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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eformed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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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9-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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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66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821
한국개혁신학
66권0호(2020년 05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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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를 위한 신학으로서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에 충실한 신학 작업을 지향하면서

저자 : 이승구

발행기관 : 한국개혁신학회 간행물 : 한국개혁신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21 (1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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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바울의 선교 전략으로서의 “재방문” 목회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저자 : 김주한 ( Joohan Kim )

발행기관 : 한국개혁신학회 간행물 : 한국개혁신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59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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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바울의 주요 선교 전략으로 선교지 “재방문” 목회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는 논문이다. 바울의 선교 원리나 전략들이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논의됐지만, 정작 바울이 취한 선교지 “재방문” 방법과 그를 통한 성도들에 대한 목회 부분은 지금까지 간파됐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은 선교지 “재방문” 목회가 바울의 주요 선교 전략 중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었음을 증거 해준다. 예를 들어, 누가는 바울의 전도여행을 기술하면서 근본적으로 모든 전도여행에 “재방문'의 모티브가 강하게 담겨져 있음을 드러냈다(저Ⅱ장). 즉 바울은 “재방문' 전도여행을 통해 이미 복음을 접한 성도들을 권면하고 굳게 세우는데 있었음을 누가는 분명히 기록했다. 또한 바울이 그의 서신들에서 “사도적 현존,” 곧 직접 방문, 대리자 파송 및 서신 발송의 방법으로 각 교회를 “재방문” 하려고 시도했음이 드러난다(제III장). 비록 “사도적 현존”의 기능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을지라도, 근본적으로 이는 이미 설립된 교회를 “재방문” 목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항들을 통해 볼 때, 바울은 선교 전략의 대원칙은 단순히 새로운 선교지의 개척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척된 선교지를 지속적으로 “재방문”하여 그곳 성도들을 “목회”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가 재원지원, 예배당 건축, 단기 선교여행 등으로 외형적인 면에 치중된 환경에서 바울의 “재방문” 목회 선교 전략을 배움으로 한국 교회 선교 방향이 교회가 맡은 피선교지 교회를 책임지고 목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을 제안한다.


This article aims to find out some textual grounds of a pastoral care of“revisiting” as one of main missional strategies of Paul. The Acts of Apostles and Paul's epistles witness that the “revisiting ” to mission fields was the fundamental one of his mission strategies. For example, having described Paul's missional journeys Luke marked the “revisiting”motif out in several passages(see chap. II); Luke revealed Paul's pastoral intention to encourage and care those who had gotten the gospel already through describing Paul's “revisiting” missional journeys. And in his epistles Paul was revealed to try to revisit churches that he evangelized through the method of the “apostolic parousia”which consisted of Paul's personal visit, dispatching embassies and sending letters(see chap. III). Although there are some opinions of different functions of the “apostolic parousia,” this aimed to practice pastoral care for revisited churches by Paul. Considering these things, it is clear that Paul's main missional strategy did not simply plant churches, but nurtured those churches through continuous pastoral care by revisiting planted churches.
Today's mission strategies of Korean churches are focusing to provide financial aid or build facilities(including church buildings) or manage a short-term mission journey. But Paul teaches today's churches that the mission should also be a pastoral care to those who receive the gospel, not simply investing material support. Keeping this in mind, I suggest, Korean churches should begin practice missional pastoral care according to Paul's suggestions, i.e. continuous visit of mother church to mission field, (joint) ministry through commissioned missionary and exchanges through letter or other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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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바울은“천국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 신자의 처소로서의 하늘에 대한 바울의 이해

저자 : 박장훈 ( Janghoon Park )

