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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cal Review of Religion and Culture

  •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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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739-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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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2)~3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457
종교문화비평
38권0호(2020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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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도교 대교당 건축의 상징성: 자유로운 종교의 중심 만들기

저자 : 고건호 ( Ko Gun Ho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51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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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천도교 대교당 건축의 상징적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천도교가 서울 도성 한가운데에 대교당을 건축한 것은 천도교의 새로운 '중심' 만들기이자 '자유로운 종교의 상징' 만들기였다.
이 논문은 천도교 대교당 건축의 시작점인 1905년 12월의 광고 기사를 당시 잡지, 신문 기사와 비교 검토하였다. 2장과 3장에서는 천도교 대교당과 천도교타운의 형성 과정을, 4장에서는 천도교 탄생과 교당 건축의 상관성을, 5장에서는 천도교 대교당 건축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근대 당대 한국 사회에서 교당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선취하기 위한 효과적이면서 현실적인 방편이기도 했다. 천도교 변증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1905년 12월의 천도교 광고 기사는 천도교는 자유로운 종교라는 선언과 함께 교당 건축의 의지를 천명했다. 천도교가 출범 선언문에서 교당을 건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교당 건물을 '자유로운 종교'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교당과 중앙총부를 완성한 후 같은 자리에 대신사출세 백년기념관까지 아우르는 천도교 타운을 조성하면서 자유로운 천도교의 상징은 보다 확장, 강화되었다. 동학 시절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천도교는 종교의 자유를 정부로부터 승인받는 대신 천도교가 자유로운 종교라는 것을 스스로 주장하고 설득하는 방식을 택했다. 교당 건축은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대교당 건축의 시작점이었던 천도교 광고와 당시 계몽언론의 기사는 근대의 종교담론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강조점에 차이가 있었다. 천도교 광고는 종교의 자유를 강조했고 계몽언론은 종교에 허용된 영역과 범위, 곧 종교의 한계를 강조했다. 이처럼 종교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던 천도교와, 종교의 영역에 한정하고자 했던 언론의 입장은 쉽게 타협되지 않았다. 더욱이 일제의 공인교정책에 따라 '유사종교'로 분류되면서 '자유로운 종교'의 상징은 여전히 문제적 영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This study explores the symbolic significance of the Chondogyo Central Temple. Chondogyo constructed its Central Temple in the heart of Seoul to create a new “center” for Chondogyo as well as a “symbol of free religion.”
Through an advertisement on Chondogyo released in December 1905, Chondogyo proclaimed that it was a free religion and that it will be constructing a new temple. Chondogyo decided to announce its plans to build a new temple in its declaration of the establishment because its leaders considered the temple to be the symbol of “free religion.”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Central Temple and the Central Temple Headquarters, the Daesinsa Centennial Hall was also built at the same spot, thus creating a Chondogyo town that expanded and reinforced the symbol of the free Chondogyo. With traumas of the Donghak years fresh in their mind, the Chondogyo leaders chose to proclaim and persuade themselves that Chondogyo was a free religion, rather than obtaining religiou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The establishment of a temple was a part of this strategy.
While the Chondogyo advertisement, which marked the beginning of the Central Temple's construction, and the articles from the newspapers associated with the enlightenment movement, all displayed the modern discourse on religion, they differed in their emphasis. The Chondogyo article emphasized religious freedom, whereas the press emphasized the boundaries and scope of religion, that is, the limits to religion. As such, the positions of Chondogyo, which intended to expand the scope of religion, and the press, which tried to limit Chondogyo's scope as a religion, were not easily compromised. Moreover, after Chondogyo was classified as a “quasi-religion” by the Japanese empire's sanctioning of religions, its symbol as a “free religion” remained a problematic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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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울 강북의 뉴타운 재개발과 종교시설

