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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비평 update

The Critical Review of Religion and Culture

  •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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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739-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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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2)~36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39
종교문화비평
36권0호(2019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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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근대성의 이면(裏面)'으로서의 점복, 그리고 그 너머

저자 : 장석만 ( Jang Sukman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4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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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성 정착 이전과 이후에 점복이 지닌 위치와 성격이 다르게 된다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한국의 경우를 논의하고 있다. 한국에서 근대성이 자리 잡는 시기를 19세기 후반 이후로 보고, 그 이전과 이후에 점복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조명한다. 조선시대에 대한 검토는 16세기에 활동했던 이문건과 이순신이 남긴 문헌을 통해 살펴본다. 전시나 평시를 막론하고 점복은 그들 삶의 한 부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부의 상황은 윤치호와 이해조를 통해 검토하며, 1930년대~40년대의 분위기는 잡지와 신문 기사를 통해 살핀다. 조선 시대와 20세기 이후 시대의 기본적 차이점은 점복에 대한 용인(容認)적 태도가 사라지고,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배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 변화의 밑바탕에는 근대성 체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는 과학이 점복과 다른 존재론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 점복은 기본적 필요조건으로 인간과 인간 외 사물 혹은 인간 밖의 존재 영역 사이에 긴밀한 연속성을 상정한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점복은 성립할 수 없다. 점복은 점을 치는 인간과 인간 밖의 존재 영역 사이에 연결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반면 근대 과학적 세계관은 두 영역 사이에 단절을 전제로 한다. 근대적 세계관이 가장 근저에 깔고 있는 것이 주체-객체, 인간-자연의 관계 설정이다. 근대적 세계관을 추동하는 진리관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 사이는 분리되어 있고 불연속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점복과 근대 과학적 세계관 사이에는 화해의 접점이 없다. 점복과 과학은 전혀 다른 존재론적 전제 아래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관점을 당연시한다면 다른 쪽을 본다면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과학의 이면” 혹은 “과학의 타자”가 바로 점복이다. 한마디로 점복은 “근대성의 타자”인 것이다. 홀브라드의 연구가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홀브라드는 그동안 지배했던 재현적 진리관이 아니라, '움직이는 진리(Truth in Motion)'의 관점에서 점복의 진리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한국의 맥락에서 이런 새로운 시도가 좀 더 검토가 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런 새로운 관점의 등장을 신자유주의 적 수탈체제가 근대성 체제를 근본적으로 동요시키고 있음에서 이해한다. 그동안 점복의 효능을 후퇴시킬 수 있었던 확률의 사상적 제도적 기반이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This paper recognizes that the social significance and location of divination were fundamentally changed after the establishment of modernity. Based on the recognition, this paper chooses some of the historical documents of Korean society from 16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and discusses them. Both diaries by Yi Sunshin(1545~1598) and Yi Mungeon(1494~1567), who belonged to the traditional ruling class are examined. Irrespective of ordinary times and war times, the divination was part of their lives. Discussing the Yun Chiho(1866~1945)'s diary and Yi Haejo(1869~1927)'s 'New Novel', the paper finds the changing characteristics of divin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popular magazines and newspapers in the colonial period of 1930s~1940s are also examined. The fundamental difference between Jeseon dynasty period and modern times in the 20th century is that the tolerant attitudes towards divination disappeared and the exclusive and dismissive views became dominant. The emergence of the ontological premise of science lies beneath this difference. Divination presumes the close relationships between human and non-human realms, and the continuity of human existence with the beyond of the human world. Without this prerequisite, divination could not emerge. However, the premise of modern science is the rupture of the continuity between two realms. In that sense, the two systems, divination and modern science are incompatible with each other. Divination is the other of modern science. The truth of divination can't be recognized from the scientific point of view. In this respect, Holbraad's study needs to be considered to rethink of divination. Holbraad tries to find the possible truth of divination in terms of 'truth in motion,' not in terms of representational truth.
This paper claims that the new perspective to study divination like Holbraad needs to be more examined in Korean context, and the urge to study divination in different direction signifies a symptom of the disturbance of modernity caused by the neoliberal system of exploitation. Under the neoliberalism, the ideological and institutional foundation of probability that weakened and kept losing ground the efficacy of divination are shaken and become uns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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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 점술의 사유와 이미지 사유