발행기관 : 한국개혁신학회 간행물 : 한국개혁신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0-88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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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자신들이 죽으면 지상을 떠나 천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라는 “천국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신자의 궁극적인 거처를 천국이 아닌 갱신된 세상으로서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보는 개혁주의적인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천국신앙”이 바울서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본 논문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천국신앙'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 전제를 규정하고, 그 다음 이 전제들이 바울서신의 지지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천국신앙”의 첫 번째는 전제는, 천국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서 신자가 사후에 즉각적으로 이동하는 곳이고, 땅과는 분리된 공간이라는 것인데 이는 바울서신의 부분적인 지지만 받는다. 바울은 하늘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믿으며, 신자가 사후에 그곳으로 이동한다고는 믿지만 하늘을 땅과 분리된 공간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늘과 땅은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통치권 안에서 하나로 통일 되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은 죽기 전에도 땅에서 살며 하늘에 속한 천상적 삶을 산다. “천국신앙”의 두 번째 전제는, 하늘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도 여전히 땅과는 단절된 영적인 곳으로만 존재하며, 신자는 영원히 그 곳에서 거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는 바울서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승천을 통해 하늘과 땅을 하나의 통치 영역으로 묶으신 그리스도의 초림 사역은 재림 때에 다시 무효화 되지 않고 오히려 완성에 도달한다. 바울의 묘사에 의하면 재림하신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데리고 세상을 떠나 영적인 세계로 떠나시지 않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는 악한 세력들과 사망을 무찔러서 신자에게 부활을 주시고 세상을 갱신하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만물 가운데에 온전해지도록 만드신다. 신자의 궁극적인 처소는 따라서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천국신앙”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Many Christians today believe that they will go to heaven after death and will live there forever. This “heavenly faith” is not congruent with the reformed understanding that believers' eternal dwelling place is the new or renewed heaven and earth rather than an immaterial, transcendental sphere. But might not this “heavenly faith” receive Paul's support? To answer this question, the present article identifies two constitutive beliefs of this “heavenly faith” and tests their validity against Paul's letters. The first constitutive belief of the “heavenly faith” is that heaven is the place where God dwells and a believer is relocated after death, and it is essentially separated from earth. This belief is partially supported by Paul. Paul does believe that God and the enthroned Christ dwells in heaven and that believers are transferred to heaven after death. However, heaven is not separated from earth but is rather combined with it, as a result of Christ's resurrection-ascension that brought heaven and earth together as a unified sphere under Christ's rule. It is for this reason that believers, through their union with Christ, are seated with Christ in heaven even before death while living on earth. The second constitutive belief of the “heavenly faith” is that heaven remains separated from earth even after the return of Christ, and believers will live with Christ forever in heaven away from earth. This belief receives little support from Paul. For Paul, Christ's work of uniting heaven and earth under his rule through his resurrection-ascension reaches consummation rather than reversal at Christ's return. In Paul's description, when Christ returns, rather than taking his people to a heavenly realm away from earth, he will defeat death and all the other evil powers that unlawfully rule the world, and will thereby effect the resurrection of believers and the renewal of the world and bring the entire created world under God's consumate rule. For Paul, therefore, the ultimate dwelling place for believers is not “heaven” but the “new heaven and earth” filled with God's presence and permeated by God's complete rule. In conclusion, then, it is highly difficult to attribute this “heavenly faith” to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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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아프리칸 조상들의 사후 세계에 관한 개혁신학의 관점

저자 : 배춘섭 ( Choonsup Bae )