저자 : 이정연 ( Yi Jung Yeon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96 (4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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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개발은 2000년대에 낙후된 서울의 강북지역을 재정비하는 '뉴타운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남-강북의 격차를 해소하고 강북지역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뉴타운사업은 대상 지역의 부동산값을 빠르게 상승시켰고 2008년에는 대다수 총선 후보들의 공약이 될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주택과 각종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강북지역의 재개발은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수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갈등은 종교건물을 둘러싸고 나타났다. 재개발지역의 조합측과 성당, 사찰, 교회 등의 종교측은 종교건물의 존치, 이전, 청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상금 문제를 놓고 난항을 겪었고, 법정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영세한 종교시설은 사라지고 일부의 종교시설은 재개발을 기회로 거대한 현대식의 건물을 지어 올렸다. 그리고 재개발이 완성되면 새로운 종교시설이 다시 들어섰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도시재개발이 갖는 의미와 종교시설의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뉴타운 재개발과정에서 강북이 갖는 서울의 현대사적 공간으로서의 가치는 소멸하고 있다. 주택과 골목, 상점 등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강북의 공간들이 획일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는 뉴타운사업이 기존의 도시재개발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원주민의 낮은 정착률과 일방적인 전면철거, 역사적 공간 보존에 대한 대책 전무 등 기존의 재개발이 가진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강남식의 재개발을 꿈꾸는 주민들의 부동산 숭배와 국가의 획일적인 도시재개발 방식 속에서 뉴타운이 탄생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종교시설이 부동산의 재개발 논리를 등에 업고 세력확장의 기회를 꿈꾸고 있다. 이는 한국의 종교가 얼마나 영토·건물 중심주의에 깊이 경도되어 있는지, 종교 세력의 의미가 얼마나 부동산과 연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울의 현대사를 간직한 강북의 사찰과 교회, 성당 등의 종교시설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그와 함께 종교시설이 갖는 사회적 의미 역시 사라지고 있다. 전후의 시대 양식을 반영하는 건축물, 생활문화와 공동체, 사회변동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으로서의 종교시설은 사라지고 대규모의 신식 종교건물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The urban redevelopment of Seoul was centered on the 'New Town Project' to reorganize the old Gangbuk area of Seoul in the 2000s. The new town project, which started with the aim of bridging the gap between Gangnam and Gangbuk and revitalizing the Gangbuk region, quickly increased the real estate price in the target areas and drew keen attention enough to make it a pledge by most candidates for the 2008 general elections. However, the redevelopment of the Gangbuk area which is packed with houses and various buildings entailed many conflicts in the process. Among them the sharpest conflict emerged over religious buildings. In the process of deciding the existence, relocation, and liquidation of religious buildings, the union in the redevelopment area and the religious facilities such as cathedrals, temples, and churches faced difficulties over the issue of compensation and led to court proceedings. Many religious facilities disappeared but some religious facilities took advantage of redevelopment as an opportunity to build huge modern buildings. And when redevelopment was completed, new religious facilities in a small form were rebuilt. This phenomenon makes us rethink the meaning of urban redevelopment and the social meaning of religious facilities in our society. As a result, in the process of redeveloping the new town the value of Gangbuk as a contemporary historical space in Seoul is disappearing. The spaces in Gangbuk that have historical and social preservation values such as houses, alleys and shops are disappearing uniformly. The city of Seoul insisted that the new town project will proceed in a way that is differentiated from the existing urban redevelopment, but as a result, it revealed the problems of the existing redevelopment such as low settlement rate of indigenous peoples, unilateral total demolition, and no countermeasures for preservation of historical space. A new town is being born amidst the real estate worship of residents who dream of redevelopment of Gangnam-style and the nation's uniform urban redevelopment method. And many religious facilities are dreaming of opportunities to expand their power with the logic of real estate redevelopment. This shows how deeply the religion of Korea is deeply attached to territorial and building-centralism and how much the meaning of religious power is related to real estate. Religious facilities such as temples, churches, and cathedrals in Gangbuk which preserve the modern history of Seoul are gradually disappearing and the social significance of religious facilities is also disappearing. Religious facilities as spaces that reflect the postwar period style, life culture and community, and the history of social changes have disappeared and large-scale new religious buildings are filling the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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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대 종교법 미쉬나(Mishnah)에 나타난 여성의 권익혼: 인법과 이혼법을 중심으로

