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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Cino-Korea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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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3)~2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315
한국한시연구
28권0호(2020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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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1여성이 한시로 배필을 구하는 일

저자 : 이종묵 ( Lee Jong-mook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43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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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나 야담에 金台鉉, 鄭麟趾, 趙光祖, 金安國 등 군자의 방에 침입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여성이 미남자에게 먼저 시를 지어 구애하는 이야기도 시화, 야담, 소설에서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이야기의 양상을 살피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책을 잘 읽거나 시를 잘 쓴다는 것은 그 남성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를 알아본 여성이 먼저 시를 지어 보냄으로써 자신도 그에 못하지 않는 문학적 재능과 취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이 시를 지어 마음에 드는 배필을 구하고자 한 것은 고려나 조선에서 있을 수 있는 그럴 듯한 일이었다. 특히 귀족 출신이 아닌 중간 계층과 평민 계층 여성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시에 대한 소양을 키웠고 이런 여성들이 한시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취향에 맞는 배필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또 解語花로 불리는 기녀일 경우 하룻밤의 인연을 이런 방식으로 맺고자 한 것도 드물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조선후기 여성이 한시를 매개로 하여 잠자리 상대를 공모하고 남성이 이에 응하는 음담패설로까지 확대 재생산되었다. 조선시대 여성이 한시를 매개로 하여 남성과 인연을 맺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러한 시각에서 해석해보았다.


There is a story of a woman breaking into a room of soldiers such as Kim Tae-hyun, Jung In-ji, Cho Kwang-jo and Kim An-guk. In addition, a poem is written to a handsome man who reads a book with a resonant voice, and a favorite story appears in poetry, yatam, and novels. This article is intended to reinterpret the meaning of these stories. Reading books or writing poems well means that men have excellent abilities. Thus, it was a plausible story in Goryeo or Joseon that a woman showed that she had the same literary talent and taste by writing poems first, and that she wanted to get a good spouse. In particular, middle-class and common-class women, who are not from noble families, grew knowledge of Chinese poetry based on their economic power, and it would have been a natural phenomenon for these women to seek a good spouse that matches their abilities and tastes. In addition, it seems possible for a giraffe called 解語花(a talkative flower) to have a one-night relationship in this way. Women conspired to sleep with one-time use, and men responded to it, which was expanded and reproduced. I introduced and interpreted the story of a woman in the Joseon Dynasty who had a relationship with a man through Chinese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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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진(徐振), 백준(柏葰) 작품과 조선문화의 표상 -명·청 문단과의 영향을 중심으로-

저자 : 정생화 ( Shenghua Ding ) , 양레이레이 ( Leilei Yang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5-87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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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청사신의 조선 표상(表象)화는 16~17세기 명말, 청초문단의 영향이 매우 지대했다. 이는 16세기 말 명문단에 전해진 조선한시를 시작으로 17세기 청문단에서의 조선문화에 대한 관심과 전파였다. 당시 청나라 민간에서는 조선 사행단의 의복을 보고도 감격해하며 눈물을 짓는 명나라 유민들이 있었는가 하면 조선여성의 한시를 구해 보고자 하는 한림원 학사도 있었다. 이외 강희제의 황실편찬사업에 힘입어 조선에서 채록하여온 조선한시와 당대 한림원 학사들에 의해 재 발굴된 조선한시는 청문단에서 인기를 얻으며 회자되었다. 이는 17세기 중후반 청 문단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당대 민간에서 일어난 신선한 바람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18세기 청사신 서진(徐振)과 19세기 백준(柏葰)이 조선을 표상하는데 있어서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진은 「조선죽지사(朝鮮竹枝詞)」를 통해 조선 한시작가 백광훈과 권필 그리고 '정정공주(婷婷公主)'의 한시 작품을 당대 조선문학의 표상으로 그렸으며 백준은 <평양성회고(平壤城懷古)>시와 「조선죽지사」작품을 통해 조선신화로부터 발전되어온 조선의 유구한 역사를 노래하였다. 또한 해상풍파를 뚫고 명나라 사대부들과의 교분을 나눈 조선 선비 김상헌의 풍류는 '동국풍류'의 표상으로 그려졌으며 신라의 가배와 회소곡은 한가위 세시 풍속으로서 예술적 요소가 다분한 조선문화의 한 표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꾸준히 진행되어온 명·청문단의 조선에 대한 관심과 수용의 연장선상 표상화된 조선문화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문화교류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한국문화요소의 가치와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Representations of Joseon by Qing's envoys of the 18th and 19th centuries were greatly influenced by the literary style of the late 16th and 17th centuries. Starting with the widespread Joseon's Hanshi(漢詩) in the Ming literary circle at the end of 16th century, it later developed into a big interest in the Joseon culture as well as its dissemination in the 17th century. During the Qing Dynasty, there were people who were adherents of Ming Dynasty bursting into tears when seeing the Joseon diplomatic groups, and Bachelor of Arts from the Hanlimwon who wanted to find poems written by Joseon women. In addition, with the help of the codifying works of the Kangxi imperial household, the Joseon's Hanshi, which were collected and recorded in Joseon and which were rediscovered by Bachelor of Arts from the Hanlimwon, became a popular topic in the literary circles in the Qing Dynasty.