저자 : 최화선 ( Choe Hwa Sun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8-73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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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미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가 192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하고 있던 <이미지아틀라스 므네모쉬네(이하 <므네모쉬네>)>에는 1000장에 가까운, 인류 역사의 수많은 이미지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이미지를 통한 사유'라는 바르부르크의 독특한 관심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작업의 첫번째 패널에는 뜻밖에도 고대 바빌로니아와 에트루리아의 점술판이 등장한다. <므네모쉬네>를 시작하는 이미지들은, 하늘의 별과 동물의 내장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인간이 이질적인 외부세계의 실재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친밀하고 비밀스러운 상응관계, 유비관계”를 포착하는 순간 종교적 사유와 예술적 행위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바르부르크의 이미지 사유에 대한 논의와 여기서 감지되는 인간의 상상력 및 상상력을 통한 지식에 대한 진지한 논의 안에서도 점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혹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다뤄졌다. 점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종교/점술/주술 구분의 모호함 및 이로 인한 편견들, 고대사의 많은 예들에서 드러나는 점술의 정치적 이용, 서양 고대 점술론을 검토할 때 흔히 적용되는 이성과 비이성의 이분법적 맥락에서 기인한다.
최근에 와서는 기존 점술 논의의 틀에서 벗어나, 점술의 사유를 새로운 방식으로 고찰해보려는 노력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의식하며 이글에서는 종교와 예술을 가로지르는 상상력을 중심에 놓고 점술의 사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므네모쉬네> 속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의 양의 간, 에트루리아인들의 소위 '피아첸차의 간' 모형에서부터, 플라톤과 키케로의 점술에 대한 논의, 그리고 한국의 동시대 아티스트 임영주의 작품까지 아우르는 이 글은 이질적인 시대와 지역, 분야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직관에 의한 또다른 점술적 사유, 이미지 사유의 몽타주가 될 것이다.


In the Mnemosyne Atlas, on which German art historian Aby Warburg was working until his death in 1929, nearly a thousand images of human history are arranged side by side across time and space. The first panel of this work unexpectedly shows images used in ancient Babylonian and Etruscan divination. These images insinuate that both religious thinking and artistic production started when human beings, who are situated somewhere between upward sidereal and downward visceral, began to apprehend the “intimate and secret relations of things, correspondences and analogies” among dissimilar things in the world.
However, in the discussion of Warburg's image science, his interest in divination and human imagination that connects the most disparate things together has been treated as suspicious or pseudo-religious. Apart from the lively discussions on the image-thought opened up by the Mnemosyne Atlas, Warburg's interest in ancient divination has not received much attention from scholars of religious studies. This lack of attention is related to the negative perception of divination based on the ambiguity of the divisions of religion / divination / magic, the prejudices against divination, the political use of divination in many examples of ancient history, and the dichotomy of reason and irrationality. In recent years, attempts to explore divination-thought in a new way have been undertaken in several areas. In this essay, I examine divination-thought while focusing on the imagination of religion and the arts, especially with the helpful insights of French art historian Georges Didihuberman. With examples from the clay model of a sheep'sliver in ancient Babylonian divination and the Etruscan “Piacenza's liver,” the discussions about divination in Plato, and the works of contemporary Korean artist Youngzoo Im, I offer another montage of divination-thought and imagethought which cuts across time, space, and discipline via imagination and intu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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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복과 한국인의 삶