저자 : 이영길 ( Lee Young Gil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7-13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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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고는 경전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여성의 권익을 인정한 종교경전의 사례로서, 유대종교법 미쉬나 중 제 삼 권 '나쉼(여성)' 편의 법령들, 특히 혼인법과 이혼법을 고찰하여 분석하며, 미쉬나 시대 법이 부여하는 여성 권익이 어떠했는지를 밝힌다. 혼인계약과 함께 남편은 생계부양의 의무를 여성은 가사노동의 의무를 지게 된다. 이 가사노동량은 아내의 재정능력에 반비례할 수 있다. 혼인한 여성은 부부동거권, 보다 구체적으로 남편과 성관계할 권리를 지닌다. 즉 부부관계를 통해 배우자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것은 '남편'의 의무다. 한 법령은 남편의 직업과 거주지에 따른 부부 성관계 횟수를 규정한다. 남편은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 아내의 동의 없이 거주지 이전을 강제할 수 없다. 남편과 아내의 혼인의무 준수는 약혼시에 작성하는 '케투바' 합의금을 삭감하거나 가감하는 등의 제제조치를 통해 촉구된다.
자녀가 없을 때 적어도 십 년은 혼인관계를 지속한 후 남편은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때 불임/난임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을 가능성으로 인해 아내는 재혼할 수 있고, 재혼 후에도 십 년을 지켜봐야 한다. 유산을 하면 그 날로부터 다시 십 년을 계수한다. 그 밖에도 자손 번식을 여자가 아닌 남자의 의무로 간주하는 해석도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이혼은 남편만이 이혼장을 통해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에게 부당한 행위를 가할 때, 법정은 이를 중재하거나 이혼을 강제할 수 있다. 이혼이나 사별로 혼인관계가 소멸될 때, 여성은 혼인 전에 작성한 '케투바'에 명시된 금액을 받아가도록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이혼증서 작성 규정 및 송달법에는 매우 엄격한 절차를 적용하여 무분별한 이혼 남발을 방지하는 반면 사형장에 끌려가거나 타지에서 사고사 위험에 처했을 때, 남편은 연고 없는 제 삼자에게 구두로 게트 작성을 요청할 수 있다. 이는 시신 미발견 등 생사 확인 불가 이유로 남편이 사망 처리되지 않을 시, 아내의 재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절차 간략화와 유연한 법적용은 여성의 재혼을 용이하게 하는 등의 경제적 보호 의도로 이해된다.
이처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미쉬나의 여성권익 보호 장치는 남성 중심 종교제도에서 입법된 여성관련법이 가부장적 남성 가치관만을 반영하리라는 고정관념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


This paper counters a gender-biased understanding of women in Jewish law enacted in a male-dominated religious institution. Mishnah is a written collection of the Jewish oral law, compiled into written form around 200 CE. It is a primary source of Rabbinic Judaism which then became normative for the Jewish Diaspora in the subsequent two millennia. The Bible, the written law, is considered to be the product of male authors under a patriarchal social structure, and consequently its perspective is androcentric. For this reason, one might have a fixed idea that the Mishnah would be definitely male-centered, in support of pervasive androcentric and patriarchal values in Antiquity.
However, the third order of Mishnah, tractate Nashim ('women') shows a considerable number of the rulings that defy the odds. For example, the financial power of the wife is inversely proportional to the amount of her obligatory duty for household chores. The married woman possesses a right to a sexual relationship: sexual satisfaction is the husband's duty to the wife. The Mishnah stipulates the amount of marital sex in accordance with the husband's occupation and residence. The propagation duty was imposed on a man, not on a woman.
Rabbinic attempts to protect women's rights are also presented in dealing with divorce law. According to Biblical regulations, only the husband can claim a divorce thorough a bill of divorce. When a husband treats a wife unfairly, however, the court authorities could arbitrate or coerce him to divorce. Also in the case of being divorced or widowed, women were financially protected through the marriage-settlement ('ketubah'). In regard to divorce, the Mishnah holds an ambiguous perspective. On the one hand, the regulations of writing and delivering a 'get (bill of divorce)' are strictly enforced: its logical implication is to prevent a husband from making an imprudent divorce. On the other hand, the divorce laws are often applied flexibly for the sake of a wife, which facilitates her ability to remarry or receive a certain sum recorded in her ketubah in an emergency. In this way, the rabbinic Mishnah provides a fresh perspective on women's rights, especially about marriage and div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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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계인권선언과 아브라함계 종교: 고문받지 않을 권리, 성평등, 종교의 자유를 중심으로