This phenomenon had direct influences on and Beakjun, Qing's envoys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on the Joseon representations in the their works. In his work Joseon Jukjisa, Xuzhen portrayed Joseon's Hanshi by Quanbi and Baiguangxun(白光勳) as well as works such as Princess TingTing(婷婷) as Joseon literary representations at that time. Baijun sang the myths and long history of Joseon in Meditation on the past of Pyongyang City(平壤城懷古) and Joseon Jukjisa.
Moreover, Jinshangxian(金尙憲), who interacted with the officials of the Ming Dynasty, not only created the representation of “Dongguk Stream(東國風流)”, but also presented Joseon customs as the Joseon culture of that time through Silla Jia Bei(嘉俳) and HuiSuQu(會蘇曲). All these shows the represented Joseon that is extended from the continuous care and acceptance from Ming and Qing literary circles. Therefore, the study on the Joseon representation in Xuzhen and Baijun's works is significant in terms of the identification of the status of Korean culture as well as the history of cultural exchanges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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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창흡(金昌翕)의 『응재유고(凝齋遺稿)』 비평(批評) 연구(硏究)

저자 : 장유승 ( Jang Yoo-seung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9-121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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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齋遺稿』는 朴泰觀의 詩集이다. 그는 詩로 金昌翕의 극찬을 받았으며, 李秉淵, 鄭歚, 洪世泰, 鄭來僑 등 詩畵로 이름난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했다. 요컨대 김창흡을 追隨하는 白岳詩壇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응재유고』에는 김창흡과 이병연의 비평 27항이 실려 있다. 본고에서는 完本인 국립중앙도서관본을 저본으로 삼아, 김창흡의 평을 토대로 박태관의 시세계의 특징적 면모를 살펴보았다. 김창흡의 비평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두보풍의 호쾌하고 노련한 미감을 칭상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연스럽고 핍진한 묘사에 주목한 것이다. 김창흡의 비평을 통해 그가 추구한 시는 唐詩의 기세와 격조를 갖추면서도 작위적이지 않은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김창흡의 『응재유고』 비평은 그간 추상적인 시론과 비평에 의지한 김창흡의 한시 창작과 비평 연구에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Eungjaeyugo is a collection of Park Taegwan's poems. He was highly praised by Kim Changheup for his poem, and acquainted with the famous people of his time, Lee Byeongyeon, Jeong Seon, Hong Setae. He was a member of the Baekaksidan. Eungjaeyugo contains 27 articles on Kim and Lee's criticism. This thesis examined Park's poem based on Kim's criticism. Kim's criticism can be divided into two categories. One is to praise the old style of poetry. The other one noted the natural and depressive description. The poem pursued by Park was a plain and natural work that was refined and unnatural in the Tang Dynasty. Kim's criticism in Eungjaeyugo provide a turning point in study on Kim's poetry creation and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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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의 시조 한역 양상과 그 의미

