'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윤휴의 이러한 '畏天' 사상은 종교학의 대표적인 이론 중의 하나인 루돌프 옷토의 '두려움(tremendum)'과 '위압성(majestas)'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유교의 종교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Yoon hyu shows a different philosophical trait from previous scholars in the history of Confucian Classics in the Joseon Dynasty. In other words, Yoon Hyu is breaking away from the existing Neo-Confucian Order, and he builds his own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It is his Dushuji Zhongyong that shows this kind of the Anti-Zhuxiist Thought. In particular, Yoon Hyu's perception of heaven in Dushuji Zhongyong shows a more religious perception of heaven, unlike the previous perception of heaven. The core content is WeiTian(畏天). This concept of WeiTian(畏天) is a new element that cannot be found in Zhongyong studies such as Lee Deok-hong and Jo Ik before Yoon hyu. Therefore, it is natural and necessary to identify this idea as an important element in Yoon Hyu's Zhongyong studies.
I think that the origin of Yoon Hyu's WeiTian(畏天) thought can be found in Confucian literature during the pre-qin period, especially in the ancient Classics of Confucianism. So, I analyzed the phrases of the ancient Classics of Confucianism like Sanjing(三經). In this regard, Yoon Hyu is looking for the origin of his Zhongyong studies in one of the ancient Classics, Shangshu(尙書). Yoon Hyu clearly states the origin of his Zhongyong studies is Shangshu(尙書) in his Zhongyongzhitu(中庸之圖). Here, Yoon Hyu speaks of the word "be afraid of the command of heaven(勅天之命)" as the origin of his Zhongyong studies, but it would be safe to say that the word "be afraid of the command of heaven(勅天之命)" includes WeiTian(畏天).
Yoon Hyu's WeiTian(畏天) ideas can be understood as the concepts of Rudolf Otto's "tremendum" and "majestas," two of the leading concepts of religious studies, which illustrate the religious characteristics of Confucianism well.

