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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비평 update

The Critical Review of Religion and Culture

  •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 : 인문과학분야  >  종교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739-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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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2002)~37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450
종교문화비평
37권0호(2020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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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종교 사회복지의 과제와 전망

저자 : 윤용복 ( Yoon Yong Bok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43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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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재 한국의 종교사회복지 활동의 현상을 간단하게 조망한 다음 몇 가지의 과제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첫 번째 과제는 종교 사회복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화가 필요하다. 종교사회복지에 대한 각 종교별 개념은 있지만, 그조차도 관점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종교일반에서의 종교 사회복지 개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전체 종교 사회복지의 과제 가운데 첫 번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개념정의를 통해서 각 종교 소속 신자들이 사회복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유용한 근거가 마련될 것이며, 사회복지 활동의 명확한 목적의식도 만들어질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일반사회복지 분야에서 접근하기 어렵거나 소홀하기 쉬운 틈새 복지에 대한 종교 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과 같은 사회적 문제, 그리고 대형 참사로 인한 심리적 불안 등등은 일반 사회복지가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들이라고 본다. 이러한 영역에 종교적 특성, 예를 들어 참선이나 명상, 그리고 피정 등과 같은 종교적 프로그램을 일반적인 내용으로 개발해서 접근한다면 사회복지에서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 번째 과제는 종교 사회복지 시설의 대형화 추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법인이나 시설들의 대형화는 사회에서 또 하나의 권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대형화에 따른 클라이언트의 비인격화 내지 사물화의 경향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친 대형화보다는 개개인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는 규모의 시설들이 적합할 수 있다.
네 번째 과제는 각 종교의 이념에 집착한 나머지 클라이언트가 종교적 실천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 사회복지는 항상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활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종교적 구원을 위한 행위는 사회복지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리어 종교 사회복지에 대한 사회적 반감만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이것은 시혜적 성격의 종교 사회복지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 사회복지 활동에 지나친 종교적 목적을 설정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 활동을 선교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사회복지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종교 사회복지는 전체 사회의 복지를 추구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즉 사회정의라는 측면에서 사회구조의 개혁을 위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propose some suggestive ideas by critically reviewing the various aspects of the religious welfare systems and its activities in Korea. My primary concern, firstly, is to clarify the confused and varied concepts of the social welfare in the religious arena. Every religious institute has its own social welfare concepts based on their perceptions on the welfare. Therefore, the comprehensive concept on the social welfare should be strictly delineated.
With this definition the religious devotees will contribute their charitable exertions for the sake of the welfare; and their motivations for it would be clarified along with their religious causes. This definition is more than to “clarify” the meaning involved in it, but guides to the crucial commitment in the religious social welfare activities. The devotees in the religious orders will participate in the social welfare activities by and through conceptualizing the welfare ideal and their purposes will be intensified.
Secondly, the religious organizations would play the crucial roles, especially counting on the secular social welfare, whose activities are often in the blind spots and ignore the urgent cases of welfare. For instance, some social welfare involvements are too intriguing to be approached by the secular social welfare system, which is excluding the cases of the suicide, the depression or the traumas due to major accidents. If these issues are approached with the religious orientations and programs such as meditations or retreats, it is much functional rather than to dealing with the secular social welfare.
Thirdly, it is necessary to avoid oversizing the facilities and the institutions. The corporations and the facilities of the social welfare system are growing bigger and larger, and eventually, they are functioning as the powerful social organizations. Caused by this enormity, the facilities are apt to impersonalize the clients and even ignore them to be material objects. Accordingly, the facilities of proper size will be suitable in order to satisfy an individual's demand with good care. Fourthly, the clients should not be used as tools for the religious conversion, which has been usually articulated by the religious ideologies. The religious social welfare should be practiced and performed only for the sake of the client's demands. The religious redemptive activities will not give any positive effects on the social welfare. If so, it is only ended in bringing the societal antipathy to the very religious institute. Such an activity will be away from the give-and-take charity format of so-called the religious hypocrisy.