저자 : 서창록 ( Soh Changrok ) , 최정음 ( Choi Jeongeum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1-170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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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종교는 왜 충돌하는가? 이들의 화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논문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브라함계 종교와 인권의 반발이 어느 지점에서 생겨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본다.
그 방법으로서 세계인권선언 제5조, 16조, 18조와 아브라함계 종교의 교리해석 차이를 고찰한다. 이 세 조항은 각각 고문이나 비인도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결혼생활에서의 남녀평등, 그리고 사상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아브라함계 종교의 인권담론에서 가장 격렬한 논의를 불러온 '인권의 종류(type of human rights)'로, 논의의 중심에 이슬람의 태형, 신체절단형, 투석형을 허용하는 형법과 조혼, 중혼,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가족법, 그리고 배교자를 사형에 처하는 종교법이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인권과 종교의 충돌은 이슬람과 같은 특정 종교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유대교와 기독교는 고문의 허용을 두고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고문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입장과 경우에 따라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성차별 또한 시대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도 아직까지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은 인권의 종류에 대한 아브라함계 종교의 관념이 저마다 다른 데 주목한다. 이때 차이를 만드는 요인으로 유일신에 대한 믿음의 내용, 이를 지키기 위해 종교마다 구축된 율법체제, 시대에 따라 종교별 정치권력의 유무와 정도에 따라 형성된 교인들의 집단 경험, 그 가운데 일어난 개혁의 바람, 그리고 교리 해석을 꼽는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계 종교와 인권이 충돌하는 지점은 모두 다르고, 같은 종교에서 그 내용도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다르지만, 화의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인다. 더 나아가 그동안 아브라함계 종교가 어떻게 인권과 화의를 위해 노력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인권과 종교가 서로 노력할 때 그 결과가 더욱 효과적임을 증명한다. 이 논문에서 아브라함계 종교는 유일신 사상, 계시, 언약, 선택, 선지자 등의 개념을 공유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말한다.


Why do human rights collide with religion? How can they be reconciled? In order to answer these questions, this article examines the precise spot of such controversies and their contexts.
For this purpose, it analyzes how Abrahamic religions have perceived three types of human rights which are enshrined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rt. 5 on the right not to be tortured, Art. 16 on gender equality in marriage, and Art. 18 on religious freedom. These rights have brought the most critical controversies in the discourse of human rights and religions, especially for Islam's allowance of lashing, amputation, stoning, early marriage, polygamy, and death penalty for apostasy. However, a careful observation reveals that the conflict between human rights and religions is not limited to a specific religion, such as Islam. For instance, Judaism and Christianity of today are displaying contrary positions in regards to torture: opposing torture and permitting torture. A similar conflict is also witnessed along with women's rights issues in the same religions.
In this context, this article points out the Abrahamic religions' perceptions of human rights, which have been shaped respectively by the contents of their monotheistic faiths, religious precepts, the collective experiences of the followers with their (non-)ownership of political sovereignty, reform movement, and the interpretation of their religious doctrines. This process demonstrates that the conflict zone between Abrahamic religions and human rights varies depending on epoch and societal changes. Following the examinations of the past and ongoing reconciling efforts by Abrahamic religions with human rights, the article concludes that their reconciliation is not only possible but can effectively be facilitated when human rights endeavor together. By Abrahamic religions, it refers to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which share the notion of monotheism, divine covenant, revelation, chosenness, and prophetic fig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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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동일화 과정으로서의 기독교 입문식: RCIA를 중심으로