저자 : 박영민 ( Park Yeong-mi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3-159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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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의 시조 한역 동기와 양상을 분석한 다음, 18세기 중·후반 시조 한역의 시조사적 의미를 고찰하려 했다. 그의 문집 『동야집』에는 <동조(東調)>라는 제목 아래 한역 시조 64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동조>의 서문에 따르면 그는 본디 180수의 한역 시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시조를 한역한 내적 동력은 무엇인지, 시조의 문학적 가치를 인식한 계기는 무엇인지 묻고자 한 것이다. 게다가 안동 출신인 그는 서울에 올라와 당시 중앙의 풍류 문화를 경험했기에 18세기 중·후반의 시가 문화와 결부하여 김양근의 시조 한역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김양근은 청풍계에 집을 짓고 그 집을 김상용에게 물려준 김영의 11세손이다. 장동 김문의 족친인 그는 유학 생활을 계기로 청풍계에 머물며 당시 서울의 문화를 체험한 듯하다. 아울러 낙론의 종지를 계승한 김원행의 문하에 들어가 천기론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동조>의 서문은 시조의 가치가 천기를 발현하는 데에 있음을 인식한 그의 면모를 드러낸다. 비록 그 곡조를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뒤, 웬만한 가집에 비견할 만큼 많은 수의 시조를 한역하면서 시조에 담긴 진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따라서 김양근은 시조를 한역하여 풍속을 교화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시조의 가치를 알리며 내면의 진실을 좇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동조> 64수의 체재를 검토하면 한역 시조를 여타의 악부와 함께 수록했고 그것을 15항의 주제로 분류했으며 18, 19세기에 걸쳐 가곡창 가집에 활발히 전승된 작품, 특히 장동 김문과 그 주변 인물이나 『청구영언』에 이름이 오른 작가의 작품을 한역한 사실이 발견된다. 이러한 양상은 18세기 중·후반의 문화적 원숙성, 즉 가곡창이 구심이 되어 한시와 악부, 장가 및 단가가 한데 어우러지고 중국 노래와 우리 노래를 구태여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사대부 계층과 중인 계층이 함께 예술 행위에 참여하게 된 문화적 토대 위에 놓여 있음을 고찰했다. 나아가 가곡과 악부의 상관성이 부각된 것은 각자가 지닌 경험과 자질에 따라서 어떤 예술을 즐겨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대두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 보았다.
김양근은 6구체 장단구 형식을 활용하여 시조의 의경과 표현을 재현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조의 가치가 천기를 발현하는 데에 있다고 인식한 김양근이 6구체 장단구 형식을 토대로 시조의 형식과 리듬, 표현과 주제를 재현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굴절도 없는 것은 아니다. 시조에 담긴 진정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김양근이 그 진정에 자신의 삶과 감정을 투사할 때 역자의 존재를 시사하는 표현이 첨가되면서 굴절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김양근이 시조의 진정을 좇으며 한역에 임한 과정은 자신의 진정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김양근의 시조 한역은 시조에 담긴 진정을 향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진정을 노래하는, 예술 행위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의 첫 물음은 시조 한역이 “시가 찬집시대”인 18세기에 도리어 활기를 띠고 “창곡 왕성시대”까지 지속한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동력을 시조 향유의 각 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자기 시대에 대응한 데에서 찾았다. 곧 한편에서 가객 집단이 전승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동안 한편에서 황윤석, 김양근 등의 사대부 계층은 시조 한역을 통해 시조의 진정에 가닿고자 애쓰며 문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18세기 중·후반의 원숙한 문화를 꽃피웠다. 나아가 그들이 짊어진 사명은 음악과 유흥에 경도된 19세기에 한시의 쇄신과 새로운 창작을 바란 신위 등의 문인에게서 다시 발견된다. 비록 시조의 형식과 표현은 사상되었으나 어떻게 해야 진정을 담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의 중심에 시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론된다.
결론적으로 김양근이 시조 한역을 통해 예술 행위에 가담하여 시조에 담긴 진정을 향유하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 것은 18세기 중·후반 시조 문화의 원숙미에 기반한 것이며 문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려 한 당시 사대부 계층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In this paper, the author tried to analyze the motives and patterns of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by Dongya (東埜) Kim Yang-Geun (金養根, 1734~1799), and then analyze the Sijo's historical meaning of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in the middle and late 18th century. In his book of writing, 『Dongya-Jip(東埜集)』, 64 Sijos translated to classical Chinese are contained under the title 「Dongjo(東調)」.