저자 : 이용범 ( Yi Yong Bhum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4-104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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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인의 삶에서 차지하는 점복의 위상을 파악하기 위해 점복의 실천 계기, 점복의 방식, 점복의 실천 주체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행해진 다양한 점복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점복은 한국인의 삶의 거의 모든 영역과 연관되어 행해지며, 어떤 개인이나 국가, 또는 특수한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나 일상적으로 행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점복은 한국인의 삶에서 일상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점복은 삶의 다양한 측면과 연관되어 정기적으로 또는 필요에 따라 실행되었고, 이는 어느 한 시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점복은 한국인의 삶의 구조적 요소의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점복을 미신으로 파악하는 태도는 비현실적이다.
고대에서 현재까지 오랜 기간 점복이 한국인의 삶에서 일상문화의 하나로 지속되어 온 배경으로, 이 글은 점복이 인간 삶의 일반적 조건인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점을 들었다. 또한 점복에서 두드러진 미래에 대한 관심은 미래를 미리 파악함으로써 미래의 삶을 원하는 모습으로 구성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점복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수동적이고 숙명론적인 인생관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듯 점복이 한국인의 삶에서 일상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고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점복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점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런 판단에서 이 글은 한국인의 삶에서 점복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한국 사회의 점복에 대한 연구는 점복이 한국인의 삶에서 차지해 온 실제 위상과 역할에 비할 때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동안 점복의 역사, 점복의 유형과 방식, 전문 점복자, 점복의 실태 등을 중심으로 점복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다. 특히 점복의 유형과 방식 및 전문 점복자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뤄왔다. 반면 한국인의 삶에서 나타난 점복의 위상과 역할, 의미 등에 대한 연구는 미미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기존 점복 연구의 빈자리를 채우는 의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This paper is intended to examine various divination practices in Korea, focused on the occasions when and how the divination practices performed and by agents they have been carried out in daily life of Korean. As a result of this inquiry the divination has been commonly practiced, disregard of any particular sectors of Korean daily life. Everyone has ordinarily practiced this divination, not limited to an individual and to the state, or any special social groups.
This divination has been periodically practiced and has been performed when needed in relation with various aspects of Korean life. And it is not practiced in a certain period of time but has been practiced through the Korean history over all. All these accounts being considered, the divination is a latent element of Korean life structure. Therefore, this historical facts of the divination practices cannot be denied in Korean daily life and it is unrealistic that we pejoratively condemn the divination to be one of the superstitions.
The function of the divination rather works as a means of overcoming the uncertainty, that is a general condition of human life. And it helps to establish one's own independent life. In this paper I tried to expose that the divination contribute to a positive life stance for constructing one's future life through anticipating one's future. So divination is far from the passive and predetermined life view, simply accepting one's own given destiny.
The reasonable assessments such as I pointed out above have not been fully explored yet in the divination studies. Only negative aspects of divination has been dominantly perceived in Korean society. The dealings with divination have not been sufficiently treated in terms of its status and roles in reference to Korean life. As for the divination studies, especially the typology, the methodology of divination, and the divination experts are major subjects of the divination studies. But the studies on the status, the roles, and the meanings of divination in the context of and/or in reference to Korean life has been slightly dealt. Form this evaluations I hope that this paper can contribute to a filling of some missing parts in the divination studi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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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현대 한국인들이 불교와 점복의 인접성을 상정하지만 사실상 점복에 대한 불교의 근본적인 입장은 '공(空)에 대한 이해로부터 행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익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이후 불교는 동아시아의 민속신앙을 받아들이며 대중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점복의 기술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마침내 《점찰경(占察經)》이라는 위경과 그것을 근거로 한 '점찰법(占察法)'이라는 수행방식이 고안되었다. 점찰법은 점괘를 뽑아 그 의미를 알아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점복의 양식을 띄지만, 《점찰경》에서는 점복 행위와 그 점괘의 의미를 개인의 업보에 대한 해석으로 파악하고 나아가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참회와 수행을 권장한다. 이는 불교가 타문화의 대중적 신행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불교적으로 재해석하고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점찰법은 불교에서 일종의 방편(方便)으로 인식되었고, 일반적으로 방편은 불교의 교리 체계 속에서 낮은 위계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점찰경》과 점찰법은 점복을 방편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변용하여 수용하면서도, 그 수행 방식과 목적을 설명하는 데에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팽팽히 끌어들임으로써 방편이 수단이면서도 목적일 수 있는 길항적이면서도 회통적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The divination performances have long been popular in Korea and intimately related with the Buddhist religious practices in daily life. The Buddhist divination if possible at all is not useful for understanding basic teachings of Buddhist doctrine because this divination practice is not grounded on the Sunyata(空) doctrine. But the Mahayana Buddhism, when deeply spread to Chinese soil, has been accommodated itself with the Chinese folk religions, and exerted to be popularized among the commoners. As one of those folkloric effects was brought in and the divination skills were accepted and finally a forged Buddhist text, Sutra of Divination(Jeomchalgyeong, 占察經), was established in Chinese Buddhism. The methods or skills of how to perform divination are called 'Jeomchal-beob(占察法)', whose theories and guidelines are strictly based on the Buddhist text of Sutra of Divination. The Jeomchal-beob seems to be the typical divination practices in Buddhism. Whoever want to do divination firstly picks a sign and ascertains its divinatory meanings in it, the way how to interpret these meanings and accept them as one's destinations are totally at the disposal of the Buddhist doctrinal theories. The Sutra of Divination interprets this divinatory sign as the result of one's own karma(業) and advises to do his/her repentances and self-disciplines accordingly.
This Buddhist interpretations of divination are creative while Buddhism in general has adopted the local cultures and adjusted itself into enhancing them into universal features of Buddhism. Jeomchal-beob, a kind of upaya(方便), has usually been treated as a low status in the Buddhist doctrinal system and uniquely accepted as a form of the East-Asian divination. One of the major Buddhist doctrines of repentance and self-discipline of Karma has been adjusted and transformed into Jeomchal-beob. So Buddhist divination of Jeomchal-beob has the dual interpretations that upaya can be retained as both the means and the goal, and the antagonistic against each other as well as the harmonious in favor of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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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교에 있어서 점복의 자리