KCI등재

5창계 임영의 내면적 성찰과 경학 - 『일록』과 『독서차록-맹자』를 중심으로-

저자 : 함영대 ( Ham Young-da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7-225 (2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17세기로 접어들면 주자학의 텍스트들이 발간되고, 語錄에 대한 이해도 심화되었으며, 사서삼경에 대한 조선의 표준해석인 언해도 완성되어 유교경전, 특히 주자학적 유학에 대한 조선학자들의 이해가 깊어졌다. 조선 맹자학의 시야에서 보면 창계 임영의 경전 주석서인 『독서차록-맹자』는 그 가운데서도 조선 성리학에서 내면적 성찰을 보여주는 빼어난 저작이다. 그것이 마침 자신의 수행기록인 『일록』 과 함께 남겨져 있어 17세기 조선 맹자학사 연구에서 학자의 내면세계를 고찰하는데 효과적이다.
창계는 『일록』에서 책과 견문을 통해 알게 된 의리를 일상에서 견실하게 실천하는데 유의했다. 곧 眞心과 實情이 마음에 간절하고 일상에 밝게 드러나는 것을 가치있는 공부라고 여겼다. 그는 『주자대전』과 『주자어류』, 『성리대전』과 『이정전서』 및 우리나라 퇴계와 율곡의 글, 『근사록』과 『소학』을 읽고 모두 암송한 다음 이를 독실히 실천하려 했다. 자기 학문의 목표를 敬의 실현에 두고, 사사로움을 부정하고, 지극히 공정한 상태를 일상에서 끊어짐 없이 유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敬을 실천하는 공부법으로 靜坐法을 택한 것은 그의 구도적 학문자세에서는 온당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독서차록-맹자』는 『사서대전』을 통한 경전학습을 단순히 지적인 탐색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응시하고 성찰하는 기제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국면을 보여준다. 不動心章을 四端七情의 이론적인 성리논쟁이 아닌 『대학』의 원리를 구현하는 경전의 내적 논리로 이해하고, 理가 준칙이 된다는 고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유행과 변화는 氣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 理氣論은 실질과 실천에 대한 지향을 보여준다.
또한 개별 논점에서 제기한 군신관계의 의리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당대의 필요에 부응하는 인간존재로서의 자의식에 대한 주제선정, 부귀의 추구와 인의 예지의 실천에 대한 반성적 시각은 17세 이래 더욱 성숙하게 주자학을 내면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조선 유학자의 초상이다.
17세기 조선 학계의 주자학에 대한 심화된 이해와 비평은 사계 김장생 이래포저 조익, 만회 권득기, 서계 박세당에서도 일부 나타나는 것이다. 창계에 이르러 그 방향이 더욱 내면이면서도 실천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는 학술사에 있어서 조선 경학의 내면적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During the 17th century, the texts of the doctrines of Chu-tzu were published with the understanding on the quotations deepened while the standard interpretative annotation of Joseon regarding the Four Books and Three Scriptures completed to have broader understanding by the Joseon scholars regarding the Confucius scripture, especially on the doctrines of Chu-tzu. Looking from the view of Joseon Mencius Studies, 『Dokseocharok (讀書箚錄) -Mencius』 of Notes on scripture for Changgye(滄溪) Im Young(林泳) is an extremely splendid masterpiece that demonstrates the inner insight in the doctrines of Chu-tzu of Joseon. That is still left out along with his own record of performance in 『Ilrok(日錄)』 that it is effective to contemplate the inner world of scholars in the 17th century study on the history of Joseon's Mencius Studies.
In 『I lrok』, Changgye noted that the righteousness learned through books and experiences is to soundly practice in daily affairs. He considered that the valuable study is to display the genuine mind and practical matter to be dire to the mind and bright in the ordinary affairs. He read and memorized 『Juja-daejeon(朱子大全)』, 『Juja-eoryu(朱子語類)』, 『Seongri-daejeon(性理大全)』 and 『Yijeong-jeonseo(二程全書)』 along with the writings of Joseon's Toegye(退溪) and Yulgok(栗谷), 『Geunsarok(近思錄)』 and 『Sohak(小學)』, and then he intended to duly practice them. He made unyielding endeavor to place his academic objective in realizing the respect, deny any personal matter, and maintain the extremely fair condition in the ordinary life without disconnection. He opted for the meditation approach as the method to study in practicing respect and it is completely comprehensive in his truth-seeking attitude.
『Dokseocharok-Mencius』 displayed the detailed phase to facilitate the scripture learning through 『Saseo-daejeon(四書大全)』 as the record and insight with the view of one's own life, without considering it as a simple intellectual search process. The Li(理)-Qi(氣) ontology -Theory of Principle and Psycho-physical Eenergy- that pointed out the fact that trend and change of the world are the byproduct of energy with the understanding of chapter of unchanging mind(不動心章) as the internal theory of scripture that realized the principle of 『Daehak(大學)』, not as the Confucius discourse of four clues and seven emotions along with the consideration for the reasoning to be the rule and it displays the topography on substance and practice.
In addition, the acute perception on righteousness of the relationship of the ruler and the ruled raised under the individual point of view, selection of theme on self-awareness as a human being to respond to the need of the time, and the reflective view on all ranks and classes have been the portrait of Confucius scholars that advanced the doctrines of Chu-tzu in more mature aspects since the 17th century.
Understanding and critiques deepened on doctrines of Chu-tzu of the 17th century Joseon academic sector have partially appeared in Poseo(浦渚) Cho Ik (趙翼), Manhoe(晩悔) Kwon Deuk-gi(權得己), Seogye(西溪) Park Se-dang(朴世 堂) after Sagye(沙溪) Kim Jang-saeng(金長生). At the time of Changgye(滄溪), the direction was deployed in more internal and practical scheme and this is attributable to the innate maturity of the study of Confucian classics in Joseon in the academic history of the time.