In particular, the preface of 「Dongjo」 reveals his aspect of recognizing that Sijo's value lies in expressing the secret of nature. He presented the view that it would not lack if they could feel it even if they didn't know the tune. He left a trace of striving to deliver the true emotion in Sijo by playing a large number of Sijos comparable to that of song book.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Kim Yang-Geun played Sijo not only to edify customs but also to promote Sijo's value and pursue the truth inside.
On the other hand, when review the listing system of 64 Sijos in 「Dongjo」, Sijos translated into classical Chinese were listed along with other pieces of music, and was classified into the subjects of 15 items. It is also discovered that the works of the artists whose name were listed in 『Cheonggu-Youngeon(靑丘永言)』 were remarked. This aspect shows that the cultural maturity of the mid- and late of the 18th century, that is, Gagok-chang(歌曲唱), and the Chinese poem, music, long-song, and short song harmonized together didn't need to be dis-tinguished between Chinese songs and Korean songs.
It can be said that Kim Yang-Geun tried to reproduce the meaning and expression of Sijo using the 6 lines long and short term format(6句體 長短句) recognizing that Sijo's value lies in expressing the secret of nature. Therefore, it will not be surprising that Kim Yang-Geun reproduced Sijo's form, rhythm, expression, and theme based on the 6 lines long and short term format. However, he had a slight refraction. When Kim Yang-Geun, who tried to convey the true emotion in Sijo, projects his life and emotions to the truth, an expression suggesting a translator's existence was added, and refraction occurred.
The first question in this thesis is where was the driving force that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became active in the 18th century when the “Sijo Collection Era” was “Golden Days of Changgok? In response to this, Kim Yang-Geun's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expanded the Sijo culture in the 18th century, when Sijo's creation and enjoyment were at its heyday. In the 19th century, when Sijo was transformed into Changgok,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was inevitably degraded as a means of verbal translation. As a reaction, it suggests that such translation became a platform for innovation in poetry, a medium for new creation.
In conclusion, Kim Yang-Geun enjoyed the true emotion contained in Sijo and sang his sincerity through the translation of Sijo to classical Chinese, that is, participating in artistic acts reveals the maturity of Sijo culture in the middle and late of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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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공철 연행시 연구

저자 : 안순태 ( An Soon-tae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1-18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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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807년(순조7) 동지사(冬至使) 정사(正使)로 연행한 남공철이 북경에 머물 때 지은 시들을 중심으로 남공철 연행시의 창작 양상을 살핀 것이다. 본고에서는 당시의 보다 구체적인 정황을 기록한 그의 일기체 연행록을 참조, 그가 북경에 머물 때 어떤 상황에서 시작에 임하였으며 그 시들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를 살피고 있다.
남공철이 북경에서 지은 시는 크게 승경(勝景)이나 고적(古跡)을 보고 느낀 감회나 객수(客愁)를 읊은 것, 그리고 청조(淸朝) 인사들과 교유하는 과정에서 수창(酬唱)한 것으로 대별(大別)할 수 있다. 그의 산문에서 회화적인 묘사에 장처(長處)가 있었듯이 남공철은 그의 연행시, 특히 북경의 승경을 두고 읊은 시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고적을 답사하거나 객수(客愁)가 짙을 때에도 시를 지었는데, 이는 주관적 서정을 함축적으로 표출하는 데에 산문보다 시 양식이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남공철은 북경에서 청조 인사들과의 교유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저유인 등 직접 관소에서 만나 필담을 나눈 이들과 수창한 시가 여러 편 전한다. 이들 시는 주로 교유 인물에 대한 평이나 교유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남공철의 연행시는 모두 41제 50수로 그 수가 아주 적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중 절반 이상이 북경 가는 길에 지은 것이고, 이후 여정에서는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근래 남공철의 연행록이 학계에 소개되면서 남공철 연행시가 이런 창작 양상을 보이는 이유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그는 일기로 연행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시는 부득이한 상황, 즉 흥취나 감회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때나 청조 인사와 수창할 때에만 지었던 것이다. 일기체 연행록 서술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산문으로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때에 시를 지어, 남공철에게는 산문과 시가 연행을 기록하는 데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poems written in Beijing by Nam Gong-cheol, who went to Beijing in 1807 as an envoy, Dongjisa Jeongsa 冬至正使. In addition to official events, there were many restrictions on outside access, so he had so much leisure time. Nevertheless, while staying in Beijing for more than a month, Nam Gong-cheol wrote 17 poems, which cannot be said to be that many.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look at Nam Gong-cheol's poems by referring to his Yeonhaengnok, which described more specific situations at the time.