저자 : 김진숙 ( Kim Jin Sook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71-220 (5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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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입문식은 기독교인이 최초로 정체성을 구성하게 되는 입문 의례이다. 기독교인이 되어가는 정체성은 새롭게 맺어진 관계 형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본 논문에서는 RCIA (Rite of Initiation of Adults, OICA: Ordo Initiationis Christianae Adultorum, 성인입교예식서)를 기반으로 한 가톨릭의 입문식을 검토한다. 가톨릭의 입문식은 단일사건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의례와 교육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과정의 총체이다. 입문식의 핵심은 의례와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기독교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기독교의 주체가 되면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데 결정적인 부분은 타자를 내부로 수용하여 주체가 구성되는 동일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RCIA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기존 연구들의 경향을 살펴본 후, 본 논문의 연구가 프로이드와 라캉의 동일화 이론으로 입문식에서 기독교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선행 연구를 보완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입문식 과정가운데, 새롭게 구성되는 관계의 단초를 찾기 위해서, 프로이드와 라캉의 오이디푸스 서사를 통해서 성인의 회심 과정과 인류학에서 연구된 성인식의 구조를 해석한다. 이어서, 오이디푸스의 최종 단계인 동일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기독교의 입문식과 기독교적주체 형성의 연관 관계를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RCIA에 의거하여 수행되는 기독교의 입문식의 과정에서 질적으로 다른 단계 별로 기능하는 동일화의 양상을 프로이드의 동일화 이론으로 검토한다. 이어서 라캉의 동일화 이론을 적용해서 기독교 입문식에서 종교적 자아와 종교적 주체가 탄생함을 제안한다.
상상적 동일화(imaginary identification)를 통해서 이상적 자아(imaginary ego)가 형성되고 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종교적 자아를 구성한다. 상징적 동일화(symbolic identification)를 통해서 자아이상(ego ideal)이 형성되고 사회적 차원의 종교적 주체를 구성한다. 종교적 자아는 신의 이미지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관념적, 감정적 측면에서 의식의 동일화를 통해서 형성된다. 반면 종교적 주체는 신의 로고스와의 무의식적 동일화를 통해서 상징적 관계를 형성하고, 교회법과 교리 등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공유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동일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 주체는 자아를 포함한 포괄적 영역이기에, 사회적 차원의 종교적 주체가 개인적 차원의 종교적 자아를 조율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적 주체가 되면서 상상적인 종교의 세계와 상징적인 종교의 세계를 동시에 주체 내부에 형성해 나간다. 본 논문에서는 타자성과 주체성,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사회의 측면이 동시에 구축되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합적으로 검토한다.


The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is the primary rite to construct Christian identity. Christian Identity is becoming built on newly established relationships. A rite of initiation of Roman Catholicism based on RCIA (Rite of Initiation of Adults) is not a single event but a process as a collection of a variety of liturgy and education. The core of the rite of initiation is becoming a Christian subject by building a new relationship and incorporating otherness. The critical point of becoming a Christian subject belongs to identification that a subject subsumes the other(the Other) and becomes modified by such otherness.
Examining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birth of the RCIA and many existing studies on it, this paper demonstrates that this research will compensate the results of previous studies by reinterpreting the process of forming Christian identity in the rite of initiation in light of Freud's and Lacan's theory of identification. Thus, in order to find the beginning of the newly formed relationship through the process of initiation, this paper interprets the process of conversion and the structure of the rites of initiation studied in anthropology through the lens of the theory of Oedipus by Freud and Lacan. Subsequently, focusing on the final stage of Oedipus, the identification process, we will investigate the correlation between the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and the construction of Christian subject. Specifically, the aspect of identification that functions at qualitatively different stages in the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in accordance with RCIA is reviewed by Freud's theory of identification. Next, applying Lacan's theory of identification, it is suggested that a religious ego and a religious subject are born in the rite of Christian initiation.
The imaginary ego is formed through imaginary identification, which constitutes the religious ego at the individual level. The ego ideal is formed through symbolic identification and constitutes a religious subject at the social level. The religious ego is becoming formed through conscious identification with the image of God, and with the ideological and emotional aspects of the teachings of church. On the other hand, the religious subject is becoming constructed through unconscious identification with the logos of God, and builds a symbolic relationship with God and church as a member of the church community while sharing the same values in law and doctrine at the level of the unconscious. Since the subject is a comprehensive register that includes the ego, the religious subject at the social level also coordinates the religious ego at the individual level. In this way, while becoming a Christian subject, both the world of imaginary religion and the world of symbolic religion are incorporated in the subjec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process of forming the identity as a Christian as the aspects of otherness and subjectivity, the conscious and the unconscious, and the individual and the social, in a comprehensive m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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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선시대 사대부의 두창신(痘瘡神)에 대한 이해와 의례