저자 : 김지현 ( Kim Ji Hyun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4-181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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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복'은 문자의 시작과 함께 발견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종교적 실천으로 '도가'나 '도교'의 성립 이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 근대적 이성의 빛에 비추어지면 점복도 도교도 모두 '미신'으로 분류되지만, 점술은 고대 중국에서 국가 및 공동체의 공식적인 의사 결정 방식으로서 중시되었고 천문·역법·지리와 관련되어 방대한 학술 체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중국의 전통 학술 분류체계는 점복을 도교와는 구별된 항목으로 분류해 왔다.
도교와 점복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면, 도교의 초석이 되는 노자의 사상은 점복에 대해 무관심했으며, 5세기 이래 교단 조직을 갖추기 시작한 도교는 점술에 대해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며 점술 및 의술의 실천을 모두 도교적 실천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 역사서는 역대 왕조에서 점술에 탁월하며 왕조의 운명을 예견한 도사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도교 의례 및 수행 매뉴얼 속에는 점술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 평신도의 역할이 확장되는 송대 이후 약 13세기 전후로 도교 사원에서 신도들이 일상생활에 대해 신의 뜻을 점치는 행위가 유행하면서 점복은 어떤 의미에서 도교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본 논문은 도교사 속에서 차지하는 점복의 위상을 개괄하고 도교의 의례적 실천이 어떻게 점술을 대체하고자 했으며, 동시에 어떤 지점에서 요청되고 수용되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행위의 결정이 요청되는 상황 속에서 의심의 해소 및 의사 결정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여 점복의 자리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점복이 가진 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대해 환기해보고자 한다.