Lastly, the social welfare activities should not be used as a means of religious propagation and conversion, but should utilize the social welfare itself as the objective. In other words, the reform of the societal structure is needed for the sake of the social justice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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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일 개신교와 사회복지: 19세기 중반 '디아코니'의 역사적 함의를 중심으로

저자 : 김태연 ( Kim Tae Yeon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4-89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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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한국에서 '개신교와 사회복지'의 모범으로서 평가되는 독일 개신교의 디아코니 사업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19세기 중반 독일 개신교에서의 디아코니 이해 방식을 고찰함으로써 당시 디아코니 개념이 현대적 의미의 '복지' 개념과는 상이한 의미였으며, 개신교의 디아코니 개념이 현대의 '복지' 개념과 상응하는 것으로 등장하는 때는 20세기 중반 이후부터임을 논의한다. 디아코니 이해방식에 대한 자료는 디아코니 사업단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1881)과 최근에 들어서 디아코니와 관련하여 많은 조명을 받는 빌헬름 뢰헤(Wilhelm Löhe, 1808~1872)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이들은 디아코니를 혁명과 산업화, 기근으로 인해 탈교회화되는 인민들을 재그리스도교화 하기 위한 내방선교의 실천적 활동으로 이해했다. 비헤른은 구제사업을 통해 인민의 신앙 회복과 교회공동체로의 복귀가 이루어져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교적 국가 정립을 목표로 한 반면, 뢰헤는 참된 루터교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들의 디아코니 이해는 현대의 보편적 복지개념과 달랐다. 내방선교의 하위개념이었던 디아코니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때는 20세기 중반 이후부터이다. 이는 독일 개신교가 디아코니라는 모토 하에 자신의 정체성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재정립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독일 개신교의 디아코니 사업을 19세기 중반 이후로 현재까지 진행되는 개신교의 사회복지사업의 한 이상적 모델로서 바라보기는 어려우며, 독일 개신교 또한 디아코니 사업을 선교적 목적을 위한 프락시스로서 더 이상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한국 개신교가 종교단체에 공공복지 재정이 투입되어 운영되는 사회복지 사업에 참여할 때, 복지서비스 이용자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사회복지학에서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복지 서비스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례이다. 복지 서비스 이용자를 종교 중립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현대의 사회복지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 개신교가 국민 모두를 위한 공공의 복지에 더욱 기여하고자 한다면 지속적인 논의와 협의를 통해 사회복지와 개신교의 역할에 큰 변화와 혁신을 이루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how the Diakonie(diaconia) concept has been understood in relation to Innere Mission (inner mission) in the mid-19th century of German Protestantism. The German Diakonie organization has been highly appreciated among the Korean Protestant theologians as an typical example of the Protestant social work and valued it to improve the German social welfare system since its inception of the mid-19th century. The Diakonie concept initially seems to be conflicted with the secular welfare system, however, it changed as late as the mid-20th century to be co-operative hand-in-hand with the modern social welfare, which has been steadily adapted to a social policy for all the levels of people without any discrimination. In this paper, firstly I discuss on the origin of the concept of '복지'(bokji: welfare) and its context. It is a preliminary and necessary step to make clear of the confused concepts of Diakonie work and modern welfare activity while referring to the mid-19th century contexts. Secondly, I analyse the ways of how to properly understand Diakonie based on two important figures of the protestant Diakonie: Johann Hinrich Wichern, who played a crucial role for the creation of Diakonie organization in Germany and Wilhelm Löhe, to whom recently much attention has been paid because of his contribution to Diakonie. Both of them understood Diakonie as the practical activity for the inner mission to re-christianize the people, being estranged from the churches, caused by the aftermath of European revolutions, industrialization and severe famine. Their common goal was to restore the religious faith among the people and let them return to the church community through the Diakonie work: Wichern ultimately aimed to re-establish a Christian nation again, but Löhe wanted to regain the genuine and faithful Lutheran church communities. Diakonie, originally started as a sub-concept of the inner mission, has been fully blossomed as a religious ideal since the mid-20th century in German protestantism. This is an another accomplishment done by the German Protestantism, which attempted to separate the secular welfare and redefine its identity, reflecting the spirit under the motto of Diakonie. It is difficult to consider German protestant Diakonie as an ideal model of protestant welfare work since the mid-19th century. The final question is that Diakonie is accountable as the means for the Christian mission or not, which is not always consistent with the modern concept of welfare.
When Korean protestantism participates in social welfare service which public finances are put into religions, the view of welfare service users as a object of mission is becoming an issue as a social problem. It is a case of violationg their 'self-determination right' considered as an important value in social welfare studies. The non-neutral approach to welfare service users is discrepant from the meaning of modern social welfar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elfare activity and the Protestantism welfare spirit in Korea requires the changes and the innovations by the way of constant discussions and sincere consultations of it over the long term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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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저자 : 이혜숙 ( Lee He Sook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0-123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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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자선지원재단(Charities Aid Foundation)이 보고한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평균적으로 우리나라는 126개 국가 중 현금기부 38위, 자원봉사 53위, 낯선 타인을 도와주는 일에서는 78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종교인구가 대략 국민의 절반이던 점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종교인들이 이타적 행동을 하는 역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종교사회복지의 외형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종교인들의 소속교회를 통한 이타적 실천의 책임성이 약화된 것이라면, 왜 그럴까. 교회부설 복지기관 등이 공적 지원을 잘 받는 사업장이 되어갈수록 소박한 교인들의 참여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다. 종교인의 일상생활에서 이타적 행동을 실천하는 길을 현실의 교회가 어떻게 안내하는지, 그것이 종교사회복지의 중요한 변수라고 본다.