발행기관 : 한국개혁신학회 간행물 : 한국개혁신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9-129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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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아프리카의 사후 세계관과 가톨릭교회의 교리 간에 신앙적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것을 논의한다. 아프리카 전통종교에서 조상은 '죽은 자들'(the living dead)로서 사후에도 여전히 후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중재자로 인식된다. 비슷하게, 가톨릭교회는 죽은 성도들(Saints)과 살아 있는 성도들 간의 관계를 인정하는 '성도의 교제'(Communion of Saints)의 교리를 주장한다. 그리고 이 교리는 '연옥교리'(Theory of Purgatory)와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학은 아프리카의 사후 세계관과 가톨릭교회의 연옥교리를 비롯해 죽은 성도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 간의 성도의 교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별히 사후 영혼의 중간상태와 관련해, 개혁교회는 안식교(the Seventh-Day Adventist Church)나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이 주장하는 영혼멸절설(Annihilationism)을 비판한다. 특별히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Faith Confession of Faith)와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Second Helvetic Confession)는 영혼멸절설을 포함해 루터의 영혼수면설(Soul-Sleep Doctrine)과 가톨릭교회의 연옥교리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같은 논의는 기독교 선교에 있어 복음전파를 통한 개인의 회심과 문화변혁이 매우 중요하고, 특정 문화를 위해 신학이 상황화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경고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uss the religious commonness and connections among the doctrine between the belief on afterlife in Africa and the doctrine of Catholic Church. In the traditional religion of Africa, ancestors are considered as 'the living dead', who are believed to have influences on the descendants as arbitrators. Like wise, in the belief of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which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Saints, is considered. Such belief reflects the Theory of Purgatory and hints the validity of praying for the dead people. However, in the Reformed Theology, building of any relationship between the living and dead, as believed in both the belief in afterlife in Africa and the Theory of Purgatory, is denied. Specifically, the Reformist Churches criticizes the Annihilationism, argued by the Seventh-Day Adventist Church of the Jehovah's Witnesses, in relation to the intermediate state of the soul after death; The Westminster Faith Confession of Faith in Reformist Church and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both deny Annihilationism and Soul-Sleep Doctrine of Luther as well as the Theory of Purgatory in Catholic Church. Accordingly, discussion on such topic alerts the importance of individual's convincement and cultural reformation through spreading of the Gospel in the Christian missionary works, and also warns about the theological contextualization for certain cul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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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니묄러와 디벨리우스: 고백교회의 동반자, 그리고 다른 길을 걸었던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저자 : 이상은 ( Sangeun Lee )

발행기관 : 한국개혁신학회 간행물 : 한국개혁신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0-166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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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20세기 격동의 역사 속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을 수행했던 두 인물, 마틴 니묄러와 오토 디벨리우스의 사상과 활동을 조명하고 있다. 교회정치가이자 목회자로서 두 인물은 동시대의 바르트나 본회퍼와 같이 탁월한 사상가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아니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독일 현대사의 시대적 도전 속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 나치의 집권, 조국의 분단의 시기를 해쳐 나갔던 인물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두 인물은 저항정신의 산물인 고백교회를 탄생시킨 주역들이었으며, 종전 후 교회를 재건하고 분단 상황 하의 민족을 이끌었던 역사적 증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문은 두 인물의 사상과 실천을 국가와 사회의 관계,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 실천의 모색 속에서의 신학적 성찰과 같은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특히 신학의 향방을 정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주권과 말씀의 신학을 앞세우고자 했으며, 실제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관 하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거 해내고자 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해 역사적-신학적으로 고찰하며 한국교회의 현실모색을 위한 반면교사를 찾고자 시도한다.