KCI등재

6창계 임영의 개인 수양서로서 『논어』 읽기 - 「독서차록-논어」 「학이」편을 중심으로-

저자 : 조정은 ( Jo Jung-eu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7-257 (31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은 창계 임영이 지은 독서차록-논어 중 학이 편에 관한 기록을 분석하여 임영의 『논어』 독해 관점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임영의 독서차록 은설선의 독서록 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글쓰기 양식에 속한다. 비록 양식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독서차록-논어 는 주자학적 경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된 17세기 조선의 지적 토양에서 차별적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임영의 『논어』 독해 관점은 일상 실천을 중시하는 임영의 수양론과 맞닿아 있다. 즉, 학이 편 5장, 6장과 관련해 논한 포괄적 이치, 9장의 특별한 큰일, 10장에 나온 공자의 성인다운 면모, 옹야 편 22장에 나온 성현의 고원한 경지를 일상의 지속적 노력을 통해 다다를 수 있다고 본 해석은 일상 실천이 최종적으로 경세보다는 개인적 도덕 성장을 지향한다고 보는 점에서 개인 수양서로서 『논어』의 가치를 높이 보는 임영의 인식을 방증한다. 임영의 수양론은 학이 편 7, 12, 14, 15장에 대해 『논어집주대전』에 실린 주석과 다른 해석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기여한다. 임영은 주로 일상 실천과 늘 견지해야 하는 근본적 자세를 강조하는 방향에서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이처럼 임영의 독서차록-논어 는 17세기 조선경학의 영향 아래 설선의 독서록-논어 와 차별화되고, 개인적 성장을 위한 수양서로서 『논어』를 이해하는 인식 아래 일상 실천을 중시하는 수양론적 관점을 투영시켜 본인의 『논어』 독해의 근간을 제공했을 『논어집주대전』과도 차별화되는 해석을 제기하게 된다.


This paper aims to elucidate Changgye Im Yeong's interpretive reading of the Lunyu by mainly analyzing his records on the "Xueer" chapter in the Dokseo charok-Noneo (Notes on Reading-Lunyu). Im Yeong's Dokseo charok belongs to the writing style that emerged under the influence of Xue Xuan's Dushulu (Essays on Reading). Although influenced by China on the stylistic level, the Dokseo charok-Noneo shows its uniqueness on the content level rooted in the intellectual soil of Joseon in the 17th century, when an understanding of Jingxue (Confucian Canon Studies) largely based on Zhu Xi's thoughts was deepened.
Im's interpretive perspective on the Lunyu is mostly related to his theory of moral cultivation which values daily practice : the comprehensive principle in regard to Lunyu 1.5 and 1.6, significant events in 1.9, the sacred appearance of Confucius in 1.10, and the high-mindedness of sages in 10.22 can be attained through continuous efforts in one's everyday life. This interpretation supports Im's appreciation of the Lunyu as a guide book for self-cultivation in that he sees that everyday practice ultimately aims at personal moral growth rather than governance. Im's theory of cultivation also encourages him to make different interpretations on Lunyu 1.7, 1.12, 1.14, 1.15 from the annotations in the Lunyu jizhu daquan (Great Compendium of Commentaries on the Lunyu). These different interpretations are largely related to his emphasis on daily practice and a fundamental attitude that one should always maintain.