교회는 공공재에 의해서 조성되고 공공재를 소비하고 공공재를 창출하는 특유의 존립방식을 갖기 때문에, 그 속성을 '교회 공공성'이라고 규정한다. 종교인이 교회에 바친 공공재를 본래의 공공성에 맞도록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종교사회복지의 근거이다. 교회가 자기살림을 위한 헌금과 이타적 용도의 헌금을 구분하여 모금하고, 각기 공공성 원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집행하는지 여부가 교회재정 투명성과 함께 교회 공공성의 핵심이다. 공공재를 올바로 사용하지 않고 축적하는 교회가 비대해지고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갈수록 교회 구성원간의 갈등이 치열해지고 교회공동체에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인적ㆍ물적 자원을 매개로 정치권력과 유착하기 쉬운 교회는 사회복지 활동조차도 종교권력화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권력관계는 물론, 신도대중 사이에서도 물적 기여도에 따라 세력화 되는 현상을 지적하였다. 또한 사회복지분야에서 종교계라는 이유로 누려온 권력화 현상들을 지적하였다. 국공립 사회복지시설을 민간에 위탁할 때 우선적으로 종교계 공신력을 인정한 점, 사회복지 전문성이 없는 성직자에게 운영상 최고위의 책임을 부여한 점, 복지시설 운영에서 종교계의 자부담 비율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해당종교계의 부속시설로 자타가 공인한 점 등이 그것이다.


According to the World Giving Index, reported by the Charities Aid Foundation in the UK, Korea has been ranked 38th in the cash donation, 53rd in the volunteering, and 78th in the helping strangers among 126 countries over the past 10 years. Considering the fact that the rate of believers among the people was roughly half of the whole population of Korea, the rate of believers who were committed in the altruistic activities turned out to be unexpectedly low. Despite the expansion of religion-based social welfare field, the followers of the religion are also to reduce their the altruistic services in their religious institutes, particularly in churches. Why has it happened? As the church-affiliated welfare institutions have been recently increased, which have been heavily funded from the public foundations, the small and modest size of churches(Buddhist temples, Catholic churches are good representatives of them) seems to be set back. The churches should be the example of how the altruistic practices are performed and guide them to the way of practicing charity in their daily religious life.
The church has been grown as an unique institute to being built up by the public properties, consuming those properties, and being promoted to be more public property. I want to call it as the “church-publicity(교회 공공성).” It is the core of the church-based social welfare, which utilizes the public properties for their proper goal, “publicity(공공성)”. Whether the church receives the donations for its self-sustainment or receives those for the altruistic charity, the transparency of the church budget should be maintained. This clear budgetary transaction will be in accordance with the "publicity rules". When this rules are not well kept, it will result in being captured to be the materialistic capitalism which is against to the religious ideals and will be indulged in the political power in order to get more supports from the government or the public fund. The conflicts among the church members(the priests and the lay persons) lead to the crisis of the church community as we easily see around us.
The power struggles in the churches, as I point it out several times, are not only the power relationship between the clergy and the laity, but also among the lay persons themselves they strive to get power and to rule over because of these capitalistic contributions to the churches. When the government agencies entrust the public welfare facilities to the private sectors, such as Christian, Catholic and Buddhist churches, they give the credit and the upper positions to the churches and the clergies, who are without any social welfare expertise, or any proven expertise but only charity spirit. It results in very low rate of self-funding donations of the church groups themselves and their operative skills are also very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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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과 복지: 한국 개신교 공간의 번영복음을 중심으로

저자 : 이진구 ( Lee Jin Gu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4-158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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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IMF 사태 이후 한국 개신교 공간에서 등장한 번영복음이 개신교의 복지의식과 실천에 어떠한 영향과 효과를 미쳤는가를 규명한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가 등장하면서 전 사회적 차원에서 자기계발이 권장되고 개신교 공간에서는 '신비적 자기계발'에 속하는 번영복음이 부상하였다. 번영복음을 운반한 대표적인 자기계발 서적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야베스의 기도》, 《긍정의 힘》, 《4차원 영성》, 《왕의 재정》이다. 《아베스의 기도》는 '야베스의 기도'를 일종의 주문처럼 활용하여 부와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긍정의 힘》은 긍정 이데올로기를 통한 현세적 욕망 실현의 길을 제시하며, 《4차원 영성》은 생각, 믿음, 꿈, 말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자기계발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건강과 부를 얻는 방법을 가르치고, 《왕의 재정》은 '배가의 법칙'을 활용하여 '거룩한 부자(성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텍스트다.