This study highlights the thoughts and activities of two figures, Martin Niemöller and Otto Dibelius, who played the official roles of the Church in the turbulent history of the 20th century. These two men were church politicians and pastors, and they were not considered to be outstanding thinkers when compared with contemporary theologians such as Barth and Bonhoeffer. Nevertheless, they are recognized as leaders who had gone through the two World Wars, the rise and fall of the Nazi Regime, and the division of the Fatherland, spanning more than a half-century of German contemporary history. In particular, they were the key figures that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onfessional church, which was born out of the spirit of the resistance. After the end of the war, they reestablished the church and acted as historical witnesses who led the people in the divided nation. This study focuses on the ideas and practices of the two men in term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tate and the society, idealism verses realism, and theo-logical reflection on their faithful practices. With its historical-theo logical review, it seeks to find a model for the solutions for the challenges of the contemporary Korea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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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유전자 편집기술에는 '주기적으로 간격을 띄고 분포하는 짧은 회문구조(回文構造) 반복서열'을 뜻하는 CRISPR-CAS(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 CRISPR Associated Sequences) 기술이 있다. 이 '부위특이적 회문형 핵산분해효소'는 일반적으로 '크리스퍼 가위' 혹은 '유전자 가위'라고도 불린다. 현대 유전자공학이 이 기술을 통해 맞춤형 아기를 생산하는 등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위험한 도전을 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에는 치료와 증강이라는 양면성이 있으며, 그 경계면에 모호성이 있다.
본 논문은 유전ㆍ생명 공학 기술과 그에 대한 생명윤리에 있어서 모호성과 부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부위특이적 결함을 찾아내어 그 부분을 가위로 자르고 치환하는 크리스퍼 가위가 되고자 한다. 여기서 모호성은 치료와 증강 사이의 경계면을 지칭하며, 부당성은 이 기술에 대한 오해와 곡해에서 비롯된 지나친 평가를 지칭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생명윤리 차원에서 다룬 연구는 더러 있었지만, 그 경계선을 기독교 생명윤리적으로 (더 정확히는 개혁주의 생명윤리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한 논문은 찾기 어려웠다.
유전정보를 담은 핵산에서 결함을 정확히 찾아 그것을 가위로 자르고 치환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다룸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국내 연구는 이 기술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핵심적 결함으로 보이는 '치료와 증강 사이의 경계선'을 제대로 찾지도 못했고 다루지도 못했으며 제시하지도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도한 평가가 난무하여 기술 자체에 대해서 왜곡해서 이해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치료 기술의 발전도 막고 있다. 본 논문이 이러한 국내에 다소 팽배한 사회적 결함에 크리스퍼 가위가 되어, 오해와 곡해에서 비롯된 이 기술에 대한 생명윤리 차원에서의 소모적 비판을, 비록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방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철학(및 윤리학)이나 신학에서 유전자 편집(가위) 기술과 관련한 생명윤리를 다룬 선행 연구들이 있다. 이 가운데에는 경계선에 대하여, 개인의 도덕성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 현행법이 부재하다며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 증강도 치료로 보아야 한다고 하는 경계선 무용론,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모라토리엄, 그리고 다소 이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과장하는 지나친 비판론 등이 있다. 하지만 모두 경계선의 모호성 문제를 분명히 인자하고는 있으면서도 '그 경계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제시를 하지 않고, 정부나 개인 혹은 개발자에게 서로 책임을 미루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 어떤 주장도 물리적 경계선으로서 정당성을 갖기 어려움을 보이기 때문에, 영적 경계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영적 경계선은 크리스퍼 가위를 포함한 모든 생명공학 및 의료기술이 그 대상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모든 시행을 예전(liturgy)으로 행함으로써 영적 경계선을 그려나가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숍의 표현처럼, 이 땅에서의 수명 연장을 위한 주검을 향한 의료 기술과 트랜스휴먼적 메타모포시스가 아닌, 육체적 죽음을 너머 영원한 영적 삶을 바라보는 변용(transfiguration)로서의 영적 메타모포시스 (metamorphosis)를 바라본다.


A representative gene editing technique, CRISPR-CAS, which stands fo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CRISPR Associated Sequences, means “short sequence of repetitive structures that are spaced and distributed periodically.” This “site-directed palindromic nucleic acid modifying enzyme” is also commonly called “CRISPR scissors” or “genetic scissors.” Including producing customized babies with this technology, contemporary genetic engineering and science pose dangerous challenges against God's creation order. There are two aspects, healing and enhancement, to this genetic scissors technology. And there is ambiguity to its boundary between those two aspects.
This paper seeks to become a CRISPR scissors that finds a site-specific defect that appears to have ambiguity and illegitimacy in genetic technology and its bioethics, cuts and replaces the part with scissors. Ambiguity refers to the boundary between treatment and enhancement, and illegitimacy indicates an excessive evaluation resulting from misunderstanding and misconstruing of this technique. There have been several studies in South Korea that have dealt with the technology of CRISPR scissors on bio-ethical basis, but it is hard to find any paper that clearly lays out a Christian bio-ethical boundary - to be more specific, reformed bio-ethical border.
In dealing with CRISPR Scissors technology, which eliminates the cause of the disease by precisely finding defects in the nucleic acid containing genetic information and cutting and replacing them with scissors,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domestic research so far has neither found, dealt with, nor presented the “boundary between healing and enhancement.” It is the reason why excessive assessments with misunderstanding on the technology are prevalent and they are preventing the development of therapeutic use of this technology. It is hoped that this paper will be a CRISPER scissors to this somewhat widespread social defects in the country, preventing some, if not all, exhausting critiques of the bioethics on this technology resulting from misunderstandings.
There are precedented studies that have dealt with related to gene editing technology in theology and philosophy including ethics. Among them are claims: a boundary should be left to individual morality, the government is responsible for the absence of current laws, drawing a borderline is useless that any enhancement should be seen as a healing, moratorium that it ought to stop here now, and illegitimate criticisms that are exaggerating the side effects by misconstruing the technology. However, while all are clearly aware of the ambiguity of the boundary, none of them clearly suggest what the boundary should be, and tend to push the responsibilities off to governments, individuals or developers.
Since none of these claims, however, obtains legitimacy as a physical boundary, it has no choice but to draw a spiritual border. This spiritual boundary begins to be drawn with the view of human being, as the “image of God,” with whom bio-medical technologies, including CRISPR scissors, are mainly treating. And by performing all of these technologies as liturgies, the spiritual boundary is actually being drawn. In doing so, we are seeing a spiritual metamorphosis through bio-medical technologies, as Bishop asserts, not as transhuman metamorphosis toward the anticipatory corpse to extend life on the earth, but as a transfiguration that looks beyond the physical death to an eternal spiritua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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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소명에 대한 초기 청교도와 후기 청교도 사상의 연속성