Nam Gong-cheol's poems can be largely distinguished by reciting the impressions felt by seeing the wonderful scenery, old ruins, and reciting in the process of interacting with the people of the Qing Dyna sty. Just as Nam Gong-cheol was good at pictorial depiction in his prose, this characteristic is confirmed in his poems, especially in poems written about the wonderful scenery of Beijing. In addition, works that express the feelings of visiting the old ruins and the homesickness of a traveler are also noticeable. On the other hand, Nam Gong-cheol also worked hard to communicate with the people of the Qing Dynasty in Beijing. In particular, many poems exchanged with those who met in person, such as Chu Yu-ren褚裕仁. These poems are mainly based on the evaluation of the people in them or what happened in the process of meeting.
There are 50 poems created during the traveling Beijing, which cannot be said to be few. However, more than half of them were written on the way to Beijing, and since then, the number became fewer and fewer. In recent years, as Nam Gong-cheol's Yeonhaengnok was introduced to the academic world, it is now possible to estimate the reason why Nam Gong-cheol's poems show such a pattern. In other words, he devoted himself to recording experiences in detail in prose, and poems were created only in unavoidable situations, that is, implicit expressions of emotion or having companionships with Qing Dynast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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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김선(金䥧)의 <주행백수(舟行百首)> 연구

저자 : 강혜선 ( Kang Hyesu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7-218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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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정총서(藫庭叢書)』의 출간으로 담정 그룹 관련 연구가 활발해진 가운데, 김려의 아우인 김선(金䥧)의 시문학 세계도 본격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김선의 다양한 문학 작품 가운데 특별히 <주행백수(舟行百首)>를 주목하였다. 이 작품은 김선이 1797년 강이천(姜彝天)의 옥사가 일어나기 이전 여주를 방문하는 길에 창작된 것으로 유추된다. 당시 김려의 동학이자 매형인 이우신(李友信)과 1801년 순교한 김건순(金建淳)이 여주에 살고 있었는데, 김선은 출사의 갈등을 겪으면서 한강의 수로로 이들을 방문하는 장쾌한 여행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선의 여정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여주에 이르는 한강 수로를 4~5일에 걸쳐 여행하였으며, 특히 월계-양근-여주 여강 일대에서 많은 시를 창작하였다. 오언절구 100수의 장편 연작시 구성을 살펴보면, 첫째 한강 수로의 형세, 특히 위험한 여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의 체험을 생생히 담은 작품들, 둘째 당시 활발하게 펼쳐진 한강의 상업적 수운(輸運)을 묘사한 작품들, 셋째 주행의 낭만과 민풍(民風)을 포착한 작품들, 넷째 진퇴의 고민과 인생의 무상함을 토로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언절구라는 짧고 간결한 형식을 자유롭게 이어나가면서 한강 수로 여행에서 김선은 보고 듣고 느끼는 다양한 체험들을 시작화 하였다. 이런 점에서 <주행백수>는 한강 기행시이면서 한강의 기속시이다.
한강 뱃길의 여행 체험을 절구 형식으로 100수의 연작시로 창작하는 전통은 당나라 전기(錢起)의 <강행무제(江行無題)>를 전례로 삼아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선의 <주행백수>를 비롯해 이후 정약용(丁若鏞)과 신필영(申弼永)의 한강 기행시가 그러한 예이다.