IMF 사태 이후 한국 보수 개신교는 다양한 형태의 구제사업과 봉사활동에 참여하였지만 시혜적 차원의 자선사업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러한 구제사업과 활동이 시혜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번영복음이 주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번영복음은 IMF 사태에 의해 초래된 대규모 실업과 빈곤, 양극화의 심화, 노숙자와 자살률의 급증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번영복음은 사회적 위기와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조적 차원에서 모색하기보다는 개인의 책임과 능력에서 찾는다. 요컨대 각자도생의 논리를 취하는 것이다. 주술적 기도나 시각화 작업과 같은 '신비적' 자기계발의 테크놀로지를 통한 심리적 차원의 해결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의 부의 축적과 성공을 위해 신비적 자기계발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번영복음의 길'과 연대성의 원리에 근거하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사회복지의 길'은 양립하기 어렵다. 번영복음은 사회복지의 대립물이자 장애물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민간복지의 선두 주자로 간주되어 오면서도 시혜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국 개신교가 연대성의 원리에 기초한 사회복지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번영복음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The paper examines how the Prosperity Gospel that emerged after the IMF crisis had an impact on Korean Protestant view of social welfare. The emergence of a “neoliberal welfare state” in late 1990s encouraged self-help movement at the whole social level in Korea, and in Protestantism, the Prosperity Gospel in the form of “mystical self-help movement” has emerged. The best-selling self-help books that carried the Prosperity Gospel were four books, that is, The Prayer of Yabez, Your Best Life Now, The Fourth Dimension, and King's Finance. The Prayer of Yabez recommends 'The Prayer of Yabez' as a kind of spell to get wealth and social success. Your Best Life Now presents a path to worldly success through positive ideology. The Fourth Dimension teaches how to get health and wealth through the self technologies that change thoughts, beliefs, dreams and words. King's Finance teaches the way to become a rich man by using the law of doubling.
Since the IMF crisis, Korea's conservative Protestant Church has participated in various forms of relief and volunteer work, but has been estimated for staying on a level of charity. The Prosperity Gospel is a main factor which prevents them from going beyond the charity dimension. This is because the Prosperity Gospel tends to approach serious problems, such as unemployment and poverty, deepening polarization, and a surge in homelessness and suicide rates, not on a social level but on a personal level. The Prosperity Gospel seeks solutions to the problems of social crisis and suffering from individual abilities rather than from structural dimensions. A case in point is the resolution of the psychological dimension through the technology of “mysterious” self-help, such as magical prayer and visualization.
The road of Prosperity Gospel based on the technology of mystical self-help is incompatible to the road of Social Welfare based on the principle of solidarity. In other words, the Prosperity Gospel is an obstacle to social welfare. Therefore, Korean Protestantism must firstly be liberated from the prosperity gospel in order to move forward on the path for the social welfare based on the principle of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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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평화적 복지와 종교의 심층

저자 : 이찬수 ( Yi Chan Su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8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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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평화와 복지와 종교가 심층에서는 사실상 같은 세계를 지향하며 상호 순환한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한다. 가령 평화는 공평과 조화가 확대되고 상처와 갈등이 줄어드는 과정이다. 복지도 물질적 공평함의 차원이자, 공평을 위한 제도가 조화롭게 적용되는 과정이다. 평화와 복지 모두 불평등한 구조로 인한 상처와 갈등을 공평과 조화의 관계로 바꾸어가는 과정이다. 복지가 평화적이어야 하고, 평화가 복지로 구체화되는, '평화구축'과 '복지구축'이 평화와 복지의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상이한 입장과 주장들에 대한 상위의 지점을 합의해가야 한다. 자기중심주의에 입각한 '평화들'의 충돌을 극복하고 상위의 상생적 '평화'를 찾아가야 한다. 다양한 '복지들'이 저마다의 실질적 안녕에 기여하도록 하면서 인류가 더 상위의 '복지'로 나아가도록 소통해야 한다.
평화와 복지는 목적론적이다. 이러한 목적론은 종교적 세계관의 기본 형식과 내용이기도 하다. 종교는 현재적 복지와 평화를 추동하는 미래적 목적으로서의 이상세계(대문자 평화와 대문자 복지)를 추구해왔다. 이 미래적인 이상세계를 현재화하는 과정이 종교의 핵심이다. '종교가 복지를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복지가 수행되는 과정을 종교'로 뒤집어서 보는 것이다. 종교를 주어로서가 아니라 행복, 안녕, 감폭력, 공평과 같은 실질적인 내용 즉 술어 중심으로 보는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아울러 복지도 물질적 시혜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심층적 의미와 인류의 이상적 목적이 조화된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영적 복지(spiritual welfare)이다. 영적 복지는 역사, 문화, 사회의 심층에서 통하는 인간 존재의 상호성이 구현된 복지이다. 영적 복지는 현실의 부조화를 비판하고 갈등을 넘어서도록 끌어당기는 미래적 이상에 대한 인식능력을 사회 전반에 구현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표층적 복지 정책에 심층적 영성을 입혀준다. 영적 복지는 이상으로서의 대문자 복지(Welfare)와 대문자 평화(Peace)를 현실의 다양한 소문자 복지들(welfares)과 평화들(peaces)의 모습으로 구체화 시키는 길이다.