The bu 卜 and the zhan 占 are the oldest religious practice in China, being found with the beginning of Chinese writing, that have been developed into various arts of divination long before the establishment of Daoism. Divination played an crucial role as an official decision-making method of the states in ancient China and has established an expert knowledge system related to Chinese astronomy, calender-making, geology, etc. The traditional Chinese classification system has differentiated it from Daoism.
Inquiries of the Daoist attitude toward divination show us that the thought of Laozi, a cornerstone of Daoism, was indifferent to the divination; the earliest official stance of Daoism as an organized religious institution since the fifth century severely criticized and excluded all the mantic practices, trying to replace it with Daoist rituals and practices. However, on the other hand, Chinese history recorded the outstanding Daoist masters who were the expert in astrology and predicted the destiny of Dynasties; Daoism incorporated some mantic arts in its rituals and manuals of practice. Since around the thirteenth century, it became Daoist daily life that laypeople consult with divination by oracle slip (lingqian 靈籤) for their personal and urgent concerns. In this sense, divination became the daily scene of Daoism.
This paper outlines the locus of divination in Daoism, through exploring how the Daoist practice replaced the mantic arts, and at the same time where the divination has rooted in the Daoist practices. This research pays special attention to how the divination and the mantic practices performed among the various strata of people (ancient Kings, Daoist masters, and laypeople), faced to the undissolved doubts and the decision-making situations that one cannot avoid for the betterment of the future. Drawing on these cases of Daoism and divination, the study proposes to think a more general feature of divination as the art of choosing time and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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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화서훈》의 언어론과 점복

저자 : 윤조철 ( Yun Jo Cheol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82-211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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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일본 에도시대의 사상사는 언어론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 시대에 언어론은 사상에 영감을 부여했으며 역으로 사상은 언어론으로 수렴되었다. 자국의 고대사가 외래의 한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 문자와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당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동시에 자극했다. 언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국학(國學)에서 정밀하게 전개된 까닭에 일본어와 관련된 분야의 연구사에서는 국학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지만, 본고는 국학 이전 단계의 언어론에 관심을 갖는다.
이 글에서는 언어론이라는 시각에서 이루마가와 시게쓰네의 《대화서훈》을 검토했다. 이 책이 출판된 18세기 초 근세 일본의 사상계는 이른바 '언어론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 시게쓰네가 속해 있던 스이카 신도파에서도 일본어 연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학파적 배경 속에서 《대화서훈》이 출현했다.
이어서 《대화서훈》의 신대문자론에 주목하여 역대의 주요 자료들을 개관하고 시게쓰네와 관련되는 한에서 18세기 전반까지의 신대문자론을 살펴보았다. 초기 신대문자론에서도 신대문자와 점복을 결부시키는 관점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문화를 의식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추정하였다. 그러다가 스이카 신도파의 인물인 도모베 야스타카에 의해 오십음 배열의 신대문자 실물이 제시됨으로써 신대문자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한편 근세에 들어 중국 음운서인 《운경》 관련 서적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배경에는 이 책이 성명 판단을 위한 점복서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신대문자의 점복기원론과 《운경》을 이용한 성명 판단은 《대화서훈》이 놓인 시대에서의 언어론과 점복의 결합을 느슨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다.
《대화서훈》은 언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중국 문화와의 거리를 가늠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상(像)을 형성해 갔던 일본 근세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점복 또한 당대의 언어론 및 언어현상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존재하면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In a sense, the history of thought of the Edo period in Japan was also the history of the theory of language. The fact that their ancient history was written in the Chinese script, and the perception that the letters and words did not coincide, bothered and at the same time gave stimulus to the people of the Edo period.
This article examines Irumagawa Shigetsune's manuscript Yamatoshokun from a linguistic point of view. In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when the manuscript was published, the ideology of Japan was facing a so-called “linguistics situation,” while the Suika Shinto School of thought, to which Shigetsune belonged, was continuing to pay attention to Japanese studies. It was in this academic atmosphere that the Yamatoshokun was written.
Subsequently, noting that the Yamatoshokun discussed Jindai moji (ancient Japanese script), we have reviewed major sources and theories about Jindai moji up to the first half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the early theories, the perspective that explicitly linked Jindai moji and divination was unearthed, which may be traced back to the Japanese awareness of the Chinese culture at the time. Thereafter, theories that followed was by Tomobe Yasutaka, who was from the Suika Shinto school of thought, presented the object of Jindai moji, which is similar to the Japanese syllabary system.
On the other hand, we point out that the context of the wide distribution of texts related to the Chinese phonological text Yunjing was because it was used as a diviner's manual for fortune telling using the writing or pronunciation of a person's name. The claim that Jindai moji originated from the divination tradition and the fact that Yunjing was used in the divination shows the connection between theory and divination in the era of the Yamatoshokun.
The Yamatoshokun shows an aspect of the Edo period, in which a reflection on language was used to gauge the distance from the Chinese culture and to form a “self” image in the process. On the other hand, the divination has also existed and cast a shadow not far from the language theory of tha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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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근세 일본의 기근 사자와 지장신앙: 1 732~33년의 교호 대기근과 우에닌지조(飢人地藏)