With the publication of 『Damjeong Series(藫庭叢書)』, researches related to the Damjeong group became active. The world of poetry and literature by Kim Ryeo's brother, Kim Seon(金䥧), is also being newly illuminated. Among Kim Seon's various literary works, I particularly paid attention to 100 poems written while riding a boat on the Han River titled “Juhaeng Baeksu(舟行百首)”. It is inferred that this work was created on his way to Yeoju before the major criminal case of Gangicheon(姜彝天) took place in 1797. At that time, Kim Ryeo(金鑢)'s brother-in-law Lee Woo-shin(李友信) and his friend Kim Geon-soon(金建淳), who had been martyred in 1801, were living in Yeoju.
His journey started from Seoul to Yeoju and traveled by boat on the Han River for 4 to 5 days. In particular, he has created many poems in the area of Wolgye(月溪), Yanggeun(楊根), and Yeogang(驪江). The composition of the series of 100 poems is as follows. First, it vividly captures the waterway of the Han River, especially the experience of a boat going up dangerous rapids. Second, it is a refreshing description of the commercial water transport of the Han River that was active at the time. Third, it captures the lives of the people along the Han River and expresses the romance of a boat trip. Fourth, it reveals his own conflict over entering the office and sighes at the impermanence of life. “Juhaeng Baeksu” is travel poems on the Han River and poems of folklore along the Han River.
The tradition of creating a series of 100 poems in the form of o-eonjeolgu(五言絶句) on the Han River waterway seems to have been transformed using Tang poet Jeongi(錢起)'s “Ganghaengmuje(江行無題)”. Examples include Kim Seon's poems and Jung Yak-yong(丁若鏞) and Shin Pil-young(申弼永)'s travel poems on the Han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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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순와(順窩) 안경의(安景禕)의 의식지향(意識指向)과 시(詩)

저자 : 윤재환 ( Yoon Jaehwa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9-24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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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와(順窩) 안경의(安景禕)는 하려(下廬) 황덕길(黃德吉)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성호학파 순암계열의 정립에 상당한 역할을 하여 안정복과 황덕길의 문집 간행에 참여하였고, 이들의 문집에 서문과 발문을 남겼다. 그는 6권 2책의 소략한 문집을 남겼지만, 자신의 문집 곳곳에서 안정복과 황덕길에 대한 존모(尊慕)의 뜻을 드러냈다. 그의 문집 구성과 편차, 내용상의 특징적인 요소들 역시 안정복이나 황덕길의 문집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가 안정복과 황덕길에게서 받은 영향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경의의 글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유가적 도덕세계를 추구하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의식이 지향하는 세계는 유가적(儒家的) 사유세계(思惟世界)이고, 그 세계에 나아가는 방법은 유가적(儒家的) 수양(修養)을 위한 보편적인 방법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경의의 글은 그의 의식세계와 지향점의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부분만 보여준다. 그가 익혔던 학문의 내용이나 수준, 그가 도달한 경지나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집 속의 글만으로 볼 때 안경의는 기본에 충실한, 본질에 주력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학문적 사유의 폭이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확장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은 그의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그의 시에는 다양한 층위의 의식세계가 담겨있는데, 그 의식세계의 본질적인 지향점은 유가적 도덕세계와 근본으로의 회귀이다. 하지만 그 지향점이 너무나 범박하고 피상적이라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있다. 물론 이런 모습을 그가 유학(儒學)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추구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본질에 다가서는 방법이나 본질에 대한 사고(思考)와 해명이 관념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을 안경의의 학문적 수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황덕길의 문하 제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명망을 지녀 이후 성호학파 순암계열의 정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단언하기도 쉽지 않다.
안경의의 시문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양상들의 이유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보다 더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런 양상이 안경의만의 특성인지 아니면 시대나 학파의 경향인지, 또 이런 양상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Sunwa Angyeongui is one of the pupils of Haryeo Hwangdeokgil. H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establishing the Seongho School's Sunam fraction and participated in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of Anjeongbok and Hwangdeokgil, and left prefaces and epilogue to their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He left a literary collection of six parts two books, and expressed his respect for Anjeongbok and Hwangdeokgil in hi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Hi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deviations, and characteristic factors of contents are also quite similar to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of Anjeongbok or Hwangdeokgil, so it can be seen that the influence he received from Anjeongbok and Hwangdeokgil is big.