This article will examine that the peace, the welfare and the religion, altogether are actually oriented toward the same world in its in-depth and circulate themselves over one another. Peace, for an example, is a process in which the fairness and the harmony are expanded, while the trauma and the conflicts are reduced in it. Welfare is to be materially fairness among the people and is a process in which the fairness system should be harmoniously applied. Both the peace and the welfare are the process of turning the unfair structures of trauma and conflicts into a relationship of fairness and harmony. The goals of peace and welfare are “peace-building” and “welfare-building,” where the welfare should be peaceful, and the peace is to be embodied in the welfare.
In order to achieve this goal, the higher points of different positions and contentions must be agreed upon through the reasonable communication. The conflicts between “peaces” based on self-centeredness must be overcome, and a higher win-win “peace” should be sought. It should be communicated so that mankind can move further toward the higher-level “welfare” while allowing various “welfares” to contribute to their own practical well-being.
Peace and welfare are teleological. This teleology is also the basic form and the content of the religious world-views. Religion has pursued the ideal world (the capital “Peace” and the capital “Welfare”) as the future purpose of mobilizing present welfare and peace. The Process of being realized in here and now this futuristic ideal world seems to me to be the core of religion. While I have solid faith in “religion itself is the very performance of the welfare,” what is more important to me is to read it in a reverse way of its proceedings in which how welfare is carried out into religion. Copernican shift of perception is asked on, that from the subjective thinking of religion onto the predicate thinking, centered on happiness, well-being, reducing-violence and fairness, which is in the actual core of religion.
Besides, the welfare should not remain at the level of the material dispensation but should move forward in harmony between the deep meaning of human beings and the ideal purpose of mankind. That is the “spiritual welfare”. Spiritual welfare embodies the interrelationship of human beings in the depths of history, culture, and society. Spiritual welfare is a process that criticizes the incongruity of reality and implements awareness of future ideals that attract people to go beyond conflict across society. This process gives a deep spirituality to surface welfare policies. Spiritual welfare is the way to embody the ideal capital “Welfare” and “Peace” as a form of lowercase “welfares” and “peaces” in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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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종교 자료로서의 심문 기록: 추국 문서와 조선후기 종교사

저자 : 한승훈 ( Han Seung Hoon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7-21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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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국가 심문 기록인 《추안급국안》은 1970년대 초에 발견된 이래, 조선후기의 정치사회사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서 주목받아 왔다. 종교사 연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자료는 유럽의 이단심문 문서와 경우와 비슷한 방식으로 반체제적인 종교문화와 그에 대한 통치체제의 반응을 보여준다. 이 글은 이 문서들의 성격과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이를 종교학적 연구의 재료로 삼기 위한 방법을 탐색한다. 추국 문서는 통상적인 사료 비판이 곤란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자료다. 종교문화에 대한 해석에 활용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이를 사실/거짓의 문제에 주목하는 '수사관'의 태도나, 사건 피의자들에게 공감적으로 접근하는 '변호사'의 태도 대신, 비판적인 관점으로 민족지를 대하는 '인류학자'의 태도에 설 필요가 있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그동안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날조된' 변란 사건 두 사례를 통해 이런 접근이 가져올 수 있는 이점을 실제로 보이고자 하였다. 1687년에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에서 반란의 성공을 기원하고 조선 국왕과 제주목사를 저주하는 기도문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유배객 양우철(梁禹轍)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예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조작한 것이라 밝혀졌다. 이 기도문과 예언서에서 우리는 제주도의 토착적 신격인 '삼을나(三乙那)'에 대한 신앙의 정치적 이용, 역대 왕조의 역년(歷年)에 대한 예언의 초기 형태, 당시의 저주 테크닉 등을 발견할 수 있다. 1712년, 이운(李橒)은 자신의 이웃 백상복(白尙福)이 장차 황제로 등극할 것이라 주장했다고 무고하였다. 그가 고발한 반란 계획에는 18세기 사건들에서 나타나는 '삼국의 분열'에 대한 시나리오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고발의 근거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정기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국 과정에서 주목받은 것은 제사의 대상이 하늘이었다는 것보다는 그 의례가 실제 반란의 의도와 연관되어 있었느냐는 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반란 의례의 대상이 되는 신격과 그를 둘러싼 의례정치학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다. 