KCI등재

7정제두 「대학설」의 특성과 그 경학사상사적 의미

저자 : 한정길 ( Han Jeong-gil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9-300 (4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정제두는 『대학』 본의에 대한 주희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하여 『대학』 전체를 새롭게 해설한다. 이 글은 정제두가 주희의 왜곡을 어떻게 바로잡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대학』 해설의 특성과 그것이 경학사상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탐구한 것이다.
『대학』의 작자와 체제 및 내용에 대한 이해에서 정제두는 대체로 양명학의 관점을 따른다. 그러나 그의 『대학』 해설에는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면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주자학만이 아니라 양명학과도 다른 정제두 대학 설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우선 정제두는 「대학」을 공자의 가르침을 증자가 기술한 것으로 봄으로써 『대학』이 경전 상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이 점은 주희나 왕수인을 넘어서서 태주학파 학자들과 생각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는 대학 고본을 정본으로 여기고, 그것을 6장체제로 새롭게 분장한다. 대학 고본을 정본으로 여긴 점은 양명학을 따른 것이지만, 그것을 6장체제로 분장한 것은 그의 독창이다.
「대학」 고본 제1장에서 주희가 문제 삼았던 부분은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이다. 주희는 이 두 구절이 의미상 아무 맥락 없이 경문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정제두는 「대학」 제1장 전체를 '격물치지'장으로 규정하고,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의 두 구절을 격물치지에 관한 결어로 이해한다. 대학 고본 제1장을 物과 事가 날줄과 씨줄로 얽혀 있는 것으로 보는 구조적인 이해를 통하여 정제두는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의 두 구절이 경문 속에서 지니는 의미 맥락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격물치지'에 대한 풀이를 『대학』 자체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학」 고본 제1장 전체를 '격물치지장'으로 규정하고, 또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를 그 결론으로 이해한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학 고본을 정본으로 여기는 양명학자들, 즉 왕수인이나 왕간 및 나근계와의 『대학』 이해와도 차별화된다. 이 점에서 정제두의 대학 해설이 『대학』 해석사에서 지니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정제두는 성의를 격물치지의 실질적인 공부로 이해함으로써 대학 고본 제1장 '격물치지'장과 제2장 '성의'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힌다. 이제 격물치지의 실질적인 공부가 이루어지는 성의장 안에서 제1장에서 언급되었던 명명덕과 친민 및 지어지선을 함께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대학』의 핵심 개념들과 그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정제두는 대체로 양명학을 따른다. 그는 양명학의 입장에서 『대학』을 주해함으로써 주희의 『대학장구』의 문제점을 폭로함과 아울러, 양명학으로 하여금 굳건한 경전적 근거를 지닐 수 있게 했다.
양명학의 입장에서 『대학』에 대한 정밀한 주석을 통해 주자학과 정면 대결을 시도한 인물은 왕수인 이후 정제두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정제두가 주자학과 전면적으로 맞서게 된 데에는 주자학 이외의 다른 학문을 이단시하는 조선만의 고유한 학술 풍토가 있었다. 정제두의 『대학』 해설은 양명학을 이단시하는 조선사상사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경학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Jeong Je-du annotates the Great Learning from a new angle to correct the distortions of the original meaning of the Great Learning caused by Zhu Xi. This article examines how Jeong Je-du corrects Zhu Xi's distortions, and elucidates the characteristics of his annotation and its implications in the History of Thought on Confucian Classics.
Jeong Je-du follows the view of Yangming Studies regarding the author, system, and contents of the Great Learning ; however, he makes his own unique interpretation of the Great Learning.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veal this unique interpretation which distinguishes Jeong's thoughts either from Zhuzi Studies or from Yangming Studies.
Jeong Je-du ascribes the Great Learning to Zengzi 曾子: Zengzi wrote this book to convey Confucius' teachings. For this reason, he attaches great value on the Great Learning among Confucian Classics, which is a shared attitude toward the Great Learning with the Taizhou School. In line with Yangming Studies, Jeong regards the Old Text of the Great Learning as the authentic edition ; however, he deviates from Yangming Studies when he divides it into six chapters.
Zhu Xi raises a question regarding 'ci wei zhi ben, ci wei zhi zhi zhi ye'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in the first chapter of the Great Learning. Zhu Xi considers that these two statements were included in the first chapter out of context. However, Jeong Je-du defines the first chapter as the "Gewu zhizhi" 格物致知(investigating things and extending knowledge) chapter, and regards the two statements as concluding remarks on gewu zhizhi.
Jeong's understanding of Chapter 1 of the Great Learning is coherent and presents a very ingenious view. There have been attempts to interpret the meaning of gewu zhizhi within the Great Learning. However, none of these attempts defined the whole of Chapter 1 as the "Gewu zhizhi" chapter and understood 'zhi wei zhiben, ci wei zhi zhi zhi ye' as its conclusion. Jeong's understanding is also different from Yangming scholars' such as Wang Shouren 王守仁, Wang Gen 王艮, and Luo Jinxi 羅近溪. In this regard, his interpretation occupies a prominent place in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 of the Great Learning.
Jeong Je-du understands 'making the will sincere' (chengyi 誠意) as a practical method of cultivation of gewu zhizhi, thereby closely relating the "Gewu zhizhi" chapter to the second "Chengyi" chapter.
In understanding the core concepts of the Great Learning and their interrelationship, Jeong Je-du follows Yangming Studies. He annotates the Great Learning from the perspective of Yangming Studies and points out the errors in Zhu Xi's Commentary on the Great Learning. Through Jeong's interpretation, Yangming Studies are able to be firmly grounded on Confucian Classics.