However, if you look at Angyeongui's writings, most of them reveal their mental world that pursues the Confucian moral world. In this regard, it can be seen that the world that his consciousness is aiming for is a Confucian thinking, and the way to go to that world was a universal methodology for Confucian culture. But Angyeongui's writings show only the most essential and basic parts of his conscious world and orientation. He did not mention the contents or levels of the discipline he had learned, or the status or process he had reached. In the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alone, Angyeongui can be said to be a person who focused on the essence faithful to the basics, but on the other hand, it can be evaluated that the width of academic thought did not expand philosophically deeply.
This is also seen in his poems. His poems contain a variety of layers of con-sciousness, and the essential orientation of the consciousness world is the return to the Confucian moral world and the essential. But there is a question in that the orientation is so normal and superficial. Of course, this may be said to be natural because he pursued the most essential aspect of confucianism, but there are some questions about that the way how to approach the essence, how to think about the essence, and how to explain it does not exceed the a fixed idea level. This may be attributed to the academic level of Angyeongui, but it is not easy to assert because he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establishment of the Seongho School's Sunam faction and he having a big reputation among the disciples of Hwangdeokgil.
In order to explain the reasons for these aspects seen in the poems and writing of Angyeongui, a deeper review should be conducted in the future. Especially, it is necessary to explore whether these aspects are the characteristics of Angyeongui alone or the tendency of the times or schools, and why these aspects have emerged.

KCI등재

8『천재 시인 김삿갓의 문학적 유산』에 수록된 김삿갓 한시

저자 : 구본현 ( Gu Bon-hyeon )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 간행물 : 한국한시연구 2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9-283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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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알려진 김삿갓의 한시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이응수가 본격적으로 수집·정리하여 간행한 세 종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김삿갓이 대중적 인기를 얻자 김삿갓의 새로운 작품들이 속속 발굴되었으나 지금까지의 김삿갓 연구는 주로 이응수의 성과를 대상으로 삼아 진행되었다.
1992년에 출간된 『천재 시인 김삿갓의 문학적 유산』은 이응수의 시집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신출 자료를 수록하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자료의 가치를 검토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존 자료와 중복되는 것이 실려 있는가 하면 오탈자가 지나치게 많아 진위를 가리고 자구를 교감하는 작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료로서의 미비함이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유산』은 이응수의 시집과 달리 전국적인 규모의 제보를 통해 이루어진 성과라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김삿갓 한시의 정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유산』에 수록된 작품을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유산』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가운데 김삿갓 한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를 선별하여 고찰하였다.
김삿갓은 근체시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파격시와 우리말을 활용한 육담풍월로 유명하다. 『유산』에는 이러한 작품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인정세태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는 작품, 사회 비판과 애민 의식에서 비롯한 해학과 풍자가 중심인 작품, 주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기발한 표현이 드러나는 작품 등도 김삿갓 문학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Most of the currently known Sino-Korean poetry by Gim Sat-gat[김삿갓, 金笠] are from oral traditions. Gim's works were collected and organized in earnest by Li Eung-su[李應洙]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achievements were recorded in three collections of poetry edited by Li, and the studies on Gim so far have been mainly focused on the achievements of Li.
Later, as Gim gained popularity, new works of Gim were discovered one after another. Among them, Literary Heritage of Genius Poet Gim Sat-gat, published in 1992, contains the most new materials. Nevertheless, these materials has not been noticed for review so far. Because there were overlaps with the existing materials, and because there were too many typos and missing letters, it was difficult to determine the authenticity and correct the mistakes.
Despite its problems and limits as a material, “Heritage” is characterized as an achievement made through reports on a nationwide scale, unlike Li's collections. Therefore, in order to prepare the original text of Gim's works in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works contained in “Heritage”. It is the purpose of this article to consider Gim's works introduced for the first time in “Heritage”, especially that show the characteristics of Gim's literature.
Gim is famous for his unprecedented poems that intentionally destroyed the formality of poetry, as well as the yukdampungwol[肉談風月] created by mixing Korean language with Chinese language in a single poem. Many of these works are included in the “Heritage”. In addition, it is worth reviewing works that show outstanding interest in the social situation and people's life, works that reveal humor and satire from social criticism and a sense of affection, and works that reveal a new perception of surrounding o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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