이들 사례는 심문 기록에 대한 종교학적 작업이 당대의 종교적 상상력을 서술, 해석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Ch'uan'gŭpkugan, the documents of national inquisition of Chosŏn dynasty, have received attentions as the materials which can show political and social history of early modern Korea, since they were found in the early 1970s. From a standpoint of the History of Religion, these documents shows religious counterculture and response of ruling culture against it. This article introduce the character and contents of these documents, and explore correct way to employ them as materials for Religious Studies. Inquisition texts are the documents which 'ought to lie,' so hard to apply usual source criticism. The researcher, therefore, need to take a stand of an anthropologist who critically treats ethnography, instead of an investigator who pay attention to true/false problem or a lawyer who sympathize with the suspects. In the latter half of article, two cases of 'trumped-up' insurrections were discussed to show the merit of such an approach. In 1687, a prayer paper was found from Samsŏnghyŏl 三姓穴 in Jeju Island. It was revealed that was a fabricated text by exile Yanguch'ŏl based on his prophetic books. In the paper and books, we can deduce the political use of the cult on Samŭlla 三乙那, the ancestor gods of Jeju, an early form of prophecy on kingdoms of many generations, and black magic techniques of those days. In 1712, Yi Un 李橒 accused his neighbor Paek Sangpok 白尙福 that he was pretended that they would be a emperors. The rebellion plot he disclosed included a scenario on 'the division of three kingdoms, which was appeared in other insurrections in 18th centuries. Another basis of accusation was that Yi regularly worshiped the sky god. However what was interrogated in inquisition was whether the ritual was related to rebellion, rather than which god was worshiped. With this point, we could reconsider about the deities in ritual of rebellion and ritual-politics on them. These cases show us that works of historian of religion can be useful to describe and analyze the religious imaginations of those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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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미신 개념의 계보학: 20세기 초 한국 사회의 종교, 과학, 미신

저자 : 이창익 ( Lee Chang Yick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8-284 (6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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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종교와 과학이라는 대결적 담론 지형의 형성에서 미신 범주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나는 일제강점기의 신문과 잡지 자료에 나타난 미신 담론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종교 개념, 과학 개념, 나아가 종교와 과학의 관계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신 개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대략 아래와 같은 세 가지 큰 틀에서 종교, 미신, 과학의 관계를 추적하였다.
첫째, 우리는 '비과학적'이라 비난받은 종교의 일부, 특히 무속 같은 민간 종교가 폄훼 과정을 통해 미신 범주로 낙착되는 것을 목격한다. 한국의 종교 전통은 서구적인 종교 개념에 부합하는 형태로 재편되기 위해 '미신'으로 의심되는 요소를 종교 범주 밖으로 추방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미신 범주는 종교 전통의 근대적 정화 작용을 위해 이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성'이라는 기준이 '비과학적 종교/과학적 종교'라는 구분법을 작동시켰다. 정화를 통해 종교가 과학에 가까운 것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 과학이 종교의 영역에 침투하여 기존의 종교 담론과 실천을 미신이라 비난하면서, '종교와 과학'의 대립 구도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장면이 있다. 역사 속에서 이제 종교의 시대는 가고 과학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이 이러한 논쟁을 지배한다. 이때 종교 개념은 두 가지 선택지를 만나게 된다. 하나는 종교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성'과 대비되는 '종교성'에 대한 주장을 통해 종교의 독자적인 존재 양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의 종교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로까지 확장 될 수 있다. 이처럼 미신 개념은 근대적인 종교 개념의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종교는 마음의 공간으로 물러나 과학과는 다른 영역을 점유했다.
셋째, 미신론을 통해 비로소 종교는 더 이상 과학으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은 채 세속과 분리된 공간 안에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미신의 제거를 통해, 종교는 내면의 공간으로 퇴거했으며, 종교 없는 세속 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라는 개념은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미신이나 과학, 또는 유사종교나 신종교 같은 다른 개념들과 연결된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how how the concept of superstition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the general discourse of the opposition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For this, I surveyed the various concepts of superstition within the purview of the newspapers and journals from the early 20th century. This led to the discovery that we should reappraise the concept of superstition to understand the modern formative processes of the concept of religion, the concept of science, and the relationship of religion and science. This article traces the relations among religion, science, and superstition within the three frameworks.
Firstly, we can witness how popular religions such as shamanism fell into the category of superstition, suffering the criticism of being unscientific. Korean religious tradition could conform with the western concept of religion by dispelling the superstitious things out of religious landscape. Like this, the concept of superstition was employed in order to purify the concept of religion. To this purpose, the criterion of scientificity divided religion between unscientific religion and scientific religion. By way of purification, religion seemed to be able to become more scientific.