저자 : 이욱 ( Lee Wook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1-255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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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성행하였던 전염병 중에서 두창(痘瘡)과 두창신(痘瘡神)에 대한 사대부의 반응과 이해에 관한 연구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두창이 발생하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을 최상의 방법으로 여겼다. 부모와 조상의 상장례를 거행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도피와 격리 속에서 최소한의 의례만을 수행하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신주(神主)나 지방(紙榜)의 적극적인 활용이었다. 빈소나사당을 집에 마련하는 유교 의례의 특징 때문에 가족들이 자칫 집에 고착될 수 있으나 이동 가능한 신주가 도피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또한 현장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지방 역시 이동의 부담을 줄여주었다. 한편,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증가하여 두창이 유아기 전염병으로 점차 전환되면서 두창에 대한 이해는 부모의 자리에서 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의 하나가 사대부들은 〈송두신문(送痘神文)〉이었다. 〈송두신문〉은 가족 중에 두창에 걸렸다가 회복되면 두창신 전송하기 위해 짓는 글이다. 자녀의 목숨을 보존해준 것을 감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지만 이에 덧붙여 두창신을 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변증 또한 여기서 볼 수 있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귀신을 공경으로 섬길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신유학적인 귀신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사대부들은 두창을 어린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관문으로 간주하고, 이 관문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신으로 두창신을 이해하였다. 두창신을 보내는 의식은 이 공로에 대한 감사였고, 이 감사의 의식을 통해서 일상은 다시 회복되었다. 이러한 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대부들은 두창신을 보내는 의식을 수용하여 거행하였다. 마마 배송굿 또는 손님굿으로 알려진 두창신의 전송의례는 무당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사대부들은 무당을 배제하고 송두신문을 읽으며 두창신을 전송하였다. 이러한 두창신의 전송 의식은 궁궐에서도 거행하여 그 의식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This study examined the Joseon Literati's responses to and understanding of smallpox, which was one of the prevalent diseas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smallpox spirit. The Joseon literati believed that the best way to avoid smallpox was to evacuate to a safer place. While there were cases where people risked their lives to hold their parents' funerals, most literati performed minimal rituals under evaluation and in isolation. This was possible through the active use of shinju(神主), the ancestral tablet, and jibang(紙榜), the ancestral tablet made with paper. Another factor was a rise in the number of people who became immune to the disease, and the fact that smallpox became an infectious disease that mostly affected infants and children. Under such changes, parents began to form an understanding of smallpox, which led to the literati to write Songdushinmun(送痘神文). Songdushinmun was a type of writing addressed to the smallpox spirit once a family member suffered and overcame smallpox. It was mostly a note of gratitude for saving the life of one's child, but it also led to a question of whether the writer accepted the smallpox spirit as a god. In the background of the discussion on whether a spirit that gave people diseases should be revered was the Neo-Confucian discourse on ghosts and spirits. Amid such discourses, the literati considered smallpox to be a necessary rite of passage for a young child to become an adult, and understood the smallpox spirit as a ghost that helped the children pass the rite. The ritual of sending away the smallpox spirit was an expression of gratitude toward such help, and normalcy was recovered through this ritual of gratitude.

KCI등재

7남산을 거닐며 일제강점기 종교문화를 읽다

저자 : 문혜진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56-268 (1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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