KCI등재

8리재운(李載運)의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과 거부렬전(巨富列傳)

저자 : 안대회 ( Ahn Dae-hoe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01-342 (42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조선 영조 때의 문인 李載運의 저술 『海東貨殖傳』과 그 안에 수록된 거부열전 9편을 분석하였다. 1740년대 후반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 저술은 지금까지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필자가 사본을 입수하여 그 내용과 성격을 처음 소개하였다. 2장에서는 저자의 가계와 『해동화식전』 2종의 서지사항을 자세하게 조사하여 설명하였다. 북인(北人) 명문가인 이산해(李山海) 가문의 5대손으로 경제와 경세에 관심을 기울인 학맥에 속해 있었고, 서계(庶系)로 불우하게 지낸 小品文家계열임을 밝혔다.
이 저술은 조선의 일반적 경제관념과 상인관을 뒤집는 중상주의적 이론과 경영론을 전개한 동시에 그 경영론을 뒷받침하는 거부열전 9편을 수록한 독창적 가치를 지녔다. 9편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였고, 그중에서 특히 이진욱 열전을 통해 치부하는 방법과 이재운이 바라본 조선 거부의 성격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9편의 거부열전이 후대 야담집의 治産談과 맺는 관계를 차례로 설명하였고, 18세기 이후 치산담이 『해동화식전』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거부열전은 치부의 과정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과정과 방법으로 묘사하여, 유학의 왜곡된 이념이 아닌 현실적 감각으로 부와 상인을 보도록 안내하였다. 이재운의 시각은 대단히 독특한 사유였다. 그 대담하고 혁신적 내용은 조선 후기 경제와 학술, 문학 방면에서 주목해야 할 새로운 것임을 밝혔다.


This paper analyzed Haedonghwasikjeon, a book by the writer Li Jae-un during the rule of Yeongjo of Joseon, and its nine biographies of the wealthy. The book is estimated to have been written in the late 1740s, and was believed to have disappeared. A copy was retrieved by the author of this paper, which is the first to present its content and characteristics. Section 2 provides a detailed description of the author's family finances and bibliographical information in Haedonghwasikjeon. The author was the fifth-generation descendent of Li San-hae, a prominent figure of the Northerners School. He declared himself to be well-versed in economy and of the illegitimate lineage.
The book holds significance in not only presenting mercantilist and management theories that went against general conventions of Joseon, and in supporting such theories with nine biographies of the wealthy. This paper briefly introduces the nine biographies, and in particular, focuses on Li Jin-uk'method of accumulating wealth and views of the wealthy in Joseon.
This paper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ine biographies to stories of accumulating wealth, or chisandam, in later periods. It seeks to demonstrate that such stories that emerged after the 18th century were greatly influenced by Haedonghwasikjeon. The biographies of the wealthy described the rational process and methods involved in accumulating wealth, providing a realistic account of wealth and merchants at that time. LiJae-un's bold and innovative perspective sheds new light on economy, scholarly activities, and literature of the late Joseon Dynasty.

KCI등재

9『열하일기(熱河日記)』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실체(實體) -삼액(三厄)의 기원(起源)과 변모양상(變貌樣相)을 중심으로-

저자 : 최식 ( Choi Sik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43-385 (4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지금까지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三厄을 중심으로 그 起源과 變貌樣相을 살펴보았다.
왕민호가 제기한 삼액은 홍대용과 이덕무가 망건과 전족을 액운으로 명시한 내용을 부연하고, 오위업이 연초를 火異로 규정한 내용을 새롭게 구액으로 추가한 셈이다. 더욱이 삼액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당시 연행록과 필기ㆍ유서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이전의 삼액 관련 지식과 정보를 수집ㆍ정리하고 있다. 이는 『열하일기』가 당시 지식과 정보를 총망라한 사실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전 삼액 관련 지식과 정보를 총망라하여 '法古而知變'한 것이 바로 『열하일기』의 삼액인 셈이다.
『열하일기』의 삼액은 이후 연행록과 필기 및 유서에 다양한 변모양상을 드러낸다. 『열하일기』 가운데 왕민호의 언급을 그대로 수록하기도 하고, 내용을 재구성하는 방식도 등장한다. 이와는 달리, 삼액을 수용하면서 각종 문헌 등을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변증을 시도한다. 다른 한편으로 박지원과 왕민호의 필담처럼 삼액을 필담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열하일기』의 삼액은 '創新而能典'하여 수용ㆍ변증ㆍ활용 등 다양한 변모양상으로 확대ㆍ재생산된다.
그렇다면, 삼액의 기원은 『열하일기』의 삼액 수용으로 '法古而知變'에 상응하며, 삼액의 변모양상은 『열하일기』의 삼액 재생산으로 '創新而能典'에 부합한다고 하겠다. 『열하일기』의 삼액을 통해서 법고창신의 실체를 거칠게나마 추적한바, 『열하일기』는 기존의 지식ㆍ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정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식ㆍ정보를 확대하고 재생산한다. 이는 『열하일기』뿐 아니라 지식ㆍ정보를 아우르는 연행록과 필기 및 유서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으로, 조선 후기 지식ㆍ정보의 특징적 면모라 하겠다.