Secondly, science was gradually opposed to religion, rebuking religion for being superstitious. There was a powerful prospect that the age of science would supercede the age of religion. In this situation, religion was given two alternatives. One was that religion had to prove its scientificity. The other was that religion had to find its uniqueness in the name of religiosity, even to the point of disclosing religious aspects of science. Like this, superstition played a very essential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modern concept of religion. On the whole, religion could recede into mind space and occupy a different area from science.
Thirdly, under the sway of the concept of superstition, religion was separated from secular space, and could be protected from scientific criticism. Stripped of superstitious elements, religion escaped into inner space, and then it became possible to construct the secular space without religion. Accordingly, the concept of religion was not formed independently, but constructed within the complex network connected with such concepts as superstition, science, quasi-religion, and new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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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나카야마 미키의 삶과 '폭력': 천리교 사상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저자 : 임태홍 ( Lim Tai Hong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5-326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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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천리교 교조 나카야마 미키의 생애를 3시기로 나누어 각 시기에 미키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던 미키의 '사상적' 모색을 고찰하였다.
미키는 현존하는 자료로는 알 수 없으나 어려서부터 어떤 심각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인격적으로 커다란 손상을 입은 사람이다. 그러한 손상은 그가 1837년에 경험한 다중인격적인 종교체험, 그리고 그가 메이지유신 이후에 10여년 이상동안 '자동필기'라고 하는 다중인격적 증상에 의존하여 천리교 경전인 《오후데사키》를 집필한 사실에서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여기서 '폭력'이란 미키 자신이 그렇게 느낀 것으로, 객관적으로는 합법적이며 정당하여 '폭력'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 미키나 그 제자들의 잘못이 외부의 '폭력'을 초래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키는 대개의 경우 그것들을 부당한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국가 기관의 의한 '폭력'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나 주변의 신사에 소속된 사람들이 천리교교단에 요구하거나 시정을 바란 사항들은 대개 당시 정부의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것이며 정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천리교 측에서 보면 역시 과도한 간섭, 혹은 탄압으로 해석되며, '폭력'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미키를 심각한 장애에 이르게 만든 '폭력'적 상황은 미키 개인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스스로 '신'으로서 자처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그 신은 인간에 대해서 '보복적'이며, '공격적'이고 나아가 '폭력적'인 신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런 면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따라서는, 또 상황에 따라서는 '어버이'의 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가족과 제자들을 거느린 고령의 여성으로서, 또 어려서부터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하였던 종교인으로서 이러한 모습은 그녀의 본 모습에 가깝다.
자아 확대가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 그녀는 자신이 인류를 낳은 신으로서 자임하기도 하였다. 또 그는 '일본인은 누구인가'하는 집단 정체성의 문제도 고민하였다. 미키는 자신의 집터에서 자신이 직접 낳은 인간이 세상 모든 인류의 뿌리가 되었으며 그것이 '일본인'이며 그 일본인들이 세계 각지로 퍼졌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역시 '폭력'이 전제되어 있다. 즉 가라(외국) 사람들이 그동안 일본인들을 멋대로 했다는 사실, 즉 폭력적 역사에 대한 반발이었다. 자기 방어적 사유의 결과로 나타난 믿음이었다. 이렇게 미키를 둘러싼 폭력적 상황은 미키가 천리교 사상을 구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This pater examines the violent circumstances confronted in the lifetime of Nakayama Miki(1798~1887), the Founder of Tenrikyo, and investigates her ideological search for escaping the situation.
There are no clear evidences, however from childhood she exposed to certain violence situations and greatly damaged to have a personality disorder. This damage is able to be proved by a mystical experience of 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in 1837.
She also wrote the Ofudesaki, the most important scripture of Tenrikyo, relying upon the automatic writing that is a symptom of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for many years after the Meiji Restoration. This symptom also indirectly can prove her poor environment.
The 'violence' here is that Miki herself has the feeling subjectively. It may be legal or legitimate, also be nonviolent objectively. In some cases, Miki or her believers made mistakes to cause the violence of outside forces. Under any circumstances, however, she considered them all unfair violences.
The violent situation that led to her serious disorder disturbed the personal identity of Miki, and she looked upon herself as a God, 'Moon and Son' or Parents God. The God became to have the aggressive and revengeful character to human. Of course, the violent personality of God is not always same to all human being. According to persons, or depending on the situation, the God, Miki herself, shows the parent's mind.