저자 : 박병도 ( Park Byoung Do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12-254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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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세 일본의 기근 재해 중 하나인 교호 대기근(1732~33)으로 인한 기근 사자의 발생에서부터 장례와 매장 등의 사자처리 그리고 위령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고찰하며 특히 기근 사자가 양적으로 대량이며, 질적으로 신원불명인 점에 주목하였다. 교호 대기근에 의한 희생자는 기한(飢寒)과 역병으로 주로 발생하여 후쿠오카번에서만 6~7만 명, 일본 전체적으로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도시부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지만 이들 대다수는 이동 중에 또는 도시에서 구걸 중에 죽고 만다. 신원이 확인되는 개별 사자들은 소속 사원에서 장례와 매장을 담당했지만 기근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상황 속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더욱 큰 문제는 대량으로 발생하는 신원불명의 사자에 있었다. 이들은 번의 명령에 따라 히닌(非人)들이 집단매장을 했고 번의 대표사원이나 제종파의 사원들에서 위령의례를 행하였다. 이는 소속사원과 소속종파에 의해 적절하게 장례와 매장을 치르지 못하고 집단매장된 사자들의 종파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한편 민간에서의 기근 사자의 처리와 위령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데 본 연구에서는 《우에닌지조 이야기》라는 자료 속의 지장상과 기근 공양탑의 조사내용을 이용하여 도시부 이외에서도 마을 단위로 기근 사자의 집단매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의 묘비로서 '우에닌지조'라는 지장상이 세워졌으며 이후 우에닌지조마츠리라는 의례화가 나타났음을 확인했다. 본 연구에서는 기근 사자위령으로서 지장신앙이 등장하는 배경으로서 두 가지 측면을 지적했다. 하나는 일본 고대, 중세를 거쳐 근세에 와서 민속적 '지조신앙'으로 발전하는 일본 지장신앙의 계보 속에서의 연속성이며, 다른 하나는 근세 사단관계의 한계로 인해 재해와 같은 비상시에 발생하는 대량의 신원불명 사자를 제대로 처리하고 위령하지 못하는 근세적 특수성이다. 사자의 구제자로서의 지장의 오래된 영험과 함께 근세 민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지장신앙이 우에닌지조 등장의 한 배경이라면, 근세 사단제도의 한계로 집단매장된 신원불명의 사자에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 민간에서 종파성을 뛰어넘은 민속신앙화된 '지조'가 등장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The Great Famine of Kyoho lasted from 1732 to 1733. It is estimated that this disastrous famine costs more than 200,000 deaths toll only in the western area of Japan.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way how the disaster victims were dealt with and commemorated, particularly focused on the unidentified mass death funerals.
According to the official government records and the collections of the personal records about the famine, there happened to be the mass burials of the unknown victims and the ritual performances for the commemorations by the Buddhist temples following to the government's guides and orders. It was not easy to perform the Buddhist burial rituals according to the sectarian formats in this massive disaster. That is why representative temples of the government, and all Buddhist sects of temples performed spiritual commemorations.
On the other hand, the commoners also conducted the mass burials and performed the spiritual commemorations for the deaths. I tried to explain how these burials and commemorations had been performed by way of analyzing the inscriptions of the famine monuments and the Jizo(Kstigarbha) statues. The Uenin Jizo(飢人地藏), Jizo statues, particularly set for the unidentified famine deaths are so important, and their rituals in the area of Fukuoka are meaningful. I suggest two reasons how and why the faith in Uenin Jizo have been established: one is derived from the long history of faith in Kstigarbha in Japan, and the other one is a special religious situation in early modern Japan that the funeral commemorations were to be performed by the Buddhist temples. The commoners had been usually belonged to one of the selected Buddhist temples (Jidan system). In massive famine disasters, the unidentified deaths wouldn't be properly handled under the Jidan system. It was practical to use the already established Jizo faith in the people's minds to overcome the sectarian boundaries of Buddhist burial rituals on the deaths. In these two grounds the Uenin Jizo stands out in Fukuoka area.