To this point, with the Samaek emerged in Yeolha-ilgi as the focal point, its origin and trend of changes have been sought.
The Samaek raised by Wang Min-ho has elaborated the contents specified as misfortune with the manggeon (hair-band) and jeonjok (foot-binding) by Hong Dae-yong and Lee Deok-moo and newly added the contents defining the yeoncho by O Wi-eop as the Hwai. Furthermore, detailed descriptions on the Samaek have close relation to the Yeonhaeng-rok and writing and will and the Samaek related knowledge and information of the previous time have been collected and summarized. This is to prove the fact that Yeolha-ilgi embracing the knowledge and information at the time. Accordingly, by comprehensively summarize the previous Samaek related knowledge and information to 'Beopgoijibyeon', which is the Samaek of Yeolha-ilgi.
The Samaek of Yeolha-ilgi displays various trends in the writing and will with the Yeonhaeng-rok thereafter. From Yeolha-ilgi, mentioning of Wang Min-ho was recorded the way it was and the method of restructuring the contents emerged as well. Unlike the foregoing, by accepting the Samaek, various literatures and displayed its opinion to attempt for demonstration. On the other hand, like the written communication of Park Ji-won and Wang Min-ho, the Samaek was facilitated as the theme of written communication. Therefore, the Samaek of Yeolha-ilgi is expanded and reproduced in various shapes and tendencies for accommodation, demonstration, facilitation and others with 'changsinineungjeon'.
If so, the origin of the Samaek is corresponded with the 'Beopgoijibyeon' by the Samaek accommodation of Yeolha-ilgi and the trend of change in the Samaek is conforming to the 'changsinineungjeon' with the reproduction of Samaek of Yeolha-ilgi. Through the Samaek of Yeolha-ilgi, the actual presence of beopgochangsin (learn from the old to create new things) was traced down and Yeolha-ilgi unyieldingly collected and summarized existing knowledge and information while expanded and reproduced new knowledge and information simultaneously. This is the matter consistently applied in Yeonhaeng-rok, writing and will that embrace the knowledge and information as well as Yeolha-ilgi that it is the characteristic aspect of the knowledge and information for the later Joseon Era.

KCI등재

10다산정약용(茶山丁若鏞)의 '지식(知識)'론(論)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저자 : 정일균 ( Jeong Il-gyun )