When her identity expanded to reach a peak, she used to considered herself as the God who gave birth to all the people on the earth. And she deeply thought over the problem on the group identity of Japanese people. Miki believed that the persons herself produced in the site of her house became the root of all the human beings, and that the orignal persons was the Japanese, who afterward spreaded all over the world. In the background of this perception, the 'violence' is premised, too. So to speak, It was a backlash against the violent history that 'Kara', foreign country or foreigners, suppressed and ruled over the Japanese willfully. Such a belief could be said to be caused by self-defensive thinking. In conclusion, the writer points out that the violent situation surrounding Miki played very important role for constructing the Tenrikyo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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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각 이미지와 초월성: 동방정교회의 '이콘 공경'을 중심으로

저자 : 이연호 ( Lee Yeon Ho )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27-35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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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icon)은 예수 그리스도, 성모, 천사, 성인을 그린 이미지이며, 동방정교회의 신앙과 전례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콘은 원형(prototype)인 신의 모상(模像)이며, 신과 '닮음'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관계가 없는 허상과 구별이 된다. 8~9세기의 이콘파괴운동을 극복한 동방정교회는 14세기에 금욕 수행과 자기 정화를 통해 신화(神化)를 추구하는 헤시카즘을 교리에 편입했다. 헤시카즘은 '정적주의'라고도 부르며, 헤시카시스트들은 신의 에너지인 '창조되지 않은 신성한 빛'을 내면화하기 위해 외부의 감각에서 떠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미지를 멀리하는 헤시카즘과 동방정교회의 이콘 공경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이콘에 대한 공경은 그려진 대상인 원형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는 헤시카스트들이 경험하는 빛이 타보르산의 현성용에서 신으로부터 나왔던 바로 그 빛, 즉 신의 에너지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신의 본질은 알 수 없지만, 지상에서 작용하는 신의 에너지에는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인 빛을 봄으로써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지상에서의 신화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본다'라는 감각의 주체를 육체라고 할 수 있을까. 성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는 인간이 수행을 통해 천사 혹은 신적인 형태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존재의 양식에 도달해야 신의 빛을 인식할 수 있다고 했고, 또한 몸과 영혼이 함께 일상적 활동으로 신의 의지를 실현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몸과 영혼으로 함께' 이미지를 보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바울의 이콘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던 성 크리소스톰의 경우처럼, 수행을 통해 도달한 수준에 따라 이미지의 원형과 간접 혹은 직접으로 연결이 될 수 있다. 비록 수행자 혹은 신자가 도달해있는 '존재의 양식'에 따라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을 그린 이콘은 지상의 관점에서는 신의 모상이고 천상의 관점에서는 원형인 신 자체이기 때문에,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는 '보는 감각'을 통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초월의 세계와 연결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이 신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서 신처럼 되려는 과정 또는 신과 합일하려는 과정인 신화를 중심으로 하는 이콘의 초월성은, 지상에 발을 딛고 천상을 지향하는 초월성이라고 할 수 있다.


Icon is an image of Jesus Christ, the Virgin, the Angel and the Saint, plays an integral role in the faith and the liturgy of the Eastern Orthodox Church. Icon is a likeness-making of God as the prototype, which distinguishes from a false image that has no such relations with God. Overcoming the iconoclasm in the 8th and 9th centuries, the Eastern Orthodox Church incorporated Hesychasm into the doctrine in the 14th century, which is in pursuit of deification through ascetic practice and purification of self. Hesychasm also called “Quietism”, and hesychast is asked to leave the senses to internalizes “The Uncreated Divine Light” as God's energy. If so, how can hesychasm trying to stay away from images and veneration of icon of the Eastern Orthodox church be compatible? St. John of Damascus said that veneration of icon redounds to the original represented in a image, and St. Gregorius Palamas claimed that the light experienced by the hesychast was the very light as the energy of God that came from Christ in Transfiguration on Mount Tabor. Mortals can't know the essence of God, but they can participate in God's energy that works on earth. And by seeing the light which is energy, one can benefit in the process of deification that must be pursued constantly in this world. Then, can the agent of the sense of 'seeing' be called the corporal? St. Gregorius Palamas said that mortals perceive the light of god only when they reach the new mode of being that can be called an angel or a divine form through practices, and that the body and soul together practice God's Will through common activities. So mortals see images with 'the body and the soul together', and can be connected original in the image indirectly or directly depending on the level reached by practice, as the case of St. John Chrysostom who seemed to be talking to icon of Paul. Even if there may be differences in strength depending on the “mode of being” reached by practitioner or believer, since the icon that represented God is the likeness-making from the earth's perspective and the prototype from the heavenly perspective, make possible mortals to connect the transcendental through 'a sense of sight' and by doing so helps them to become like god on earth.
Thus, the transcendence of icon centered on deification which the process of becoming like God or uniting with gods here and now, is the transcendence that stand on this world with one's foot and orientate towards heavenl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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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사회학자의 신종교 연구와 신천지

저자 : 조성윤

발행기관 : 한국종교문화연구소(종교문화비평학회) 간행물 : 종교문화비평 37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8-368 (1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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