KCI등재

8화장, 동원된 '문명화'의 증거: 식민지기 화장률 증가의 해석

저자 : 정일영 ( Jeong Il Yeong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55-302 (4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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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조선총독부가 <墓地火葬場埋葬及火葬取締規則>을 공포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장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던 화장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 큰 변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이제 화장이 합법이 된 것이다. 이 규칙의 제정은 단순히 화장의 도입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의 통계나 신문 기사 등을 살펴보면 조선인의 화장이 상당 수준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 화장 증가 현상을 살펴보되, 특히 화장률 증가가 당시에 어떻게 해석되고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화장률 증가에는 여러가지 외부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화장률 증가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들어보자면, <묘지규칙>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제정, 도시와 시골의 지역차, 전염병 발생, 묘지 이전, 각 개인의 경제적 사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화장률 증가는 문명화의 증거로 여겨졌다. 이것은 일제 당국의 해석만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이나 언론의 반응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비록 당시에 화장이 속도, 효율의 맥락에서 언급되었다고 해도, 화장률과 문명화는 당연히 논리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화장률 증가가 식민지의 문명화로 의심의 여지없이 해석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문명화에 대한 강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 화장을 둘러싸고 식민지 운영에 죽음을 이용하려는 식민자의 의도가 반영되기도 했다. 일제 당국과 제국주의자들은 죽음을 직접, 간접적으로 이용하려했다. 조선인에게 화장이나 가족묘 등의 일본식 장법을 권유하여 '내선일체'에 박차를 가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식 장법이 문명화된 것이라는 논리가 깔려있었다. 일제 식민지기 장법을 둘러싼 이러한 일련의 현상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였던 근대의 이면에 얼마나 허구적인 논리와 또 다른 의도가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In 1912, when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promulgated the < the Regulation of Cemetery >, a change funeral method of colonial Korea began. A major change, in particular, was the introduction of cremation, which had previously been strictly prohibited. It was not just the introduction of cremation, but the statistics and newspaper articles of the time indicate that cremations of Korean have increased. In this paper, I will look into the increasing phenomenon of cremation, especially how the increase in cremation rate was interpreted at that time.
It is likely that there was a combination of external factors in increasing the cremation rate. Regional differences in urban and rural areas, outbreaks of epidemics, and relocation of graveyards are the very external factors. Interestingly, however, the increase in cremation rates was seen as evidence of civilization. This was a common phenomenon not only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Japanese authorities but also in the reaction of Korean intellectuals and the media. Cremation and civilization are not logically correlated. Still, the fact that the increase in cremation was undoubtedly interpreted as the civilization of the colony shows how intense the obsession with civilization was at that time.
On the other hand, the colonizers tried to take advantage of death in colonial rule. They tried to speed up the 'Naisen Ittai(Integration of Japan and Korea)' by encouraging the Korean people to use the Japanese style of funeral method. Looking at the phenomenons surrounding the cremation, we can find how illogical logic and other intentions were working behind the modernity, which has been an irresistible belief system.