발행기관 : 한국실학학회 간행물 : 한국실학연구 37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87-435 (49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에서는 丁若鏞이 자신의 저술을 통해 '知識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과연 어떠한 입장을 개진하고 있는지를 추적ㆍ구성해보는 데에 일차적 관심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약용이 개진한바 '知識'論의 구체적 내용이 특히 '이론적 토대', '특징과 내용' 및 '개혁론적 전개'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차례대로 고찰되고 있다.
우선, 본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①정약용의 '지식'론의 '이론적 토대'와 관련해서는 ㉠인식론의 측면에서 '道理[Sollen]'와 '物理[Sein]'를 준별하는 이른바 '認識論的覺醒'의 입장을, ㉡학문론의 측면에서 '학문의 구성요소'에 관한 '道ㆍ藝'論과 '體ㆍ用'論의 입장을 각각 소개하였다. ②그의 '지식'론의 '특징과 내용'에 있어서는 이상의 논의를 전제로 ㉠전자의 경우에는 '인식론'과 '역사적 변동 양상'의 측면에서 각각 발견되는 지식의 현저한 특징을, ㉡후자의 경우에는 지식의 범주적 위상, 성격, 구성내용, 효능과 학문분류 및 연구방법론의 측면에서 간취되는 구체적 내용을 차례대로 추출ㆍ정리하였다. ③그의 '지식'론의 '개혁론적 전개'에 대해서는 ㉠덕성지의 경우에는 '知天'과 '行事'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견문지의 경우에는 '北學論의 전개'와 '數理의 중시'라는 입장을 중심으로 그 내용과 문제의식을 각각 정리하였다.
한편, 이상의 논의를 통해 정약용의 '지식'론이 함축ㆍ제시하고 있는 사상적 의미를 반추해보면, 대표적으로 ①그의 '지식'론은 무엇보다 인식론의 측면에서 '당위[Sollen]'와 '존재[Sein]'를 준별하는 유교적 합리주의의 일 형태로서 이른바 '인식론적 각성'을 명확하게 전제ㆍ표명하고 있다는 점, ②그의 '지식'론은 지식을 인식론의 측면에서 '도리'와 '물리'를 준별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들 지식의 '역사적 변동양상'에 대해서도 각각 다르게 이해하였다는 점, ③그의 '지식'론은 '도리로서의 德性知'와 '물리로서의 見聞知'를 막론하고 지식 일반의 본원적 속성으로서 무엇보다 '實踐性', 즉 '知行兼進'을 공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 ④그의 '지식'론은 항상 그리고 일관되게 지식의 '법주적 위상'과 '구성내용'으로서의 '體ㆍ用', '本ㆍ末', '道ㆍ藝' 및 '修己ㆍ治人' 간의 竝進과 均衡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⑤그의 '지식'론은 바로 동일한 맥락에서 그 개혁론적 전개에 있어서도 반드시 '덕성지'의 측면과 '견문지'의 측면을 공히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In this paper, Dasan Jeong Yak-yong's answers to a question of "what is knowledge?" are pursued and constituted through his works. In this context, his theory of knowledge is inquired into focusing on its 'theoretical foundations', its 'characters and contents' and its 'reform-oriented developmental aspects'.
To begin with, the main contents of this paper are as follows : ① Concerning 'the theoretical foundations'of Jeong Yak-yong's theory of knowledge, his epistemological stand that made a sharp distiction between moral laws[道理, Sollen] and natural laws[物理, Sein] and his theory of learning that emphasized virtue(道) and craft(藝) or principle(體) and application(用) simultaneously as indispensable constituent elements are introduced by turns. ② In relation to 'the characters and contents' of Jeong Yak-yong's theory of knowledge, its remarkable characters that are found in his epistemology, his view of historical change of knowledge and its concrete contents that are perceived in his arguments for the categorical position, the character, the constituent substance, the benefits, the classification and the research methodology of knowledge are extracted and arranged in order. ③ In connection with 'the reform-oriented developmental aspects' of Jeong Yak-yong's theory of knowledge, its contents and his critical mind expressed in it are examined respectively laying stress on his concepts of 'knowing Lord on High(知天)' and 'practice(行事)' in case of moral knowledge on the one hand and his arguments for 'the necessity of Learning-China theory(北學論)' and 'the importance of mathematical principle(數理)' in case of natural knowledge on the other hand.
Assuming aforementioned discussions, to ruminate the theoretical significance that Jeong Yak-yong's theory of knowledge had implied and had suggested, it runs as follows : ① His theory of knowledge, above all, premised and manifested definitely so-called 'epistemological awakening' that drew a sharp line between moral laws and natural laws as a form of Confucian rationalism. ② In the same context, his theory of knowledge distinguished moral laws from natural laws in their patterns of historical change. ③ His theory of knowledge emphasized 'practicability(實踐性)', that is, 'the simultaneous pursuit of knowledge and practice(知行兼進)' as an intrinsic attribute of knowledge in general regardless of moral knowledge(德性知) and experienced knowledge(見聞知). ④ His theory of knowledge always and consistently stressed on the parallelism and the harmony between virtue and craft, principle and application and moral culture(修己) and government(治人) that was the very categorical position and the very constituent substance of knowledge. ⑤ In the same sense, his theory of knowledge included both sides of moral knowledge and experienced knowledge together in its reform-oriented development.

12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 Midwest University 성균관대학교
 71
 32
 31
 26
 24
  • 1 고려대학교 (71건)
  • 2 서울대학교 (32건)
  • 3 서강대학교 (31건)
  • 4 Midwest University (26건)
  • 5 성균관대학교 (24건)
  • 6 연세대학교 (24건)
  • 7 동국대학교 (18건)
  • 8 경희대학교 (15건)
  • 9 이화여자대학교 (13건)
  • 10 현대자동차 (12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