저자 : 김효남 ( Hyonam Kim )

발행기관 : 한국개혁신학회 간행물 : 한국개혁신학 66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9-249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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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유명한 책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산”은 출간된 직후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많은 지지와 비판을 불렀다. 특히 로버트 마이클슨은 “소명에 대한 청교도들의 인식 변화”라는 논문에서 베버가 청교도들 안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고 이로 말미암아 개신교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마이클슨이 특별히 주목했던 것은 바로 초기와 후기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소명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달랐다는 것이다. 마이클슨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첫째, 초기 청교도들과는 달리 후기 청교도들은 일반소명을 특정한 종교적 행위로 국한시키고 개인의 특별소명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려했다. 둘째, 후기 청교도들은 천국에 소망을 둔 초기 청교도들의 하늘의 공리주의를 이 세상에서의 상급도 배제하지 않는 이 세상의 공리주의로 바꾸었다. 셋째, 후기 청교도들이 근면성을 강조했던 이유는 선행이 구원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그들이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그들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넷째, 초기 청교도들과는 달리 후기 청교도들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부를 얻는 것을 정당화했다. 이 논문은 마이클슨의 이 네가지 주장의 오류를 분석하고 논박하면서, 초기 청교들과 후기 청교도들 사이에 소명에 관한 입장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기 청교도들의 사상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용하여 발전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Max Weber's famous book,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has significantly contributed to the study on the rise of capitalism on the one hand; on the other hand, this book has also drawn a lot of debates and criticism. Among the critics, Michaelsen particulary focused on Weber's understanding of the Puritan view on vocation, arguing that Weber failed to detect a substantial change in the idea of vocation between the early and late Puritans so that he could not present the proper relationship of Protestantism, particularly Calvinistic asceticism including Puritanism, with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What Michaelsen paid a special attention to was the difference between the early and the late Puritan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vocation. These are four main changes that were alleged by him to have taken place in the late Puritans mind in relation to the concept of vocation. First of all, unlike the early Puritans, the late Puritans confined general calling to certain religious acts and tried to justify their desire to pursuing personal, early reward through their particular calling. Secondly, contrary to the early Puritans who placed their only hope on both God's grace and their spiritual salvation, the late Puritans changed the heavenly utilitarianism into worldly utilitarianism which does not exclude worldy reward. Thirdly, the late Puritan's emphasis on diligence derived from their belief that good works could somehow enable them to do something toward achieving salvation. Lastly, the late Puritans regarded particular calling as an essential means to get to the heavenly kingdom and believed that the successful result of one's particular calling could be considered to be the evidence of his own salvation, or that of God's favor toward him. This essay will analyze and then refute these arguments by demonstrating that there was no substantial change in their idea of vocation between the early and late Puritans and rather that these changes found in the late Puritans seems to be the consequences produced in the course of the early Puritan's concept of calling being adjusted to the changing situation aroun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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