KCI등재

9북미 심층생태학의 전개와 특성: 생 태학과 종교/영성의 결합을 중심으로

저자 : 유기쁨 ( Yoo Ki Bbeum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03-343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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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에 북유럽 철학자인 네스는 생태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주장하면서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이란 용어를 처음 고안해냈다. 네스의 심층생태학이 도입되기 전, 북미에서는 한편으로는 문제의 심층적인 원인을 찾아 심층적인 해결을 도모하려는 분위기가 일각에서 조성되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근대의 한계를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서 대안 영성을 모색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러한 북미의 사회문화적 토양에서 심층생태학은 생태학과 종교/영성을 결합하는 독특한 방향으로 성장해왔다.
본 논문에서는 아느 네스가 제안한 심층생태학과 북미의 상황에서 전개된 심층생태학을 구별해서 살피되, 특히 심층생태학에서 종교/영성이 중요하게 결합되게 된 맥락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네스의 생태학에서 중요한 개념을 살피고, 심층적인 변화를 위해 네스가 제안한 생태지혜의 특징과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는네스의 심층생태학이 도입되기 전 북미의 사회문화적 토양을 살피고, 북미 심층생태학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드볼(Bill Devall)과 세션스(George Sessions)의 심층생태학의 특징과 주요 전략을 분석할 것이다.
심층생태학이란 용어를 처음 제안한 네스는 생태위기에 직면해서 종교나 영성을 통하지 않고서 심층적인 물음을 묻고 심층적 해결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러나 북미 심층 생태학에서는 이를 위해 생태적인 영성의 발견 및 계발을 중요시하였고, 네스의 복잡한 생태철학적 논의보다는 종교/영성과 결합된 북미의 심층생태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In the early 1970s, Arne Naess, the Nordic philosopher, invented the term, “Deep Ecology”, which claims on the deep approaches to the ecological problems. Before introducing Naess's “the deep ecology” to North America, there was an atmosphere of searching to deep-rooted causes of the ecological problems and solving them deeply. On the other side there was also a trend of seeking the alternative spirituality rather than the traditional religious practices. In such North American socio-cultural milieux, the deep ecology has grown into an unique direction that is tended to interactively combine and reconcile the ecology and the religion/spirituality.
In this paper, I try to look at the deep ecology initially proposed by Arne Naess and try to differentiate the tenets of the deep ecology, particularly developed in the context of North America from the perspective of reconciliation of religion/ spirituality and the ecology. To do this, I first delineate the critical concepts in Naess's ecology, and look at the features of Naess's ecosophy. Next, I examine the socio-cultural soil of North America before the introduction of Ness's deep ecology and analyze how Bill Devall and Sessions contributed to establishing the tradition of North American deep ecology on Naess's behalf.
Naess, created the new terminology of “deep ecology”, seriously faced with the ecological crisis and wanted to ask “deep” questions and explore “deep” solutions but didn't go through the perspectives of the religion or the spirituality. However, North American deep ecologists emphasized the discovery and development of ecological spirituality for this purpose. The tendency of the deep ecology of North America is typically combined with the religion/spirituality which is more widely known worldwide than the complex ecological philosophical discussions claimed by Arne Naess him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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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종교현상학을 말한다(2)

저자 : 장석만 , 정진홍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6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44-370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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